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03일 수요일
[대림 제1주간 수요일] 빵의 기적 (마태15,29-37)
제1독서<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내신다.>(이사25,6-10ㄱ)
6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
7 그분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겨레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덮개를 없애시리라.
8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정녕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9 그날에 이렇게들 말하리라.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10 주님의 손이 이 산 위에 머무르신다.”
<화답송>시편23,1-3ㄱ.3ㄴㄷ-4.5.6(◎6ㄷㄹ) ◎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
○ 당신 이름 위하여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 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
○ 원수들 보는 앞에서 제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
○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
복음<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고 빵을 많게 하셨다.>(마태15,29-37)
29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로 가셨다. 그리고 산에 오르시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30 그러자 많은 군중이 다리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다. 그들을 그분 발치에 데려다 놓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31 그리하여 말못하는 이들이 말을 하고 불구자들이 온전해지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눈먼 이들이 보게 되자, 군중이 이를 보고 놀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32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33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광야에서 이렇게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4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시자, 그들이 “일곱 개가 있고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36 그리고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3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
대림 제1주간 수요일 제1독서(이사25,6~10ㄱ)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정녕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8)
'죽음'에 해당하는 '함마웨트'(hammaweth)는 죄의 결과에서 오는 인간의 죽음을 의미하는 '무트'(muth)에서 유래한 명사로서(창세2,17), 육체적 죽음 뿐만 아니라 영적 죽음까지 모두 포괄한다.
영적 죽음은 하느님의 생명이 없는 상태로서(에페4,18), 생존시에도 하느님을 전혀 알지 못하고 하느님과의 관계가 없으며, 죽어서는 하느님의 의노의 심판에 처해지는 운명을 나타낸다.
죄를 범함으로 이 땅에 들어온 육체적 죽음과 더불어 이러한 영적 죽음이 지배하는 한, 완전한 구원은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주 하느님은 하느님 나라의 잔치를 마련하여 사람들이 거기에 참여하기 전에 죽음을 완전히 없해 버리실 것이다.
한편 '없애 버리시리라'에 해당하는 '빨라'(balla)의 원형 '빨라으'(ballah)는 일반적으로 음식물 따위를 목구멍 아래로 삼켜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창세41,7; 탈출7,12; 민수16,30; 욥기20,15). 이 죄많은 세상에서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지만(1베드5,8), 장차 다가온 종말의 날에 주님께서 생명의 원수인 죽음을 삼켜 버리실 것이다.
이 단어는 본문에서 강조 능동형으로 사용되어 그 의미가 한층 강조되어 있으며, 완료 시제로 사용되었다. 여기에서 완료 시제는 과거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언적 완료(prophetic perfect)로서 비록 미래의 일이지만 그 실현이 과거에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분명히 이루어질 것임을 강조한다.
한편 이러한 죽음의 파멸에 대해서는 묵시록 21장 4절에 확정적이고 선명하게 예언되어 있다.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내고'
'눈물'에 해당하는 '띠므아'(dimah)는 슬픔과 애도의 문맥에 사용되는 것으로서 성도들이 세상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무수한 고난을 당할 수 밖에 없음을 함축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마지막 날이 되면, 주 하느님께서는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을 굳게 지키기 위해서 흘렸던 성도들의 모든 눈물을 말끔히 씻어주실 것이다.
이것은 주 하느님의 위로가 넘칠 것을 의미하는데, 그의 위로가 세상에서 흘렸던 모든 눈물과 당했던 모든 고통을 다 잊어버리고도 남음이 있는 넘치는 것임을 암시한다.
