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04일 토요일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하늘에 기록된 이름 (루카10,17-24)
제1독서<주님께서 너희에게 기쁨을 안겨 주시리라.>(바룩4,5-12.27-29)
5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내 백성아, 용기를 내어라.
6 너희가 이민족들에게 팔린 것은 멸망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너희가 하느님을 진노하시게 하였기에 원수들에게 넘겨진 것이다.
7 사실 너희는, 하느님이 아니라 마귀들에게 제사를 바쳐 너희를 만드신 분을 분노하시게 하였다.
8 너희는 너희를 길러 주신 영원하신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너희를 키워 준 예루살렘을 슬프게 하였다.
9 예루살렘은 너희에게 하느님의 진노가 내리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들어라, 시온의 이웃들아! 하느님께서 나에게 큰 슬픔을 내리셨다.
10 나는 영원하신 분께서 내 아들딸들에게 지우신 포로살이를 보았다.
11 나는 그들을 기쁨으로 키웠건만 슬픔과 눈물로 그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12 과부가 되고 많은 사람에게 버림받은 나를 두고 아무도 기뻐하지 말아 다오. 나는 내 자식들의 죄 때문에 황폐해졌다. 그들은 하느님의 율법을 멀리하였다.
27 아이들아, 용기를 내어 하느님께 부르짖어라. 이 재앙을 내리신 주님께서 너희를 기억해 주시리라.
28 너희 마음이 하느님을 떠나 방황하였으나 이제는 돌아서서 열 배로 열심히 그분을 찾아야 한다.
29 그러면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신 그분께서 너희를 구원하시고 너희에게 영원한 기쁨을 안겨 주시리라.”
<화답송>시편69,33-35.36-37(◎34ㄱ) ◎ 주님은 불쌍한 이의 간청을 들어 주신다.
○ 가난한 이들아, 보고 즐거워하여라. 하느님 찾는 이들아, 너희 마음에 생기를 돋우어라. 주님은 불쌍한 이의 간청을 들어 주시고, 사로잡힌 당신 백성을 멸시하지 않으신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하늘과 땅아, 바다와 그 안에 사는 모든 것들아. ◎
○ 하느님은 시온을 구하시고, 유다의 성읍들을 세우신다. 그들이 거기에 머물며 그곳을 차지하고, 그분 종들의 후손이 그 땅을 물려받아, 그분 이름을 사랑하는 이들이 그곳에 살리라. ◎
복음<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루카10,17-24)
17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1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20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제1독서(바룩4,5~12.27~29)
바룩서 4장 5절에서 5장 9절은 예루살렘을 위한 권고와 위로를 담고 있다. 바룩서의 마지막 부분은 격려와 위로의 시로 짜여 있는데, 그 문체가 제2이사야서와 매우 가깝다. 이 부분의 원어가 히브리 말인지 그리스 말인지 하는 문제는 많은 논란을 일으킨다.
기원전 63년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점령한 직후에 쓰인 '솔로몬의 열한 번째 시편'이 바룩서의 이 부분과 매우 가까우나, 두 작품을 비교해 보면 바룩서의 이 부분이 솔로몬의 시편보다 오래 되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시대적 배경을 유배 생활 초기로 잡고 이민족과의 화평정책을 권장하는 역사적 서문이나 참회 기도와는 달리, 이 부분은 이민족에 대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고,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이 곧 돌아올 것임을 전제한다.
따라서 이 부분은 처음의 두 부분과 전혀 다른 시대적 상황과 세계를 배경으로 하며, 기원전 63년 이전, 아마도 기원전 2세기 후반에 셀레우코스 왕조와 거리를 두고 있으며 하스몬 가문의 정치적, 군사적 성공으로 용기를 얻게 된 디아스포라 유다 공동체가 저술했으리라고 본다.
한편 예루살렘을 위한 이 권고는 별 어려움 없이 참회 전례의 틀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 같다.
"나는 평화로울 때 입던 옷을 벗고 기도할 때 입는 자루옷을 둘렀다. 나는 영원하신 분께 한평생 부르짖으리라."(바룩4,20)
여기서 '기도의 자루옷'은 참회 전례의 가장 두드러진 의식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영원하신 분'이라는 호칭이 독립된 형태로 쓰인 곳은 성경에서 바룩서 말고는 없는데, 하느님과 그분 계획의 불변성을 강조하고자 이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바룩4,10.14.22.24.35; 5,2).
이 부분은 결국 이스라엘의 민족적 탄원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신탁 형식으로 주신 응답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익명의 예언자는 신명기 32장에서 영감을 받아 유배자들에게 권고의 메시지를 보내면서 유배의 원인이 무엇인지 상기시킨다(바룩4,5~9ㄱ).
