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주간 목요일] 하느님께서 찾아오신 때 (루카19,41-44)

2025. 11. 17. 오후 12: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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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0일 목요일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하느님께서 찾아오신 때 (루카19,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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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계약을 따를 것이오.>(1마카2,15-29)

그 무렵 15 배교를 강요하는 임금의 관리들이 모데인에서도 제물을 바치게 하려고 그 성읍으로 갔다.

16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이 그 관리들 편에 가담하였지만 마타티아스와 그 아들들은 한데 뭉쳤다.

17 그러자 임금의 관리들이 마타티아스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이 성읍의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존경을 받는 큰사람이며 아들들과 형제들에게도 지지를 받고 있소.

18 모든 민족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처럼, 당신도 앞장서서 왕명을 따르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 아들들은 임금님의 벗이 될 뿐만 아니라, 은과 금과 많은 선물로 부귀를 누릴 것이오.”

19 그러나 마타티아스는 큰 소리로 대답하였다. “임금의 왕국에 사는 모든 민족들이 그에게 복종하여, 저마다 자기 조상들의 종교를 버리고 그의 명령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20 나와 내 아들들과 형제들은 우리 조상들의 계약을 따를 것이오.

21 우리가 율법과 규정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소.

22 우리는 임금의 말을 따르지도 않고 우리의 종교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겠소.”

23 그가 이 말을 마쳤을 때, 어떤 유다 남자가 나오더니 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왕명에 따라 모데인 제단 위에서 희생 제물을 바치려고 하였다.

24 그것을 본 마타티아스는 열정이 타오르고 심장이 떨리고 의분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달려가 제단 위에서 그자를 쳐 죽였다.

25 그때에 그는 제물을 바치라고 강요하는 임금의 신하도 죽이고 제단도 헐어 버렸다.

26 이렇게 그는 전에 피느하스가 살루의 아들 지므리에게 한 것처럼, 율법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27 그러고 나서 마타티아스는 그 성읍에서 율법에 대한 열정이 뜨겁고 계약을 지지하는 이는 모두 나를 따라나서시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28 그리고 그와 그의 아들들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성읍에 남겨 둔 채 산으로 달아났다.

29 그때에 정의와 공정을 추구하는 많은 이들이 광야로 내려가서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화답송>시편50,1-2.5-6.14-15(23)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하느님, 주 하느님이 말씀하시네.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까지, 온 땅을 부르시네. 더없이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느님은 찬란히 빛나시네.

내 앞에 모여라, 나에게 충실한 자들아, 제사로 나와 계약을 맺은 자들아!” 하늘이 그분의 의로움을 알리네. 하느님, 그분이 심판자이시네.

하느님에게 찬양 제물을 바치고, 지극히 높은 분에게 너의 서원을 채워라. 불행한 날에 나를 불러라. 나는 너를 구해 주고 너는 나를 공경하리라.

 

복음<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루카19,41-44)

4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말씀하셨다.

42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43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44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제1독서 (1마카2,15-29)

 

마카베오기 상권은 1-2장이 입문이라고 이미 밝혔다.

입문은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그 후계자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에피파네스라는 신성모독적 별칭을 가진 안티오쿠스 4세의 박해(1장)와 이에 항거하는 마타티아스 사제와 그의 다섯 아들(요한,시몬,유다,엘아자르,요나탄)의 반란을 소개한다.

 

배교를 강요하는 임금의 관리들이, 성읍과 집안에서 존경받는 신분인 마타티아스의 배교 행위가 파급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왕명을 따라 모데인 제단 위에서 희생 제물을 바치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면, 임금의 벗이 될 뿐 아니라 은과 금과 많은 선물로 부귀를 누리게 될 거라고 유혹한다(17-18절).

 

이에 대해 마타티아스는, 임금의 왕국에서 모두가 자기 조상들의 종교를 버리고 그의 명령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자신과 아들들과 형제들은 한데 뭉쳐서 이스라엘 조상들의 계약에 충실하고, 결코 율법과 규정을 저버리지 않겠다고 말한다(19-21절).  

 

"우리는 임금의 말을 따르지도 않고,  우리의 종교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겠소."(22절) 

 

말하자면, 야훼 유일신 신앙을 따라 정도를 걷겠다고 의지를 드러낸다.

