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8주간 목요일] 피(血)에 대한 책임 (루카11,47-54)

2025. 10. 15. 오전 7: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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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6일 목요일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에 대한 책임 (루카11,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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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사람은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로마3,21-30)

21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26 이 죄들은 하느님께서 관용을 베푸실 때에 저질러졌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어, 당신께서 의로우신 분이며 또 예수님을 믿는 이를 의롭게 하시는 분임을 드러내십니다.

27 그러니 자랑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무슨 법으로 그리되었습니까? 행위의 법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법입니다.

28 사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29 하느님은 유다인들만의 하느님이십니까?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은 아니십니까? 아닙니다. 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이시기도 합니다.

30 정녕 하느님은 한 분이십니다.

 

<화답송>시편130,1-2.3-4.5(7ㄴㄷ)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주님, 제 소리를 들어 주소서. 애원하는 제 소리에, 당신 귀를 기울이소서.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니, 사람들이 당신을 경외하리이다.

나 주님께 바라네. 내 영혼이 주님께 바라며, 그분 말씀에 희망을 두네.

 

복음<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루카11,47-54)

47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48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49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50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51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52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53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54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제1독서 (로마3,21-30ㄱ)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3-24)

 

로마서 3장 23절과 24절 개신교에서 의인론(義認論; 믿음을 통한 구원; 이신득의(以信得義)의 원리를 제시하는 필연적 이유가 되는 구절로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모든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한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죄인들의 구속과 의인으로 인정받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로마서 3장 23절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예레17,9), 사람의 능력으로는 결코 하느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는 절망적 선언이다. 여기서 '모든 사람이'로 번역된 '판테스'(pantes; all) '모두', '누구나'를 의미하며 인류 전체를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단어이다.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또한 율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여기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판테스'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전 인류 가운데 아무도 없다

 

그리고 '죄를 지어'로 번역된 '헤마르톤'(hamarton; have sinned)은 '하마르타노'(hamartano)의 부정 과거 시제로서, '목표에서 벗어나다', '과녁을 맞추지 못하다(벗어나다)'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70인역(LXX)에서는 대부분 도덕적인 면에서 일탈된 행위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었으며, 신약에서는 하느님을 대적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사오 바오로 모든 사람의 영적, 도덕적 상태에서 설정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나타내는 데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유다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가 하느님의 신정법(신법)과 자연법을 어겼다는 것이다.

 

로마서 3장 23절에서도, 사도 바오로는 인간이 자기들을 지으신 하느님의 창조 목적과 질서와 의도에서 벗어나 그분과의 친교가 단절된 것을 죄로 규정하고, 그 결과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게 되었음을 밝힌 것이다(창세3,8; 로마5,12).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된 것은 아담의 범죄에서 기인한다. 인류의 시조이며 대표인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 죄의 결과인 형벌과 원죄성이 그와 연대한 전인류에게 전가되어 전인류가 죽음과 영원한 벌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것은 인류를 묶고 있는 죄의 고리가 대표와 연대성의 원리에 의해 인류의 시조 아담에게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잃었습니다'로 번역된 '휘스테룬타이'(hysteruntai; come short; fall short)는 '미치지 못하다', '모자라다', '이르지 못하다'등의 뜻을 가진 '휘스테레오'(hystereo)의 현재 시제이다.

 

모든 사람이 그 죄로 말미암아 본래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자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하느님의 영광에 이르기에 부족한 상태임을 알게 한다.

 

여기서 불변하는 진리를 나타낼 때 쓰는 현재형 시제를 사용해서 인간적 기준으로 볼 때 아무리 착하고 의롭다 할지라도, 그 의로움은 하느님의 영광에 도달하기에는 모자라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속량을 통하여' 

 

로마서 3장 24절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는 인간에 대해 하느님께서 당신의 은총으로 의롭게 된 것을 나타낸다. 값없이 거저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값진 십자가상 구속 성혈의 공로로 말미암은 대속의 은혜이다.

