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8일 화요일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예수와 자케오 (루카19,1-10)
제1독서<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귀감으로 남기고 죽었다.>(2마카6,18-31)
18 매우 뛰어난 율법 학자들 가운데 엘아자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미 나이도 많고 풍채도 훌륭하였다. 그러한 그에게 사람들이 강제로 입을 벌리고 돼지고기를 먹이려 하였다.
19 그러나 그는 더럽혀진 삶보다는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여겨, 자진해서 형틀로 나아가며 돼지고기를 뱉어 버렸다.
20 이것이 바로 목숨이 아까워도 법에 어긋나는 음식은 맛보는 일조차 거부하는 용기를 지닌 모든 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21 법에 어긋나는 이교 제사의 책임자들이 전부터 엘아자르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따로 데리고 가, 그가 먹어도 괜찮은 고기를 직접 준비하여 가지고 와서 임금의 명령대로 이교 제사 음식을 먹는 체하라고 권하였다.
22 그렇게 하여 엘아자르가 죽음을 면하고, 그들과 맺어 온 오랜 우정을 생각하여 관대한 처분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23 그러나 그는 자기의 생애, 많은 나이에서 오는 위엄, 영예롭게 얻은 백발, 어릴 때부터 보여 온 훌륭한 처신,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법에 합당하게 고결한 결정을 내린 다음, 자기를 바로 저승으로 보내 달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24 “우리 나이에는 그런 가장된 행동이 합당하지 않습니다. 많은 젊은이가 아흔 살이나 된 엘아자르가 이민족들의 종교로 넘어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25 또한 조금이라도 더 살아 보려고 내가 취한 가장된 행동을 보고 그들은 나 때문에 잘못된 길로 빠지고, 이 늙은이에게는 오욕과 치욕만 남을 것입니다.
26 그리고 내가 지금은 인간의 벌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살아서나 죽어서나 전능하신 분의 손길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27 그러므로 이제 나는 이 삶을 하직하여 늙은 나이에 맞갖은 내 자신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28 또 나는 숭고하고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기꺼이 그리고 고결하게 훌륭한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모범을 젊은이들에게 남기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바로 형틀로 갔다.
29 조금 전까지도 그에게 호의를 베풀던 자들은 그가 한 말을 미친 소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마음을 바꾸고 악의를 품었다.
30 그는 매를 맞아 죽어 가면서도 신음 중에 큰 소리로 말하였다. “거룩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는, 내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몸으로는 채찍질을 당하여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음으로는 당신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이 고난을 달게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십니다.”
31 이렇게 그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온 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귀감으로 남기고 죽었다.
<화답송>시편3,2-3.4-5.6-8ㄱㄴ(◎6ㄱ) ◎ 주님이 나를 지켜 주셨네.
○ 주님, 저를 괴롭히는 자들 어찌 이리 많사옵니까? 저를 거슬러 일어나는 자들 많기도 하옵니다. “하느님이 저런 자를 구원하실까 보냐?” 저를 빈정대는 자들 많기도 하옵니다. ◎
○ 주님, 당신은 저의 방패, 저의 영광, 제 머리를 들어 높이는 분이시옵니다. 제가 큰 소리로 주님께 부르짖으면,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응답하시나이다. ◎
○ 주님이 나를 지켜 주시기에, 누워 잠들어도 나는 깨어나니, 나를 둘러싼 수많은 무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일어나소서, 주님. 저를 구하소서, 저의 하느님. ◎
복음<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19,1-10)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 들였다.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제1독서 (2마카6,18-31)
그러므로 이제 나는 이 삶을 하직하여 늙은 나이에 맞갖은 내 자신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또 나는 숭고하고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기꺼이 그리고 고결하게 훌륭한 죽음을 맞이 하는지 그 모범을 젊은이들에게 남기려고 합니다.(27-28)
~그는 매를 맞아 죽어 가면서도 신음 중에 큰 소리로 말하였다. "거룩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는, 내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몸으로는 채찍질을 당하며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음으로는 당신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이 고난을 달게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십니다." 이렇게 그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온 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귀감으로 남기고 죽었다.(30-31)
마카베오 하권 6장 1절 -7장 42절은 이교 예식을 강요하는 이야기와 순교자들의 이야기로서 마카베오 하권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이다.
