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6일 수요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내 이름 때문에 (루카21,12-19)
제1독서<사람 손가락이 나타나더니,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다니5,1-6.13-14.16-17.23-28)
1 벨사차르 임금이 천 명에 이르는 자기 대신들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벌이고, 그 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2 술기운이 퍼지자 벨사차르는 자기 아버지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금은 기물들을 내오라고 분부하였다. 임금은 대신들과 왕비와 후궁들과 함께 그것으로 술을 마시려는 것이었다.
3 예루살렘에 있던 성전 곧 하느님의 집에서 가져온 금 기물들을 내오자, 임금은 대신들과 왕비와 후궁들과 함께 그것으로 술을 마셨다.
4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금과 은, 청동과 쇠, 나무와 돌로 된 신들을 찬양하였다.
5 그런데 갑자기 사람 손가락이 나타나더니, 촛대 앞 왕궁 석고 벽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임금은 글자를 쓰는 손을 보고 있었다.
6 그러다가 임금은 얼굴빛이 달라졌다. 떠오르는 생각들이 그를 놀라게 한 것이다. 허리의 뼈마디들이 풀리고 무릎이 서로 부딪쳤다.
13 다니엘이 임금 앞으로 불려 왔다. 임금이 다니엘에게 물었다. “그대가 바로 나의 부왕께서 유다에서 데려온 유배자들 가운데 하나인 다니엘인가?
14 나는 그대가 신들의 영을 지녔을뿐더러, 형안과 통찰력과 빼어난 지혜를 지닌 사람으로 드러났다는 말을 들었다.
16 또 나는 그대가 뜻풀이를 잘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그대가 저 글자를 읽고 그 뜻을 나에게 설명해 줄 수 있다면, 그대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 목걸이를 목에 걸어 주고 이 나라에서 셋째 가는 통치자로 삼겠다.”
17 그러자 다니엘이 임금에게 대답하였다. “임금님의 선물을 거두시고 임금님의 상도 다른 이에게나 내리십시오. 그래도 저는 저 글자를 임금님께 읽어 드리고 그 뜻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23 임금님께서는 하늘의 주님을 거슬러 자신을 들어 높이셨습니다. 주님의 집에 있던 기물들을 임금님 앞으로 가져오게 하시어, 대신들과 왕비와 후궁들과 함께 그것으로 술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은과 금, 청동과 쇠, 나무와 돌로 된 신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는 신들을 찬양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임금님의 목숨을 손에 잡고 계시며 임금님의 모든 길을 쥐고 계신 하느님을 찬송하지 않으셨습니다.
24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손을 보내셔서 저 글자를 쓰게 하신 것입니다.
25 그렇게 쓰인 글자는 ‘므네 므네 트켈’, 그리고 ‘파르신’입니다.
26 그 뜻은 이렇습니다. ‘므네’는 하느님께서 임금님 나라의 날수를 헤아리시어 이 나라를 끝내셨다는 뜻입니다.
27 ‘트켈’은 임금님을 저울에 달아 보니 무게가 모자랐다는 뜻입니다.
28 ‘프레스’는 임금님의 나라가 둘로 갈라져서, 메디아인들과 페르시아인들에게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화답송>다니3,62.63.64.65.66.67(◎59ㄴ) ◎ 영원히 찬송하고 찬양하여라.
○ 해와 달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 하늘의 별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 비와 이슬아, 모두 주님을 찬미하여라. ◎
○ 모든 바람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 불과 열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 추위와 더위야, 주님을 찬미하여라. ◎
복음<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루카21,12-1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제1독서 (다니5,1-6.13-14. 16-17. 23ㅡ28)
"나는 그대가 신들의 영을 지녔을뿐더러, 형안과 통찰력과 빼어난 지혜를 지닌 사람으로 드러났다는 말을 들었다." (14)
벨사차르는 다니엘서 5장 14절과 16절을 '나는 그대에 대해 들었다'라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표현법은 과거 네부카드네차르 임금의 어법(다니4,9)이나 태후의 어법(다니5,11)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나 태후는 다니엘의 그러한 초월적인 능력을 당사자들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바를 말하였다.
하지만 벨사차르 임금은 자신이 전해들은 사실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말하고 있다.