온 천하를 주관하시는 주 하느님께서는 자비가 풍성하여 어머니가 바깥에서 다쳐 울면서 집으로 돌아온 자녀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듯이 세상에서 상처받고 고난당한 자녀들의 얼굴을 어루만지시며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 이러한 예언은 묵시록 7장 17절, 21장 4절에서도 다시 한 번 찾아볼 수 있다.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본문은 주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는 하느님의 백성들이 결코 단죄를 당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되는 축복을 받을 것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은 이 땅에서 주님을 믿지 않고 교만하여 범죄한 대가로 인해 주님의 심판대 앞에 나설 때 단죄를 당해 그 수치를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구속성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씻음을 받은 하느님의 백성들은 하느님 대전에 설 때에 세상에서 연약하여 지었던 죄로 인해 결코 단죄를 당하거나 수치를 입지 않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과 관계된 진리를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당신 백성'에 해당하는 '암모'(ammo)는 구약 시대에 오직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에게만 한정하여 주로 사용하던 명사 '암'(am)에 3인칭 소유격 단수 접미어가 결합된 형태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 단어는 이스라엘 민족의 혈통을 가진 자들만을 한정하지 않는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 모든 백성을 포함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로마8,14-17).
'정녕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본문은 이사야 25장 6~8절의 예언이 이사야 예언자 자신이 지어낸 허탈한 희망의 말이 아니라 역사의 주인이신 주님께로부터 비롯된 계시의 말씀임을 나타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모든 예언이 신적 권위를 지녔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본문은 이유의 의미를 지닌 접속사 '키'(ki; 왜냐하면)로 시작되는데, 이것은 주님께서 계시로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위의 예언들이 반드시 성취되고야 만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대림 제1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정천 사도 요한)
예수님께서 산에 자리를 잡고 앉으시자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다리저는 이, 눈먼 이, 말못하는 이 등 고통을 겪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마치 진료실에 앉아 있는 의사에게 향하듯 예수님 앞으로 다가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진료 행위는 간결하게 표현되지만, 그 결과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제대로 걸을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고, 말을 할 수 있는 상태, 곧 새로운 인생을 맞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이사야의 예언이 실현됩니다.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35,5-6).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겪는 질병의 고통만 안쓰러워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배고픔, 굶주림까지도 염려하십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군중이 가엾다는 연민의 정, 길에서 쓰러질지 모른다는 염려가 엄청난 기적을 불러일으킵니다.
사천 명이 넘는 이가 모두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만도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찹니다.
이사야의 또 다른 예언이 실현되는 장면입니다.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
예수님 곁에는 늘 병든 이들과 굶주린 사람들로 가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당신께 걸고 있는 기대나 그들이 던지는 간절한 눈빛을 단 한 번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그들의 부족과 결핍을 채워 주셨습니다.
그것이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위로하시고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을 닦아 주시려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고통 가운데 오늘 눈물을 흘리고 계시다면, 주님의 위로를 전하여 드리고 싶습니다.
위로를 주시는 그분께서 바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대림 제1주간 수요일]
지금 이 환시는 정해진 때를 기다린다. 끝을 향해 치닫는 이 환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하바꾹2,3)
독서(이사25,4-10)
4 당신께서는 힘없는 이들에게 피신처가, 곤경에 빠진 가난한 이들에게 피신처가 되어 주시고 폭우에는 피난처, 폭염에는 그늘이 되어 주셨습니다. 포악한 자들의 기세는 겨울에 쏟아지는 폭우와 같고
= 하느님을 믿지 못해, 곧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못해 그분의 말씀과 나라를 피난처(피신처)로 의지(依支)하지 않고 자신들의 여러 봉사(奉仕), 종교(宗敎)활동 등을 의지하며 자신들의 뜻(나라)인 세상 힘의 논리를 주장하는 그들의 기세는 ~
5 메마른 땅에 내리쬐는 폭염과 같습니다. 당신께서 이방인들의 소란(기세)을 잠잠하게 하시어 폭염이 구름(말씀) 그늘로 스러지듯 포악한 자들의 승리 노래가 스러지리이다.
= 구름은 비(생명수)를 품은 하느님 영광(榮光)을 뜻한다. 그러니 하느님의 뜻인 하늘의 대속, 그 구원의 의로움이 인간의 뜻인 인간 스스로의 의로움(승리)을 무색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구원(救援)을 위해 승리(勝利)는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에 있다.
(1코린15,57)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6 그래서~만군의 주님(야훼)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 7 그분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겨레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덮개를 없애시리라.