마카베오 하권 6장 1-6절에 나오는 자료는 다니엘서에서 "지극히 혐오스러운 일" 이라고 하는 것을 묘사한다.
마카베오 하권 6장 2절에 따르면, 그처럼 혐오스러운 일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부정하게 만들고 그것을 올림포스의 제우스 신전이라 부르게 하였으며, 그리짐에 있는 성전은 그곳에 사는 이들이 하는 대로 나그네의 수호신 제우스의 신전이라고 부르게" 한 것이 포함되어 있다.
성전에서 창녀들과 놀아났다(2마카6,4)고 하는데, 이와 같은 이교 예식은 유다인들에게 토라를 버리고 유다인들이 종교 축일들을 준수하지 못하게 하며 유다인이라고 말하지도 못하게 하려는 더 큰 계획의 일부였다.
게다가 마카베오 하권 6장 7-9절에 따르면, 유다인들은 달마다 임금의 생일을 경축하고 포도주와 포도 수확의 수호신인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신을 찬양하는 행렬을 하도록 강요받았다.
그 모든 계획은 유다인들의 "관습을 그리스식으로 바꾸기" 위한 것으로 묘사된다.
마카베오 하권 6장 10-11절에는 유다 백성에게 있었던 두 가지 비참한 예가 소개되어 있다.
곧 어떤 여자 둘이 아들에게 할례를 베풀었다고 해서 고문을 받고 살해되었으며, 다른 유다인들은 근처 동굴에서 모여서 몰래 안식일을 지내다가 고발되어 한꺼번에 화형을 당하였다.
유다 백성에게 그와 같은 사건들이 일어나게 한 하느님의 목적을 지적하는 저자의 성찰(2마카6,12-17)로 인해 무시무시한 공포에 관한 묘사가 중단된다.
그의 기본 관점은 이와 같은 순교와 다른 고통은 하느님께서 짧은 기간 동안 당신 백성을 교육하시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그들의 죄가 가득찰 때까지 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기다리시기 때문에, 그들의 최종 징벌은 이스라엘이 받는 징벌보다 훨씬 더 나쁠 것이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충실하신 분이라는 저자의 믿음은 완벽하다.
"하느님은 고난으로 당신의 백성을 교육하시는 것이지 저버리시는 것이 아니다" (2마카6,16).
순교를 현재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교육하시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는 저자의 신학은 저자에게 고통과 죽음의 실재를 알게 하고,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보존하게 해준다.
오늘 독서의 나이가 많은 율법학자 엘르아잘(2마카6,18-31)은 돼지고기를 먹는 것을 거부한다(레위11,7-8참조).
사실 그는 돼지고기를 먹는 체하는 것조차 거부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엘르아잘을 지적하며 "이민족들의 종교로 넘어갔다."(2마카6,24) 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엘르아잘은 담론(2마카6,24-28)에서 하느님 앞에서 받을 심판을 생각하며 ("살아서나 죽어서나 전능하신 분의 손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숭고하고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기꺼이 그리고 고결하게 훌륭한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모범을 젊은이들에게 남기려고 합니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엘르아잘이 "젊은이들 뿐 아니라 온 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귀감으로 남기고" 죽었다고 설명한다(2마카6,31).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소설가인 C. S. 루이스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설정과 내용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주인공 스크루테이프라는 노련한 악마가 젊고 미숙한 악마인 조카 웜우드에게 영혼을 유혹하는 요령을 가르쳐 주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통하여 악마가 어떻게 인간을 유혹하고, 어떤 상황을 즐거워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것입니다.
