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좁은 門으로 (루카13,22-30)

2025. 10. 28. 오후 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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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9일 수요일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좁은 으로 (루카13,22-30)




1독서<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선을 이룹니다.>(로마8,26-30)

26 성령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27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화답송>시편13,4-5.6(6) 주님, 저는 당신 자애에 의지하리이다.

주 하느님, 살펴보소서, 저에게 대답하소서. 죽음의 잠에 빠지지 않게 제 눈을 비추소서. 제 원수가 내가 이겼다.” 하지 못하게, 제가 흔들려 적들이 날뛰지 못하게 하소서.

저는 당신 자애에 의지하며, 제 마음 당신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복음<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루카13,22-30)

2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 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26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27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28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29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30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제1독서 (로마8,26-30)

 

"형제 여러분,  성령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어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26)

 

로마서 8장 26절부터 30절까지는 성도들에 대한 중재(중보) 활동 및 하느님의 완벽한 구원 섭리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확신을 기록하고 있는 내용이다.

 

 

여기서 '나약한'으로 번역된 '아스테네이아'(astheneia)의 원형 '아스테네이아'(astheneia)는 부정 불변사 '아'(a)와 '굳세다', '강하다'(1베드5,10)라는 뜻의 동사 '스테노오'(sthenoo)의 합성어에서 유래하며, '힘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것은 질병이나 육체적인 약함(마태8,17; 루카5,15)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모든 연약함,  더 나아가 비유적으로 '비겁' 혹은 '나약'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서간들에서 이 명사를 비유적인 의미로 주로 사용하는데, 여기서는 성령의 도움이 필요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무기력함이나 또한 사태를 분석하지 못하고 그것에 대해 지혜롭게 간구하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함을 가리킨다.

 

성령께서는 바로 성도들의 이러한 것들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와주십니다'로 번역된 '쉬난틸람바네타이'(synantillambanetai)는 그리고 '~와 함께'라는 의미의 전치사 '쉰'(syn)과 그 자체로서 이미 '돕다', '헌신하다', '참가하다'라는 뜻이 있는 동사 '안틸람바노마이'(antillambanomai)의 합성어로서 '함께 가담하여 열심으로 돕다'라는 의미를 지닌 '쉬난탈람바노마이' (synamtillambanomai)의 현재형이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두 번 발견되는데, 루카복음 10장 40절에서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된 반면에 여기서는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성령께서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영적인 기도를 하도록 중재하여 우리와 일치하신다는 의미가 있고, 이 동사가 단순히 옆에서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주체가 되어 함께 짐을 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이 단어는 '떠맡는다'는 뜻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단어를 사용해서 사도 바오로가 전달하려는 성령의 도우심은 우리의 나약함을 그분께서 대신 떠맡으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 주시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아무리 어려운 시련이나 환난, 실패와 좌절 등을 만나더라도, 성령 하느님께서 주도적으로 우리들을 도와주신다는 것을 믿고 두려워 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본문은 성령께서 우리 나약함을 도와 주시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가 마땅히 기도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도할 줄 '로 번역된 '토 ~ 티 프로슉소메타'(to ~ ti proseuksometha)에서 의문사 '티'(ti)는 '무엇'(what) 혹은 '어떻게'(how)라는 뜻이므로,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로 번역하는 것이 낫다.

여기서 '프로슉소메타'(proseusometha) '프로슈코마이'(proseuchomai)의 미래 시제이며, '기도하다', '간청하다'라는 뜻이다.

 

우리 모두가 기도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기도할 것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무지한 우리가 미래를 내다볼 수 없기에 옳게 기도할 수가 없기 때문이고, 우리가 어떤 주어진 상황 아래서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것인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하느님의 최종 목표와 전반적인 계획을 알면서도 올바르게  기도할 만한 지혜가 부족하여 당혹스러우며, 영적 승리를 거두는 데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가 있으므로, 성령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 구절은 영적 차원에서 전적으로 무능한 우리 인간의 한계성을  가장 사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가 없으면, 우리는 하느님의 응답을 받는 기도조차도 할 수가 없는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다.

