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06일 월요일
[한가위] 어리석은 부자 (루카12,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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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리라.>(요엘2,22-24.26ㄱㄴㄷ)
22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마라. 광야의 풀밭이 푸르고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도 풍성한 결실을 내리라.
23 시온의 자손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 주었다. 주님은 너희에게 비를 쏟아 준다. 이전처럼 가을비와 봄비를 쏟아 준다.
24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고 확마다 햇포도주와 햇기름이 넘쳐흐르리라.
26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화답송>시편67,2와 4ㄱ.5ㄷ과 6.7-8(◎7) ◎ 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 하느님,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
○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당신 얼굴을 저희에게 비추소서. 하느님,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
○ 겨레들이 기뻐하고 환호하리이다. 하느님,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
○ 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 하느님,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 하느님은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세상 끝 모든 곳이 그분을 경외하리라. ◎
제2독서<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리라.>(묵시14,13-16)
13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하고 하늘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14 내가 또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께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16 그러자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셨습니다.
복음<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12,15-21)
예수님께서 15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한가위 제1독서 (요엘222-24.26ㄱㄴㄷ)
"시온의 자손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 주었다. 주님은 너희에게 비를 쏟아 준다. 이전처럼 가을비와 봄비를 쏟아 준다." (23)
이스라엘 지역은 우리나라와 정반대로 양력 10월에서 3월까지 6개월이 우기(雨期)이며, 여름에는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극심한 건기(乾期; 양력4월~9월)를 보이는데, 건기도 6개월이다.
또한 이스라엘 지역은 전국적으로 비슷한 양의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지중해 해안 지역, 요르단 동편이나 갈릴리 상,하류, 유다지역의 산지 등 각 지역의 위도나 고도에 따라 강수량의 편차가 크다.
통상적으로 이스라엘에서는 비를 이른 비('요레'; yore; 가을비; 양력10~11월), 장마비('게쉠'; geshem; 겨울비; 양력12~1월; 에제34,26; 에즈10,9.13), 늦은 비(봄비; 양력 2~3월; 예레5,24; 호세6,3)의 세 가지로 구분한다.
우리의 개념으로는 이른 비가 봄비가 되어야 하는데, 이 지역은 우리와 반대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른 비(가을비)는 보리 파종 직후인 양력 10월에 내리는 비로 파종을 위한 밭갈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비를 말한다.
여름철에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아 거칠고 메말라 있는 땅을 적시며 내리는 이른 비는 생존뿐 아니라 농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만일 이때 비가 내리지 않으면, 씨앗을 뿌려도 발아가 되지 않는다.
이 지역은 비의 절대적인 양도 적지만, 내린 비를 저장할 수 있는 하천이나 호수 등의 수자원 시설이 부족하다.
따라서 농사는 거의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의존하기에, 이른 비(가을비)의 비중이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늦은 비(봄비)도 농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비다. 보통 해안 지방에서는 양력 3월, 내륙 지방에서는 양력 4월이면 비가 줄기 시작한다. 이때는 농번기철로 식물이 성장하는 유일한 시기이다.
이때 내리는 비는 풍부한 물과 함께 높은 기온 조건으로 농작물 성장에 절대적인 역할을 준다.
봄에 늦은비(봄비)가 내리지 않으면, 수확이 대폭 줄게 되고, 또 늦서리가 내려 농작물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커진다.
이스라엘 농민들은 비가 계속해서 많이 내릴수록 좋아한다.
특히 5월부터는 비가 거의 오지 않기에 먹을 물을 저장하기 위해서라도 이때 내리는 비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추수 기간의 날씨는 뜨겁고 건조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시원한 아침 시간에 재빠르게 일을 한다(잠언10,6).
이 방법은 약탈하는 사람들, 전염병, 그리고 낱알이 떨어지는 것으로부터 보호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수확기에 이른 곡식의 낱알이 떨어지기 않게 하기 위해서는 신속한 추수가 진행되어야 했다.
왜냐하면, 오순절(추수절; 양력 6월; 월력 3월; 시반) 이전까지, 즉 양력 4월 초에서 6월 초까지 이스라엘 날씨는 비록 동쪽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동풍)의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습기가 있었던 지중해의 영향력(지중해에서 내륙쪽으로 부는 바람은 서풍)과 교차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날씨는 더워지기도 하지만 가끔 뇌우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리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비는 이 기간에 행해지는 보리와 밀 추수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이다. 한참 추수를 기다리던 보리나 밀이 소나기를 맞으면서 수확량이 급격히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1사무12,17).