그 다음 애가 1장에서처럼 인격화된 예루살렘이 말을 이어 가는데(바룩4,9ㄴ~29), 예루살렘은 시온의 이웃들에게 하소연을 쏟아 놓고 나서(바룩4,9ㄴ~16)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의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실 것이라고 유배자들을 위로한다(바룩4,17~29).
끝으로 예언자가 다시 말을 받아 예루살렘에 권고의 메시지를 보낸다(바룩4,30~5,9).
이 메시지의 주제와 내용은 이사야서 40~55장과 이사야서 60~62장의 것들과 가깝다.
여기서 에언자는 먼저 원수들에게 내릴 징벌을 알리고(바룩4,30~35), 예루살렘에게 자녀들이 개선하여 돌아와 한데 모이게 될 날을 상기시키면서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도록 초대한다(바룩4,36~5,9).
이같은 신명기적 신학사상과 관련하여 바룩서의 저자는 세 가지 점을 부각시킨다.
첫째, 유배의 진정한 의미이다. 유배는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이름과 계약을 다시 기억하고, 자신들의 죄악에서 유일한 하느님이신 주님께로 돌아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둘째, 토라(모세오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스라엘이 죽음의 길에 들어선 것은, 하느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신 지혜의 샘이요,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인 토라를 저버린 탓이다. 바룩서는 토라를 소유한 이는 다른 지혜가 필요없다고 말한다.
세째, 바룩서의 저자도 애가의 저자처럼 예루살렘을 여성으로 인격화한다. 다만 애가는 시온(예루살렘)을 딸로 표현한 데 반해, 바룩은 홀어미를 표현한다.
이 홀어미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심지어 자식들마저 낯선 땅으로 떠나 보내고 지금 큰 슬픔에 잠겨 있는데, 바룩서 저자는 하느님께서 그들을 낯선 땅에서 돌려보내시리라고 절망에 빠진 홀어미를 위로할 뿐만 아니라 그를 들어 올리시고, 정의와 평화와 거룩함의 새로운 소명을 주실 것이라 선언한다(5,3-5).
오늘의 묵상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루카10,17-24)
17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 주님(선)의 죄(악)의 대속 그 생명의 계명, 말씀을 선악의 법으로 속였던 그 사탄의 거짓이 드러나 그 거짓의 힘, 곧 죄의 심판 그 힘이 주님의 진실, 진리 앞에 힘을 잃었기에 제자들에게 까지 사탄이 복종한 것이다.
그 죄값, 죽음을 십자나무의 희생, 죽음으로 다 갚으셨기에(탈출15,25 요한19,30참조)~
(마르1,27) 27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1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 그들의 알고 있던 율법과 다른 새롭고 권위 있는 진리의 말씀 때문에~ 그 권위, 권한의 말씀을 제자들이 받은 것이다.
(묵시12,11) 11 우리 형제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그자를 이겨 냈다. 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 어린양의 피, 곧 예수님의 대속 그 구원의 진리, 그 말씀의 권위로 우리는 늘 죄(심판)를 이긴다. 말씀이 이기신 것이다,
(1요한2,14. 3,20) 14ㄷ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여러분이(하느님으로) 강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머무르며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3,20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20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 땅의 존재로서의 승리보다 하늘의 존재로 하느님의 생명으로 영원히 살게 된 그것이 기쁜 것이다.
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 말씀의 힘, 그 권한으로 사탄을 이기고 땅(죄)의 존재가 하늘의 존재가 되는 그 기쁜 소식은 사람의 지혜에는 감추어져 있다.
(1코린1,21-23)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 하느님나라의 완성을 위한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그리고 그 아들과 사람과의 관계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요한6,37 10,27-29) 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10,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요한17,3) 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 알고, 아는 (야다-눕다, 하나되다, 동침하다)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 구원의 진리(예수)를 본 것이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 성경의 모든 말씀은 구원의 진리이신 예수님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옛 사람들은 성경의 율법을 사탄의 속임으로, 사람의 규정, 계명으로 보았기에 진리의 말씀을 듣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도 말씀을 도덕과 윤리 그 사람의 지혜로 보게 되면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사람의 규정, 계명이 진리를 덮는 너울이 되어 보지 못하는 것이다.
(2코린3,14) 14 그런데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생각이 완고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그들이 옛 계약을 읽을 때에 그 너울이 벗겨지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 구약의 율법 안에 감추어진 구원의 신비, 곧 그리스도를 봐야 하는 것이다.
(루가24,27)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 그러나 옛적이나 현세나 하늘의 생명, 구원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듯을 얻어내려 그분을 섬기는 종교 행위에 열심을 부린다.