따라서 만일 누가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자만한다면, 그는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며, 여기에는 성령의 인도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들이 포함된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하고 또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시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 지를 잘 아신다(1코린2,10).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간구해 주십니다'로 번역된 '휘페렌튕카네이'(hyperentyngchanei)의 원형 '휘페렌튕카노'(hyperentyngchano)는 '~을 위하여'을 뜻하는 전치사 '휘페르'(hyper)와 '탄원하다', '간구하다'를 뜻하는 동사 '엔튕카노'(entyngchano)의 합성어로서 '아무개를 위하여 중재하여 탄원해 주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 동사 뒤에 '우리를 대신하여' 혹은 '우리를 위하여'라는 뜻의 전치사구 '휘페르 헤몬'(hyper hemon)이 성령께서 '누구를 위해' 간구하시는지 보다 명확히 명시해 주지만, 본절의 문맥과 동사에 이미 이런 뜻이 내포되어 있으므로 이 전치사구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간구해 주십니다'라는 단어는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현재 직설법으로 쓰였는데, 이것은 성령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그 어느 때까지 항상 변함없이 그렇게 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한편 성령께서 성도를 위해 중재 간구하는 방식은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는 것이다. '말로 다할 수 없이'로 번역된 '알랄레토이스'(allaletois)의 원형 '알랄레토스'(allaletos)는 부정 불변사 '아'(a)와 '말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랄레오'(lalleo)의 파생어가 합해진 단어로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단어는 언어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정도로 애통해 한다는 의미이며, 의미나 내용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성령께서는 성도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의 마음을 통해 하느님께 탄식의 형식으로 간구하신다.

 

   


[연중 제30주간 수요일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오늘 복음 말씀을 보면 앞뒤가 맞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을 사람은 적다는 말씀일까요많다는 말씀일까요?

문은 좁고많은 사람이 들어가려고 하지만 들어가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길거리에서 가르치실 때 거기 있던 사람들에게도 당신은 그들을 모른다고 하십니다

구원되리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던 이들 가운데서도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에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시 예수님께서는 동서남북 사방에서아마도 예수님께서 가르치실 때는 그분을 본 적도 없던 이들이 들어와서 잔칫상에 자리를 잡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뜻이 됩니다.

이렇게 상반된 측면이 함께하는 것은누가 구원을 받을지 미리 단정지을 수 없기 때문일 듯합니다.

스스로 구원되리라고 여기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쉽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일깨우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을 직접 보고 들었다는 것도 구원을 보장하여 주지 않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먹고 마시며 그분과 친분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어 알고 있다고 하여도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만하지 말고 문이 닫히기 전에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할 일입니다

언젠가 그 안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가 그 안에 있으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하였던 이들이 먼저 그 잔칫상에서 첫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볼 것이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필리 2,12).

 

(안소근 실비아 수녀)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저희 안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자라나게 하소서.

복음(루카13,22-30)​
2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많은 사람들이 가는 신앙의 길이 올바르지 안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곧 제사와 도덕과 윤리의 신앙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좁은 문- 뱀의 유혹으로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해 말씀을 선악의 법으로 따 먹은 아담~
(창세3,23-24) 23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그를 에덴 동산에서 내치시어그가 생겨 나온 흙을 일구게 하셨다. 24 이렇게 사람을 내쫓으신 다음에덴 동산 동쪽에 커룹들과 번쩍이는 불 칼을 세워생명 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
= 생명나무는 하느님의 구원의 계약을 뜻한다. 곧 메시아의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으로 하느님(생명)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계약의 십자나무다.
아담처럼 말씀을 선악의 계명, 인간의 지혜로 지킨, 그 자기 의로움으로 생명의 나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는 이는 커룹들이 지키는 불 칼이 세워진 그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 인간들의 계명, 인간의 지혜로 지킨, 그 자기 의로움을 위한 신앙을 살기에~

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 너희? 제사와 윤리로 사람의 규정과 교리를 열심히 지킨 그 자기 의로움을 구원의 진리로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하늘의 문(길)이 열리지 않는다.(로마10,1-4참조)

26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27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모두 내게서 물러가라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 주님 앞에서 자신의 뜻(盃)을 위해 먹고, 마셨고, 자신들의 이름, 의(義), 영광을 위한 가르침으로 들었던 그것이 불의인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 길(道)을 가르치시고 이루시러 오셨다.