이교도의 것을 섞어서 절뚝거리는, 양다리 걸치는 혼합 종교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런데 이때, 어떤 남자가 나와서 배교 행위로 이교도 제단 위에서 희생 제물을 바치려는 일을 보게 된다.

마타티아스는 하느님의 율법에 대한 열정이 타오르고,심장이 떨리고, 의분이 치밀어 올라 그를 쳐 죽이고, 이교도의 제단에 제물을 바치라고 강요하는  임금의 신하도 죽이고,제단도 헐어 버린다(25절).

 

마치 전에 피느하스가 살루의 아들 지므리에게 한 것처럼, 율법에 대한 열정을 드러낸 것이다(민수25,1-18).

 

"피느하스가 일어서서 법대로 다스리자 재앙이 멈추었으니 이것이 그에게 세세에 영원히 의로움으로 셈해졌다.'(시편106,30-31)

 

그러고 나서 마타티아스는 그 성읍에서 말한다.

"율법에 대한 열정이 뜨겁고,계약을 지지하는 이는, 모두 나를 따라 나서시오."(27절)

 

예레 34장 18절에 나오지만, 유다인들은 A와 B가 계약(berit:베릿)을 맺을때(karat: 맺다-직역하면,자르다), 송아지를 한 마리 가져다가 반을 자르고(죽이고), 그 잘라진 틈으로 A와 B가 지나간다.

계약을 어기면, 그 송아지처럼,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다.

 

계약이란 피(생명)로 맺는 것이다.

물질적인 상행위로서의 contract 이 아니라 covenant 이다. 상호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피(생명/인격)를 나누는 교환 행위를 말한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이런 계약을 맺었다.

계약을 맺는 장면을 아무도 보지 못했으나, 피가 오고 간 것이다.

 

그리고 그 계약의 산물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 들어 있는 십계명이고 율법인 것이다.

우리가 계명과 율법을 어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피(생명/목숨/인격)를 뿌려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계약의 당사자는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몸도 마음도 갈라서서는 안된다.

다른 생각을 해서도 안되고, 다른 짓을 해서도 안된다.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몸도 마음도 갈라서서는 안된다. 

충성해야 한다.

 

신약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뿌려 맺은 새롭고 영원한 계약도 마찬가지다.

구약의 백성이 계약의 산물인 계명을 어겼을 경우, 육신도 죽고, 영혼도 구원받지 못했다.

그렇게 되면, 계명을 어긴 육을 가진 인간들이 모두 영육간에 죽어야 했기에,  구원받을 사람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죄없는 예수님이 아담으로부터 인류의 종말에 이르기 까지의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셨다.

그로 말미암아 죄 지은 인간들이 더 이상 육신이 죽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동시에 죄로 말미암아 영혼이 죽고, 영혼 생명의 단절,  즉 은총이 끊어지지만, 다시 회복되는 길이 예수님의 십자가상 구속 성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다시 일치와 성화의 길이 열리게 된다.

 

그래서 복음이다. 무상의 선물이다.

옛 계약(구약)과 새로운 계약(신약)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님의 피로 맺은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선물인 성령을 모시기에 합당하고 순결하고 거룩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성전에서 말씀으로 오시는 주님을 모실 때와 성전 밖에서의 삶이 일치하는가?

가정과 사회와 직장에서 어떻게 죄와 죄의 기회를 단호히 끊고 거부하며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마타티아스의 율법에 대한 열정, 계약을 지지하고 충성하는 모습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연중 제33주간 목요일오늘의 묵상 (사제 김상우 바오로)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읍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님 시대에 유다교의 종교적사회적문화적 중심축이었습니다.

유다 백성에게 신앙생활의 정점이었던 예루살렘 성전이 기원후 70년 무렵 로마군에게 함락되자 그들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절망감과 위기감에 휩싸입니다.

그때부터 그들은 가톨릭 교회에서 구약이라고 부르는 성경에 자신들 삶과 종교의 중심점을 새로 잡으며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다시 정립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깊이 있게 공부하였고새로이 겪게 될 위기와 절망과 고통의 순간들을 극복하여 나아갈 힘을 성경에서 찾습니다.

한편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메시아 구세주 그리스도이신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 유다인들을 향하여특히 그들을 대표하는 상징물인 예루살렘 성읍을 향하여 눈물 흘리시며 통탄하여 마지않으십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유다인들은 오늘날까지도 메시아를 기다립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은 위기의 순간에 그것을 지혜롭게 이겨 내는 용기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은 절망과 고통의 순간에 자신의 십자가를 예수님과 함께 지고 걸어가는 믿음입니다.