물론 그가 들어서 그러한 사실을 알았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사차르는 다니엘에 대하여 풍문을 들은 듯한 표현을 거듭 사용해서 다니엘에 대한 자신의 불신을 은연 중에 나타내면서 이를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앞에서 태후는 다니엘 안에 '거룩하신 신들의 영'이 있다고 말했지만(다니5,11), 여기서 벨사차르 임금은 '거룩하신'이라는 형용사를 빼버리고 다만 '신들의 영'이 있다고만 말한다.
여기서 벨사차르 임금이 '거룩하신'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의도적이라고 본다.
'거룩하신'이라는 형용사가 문맥상 '초월적인'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지만, 인격적인 거룩한 순결, 흠없음'의 의미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사악한 벨사차르 임금이 그러한 뜻을 연상시키는 그 형용사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빼어난 지혜를 지닌 사람으로 드러났다'
본문은 문자적으로 '네 안에 탁월한 지혜가 발견되었다'
(excellent wisdom are found in you)라는 뜻이다.
이것은 태후가 다니엘서 5장 11절에서 다니엘에 대하여 '신들의 지혜 같은 지혜를 지닌 사람으로 드러났습니다'고 한 말을 다른 방식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다니엘의 지혜를 설명함에 있어서도 그는 태후가 말한 것과 비교할 때 평가절하하여 표현하고 있다.
한편 '빼어난'에 해당하는 '얏티라'(yathirah)는 차고 넘치는 상태를 나타내는 어원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넘치는' 또는 '탁월한'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탁월한 지혜는 보통 사람들의 지혜에 비해 비상한 지혜이기는 하지만, 신들의 지혜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으로 드러났다'에 해당하는 '히쉬테카하트 빠크'(hishythekahath bak; is found in you)는 문자적으로 '네 안에서 발견되었다'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표현은 '확연하게 드러나게 되었다'라는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다.
벨사차르는 이처럼 태후가 사용한 표현과는 다른 단어를 사용하여 다니엘의 능력을 은연 중에 폄하하고 있는 것이다.
2023년 11월 29일 수요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김상우 바오로)
오늘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우리 바람과 기대에 어긋나는 말씀을 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이자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사셨습니까?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지만 당신 자신을 한없이 낮추시어 비천한 인간이 되셨습니다.
다음 주일부터 교회는 대림 시기를 보내며 인간이 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겸손하신 육화, 곧 강생의 신비를 묵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삼 년의 공생활 동안 동고동락하였던 제자들의 발을 손수 닦아 주실 뿐 아니라 당신을 저주하고 침 뱉으며 못 박은 이들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셨고, 생애 마지막에 이르러 사랑과 겸손의 절정을 보여 주셨습니다.
만일 십자가 희생과 죽음이 없었다면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영광으로 들어가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부활과 십자가는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도 그분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의 영광으로 들어가고자 수난과 죽음을 받아들이신 스승처럼, 우리도 눈에 보이지 않는 박해와 고통, 오해와 갈등, 미움과 원망을 참아 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 이유는 첫째, 이러한 시련을 통하여 우리 믿음은 단련을 받아 정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러한 역경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 십자가에 우리 각자의 십자가를 일치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성실히 짊어진 뒤에야 비로소 우리에게 부활의 영광이 상급으로 주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복음(루카21,12~19)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16~19)
루카 복음 21장 16절은 종말의 기간 동안 성도들이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로부터 당할 핍박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가르치셨고(루카12,52.53; 마태10,21.22), 예언자 미카의 예언에도 나오는(미카7,5.6), 종말에 나타날 징조로서 보편화되어 있는 것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마르코과 마태오 복음 보다도 더 구체적으로, 가족 뿐만 아니라 친척과 친구들의 핍박까지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사실 인간적인 유대 관계가 없는 타인으로부터의 박해와 비교해 볼 때, 자신과 가장 가까운 친구들과 친척, 심지어 피를 나눈 가족의 박해와 배신은 참으로 인내하기 어려운 핍박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것은 종말의 기간에 인간 사회를 지탱해 주는 가장 기본적인 끈이요 세포 단위인 가족 관계까지 파괴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제 루카 복음 21장 17절에서 종말에 성도들을 핍박하고 박해할 주체가 가족과 친지로부터 모든 사람에게로 확장된다.