 

여기서 '속량을'로 번역된 '아폴뤼트로세오스'(apollytroseos; redemption)의 원형 '아폴뤼트로시스'(apollytrosis) '~로부터'(from)라는 분리의 개념을 나타내는 전치사 '아포'(apo)와   '풀어줌'이라는 의미를 지닌 '뤼트로시스'(lytrosis)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인간을 얽어매고 있던 죄와 죽음의 속박에서 완전하게 분리하여 해방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을 위해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몸을 대속의 제물로 바치신 것이다. 

 당신의 무죄하신 몸을 '모든 사람의 몸값', 즉 '속전'(贖錢)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고  인간을 사온 것이다(1티모2,6).

 

구약에서는 인간의 죄를 씻음받기 위해서는 흠없는 과월절(유월절;해방절; 파스카절) 어린양의 대속의 피가 필요했다(탈출12,1-13). 하지만 이것은 완전한 것이 될 수 없고, 하느님이시면서 동시에 인간이신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인류를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온전히 해방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육화(강생)하신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피를 흘려 인간을 구속하셨던 것이다(마태20,28; 2코린5,15).

 

'거저 의롭게 됩니다' 

 

여기서 '의롭게 됩니다'로 번역된 '디카이우메노이'(dikaiumenoi)는 '디카이오오' (dikaioo)의 현재 수동태 분사이며, '의롭게 되다'(being justified; are justified)라는 의미이다.

 

하느님께서는 구속 사업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의롭게 만들어주신다.

 

개신교에서는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본성을 원상 회복이 불가능한 '부패된 본성'(nature corrupta)으로 보기 때문에, 속은 썩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상 구속 사업의 성혈 공로로 말미암아 그것을 믿는 사람들을 의롭다고 인정해주고 칭해준다고 해서, '칭의'(稱義) 혹은 '의인'(義認)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는 인간의 본성이 아담의 범죄로 부패되어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원상회복이 가능한 '타락한 본성'(nature lapsa)으로 보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상 구속 성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겉만이 아니라 속(내면)까지 의롭게 된다, '의화'(義化) 된다고 믿고 가르친다.

 

우리가 이렇게 의롭게 되면 원죄와 본죄와 죄의 결과인 잠벌의 완전한 사면이 이루어지면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잃어버린 품위와 신분을 되찾고, 성령의 궁전이 되고, 영원한 생명과 복락의 상속자가 된다.

 

그런데 이 의로움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하면, '거저' 얻어진다.

'거저'로 번역된 '도레안'(dorean; freely) '선물'을 뜻하는 명사인데, 로마서 3장 24절에서처럼 부사적으로 쓰이면 '선물로'(as a gift), '값없이', '무료로' 등을 뜻한다.

 

만일에 하느님께서 값을 요구하셨다면, 우리 중에 단 한 사람도 여기에 참례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선물로 주셨기에 거저 의롭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구속 성혈의 공로에 의지하지 않고는 우리가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간구할지라도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알지 못하면 개신교든 천주교든 오류에 빠지는 헛된 신앙을 하는 것이다. 사제의 글이라고 다 올바른 것은 아닌듯 싶다

 

 

 

 

2023년 10월 19일 목요일

[연중 제28주간 목요일(사제 정진만 안젤로)

 

오늘 복음은 율법 교사를 향한 불행 선언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에게 말씀하시는 불행 선언을 듣고 있던 율법 교사는 그분께 불만을 품고 반문하였고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와 함께 율법 교사를 향하여 위선적 행위를 지적하시며 그들을 꾸짖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를 향하여 불행을 선언하시는 첫 번째 이유는그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거부하던 조상들의 행위를 증언하면서 동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준수에 관심을 기울이는 율법 교사들이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이들을 배척하고 있음을 비판하십니다.

