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1일 금요일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 (마태12,46-50)
제1독서<딸 시온아, 즐거워하여라.>(즈카2,14-17)
14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15 그날에 많은 민족이 주님과 결합하여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그때에 너는 만군의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 보내셨음을 알게 되리라.
16 주님께서는 이 거룩한 땅에서 유다를 당신 몫으로 삼으시고 예루살렘을 다시 선택하시리라.
17 모든 인간은 주님 앞에서 조용히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셨다.
<화답송>루카1,46ㄴ-47.48-49.50-51.52-53.54-55 ◎ 영원하신 성부의 아드님을 잉태하신 동정 마리아는 복되시다!
○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고, 내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내 마음 기뻐 뛰노네. ◎
○ 그분은 비천한 당신 종을 굽어보셨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라. 전능하신 분이 나에게 큰일을 하셨으니, 그 이름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
○ 그분 자비는 세세 대대로, 그분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미치리라. 그분은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네. ◎
○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비천한 이를 들어 올리셨네.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고, 부유한 자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네. ◎
○ 당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돌보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그분의 자비 영원하리라. ◎
복음<“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마태12,46-50)
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49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제1독서 (즈카2,14-17)
"주님께서는 이 거룩한 땅에서 유다를 당신 몫으로 삼으시고, 예루살렘을 다시 선택하시리라."(16)
즈카르야서 2장 16절의 예언 역시 종말론적 성취를 지향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종말의 때에 모든 나라가 당신을 섬기도록 역사하실 뿐 아니라 특히 그 가운데서도 원래 계약의 백성이었던 남부 유다와 그 수도인 예루살렘을 높이 세우실 것이다.
본문에서 '거룩한 땅'에 해당하는 '아드마트 학코데쉬'(admath haqodesh; the holy land)는 세속으로부터 철저하게 구분되어, 오로지 주 하느님께만 속한 땅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하느님께서 종말의 때에 당신의 임재와 현존의 장소로 삼으실 지역을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유다는 하느님의 소유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 '당신 몫'에 해당하는 '헬르코'(hellqo; his portion)의 원형 '헬레크'(helleq)는 어원상 하느님께서 유산으로 물려주신다는 의미이다(여호14,4).
이 단어와 앞의 동사 '웨나할'(wenahal; and will inherit)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동사의 원형 '나할'(nahal)은 소유나 상속, 몫, 유업으로 물려받거나 기업으로 삼는 행위를 말한다(탈출34,9; 여호19,9; 잠언3,35).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소유로 받았던 것처럼 종말의 때에는 주님께서 유다를 당신의 소유와 몫으로 삼으실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당신 소유로 삼으신다는 것은 그들 가운데 당신의 거처를 정하신다는 것, 즉 당신 소유물인 그들을 보호하시고 그들을 복되게 하신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을 다시 선택하시리라'
본문은 성전과 성벽이 재건될 것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훗날 사도 요한은 새 예루살렘에 대한 환시를 보았다.
즉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 거룩한 도성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 같았다(묵시21,2).
이러한 예언을 고려할 때, 여기에서 즈카르야 예언자가 예언하는 예루살렘은 일차적으로는 지상의 예루살렘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 새 예루살렘의 임금으로 좌정하셔서 영원토록 새 하늘과 새 땅을 통치하실 것이다.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사제 김상우 바오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에 대한 신심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에 대한 단서를 발견합니다.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실 때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방문합니다.
고대 근동 지방과 성경 전통에서 “형제”라는 말은 한 어머니의 자식들뿐 아니라 가까운 친족까지 포괄합니다.
이어서 마태오 복음사가는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라고 서술하는데, 직역하면 ‘그러고서는 당신의 제자들 위로 당신의 손을 뻗으시며 또 이르셨다.’가 됩니다.
아울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행동과 말씀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
이는 제자 공동체가 스승 예수님의 새로운 가정 공동체라는 신학적 의미로 풀이됩니다.
이 구절에서 ‘하느님’ 대신 ‘아버지’라는 칭호를 사용하여 제자 공동체가 지닌 가정으로서의 새로운 신원과 정체성이 드러납니다.
혈육으로 이루어진 가정 공동체의 중요성만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함으로써 새로이 구성된 가정 공동체의 중요성이 부각됩니다.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포함한 친족에게 면박을 주시기보다 새로운 교회 공동체의 사명을 더욱 강조하시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이며 그분의 가정 공동체에 속합니다.