(갈라1,4) 4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우리를 지금의 이 악한 세상에서 구해 내시려고우리 죄 때문에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28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씹을 양식, 곧 깨달은 말씀이 없어 이(齒)만 갈게 된다는 말씀이다.

29 그러나 동쪽과 서쪽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 하느님은 모든 만민들의 창조 주요, 구원의 아버지시다.

30 보라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 현세에서의 첫째는 누구인가? 세상의 재물, 힘을 가진 사람이다.

(루가16,15) 15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꼴찌는? 하늘의 재물, 힘(성령)을 가진 사람,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믿음으로 받은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어리석음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 현세에서는 꼴찌다.

그러나!~ 독서(로마8,26.30) 26 성령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30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 곧 보이는 것 안에서 보이지 않는 하늘의 복, 하늘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 하늘의 첫째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복을 받은 첫째들을 보면서 하느님의 부재로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그래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 낙오될 뻔 한다.

(시편73,1-24 성서로~) 1 하느님은 참으로 이스라엘에게 어지시고 주님은 마음이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깨끗한 사람을 축복하시거늘, 2 그러나 나는 (하마터면미끄러져 거의 넘어질 뻔하였습니다. 3 어리석은 자들을 부러워하고 악한 자들이 잘 사는 것을 시샘한 탓이옵니다. 4 그들은 피둥피둥 살이 찌고 고생이 무엇인지 조금도 모릅니다. 5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을 겪지 않으며 사람들이 당하는 쓰라림은 아예 모릅니다.
그래서 거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횡포가 그들의 나들이옷입니다. 7 그 비곗덩어리에서 악이 나오고 그 마음에서 못된 생각이 흘러 넘칩니다. 8 그들은 낄낄대며 악을 뿌리고 거만하게 을러메며 억누릅니다. 9 하늘을 쳐다보며 욕설 퍼붓고 혓바닥으로 땅을 휩쓸고 다닙니다. 10 그리하여 내 백성마저 그들에게 솔깃하여 그들의 물에 흠뻑 젖어 들었습니다. 11 그러면서 한다는 말은 '하느님이 어떻게 알랴가장 높은 분이라고 세상 일을 다 아느냐?' 12 그런데 그들을 보십시오그들은 악인이어도몸은 항상 편하고 재산은 늘어만 갑니다.
13 나는 과연 무엇하러 마음을 맑게 가졌으며 깨끗한 손으로 살았사옵니까? 14 이렇게 종일토록 얻어 맞고 잠만 깨면 받는 것이 책벌(징벌)일 바에야?(히브12,10-11) 15 나도 그들처럼 말하며 살고 싶었지만 그것은 당신 백성을 배신하는 일이겠기에 16 혼자 생각하며 깨치려 하였습니다그러나 눈이 아프도록 고생스러웠습니다.
17 마침내 하느님의 성(성전)소에 들어 와서야 그들의 종말을 *깨달았습니다. 18 당신은 그들을 미끄러운 언덕에 세우셨고 패망으로 빠져 들게 하셨습니다. 19 삽시간에 당한 그들의 처참한 최후공포에 휘말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잠에서 깨어난 사람의 허황한 꿈처럼 20 주님은 일어나셔서 그들의 몰골을 멸시하십니다. 21 내 마음이 쓰라렸을 때창자가 끊어지는 듯 아팠을 때, 22 나는 미련하여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당신 앞에서 한 마리 짐승이었습니다. 23 그래도 나는 당신 곁을 떠나지 않아 당신께서 나의 오른손을 잡아 주셨사오니, 24 나를 타일러 이끌어 주시고 마침내 당신 영광에로 받아 들여 주소서.