야고보서간 5장 7절에도 "주님의 재림 때까지 참고 기다리십시오.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리는 농부를 보십시오. 그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맞아 곡식이 익을 때까지 기다립니다."라고 하면서 고난과 시련속에서도 끝까지 주님의 말씀에 충실한 자에게 축복이 내림을 선포하고 있다.
신명기 11장 13절~15절에도,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계명을 잘 들어,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분을 섬기면, 주님께서 너희 땅에 제때에 비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 주시어,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거두게 해 주실 것이다. 또 너희 들에서는 가축에게 풀을 주시어, 너희가 배불리 먹게 해 주실 것이다."
하면서 이른 비(가을비)와 늦은 비(봄비)가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계명을 준행한 결과로서 받는 주님의 크나큰 축복으로 나온다.
주님께서 왜 이런 기후를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셨는가를 묵상해 본다. 영적으로 주님의 뜻이 들어 있는 계명준수로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절대적으로 잘 맺을 때, 이땅에서의 먹고 사는 생존과 생계의 문제가 주님의 축복으로 해결된다는 가르침이다.
우리가 주님 대전에 영적으로 올바로 살아서 은총의 단비, 성령의 단비를 제때에 받을 때, 이 땅의 생계와 생존의 문제는 주님의 축복으로 자동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이다.
[한가위]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가족과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음식과 사랑을 나누는 한가위에, 교회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노고를 축복하시고 손수 풍성한 결실을 내주셨음에 감사드리며(제1독서 참조), 세상에서 고생한 의인들을 그분께서 수확하여 거두시는 심판의 때를 선포합니다(제2독서 참조).
오늘 복음은 그러한 하느님의 심판을 합당하게 준비하는 삶에 관한 가르침(루카 12,1─13,9 참조)입니다.
부자의 속마음에는 유독 ‘모으다’(17.18절)와 ‘쌓아 두다’(19절) 같은 표현들이 가득합니다.
자신이 거둔 소출이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감사의 마음은커녕, 그 재산에 기대어 안심하고 즐길 생각뿐입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하느님도, 나눔을 실천할 이웃도 없습니다.
더 벌어서 계속 더 큰 곳간을 짓고 그것을 채우는 것이 목적이 되어 버린 탐욕은 인간의 영혼을 좀먹는 가장 큰 유혹이며 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부자를 “어리석은 자”,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꾸짖으십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 줄지 않는 보물을 쌓으라고 자주 말하면서(루카 12,33; 16,9; 18,22 참조), 그 방법으로 이웃에 대한 자선을 제시합니다.
한편 잠언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주님께 꾸어 드리는 이, 그분께서 그의 선행을 갚아 주신다”(19,17).
모을 줄만 알고 통장에 찍힌 금액에서 만족과 안정을 찾는 세속적인 부자가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감사와 믿음 그리고 이웃을 향한 나눔과 자선을 통하여 가진 것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하느님 나라의 부자로 살아갑시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한가위]
새 마음을 약속하신 하느님!
복음(루카12,13-21)
13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 예수님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곧 세상의 질서를 위한 중재자, 구원자로 오신 분이 아니시라는 말씀이다.
참조~
(요한3,16)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5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 작은 예로~ 옛적에는 냉장고가 없었기에 이웃과 음식을 나누는 삶을 살았다. 살 수 밖에 없었다. 요즘엔 냉장고가 하나 있는 집이 드물다. 그 만큼 나눔이 아닌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을 병들게 하는 탐욕의 문화 속에 살고 있다.
가끔은 불법이 들통나 집안 금고에 현금이나 금괴 등을 가진 사람이 검찰에 잡혀가는 모습을 뉴스로 보곤 한다. 인간의 탐욕, 욕심이 부른 죄, 죽음이다.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 우리의 목숨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하느님의 것이다. 하느님께서 부르시면 가야 하는 목숨이다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 돈만 인색한 부자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 앞에 부유하지 못한 사람은 우리의 속죄 제물로 내주신 그 예수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분을 진리로 깨닫지 못한 사람이다. 그 진리가 거저 주시는 의로움을 받지 못한 사람이다.
(로마10,2-3) 2 나는 그들에 관하여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위한 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열성입니다.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무엇을 했는가로 받는 구원이 아니다. 누구인가로 받는 구원이다. 그리스도의 대속 그 진리로 의롭게 되어 그분의 형제로~ 하느님의 자녀로 그 신분으로 받는 구원이다. 우리의 구원은 하느님께서 계획하시고 아드님 그리스도께서 이루시고 성령께서 완성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그러나 믿지 못하면 잃어버리는 구원이다.
(갈라6,7-8) 7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우롱당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자기가 뿌린 것을 거두는 법입니다. 8 자기의 육에 뿌리는 사람은 육에서 멸망을 거두고, 성령에게 뿌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입니다.
