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0일 금요일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하느님의 손가락 (루카11,15-26)
제1독서<주님의 날, 어둠과 암흑의 날>(요엘1,13-15; 2,1-2)
13 사제들아, 자루옷을 두르고 슬피 울어라. 제단의 봉사자들아, 울부짖어라. 내 하느님의 봉사자들아, 와서 자루옷을 두르고 밤을 새워라. 너희 하느님의 집에 곡식 제물과 제주가 떨어졌다.
14 너희는 단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집회를 소집하여라. 원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을 주 너희 하느님의 집에 모아 주님께 부르짖어라.
15 아, 그날! 정녕 주님의 날이 가까웠다. 전능하신 분께서 보내신 파멸이 들이닥치듯 다가온다.
2,1 너희는 시온에서 뿔 나팔을 불고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보를 울려라. 땅의 모든 주민이 떨게 하여라. 주님의 날이 다가온다. 정녕 그날이 가까웠다.
2 어둠과 암흑의 날, 구름과 먹구름의 날이다. 여명이 산등성이를 넘어 퍼지듯 수가 많고 힘센 민족이 다가온다. 이런 일은 옛날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세세 대대에 이르도록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
<화답송>시편9,2-3.6과 16.8-9(◎9ㄱ) ◎ 주님은 온 누리를 의롭게 심판하시네.
○ 주님, 제 마음 다하여 찬송하며, 당신의 기적들을 낱낱이 전하오리다. 지극히 높으신 분, 저는 당신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당신 이름 찬미하나이다. ◎
○ 당신은 민족들을 꾸짖으시고 악인을 없애셨으며, 그 이름을 영영 지워 버리셨나이다. 민족들은 자기네가 파 놓은 함정에 빠지고, 자기네가 쳐 놓은 그물에 제 발이 걸리네. ◎
○ 주님은 영원히 좌정하여 계시고, 심판하시려 어좌를 든든히 하셨네. 그분은 누리를 의롭게 심판하시고, 겨레들을 올바로 다스리시네. ◎
복음<하느님의 손가락으로>(루카11,15-26)
15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군중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24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25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26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제1독서 (요엘1,13-15 ;2,1-2
"사제들아, 자루옷을 두르고 슬피 울어라. 제단의 봉사자들아, 울부짖어라. 내 하느님의 봉사자들아, 와서 자루옷을 두르고 밤을 세워라. 너희 하느님의 집에 곡식 제물과 제주가 떨어졌다." (13)
요엘서 1장 13절은 선민 이스라엘 각 계층을 향한 애곡 권유 형식을 사용하여 메뚜기 대재앙의 참사를 묘사하는 요엘서 1장 5-13절의 마지막 단락으로서 사제들을 향하여 애곡을 권유하고 있다.
실상 요엘서 1장 13절은 1장 9절의 진술과 내용상 동일한 진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엘서 1장 9절은 단순한 사실을 진술하는 서술문이고, 요엘서1장 13절은 예언자 요엘이 사제들과 성전에서 일하는 봉사자들에게 명령하는 명령문이다.
예언자 요엘은 '술취한 자들'과 '술꾼들'(5절), 그리고 '신랑을 잃고 자루옷을 두른 처녀' (약혼한 남자를 잃은 처녀; 8절)과 '농부들'(11절)에게 각각 예언의 말씀을 외친 후, 마지막으로 종교 지도자들인 '사제들'에게 회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자루옷을 두르고'에 해당하는 '히게루'(higeru; put on sackcloth)의 원형 '하가르'(hagar)는 '자루옷'<굵은 베(옷)>을 입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굵은 베로 허리띠를 만들어 허리에 띤다는 의미이다(탈출12,11).
그런데 이와 동일한 단어가 구약 율법의 제사를 거론하는 문맥에서는, 사제들이 직임을 수행할 때 제복을 입고 그것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허리에 띠를 띠는 것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탈출29,9; 레위8,7; 16,14).
그래서 이러한 사실 때문에 영역본들 중에는 본문의 명령어인 '히그루'(higru)를 단순히 '띠를 띠라'(gird)는 의미로 번역했다. 요엘서 1장 8절과 비교해 보면, 그곳에서는 이 '하가르'(hagar)라는 동사가 '자루옷'(굵은 베)을 의미하는 명사 '사크'(saq)를 목적어로 취하였다.