삶의 무게에도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오늘을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준비로 채워 나가려면일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루카19,41-44)

그때에 4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하느님의 평화를 누려야 할 예루살렘이, 제사와 윤리 그 율법으로 사람의 뜻을 위한 도성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우신다~

 

42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는 평화다. 그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그리스도 이시니 예수님이 우리의 평화이시다.

 

(에페2,14)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속죄제물)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요한14,27)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대속 으로 죽으시고)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 예수님의 십자가로 얻는 죄의 용서, 자유, 구원의 진리로 쉼, 안식(7), 하늘의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규정과 교리에 의한 사람의 희생과 노력, 그 열심히 찾으려는 이들에게는 그 하늘의 평화가 감추어져 있다.

 

43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 그것은 세상의 모든 인간은 하느님을 계속 거부한다는 의미다.

 

(예레 6,6-16) 6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무를 베어 내고 예루살렘을 칠 공격 축대를 쌓아 올려라. 예루살렘이야말로 벌을 받아야 할 도성으로 그 안에 온통 *억압이 자리 잡고 있다.

= 하느님의 진리가 주는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는 곳이다.

 

8 예루살렘아, 교훈(진리)을 받아들여라. 그러지 않으면 내가 너와 갈라서고 내가 너를 폐허로 만들어 인적 없는 땅이 되게 하리라.” 10ㄱ 누구에게 말을 해야 합니까? 누구에게 알아듣도록 경고해야 합니까? 그들의 귀는 *할례(육의죽음)를 받지 않아서 들을 수가 없습니다.

= 사람의 지혜, 뜻으로 듣는 그 귀를 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10ㄷ이제 주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비웃음 거리가 되고 그들은 그 말씀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13 정녕 낮은 자부터 높은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부정한 이득만 챙긴다. 예언자부터 사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거짓을 행하고 있다.

= 사람의 계명을 하느님의 계명인 냥 가르치는 그 거짓이다.(마르7,7~!9참조)

 

14 그들은 내 백성의 상처(죄의식)를 대수롭지 않게 다루면서 평화가 없는데도 “평화롭다, 평화롭다!” 하고 말한다.

= 사람의 계명과 종교 행위, 예식으로는 죄로 인한 상처, 곧 계속되는 미움, 죄 의식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하늘의 안식, 평화를 누리지 못한다는 말씀이시다.

 

15 그들은 역겨운 짓을 저질렀으니 부끄러워해야 하는데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얼굴을 붉힐 줄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들은 쓰러지는 자들 가운데에서 쓰러지고 내가 그들을 징벌할 때 넘어지리라. 주님이 말한다. 16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갈림길에 서서 살펴보고 *옛길을 물어보아라. 좋은 길이 어디냐고 물어 그 길을 걷고 너희 영혼이 *쉴 곳을 찾아라. 그러나 그들은‘그 길을 가지 않겠습니다.’ 하였다.

 

44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 찾아오신 때, 이미 찾아 오셨었다는 말씀이다. 언제?- 아담이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뜻을 적대하는 그 죄를 범했을 때이다. ‘아담이 죄를 짓고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리려고, 스스로 만들어 입은 그 옷은 죄를 덮을 수가 *없다~

 

(창세3,21) 21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 가죽 옷, 아담의 죄를 덮어, 용서 하시려고 찾아오셔서 어린 숫 양을 죽이시고 그 죽음이 남긴 가죽 옷으로 만들어 입히셨다. 그 후에, 세상의 화려함과 큰 힘을 가진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했던 그의 민족을 찾아가셨다.

 

(탈출3,7-8) 7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세상)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8 그래서 내가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그 땅에서 저 좋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족과 히타이트족과 아모리족과 프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곳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

= 그러나 이집트에서 구출되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그 이민족의 풍습이 하느님의 말씀보다 더 좋아 보여 받아들이고 따랐다. 그래서 하느님의 진노(震怒)를 산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시련을 겪게 하시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그래서 그들이 잘못을 깨닫고 부르짖으면 하느님께서 찾아 가셔서 판관들을 세워 그들을 그 시련에서 해방시켜 주신다.

