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1주간 월요일] 백인대장의 믿음 (마태8,5-11)

2025. 11. 30. 오후 7: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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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1일 월요일

[대림 제1주간 월요일] 백인대장의 믿음 (마태8,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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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생존자들에게 자랑이 되리라.>(이사4,2-6)

2 그날에 주님께서 돋게 하신 싹이 영화롭고 영광스럽게 되리라. 그리고 그 땅의 열매는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에게 자랑과 영예가 되리라.

3 또한 시온에 남은 이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이들 곧 예루살렘에 살도록 기록된 이들이 모두 거룩하다고 일컬어지리라.

4 주님께서는 심판의 영과 불의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오물을 씻어 내시고 예루살렘의 피를 닦아 내신 뒤에

5 시온산의 모든 지역과 그 회중 위에 낮에는 구름을, 밤에는 타오르는 불길로 연기와 광채를 만들어 주시리라.

6 정녕 주님의 영광이 모든 것을 덮어 주는 지붕과 초막이 되어, 낮의 더위를 피하는 그늘이 되어 주고 폭우와 비를 피하는 피신처와 은신처가 되어 주리라.

 

<화답송>시편122,1-2.3-4ㄱㄴ.(4ㄷㄹ-5.6-7.)8-9(1) 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주님의 집에 가자!”할 때 나는 몹시 기뻤노라. 예루살렘아, 네 성문에 우리 발이 이미 서 있노라.

예루살렘은 튼튼한 도성, 견고하게 세워졌네. 그리로 지파들이 올라가네. 주님의 지파들이 올라가네.

이스라엘의 법을 따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네. 그곳에 심판의 왕좌, 다윗 집안의 왕좌가 놓여 있네.

예루살렘의 평화를 빌어라. “너를 사랑하는 이들은 평안하리라. 너의 성안에 평화가 있으리라. 너의 궁 안에 평안이 있으리라.”

나의 형제와 벗들을 위하여 비노라. “너에게 평화가 있기를!” 주 우리 하느님의 집을 위하여, 너의 행복을 나는 기원하리라.

 

복음<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하늘 나라로 모여 올 것이다.>(마태8,5-11)

5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6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9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대림 제1주간 월요일 제1독서 (이사4,2-6)

 

'예루살렘에 살도록 기록된 이들'

 

앞의 '시온에 남은 이들', '예루살렘에 남은 이들'이 여기서는 '예루살렘에 살도록 기록된 이들'로 달리 표현되고 있다. 

여기서 '예루살렘에 살도록 기록된 이들'로 번역된 '학카투브 라하이임(hakkathub  lahaiim)은  '살아있는 자로 기록된' 이라는 의미로 다르게 번역할 수 있다.

 

구약은 생명의 책, 즉 '셰페르 하아임'(seper haiim)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며 (시편69,29), 다니엘 예언자는 '그때에 네 백성은, 책에 쓰인 이들은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다니12,1)고 예언한다.

 

여기 본문과 더불어 성경의 이런 구절들을 보면,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 혹은 그 책에서 그 이름이 제거되는 자는 생명을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약의 사도 바오로도 필리피서 4장 3절에서 '생명의 책'에 대해 언급하며, 사도 요한 역시 이것을 언급함으로써 구원받을 사람과 멸망할 사람을 구분하고 있다(묵시20,15; 21,27).

 

그리고 여기서 '기록된'에 해당하는 '학카투브'(hakkathub)는 수동 분사형으로서, 그 책에 들어갈 이름을 당사자가 직접 기입해 넣는 것이 아니라 그 권한을 가진 자가  기록해 넣는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것은 구원이 외부로부터 오는 것, 즉 메시야의 구원 사업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거룩하다고 일컬어지리라'

 

여기서는 시온에 남은 이들이 거룩하다고 여김을 받는 은혜를 경험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 본문 역시 수동태로서 거룩하다고 일컫는 자는 남은 이들 당사자가 아닌,  주님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여기서 '거룩하다'에 해당하는 '카도쉬'(qadosh)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카도쉬'는 구약에서 약 175회 사용되는 단어이지만, 동일 어근의 단어가 페니키아어, 아람어, 이디오피아어에서도 사용된다.

 

이 모든 언어에서 이 단어는 신적 존재에게 바치기 위해 따로 구별해 놓은 행위나 상태를 나타낸다. 여기서도 하느님을 위하여 거룩하게 구별되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말하자면, 거룩하다 일컬어짐을 받은 무리는 주 하느님에 의해 선택되어 선택받지 못한 된 무리들로부터 구별된 무리라는 의미이다. 구약에는 히브리 민족들이 이러한 지위를 누렸지만(탈출19,5-6), 메시야 왕국이 도래하게 되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지위를 누리게 된다(1베드2,9).