이것을 고려할 때, 예언자 요엘이 '굵은 베'라는 명사 '사크'(saq)를 이곳에서 생략했다고 볼 수 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사제들에게 성전에서 직임을 수행하는 모든 제복을 갖추어 입고 회개하라는 측면에서 일부러 '사크'(saq)를 사용하지 않고, '띠를 띠라'라는 명령어만 사용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슬피 울어라'에 해당하는 '웨씨페두'(wesipedu; and mourn; and lament)의 원형 '싸파드'(sapad)는 어원적으로 머리카락을 쥐어뜯거나 가슴을 치는 행위를 의미하는 동사이다(이사32,12).
구약에서 모두 29번 사용되었고, 대부분 사람이 죽을 때 비탄에 잠겨 통곡하는 행위를 나타내며(창세23,2; 1사무28,3; 2사무1,12; 3,31; 예레16,5), 예언서에서 많은 경우 가슴을 치면서 회개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예레4,8; 22,18; 49,3).
예언자 요엘은 '사크'(saq)라는 명사를 쓰지 않고 단순히 관복을 입어야 한다는 의미만 전달하고 있지만, 그 사제들이 현재의 상황을 마치 남부 유다 왕국 전체가 장례식을 치르는 것처럼 느껴야 하며, 그같은 상황 인식을 전제로 가슴을 치면서 하느님 대전에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점을 촉구한다.
그들이 그러한 상황에 대해 한탄하며 그토록 비통한 심정으로 회개해야 하는 것은 종교 지도자로서 백성들의 신앙을 바로 잡아야 할 책임을 그들이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나오는 '제단의 봉사자들'이나 '내 하느님의 봉사자들'은 앞의 '사제들'을 부연 설명하는 어구일 수도 있고, 성전에서 제사에 관계된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제와 구별되는 레위 지파 사람들을 지칭하는 어구일 수도 있다.
어떤 입장을 취하든, 이들의 공통점은 일반 백성들과 달리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성전을 관리하는 일에만 전적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본문에서 '내 하느님'에 해당하는 '엘로하이'(ellohai; my God)는 번역 그대로 예언자 요엘의 하느님이라는 의미인데, 이것은 상당히 독특한 표현이다.
이에 대해,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을 배반할지라도 예언자 요엘 자신만큼은 그 하느님께 끝까지 순종하겠다는 결심의 표현으로서 '나의 하느님'으로 칭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주 하느님께서 단지 예언자 요엘만의 하느님이 아니며 모든 유다 백성의 하느님이시지만, 당시 사제로부터 시작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올바로 지키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예언자 요엘은 자신만큼이라도 하느님을 바로 섬기겠다는 일종의 다짐에서 하느님을 그렇게 칭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후반절에서 예언자 요엘이 '너의 하느님의 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나의 하느님'과 '너의 하느님의 집'이라는 표현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대조를 유념하면, 사제들이 예언자 요엘을 비롯한 백성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중재자의 사명을 갖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 하느님을 '나의 하느님'으로 칭했을 수 있고, 그 사제들은 성전에서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에 전념하는 사람들이라는 측면에서 '너희 하느님의 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한편 본문에서 '자루옷을 두르고 밤을 세워라'에 해당하는 '리누 밧삭킴' (linu bassaqim)은 '굵은 베옷을 입고 밤이 새도록 누워라'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자루옷을 두르고'에 해당하는 '밧삭킴'(bassaqim)은 분명 회개를 촉구하는 표현이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금식을 하거나 하느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릴 때 이 자루옷<굵은 베(옷)>을 입곤 하였다.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고 나봇을 살해한 사실 때문에 하느님의 무서운 심판을 선언받은 아합왕이 금식하면서 진심어린 회개를 할 때 바로 이 자루옷을 입었으며(1열왕21,27), 바빌론 포로 귀환 이후 이방 사람들과 혼인함으로써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는 표시로 자루옷을 입었다(느헤9,1).
그리고 '밤을 새워라'로 번역된 '리누'(linu; lie all night; spend the night)의 원형 '룬'(lun)은 원래 기본적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이 야영지 혹은 여관에서 유숙하는 것을 나타낸다(창세19,2; 24,54; 31,54).