☨보호자 성령님! 하늘의 꼴찌가 될 땅의 첫째들로 넘어지지 않게 하소서. 성령으로 늘 첫째로 살게 하소서. 아바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복음(루카13,22~30)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4)

 

본절에서 '힘써라'에 해당하는 '아고니제스테'(agonizesthe; strive; make effort to)의

기본형 '아고니조마이'(agonizomai)는 원래 경기에서 상을 얻기 위해 '경쟁하다',

'싸우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최선을 다하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루카 복음 13장 25절이 문이 열려 있을 때와 닫혀버린 이후를 대비한다는 점에서,

이 동사의 의미는 '구원의 문이 열려 있을 때 어떻게든 들어가도록 노력하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열려진 구원의 문을 들어가도록 애쓰라는 것이다.

 

또한 본절에서 '문'은 '집의 문'을 가리키는 '튀라'(thyra; gate; door)로 표현된 반면에, 마태오 복음 7장 13절에서는 '성문' 또는 '성전의 문'을 가리키는 '퓔레'(pyle)로 표현되었다.

 

이런 차이는 13장 25절에서 문을 열고 닫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집주인'의 역할에 따라 이 구절의 배경을 어떤 성이나 성전이 아닌 '어떤 집'으로 맞추기 위한 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 문을 특별히 '좁은 문'('테스 스테네스 튀라스'; tes stenes thyras;

the strait gate; the narrow door)으로 묘사한 것은, 앞의 '힘써라'는 표현과 함께 구원받는 것이 그렇게 안일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진정으로 구원은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좁은 문'이라고 할 수 있다.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하겠지만'에 해당하는 '제테수신'(zetesusin; will seek; will try)의 기본형 '제테오'(zeteo)는 '추구하다'는 뜻으로서 개인적인 추구와 노력을 가리킨다.

 

결국 이 동사는 구원에 있어 아무런 결과를 가져다 주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헛된 노력과 시도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13장 25절과 관련지어 볼 때, 문이 닫혀진 후에 계속해서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당신께 구원을 겸손히 청하는 사람들을 결코 물리치지 않으신다.

 

하지만 하느님의 구원의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 자신의 노력과 인생의 헛된 수고만으로 구원을 얻기를 추구한다면, 그에게는 결코 구원이 없음을 본절에서 사용된 '제테오'(zeteo) 동사의 뜻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을 유대인들에게 적용할 때에는, 그들의 인본주의적인 전통이나 율법에 대한 추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구원은 인위적인 노력으로만 얻어질 수 없다는 방법적인 측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못할 것이다'에 해당하는 '우크 이스퀴수신'(uk ischysusin; will not be able to)은 '그들이 할 수 없을 것이다'는 뜻으로 불가능의 의미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할 수 있다'는 뜻의 기본형 '이스퀴오'(ischyo)의 미래 직설법 능동태로 사용된 '이스퀴수신'(ischysusin)은 부정어 '우크'(uk)와 더불어 그들의 구원에 대한 노력은 마지막 때에 무익한 것으로 드러날 것임을 표현해 주고 있다

 

 

 

  

20251029일 수요일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이찬우 다두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루카 13,24)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구원의 문은 왜 좁을까요? 널찍하게 만들면 될 텐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구원의 길을 좁게 만드셨을까요? 정말 예수님께서 구원의 길을 좁게 만드신 것일까요?

우리는 하루하루 숨 가쁘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기쁨과 즐거움보다는 어려움과 고통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고통을 느끼다 보면 모든 것에서 떠나고 싶어집니다.

하느님께 기도해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 때로는 하느님께 불평만 합니다.