여기서 '모든 사람'에 해당하는 '판톤'(panton; all men)는 그리스도인을 미워하는 모든 사람 또는 민족(마태24,9)을 말한다.
그리고 '미움'으로 번역된 '미수메노이'(misumenoi)의 원형 '미세오'(miseo; hate)는 '증오하다', '무시하다'는 뜻인데, 무관심과 업신여김, 멸시, 경시 및 적극적으로 증오하는 미움을 가리킨다.
이것은 원수에 대한 감정을 나타내는 데 쓰이는 단어이다(마태5,43).
또한 이러한 박해의 원인이 바로 '내 이름 때문에'라는 표현을 통해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신앙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루카 복음 21장 18절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신앙인들에 대한 완전한 보호의 약속도 함께 나온다.
'머리카락'으로 번역된 '트릭스'(thriks; an hair)는 사람의 머리털, 머리카락을 가리키는 단어로서, 성경에서 하느님의 보호하심의 완벽함을 강조할 때 사용된다(마태5,36; 사도27,34; 1사무14,35; 2사무14,11; 1열왕1,52).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는 말씀이 앞에 나열된 핍박의 내용과 모순되는 듯이 보이지만, 이러한 하느님의 보호하심은 영적인 의미로 알아 들어야 한다.
그래서 성도들이 이 땅에서 육적으로 아무리 심한 박해를 받고 고통을 당한다 할지라도, 존재의 본질적인 차원인 '영혼'은 어떤 상함이나 변형이 없을 것이라고 이해하는 견해도 있고, 여기서 '너희'를 '교회'로 알아들어 종말에 어떤 박해가 있어도 '하느님의 교회'는 온전히 보호받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끝으로, 루카 복음 21장 19절은 종말 기간 동안 성도들이 받을 고난(루카21,12~19)에 대한 결론인 동시에, 루카 복음 21장 18절에 대한 보충 설명에 해당한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사가는 병행 구절에서 '그러나 끝까지 견디어 내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기록한 반면에(마태24,13; 마르13,13), 루카 복음사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문장으로 기록했다.
여기서 '인내'로 번역된 '휘포모네'(hyphomone; patience)는 무거운 짐이나 힘든 시련과 박해의 상황에서도 그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고수하는 것을 나타낸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사가는 '휘포메이나스'(hyphomeinas)라는 동사를 사용한 반면에, 루카 복음사가는 이 단어의 명사형을 사용했다.
그리고 '얻어라'로 번역된 '크테사스테'(ktesasthe; passess; gain)의 원형 '크타오마이'(ktaomai)는 '소득을 가지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영혼의 참 생명을 소유하는 것을 말한다.
루카 복음사가는 종말에 모든 박해를 견디는 '인내'가 곧 '영혼 구원'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밝혀서, 박해에 직면한 성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이다.
2025년 11월 26일 수요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김동희 모세 신부)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루카 21,18). 오늘 복음에서 저에게 와닿은 구절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날 불쑥 ‘내가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돌려받을 것입니다. 아니, 하느님께서는 넘치도록 후하게 우리에게 갚아 주실 것입니다(6,38 참조).
이러한 하느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오만방자한 사람의 모습을 우리는 오늘 독서의 벨사차르 임금에게서 봅니다.
임금은 천 명에 이르는 대신들을 거느리고 큰 잔치를 엽니다.
그러고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아 온 금은 기물들을 내오게 하여 그것으로 호기롭게 술을 마시려 합니다.
그러나 손가락 하나가 나타나 벽에 글을 씁니다.
하느님께서 그 왕국의 날수를 헤아리셨고, 그 임금을 저울로 달았더니 무게가 모자라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자기의 힘을 자랑하지만, 그는 하느님 앞에서 그저 가벼운 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을 향한 세상의 박해를 예고하시면서도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21,14)라고 하십니다.
영원과 부활을 확신하며 오늘을 충실히 살라고 하십니다.
구상 시인의 “오늘”이라는 시를 함께 묵상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김동희 모세 신부)
2025년 11월 26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가장 무서운 일
복음(루카21,10-19)
10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 이 부분까지 “하느님의 자비, 사랑을 믿지 못해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 ’가장 무서운 일‘이다“라고 어제 묵상했다.