본 문맥에서는 사제들이 회개하면서 성전 마당에서 밤을 지새워야 함을 나타낸다. 성전 마당에서 잠을 멀리하면서까지 회개해야 한다는 촉구는 당시의 상황이 참으로 비참했다는 것과 이를 타개하기 위해 종교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하여 회개해야 함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사제들의 회개가 선행될 때 일반 백성들의 회개 또한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요엘2,12-17)
'너희 하느님의 집에 곡식 제물과 제주가 떨어졌다'
이 본문은 요엘서 1장 9절 상반절과 동일한 의미를 전달한다. 그러나 요엘은 여기서 단어 몇 개를 바꾸어 진술한다. '너희 하느님의 집에 ~ 떨어졌다'는 의미로 번역된 '니므나으 밉베트'(nimnah nibbeth; are withheld from the house of your God)는 문자적으로 '너희 하느님의 집으로부터 금해졌다'라는 의미가 된다.
'니므나으'(nimnah)의 원형 '마나으'(manah)는 어원상 막아서 어떤 일을 못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민수24,11; 1사무25,26). 본문에서는 수동형으로 사용되었고, 이것은 제3의 힘에 의해 곡식 제물과 제주를 드리는것이 금해졌음을 나타내며, 그 의미상의 주체가 바로 하느님이심을 암시한다.
즉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께 더 이상 가증하고 타락한 제사를 드리지 못하도록 곡식 제물과 제주를 메뚜기 재앙을 통해 제거하셨음을 암시하는 것인데, 이같은 사실은 요엘서 1장 5절과 9절에서도 제시되었다.
그리고 여기서의 '집'은 예루살렘 성전을 지칭한다. 구약 시대의 예루살렘 성전은 주님께서 임재하시는 상징적 장소로 인식되었다(1열왕8,13).
그런데 바로 이러한 성전에서 하느님과의 친교의 상징인 제사가 그것도 예배의 대상이신 하느님에 의해 폐지되었다는 사실은 신정(神政) 왕국의 정체성을 상실케 하는 일이며, 선민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사제 정진만 안젤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에게 기도에 대하여 가르쳐 주신 뒤에(11,1-13 참조),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는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기적 행위에 대하여 군중은 세 가지 모습으로 반응합니다.
군중은 먼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놀라워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일부는 예수님께서 마귀의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리시어 마귀를 쫓아내셨다고 모함하였고,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하였습니다(11,14-16 참조).
구마 기적은 신적 능력을 지니신 예수님의 정체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반대자의 비판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는 이들은 예수님을 사탄의 하수인으로 보고, 그분의 활동과 영향력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보여 주신 기적 행위의 합법성과 정당성을 증언하십니다.
예수님 당신께서는 사탄의 하수인도, 마귀들을 제압하는 마술사나 마법사도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는 기적 행위로써 베엘제불의 힘을 뛰어넘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힘을 보여 주시고자 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군중은 예수님의 기적을 눈으로 보았지만, 그분께서 누구이신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도 복음 속 군중처럼 되지 않도록 신앙의 눈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신앙의 눈은 예수님의 기적 행위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과 그분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벙어리 마귀 치유
(루카11,14-26)
14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군중이 놀라워하였다.
= 말씀을 하느님의 뜻으로 말하지 못하고 사람의 듯으로 말하는 이를 성경은 벙어리, 눈먼 이라고 한다(병행복음 마태12,22-30 ; 마르3,20-27 참조)
성경을 사람의 눈(수준, 지혜)으로 읽었기에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못해, 말 못했던 것이다. 이제 그 말 못하는 이가 하늘의 진리를 말하게 된 것이다.
15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구원의 표징이신데, 그들이 그 하늘의 진리를 못 보고 있다. 하느님의 뜻을 못 보는, 눈멀고 말 못하는 이들인 것이다. 오늘날도 내 소원을 들어 주시는 그 능력의 예수님으로 본다면 눈먼 이가 되는 것이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만 말했고, 그 하느님의 일만 하셨기에, 하느님의 손가락(능력)으로 마귀를 쫓아 내신다.고 하시는 것이다.
하느님의 손가락이 하신일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세상) 노예생활에서 이끌어 내신 후 광야에서 십계명을 주신 일이다(탈출31,18)
십계명은 하나의 계명이다. 그 열 개의 계명, 한 계명씩 그 안에는~ 나무 하나의 희생(죽음)으로 쓴물(죄인)이 단물(의인)이 되는 (탈출15,25), 그것이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 그 계명인 것이다.
