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2일 수요일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나병 환자 열 사람 (루카17,11-19)
제1독서<임금들아, 들어라. 지혜를 배워라.>(지혜6,1-11)
1 임금들아, 들어라. 그리고 깨달아라. 세상 끝까지 통치하는 자들아, 배워라.
2 많은 백성을 다스리고 수많은 민족을 자랑하는 자들아, 귀를 기울여라.
3 너희의 권력은 주님께서 주셨고 통치권은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주셨다. 그분께서 너희가 하는 일들을 점검하시고 너희의 계획들을 검열하신다.
4 너희가 그분 나라의 신하들이면서도 올바르게 다스리지 않고 법을 지키지 않으며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5 그분께서는 지체 없이 무서운 모습으로 너희에게 들이닥치실 것이다. 정녕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엄격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6 미천한 이들은 자비로 용서를 받지만 권력자들은 엄하게 재판을 받을 것이다.
7 만물의 주님께서는 누구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으시고 누가 위대하다고 하여 어려워하지도 않으신다. 작거나 크거나 다 그분께서 만드셨고 모두 똑같이 생각해 주신다.
8 그러나 세력가들은 엄정하게 심리하신다.
9 그러니 군주들아,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을 듣고 지혜를 배워 탈선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10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지키는 이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고 거룩한 것을 익힌 이들은 변호를 받을 것이다.
11 그러므로 너희가 나의 말을 갈망하고 갈구하면 가르침을 얻을 것이다.
<화답송>시편82,3-4.6-7(◎8ㄱ) ◎ 일어나소서, 하느님, 세상을 심판하소서.
○ 힘없는 이와 고아의 권리를 찾아 주고, 가난한 이, 불쌍한 이에게 정의를 베풀어라. 힘없는 이와 불쌍한 이를 도와주고, 악인들의 손아귀에서 구해 내어라. ◎
○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신이며, 모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다. 그러나 너희는 사람들처럼 죽으리라. 세상의 권력자들처럼 쓰러지리라. ◎
복음<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루카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13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제1독서 (지혜6,1-11)
"미천한 이들은 자비로 용서를 받지만, 권력자들은 엄하게 재판을 받을 것이다. 만물의 주님께서는 누구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으시고, 누가 위대하다고 하여 어려워하지도 않으신다. 작거나 크거나 다 그분께서 만드셨고, 모두 똑같이 생각해 주신다. 그러나 세력가들은 엄정하게 심리하신다. 그러니 군주들아,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을 듣고, 지혜를 배워 탈선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6-9)
지혜서 6-9장은 전체 지혜서의 2부에 해당되며, "지혜"에 대한 가르침을 준다. 그리고 지혜서 6장 1-11절은 시작 권면으로서 세상 임금들에게 주는 말씀이다.
이 책이 세상의 임금들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되었음을 상기시키면서(지혜1,1-15참조) 제1부 '정의와 불멸성'(지혜1-5장)에 관한 가르침을 마무리하고, 이어지는 "지혜"에 관한 제2부 가르침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
불법과 악행에 휩쓸리지 않기 위하여 주의를 기울일 것을 임금들에게 호소한 뒤에 (지혜6,1-2; 5,23참조), 저자는 그들에게 권력을 주시는 하느님께서 엄격한 심판을 요구할 것임을 상기시킨다(지혜6,3-8).
통치자들은 자기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 통치자들을 조금도 어려워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들을 엄정하게 심리하신다.
하느님께서 통치자들을 엄하게 재판하실 것이기 때문에 지혜서 6장 9-11절에서 그들이 지혜를 배우도록 초대하신다.
항상 그렇듯이 지혜서에서 가르치는 지혜는 올바른 삶과 거룩함과 연결되어 있다.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지키는 이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고, 거룩한 것을 익힌 이들은 변호를 받을 것이다." (지혜6,10).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은 지혜의 본성에 관한 본격적인 가르침이다.
2023년 11월 15일 수요일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김상우 바오로)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쳐 주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구약 시대에 유다 지역에 살던 이들과 사마리아 지역에 살던 이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유다인들 기준에서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한 분이신 하느님을 섬기기보다 다른 민족과 섞여 우상 숭배를 일삼는 불경한 이들로 비쳐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선민사상이 매우 강하였기 때문에, 다른 민족과 섞여 ‘혼혈’로 살며 이방인들의 종교를 받아들인 사마리아인들을 경멸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고쳐 주신 나병 환자 가운데 돌아와 하느님께 감사 인사를 드린 이는 사마리아인뿐입니다.