= 산 위는 하느님 나라(집)의 현존을 뜻한다. 죄인들의 속죄(贖罪) 제물로 죽은 어린양의 살진 고기와 흘린 피, 곧 새 계약의 술(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신 것이다.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 그 피의 제사(祭祀)가 완성되고 이루어지는 혼인잔치의 모형(模型)인 것이다. 구약에는 그 신비(神秘, 미스테리온- 비밀)가 율법(律法), 제사와 윤리)의 너울로 덮어 감추어져 있다.
(2코린3,15) 15 사실 오늘날까지도 모세의 율법을 읽을 때마다 그들의 마음에는 *너울이 덮여 있습니다.
= 성경을 율법(도덕과 윤리)으로 본다는 것이다.
(2코린3,16) 16 그러나 주님께 돌아서기만 하면 그 너울은 치워집니다.
= 예수 그리스도로 풀면(깨달으면() 성경의 모든 것이 풀린다.
(갈라4,4-5) 4 그러나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5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에페1,7-10)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8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미스테리온)를 알려 주셨습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죄(罪)와 죽음(死亡)을 없애시고 죄의 수치를 없애신 하느님 아버지시다.
8 그분(야훼)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죄, 죄의식)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정녕 주님께서 말씀하셨다.(아멘) 9 *그날에는 (구약을 신약에서 완성하신 시대) 이렇게들 말하리라. “보라, 이분(야훼)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희망(希望)의 야훼 하느님~
(히브10,16-18) 16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새 계약)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아멘)
9ㄷ이분(야훼)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10 주님(야훼)의 손이 이 산 위에 머무르신다.”
= 창조(創造)의 손이다. 첫 창조, 옛 계약을 그리스도의 피, 그 새 계약의 말씀으로 구원, 곧 새 창조를 완성하신 그 진리의 손이다.
(묵시21,1-4) 1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2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3 그때에 나는 어좌에서 울려오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 이곳이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주님의 세계(世界)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주님의 종이오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와 있음을 보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대림 제1주간 수요일 복음(마태15,29-37)
34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시자, 그들이 “일곱 개가 있고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36 그리고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3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
제자들이 제시한 빵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많고 적다'는 식의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곧바로 사천 명가량의 군중을 먹이실 준비를 하게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천주 성자 제2위 하느님이시므로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시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으시기에 양(量)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 '앉으라고'로 번역된 '아나페세인'(anapesein; to sit down)의 원형 '아나핍토'
(anapipto)는 상체를 뒤로 젖혀 기대는 것을 뜻하는 동사이다(요한13,25).
이 동사는 유대인들이 식사하는 몸의 자세를 기술하는 전문 용어이다. 유대인들은 보통 한쪽 팔을 바닥에 기대고 비스듬히 누워 식사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땅'에 해당하는 '테스 게스'(tes ges; the ground)라는 것은 풀이 돋지 않은 황량한
지대임을 나타내며,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와 메추라기, 바위에서 솟은 물을 먹이신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감사를 드리신'에 해당하는 '유카리스테사스'(euchasristesas; gave thanks)의 원형
'유카리스테오'(euchasristeo)는 '좋은', '잘'을 의미하는 접두어 '유'(eu)와 '~에게 은혜를 베풀다'는 뜻을 지닌 동사 '카리조마이'(charizomai)의 합성어로서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여 감사하다'는 뜻이다(요한11,41).
이 동사는 유대인들이 절기 음식을 먹을 때나 일반 식사 자리에서 하느님께 감사 드리는 행위를 묘사하는 단어로 쓰인다.
그러니까 마르코 복음 8장 6절 후반부는 예수님께서 음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신 장면이다.
한편,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서 예수님의 손에 들려진 물고기는 정확히 '두 마리'였다(마르6,41).
하지만 지금 예수님께 들려진 생선의 숫자는 몇 마리인지 정확하지 않고, 크기도 작다.
여기서 '작은 물고기'로 번역된 '익튀디아'(ichthydia; small fish)의 원형 '익튀디온'
(ichthydion)은 본문과 마태오 복음 15장 34절의 병행 구절에만 나온다.
