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3일 목요일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나라 (루카17,20-25)
제1독서<지혜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다.>(지혜7,22ㄴ-8,1)
22 지혜 안에 있는 정신은 명석하고 거룩하며 유일하고 다양하고 섬세하며 민첩하고 명료하고 청절하며 분명하고 손상될 수 없으며 선을 사랑하고 예리하며
23 자유롭고 자비롭고 인자하며 항구하고 확고하고 평온하며 전능하고 모든 것을 살핀다. 또 명석하고 깨끗하며 아주 섬세한 정신들을 모두 통찰한다.
24 지혜는 어떠한 움직임보다 재빠르고 그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한다.
25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어서 어떠한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
26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27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28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
29 지혜는 해보다 아름답고 어떠한 별자리보다 빼어나며 빛과 견주어 보아도 그보다 더 밝음을 알 수 있다.
30 밤은 빛을 밀어내지만 악은 지혜를 이겨 내지 못한다.
8,1 지혜는 세상 끝에서 끝까지 힘차게 퍼져 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
<화답송>시편119,89.90.91.130.135.175(◎89ㄱ) ◎ 주님, 당신 말씀은 영원하시옵니다.
○ 주님, 당신 말씀은 영원하시고, 하늘에 든든히 세워졌나이다. ◎
○ 당신의 진실 대대로 이어지고, 당신이 세우신 땅 굳게 서 있나이다. ◎
○ 당신 법규대로 오늘까지 서 있나이다. 만물이 당신을 섬기나이다. ◎
○ 당신 말씀 밝히시면 그 빛으로, 미련한 이들이 깨치나이다. ◎
○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빛나게 하시고, 당신 법령을 저에게 가르쳐 주소서. ◎
○ 이 목숨 살려 당신을 찬양하게 하소서. 당신 법규로 저를 도와주소서. ◎
복음<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17,20-25)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23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24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25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제1독서 (지혜7,22ㄴ-8,1)
"지혜는 어떠한 움직임보다 재빠르고, 그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한다. (24)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어서, 어떠한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 (25)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26)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27)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28) 밤은 빛을 밀어내지만, 악은 지혜를 이겨 내지 못한다." (30)
지혜서 7장 22ㄴ절 - 8장 1절까지는 '지혜의 본성'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묘사된다.
첫째, 저자는 지혜서 7장 22ㄴ절-23절에서 지혜의 21가지 속성(명석하고 거룩하며 유일하고 다양하고 섬세하며 등등)을 밝히고, 이어서 지혜를 세상의 영혼(지혜1,7참조)과 동일시하여 "지혜는 어떠한 움직임보다 재빠르고(민첩하고), 그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한다"라고 한다.
그 다음 지혜서 7장 25-26절에서 저자는 '숨결', '발산', '광채', '거울', '모상'과 같은 용어들을 사용하여 지혜가 하느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표현한다.
그러고 나면 지혜서 7장 27-28절에서 "지혜는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라고 하면서 지혜가 사람들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는 사실을 묘사한다.
그리고 지혜서 7장 29-8장1절에서 저자는 지혜가 지닌 우주적 차원을 다시 언급하면서 지혜는 해와 별과 빛보다 빼어나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 라고 지적한다.
또한 지혜에는 도덕적 차원도 있다.
그래서 "악은 지혜를 이겨 내지 못한다." 라고 말한다.
이러한 묘사들은 지혜를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위해 실천적인 조언을 주는 것 이상으로 부각시키고, 지혜를 우주적, 역사적, 도덕적, 신학적 의미를 가진 인격체가 되게 한다.
지혜는 분명 이스라엘의 하느님 외에 다른 어떤 여신이 아니다. 저자는 유일신 사상을 믿는 유다인이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창조주이시고 만물의 주님이시며, 유일하게 참된 하느님이시라고 믿는다.
지혜는 정의나 자비처럼 기껏해야 하느님의 속성이다.
하지만 지혜에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 것 같다.
