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인자(人子)의 날 (루카17,26-37)

2025. 11. 13. 오전 7:5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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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4일 금요일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인자(人子)의 날 (루카17,26-37)



1독서<그들은 주님을 찾아내지 못하였는가?>(지혜13,1-9)

1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그 안에 들어찬 사람들은 본디 모두 아둔하여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인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2 오히려 불이나 바람이나 빠른 공기, 별들의 무리나 거친 물, 하늘의 빛물체들을 세상을 통치하는 신들로 여겼다.

3 그 아름다움을 보는 기쁨에서 그것들을 신으로 생각하였다면 그 주님께서는 얼마나 훌륭하신지 그들은 알아야 한다. 아름다움을 만드신 분께서 그것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4 또 그것들의 힘과 작용에 감탄하였다면 바로 그것들을 보고 그것들을 만드신 분께서 얼마나 힘이 세신지 알아야 한다.

5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

6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크게 탓할 수는 없다. 그들은 하느님을 찾고 또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러는 가운데 빗나갔을지도 모른다.

7 그들은 그분의 업적을 줄곧 주의 깊게 탐구하다가 눈에 보이는 것들이 하도 아름다워 그 겉모양에 정신을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8 그러나 그들이라고 용서받을 수는 없다.

9 세상을 연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더 일찍 찾아내지 못하였는가?

 

<화답송>시편19,2-3.4-5ㄱㄴ(2)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말하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말하고, 창공은 그분의 솜씨를 알리네. 낮은 낮에게 말을 건네고, 밤은 밤에게 앎을 전하네.

말도 없고 이야기도 없으며,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지만, 그 소리 온 누리에 퍼져 나가고, 그 말은 땅끝까지 번져 나가네.

 

복음<그날에 사람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다.>(루카17,26-37)

26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28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29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30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31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 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32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33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6)·37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연중제32주간 금요일 제1독서 (지혜13,1-9)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그 안에 들어찬 사람들은 본디 모두 아둔하여,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인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  그러나 그들이라고 용서받을 수는 없다.  세상을 연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더 일찍 찾아내지 못하였는가?"  (9)

 

지혜서 13장에서 15장 우상숭배를 단죄하는 내용이다.

지혜서 저자에 의해 단죄받는 우상 숭배의 첫째 형태 지혜서 13장 1-9절에 나오는데, 바로 자연 숭배이다.

자연 숭배에는, 아무리 아름답고 힘 있는 것들이라 하더라도, 피조물들을  창조주로 오인하는 것이 포함된다.

자연 숭배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잘못은, 그들이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한다." (지혜13,1)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처음에는 자연 숭배자들을 판단할 때 관용을 보이는 듯하다가 ("그렇다고해서 그들을 크게 탓할 수는 없다" ; 지혜13,6), 결국 더는 참지 못하고 그들이 "그것들의 주님을 더 일찍 찾아 내지 못하였다." (지혜13,9)는 사실을 지적한다.

우상 숭배의 다음 형태 나무로 만든 목상을 경배하는 것이다(지혜13,10-19).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작품을 어떤 사람들이 신(神)으로 부르는 것을 조사한 뒤에 저자는 그 다음 구절에서 목수가 나무를 깎아 만든 우상에 색을 칠하여 바닥에 떨어지면 다시 일어서지 못하기 때문에, 안전한 곳에 고정시킨 다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모든 것, 곧 재산, 가족, 건강 등을 위하여 그것에 간청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참으로 어리석다는 것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예 항해를 하려는 어떤 사람이 "자기를 데려다 줄 배보다 더 깨지기 쉬운 나무 조각"에 대고 비는 경우이다(지혜14,1).

배는 이득을 버리는 마음에서 고안되고 장인의 지혜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조종하는 것은 아버지의 섭리" (지혜14,5)이고, 아버지는 육지에 안전하게 도착하게 해주신다.

"세상의 희망이 뗏목에 몸을 피하였던"(지혜14,6) 노아의 방주의 경우가 그랬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은 물론 그것을 만든 자도 저주를 받는다(지혜14,8-11).