그래서 유다인이신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예수님께서 모범을 보여 주시듯 하느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데는 출신이나 이해관계가 본질적인 것이 아니며, 또한 걸림돌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마리아 사람’으로 단정하는 이는 누구입니까?
각자가 만들어 놓은 편협한 기준에 따라, 때때로 집단 이기주의에 눈이 멀어 혐오와 경멸과 증오의 대상으로 낙인을 찍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일상 속 작은 은총에도 감사드릴 줄 아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인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말씀하실 것입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복음 (루카17,11-19)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5~16)
여기서 '병이 나은'에 해당하는 '이아테'(iathe; he was healed)의 원형 '이아오마이'(iaomai)는 '치료하다', '회복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4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이아오마이'(iaomai)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행한 치유와 관련되어 사용되었는데, 특히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이루어질 치유의 역사를 보여 주는 단어로서, 구약 예언의 성취를 보여 주는 동사이다(이사35,3~6; 61,1).
이것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든 치유의 본질이 기적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권세 있는 말씀으로 새로운 시대의 여명을 여신 치유자 예수님께 있음을 암시한다.
열사람의 나병 환자들은 눈으로 아무런 증거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믿음으로 순종하며 사제들에게 검증받기 위해(레위14,2) 가던 도중에 나병으로부터 깨끗해지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그런데 루카 복음 17장 15절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자신에게 나타난 변화를 보았다고 말한다.
루카 복음사가는 단순히 가시적으로 나타난 치유 기적을 이 한 사람만이 경험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의 나병 환자만이 자신의 치유자가 바로 예수님임을 깨닫고 감사하려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다.
한 사람의 나병 환자가 자신에게 일어난 치유 기적의 배후에 하느님께서 계셨고, 그분의 능력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깨달았기에,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을 하며 예수님께 감사하기 위해 돌아왔던 것이다.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린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다.
사마리아인은 B.C.722년 북부 이스라엘의 아시리아에 의해 함락된 이후에 그들과 혼혈이 되어 혈통의 순수함이 변질되고, 아시리아의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야훼 유일신 신앙마저 변질시켜 혼합 종교를 섬기던 장본인이었다.
그래서 혈통의 순수함과 야훼 유일힌 신앙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사마리아인들은 이방인들과 같이 여겨져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마리아인이 예수님꼐 은혜를 입고 돌아와 무한 감사를 표시한 반면에, 선민으로서 다른 민족에 비해 하느님의 살아과 축복을 더 많이 받았던 유대인으로 여겨지는 나머지 아홉은 오히려 자신의 몸이 깨끗해진 사실에만 기뻐할 뿐, 최소한의 어떤 감사도 표시하지 않았다.
루카 복음사가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멸시받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에 더 합당한 삶을 산다는 모습을 통해서, 선민이라는 특권 의식과 이름만을 소중히 여기며 교만하게 살아가는 유대인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여기서 '엎드려'에 해당하는 '에페센 에피 프로소폰'(episen epi prosopon; he threw himself; he fell down his face)은 직역하면 '그는 얼굴을 떨어뜨렸다'이다.
어떤 사람의 발 앞에 자신의 얼굴을 떨어뜨려 땅에 대는 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극도의 존경과 경배의 표시이다.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을 치유한 예수님께 최고의 존경을 드렸던 것이다.
그리고 '감사를 드렸다'로 번역한 '유카리스톤'(euchariston; thanked; gave thanks)의 원형 '유카리스테오'(eucharisteo)는 성경에서 주로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에 대한 감사와 성찬례 축복 기도를 가리키는 용례로 쓰였다.
예수님께 대한 사마리아 사람의 감사 행위에 이 용어가 쓰인 것은, 그가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예수님의 치유에 대해 하느님께 돌리는 것과 같은 감사의 표현을 했음을 나타낸다.
다시말해서, 그는 자신의 치유를 통해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인식하고,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예수님께 감사를 표시한 것이다.
2025년 11월 12일 수요일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김동희 모세 신부)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몇 년 앞두고 위암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수술 뒤에도 힘겹게 투병하시면서 퇴직 때까지 성실히 근무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못지않게 수고하신 분은 어머니셨습니다.
날마다 아버지의 점심 도시락과 간식을 준비하셨고, 가려움으로 잠 못 이루시는 아버지와 늦게까지 화투를 치시고는 하였지요.