그러나 살만하면 또 이민족의 풍습을 따라 살며,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는다. 하느님을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또 시련을 겪게 되고, 하느님은 또 그들을 찾아 가시고~ 

판관기는 전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죄와 하느님의 무한하신 용서, 그 반복의 이야기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간들은 끝까지 오늘날까지 자신들의 욕망을 고집하며 하느님의 말씀(뜻)을 따르지 않고 버린다. 그래서 아담을 구했던 어린 숫 양,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구출을 도왔던 모 세, 그리고 가나안의 판관들, 그 구원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 당신의 아들을, 그들의 끝없는 죄의 속죄 제물로 보내신다.

하늘의 쉼, 안식(7),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그래서 세상 모든 죄인(짐승)들의 구원(생명)의 양식으로 보내신 것이다.

 

(루가2,12) 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려 오신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당신의 몸으로 지키시려 오신 것이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살지 않는 그 하느님의 뜻을 버리는, 대적하는 죄, 그래서 죽을 수 밖에 없는 그 죄인들을 살리시기 위해 그들의 죄로 죽으시러 오신 것이다.

그것이 창조 이전 하느님의 구원의 계약(약속)이셨고 뜻 이였다.(에페1,4~) 그 뜻에 순명하신 어린양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그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의 길이 구원, 생명의 진리인 것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두루마리(성경)속에 일곱 번 봉인된, 곧 감추어진 일곱, 그 안식을 주는 진리를 깨닫고, 알 수 있도록, 열고 들여다 볼 수 있으신 분이 예수님 뿐이시라는 것이다.

(묵시5,1-9) 1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진리)에, 안팎으로 글이 적힌 두루마리 하나(성경)가 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두루마리는 일곱(안식) 번 봉인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4 두루마리를 펴거나 그것을 들여다보기에 합당하다고 인정된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슬피 울었습니다. 5 그런데 원로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울지 마라. 보라,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 곧 다윗의 뿌리(예수)가 승리하여 일곱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펼 수 있게 되었다.”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님께서는 두루마리를 받아 봉인을 뜯기에 합당하십니다. 주님께서 살해되시고 또 주님의 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에서 사람들을*속량하시어 하느님께 바치셨기 때문입니다.

= 인간들은 그 진리의 쉼, 안식이신 예수님을 모르기에 그분의 길이 어리석어 보인다.

 

(1코린1,23-24)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 그러니 인간의 지혜, 계명으로 똑똑하다, 의롭다하는 이들은, 하느님께서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찾아 가셨듯이, 오늘 죄인인 자신들을 찾아오신 구원자를 못 알아본다. 사람의 자기 의로움으로 죄인이 아니라고 자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들이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든다 하신다.(1요한1,10)

인간들이 자신의 힘으로, 자신들의 열심한 그 의로움으로 하늘에 오르려는 그것이 죄임을 모르기에~(창세11,1-9 로마9,30- 10,4참조)

그 죄인들을 찾아오시는 구원의 하느님, 곧 자신의 죄 때문에 찾아오신 구원의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했기에, 예루살렘, 그 안에 들어있는 내가 부서지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찾아오시는 때는 전에도, 지금도, 또 앞으로도 계속된다.(묵시1,8참조)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히브4,1) 1 그러므로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 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

 

* 주님! 당신의 일곱영, 진리의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일어나는 시련의 사건들이 하느님께서 찾아오신 때라는 것을 깨닫게 하소서. 그래서 우리의 뜻, 욕망을 위한 신앙에서 돌아서 하느님의 약속(생명)을 얻게하소서 ~아멘!!!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복음 (루카19,41-44)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41~42)

 

루카 복음 19장 41~44절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기사 중에 루카 복음에만 나오는 내용이다.

군중들이 예루살렘에 현세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를 지닌 메시야 왕국이 세워질 것을 기대하며 흥분된 감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반대로 가까운 장래에 있을 예루살렘 멸망을 바라보고 우시며 애가를 부르신다.

 

루카 복음 19장 41절에는 '에클라우센 에프 아우텐'(eklausen ep auten; and wept over it)이 나온다.

 '~에 대하여'라는 뜻을 지닌 전치사 '에피'(epi)의 축약형인 '에프'(ep)와 '예루살렘 도시'를 가리키는 여성형 지시 대명사 '아우텐'(auten)이 기록되어 있는데, 직역하면 '그를 위하여 우셨다'이다.

즉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 재앙을 정확히 내다보시고 이에 대해 슬퍼하셨던 것이다.