그 나무 하나의 희생, 그 사랑이 담겨있는 곧 십자나무의 대속, 그 죽음, 그 사랑의 계명인 것이다. 십계명은 그 하느님의 사랑이 담겨있는 사랑의 계명인 것이다.
그 사랑, 그 하나의 계명을 모르고 열 개의 법으로 받아 지킨, 그 자기 의로움으로 구원을 챙기려 했던 것이~ 마구(뱀)의 유혹, 그의 거짓말인 것이다.
그 유혹을 먹은 아담의 후예인 인간들이 자신들의 계명(말)을 참으로 만들어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번래 세상은 하느님의 신성인 사랑, 그 사랑의 법, 계명으로 지어졌다(로마1,20) 그러나 뱀의 유혹으로 인간의 계명이 들어왔고, 오늘 그 인간의 계명이 쫓겨났으니 하느님의 말씀, 계명(사랑)의 회복으로 하느님 나라가 우리에게 다시 드러나 나타난 그 하느님 나라가 우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 율법(힘센)으로 완전무장을 하면 우리의 재산(구원)은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들에게는 불가능 하기에 율법으로는 *죄만 알 뿐인 것이다(야고1,8~11 로마3,20참조)
그래서 힘센 그리스도, 곧 율법의 실체인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그 율법의 힘센 무장을 解除 시키고, 우리의 재산(헛된 구원)을 다시 빼앗아 더 힘센 그리스도의 영의 것으로 참된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 더 힘센 그리스도의 영, 그분이 구원의 진리임을 깨닫고 그분 편에 서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의 말(가르침)로 이웃이 그분과 하나, 한 몸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와 이웃에게서 마구(뱀)의 말, 그 더러운 말, 영(마귀)이 쫓겨 나는 것이다.
24a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 세상은 하느님의 본성, 사랑, 그 진리의 말씀(물)로 지어졌기에 그 진리의 물이 없는 곳을 찾지 못한다.(로마1,20)
24b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25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 하느님의 말씀(계명, 지혜)을 마음 안에 진리로 잘 간직하고 있다가 인간의 말이 다시 들어오면,~ 곧 인간의 가르침(지혜)이 들어와 더 멎저 보이고 옳아 보여,(인간의 지혜, 계명은 인간의 도리이지 구원의 진리가 아닌 것) 하느님의 말씀이 오히려 어리석게 생각되어 그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을 버리면, 말끔히 치워 버리면~
(1코린1,23 2,14)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14 그러나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26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 그러면, 그는 더러운 영(거짓말)의 사람이 되어 영원한 감옥, 지옥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숨겨진 말씀을 깨달아, 성경을 하느님의 뜻, 지혜, 계명으로 읽고, 묵상하여 내 마음 안에 간직하는 그 실행을 한다면~ 더러운 영(거짓말)은 다시 쫓겨나고 구원의 진리(말씀), 곧 하느님의 약속이 다시 유효하게 되는 것이다.
(히브4,1) 1 그러므로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 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 ~아멘.!!!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매일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예수님을 일컫는 여러 호칭 가운데 ‘구원자’(구세주)라는 호칭이 있습니다.
인류가 예수님의 공로로 진정한 자유와 해방과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구원 활동은 악의 세력과 종말론적인 전투를 벌이는 대결의 이미지로 자주 그려지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구마 이야기에서 악령을 쫓아내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며 구원 활동을 펼치시는데,이를 곡해하려는 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마귀들의 우두머리인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우깁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십니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예수님의 말씀은 명백합니다.
당신께서 만일 베엘제불(사탄)과 한패셨다면, 같은 편으로 인식되는 마귀들을 결코 쫓아내실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마 행위는 오히려 그분께서 베엘제불의 세력을 공격하러 온 적대자이심을 알리는 표징이 됩니다.
사탄은 완전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키는 힘센 자로 비유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힘이 센 자가 나타나 철옹성 같은 보안을 뚫고 들어갑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랫동안 그 집에 갇혀 있던 이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안겨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명백한 대결 구도에 서 있는 두 세력 가운데 어느 편에 설지 확실한 결정을 내리게 합니다.
구원을 받은 여러분들은 어느 편에 서 계십니까?
