[연중 제26주간 화요일] 하늘에 올라가실 때 (루카9,51-56)

2025. 9. 28. 오후 8: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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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30일 화요일

[연중 제26주간 화요일] 하늘에 올라가실 때 (루카9,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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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많은 민족들이 주님을 찾으러 예루살렘에 오리라.>(즈카8,20-23)

20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민족들과 많은 성읍의 주민들이 오리라.

21 한 성읍의 주민들이 다른 성읍으로 가서 , 가서 주님께 은총을 간청하고 만군의 주님을 찾자. 나도 가겠다.” 하고 말하리라.

22 많은 민족들과 강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에서 만군의 주님을 찾고 주님께 은총을 간청하러 오리라.

23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그때에 저마다 말이 다른 민족 열 사람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가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화답송>시편87,1-3.4-5.6-7(즈카8,23)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네.

거룩한 산 위에 세운 그 터전, 주님이 야곱의 어느 거처보다, 시온의 성문들을 사랑하시니, 하느님의 도성아, 너를 두고 영광을 이야기하는구나.

나는 라합과 바빌론도 나를 아는 자로 여긴다. 보라, 에티오피아와 함께 필리스티아와 티로를 두고 그는 거기에서 태어났다.” 하는구나. 시온을 두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여기서 태어났으며, 지극히 높으신 분이 몸소 이를 굳게 세우셨다.”

주님이 백성들을 적어 가며 헤아리신다. “이자는 거기에서 태어났다.” 노래하는 이도 춤추는 이도 말하는구나. “나의 샘은 모두 네 안에 있네.”

 

복음<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루카9,51-56)

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5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54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55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연중 제26주간 화요일 제1독서 즈카 (8,20-23)

 

 즈카르야서 8장은 예루살렘 성전 건립과 도성 복구 다음에 오는, 예루살렘에 있을 메시아 시대의 행복에 대하여 전한다.

 

순전히 하느님의 성령의 힘, 은총의 힘으로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오고, 성전 건립과 도성 복구가 이루어지면, 이제 하느님의 영광이 늘 예루살렘 도성 안에 현존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유다 백성들이 야훼 유일신 신앙을 회복하여 임마누엘 하느님의 축복받는 민족이 되고, 다른 민족들과 성읍의 주민들이 그것을 부러워하며, 그들 축복의 편린이라도 받기 위해 예루살렘 도성으로 몰려오게 된다는 것이다.

 

민족들과 많은 성읍의 주민들이 오리라. "자, 가서 주님께 은총을 간청하고,만군의 주님을 찾자. 나도 가겠다.'하고 말하리라. 많은 민족들과 강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에서 만군의 주님을 찾고 주님께 도움을 간청하러 오리라.

그때에 저마다 말이 다른 민족 열 사람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가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하고 말할 것이다. (즈카8,20-23참조)

 

오늘 독서의 즈카리야 8장 20-23절을 묵상하면서,

지금 나와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는 하느님 영광이 머무는 하느님 현존의 장이며, 하느님 축복의 통로인가? 를 물어 보아야 한다.

 

과거에 잘못 살아 성전이 무너졌다 하더라도, 성령의 비추심으로 다시 회개하고, 모든 것이 회복되고 복구가 되어 주님 현존과 영광이 머무르는 축복의 통로가 되라는 것이다.

 

그때에 저마다 다른 민족 열 사람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가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하고 말할 것이다.

 

성령 충만으로 주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하느님을 감동시키는 삶으로 하느님 현존과 영광과 축복의 통로가 되자.

하느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데 하느님께서 임마누엘 하느님으로 동행하시는데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장애이고 문제인가?

 

 

 

 

[연중 제26주간 화요일(사제 정진만 안젤로)

 

루카 복음서는 마르코 복음서나 마태오 복음서와 비교할 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을 자세하게 다룹니다(9,51-19,28 참조).

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의 중심에 속하는 부분의 첫 번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갈릴래아에서 활동을 마치신 예수님의 시선은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로 결심하셨는데이는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질 파스카 사건을 완성하시기 위함입니다.

예루살렘은 구약의 예언에 따라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그리고 부활이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24,25-27.46 참조).

9장 51절은 예수님의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완성을 향하여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서 먼저 사마리아인의 고을을 방문하십니다.

그러나 갈릴래아에서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부당하셨듯이(4,16-30 참조),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여정의 첫 방문에서도 사마리아인들에게서 환대를 받지 못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거부한 사마리아인들이 멸망하기를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불을 내려 사마리아인들을 심판하여야 한다는 야고보와 요한을 꾸짖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9,22.28-36.44 참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예루살렘에서 반대자들에게 배척을 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실 것입니다.