 

여기서 '우시며'에 해당하는 '에클라우센'(eklausen)의 원형 '클라이오'(klaio)는 '울다', '곡하다', '애곡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감정을 삭이며 소리 죽여 우는 내적 슬픔이 아니라 자신의 슬픈 감정을 밖으로 표출시키는 격렬한 비통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괴로움을 영혼의 부르짖음 같은 통곡으로 표현하셨다.

 

수많은 예언자들을 통해서, 그리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진리의 길을 걸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이것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마침내 그리스도를 핍박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으로써 멸망하게 될 운명에 처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죄악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인간 본성에 대한 메시아적 슬픔으로도 볼 수 있다.

한편, 루카 복음 17장 42절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이란 무엇인가를 알아 보아야 한다.

 

여기서 '평화'로 번역된 '에이레넨'(eirenen)의 원형 '에이레네'(eirene)는 히브리어 '샬롬'(shalom)과 같은 뜻의 희랍어로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로부터 생기는 '구원' '충만한 은총'  '진정한 기쁨'을  의미한다.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에 해당하는 '타 프로스 에이레넨'(ta pros eirenen; what would bring you peace)에서, 전치사 '프로스'(pros)가 '~에 속한' (belong)이라는 의미가 있어서 문자적으로 '평화에 속해 있는 것들'로 번역이 가능하다.

 

이것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화해시키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수많은 말씀과 행적을 통해 당신 자신에게만 진정한 구원과 평화가 있음을 보여 주신 것들을 말한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였다면, 그들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그로 말미암아 진정한 구원과 충만한 은총을 만끽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끝으로 42절의 '감추어져 있다'에 해당하는 '에크뤼베'(ekrybe; it is hidden)는 부정과거 수동태인에, 과거 어느 시점에 감추어져 지금과는 관계없는 것이 아니라, 과거 어느 시점에 감추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 효력이 지금까지 남아 있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진리를 계속적으로 알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 단어가 수동태로 쓰였는데, 하느님께서 죄악으로 말미암아 완고해진 그들의 지성을 어둡게 해서 예수님께 관한 일을 깨닫지 못하게 하셨음을 가리킨다.

 

 

 

 

  

20251120일 목요일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김동희 모세 신부)

 

이번 한 주 동안 우리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예수님의 여정을 복음으로 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수난하실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십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예수님의 마음을 엿보게 됩니다.

독백과도 같은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루카 19,42)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 평화의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19,42).

예수님께서는 평화의 도시가 평화를 알지 못하고 평화를 볼 눈이 없음에 깊이 탄식하십니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입니다(이사 32,17 참조). 그리고 정의는 그의 것을 그에게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마땅한 흠숭을 드리고, 내 이웃을 그 존엄에 맞갖게 존중해 주는 것이 평화입니다.

그러나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은 평화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예수님을 없애 그들이 생각하는 평화를 지키려 합니다.

평화와 어울리지 않는 수단으로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1219, 십자군 전쟁의 역사 속 가장 치열하였던 시기에 행색이 초라한 젊은이 하나가 이슬람 진영 한복판에 찾아들었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입니다.

그는 이 전쟁이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며 하느님의 뜻은 오로지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형제적 삶을 사는 데 있음을 선포하고자, 무장하지 않은 평화의 사절로 이 전쟁에 뛰어든 것이었습니다.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가 오늘날까지 거룩한 땅이스라엘에 머무르며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 있는 성지들을 돌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평화의 발걸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삶의 목적은 믿음, 믿음의 목적은 영혼의 구원,

 

복음(루카19,41-44)

41ㄱ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 율법(律法)의 본부(本部)인 예루살렘, 곧 율법으로 죽으실 십자가(十字架)에 가까이 이르셨다는 것이다.

 

41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42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율법)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 율법(제사와 윤리)으로 얻는 평화(平和)가 아닌 당신 십자가(十字架)로 얻는 평화(平和)임을 몰랐다는 말씀이다. 율법으로는 평화를 얻을 수 없어 예수님께서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으로 전가(傳家)해 주신 평화(平和)다.