이 공동체의 본질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며, 이것이 곧 존재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고, 그 뜻을 삶에서 실천하도록 초대받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마리아의 自獻 기념일]
자발적인 신심과 겸손과 육신의 고행이 지혜로운 것처럼 들리지만,
복음(마태12,46-50)
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49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예수님 밖에 서있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서 있는 것’은 살아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예수님 밖에 서 있음, 살아 있음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여 살아있는 것으로, 곧 죽음으로 끝날 살아있음이다. 예수님 안에 사는 것, 하느님 품에 영원을 사는, 참 생명이다.
자신의 모든 것, 세상의 재물, 스팩들, 자기 의(義)까지, 하늘아래 모든 것이 허무요 부질없음을 인정(認定)하는 그 자기 부인(否認), 버림으로(필리3,5-9) 자신을 예수님의 지체(肢體)로, 예수님을 자신의 머리로 앉히고 그분과 한 몸이 되는 것,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實行)하는 사람이다. 곧 자신의 힘을 죽이고 그리스도의 힘으로 사는 것,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며 진리(眞理)다.
온갖 종교행위로 내 밖의 예수님을 섬기는 것, 실행이 아니다. 불법(不法)이다.(마태7,22-23)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을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인 십자가로 무장 해제시키시고 그 위에 서신 그리스도의 힘이다.(골로2,15 에페1,21참조)
(에페1,22) 22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골로2,16-3,1) 16 그러므로 먹거나 마시는 일로, 또는 축제나 초하룻날이나 안식일 문제로 아무도 여러분을 심판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 교리(敎理)에 의한 열심한 종교(宗敎)행위(行爲)다.(마태15,9)
17 그런 것들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고 실체는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18 거짓 겸손과 천사 숭배를 즐기는 자는 아무도 여러분을 실격시키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런 자는 자기가 본 환시에 빠진 나머지 현세적 생각으로 까닭 없이 우쭐거립니다.
= 인간의 겸손(謙遜), 흉내를 내는 위선(僞善), 거짓이다. 인간들이 본 환시(幻視)또한 거짓이다.
19 그는 자기의 머리이신 분께 단단히 붙어 있지 않습니다. 온몸은 이 머리로부터 관절과 인대를 통하여 영양을 공급받고 잘 연결되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라는 것입니다. 20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이 세상의 정령(말)들에게서 벗어났으면서도, 어찌하여 아직도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규정(교리)에 얽매여, 21 “손대지 마라, 맛보지 마라, 만지지 마라.” 합니까? 22 그 모든 것은 쓰고 나면 없어져 버리는 것들에 대한 규정으로, 인간의 법규와 가르침에 따른 것들일 뿐입니다. 23 그런 것들은 자발적인 신심과 겸손과 육신의 고행을 내세워 지혜로운 것처럼 들리지만, 육신의 욕망을 다스리는 데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 육(肉)의 욕망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갈라5,17) 말씀 안에 진리를 깨달음으로 ‘육의 욕망이 헛되고 부질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 우리의 욕망(慾望)을 품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욕망이 죽은, 없음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힘, 하느님의 말씀의 힘, 능력을 믿었을 때다.
3,1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그분 안에서만 존재가 된다. 내 밖에 성체(聖體)께 기도하며 섬길 것이 아니라,(그러면 내 밖에 주님으로만 계시니) 이미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것,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진리의 신앙이다.
(갈라2,20) 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 내가 지금 힘이 없는 것, 힘이 드는 것은 그리스도의 힘이 나를 이끌고 가시기 때문이다. 내 뜻이 아니라 (나를 살리시기 위해) 하느님의 뜻, 진리로 끌고 가시기 때문이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하느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믿음이, 저희 마음 안에서 타오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복음(마태12,46~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50)
여기서 '실행하는 사람이'로 번역된 '포이에세 ~ 아우토스'(poiese ~autos; dose ~ the same)는 '실행하면, 바로 그 사람'이라는 의미로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바로 그 당사자가 예수님의 영적 가족이라는 사실을 강조해 주고 있다.
'포이에세'(poiese)의 원형 '포이에오'(poieo)는 어떠한 일을 적극적으로 행하거나 존재하는 물질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인데, 여기서는 '내 아버지의 뜻'을 목적어로 취하고 있기에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행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여기서 '포이에오'(poieo)는 '~하는 자는 누구든지'를 뜻하는 '호스티스 안'(hostis an; whoever)과 함께 가정법으로 쓰여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기만 하면 누구든지'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영적 가족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바로 그 조건이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하지만 본 문맥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실행한 것은 그저 예수님의 말씀을 긍정하면서 묵묵히 듣고 있는 것뿐이었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것에는 눈에 보이는 행위 뿐만 아니라, 눈에 띄지 않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며 결단을 내리는 마음을 가지는 것까지도 포함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로마8,14~16)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성모님의 관계를 묵상하게 합니다.