여기에서 예언자들이 박해를 받고 죽임을 당하였듯이 예수님께서도 같은 운명에 놓이실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불행 선언의 두 번째 이유는 율법 교사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기에는 자질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지식의 열쇠가 주어졌습니다.

율법 교사들은 그 열쇠를 가지고 지혜가 세운 집에(잠언 9,1 참조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의 문자적 이해와 형식적 준수에만 관심을 가졌고율법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풀어내고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불행 선언은 율법 교사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을 겨누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반대편에 서서 예수님을 비판하던 이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는 지금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정진만 안젤로 신부)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할례(割禮)받지 않은 이들도 믿음을 통해서 의롭게 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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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로마3,19-31)

19 우리가 알다시피율법이 말하는 것은 모두 율법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그래서 모든 입은 다물어지고 온 세상은 하느님 앞에 유죄임이 드러납니다.

 

(로마2,14) 14 다른 민족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본성에 따라 율법에서 요구하는 것을 실천하면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들이 *자신들에게는 율법이 됩니다.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 그런 율법을 왜 주셨나? 인간의 죄 성, 한계 등, 불가능을 깨닫게 하시려고 주신 것이 율법이다. 그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를 예비(豫備)하신 것이고(에페1,4~), 그 율법 안에 진리(眞理), 곧 그리스도가 숨겨져 있다.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 율법과 예언자, 곧 성경(聖經) 전체는 하느님의 의로움이신 그리스도를 전(傳)하고 있다. 그 하늘의 대속(代贖), 의로움으로 받는 용서(容恕), 구원(救援)을 약속하신 은총(恩寵, 은혜)의 책이 성경(聖經)이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예로니모) 그러면 하느님의 법인 믿음이 있을 수 없고, 그에게는 복(福, 하늘의 용서, 생명)이 없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 역사(歷史)는 하느님의 용서(容恕)라고 했다.

 

입당송(시편130,3-4) 주님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주님감당할 자 누구이리까이스라엘의 하느님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옵니다.

 

26 이 죄들은 하느님께서 관용을 베푸실 때에 저질러졌습니다지금 이 시대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어당신께서 의로우신 분이며 또 예수님을 믿는 이를 의롭게 하시는 분임을 드러내십니다.

=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는 것이 신앙생활(信仰生活)이다.

 

(마태6,33)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27 그러니 자랑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전혀 없습니다무슨 법으로 그리되었습니까행위의 법입니까아닙니다믿음의 법입니다.

= 인간의 계명, 법은 행위(行爲)를 요구한다. 하느님의 계명, 법(法)은 믿음을 요구하신다.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깨달았는가, 믿는가’로 받는 구원이다.

 

28 사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29 하느님은 유다인들만의 하느님이십니까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은 아니십니까아닙니다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이시기도 합니다.

= 모든 인간(人間)은 하느님의 숨을 받은 창조물(創造物)이다.

 

30 정녕 하느님은 한 분이십니다그분께서 할례 받은 이들도 믿음으로 의롭게 하시고할례 받지 않은 이들도 믿음을 통하여 의롭게 해 주실 것입니다. 31 그렇다면 우리가 믿음으로 율법을 무효가 되게 하는 것입니까결코 그렇지 않습니다오히려 율법을 굳게 세우자는 것입니다.

= 인간이 율법(律法)으로 하느님 앞에 의롭게 될 수 없기에 십자가(十字架), 곧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완성하시어 굳게 세우신다.

 

(로마8,3)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곧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 구원에 필요한 하느님의 의로움은 내 이름, 뜻을 위해 열심을 부렸던 그 행위의 의로움을 부인(否認)하는, 비워내는 그 버림으로 받는다. *오늘 이 은총(恩寵, 은혜)의 말씀을 모르면, 치워버리면 인간의 계명에 의한 자기 의로움을 위한 헛된 신앙을 살게 된다. 그것은 큰 불행(不幸)이다.