“환자(영혼)에게 모든 일에서 중용을 지키라고 말해 주어라. ‘종교는 지나치지 않아야 좋은 것’이라고 믿게만 하면 그의 영혼에 대해서는 마음 푹 놓아도 좋아. 중용을 지키는 종교는 우리한테 무교나 마찬가지니까. 아니, 무교보다 훨씬 더 즐겁지”(『스크루테이프의 편지』, 8편).
빠짐 없이 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신앙인이라 하더라도 그의 신앙이 점잖게 중용을 지키고 있다면, 그것은 신앙이 없는 것보다 오히려 더 나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의 요한 묵시록에서 주님께서는 바로 이 점을 안타까워하십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3,15)
라오디케이아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지만, 그 말씀에 온전히 헌신하여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이와 반대로 복음의 자캐오는 아주 차가웠지만, 예수님을 만난 뒤 아주 뜨거워진 사람입니다.
그는 세리이고 죄인이었지만, 그리스도를 자기 집으로 맞아들인 뒤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고 자기 죄를 네 곱절로 기워 갚겠다는 결단을 내립니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하느님께 온전히 나를 맡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삶의 방향을 정하고, 그 삶에 헌신하겠다는 뜨거운 결단입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복음(루카19,1~10)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2~4)
'자캐오'에 해당하는 희랍어 '작카이오스'(Zakcaaios; Zacchaeus)는 '순결한'(pure),'무죄한'(innocent)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작카이'(zakai)에서 유래되어 '깨끗한 자', '의로운 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자캐오는 그의 직업이 당시 사람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허가받은 도둑'인 세관장이었기에 자신의 이름의 뜻에 걸맞게 살지 못하는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세관장'에 해당하는 '아르키텔로네스'(architelones; a chief tax collector)는 '우두머리'라는 뜻의 '아르코'(archo)와 '세금 징수원'이라는 뜻의 명사 '텔로네스'(telones)가 결합된 합성어이다.
당시 예리코는 세금을 거두는 관리들이 로마로부터 파견되어 늘 머물러 있었고, 세관원들은 요르단 강 동편 지역에서 유다 땅으로 들어오는 물품에 대한 통관세를 받는 일을 했다.
그러나 로마 사람들이 일일이 세금을 징수한 게 아니라, 그곳 유대인들과의 임대차계약에 따라 일정 기간 동안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권한을 유대인들에게 주었고, 그들 세리(세관원)중에 우두머리가 바로 세관장이었던 것이다.
또한 루카 복음 19장 2절에는 세관장 자캐오가 '부자'였다고 말한다.
'부자'에 해당하는 '플루시오스'(plusios; was rich, wealthy)라는 표현은 그가 단지 잘먹고 잘사는 정도가 아니고, 당시 유대인 대부분이 식민지 생활로 인해 가난한 생활을 하던 것과 대조적으로 그의 재산이 아주 많았음을 암시하며, 동시에 이것은 부정직한 방법으로 그가 부를 축적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루카 복음 19장 3절에 '그가 ~ 애썼지만'에 해당하는 '에제테이'(ezetei; he sought)는 '집요하게 찾아'라는 뜻이 있는 '제테오'(zeteo)의 미완료 능동태이다.
희랍에서 미완료는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므로, 이것은 자캐오가 능동적으로 '계속해서 찾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 단어 뒤에 '보려고'로 번역된 부정사 '이데인'(idein; to see)이 따르고 있는데, 이것은 '보기 위해 계속해서 찾고 있었다'는 뜻이다.
자캐오는 키가 작은 신체적 장애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라는 환경적 장애로 말미암아 난관에 부딪혔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자 계속적으로 노력했음을 말해준다.
자캐오는 자신들을 경멸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친구가 되어 주시며, 병을 고쳐주실 뿐만 아니라 죄도 용서해주시는 권세도 갖고 계시다는 소문도 들었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만남으로 이러한 외롭고 수치스런 상황에서 구원받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고 본다.