= 자기 육의 힘(돈, 의)을 믿고 그 육(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은 영원한 땅속으로 들어갈 것이며,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신 보호자 성령께 의탁, 의지하는 사람은 하늘의 용서,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 우리에게 새 마음, 새 영을 넣어주신다 약속하신 하느님!
이 땅의 것이 사라질 그림자 연기 일뿐임을 깨닫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한가위]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주제는 ‘수확’입니다.
씨앗 하나가 싹이 트고 나무에 과일이 열리는 것은 인간의 계획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시설 재배를 통해서 겨울에도 과일이나 채소가 나오지만 그래도 농사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기에 추수를 할 때는 하느님의 손길을 기억하게 됩니다.
요엘서에서 말하듯 추수를 하여 배불리 먹으면서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하신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에 나오는 부자는 많은 소출을 거두고도 하느님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곡식과 재물에만 관심이 있어 그것을 쌓아 두려 하고, 그 재산을 즐기려고만 합니다.
그가 거두었다는 그 많은 소출을 위해서 하느님의 손길이 얼마나 많이 닿았을까요?
그는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한편 요한 묵시록에서는 마지막 때의 심판을, 주님께서 낫을 들고 땅의 곡식을 수확하시는 것으로 나타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곡식이라면, 그들의 삶에는 또 얼마나 많은 하느님의 손길이 닿았을까요?
그러나 모든 이가 그것을 알아보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요엘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들에게 놀라운 일을 하신 하느님을 찬양하고, 어떤 이들은 복음의 부자처럼 자신이 가진 것, 자신이 즐길 것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요한 묵시록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한 일에 대하여 서로 다른 심판을 맞게 됩니다.
재산이 그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지 못하며(복음 참조), 주님 안에서 죽는 사람은 행복합니다(독서 참조).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거두어들이실 때를 생각합시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한가위 복음 (루카12,15-21)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20~21)
'어리석은 자야'에 해당하는 '아프론'(aphron; you fool)은 부정적 의미의 접두사 '아'(a)와 '지혜' 또는 '지각'을 뜻하는 명사 '프렌'(phren)이 합성된 것으로서, '무분별함', '지혜없음'을 가리킨다.
이 부자의 어리석음은 참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분별하지 못한 데 있다. 그는 이 세상의 풍요로움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것이다. 그는 루카 복음 12장 5절에 나오는 '탐욕'의 노예가 된 사람이다.
'탐욕'에 해당하는 '플레오넥시아스'(pleoneksias; greed; covetousness)의 기본형 '플레오넥시아'(pleoneksia)는 '더 많은'이라는 뜻의 '플레이온'(pleion)과 '가지다'는 뜻의 동사 '에코'(echo)에서 파생된 '엑시아'(eksia)가 합성된 것으로서 어원적으로 '자신의 분수에 넘치도록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욕심'을 가리킨다.
루카 복음 12장 5절에서는 '물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과도하게 욕심을 부리게 되는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그 대상으로 한다.
또한, 이 부자의 어리석음은 그의 소유를 지혜롭게 사용하지 못한 데 있다. 그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재화를 쌓았을 뿐, 이것을 가지고 이웃을 구제하거나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자가 되지 못하였다(21절).
결국 여기서 말하고 있는 그의 어리석음이란, 그 부자가 이 세상의 창고에만 자신의 재화를 쌓았을 뿐, 영원한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겉으로는 풍요롭게 보였지만 내면적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공허한 삶이었음을 가리킨다.
'오늘 밤에'
여기서 '오늘 밤에'에 해당하는 '타우테 테 뉙터'(taute te nykti; this night)는 앞선 19절의 '여러 해 동안'('에이스 에테 폴라'; eis ete polla; for many years)와 대조를 이룬다.
'이 밤에'로 직역되는 이 표현은 부자가 여러 해 동안 쉬면서 먹고 마시고 즐길 계획을 세운 바로 그날 밤을 가리킨다.
부자는 '여러 해' 동안 향락을 누리려고 계획했지만, 하느님께서는 계획한 바로 그날 밤에 그의 영혼을 되찾아 갈 것이다.
이것은 그의 계획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게 된 것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재물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덧없고 허무한 것인가를 보여 준다.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
'하느님 앞에서는'에 해당하는 '에이스 테온'(eis theon; toward God)은 '자신을 위해서는'으로 번역된 '헤아우토'(heauto; for himself)와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대조는 재물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지를 보여 주고 있다.