루카 복음서 저자가 전하는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인들을 구원의 대상에서 배제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그리고 땅끝에 이르기까지”(사도 1,8)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 선포되기를 바라시는데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마음에서 우리는 사랑을 느낍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연중 제26주간 화요일 복음 (루카9,51-56)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54)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걸어야 할 인생의 여정의 알고 계셨고, 그 계획을 따를 의지를 가지고 계셨다.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되면, 계속해서 당신을 시험하고 비난하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루카5,21.30; 6,2.7.11)에 의해 필연적으로 고난을 받으신다는 것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느님의 계획을 따를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다.

 

루카 복음9장 51절에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에 해당하는 원문을 직역하면,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그 얼굴을 고정시켰다'가 된다.

 

'그는 ~그 얼굴을'에 해당하는 '아우토스 토 프로소폰'(autos to prosopon; he - his face)은 한글 새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예루살렘 쪽을 향하고 있는 예수님의 비장한 마음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또한 '마음을 굳히셨다'는 의미로 번역된 '에스테리센'(esterisen; resolutely set; stedfastly set)의 원형 '스테리조'(sterizo)는 어떤 사물을 흔들리지 않도록 확고하게 고정시키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이며, 비유적으로는 마음을 변치 않도록 확고히 하는 것을 가리킨다(루카22,32).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남겨진 길을 위해, 비록 그 길이 당신에게 고통으로 다가온다 하더라도 좌우를 향해 고개를 돌리시지 않았다. 

오로지 당신이 가야 할 길에 꽂혀 있는 표지를 향해 얼굴을 고정시켜 거기에서 눈을 떼지 않으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는 당신의 걸음을 어느 누구도, 어떤 세력도 방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것은 십자가 이후에 당신에게 이루어질 부활과 영광스런 승천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히브12,2).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의 활동을 마감하고, 이제 유다 지방에서의 활동을 시작하신다. 

갈릴래아 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사마리아 지방을 통과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요르단강 동편으로 상당히 우회해야 하므로 적어도 며칠을 더 걸어야 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한 마을에 숙박하기 위해 제자들 중 몇을 심부름꾼으로 보내셨다. 

사마리아인들은 B.C.722년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한 북부 이스라엘과 아시리아 사이에 생긴 혼혈족인데, 그들의 기원은 열왕기 하권 17장 24~41절에 나온다.

 

바빌론 유배 이후에 느헤미야와 즈루빠벨이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을 재건할 때 사마리아인들도 동참하고 싶어했지만, 종교적 순수성을 내세운 유대인들은 그들의 도움을 냉정하게 거절하여 그때부터 그들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경원시하게 되었다.

 

유대의 정통성을 계승하지 못하고 예루살렘에 세워진 성전에서의 종교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사마리아인들은 독자적으로 주님께 제사드리기 위해 가리짐산 위에 자기들만의 성전을 건립했다(요한4,20). 

그러나 그 성전마저도 마카베오 시대때 요한 힐카누스(J. Hyrcanus)가  파괴함으로써, 유대인들에 대한 사마리아인들의 반목은 더해 갔다.

 

루카 복음 9장 53절에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고 나온다.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과 그 일행을 갈릴래아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해 가는 종교 순례자로 생각했기 때문에 영접하지 않고 배척했던 것이다.

 

사마리아인들은 종교적 피해 의식이 큰 사람들이었기에, 예루살렘 성전의 종교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자기들 지역을 통과하는 모든 갈릴래아의 유대인들을 싫어했으며 통과시키지도 않았다. 

유대 역사가 유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그들은 심지어 자기 지역을 통과하기를 원하는 여행자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고 전한다.

 

한편, 사마리아인들의 배척은 주님의 제자 야고보와 요한의 분노를 치밀어 오르게 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옛날 능력의 예언자 엘리야가 했던 것처럼(1열왕18장)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해서 원수들을 멸망시킬 것을 예수님께 요청했다. 

 

예수님께서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에게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의 보아네르게스라는 별명을 붙여 주신 것(마르3,17)도 이러한 충동적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불과 얼마 전에 타볼산에서 엘리야를 본 적이 있는(루카9,28~36) 야고보와 요한은 과거 아합 시대에 바알 예언자들과 카르멜 산에서 싸우던 엘리야를 염두에 두고 이러한 말을 했을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말속에는 하느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즉시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예수님의 길을 평탄하게 하고자 하는 그들의 충성심이 담겨 있다고 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서도 예수님의 사명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원수를 심판하는, 그것도 불로 무자비하게 태워버리는 것만이 그들을 배척하는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속된 사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으며 (마태5,43.44),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다고 명백히 말씀하셨던 것이다(요한12,47). 

주님께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식이 결여된 지나친 충성은 주님의 의도와 정반대로 행해질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준다.

 



 

 

  

20250930일 화요일

[연중 제26주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예고하신 대로 고난과 죽음을 겪으실 것입니다.

억울한 죽음을 향한 여정이기에 슬프고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루카 복음사가는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루카 9,51)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영광으로 건너가실 것이라는 데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기에 희망에 차 있습니다.