 

둘째는, 그 삶에 있어서 신실하고 거룩한 순결의 모습을 지닌다는 의미에서 거룩한 것을 가리킨다. 하느님께서 거룩하게 세우신 백성의 삶의 특징은 세속의 더러움으로부터 구별된 거룩함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로 선택하신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거룩한 삶, 거룩한 순결의 삶을 살기로 원하셨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함과는 거리가 먼 불의하고 세속적인 삶, 부패하고 타락한 삶을 살았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타락으로 상실한 하느님 백성의 거룩한 삶의 면모를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를 통해 구현하시고자 하셨다.

 

이러한 거룩한 삶은 거룩한 순결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 구현되며, 궁극적으로는 교회의 완전한 형태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 완전한 모습이 구현될 것이다

 

 


[대림 제1주간 월요일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백인대장의 병든 종을 고치시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카파르나움입니다.

카파르나움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의 많은 시간을 보내셨으며, 코라진과 벳사이다와 함께 당신 권능을 가장 많이 드러내신 고장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병을 앓던 베드로의 장모를 낫게 하셨고, 중풍 병자를 고치셨으며,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이방인 백인대장의 종을 치유하시기까지 합니다.

 

특별히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의 대답을 들으신 다음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왜일까요? 

유다인이 아닌 백인대장의 믿음은 예수님께서 환자의 병을 먼 거리에서 치유하실 수 있다거나, 질병에 관한 특별한 권능을 지니신다고 믿는 것에만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부여된 더욱더 깊고 특별한 ‘권위’, 곧 하느님을 대신하여 말씀하시고 일하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치 로마 군대에서 백 명의 군인을 총괄하는 백인대장의 말이 로마 황제를 대변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도 하느님의 말씀을 드러낸다는 굳건한 믿음과 신뢰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고단한 일상을 살다 보니 우리도 특별한 은사에 목말라 합니다.

갑작스럽게 닥친 불행과 질병 때문에 마음 졸이며 간절히 하느님께 치유를 청하기도 합니다.

고통의 현실에서 샘솟는 목마름과 간절함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백인대장 같이 예수님께 온전히 내맡기는 굳은 믿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김상우 바오로 신부)

 



[대림 제1주간 월요일] 

 

백인대장의 믿음

복음(마태8,5-11)

5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 카파르나움은, 자신의 안위를 위한 고을, 성전으로 그 아래 사는 자체가 질병이다.(루카10,15) 곧 카파르나움은 육을 위한 율법, 세상의 원리와 같은 곳이다. 주님께서 우연히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그 질병을 고치시기 위해 들어가심이다. 곧 어둠에 빛으로 들어가심이다.(요한1,9-14참조)

 

6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8ㄱ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 카파르나움의 지붕 아래 사는 이는 ‘자격 없음’이다.

 

8ㄴ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9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 사람의 노력, 열심, 행위가 아닌 말씀이 이루심을 믿는다는 것이다. 로마 백인대장 곧 세상이 말씀의 힘, 능력을 깨달았음이다.

 

10 (그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 모든 만물은 말씀으로 창조 되었고, 말씀으로 보존, 지탱하고 있다.

 

(히브11,3) 3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야고1,18)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2베드3,7) 7 지금의 하늘과 땅도 불에 타 없어질 때까지 같은 말씀으로 보존됩니다. 불경한 사람들이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날까지만 유지되는 것입니다.

= 그래서 말씀을 먹고, 말씀으로 사는 것이 존재, 생명이다.

 

(마태4,4) 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 사람의 힘인 카파르나움의 빵만으로 사는 것, 죽음이다. 하느님의 힘인 말씀으로 사는 것이 생명, 곧 치유, 구원이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동쪽과 서쪽, 모든 민족이 말씀으로 받는 구원, 생명이다.

 

(요한1,12-14) 12 그분(말씀)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구원)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뜻, 은총과 진리, 그리고 용서, 사랑, 평화, 안식, 구원을 먹는 것이다. 한 말씀 안에 다 있는 것이다.

 

사제☞ 백인대장의 종을 아끼는 사랑하는 마음과 자신의 자격 없음, 낮추는 모습을, 특히 “주님의 한 말씀이면” 낫게 되는 믿음을 담읍시다.

 

☧ 아버지!

고통속에 있는 모든 이들이 말씀으로 치유되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한상 영원히 ~아멘!