자캐오는 가까이에서 지나가고 있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두 가지 장애 요인, 즉 수많은 군중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 접근하기 어려운 것과, 자신의 키가 작음에서 오는 난관을 극복하고자 두 가지 행동을 한다.
첫째로 군중들에 의해 둘러싸인 예수님 보다 '앞질러 달려가는 것'이다.
여기서 '달려가'로 번역된 '프로드라몬'(prodramon; he ran)은 능동태 분사인데, 이것은 예수님을 간절히 보기를 원하는 자신의 열망과 더불어, 결단을 내린 후 즉시 행동에 옮기는 강한 의지를 잘 보여준다.
둘째로 그는 키가 작아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돌무화나무 위로 올라간다.'
'올라갔다'에 해당하는 '아네베'(anebe; and climbed up)는 자캐오의 적극적인 행동을 강조할 뿐 아니라 믿는 이들이 본받아야 할 믿음의 모델이 된다.
한편, 자캐오가 올라간 '돌무화과나무'에 해당하는 '쉬코모레안'(sykomorean; a sycamore-fig tree)는 루카 복음 17장 6절에 나오는 '돌무화과나무'('뽕나무'; '모폰'; mopon)와는 다른 나무이다.
이 나무는 일명 '이집트 무화과 나무', '시카모어 무화과나무', '백뽕나무'로 불리는데, 잎사귀는 뽕나무와 비슷하고 열매는 무화과와 비슷하며, 가지가 사람이 올라가기 쉬운 형태로 뻗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2025년 11월 18일 화요일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김동희 모세 신부)
오늘 복음의 소제목은 “예수님과 자캐오”입니다.
4복음서 가운데 루카 복음서에만 나오는 고유한 이야기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던 길에 예수님께서 예리코를 지나실 때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루카 19,2).
‘마침’이라는 낱말에서 우리는 자캐오에게 예수님과의 만남이 운명적이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캐오는 예수님의 소문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나 봅니다.
루카 복음서는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19.3)라고 합니다.
그 까닭을 같은 절에서는 “키가 작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키 작은 이가 예수님을 뵈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았다면 적어도 한두 사람은 그에게 곁을 내주지 않았을까요?
자캐오가 예수님을 뵐 수 없었던 진짜 이유는 아마도 그가 “세관장이고 또 부자”(19,2), 곧 죄인으로 불리며 따돌림 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자캐오는 어떻게든 예수님을 뵈려고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갑니]다”(19,4).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나무 아래에 이르시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19,5).
사람들에게 죄인 취급받던 자캐오의 이름을 불러 주셨고, 간신히 나무 위에 올라가 다리가 후들거리는 그에게 ‘나 여기 있으니, 그만 내려오라.’고 하시며, 그의 집에 머물겠다고 하셨지요.
이는 자캐오에게 행운 가운데 행운이요 구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대접하던 자캐오가 말합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19,8).
예수님의 관심과 사랑이 그에게 닿아 마침내 꽃을 피웁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내려와야 만나는 용서(容恕)
복음(루카19,1-10)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복음환호송(1요한4,10)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셨네.” 로 알린다. 곧 우리 죄인들의 속죄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나가고 계신 것이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 로마(세상)의 힘, 법(法)을 이용하여 부자(富者)가 된 세리(稅吏)들의 장이다. 얼마나 악착을 부렸으면 세리장(稅吏長)이 됐을까. 보든 이들도, 자신도 인정하는 죄인이다. 그래서 늘 죄책감(罪責感)에 시달려 살았던 것이다.