12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 예수님 이름 때문에? 율법(제사와 윤리)을 열심히 지킨 그 사람의 의로움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 그 의로움을 은혜로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예수님만이 진리라고, 그 진리를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16,8-9)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9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 그래서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려간다. 그러나 그 일은 무서운 일이 아니라고 하신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 믿음을 증언할 기회, 그리스도인임을 증언할 기회다.
(사도5,40-41) 40 대사제가- 사도들을 불러들여 매질한 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고서는 놓아주었다. 41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 변론의 말을 우리가 미리 준비하면 우리의 말, 곧 인간의 지혜로, 변명으로 준비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지혜이신 성령께 의탁하라는 말씀이다. 성령으로 무장하라는 말씀이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 사람의 핍박, 미움은 하늘의 생명을 얻는 데는 아무런 해도, 지장도 주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곧 하느님께서 끝까지 지키시겠다는 것이다.
(이사46,4) 4 너희가 늙어 가도 나는 한결같다. 너희가 백발이 되어도 나는 너희를 지고 간다.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안고 간다. 내가 지고 가고 내가 구해 낸다.
(로마8,31-39) 31 그렇다면 우리가 이와 관련하여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아멘)
19 (그러니)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 그런데 인내할 수 있을까? 그런데 성경은 주님은 반드시 인내가 필요하다 하신다. 그래서 그 인내를 가르치시기 위해 사람들의 핍박, 미움, 시련을 겪게 하신 것이다.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야고1,3) 그러나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가 돌아오기를 인내로 기다려 주셨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1티모1,15-16) 15 이 말은 확실하여 그대로 받아들일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바오로)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16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먼저 나를 당신의 한없는 *인내로 대해 주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당신을 믿게 될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
(골로3,12) 12 그러므로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2테살3,5) 5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이끄시어, 하느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이르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기도)
(로마15,4-6) 4 성경에 미리 기록된 것은 우리를 가르치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인내를 배우고 위로를 받아 희망을 간직하게 됩니다. 5 *인내와 위로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뜻에 따라 서로 뜻을 같이하게 하시어, 6 한마음 한목소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기를 빕니다.
= 하느님 찬양, 하느님께 감사의 영광 드림은 구원의 완성, 그런데 본문 12절에 사람들이 손을 대어 박해 할 것이라 하셨는데 손은 일할 때, 글을 쓸 때, 사용한다.
그러니까 손을 대어 박해한다는 것은 사람의 일로 곧 사람의 법규와 교리를 근거로 박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의 법규, 교리를 열심히 지키는 것은 무거운 짐 같은 신앙이 되어 진실된 감사가 나오지를 않는다.
그래서 진실된 영광을 하느님께 들릴 수가 없다. 그 사람의 일, 의로움은 구원의 힘, 능력이 모자라 하느님과 갈라지는 가장 무서운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 모자람을 ~
(다니5,23-30) 23 하늘의 주님을 거슬러 자신을 들어 높이셨습니다. 주님의 집에 있던 기물들을 임금님 앞으로 가져오게 하시어, 대신들과 왕비와 후궁들과 함께 그것으로 술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은과 금, 청동과 쇠, 나무와 돌로 된 신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는 신들을 찬양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임금님의 목숨을 손에 잡고 계시며 임금님의 모든 길을 쥐고 계신 하느님을 찬송하지 않으셨습니다. 24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손을 보내셔서 저 글자를 쓰게 하신 것입니다. 25 그렇게 쓰인 글자는 ‘므네 므네 트켈’, 그리고 ‘파르신’입니다. 26 그 뜻은 이렇습니다. ‘므네’는 하느님께서 임금님 나라의 날수를 헤아리시어 이 나라를 끝내셨다는 뜻입니다. 27 ‘트켈’은 임금님을 저울에 달아 보니 무게가 모자랐다는 뜻입니다. 28 ‘프레스’는 임금님의 나라가 둘로 갈라져서, 메디아인들과 페르시아인들에게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30 바로 그날 밤에 칼데아 임금 벨사차르가 살해되었다.
☨보호자 성령님! 저희를 위해 기도해 주시어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우리주 그리스고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