그러다 졸음이 쏟아지면 가까스로 잠드셨습니다.
어느 날 새벽 어머니가 이상한 느낌에 눈을 뜨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당신을 내려다보고 계셨는데, 연신 눈물을 쏟으셨답니다.
“왜 그래요?” 하고 물었더니 아버지가 울먹이며 말씀하시더랍니다.
“나 같은 사람하고 지금까지 살아 주어서 고마워!”
그날 이후 아버지는 전혀 다른 분이 되셨습니다.
아버지는 많은 이의 인정과 신뢰를 받으셨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참 좋은 분이셨지만, 가족들에게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당시의 여느 아버지처럼 가부장적이셨고, 술기운을 빌려 자녀들에게 손찌검을 하시기도 하였지요.
그런데 그런 분이 하루아침에 바뀐 것입니다.
아버지는 퇴직 뒤에 어머니와 함께 날마다 미사를 다니시고, 두 분은 매리지 엔카운터(ME) 부부가 되어 날마다 열심히 기도하셨지요.
오늘 복음에서 사마리아 사람 한 명만이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루카 17,15-16).
아버지의 모든 변화는 어느 날 새벽, 이러한 ‘감사’가 아버지의 마음에 찾아들며 시작되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하고 지금까지 살아 주어서 고마워!”
(김동희 모세 신부)
2025년 11월 12일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반석(말씀)위에 세워진 교회(敎會)
영(靈)이 썪어 들어가도 고통을 모르는 나병환자(癩病患者)들.
복음(루카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 ‘사마리아는 북 이스라엘’로 자신들의 뜻, 욕망을 위해 이방인들의 우상을 받아들여 죄인 취급을 받아 이방(외국)이 된 곳이다. ‘갈릴래아는 남 유다(이스라엘)’로 자신들만 선택 받았다는 그 선민사상으로 자신들만 구원받았다는, 생각하는 자만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예수님께서 ‘예수살렘으로 가는길에’란 모든 죄인들의 대속으로 십자가에 달리시러 (죽으러) 가심을 뜻한다.
그러니까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셨다’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죄인들, 이방인들이나, 선택 받았다는 그 선민사상으로 자칭 구원 받았다고 자만하는, 그 모든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십자가로 용서 받아야 할 죄인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느님께서 죄의 종살이로 죽어야 할 자신들의 구원자로 보내신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다. 자신들은 죄의 종살이를 한 적도 없고, 이미 선택 받았기에 죄에서 구원할 대속의 구원자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요한8,31-34참조) 그리고는 찬란했던 다윗 시절의 풍요를 위한 메시아를 원했던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을 믿지 않은 것이며, 육(肉)은 멀쩡해 보이나 영(靈)이 죽어가는, 썩어 들어가는 나병(한센병)인 것이다. 나병은 살점이 썩어 떨어져 나가도 고통을 모른다. 영적 나병 또한 영이 썩어 들어가도 고통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병환자 치유를 말씀하신다. 곧 우리의 나병을 보고 치유 받으라는 말씀이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 나병환자가 마을에 들어왔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맞아 죽을 각오를 했다는 것이다.
(레위13,45-46) 45 악성 피부병에 걸린 병자는 옷을 찢어 입고 머리를 푼다. 그리고 콧수염을 가리고 ‘부정한 사람이오.’, ‘부정한 사람이오.’ 하고 외친다. 46 병이 남아 있는 한 그는 부정하다. 그는 부정한 사람이므로, 진영 밖에 자리를 잡고 혼자 살아야 한다.”
= 그러나 부정한 그들(죄인)이 ‘마을에 들어올 수 없다’는 율법을 지켰다면 치유자(구원자)를 만날 수 없었다. 다른 말로 우리 죄인들이 율법(제사와 윤리)으로는 절대 구원자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로마3,21-24참조) 율법을 넘어 서야(건너야) 만날 수 있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 사제에게, ‘자신의 추하고 더러운 모습을 그대로 보이라’는 말씀이다. 나는 ‘부정한 사람이오! 부정한 사람이오!’ 하고 외치라는 말씀인 것이다. 말씀대로 그들이 움직인다. 그런데 사제에게 보이기도 전에, 가는 도중에 병이 나았다. 자신의 모습이 추하고 더러운 모습임을 인정하고 고침을 받고자 말씀대로 움직였을 때, 갈망했을 때, 치유가 일어난 것이다.