왜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지,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슬픔이 온몸을 짓누르고, 어려움만 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합니까? 술을 마시거나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면서 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정한 믿음이 있다면, 고통과 어려움 속에 있는 하느님의 뜻을 찾아낼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고통과 어려움이 지금 당장은 슬픔과 한탄으로 다가오지만, 결국에는 희망과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문을 점점 더 작고 들어가기 힘들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곧 사람들을 사랑하기보다는 미워하면서, 좋아하기보다는 싫어하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보다는 모른 체하면서, 구원의 문에서 우리는 점점 더 멀어지고, 그 문을 좁아지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구원의 문을 어떻게 만들고 있습니까, 더 좁히고 있습니까 아니면 더 넓히고 있습니까?

 

(이찬우 다두 신부)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좁은 문 

 

복음(루카13,22-30)

2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구원 받을 사람이 적다는 말씀이다. 많은 사람이 가지않는 좁은 문이 구원이다. 사람(아담)이 육신의 욕망을 위해 뱁(사탄)의 유혹으로 먹은 그 선악의 법을 깨고 벗어난 진리의 길이 좁은 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눈에 보이는 것에서 벗어나 하늘의 용서, 생명, 평화, 자유를 주시는 하느님께 들어가는 것이 좁은 문이다.

자신의 뜻을 부정, 부인하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통과할 수 있는 좁은 문이다. 곧 율법(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을 대속으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새 계약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들어가는 좁은 문이다.

 

(요한10,7-8)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 도둑, 강도, 새 계약보다 먼저 온 옛 계약인 율법이다. 인간의 소원, 욕망을 위해 율법을 열심히 지킨 인간들의 의(義)가 모두 도둑이며 강도라 하심이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숨, 사랑으로 존재하며 그리스도의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으로 받는 구원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양(羊), 그리스도인(人)이라면 주님보다 먼저 온 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의 말을 치워야한다.(히브10,9) *탐욕(예삐뚜미아), 율의 욕망을 위해 희생제사를 열심히 드리는 것.

많은 사람이 십자가의 길을 좁은 문, 진리로 믿고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려는 삶을, 신앙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이다.

 

(루가18,8)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26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27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모두 내게서 물러가라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 자비와 사랑의 주님이 아닌 것 같다. 정의의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지만, 곧 말씀은 들었지만 좁은 길인 주님의 뜻, 말씀을 벗어난 넓은 길로 인간들의 뜻, 세상의 것을 위한 말로 먹고 마셨기에 그것이 불의를 일삼는 것으로 정의의 주님께서 모른다 하심이다.

 

28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구약의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모든 예언자들, 그들도 진리를 말하고 살았다는 말씀이다.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진리의 주님을 몰라, 실망하는 제자들에게~

(루가24,25-27)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어리석은 자들아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구약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9 그러나 동쪽과 서쪽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30 보라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 세상에서는 십자가의 길을 진리로 믿어 그리스도께 거저 얻는 의(義)가 허황되고 어리석은 꼴찌로 보인다.(1코린1,18참조) 그래서 유다처럼 ‘내 죄는 내가 책임 진다’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세상 적으로 보면 멋지게 보인다. 그러나 주님은 그 멋지게 보이는 죽음이 당신의 대속을 헛되게 하는 큰 죄라고 하신다.

그리고 진리를 깨달은 이들은 주님만을 의지하기에 행위의 열심을 부리지 않는다. 마리아처럼 깨달음을 위해 말씀에 머무르는 신앙을 산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마리아보다 마르타 처럼 열심 한 행위, 의로움이 첫째다(루가10,38-42) ‘예수님을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는 슈바이쳐 박사 등을 교회 안에서도 본받자’고 권하듯 말이다.

바벨, 카파르나움인 인간들의 공든 탑이 훌륭해 보이고 인간의 열심히 키운, 높고 푸른 나무가 하느님께서 열심히 세우신 십자가 나무보다 멋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도리를 진리인 냥 가르치는 것, 멋져 보이지만 구원을 빼앗는 도둑이며 강도다. 우리의 죄로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 사흗날에 부활하신 그 진리가, 복음이, 마음 안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구절에서 사흗날의 대속, 그 진리를 말씀을 하신다.

 

은총진리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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