그들은 하느님의 창조물을 "사람들의 영혼에 올가미"(지혜14,11)가 되게 하였기 때문에 징벌을 받을 것이다.

우상 숭배의 기원은 인간이 고안해 낸 것이다(지혜14,12-21).

우상들은 하느님의 창조 계획에 없었던 것이며 영원히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다.

우상들은 죄와 타락의 원천이다.

두 가지 예는 우상 숭배가 어떻게 세상에 들어왔는지를 설명한다(지혜14,15).

첫째 예는(지혜14,15) 갑작스런 죽음으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아들의 상을 만드는데

그 조각상이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둘째 예는(지혜14,16-21) 임금의 상을 원하는 사람들이 임금의 조각상을 공경하기 시작하였는데, 임금은 야심을 가진 장인들에게 덜 사실적이고 훨씬 더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들게 하여 경배의 대상이 되게 하였다.

사람들은 죽은 아들의 조각상과 임금의 조각상을 신(神)으로 여기기 때문에 이것이 "인간에게 함정이 되었다"(지혜14,21).

모든 죄악과 악행의 뿌리인 우상 숭배의 주제는 지혜서 14장 22-31절에서 발전한다.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우상들을 숭배하는 것이  모든 악의 시작이요 원천이며 끝이다"(지혜14,27).

하느님을 잘못 알게 되면 반드시 살인, 도둑질, 성도착 등으로 이어진다(로마1,18-32참조).

특히 사악한 것은 이교도들의 종교의식("비밀의식")과 결탁된 악이며, 우상들(결코 神이 아닌)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거짓 증언과 연관된 악이다.

 

 

 

[연중 제32주간 목요일오늘의 묵상 (사제 김상우 바오로)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의 표징들다시 말해서 정확한 시간과 구체적인 장소에 관하여 궁금해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어디에서 말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그날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므로 일상생활 가운데 종말이 닥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제자들은 종말에 대한 좀 더 정확하고 구체적인 표지들을 바라지만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즉답을 피하시며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만 하십니다.

구약 성경의 예언서에서(이사 18,6; 34,15-16; 예레 7,33; 12,9; 15,3; 에제 39,17 참조) ‘독수리’ 같은 맹금류는 하느님의 심판과 연결됩니다.

루카 복음서 17장 37절에서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라는 말씀은 그 누구도 하느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뜻합니다.

사람의 아들이시며 구세주이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께서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다시 오실지를 예견하느라 일상생활에서 동조하거나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의 다시 오심과 종말을 준비하는 가장 현명하고 슬기로운 방식 가운데 하나는오늘 기념하는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의 모습을 본받는 것입니다.

삶의 한가운데에서 신음하며 아파하는 이웃과 공감하여 주는 것그들을 위하여 드러나지 않게 헌신하고 봉사하며 자선을 베푸는 것이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하느님 나라의 완성곧 종말을 준비하는 합당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종말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복음(루카17,26~37)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26~27)

여기서 '노아 때와 같은 일이'에 해당하는 '엔 타이스 헤메라이스 노에'(en tais hemerais Noe; in the days of Noe)를 직역하면, '노아의 날들에'로서 노아의 살아 생전을 말한다.

이것은 바로 노아의 생애에 있었던 결정적인 사건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물 심판을 말한다.

이처럼 노아 때의 홍수 심판과 사람의 아들의 날을 비교하는 의도를 살펴보려면, 루카 복음 17장 24절의 번개와 사람의 아들의 날을 비교한 것을 보면 된다.

루카 복음 17장 24절에서 번개의 번쩍임과 비추임 사람의 아들의 날에 비교하여 예수님의 재림은 매우 급작스러울 것이며, 동시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눈으로 확연하게 볼 수 있을 것임을 예언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도 분명 심판에 대한 하느님의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악해서 그것을 거절했다. 

결국 심판은 임했고, 경고를 무시한 자들은 심판을 면치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멸망당한 자들에게 있어서, 그 심판은 갑작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는데, 그들은 심판의 경고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아 아무런 준비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사람들이 여러 가지 경고를 통해 알 수 있지만, 이러한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갑자기 임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그리스도 재림의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하느님의 경고를 통해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는 뜻인 것이다.