예수님과 성모님께서는 특별한 관계를 맺으시고 있지만, 이 관계는 단순히 혈연관계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며, 하느님의 뜻에 대한 충실성에 근거한다고 말합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어머니이시며, 교회의 본보기로서 특별한 공경을 받으시는 이유는 그 누구보다 하느님 뜻에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은 우리도 인간적인 혈연 이기주의에서 벗어나도록 요청하는 듯합니다.
많은 부모가 자녀와 관련된 일 앞에서 하느님의 뜻이 뒤로 밀려나는 경험을 합니다.
또한 많은 경우 가족 특히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에 죄인 줄 알면서도 잘못된 선택을 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은 복음적 삶에 따르는 역경과 환난에 맞설 각오가 되어 있지만, 자신의 자녀만큼은 이런 어려움 없이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인 줄 알면서도 가정의 안정과 안락을 위해서, 자녀의 미래를 위해서 옳지 않은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선한 마음이 죄의 동기가 되고 죄의 변명 거리로 전락해 버릴 때, 이는 사랑이 아니라 혈연 이기주의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오직 하느님 말씀을 따름으로써 진정한 부모의 사랑이 실현됩니다.
자녀에게 물질적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나 세속적 처세가 아니라, 영적 유산을 남겨 주어야 합니다.
자녀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하느님 뜻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힘입니다.
곧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곧은 마음, 다른 이에 대한 배려와 존중, 고통받는 이에 대한 공감과 연민, 영원한 가치를 볼 수 있는 지혜, 배려와 희생을 아는 성숙함 등입니다.
이 모든 것은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자라납니다.
신앙의 전달 안에서 부모와 자녀 관계는 거룩해지고, 진정한 의미의 성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그리스도인은 그분의 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마태12,43-50)
그때에 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 성경은 ‘밖에 서있음’을 이야기 하려고 밖에서 있음을 두 번, 반복해 말씀하심을 기억하면서,~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 ‘밖에 서 있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 안에서 이루는 하늘의 참 가족의 모습인지 반문하시는 것이다.
49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 예수님의 제자란, 내 밖의 예수님으로 찾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시다.
(루가9,23)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예수님과 한 몸, 한 형제가 되기 위해 육의 부모 형제를 떠나 따랐던 제자들이다. 왜? 복 받으려고~ 하늘의 복, 하늘의 생명을 받으려고 따른 것이다.
(요한6,40)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어떻게, 어떤 것을 믿는 것인지~
(요한3,16)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 우리의 모든 죄의 속죄 제물로 오신 예수님, 그 예수님의 죽음, 그 십자가의 길이 구원의 진리임을 믿는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 하느님의 뜻이며 일이다.(요한6,29참조)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실행(實行), - 예수님의 대속, 그분의 십자가로 얻은 하늘의 생명을 거짓 가르침으로부터 지키는 것, 실행이다.
본문 앞 절로 가 보면(성경의 뜻은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다)~
43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 진리의 물(말씀)로 쫓겨나간 것이다. 더러운 영, 그 거짓이 쉴 곳,- 물(진리) 없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온 세상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 되었기에 물, 그 진리의 말씀이 없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피조물, 자연은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살지만, 사람만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른다.(이사1,3~ 로마3,10~ 등 참조) 사람의 마음, 그 속에만 물(진리)이 없다는 것이다.
44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비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 진리의 말씀으로 쫓겨나온 그 집이, 거짓 가르침으로 그 진리의 말씀이 치워져 있다. 그 거짓으로 말씀(물)을 지키지 못해 비워진 것이다. (나는 어떤지 살펴보자!)
45 그러면(더러운 영은)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이 악한 세대도 그렇게 될 것이다.”
= 예수님의 십자가로 받는 구원, 그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도(낳고도) 사람의 길로, 말로, 그 계명으로 헛된 구원의 가르침을 주는 그 거짓으로 구원의 말씀(물)을 잃어버려 구원의 예수님(성전, 집) 밖에 서 있는 나, 그렇게 내 밖의 예수님을 찾는 그 분리의 상태는 하늘의 가족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성경 속에 숨어있는 하느님의 지혜의 말씀을 깨닫는(낳는) 신앙이 아닌 성경의 겉(밖), 곧 사람의 지혜로, 문자 그대로 보는, 그 밖에 서서 읽고 믿어 행한다면, 그리고 그 성경 밖의 세상 肉의 뜻을 위한 자리에 서서~ 그 세상의 말, 이야기를 하느님의 말씀에 비유하여 듣고 행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이사55,8참조)
그 밖의 것으로는 예수님과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곧 그분의 말씀으로 서로 구원의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그 구원의 예수님과 하나 될 수 없다는 것이다.