확실히 예수님 편에 서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시간(時間)은 죽음을 향(向)한 생명(生命)
복음(루카11,14-26)
14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군중이 놀라워하였다.
= 영적으로 듣자 - 진리의 말을 못하는 이가 진리(眞理)의 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제 묵상했듯,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이끌어 주어야만 진리를 깨닫고 진리의 말을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 그 이타의 사랑이 새 계명, 새 계약의 완성으로 곧 ‘진리(眞理)는 예수 그리스도’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15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군중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 그 진리를 모르니 억지소리, 말들을 하는 것이다. 진리를 말 못하는 이들이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 아들들은 하느님의 힘으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귀(魔鬼)를 쫒아냈다.
19ㄴ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 십계명, 율법(律法)을 열심히 지킨 그 ‘인간의 의로움으로 하늘,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는 마귀(魔鬼)들’을 쫒아내신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랑을 위해 의로워지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사랑을 자랑하기 위해 의로워진다.) 하느님의 뜻, 구원의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이름으로만 쫒아낼 수 있다.
*하느님의 손가락- 마태복음은 ‘하느님의 영(靈)’이라고 전한다. 곧 하느님의 힘, 능력(能力)이다. 또한 십계명(율법)을 구원에 이르도록 다 완전하게 지켜낼 수가 없기에, 하늘(구원)에 이를 수 없기에 예수님께서 대속(代贖)으로 다 이루셨다. 그렇게 새 계명(계약)을 다 이루셨기에 우리의 구원(救援)이 완성(完成)된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 마귀의 유혹(誘惑)에 빠져 십계명(十誡命, 율법)을 힘으로 무장하며 안심하는 이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 십계명(十誡命, 율법)의 의로움보다 더 힘센- 그 십계명(十誡命, 율법)의 실체(實體), 새 계명(계약)을 진리로 증언(證言)하실 성령께서 자신을 위한 의로움, 그 힘을 빼앗아 버리고 구원에 이르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 십계명(十誡命, 율법)을 인간의 의로움을 위한 말로 하는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代贖), 그 구원의 의로움에서 흩어버리는 자들 이다. 계명(율법)지킴은 하느님의 자녀(백성)가 된 자들에게 요구(要求)되는 열매(果實)이지 구원의 조건(條件)이 아니다.
24쫒겨난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 우주(宇宙)만물(萬物)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지어졌고, 지탱하고 있다. 곧 더러운 영이 찾는 물(진리의 영, 말씀)없는 곳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인간의 마음, 본능이 물이 없는 곳이다. 그것을 아는 마귀(더러운 영)는 자신이 쫓겨난 그 인간에게 돌아가 보려는 것이다.
25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 인간 본능의 계명(율법)으로 열심히 지킨 그 자기 의로움으로 정돈이 되어 마귀, 자신을 쫓아내었던 ‘물(진리의 영, 말씀)이 말끔히 치워진 것’을 보게 되면~
26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로마8,9)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 확신이 없는 이는 말씀을 매일 공부(工夫)하고 묵상(黙想)하면 된다. *물(진리의 영, 말씀)이 비도록 육적(肉的)인 삶으로 시간을 낭비(浪費)할 때가 아니다. 그것이 어리석음, 계으름, 악(惡)이다.
(에페5,16-17) 16 시간을 잘 쓰십시오. 지금은 악한 때입니다. 17 그러니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
= 시간(時間)을 잘 쓰십시오(엑사구라죠- 시간을 건져 올리다) 땅, 육적인 시간, 곧 육의 목숨, 영광을 위한 그 영원(永遠)이 없는 시간에서 하늘의 생명, 영의 영광을 위한, 그 영원을 위한 시간을 잘 쓰라는 것이다.
(잠언26,16) 16 게으름뱅이는 재치 있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7, 안식)보다 자기가 더 지혜로운 줄 안다.
(코헬10,18) 18 못된 게으름 때문에 들보가 내려앉고 늘어진 두 손 때문에 집에 물이 샌다.
(집회27,12) 12 지각없는 자들과는 너의 시간을 줄여라. 그러나 사려 깊은 이들과는 시간을 늘려라.
(로마8,10)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 보호자 성령님! 시간이 생명임을 자각(自覺)하여 그 생명을 지기자랑(義)으로 낭비하지 않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복음(루카11,15~26)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25~26ㄱ)
'말끔히 치워지고'에 해당하는 '세사로메논'(sesaromenon; it swept clean)은 '빗자루로 쓸다', '깨끗하게 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사로오'(saroo)의 현재 완료 분사로 사용되었다.