 

 

 


  대림 제1주간 월요일 복음(마태8,5~11)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8ㄴ~9)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로 번역된 '우크 에이미 히카노스'(uk eimi hikanos;I am not worthy; I do not deserve)에서 '히카노스'(hikanos)는 '고려할 만한', '많은', '가치있는', '적합한', '알맞은'의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는 예수님의 '유대인인 내가 굳이 너에게 가서 고쳐 주어야 하느냐'(마태8,7참조)는 질문에 대해, '저는 주님께서 저희 집에 들어오실 만한 가치조차도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또한 당시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거나 그들과 식사를 함께하는 등의 이방인과의 친교를 금지한 유대인의 관습을 잘 알고 있었던 이방인백부장의 사려깊은 배려이기도 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러한 내용을 통해 마태오 복음의 주독자층인 유대인들을 향해 그들의 믿음 없음을 간접적으로 책망하면서, 백부장과 같은 큰 믿음을 가질 것을 촉구하고 있다.

마태오 복음 8장 8ㄷ절의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에서 '그저'에 해당하는 '모논'(monon; only)은 '단순히', '오직', '다만'의 의미를 가지고서 수식하는 문장의 의미를 제한하고 있다.

 

또한 여기서 '한 말씀'에 해당하는 '로고'(logo; a word)는 '말씀'이라는 뜻을 가진 '로고스'(logos)의 수단을 나타내는 여격 단수형이다. 

따라서 이 구절을 직역하면, '다만 한 말씀으로 말해 주십시오'이다. 

그는 주님의 '말씀'(로고스) 자체에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참 믿음의 소유자였다.

말하자면, 이방인 백부장이 바란 것은, 이방의 우상 숭배자들이 주문을 외운다거나 주술적 기원을 하는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고침을 입으리라'는 단 한마디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백부장도 마태오 복음 8장 9절에서 남을 다스리는 권세가 있었는데, 이러한 권세로 인해 교만하거나 방종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권세를 가진 분을 분별할 줄 알고, 그분에게 그 권세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하는 지혜를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종이 겪고 있는 질병이나 이 세상 만물의 원리에 대해서는 자신이 아무런 권세를 행할 수 없었기에, 세상 모든 만물에 대해 진정한 권세를 가지고 질병까지도 복종시키는 예수님 앞에서 그분의 권세를 인정하고 도움을 청해야만 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은 질병이나 고난이 마귀로부터 온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백부장은 자신이 자신의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면, 자신의 부하들이 그 명령을 듣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모든 만물의 주권자이신 예수님께서 질병을 유발시키는 더러운 영들을 향해 명령하시면, 그 세력이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할 수 밖에 없다는 영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예수님의 메시아적 권위와 위상과 그 능력을 깨달아, 그분께 대한 참된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20251201일 월요일

[대림 제1주간 월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백 명의 부하를 거느린 대장, 로마 군대의 지휘관인 백인대장이 예수님께 다가와 도움을 청합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아픈 종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어디로든 가게 하고 무엇이든 하게 만드니까요.

그의 간청에 예수님께서는 몸소 그의 집으로 가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백인대장은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실 자격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그의 모습에서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나라의 군인이 가질 법한 태도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사랑하는 이가 낫기를 바라는 겸손한 이의 간절함만 있습니다.

더구나 그는 예수님께서 그동안 해 오신 일들을 들어 알고 있는 듯, 이미 그분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믿음을 드러냅니다.

백인대장은 인간 세상, 특히 군대에서 볼 수 있는 윗사람이 명령하면 아랫사람은 그대로 복종하는 상명하복의 질서에 익숙해서인지, 예수님의 신적 권한을 절대적으로 믿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 이 이방인의 믿음에 감탄하십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겸손과 진실한 믿음 앞에서 감탄하시는 인간적인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공간으로 들어가시는 것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자 하심을 뜻합니다.

세리 마태오나 자캐오의 집에 들어가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 사람 안으로, 그의 삶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의 집에 들어가시지는 않았지만 그의 마음 안에는 확실히 들어가셨습니다.

우리도 미사 때마다 성체를 모시기 전에 백인대장의 고백으로 드리는 기도(“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를 정성을 다하여 드리면서 주님께서 우리 삶 안으로, 마음 안으로 들어오시도록 열린 마음과 믿음으로 걸어갑시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대림제1주간 월요일]

 

외아들 예수(모노게네스-하나로 갖는 이)

 

(마태8,5-17)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 지옥으로 떨어져야 할 카파르나움(나를 위한 고을, 성전)이다. 곧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한 신앙을 사는 사람들이다. 백인 대장은 로마의 군인이다. 돈과 명예(義), 그 세상 힘의 원리로 사는 세상의 대장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그들을 구하시러 그 저주의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방인인 로마 군인이 먼저 다가온다.

 

6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 중풍 또한 카파르나움이다. 중풍은 머리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 못하는병으로, 우리의 머리, 주인이신 그 주님의 뜻,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모든 죄인들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 원문을 직역하면 ‘내가 가서 고쳐줄까?’란다. 주님은 하늘에서 땅으로 죄인들을 찾아 오셨듯이, 오늘도 찾아 가시어 그 잘못된 생각(중풍- 카파르나움)을 고쳐 주신다는 말씀이시다.