루카 복음 17장 27절에서는 26절의 노아 때와 같은 일들에 관해 더욱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하고'로 나열된 동사는 모두 미완료 과거 시제이다.

이것은 그들의 삶이 항상 그러했다는 사실과, 그들이 노아의 경고를 듣고도 안일하고 익숙한 삶의 방식에서 탈피하지 않고, 계속 이전과 동일하게 살았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그것이 왜 그들에게 죄가 되는가?

 

루카 복음사가의 의도는 단순히 그것밖에는 다른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그들에게 가장 심각한 죄는 다름아닌 세상의 일들에만 가치를 두고, 그 일들에만 골몰하였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노아가 방주를 짓고 있었을 때나 그 방주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그들은 하느님의 심판이 임박해 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아무런 위기감없이 여전히 그들의 세속적 관심에 따라 일상사에만 열중해 있었다.

그래서 하느님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이에 대비한 노아와 그 가족들은 구원받았지만, 그들은 멸망의 길을 갔던 것이다.

 

 

   

20251114일 금요일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김동희 모세 신부)

 

오늘 독서인 지혜서의 말씀에 마음이 오래도록 머뭅니다. “자연 숭배의 어리석음이라는 소제목이 달려 있습니다.

지혜서의 저자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힘에 압도되어 그것들을 신으로 받들어 섬기는 일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말합니다.

오늘날에도 눈에 보이는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자연 안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즐기면서도, 그 모든 것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찾지도 알아채지도 못하는 무지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가끔 창조론을 믿느냐 진화론을 믿느냐?’ 하는 질문을 받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진화의 법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만, 저와 세상의 온갖 것들을 그저 우연의 산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진화의 법칙과, 그 우연의 뒤에 자리한 숨겨진 섭리와 질서를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실존 철학에서 말하듯 저 자신을 그저 세상에 던져진 존재, 그래서 냉혹한 세상에서 피할 수 없는 고독한 삶을 살아 내야 하는 숨 가쁜 존재로 이해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꽃을 좋아하는 선배 신부님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유, 우리 하느님은 참 재미있으신 분이야. 하느님은 엄청 심심하셨나 봐. 요렇게도 만드시고 조렇게도 만드시고 …….”

누가 뭐라 해도 저는 참 재미나신 하느님께서 이런저런 궁리를 하시며 세상의 온갖 것을, 그리고 저를 비롯한 우리를 모두 소중하게 만드셨다고 믿고 고백합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의 아름다움이 마음 깊숙이 다가옵니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말하고, 창공은 그분의 솜씨를 알리네. 낮은 낮에게 말을 건네고, 밤은 밤에게 앎을 전하네.”

 

(김동희 모세 신부)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인간들이 생각하는 인자(人子)의 날은 하루라도 보지 못할 것이다.

 

복음(루카17,26-37)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 하느님의 나라의 완성을 위한 사람의 아들(人子)의 날인데 하느님에 대한 무지(無知) 때문에 하느님 나라의 혼인(婚姻)잔치를 위한 곧 구원을 위한 말씀을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닌 세상의 삶, 현세(現世)에 만족을 위한 먹고 마시며 혼인(婚姻)에 충실했던 이들은 영원(永遠)한 어둠인 땅(지옥)에 갇히게 된다는 말씀이다.

 

독서(지혜13,1-4)1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그 안에 들어찬 사람들은 본디 모두 아둔하여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세상)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인(匠人)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2 오히려 불이나 바람이나 빠른 공기별들의 무리나 거친 물하늘의 빛물체들을 세상을 통치하는 신들로 여겼다. 3 그 아름다움을 보는 기쁨에서 그것들을 신으로 생각하였다면 그 주님께서는 얼마나 훌륭하신지 그들은 알아야 한다아름다움을 만드신 분(야훼)께서 그것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4 또 그것들의 힘과 작용에 감탄하였다면 바로 그것들을 보고 그것들을 만드신 분께서(하느님얼마나 힘이 세신지 알아야 한다.