또한 '정돈되어 있는'로 번역된 '케코스메메논'(kekosmemenon; garnished; put in order)도 '정리하다', 또는 '질서를 잡다'는 의미를 지닌 '코스메오'(kosmeo)의 현재 완료 분사이다.
따라서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다'는 표현은 이미 청소가 완전하게 끝났고 정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즉 새로운 그 무엇을 맞이할 준비가 끝났다는 뜻이다.
이러한 정신적, 종교적, 영적 공동(空洞) 현상은 바로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아무런 방해없이 그 사람의 인격과 마음을 완전히 소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사탄은 결코 놓치지 않는다.
루카 복음 11장 26절의 원문에는 새 성경이 번역하지 않은 '다른'을 의미하는 '헤테라'(hetera; other)가 더 첨가되어 있다.
따라서 본문은 '자기 보다 더 악한 다른 일곱 영'이라는 매우 강조된 의미가 된다.
성경에서 사용된 일곱이란 숫자는 수나 크기, 혹은 양이나 강도에 따른 증가적 추세는 물론, 더 바랄 것이 없는 완전한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도 악한 영의 숫자가 엄청나게 불었거나, 그 악함이 그보다 더 악할 수 없는 영을 묘사하기 위해 이 숫자가 사용되었다고 본다.
이런 묘사는 이 사람이 일곱 악령이 들었을 때의 상태가 얼마나 비참하게 변했는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해 준다.
결국 이러한 비극적 처지에 놓이게 된 이유는 악한 영이 나간 자리를 공허한 상태로 내버려두고, 성령으로 채우지 아니했기 때문이다(루카11,13).
악령이 나간 자리에는 하느님의 나라가 반드시 도래해야 하고(루카11,20), 그곳은 성령과 말씀으로 채워져야 한다(루카11,28).
2025년 10월 10일 금요일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이찬우 다두 신부)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벙어리 마귀에 들린 사람을 고쳐 주시는 부분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해서 그렇게나 이야기하셨음에도,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찾는 것이 기도’라고 알려 주셨음에도, 그분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신 것을 보고 고작 한다는 말이 이렇습니다.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루카 11,15).
그리고 어떤 이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하기도 합니다(11,16 참조).
제 고향 사투리로 표현해 보면 이렇습니다. ‘하늘의 표징을 보여 주이소. 그러면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한 번쯤 고려해 보께! 아니면 당신은 마귀, 아니 그중에서도 대마귀에 씌었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이야!’
이미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는 기적을 보고도 그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것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저희 고향 사투리로 표현해 보자면, 어쩌면 이렇게 ‘시근이 안 든 백성이 있나?’, 곧 ‘이렇게 철이 없는 백성이 있나?’라고 말씀하시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처럼 되지 않으려면 방법은 한 가지뿐입니다.
‘내 목소리’나 ‘내가 듣고 싶은 말’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찬우 다두 신부)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하느님의 손가락
복음(루카11,13-26)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 피조물(被造物)인 인간(人間)에게 가장 좋은 것이 창조주(創造主) 하느님의 지혜(智慧), 숨, 영(靈)이신 성령(聖靈)이다. 깨달음과 믿음과 생명이 되어 주시는 분.(로마8,8-10)
14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군중이 놀라워하였다.
= 벙어리- 하늘의 말을 못하는 사람이다. 곧 성령(聖靈)께서 깨닫게 햐 주신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眞理)로 주지 못하는 이다. 문자(文字)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을 말하지 못하는 이다. 성경(聖經)을 문자 그대로 보고 도덕(道德)과 윤리(倫理)의 말을 하는 사람이다.