참고로 구약(레위기14장)에서는 반드시 사제가 정결례를 치루어야 한다. 정결례의 제물인 새의 피, 흠 없는 어린양의 피로 씻는 예식을 행해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예수님의 몸이 ‘정결한 제물, 흠 없는 새 계약의 피’이기 때문이다. 곧 흠 없는 정결하신 분의 피로 모든 더러운 죄, 허물이 씻겨 깨끗해 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흠 없는 정결한 말씀이 그들에게 주어 졌을 때, 들어 갔을 때, 이미 치유가 시작된 것이다.(에페3,20 필리2,13 1테살2,13참조)
15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 자신이 더러운 죄인임을 자각한 그 사마리아 사람만 돌아와 큰 감사를 드린다. 자신의 죄가 나병처럼 얼마나 더럽고 추한 것인지 자각한, 인정한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 하느님께 감사의 영광을 드리는, 거기 까지가 치유, 구원, 믿음이라는 말씀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정결하신 그분의 피로 죄가 다 씻겨 구원 받았다고, 확신한다고, 믿는다고 하는 것이 구원의 완성(完成)이 아니라는 것이다.
죄인인 나를 살리시기 위해 사랑하는 당신 외아들(獨生子)을 속죄(贖罪) 제물로 내주신 그 하느님의 사랑을 모르면, 감사할 줄 모르면, 그래서 영광을 드리지 못한다면, 복음을 아는, 믿는 것이 아니고 구원 받은 것이 아닌 것이다. 곧 믿음의 열매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지 구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사43,7) 7 “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창조한 이들, 내가 빚어 만든 이들을 *모두 데려오너라.”
= 믿는다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영광을 드릴 또 다른 이들을 찾아야 한다. 곧 아직 돌아오지 않은 길 잃은 하느님의 백성, 자녀들을 찾아 되려 와야 한다. 그것이 큰 계명을 지키는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이다.
(요한10,14.16) 14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마태28,18-20)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게 하는 것, 분명 율법(제사, 윤리)과 도덕적 인간들의 계명, 사람들의 규정과 교리를 지키게 하라는 말씀은 아니다.(마르7,7 티토1,14 참조)
(지혜6,10-11) 10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지키는 이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고 거룩한 것을 익힌(깨달은, 믿는) 이들은 변호를 받을 것이다. 11 그러므로 너희가 나의 말을 갈망하고 갈구하면 가르침을 얻을 것이다.
= 거룩한 것, 하느님과 그분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만이 흠도 티도 없는 정결하시고 거룩하신 분이시며, 그분들의 뜻과 사랑만이 거룩한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분의 뜻인 대속의 죽음, 그 사랑의 그리스도의 피로 더럽고 추악한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씻겨, 영원히 의롭고 거룩한 하늘의 사람이 되었음을 믿는 것(히브10,12-14참조)
그래서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 이타의 사랑이 진리임을 깨닫고 고백하며 의지하는 것, 그래서 마음 안에서 감사가 저절로 나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 삶이, 이웃 사랑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곧 하느님께서 찾으시는 그분의 백성, 자녀를 찾아 데려오는 것이다.
이웃에게 거룩하신 분, 그분의 십자가의 복음을 구원의 진리로 주어 살리는 것이다. 그것이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고, 예수님의 말씀을(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사도들의 반석 위에 세운 교회란- 사도들이 전해준 반석,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위에 세워진 교회를 뜻한다.
주님의 말씀을 모르면 간혹 사도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주님의 말씀을 덮게 되고,( 그런 가르침이 너무 많다) 그래서 말씀의 깨달음 없이 교리만을 따르고 지키게 되면 영적 나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곧 성경의 하느님 뜻을 모르면, 깨닫지 못하면, 사람의 뜻에 맞춘 잘못된 가르침을 분별할 줄 몰라 무조건 따르게 되는 눈 먼 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에게 영원한 하늘의 용서, 생명은 없다.
(마태15,3.6.9.13-14)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또 어째서 너희의 전통 때문에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6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너희는 이렇게 너희의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9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13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초목은 모두 뽑힐 것이다. 14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 먼 인도자다. 눈 먼 이가 눈 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영원한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더럽게 추악한 모든 죄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로 깨끗이 씻겨, 죄인이었던 우리가 거룩해졌음을 믿음으로 지키게 하소서. 그래서 어떤 처지에서든 늘 감사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구원에 만족하는 눈 먼 자로 살지 않게 하소서 .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와 같이 땅(흙인 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