 

(요한14,27)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43ㄱ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 그때- 불행한 날(200주년 성서)

 

43ㄴ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따르지 않았기에 하늘의 평화(平和)의 길인 예수님을 배척(排斥)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사랑, 의로움이신 죄인(罪人)들의 영혼의 구원을 위한 말씀, 계명을 육(肉)의 욕망(慾望)을 위한 자신들의 명예, 의로움을 위한 계명으로 지키며, 또 오늘 독서에서 처럼 이방인(세상)들의 힘(명예, 금, 은)을 위해 그들과 하나 되어 살았던 조상(祖上)들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 조상들의 때에~

(예레6,16-23) 16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갈림길에 서서 살펴보고 옛길을 물어보아라. 좋은 길이 어디냐고 물어 그 길을 걷고 너희 *영혼이 쉴 곳을 찾아라. 그러나 그들은 ‘그 길을 가지 않겠습니다.’ 하였다. 17 내가 너희에게 파수꾼들을 내세웠으니 나팔 소리(복음말씀)를 귀여겨들어라. 그러나 그들은 ‘귀여겨듣지 않겠습니다.’ 하였다. 18 그러므로 민족들아, 들어라. 그들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군중아, 깨달아라. 19 땅아, 들어라. 내가 이제 이 백성 위에 재앙을, 그들 자신의 책략(속셈)이 빚은 결과를 가져오리니 이는 그들이 내 말을 귀여겨듣지 않았고 내 가르침을 마다하였기 때문이다. 20 *스바에서 들여온 향료와 *먼 지방에서 가져온 향초 줄기가 나에게 무슨 소용이냐? 너희 번제물이 마음에 들지 않고 너희 제사가 나에게 기쁨이 되지 않는다.”

21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 백성 앞에 걸림돌을 놓아 그들이 걸려 넘어지게 하리라. 아버지와 아들, 이웃과 친구들이 함께 망하리라.” 22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제 한 백성이 북녘 땅에서 오고 큰 민족이 땅 끝에서 일어나리라. 23 그들은 활과 창을 움켜쥐고 있는데 잔인하고 무자비하다. 그들은 바다처럼 고함을 지르며 말을 타고 달려온다. 딸 시온(예루살렘)아, 그들이 너를 치려고 전사처럼 전열을 갖추고 있다.”

 

44ㄱ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 완전(完全)히 부수신다.

 

44ㄴ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 첫 사람 아담로부터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뜻을 적대(敵對)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存在)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신 하느님은 그 죄인들이 영원한 죽음에 갇히도록 내버려 두실 수가 없으셨다. 그래서 다시 살리시기 위해 대속(代贖)의 속죄 제물(贖罪祭物), 곧 구원의 새 계약, 구원의 말씀으로 외아들(獨生子) 예수를 보내신 것이다.

인간의 육(肉)을 입히셔서 힘없는 아기의 모습으로, 구유(짐승의 먹이 통)에, 곧 짐승(죄인)들의 일용 할 양식(糧食), 생명의 양식으로 보내신 것이다. 그러나 그 구원의 계획(計劃), 계약은 창조(創造)이전에 이미 세워져 있었다.(에페1,4-참조) 이스라엘은 그때를 몰랐던 것이다.

죄(罪)의 용서(容恕), 인간의 구원(救援)은 인간의 그 어떤 행위(行爲)로도 이루어질 수 없음을,(로마9,12-16 갈라2,16참조) 하느님의 자비(慈悲)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신, 구 구원의 계약을 이스라엘은 몰랐던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인들의 명예(名譽), 의로움을 위한 사람의 규정(規定)과 교리(敎理), 계명(係名)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1베드1,3-9)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위로) 태어나게 하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고, 4 또한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상속 재산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상속 재산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5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는 구원을 얻도록,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힘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6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8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9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도 말씀을 되새기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와 같이 땅(흙인 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5년 11월 20일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복음(루카19,41-44)

4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말씀하셨다.

= 율법의 도성(都城)으로, 예수님께서 율법(律法)을 완성하시려고 죽으실 곳이다.(루가18,31-33 갈라4,4-5)

 

42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 왜 우셨을까? 하늘의 평화가 딴의 평화에 가리워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곧 하느님의 뜻이 담긴 도성으로 하느님의 평화, 영광을 위한 도성이 되어야 하는데 인간의 뜻, 육의 편안, 만족을 위한 도성으로 만들어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하느님의 이름이 더렵혀 졌기에 분노(忿怒)해 우신 것이다.

 

사제☞ 예수님께서는 왜 우셨을까요? 원인은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겉은 호화찬란하고 그럴듯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부패와 타락으로 곪아 터져가는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돌아서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끝내 우상숭배와 배신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한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평화(에이레네)  두 마리 소가 한 방향으로 가는 것.