(요한5,38-40) 38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천주의 성령님 간절한 마음으로 저희 죄인들을 의탁합니다. 아멘.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10,17-24)
그때에 일흔 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17~20)
루카 복음 10장 1~16절은 일흔두 제자가 하느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파견된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이어지는 10장 17~20절은 선교 여행에서 돌아온 제자들의 보고와 이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와 교훈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기뻐하며'에 해당하는 '메타 카라스'(meta charas; with joy)는 '기쁨과 함께'라는 말인데, '메타'(meta)가 '함께'라는 뜻의 전치사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들이 기쁨에 넘쳐 있었던 구체적 이유가 다음에 이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을 주신 것(루카9,1)과 마찬가지로, 일흔두 제자에게도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을 주셨다. 이것은 이들이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를 쫓아냈다고 보고한 사실로 보아서도 분명하다.
루카 복음 사가는 제자들을 파견한 당사자를 '주님께서는'(루카10,1)이라고 기록하여 제자들이 행하는 모든 권세와 권한이 예수님께로부터 기인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사실은 루카 복음 10장 17절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데, 여기서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주님'('퀴리에'; kyrie)으로 부르고 있다.
이들이 마귀들의 복종을 받아낸 것은 그들 스스로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님의 이름 때문에'로 번역된 '엔 토 오노마티 수'(en to onomati su; in your name)가 잘 말해준다.
'엔 토 오노마티 수'(en to onomati su)는 직역하면 '당신의 이름 안에서'이다.
유대인들의 세계관에서 이름, 즉 '오노마'(onoma)는 단순한 호칭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본질적 속성이나 실체 및 그 실체의 권위를 의미한다(요한5,43; 10,25; 사도10,48).
따라서 루카 복음 10장 17절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낸 것, 구마의 이적이 예수님의 권세에 의해 가능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모든 권세의 원천은 예수님이시며, 제자들은 단시 그 권세를 받아 행하는 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복종합니다'에 해당하는 '휘포탓세타이'(hypotassetai; are subject; submit)는 '굴복시키다', '복종시키다'는 뜻을 지닌 '휘포탓소'(hypotasso)의 현재 직설법 수동태로서 '복종하고 있습니다', '굴복하고 있습니다'는 뜻이다.
사건이 일어난 시점은 과거인데, 제자들이 현재 시제 동사로 말하는 것은, 자신들이 구마 행위를 한 것이 너무나 놀랍고 뜻밖이어서, 예수님 앞에 보고하고 있을 때에도 그 일이 눈앞에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루카 복음 10장 18절에서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보았다'라고 번역된 '에테오룬'(etheorun; I saw; I behold)의 원형 '테오레오'(theoreo)는 깊은 흥미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사물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이다.
예수님께서는 영계의 사령관으로서 뚜렷한 목적을 가지시고 아주 세밀하게 영계의 모습을 지켜보신 것이다.
이 동사가 계속적이거나 반복적인 경험을 나타내는 미완료 과거 직설법으로 사용되어 일흔두 제자들이 마귀들을 쫓아낼 때,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의 우두머리인 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계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묵시록 12장 7절~10절, 13절과 요한 복음 12장 31절에도 나오지만, 여기서 일흔두 제자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한 구마 이적은 종말론적으로 사탄이 패배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보여 주는 명백한 표적임과 동시에, 이미 도래한 하느님 나라의 능력과 효과를 나타낸다(루카11,18~22; 마르3,27).
그리고 루카 복음 10장 19절에 나오는 '뱀과 전갈'은 둘 다 치명적인 독을 가진 짐승들인데, 이것들은 사탄의 세력들을 상징할 때 주로 사용된다 (창세3,1~15; 시편91,13; 2코린11,3; 묵시9,3.5.10).
따라서 뱀과 전갈을 밟는다는 것은 루카 복음 10장 18절과 같은 맥락에서 일흔두 제자에게 사탄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는 권세가 주어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끝으로, 루카 복음 10장 20절의 '~이 아니고 ~으로'에 해당하는 '메~데' (me~ de; not ~but)라는 문장 구조인 전형적인 히브리어 격언구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 본문을 살펴본다.
루카 복음 10장 20절의 말씀은 마귀들이 복종하는 것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제자들의 이름이 생명의 책(묵시20, 12.15)에 기록되어 구원받게 된 것에 비하면 구마 이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마귀를 쫓아낸다고해서 그것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보증 수표가 되는 것도 아니다(루카7,22.23).
구마 이적의 능력은 하느님 나라의 백성들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부가적 특권인 것이다.
그리고 '기록된'으로 번역된 '엥게그랍타이'(enggegraptai; are written)는 '등록하다', '기록하다'라는 뜻을 지닌 '엥그라포'(enggrapho)의 완료 수동태이다.