지혜가 여성의 특성을 갖는 것은 단순히 '지혜'를 뜻하는 히브리어 '호크마'(hokma)와 그리스어 '소피아'(sophia) 명사의 성이 여성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지혜는 여신 '이시스'(isis; 많은 학자들은 지혜서 7장 22-24절에서 이시스의 속성에 해당하는 것을 제시한다고 본다)나 다른 여성 신들을 가리키는 유다인들의 용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의인화된 지혜의 속성들을 예수님께 부여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콜로1,15-20; 요한1,1-18; 히브1,1-4참조).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김상우 바오로)
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다룹니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이 말씀에서 “가운데에”라고 옮긴 그리스 말은 ‘- 안에’, ‘- 속에’, ‘누군가의 깊은 곳에’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풀어 보면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너희 속에, 너희 마음속 깊은 곳에 있다.’가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내일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점집을 찾고 사주를 보거나, 사적 계시에 집착하거나, 사이비 또는 유사 종교에 빠지는 것은 실제로 고통스러운 현실을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거짓 위로에 자신을 맡기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격이자 불난 데 기름을 붓는 격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믿음과 신앙은 정확하게 계량하거나 측정할 수 없어, 이를 향한 여정도 그저 막연하고 모호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체적 표징이나 확실한 ‘계시’ 또는 강렬한 은사에 목말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목마름을 악용하면서 인류 역사 안에서 이단과 사이비가 끊이지 않았으며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믿음과 희망을 두어야 할 곳은 하느님 한 분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가 우리 한가운데에 있다고 명확히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세례성사 때 우리 안에 뿌려진 하느님 나라의 씨앗은 지금 이 순간도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뜻을 찾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충실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씨앗은 어느새 싹을 틔우고 훌쩍 자라 있을 것입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나라가 하늘의 죽음으로 인간의 육(肉)을 뚫고 들어오신다.
복음(루카17,20-25)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 인간들의 생각하고 말하는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21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 너희 가운데(어몽- 사이에), 곧 바리사이들에게 둘러싸여 계신, 그들 사이에 계신 예수님 당신을 지칭하신 말씀이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려, 그분의 말씀으로, 지혜로 오신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다.
(히브1,1-3 참조)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통하여 말씀하시다 1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2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진리)에 앉으셨습니다.
독서(지혜7,25-28) 25 지혜(말씀, 예수)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어서 어떠한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 26 지혜(예수)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27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28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
= 하느님의 말씀, 지혜이신 예수님을 구원의 진리로 깨달은 사람만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이들이 또한 하느님의 나라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중~‘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하늘(샤마임- 하늘들)의 복수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혜의 말씀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구원의 진리로 깨달은 이들이 하늘인 것이고, 그 ‘하늘들 안에 계신 아버지’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나라가, 뜻이 땅(흙인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하신 것이다.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 사람의 아들의 날, 곧 하느님의 나라를 너희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그 하느님의 나라를 갈망할 때는 하루도 보지 못할 것이라 하신 것이다.
23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 너희들이 원하는 하느님의 나라를 찾지 말라, 다시 반복하여 강조하신 말씀이다.
24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그리스도의 영, 성령은 번개처럼 일하신다.
다시~ 독서 (지혜7,27.-8,1) 27 지혜(예수의 영)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8,1 지혜는 세상 끝에서 끝까지 힘차게 퍼져 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
25 그러나 그(人子)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 사람의 아들(예수님)이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는 먼저 배척을 받아 육이 죽으시고(벗으시고) 영으로 살아 나셔야, 그 영이 사람(제자들) 안으로 들어오셔서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신다는 말씀이시다.
(로마8,9)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갈라5,4-5) 4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는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와 인연이 끊겼습니다. 여러분은 은총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5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믿음으로 의로워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루가2,34)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세상 속에 갇힌 하느님의 백성, 자녀들을 먼저 구하셔야 한다. 그런데 그 하느님의 자녀(제자)들이 세상 것에 물들어 따르려 하지 않기에, 그 세상의 것을 치워 버리는, 빼앗아 버리는 그 고난으로 쓰러지게 하신 후, 하늘의 것으로 채우시고 입히셔서 다시 일으키는 일을 하실 것이기에 제자들의 배척(排斥)과 사람들의 반대를 받으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요한3,3)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2테살1,5) 5 이는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의 징표로, 여러분이 하느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 또한 세상의 죄에 물든 그 하느님 백성, 자녀(제자)들의 죄를 예수님 당신의 정결한 피로 깨끗하게 씻어 거룩하고, 의롭게 하신 다음 데려가셔야 했기에, 십자가의 대속, 그 죽음, 고난을 먼저 받으셔야 함도 말씀하신 것이다.