동시에 하느님 계획 안에서 이 죽음과 영광이, 그때가 자리매김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해서 신뢰에 차 있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운명을 느끼시면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습니]”(9,51).

이 구절을 굳이 루카 복음사가가 표현한 글자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자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기로) 얼굴을 고정하셨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분 얼굴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고정되어 있습니다. 다른 곳을 보시지 않고 하느님께서 당신께 맡기신 사명만을 보시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이 표현이 히브리 말 표현이고 루카 복음사가의 신학 안에서 예수님의 죽음은 고통받는 주님의 종의(이사 53장 참조) 모습을 지닌다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여기서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50,7).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한 덕분에 당신의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 주님의 종의 모습은,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예수님 마음속 숨겨진 힘을 우리에게 밝히 드러냅니다.

그분 마음을 닮고 싶습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연중 제26주간 화요일]

 율법의 본거지인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

 

복음 (루카9,51-56)

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 하늘에 오르는 길이 예루살렘, 그 곳에 있기 때문이다. 곧 율법, 그 옛 계약의 심판으로 죽어야 할 죄인들을 살리시기 위해(로마,20 야고2,10 갈라,10) 율법이 요구하는 죗값을 치루시고 믿는 이들에게 의로움을 전가시켜 주시기 위해(로마,21-24 히브7,18-19) 저주의 십자가에 대신 달리시러, 곧 대속, 그 희생의 제사의 제물이 되시기 위해 율법의 본거지인 예루살렘에 가시는 것이다.

*율법- 옛 계약 ☞ 첫 번째 것.  *십자가- 피의 새 계약 ☞ 두 번째 것.

 

(히브10,9-10)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저는 당신(아버지)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에 따라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5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 사마리아, 북 이스라엘로 세상의 힘을 추구했던 그들은 이방 강대국들을 받아들여 그들의 피가 섞여 세상화가 되어 하느님의 뜻(구원)을 떠난 이들이었다.

 

 사제께서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만을 자신들의 유일한 성전이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네들이 그리짐 산에 세운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다. 유다인들은 사람리아인들이 혼혈민족인 동시에 혼합종교를 신봉한다고, 그들과 상종하는 것을 꺼렸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다인들이 자신들의 종교를 업신여기면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좋게 보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모든 유다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순례를 가는 축제기간 중에는 이러한 반감이 더욱 고조 되었던 것이다.>

사마리아인들이나 유다인들이나 자신들의 뜻을 위한 신앙을 고집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들과 달리 하느님의 뜻을 청하는 신앙을 사는가?

 

54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55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 예수님은 죄인들을 살리시려 가시는 길이시기지, 죽으러 가시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요한3,17) 하늘에서 불이 내리면, 아직 진리가 되지 못한 제자, 자신들부터 다 죽었을 것이다. 지난날 나를 보는 듯하다. 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열심한 행위로 참 신자로 자처했던 내 모습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이 구원, 생명의 진리인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 구원의 약속, 계약이다.  *계약- ‘스타오로스’ ☞기둥, 십자 나무.

그 하느님의 계약인 십자 나무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진리로’ 받아들여 그분과 한 마음이 되었을 때 하늘(진리)이 되었다 말한다. 기적과 능력의 예수님을 믿는 것을 진리라 하지 않는다. 하늘 아래, 우리의 모든 것이 허무요 헛된 것임을 깨닫고, 하늘 위, 하느님께만 참(진리)이 있음을 깨닫고, 믿으며 청하는 것, 진리의 삶이다.

 

(요한3,3.5) 3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 하늘 위의 물과 성령, 모두 진리로 하느님의 말씀과 영으로 살아남, 새로 태어남이다.

 

(야고1,18)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 그러니까 하늘 아래 율법, 그 옛 계약을 통해 우리 자신이 얼마나 불가능한 죄인인가를 깨닫고 인정하는 자기 부인(否認)의 신앙을 살아야 하는 것인지, 옛 계약(제사, 윤리, 교리)의 신앙으로 몇몇 가지를 지켜 놓고는 신자인 냥 하면 불의, 위선이다.(야고2,10 이사1,11-14)

 

(갈라3,22-25) 22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놓았습니다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믿는 이들이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갇혀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율법의 감시를 받아 왔습니다. 24 그리하여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25 그러나 믿음이 온 뒤로 우리는 더 이상 감시자 아래 있지 않습니다.

= 제사와 윤리, 교리, 그 옛 계약의 신앙을 산다는 것은 십자가의 대속이 주시는 하늘의 복, 용서, 의로움, 안식, 자유, 생명, 평화)에 관심이 없거나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절(루가9,57-이하)이 그 믿음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 영원한 보호자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천주의 성령님!

세상과 짝하는 삶이 영원한 어둠의 길임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지체로 진리가 되어 하늘의 자유안식평화그 빛의 삶을 현세에서부터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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