이 단어가 완료형으로 쓰인 것은 제자들의 이름이 '이미' 하늘 나라의 생명의 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또한 이 동사가 수동태로 사용된 점을 통해 제자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가 바로 선택과 구원의 주도권을 가지신 '하느님'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하늘 나라의 봉사자로 불리운 자들은 항상 자신이 무엇을 하는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되고, 겸손되이 모든 권세와 능력과 은사의 원천이신 주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을 드러내야만 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2025년 10월 04일 토요일(프란치스코 기념일)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이찬우 다두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시던 그날은 새로움과 충격의 연속이었습니다.
먼저 새로 선출되신 교황님께서 정하신 교황명은 ‘프란치스코’였습니다. 이제껏 한 번도 쓰이지 않은 교황명이었습니다.
이어서 등장하신 모습도 참신하였습니다. 교황이면 으레 입는 붉은색 모제타도 쓰시지 않고, 가슴 십자가도 추기경 때 하시던 철제 십자가를 그대로 목에 거시고 군중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로마와 전 세계에’(Urbi et Orbi) 보내는 첫 강복을 하시기 전에 그곳에 모인 신자들에게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시며 침묵 가운데 먼저 고개를 숙이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교황청 사도궁이 아닌 교황청을 방문하는 이들을 위한 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지내셨고, 외국을 순방하실 때도 당신 가방을 손수 들고 다니셨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살아가시려는 모습을 세상 모든 사람에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루카 10,21)라고 기도하십니다.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그들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기에 하느님께 의지할 줄도 모르고, 하느님이 필요하지도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철부지들은 스스로 약함을 인정하기에 하느님께 의지할 줄 알고 하느님을 필요로 합니다.
믿는 이는 약함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그러하셨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나는 어떤 신앙인인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이찬우 다두 신부)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被造物이 創造主를 알고, 認定하는 삶이 自己否認이다.
복음(루카10,17-24)
17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주님의 이름, 곧 하느님의 뜻, 말씀으로 이루어진다. 마귀(뱀)의 선악의 말, 가르침을 먹고 하느님 처럼의 자리에 앉은 인본주의는 절대 복종할 수도, 믿을 수도 없다. 하느님 처럼의 자리에 앉은 그 교만 때문이다.
(로마11,18) 18 그대는 잘려 나간 그 가지들을 얕보며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그대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그대를 지탱하는 것입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1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 ‘아멘’으로 받아 간직하자. 그런데 뱀, 전갈, 그 적대자의 힘은 무엇일까? 선악의 가르침으로 영이 병들어 멸망하게 하는 힘이다.
곧 선악의 심판이 주는 죄와 죽음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권한은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오셔서(요한1,14) 사람이 자신의 욕망 때문에 먹은 뱀의 유혹을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물리쳐 이겨내신 권한이다. (창세3,1-6 루가4,1-13)
20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 ~아멘. 땅의 존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존재가 되는 기쁨이다.
(마태28,17-18) 17 그들(제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 우리 모두의 죄를 품으시고 저주로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흘리신 피(血), 그 피의 새 계약을 ‘다 이루시고’ 받으신 권한이다. 그 엄청난 권한을 받으셨기에 뱀, 마귀, 사탄의 영이 복종할 수밖에 없다. 곧 율법주의, 인본주의가 심판을 할 수 없는, 건드리지 못하는 권한의 말씀이신 것이다.
땅의 존재인 피조물들의 법(말)이 하늘의 존재를 어찌 판단, 심판으로 건드리겠는가...... 창조주께서 불꽃 같은 눈으로 지키시며, 그분의 말씀이, 보호자 성령께서 늘 함께 하시기 때문에 (방종을 조장하는 말이 아니다.) 인간의 법은 구원의 진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히브11,28) 28 믿음으로써, 모세는 파스카 축제를 지내고 피를 뿌려, 맏아들과 맏배의 파괴자가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묵시12,11) 11 우리 형제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그자를 이겨 냈다. 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21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 우리 또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한다. 곧 우리의 뜻, 감정으로 즐거워할 수 있는 기쁨이 아니라는 것이다.
21ㄴ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 선(토브)- 참 ‘좋았다’의 창조 언어다. 곧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통하여 땅의 존재가 하늘의 존재로 새 창조되는 하느님의 선(토브)한 뜻이다.
(갈라6,15) 15 사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 그래서 우리의 죄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다시 오신 그리스도의 영이시며(요한14,18) 하느님의 지혜의 영이신 성령께서 알려주신다.(요한14,26)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 예수님께서 당신이, ‘예언자들이 보고, 듣고 싶었던 영원한 생명, 진리’임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제자들이 지금 보고, 듣고 있음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영이 오셨고, 받았음이, 우리의 기쁨이며 복이다.
☨ 하느님의 지혜, 진리의 영이신 천주의 성령님!
하늘의 기쁨, 복 안에서 하늘의 자유, 쉼, 생명을 살 수 있도록 하느님처럼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자기 부인(否認)의 신앙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