(요한19,30) 30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로마14,17) 17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
= 성령의 이끄심, 보호하심으로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가 거저 주는 의로움으로 하늘의 기쁨, 평화를 누리고 있다면, 그래서 하느님께 감사의 축제, 예배(미사)를 드리고 있다면 하느님 나라가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요한4,23) 23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영원한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32주간목요일 복음 (루카17,20-25)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0ㄴ~21)
바리사이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오는 '때'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때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하느님의 나라의 실체에 대한 대답을 하신다.
하느님의 나라의 실체에 대해 모르고, 그 도래의 시기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이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인식을 잘못하고 있음을 먼저 가르쳐 주신다.
여기서 '눈에 보이는 모습'에 해당하는 '파라테레세오스'(paratereseos; observation)의 원형 '파라테레시스'(parateresis)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즉 가시적 방법으로서의 '관찰'이라는 뜻이다.
특히 여기서는 표징들에 대한 관찰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바리사이들의 질문 속에는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 어떤 징조가 나타나지 않겠느냐?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대답하신다.
이것은 하느님의 나라가 인간이 가시적으로 어떤 표징들을 주의 깊게 관찰해 내어서 그 정확한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리사이들을 포함한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께서 메시야를 통해 선민 이스라엘 가운데 가시적인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죽은 자들을 생명으로 다시 일으키시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시는 지극히 복된 나라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으로 말미암아 이미 도래한 하느님의 나라는 유대인들이 흔히 생각하듯, 인간의 물리적 시각으로 확인되는 세상적인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미래에 당신의 재림을 통해 온전히 완성되어져 나타날 하느님의 나라를 부정하신 게 아니다.
다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도래로 이미 이 땅 가운데 영적인 하느님의 나라, 즉 당신 안에서 하느님의 통치가 실현되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바리사이들의 영적 무지와 하느님의 나라의 본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지적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여기서 '가운데에'에 해당하는 '엔토스'(entos; in the midst of; among; within)을 '안에'(within)라고 번역하면, 하느님의 나라가 '개인의 내부에', '마음 안에'라는 뜻이 되고, '가운데에'라고 번역하면, '너희 가운데에' 혹은 '이 세상 가운데'라는 뜻이 된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을지라도, 당시 예수님 앞에는 함께 동행한 제자들도 있었기 때문에, 후자가 더 타당한 번역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있다'에 해당하는 '에스틴'(estin; is)은 원형 '에이미'(eimi)의 현재 시제이다.
이 시제는 하느님의 나라의 미래적 측면보다는 하느님의 나라의 현재, 즉 현존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예수님의 인격과 그의 활동을 통해 현재 임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구원과 통치를 인정하며,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는 이들 가운데 이미 임하고 있는 나라이므로, 바로 이 순간도 우리는 실제로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 바리사이들의 질문은 그들도 군중들도 예수님의 인격과 그분의 행위를 통하여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왔음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질문은 ‘당신이 말하는 그 나라가 오기 전에 십자가와 죽음이 당신을 덮칠 것이요.’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예수님은 큰 사랑과 인내로 그들의 비방을 비방으로,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신다".(1베드 2,23)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아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21절)
이 말씀의 의미는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다시 일어나 다가오겠느냐고 그때를 묻지 마라. 오히려 너희가 그 나라에 합당한 자로 인정되도록 애써라.
그,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너의 의지에 달렸고, 너는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믿어서 의로움을 인정받고 온갖 덕행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이는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합당한 이로 여겨질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사탄이 쫓겨나고 더 이상 죄가 다스리지 못하면,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가운데 있을 수 있는 것은 진리에 대한 지식이나 무지, 즉 우리 마음이 그리스도의 나라나 사탄의 왕국이 되도록 준비시키는 의로움에 대한 사랑이나, 죄에 대한 사랑이 있을 뿐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의 기쁨입니다.”(로마 14,17)라고 한다.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있고 의로움이요 평화이며 기쁨이라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 나라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반대로 영의 생명을 죽이는 불의와 전쟁, 침울함 속에 있는 사람은 이미 악마의 나라의 시민이다.
이 하느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는 이미 우리의 삶 속에 있는 것이다. 이 삶 속에 무엇을 끌어안고 사느냐가 문제이다.