 

복음(루가11,52-54) 52 불행하여라너희 율법 교사들아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53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54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 인간의 죄성(罪性)으로 진리의 말씀이 율법에 죽으신다. 앞에서 보았듯이 율법을 완성하는 예비(豫備) 되었던 죽음이다. 그렇듯, 세상에서는 세상의 말이 이긴다. 곧 인간들의 말이 진리(眞理)의 말씀을 죽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택(選擇)받은 이들은 진리의 말씀을 살린다.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요한6,44)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그리고 성전(聖典)이신 예수님을 깨닫지 못하고 건물 성전(聖殿봉헌축제(奉獻祝祭)를 지내는 이들에게~

(요한10,26-27) 26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 보호자 성령님! 주님의 목소리,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는, 방해하는 모든 유혹들을 물리치시어 주님의 의로움, 그 진리에 들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복음(루카11,47~54)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52)

 

율법 교사들을 향한 예수님의 세번째 저주가 선언되고 있다. 율법 교사들이 예수님께 책망받는 이유는 그들이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사람들 앞에서 치워 버린 것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지식'이라고 번역된 '그노세오스'(gnoseos; knowledge)는 '알다'를 뜻하는 동사의 원형 '기노스코'(ginosko)에서 유래하였다.

 

'소피아'(sophia)가 진리를 추구하는 능력을 의미한다면, '지식'(gnoseos)은 진리에 대한 직관적 앎과 인지를 표현하는 단어이다.

그래서 이 단어는 '하느님을 아는 지식'(2코린2,14; 10,5)을 의미할 경우에는 관용구처럼 쓰였는데, 여기서도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예수님 당시의 율법 교사들은 하느님 율법의 수호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나름대로의 해석 방법으로 구약에 나타난 단순하고도 명확한 진리를 오히려 애매하고 복잡하게 만들었다.

 

'열쇠'는 보통 '주권'과 '권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데, 여기서는 율법을 해석하는 권한을 '열쇠'('클레이다'; kleida; key)라고 표현하고 있다.

 

율법 교사들은 하느님을 알 수 있는 계시인 구약 가운데서 그 중심적인 정신은 다 없애버리고 형식만을 남겼다.

그리고는 스스로 복잡하고 무겁게 만든 이 규정을 인위적 권위로서  사람들에게 가르친 그들의 잘못이 바로 예수님의 책망의 대상이다.

 

결론적으로 '하느님의 의로운 종들'을 상징하는 예언자들을 죽이는 것도  악한 것이지만, 더 악한 것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길을 차단시켜버리는 행위라는 것이 여기서 밝혀진다.

 

실상 율법 교사들은 하느님과 성경에 대한 지식을 독점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율법 교사들은 마치 '천국의 열쇠'를 독점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따라서 그들은 그 열쇠를 가지고 백성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어야 하는 사명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율법에서 정신은 죽여버리고 형식만 남겨둔 그들의 행위나, 인간적인 전통에 맹목적으로 순종하여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짐을 부과하는 그들의 행위는, '진리의 문','천국의 문'을 잠가 버리고,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조차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행위였던 것임에 틀림없다.

 

 

 

 

20251016일 목요일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이찬우 다두 신부)

 

오늘 독서인 로마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3,22)이지만,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3,23)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3,24)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자신의 힘이나 노력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약하고 부족한 우리는 죄와 잘못과 실수를 저지르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 모든 죄와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는 은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으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주시는 그 은총을 우리는 때때로 느끼지 못합니다.

내가 저지른 잘못과 실수가 크다고 생각하면서, 하느님 앞에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하면서, 마음 아파하는 데에만 그치고 구원의 기쁨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거기에서 멈추어 버리면 안 됩니다. 그 모든 것을 감싸안아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경험할 수 있기에 더욱더 주님 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은총을 충만히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자신만의 편안한 장소를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지치고 힘들거나 슬픔에 잠겨 있을 때도 조용히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곳, 하느님 안에 머물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 보고 그곳에서 충분히 머무는 오늘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용서의 은총을 느끼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찬우 다두 신부)

 

 


 

[연중 제28주간 목요일]<2>

 

우리 죄를 용서로 책임져 주시는 하느님!