 

28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 세상에, 현세의 삶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1코린15,19) 19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29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30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31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 세상 것에 미련을 두지 말고 지나온 삶을 돌아보지 말라는 말씀이다. 곧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의 공로로 지난날의 잘못, 죄를 용서 받았으니 앞의 삶, 내일의 삶 곧 영원한 생명인 하늘나라를 향해 뒤를 돌아보지 말고 가라는 말씀이다.

 

32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 롯의 아내는 죽음에서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약속 앞에서 육(肉)의 화려했던 그 삶을 놓지 못해 미련이 있어 말씀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다 소금 기둥이 되었다.(창세19,26) 소금은 영원히 변하지 않음을 뜻한다. 곧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계약인 구원의 약속, 말씀을 뜻한다.(미수18,19참조)

그런데 롯의 아내는 하느님께 받은 그 구원의 소금계약, 그 약속의 말씀을 듣지(지키지) 않아 그녀 자신 안에 넣어주신 구원의 약속, 그 말씀이 굳어버린 소금 기둥이된 것이다.

 

33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목숨을 잃는(버린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그날 밤(심판의 날)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다는 것은 하나, 한 몸을 뜻한다. 곧 둘을 하나로 데려 가신다는 말씀인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죄를 대속하시고, 당신의 신부로 한 몸의 하나로 데리고 가신다는 말씀이다.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 맷돌질- 생명의 양식을 만드는 일이다. 곧 신앙인들, 제자들, 신자들을 율법(제사와 윤리), 계명, 그 옛 계약이 아닌 그 둘의 법을 대속으로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피(血), 그 새 계약으로 데리고 가신다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라는 말씀은 육(肉)은 버리고(죽이시고) 영으로 살려 데려가신다는 말씀이다.

오늘 입당송을 보면 “하느님의 거룩한 이들은 주님의 *가르침과 아버지의 *법을 따라 끝까지 한마음 한 믿음으로 형제들을 사랑하였네.” 하셨다. 하느님의 법(구약)을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는데, 그 하느님의 법을 우리 인간은 구원에 이르도록 지켜낼 수가 없어 예수님께서 대속으로 다 지켜내시고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이 신약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죄인이었던 우리가 새 계약인 그리스도의 피, 대속, 그 사랑으로 추잡하고 더러운 모든 죄가 다 씻겨 거저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 되어, 이웃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서로 서로 나누는 그 이웃 사랑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령의 이끄심으로 끝까지 그 주님의 사랑을 진리로 지킨다는 것이다.

곧 나와 너, 우리의 머리가 잘리고(肉이 죽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머리로, 우리는 그분의 지체로 그분과 하나(한몸)가 되어 받는 구원이라는 것이다.

 

36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어디에서 말입니까?” 하고 묻자, 3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 예수님께서 ‘가지 말라’ 하셨던 육의 욕망을 위한 곳, 인간들이 생각하고, 말하고, 찾는 하느님나라, 그 헛된(거짓된) 곳에 죽음(死亡)이 있고 그곳에 죽음을 노리는 독수리가 있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노아의 홍수, 롯의 때의 하늘의 불과 유황, 그 모든 것은 육을 죽이기(否認) 위한 하느님께서 보내셨던 교육용 도구들이라는 것이다. 그처럼 독수리 또한 그렇다.

하느님에 대한 무지 때문에 곧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몰라 하느님의 말씀을 법으로만 지킨 선(善), 명예(名譽), 의(義)의 그 육(肉)을 죽이시고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구원의 의로움으로 살리시기 위해 보내신 독수리’인 것이다.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이에게는 용서의 길이 있지만, 자칭 의인에게는 용서의 길이 없기에, 그 육의 자만, 교만을 부수시고 다시 살리시려는 하느님의 자비인 것이다. (루가1,50-55참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라고, 의탁하라고, 육을 죽이시는 홍수, 불과 유황, 독수리를 만나기 전에 내 뜻, 의로움을 세우는 신앙을 부인하고 하느님의 뜻, 의로움을 위한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루가9,23)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대속의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은총이 가득하신 영원한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사랑하는 저희 모두를 의탁 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와 같이 땅(흙인 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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