엄청 외로웠을 것이다. 그런 경험(經驗)이 있었다면 알 것이다. 자신의 처지(處地)를 알아줄, 단 한사람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그때 지나가시는 예수님의 소리를 들었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 군중(群衆)에 가려 볼수 없었다? 이 표현은 많은 사람(군중)들이 예수님을 자신들의 소원(所願), 뜻을 이루어줄 분로 알고 자신들의 생각, 길로 열심을 다해 따랐기에, 세관장(稅關長)은 자신의 사정, 죄를 없애주실 대속의 속죄(贖罪) 제물(祭物)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만날 수)가 없었음을 성경(聖經)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로, 속죄 제물로 죽으시고 구원을 주시는 그 예수님과 한 몸이 되는 진리의 포도나무와 반대인 구원(救援)을 주지 못하는 율법(律法)을 뜻한다. 그러니까 세관장 또한 율법으로 열심을 부려, 온 힘을 다해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던 것이다. 그 표현(表現)이 ‘키가 작은이가 예수님을 앞질러 가서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는 것이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 그게 ‘아니지’ 하신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얼른 내려와야 한다. 곧 자신의 죄(罪)를 없애주실 대속(代贖)의 구원자를 만나려면 율법(제사와 윤리)의 나무에서 얼른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율법(律法)의 열심, 그 의로움은 용서(容恕), 구원(救援)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려오면, 부자(富者) 세관장(稅關長, 세리-죄인)이 아닌, 자케오(완성을 얻다)가 된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 로마, 곧 세상의 힘, 법으로 완성을 이루려했던 그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다는 것이다. 그랬을 때, 자신의 죄(罪)를 대속(代贖)하신 예수님을 용서(容恕)의 그리스도로 기쁘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용서, 구원의 진리(眞理)를 깨닫지 못한 군중은 자기 버림, 부인(否認)의 삶을 어리석음으로 보기에~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 네 곱절로, 직역하면 ‘넷으로~’ 곧 땅(4)의 구원을 위해 갚겠다는 것이다. 자신과 같이 땅(세상)의 것을 위해 살았던 그 땅의 죄인(罪人)들의 구원을 위해 살겠다는 것이다. 자신과 같이 ‘땅에서 일어서서,’ 하늘을 향해 살도록 노력(努力)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웃사랑이며 구원의 완성이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아브람과 맺으신 계약 때문이라는 말씀이다. 곧 하느님께서 가져 오라는 하늘(3)의 제물을 하나(1)로 완전(完全)하게 가져오지 않고, 사람(아담)의 본능대로 둘(2)로 나누어 반(半)으로 잘라 바쳤기에 죽음이 왔다.(창세15,9-12참조) - 말씀을 선(善)과 악(惡), 그 둘의 법으로 드린 것이다.
(창세15,17) 17 해가 지고 어둠(죽음)이 깔리자,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죽음)들 사이로 *지나갔다.
= 횃불, 곧 불이신 하느님께서 쪼개놓은 제물, 그 죽음들 사이를 홀로 지나가심으로 죽어야할 아브람을 살리시고~
(창세15,18) 18 그날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
= 땅은 약속의 땅으로 하늘나라를 비유한 것이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대신 죽으시고 아브람을 살리신, 그 구원의 계약(契約)으로 세관장(稅關長)이 살아났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이 예수님께서 예리고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로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 홀로 죽음들 사이로 들어가시어 죽음들을 살리시겠다는 대속의 계약, 그 구원, 용서의 말씀을 거짓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많은 사람(군중)들이 여전히 선악(善惡)의 도덕(道德)과 윤리(倫理)로, 사람의 규정(規定)과 교리(敎理), 그 법의 신앙(信仰)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구원이신 하느님께 가는 길을 잃어버려 하늘의 용서, 구원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시어 그 죽음들 사이를 다시 지나가시게, 곧 대신(代身) 죽게 하신 것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 구원의 길로 십자가(十字架)를 지러 오신 것이다. 잃은 아들을 찾아서....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히브9,11) 11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것들을 주관하시는 대사제로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 손으로 만들지 않은, 곧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는 더 훌륭하고 더 완전한 성막(하늘 성전)으로 들어가셨습니다.
☨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해 주시는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땅의 것에서 일어나 완성된 하늘의 것을 향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와 같이 땅(흙인 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