인간의 의로움이 개짐일 뿐임을 깨닫는 자기 부인(否認), 버림으로 받는 하느님의 의(義)이다.

 

<입당송>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이스라엘의 하느님, 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옵니다.(시편130,3-4)

 

제1독서(로마3,19 -30ㄱ)

19 우리가 알다시피, 율법이 말하는 것은 모두 율법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 그래서 모든 입은 다물어지고 온 세상은 하느님 앞에 유죄임이 드러납니다.

= 율법(律法)- 제사와 윤리, 도덕.

 

(마태5,20)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인간의 의(義)를 능가하는 하느님의 의로움을 받는 것, 믿는 것, 그 믿음으로 가는 하늘나라다.

인간의 의(義)를 무시해도 되는가? 아니다. 하늘의 의(義)를 받는 이는 위선이 아닌 진실된 의로운을 살 수 있음이다.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 율법에 따르면 모든 것이 피로 깨끗해지고, 피를 쏱지 않고서는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히브9,22) 흠없고, 티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그리된 것이다.(1베드1,19)

 

26ㄱ 이 죄들은 하느님께서 관용을 베푸실 때에 저질러졌습니다.

= 죄(罪)가 용서(容恕)를 깨닫게하기 위한 하느님의 관용이다.

 

26ㄴ 지금 이 시대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어, 당신께서 의로우신 분이며 또 예수님을 믿는 이를 의롭게 하시는 분임을 드러내십니다. 27 그러니 자랑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무슨 법으로 그리되었습니까? 행위의 법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법입니다. 28 사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 일을 하지 않더라도 불경한 자를 의롭게 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 그 믿음으로 의로움을 인정 받습니다.(로마4,5) 그 믿음의 의인(義人), 사람은 큰 일, 진실된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음이다.

 

29 하느님은 유다인들만의 하느님이십니까? 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은 아니십니까? 아닙니다. 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이시기도 합니다. 30 정녕 하느님은 한 분이십니다.

= 우리 죄값으로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단 하나의 구원의 힘 하느님의 지혜(智慧)이시다.(1코린1,24) 곧 우리의 모든 죄를 그리스도의 피가 책임 지셨음이다. 어둠(죄)에서 빛(자유)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율법자들은 자신들의 죄값을 자신들이 책임지겠다는, 그 교만이 영원한 죄(어둠)에 갇하게 한다. 그래서 불행입니다.

 

복음(루카11,47-54)

47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48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49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50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51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52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 우리의 모든 죄(罪)를 책임지시고 십자가(十字架)에서 피를 흘리고 돌아가신, 그 하느님의 구원의 지식(지혜), 그 피의 새 계약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도, 다른 이들도 하늘에 못들어 간다. 그들의 교만 때문이다.

 

(마태15,14) 14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복음환호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6)

 

*교만(驕慢)은 자신을 채우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주인이 되고 목적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내세우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내세우기에 가면(假面)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속과 겉이 다릅니다. 이런 사람들을 두고서 예수님께서는 “불행하다”고 하십니다. 이들이 불행한 이유는 이러한 삶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고 말씀합니다.

 

53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54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 그리스도 예수님을 반대하지 않고 믿는 것, 평화, 생명, 행복입니다.

 

<화답송> (시편130,5) “나 주님께 바라네. 내 영혼이 주님께 바라며, 그분 말씀에 희망을 두네.”

 

☨ 빛이신 주님을 바라고 희망하며 기다립니다. 파수꾼이 아침(빛)을 기다리기 보다 내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립니다. 고통 속에서 희망을 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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