그 나라는 은총과 진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세상 종말에 그분은 하늘로부터 희미하게 또는 은밀하게 내려오시지 않고, 아무도 “다가갈 수 없는 빛 속에 사시는 분”(1티모 6,16)으로서 하느님 같은 영광에 싸여 내려오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번개가 빛을 내는 것처럼 오시겠다고 하신다.
아버지의 위엄을 입으시고 천사들을 거느리신 채 만물의 하느님이요 주님으로 오실 것이다. 그분은 이제 먼저 수난과 죽음을 당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 나라는 먼저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온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먼저 구원의 수난을 겪으시고, 당신 육신의 죽음으로 죽음을 무너뜨리시고, 세상의 죄를 없애시고, 이 세상의 지배자를 파멸 시키시고, 아버지께로 올라가셨다가 때가 되면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시편 96,13)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 속에 실천하여 우리 자신 부터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도록 노력하고 그러한 변화를 청하자.
2025년 11월 13일 목요일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김동희 모세 신부)
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서의 종말론에 해당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에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가 오는 시간을 물었더니, 시간이 아닌 장소를 말씀하신 셈입니다.
시간을 말씀하시지 않은 까닭은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는 방식으로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아무 때나 어디서나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런 사건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예수님의 공생활을 관상하는 묵주 기도의 빛의 신비 3단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심을 묵상합시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공생활 맨 처음부터 줄곧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그분 공생활의 첫 말씀은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였습니다.
특히 루카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회당에서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는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를 읽으신 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4,21)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왔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당신의 인격과 활동에 일치시키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주도권은 하느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는 자기의 선함으로 얻어 내야 할 어떤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어 받아들이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는지, 어디인지를 묻기보다 그 나라를 반갑게 맞아들이면서 그 나라에서 환영받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아! 이런 거 였어?”
복음(루카17,20-25)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 *너희 가운데(어몽-사이), 곧 바리사이들 사이에 계신 예수님 당신을 말씀하심이다.
*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주권, 말씀이 통치하는 곳이다. 하느님나라 ‘바실레이아’는 ‘섬기다.’ 라는 뜻이다. 곧 예수님께서 법, 어둠인 세상에, 빛인 말씀으로 오셔서 하느님의 뜻, 진리를 흘려주심으로 섬겨주신다.(마태20,28)
(요한1,4-5.9.12-13)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야고1,18)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 자신들의 뜻, 의를 위해 열심히 율법(제사와 윤리)을 고집하는 한, 하느님 나라로 오신 예수님의 섬김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요한5,43-44)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요한6,37-40) 7 (그러나)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아멘)
23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 보이는 현상을 쫓지 말라는 말씀이다. 모두 속이는 가짜이기 때문이다.
(마태24,24)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이들까지 속이려고 큰 표징과 이적들을 일으킬 것이다.
= 오늘 날은 큰 표징, 기적 같은 것으로 일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예수님, 사도들의 때에는 땅의 질병, 죽음을 통해 하늘의 생명, 영원한 자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해 표징과 기적을 일으키셨지만, 오늘날은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심으로 살리시는 일을 하신다.
(로마14,17) 17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옛 계약, 육의)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
(2코린3,6) 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계약은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갈라6,7-8) 7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우롱당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자기가 뿌린 것을 거두는 법입니다. 8 자기의 육(뜻, 의)에 뿌리는 사람은 육에서 멸망을 거두고, 성령에게 뿌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입니다.
24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 하느님 나라는 말씀 안에 머무름으로 “아! 이런 거 였어?” 이렇게 번쩍, 순간적, 깨달음이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는 ‘보이지 않는다.’ 하신 것이고 ‘여기 저기 따라다니지 마라’ 하신 것이다.
25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 먼저 죄인들에 의해 예수님께서 죽으셔야 한다는 말씀인데, ‘내 뜻, 의로움을 위해 내가 섬겼던 예수님이 먼저 내 안에서 죽으셔야 한다’는 말씀이다. 곧 육(肉)의 뜻, 의(義)를 위해 살았던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영, 성령으로 오셔서 비워진 나와 한 몸이 되실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렇게 우리 사이에 계셨던 하느님 나라가 내 안에 들어오심이다. 그리고 육신을 벗는 날, 더러웠던 나를 목숨 바쳐 사랑해 주신 영원한 사랑이신 하느님께 들어가 영원히 살게 된다.
진리이신 천주의 성령님!
마음을 비울 수 있도록 깨닫고, 믿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