(1요한4,1-2) 1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2 여러분은 하느님의 영을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한 영입니다.
= 하느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당신 외아들을 사람의 몸으로, 우리의 속죄 제물로 보내심을 믿는 것, 그래서 죽음으로 끝나야 할, 그 멸망의 운명인 우리가, 예수님의 생명을 얻어 하느님의 자녀로 영원히 살게 되었다는 것을 믿는 그 사람, 그가 하느님의 영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하느님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로마8,3)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가 말씀안의 삶을 누리도록 늘 이끌어 주소서 ~아멘!!!
2025년 11월 21일 금요일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김동희 모세 신부)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입니다.
요아킴과 안나가 성모님께서 세 살 되시던 해에 성전에서 하느님께 성모님을 바친 것을 기리는 날입니다.
아들이나 딸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집 아들딸들이 사제나 수도자의 길을 간다고 하면 축복받았다고 말하다가도 정작 자신의 자녀가 그 길을 가겠다고 하면 대다수가 펄쩍 뜁니다. 제 경우에도 그러하였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 밤새워 가족회의를 하였습니다. 제 편을 들어 주는 이는 하나도 없었고, 넉넉한 살림은 아니어도 서로 의지하며 행복하게 살자며 저를 붙잡았습니다. 저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아버지가 신학교 입학을 허락하셨습니다.
입을 꾹 다문 채 눈물만 흘리며 버티는 저의 모습을 보시고 사람이 하는 일 같지 않음을, 범상치 않음을 느끼셨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이 당신을 찾아왔지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 12,48)라고 반문하시고는 당신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12,49-50).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처음에 지니셨던 봉헌의 마음을 새롭게 하셨겠지요.
성모님께서도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에 하느님의 뜻을 곰곰이 헤아리시며, 아들 예수님을 다시 하느님께 봉헌하셨으리라 여겨집니다.
봉헌은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침 기도 때 바치는 봉헌 기도처럼 두고두고 해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마태12,46-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21)
루카 복음 8장 19~21절의 병행구절인 마태오 복음 12장 46~50절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 형제들이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침을 하고 계실 때 찾아온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찾아온 이유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영적이 군중들에게 영향을 끼쳐 단순히 소문과 명성 때문에 찾아온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께서 베에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마태12,22~32)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와 소문 때문에 걱정이 되어 찾아왔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회당에서 가르침을 하는 도중에 육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당신을 만나기 위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신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12,48) 라고 말하면서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마태12,49)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당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앞으로 당신 구원 사업의 협력자로 불리움을 받은 제자들도 이러한 공적(公的)인 가르침 중에 사적(私的)인 육정(肉情)을 쓰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교육적인 차원에서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고 볼 수 있다.
루카 복음 8장 21절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이다'로 나오는 마태오 복음 12장 50절과 병행 구절이다.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협력하는 제자들에게 있어서 혈육적이고 혈연적인 관계보다도 영적인 관계가 더 중요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참된 가족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에 해당하는 '메테르 무 카이 아델포이 무'(meter mu kai adelphoi mu)에서 '형제들'에 해당하는 '아델포이'(adelphoi)의 단수는 '아델포스'(adelphos)이다.
여기 복음에 나오는 '형제'라는 뜻의 '아델포스'(adelphos)라는 희랍어 단어는 당시 이스라엘 에서 사촌 형제들도 그렇게 불렀다.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형제, 자매들이 요셉 양부의 형제, 자매의 자녀들인 고종 사촌들이나 마리아의 형제, 자매의 자녀들인 이종 사촌들이라는 것이다.
만일 예수님께 친형제들이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때에 자신의 어머니를 친형제들에게 맡기지, 왜 이종사촌인 제자에게 맡겼겠는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출산하기 전(前)이나 출산시(時), 그리고 출산 후(後)에도 평생동정(平生童貞)이시라는 교리를 신덕 도리로 이천년 동안 가르쳐오고 믿어온 가톨릭을 반대하며, 자신들의 대처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성모님의 평생 동정성을 부정하는 개신교는 마리아에게는 예수님 외에도 여러 명의 아들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말씀 절대 주의'를 주장하면서도 이렇게 성경적 무지로 오류을 범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대처주의를 성경을 근거로 해서 합리화시키려고 하니까 터무니 없는 거짓을 진리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듣고'에 해당하는 '아쿠온테스'(akuontes; hearing)의 원형은 '듣다', '복종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아쿠오'(akuo)인데, 이것은 자식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 권위의 대리자들인 부모에게 순종하듯이, 인간들의 삶을 다스리는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권위이신 하느님께 대해 자녀로서의 순종은 당연한 도리요 의무라는 뉘앙스를 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