즉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재화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느님께 쌓아 두는 것이 올바르게 재화를 사용하는 것임을 교훈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 쌓아 두는 것은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협력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봉헌하고 협조하는 것과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 대한 애덕의 실천인 자선과 나눔을 말한다(루카12,31.33참조).

2025년 10월 06일 월요일
[한가위] (이찬우 다두 신부)
오늘 제1독서는 땅의 결실에 대해서, 제2독서는 우리 삶의 결실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복음에서는 삶의 결실은 재물에만 있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 고유의 명절 한가위는 예로부터 한 해 동안 키우고 거둔 땅의 결실을 함께 나누던 날입니다.
산업화된 지금은 땅에서 얻은 수확물뿐만 아니라, 한 해 동안 저마다 얻은 삶의 열매를 나누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모여서 한 해가 시작된 뒤 그동안 이룬 것, 삶 속에서 하느님을 만난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막상 가족들이 오랜만에 모이면 이런 시간을 가지기보다는 서로 부딪치고 불편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왔기에 서로 이해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 세대는 명절 때 무리해서라도 음식을 준비합니다.
함께 나누어 먹고, 자녀에게 싸 주고 싶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풍족한 시대를 산 자녀 세대는 이제 명절 음식 준비를 그만하라고 합니다. 음식 준비로 고생하기보다는 가족들과 함께 편히 쉬기를 바라서일 것입니다.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왔고 저마다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서로 배려하고 도움을 주려고 한 말일 텐데 갈등을 빚게 되는 까닭은, 그 기준이 ‘나 중심’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세대도 다르고, 사람도 다르다면, 저마다 그 다름을 존중받아야 합니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삶의 결실과 수확을 가족들과 함께 나누는 더 풍성한 한가위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이찬우 다두 신부)
2025년 10월 6일 월요일 [한가위]
비는 생명수로 하늘의 생명(生命)을 주는 말씀
제1독서(요엘2,22-24.26ㄱㄴㄷ)
22 들짐승(죄인)들아, 두려워하지 마라. 광야(세상)의 풀밭이 푸르고 나무(스타오로스-기둥, 계약)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구약)와 포도나무(신약)도 풍성한 결실을 내리라.
= 옛 계약의 죄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하시고, 하늘의 용서, 생명을 주시는 피의 새 계약으로 하느님의 말씀인 구원의 약속, 계약이 이루어짐의 결실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23ㄱ 시온의 자손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 고난, 시련의 연속인 이 세상 삶이기에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라는 말씀이다.
23ㄴ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 주었다. 주님은 너희에게 비를 쏟아 준다. 이전처럼 가을비와 봄비를 *쏟아 준다.
= 비는 생명수로 하늘의 생명을 주는 말씀이다. 곧 *봄비- 말씀으로 자라나, 가을비- 말씀으로 구원의 결실을 맺는다. 하늘의 영원한 쉼, 안식인, 참 생명의 말씀을 지금 쏟아 붓고 계시기에 희망으로 현세의 고난, 시련의 삶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24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고 확마다 햇포도주와 햇기름이 넘쳐흐르리라.
= 타작 마당은 심판의 장소, 햇 포도주는 옛 계약의 죄를 대속 하시고 하늘의 의(義)를 주시는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을, 햇 기름은 그 새 계약을 진리로 증언하시며 무죄를 선언하시어 새 생명을 주시는 보호자 성령 이시다.
(요한3,5) 5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말씀)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티토3,5)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말씀)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 생명의 말씀을 쏟아 부으셔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신다. 그러므로 자신이 간직(지키고)하고 있는 세상의 물(힘)의 원리인 세상의 말을 버리고, 그 세상의 말로 구축하고 있는 자신을 버리고(부인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로마8,1-3) 1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일을 하시는 말씀을~
26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 하늘에서 내리는 비, 곧 쏟아주신 말씀을 먹는 것에 만족하면 안 된다. 어떤 처지에서 든 감사로 하느님께 영광드림이 최종 목적지다. (이사43,7) 그것이 삶 속에서, 미사에서, 그리고 영원히 드려질 하느님 나라의 일이다.
복음(루카12,15.21)15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 - 말씀을 갖은 사람이다. 곧 그 말씀을 꼭 먹어야 살 수,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닫고, 죄인(짐승)의 자리로 내려앉는, 자기 부인(否認)으로 낮아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다. 그 낮아짐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지체로 하늘의 부유한 사람이 된다.
이 세상은 그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 그리스도 예수님과 한 몸이 되어 돌아오라고 보내신 교육용, 훈련장이다.
☨영원한 보호자이신 천주의 성령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먹고, 마음에 지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도록, 이 세상 훈련을 잘 마치고, 통과할 수 있도록 늘 함께 하시어 말씀으로 충만(充滿)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