 

그러자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 자신의 욕망, 뜻(명예, 의)을 위하여 자기 스스로 지은 카파르나움의 지붕은 자격이 없음을 아는 자기 부인이 된 사람의 말이다. 그 자기 부인 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청할 수 있는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한 말씀으로 고쳐질 수 있음을 아는 사람이다. 곧 주님의 말씀이 생명 수, 양식임을 아는 사람이다.

 

(아모8,11) 11 보라그날이 온다주 하느님의 말씀이다내가 이 땅에 굶주림을 보내리라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것이 아니고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는 것이다.

 

(요한4,13-14)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 세상의 물, 곧 사람의 말이다. 인간들의 욕망, 명예, 의(義)를 위한 물(말)은 헛된 말, 생각으로 하늘의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주님의 물(한 말씀)은 살아 계시어 사람의 마음 안에서 일 하시며, 영원한 하늘의 생명으로 이끌어 가신다. 곧 말씀을 하느님의 뜻으로 아는 것, 깨닫는 것이 영원한 생명인 것이다.,(요한7,3참조)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 많은 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머리이신 주님의 말씀이 아닌, 그 머리의 지체, 꼬리인 자신의 뜻을 위한 말(물) 로 중풍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그들 중에, 그것도 이방인이 그 자신의 삶이 헛된 것임을 아는 자기 부인이 된 사람이 請하는 한 말씀이기에 예수님께서 감동을 하신 것이다.

박사 학위 다섯 개를 다 버리고 아프리카에서 그들을 위해 희생을 한, 슈바이쳐 처럼, 그래서 세상에 칭찬과 명예를 받는 사람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헛된 것임을 청하는 그것이, 예수님을 감동시킨다는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12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주님의 한 말씀을 갖는 이들만이 하느님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이다. 말씀은 샘명수(물)와 함께 씨를 뜻한다. 곧 주님의 말씀, 씨를 갖고 가지 못하면 씹을 것이 없어 이빨끼리만 갈리는 ‘그 이를 갈 것’이라는 말씀인데 곧 말씀을 가지고 가지 못하면(깨닫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간다 해도 그곳이 바로 ‘이를 가는 곳이 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은 스스로 만든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1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바로 그 시간에 종이 나았다. 14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으로 가셨을 때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셨다. 15 예수님께서 당신 손을 그 부인의 손에 대시니 열이 가셨다그래서 부인은 일어나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 *열병- 주님의 말씀으로 하늘의 용서, 생명, 의로움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의 열심, 열성, 의로움으로 스스로 용서, 구원을 위한 삶을 살려하니 신앙이 무거운 짐이 되어, 열이 나는 열병이다. 그 헛된 열성(열병)의 손에 참된 열성이신 주님을, 말씀(물) 대시니(부으시니), 열이 가신 것이다. 그리고 일어나, 드러누워 있던(죽었던) 여자가 하늘로, 주님의 뜻으로 살아났다는 것이다.

*시중을 들었다- (디아노코스-말씀으로 섬기다) 곧 말씀이 하늘의 용서, 생명임을 깨달아 그 용서, 생명의 주님으로 섬겼다는 것, 믿었다는 것이다. 그 열병의 다른 모습이 저녁의 상태이며 마귀 들림이다.

 

16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많이 데리고 왔다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악령들을 쫓아내시고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 *저녁- 구약, 곧 율법(제사와 윤리)에 멈춘 신앙이 마귀 들림이다. 그래서 아침-신약으로, 곧 그 율법을 당신의 목숨으로 대속 하시고 완성하신 그 예수님의 십자가로, 그 구원의 생명, 새 계약으로 반드시 건너와야(파스카)한다.

율법으로는 죄 만을 알 뿐이다. 율법의 그 사람의 의로움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을 진리로 믿어, 그분의 의로움을 전가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하느님 나라다. (요한14,6 로마3,20-25참조)

그런데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뜻을 위한 선악의 말씀, 그 둘로 먹고 가르치며 사람의 의로움을 위한 신앙을 살자는 것이 뱀(악령*-마귀)의 유혹을 먹은, 곧 선이 악을 대속 해 생명을 주시는 한 말씀을 선악의 그 둘로 준 거짓말, 그 거짓 가르침으로 중풍, 열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을 주시는 말씀이, 심판을 주는 그 선악의 둘, 그 거짓을 쫓아내고 선악의 둘의 말로 힘들고 지친 그 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신 것이다.

 

17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우리의 병, 질병, 온갖 죄들을 예수님께서 다 떠맡으시고, 대속으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그 피로 온갖 더러움을 다 씻어 깨끗하게, 거룩하게 하신(히브10,1-22) 성령께서도 증언하신 그 새 계약의 구원, 생명의 한 말씀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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