피조물인 사람과 창조주이신 하느님과 한 방향으로 가는 것, 곧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향해 가는 것이 평화(平和)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한 방향으로, 곧 땅의 목숨을 위해 가는 것이 평화라고 한다.

이 땅에 평화는 사라질 헛것인데 사람들은 그 헛 평화를 얻고자 온갖 애를 써보지만 그 헛 평화 때문에 초조함속에 산다. 곧 불안을 주는 평화다. 사람들은 서로 속이고, 속고 있는 것이다.

 

(요한14,27)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 우리에게 영원한 평화를 주시기 위해, 곧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이름을 더렵힌 우리 죄의 대속(代贖)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러 가시는 길에 한 말씀이다. 예고(豫告)된 주님의 평화다.

 

(이사53,5) 5 그(예수)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 소유하려고 하지만 하느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내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으로 주시는 영원한 평화는 잠시 주는 육신의 평화에 의해 가리워 숨겨져 있다.

 

43 그(불행의)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 (시련, 고난, 고통이 다가오고 있다.)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그분의 이름을 더렵혔기 때문이다.

 

(예레6,16-23) 16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갈림길에 서서 살펴보고 옛길을 물어보아라. 좋은 길이 어디냐고 물어 그 길을 걷고 너희 영혼이 쉴 곳을 찾아라. 그러나 그들은 ‘그 길을 가지 않겠습니다.’ 하였다.

= 영혼이 쉬는 좋은 길, 진리의 길이다. 곧 죄인들의 대속인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파수꾼들을 내세웠으니 나팔 *소리(진리의 말씀선포)를 귀여겨들어라. 그러나 그들은 ‘귀여겨듣지 않겠습니다.’ 하였다.

= 소리(콜)  코푸+라메드. *코푸- 파괴하고 다시세움. *라메드- 가르치다. 교훈하다.

곧 말씀으로 땅의 것을 파괴하고 하늘로 다시 세우는 것(루가2,34)

18 그러므로 민족들아, 들어라. 그들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군중아, 깨달아라. 19 땅아, 들어라. 내가 이제 이 백성 위에 재앙을, 그들 자신의 책략이 빚은 결과를 가져오리니 이는 그들이 내 말을 귀여겨듣지 않았고 내 가르침을 마다하였기 때문이다. 22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제 한 백성이 북녘 땅에서 오고 *큰 민족이 땅 끝에서 일어나리라. 23 그들은 활과 창을 움켜쥐고 있는데 잔인하고 무자비하다. 그들은 바다처럼 고함을 지르며 말을 타고 달려온다. 딸 시온아, 그들이 너를 치려고 전사처럼 전열을 갖추고 있다.”

= 원수(怨讐), 큰 민족은 로마를 뜻한다.

 

44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 하느님은 세상이 주는 거짓 평화에 의한 우리의 초조(焦燥), 불안(不安)을 보시고 알고 계신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하늘의 참 평화를 주시기 위해 찾아 오셨다. 곧 말씀으로 매일 찾아오신다. 그러나 우리 눈에는 감추어져 있다.(본문42절참조)

 

(탈출3,7-8) 7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세상)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8 그래서 내가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그 땅(세상)에서 저 좋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하늘나라), 곧 가나안족과 히타이트족과 아모리족과 프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곳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

= 보시고, 들으시고, 알고 계시는, 그래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시려고 내려오신 하느님이시다.

 

(루가1,68-68.78-79) 68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69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78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빛)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갈라4,4-5) 4 그래서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구원자. 빛)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5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히브9,15) 15 그러므로 그리스도(구원자)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율법)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하늘의 생명, 평화)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본문 44절에 예수님 말씀을 새겨듣자면,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 우리 안에 돌 같은 마음이 다 부서져 없어져야 한다는 말씀이다. 우리 스스로는 못한다. 그래서 원수들을 통해서 부수신다. 곧 매일 삶속에서 일어나는 고난, 시련, 고통이다.

 

(야고1,12) 12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요한10,28-29)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 하늘 아버지!

죄의 도성인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씀 안에 머물러 아버지의 구원, 지혜이신 그리스도께 매달려 있을 뿐입니다. 깨달음과 믿음을 더해서 시련, 고난, 고통을 이겨내게 간절히 의탁합니다.

보호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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