성경(聖經)은 뱀(마귀)의 유혹(誘惑)인 선악(善惡)의 말을 먹고 사람의 뜻, 욕망(慾望)을 위한 세상의 말을 하는 이를 ‘죄로 죽었다’ 하고 ‘벙어리’라 한다.(1요한5,19참조) 그 마귀(魔鬼)의 영(靈)이 쫓겨나, 진리(眞理)의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5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 자신의 뜻, 소원을 위한 인본주의(人本主義)는 참으로 집요(執拗)하다. 자신들의 법(法), 행위를 지키기 위해 진리이신 예수님을 모독(冒瀆)하는데 실없이 용감하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 ‘하느님의 손가락’, 하느님의 말씀으로 쫓아내심이다.(마태8,16) 하느님의 말씀이 계신 곳, 일하시는 곳이 하느님나라다. 하느님의 나라가 오셨다는 것은, 세상(世上)이 악마(惡魔)의 지배(支配)로 죽어있기 때문이다. (1요한5,19)
악마(惡魔 뱀)의 유혹(誘惑)을 먹고 하느님처럼의 자리에 앉아 자신의 욕망(慾望)을 위해 사는 이들을 부수신다.(루가12,51) 그래서 예수님을 ‘베엘제불’이라 모독(冒瀆) 했듯이, 율법주의(律法主義), 인본주의(人本主義)가 자신들의 법(法), 행위(行爲)를 의(義)로 지키기 위해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하늘의 의(義)로 지키기 위해 그리스도의 대속, 하늘의 의(義)를 진리로 깨달아 믿는 사람들을 박해(迫害)한다.
(2테살1,4-5) 4 우리는 여러분이 그 모든 박해와 환난을 겪으면서도 보여 준 인내와 믿음 때문에, 하느님의 여러 교회에서 여러분을 자랑합니다. 5 이는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의 징표로, 여러분이 하느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로마14,17) 17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 세상의 힘, 자기 의(義)로 완전무장(完全武裝)하면 자신(自身)을 지킬 수 있다.(불가능이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 더 힘센 자(者), 곧 완전(完全)하고 영원(永遠)한 하늘의 힘, 하늘 의로움의 영(靈)이 덮어,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신다. 세상의 것을 빼앗아 버리시고, 하늘의 것, 영원한 자유, 평화, 안식, 생명을 주신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 반드시 예수님과 한 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곧 세상 논리인 힘의 삶이 허무(虛無)요 헛 것임을 인정(認定)하는 자기(自己)버림, 부인(否認), 죽음으로, 머리이신 예수님의 지체(肢體)로 한 몸이 되어 그분 안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사제께서<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行)하며 따름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백성(百姓)을 모으는 그리스도의 구원(救援)사역(使役)에 협력(協力)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 백성을 흩어지게 하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는 마귀(魔鬼)의 목적(目的)에 동참(同參)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24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 더러운 영(어둠)이 쉴 곳은 물이 없는 곳이다. 곧 하느님의 말씀(빛), 진리(眞理)가 없는 곳이다. 그러나 온 세상, 우주(宇宙)만물(萬物)은 하느님의 힘, 말씀, 진리(眞理)로 이루어져 있다.
(예레23.23-24) 23 내가 가까운 곳의 하느님이기만 하고 먼 곳의 하느님은 아닌 줄 아느냐? 주님의 말씀이다. 24 사람이 은밀한 곳에 숨는다고 내가 그를 보지 못할 줄 아느냐?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고 있지 않느냐? 주님의 말씀이다.
= 더러운 영(靈)이 쉴 곳은 없다. 그래서 나온 집으로 돌아간 것인데~
25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 제사(祭祀)와 윤리(倫理)로, 세상의 선(善)한 일로 말끔히 정돈(整頓)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앞서 사제(司祭)께서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구원(救援)사역(使役)에 협력(協力)하지 않는 것이다.
26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 인간의 선(善), 의(義)를 참이라 여기는 것이 죄(罪)이기 때문이다. 십자가(十字架)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하늘의 의(義)를 헛되게 하는 불의(不義)이기 때문이다.
(갈라3,10-13)
10 율법(제사, 윤리, 교리)에 따른 행위에 의지하는 자들은 다 저주 아래 있습니다. “율법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한결같이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저주를 받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1 그러니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12 율법은 믿음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 규정들을 실천하는 이는 그것들로 살” 따름입니다. 13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저주(죄)받은 몸이 되시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아멘!!!
(갈라3,24-25) 24 율법(제사와 윤리)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25 그러나 믿음이 온 뒤로 우리는 더 이상 감시자 아래 있지 않습니다.
(1코린2,5) 5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 하느님의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녁(어둠)과 아침(빛)이, 하루(하나)가 진리이듯 빛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어둠인 우리가 들어가 하늘의 빛, 생명이 됨을 깨닫고 믿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