이것은 '물고기'(fish)를 뜻하는 명사 '익튀스'(ichthys; 마르6,41)의 지극히 작은 것을
표기하는 단어로서, 아직 완전히 자라지 않은, 크기가 작은 물고기를 뜻한다.
그리고 '몇 마리'로 번역된 '올리가'(oliga; a few)의 기본형 '올리고스'(oligos)는 수나 규모가
'작은', 혹은 양이 '적은', 정도가 '약간이거나 사소한' 등의 의미를 지닌 형용사이다.
여기서는 복수로 사용되었는데, 본문에서 셀 수 있는 수를 나타내는 용법으로 쓰여서 적어도 두 마리보다는 많았을 것으로 본다.
마르코 복음 8장 7절의 '축복하신'에 해당하는 '율로게사스'(eulogesas;be blessed)의 원형
'율로게오'(eulogeo)는 '좋은', '잘' 이란 뜻이 있는 접두어 '유'(eu)와 '말하다'는 뜻이 있는 '레고'(lego)의 합성어로서 '좋게 말하다'는 뜻이 있지만, '찬송하다', '찬미(찬양)하다'(마태23,39; 마르11,9; 루카2,28)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앞의 마르코 복음 8장 6절에 나오는 '감사를 드리신'에 해당하는 '유카리스테오'(euchasriteo) 가 주로 '감사하다'는 뜻을 갖는 것과 약간 뉘앙스가 다르다.
이것은 감사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즐거운 마음으로 하느님께 찬양까지 드렸음을 보여 준다.
2025년 12월 03일 수요일
[대림 제1주간 수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산 위에 머무르[시는]” “주님의 손”(이사 25,10)이 모든 민족들에게 잔치를 마련하시고 그들에게서 고통의 너울과 덮개를 벗기시며 모든 이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주신다는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은 메시아에 대한 희망의 절정이 됩니다.
이 희망은 이제 예수님에게서 실현됩니다.
산 위에 앉아 계신 예수님께 다가오는 군중이 겪는 온갖 형태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메시아께서 오셨음을 알리는 분명한 표지입니다(마태 11,4-5 참조).
예수님께서는 요구받으시지 않은 것까지 베풀어 주십니다.
빵의 기적은 굶주린 군중을 ‘가엾이 여기시는 마음’에서, 곧 연민에서 시작됩니다.
라틴 말에서 연민은 다른 이의 고통을 ‘함께 겪는 것’을 뜻합니다.
전쟁, 기아, 재해 등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소식에 연민을 느낍니까? 나와는 관계없는 ‘그들’의 일로 여깁니까?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어떤가요? 다가가서 함께하나요, 아니면 피하나요?
제자들이 가진 적은 양의 음식(빵 일곱 개와 물고기 조금)이 ‘주님의 손’에 들리자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습니다. 군중을 먹일 생각을 하지 못하였던 제자들은 주님의 손을 거쳐 나온 음식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며 이 신비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것도 없는 데서 빵과 물고기를 만들어 내시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실제로 가진 것에서 출발하십니다.
연민과 나눔, 이 두 가지는 어려움을 겪는 이웃 안에서 메시아의 현존을 드러내 줍니다.
이를 위하여 주님께서는 이제 ‘우리의 손’을 쓰시고자 합니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2025년 12월 03일 [대림 제1주간 수요일]
하늘(3)과 땅(4)이 하나되는 것이 일곱(안식)
하늘이 땅으로 내려오시는, 낮아지는 하늘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주님의 길, 구원의 진리다.
복음(마태15,29-38)
29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갈릴래아 호숫가로 옮겨 가셨다. 그리고 *산에 오르시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 거기에서? 앞 21절이하 가나안(이방인) 여자의 믿음을 칭찬하신 곳이다.
(마태15,25-28) 25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 참으로 듣기 거북한 모욕적인 말씀이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자신이 주님의 말씀을 먹어야할 강아지, 곧 짐승일 뿐임을 아는 여자, 낮은 자 이기에(코헬3,18) 불쾌하지 않고 끝까지 빵(말씀)을 구하고 있다. 곧 예수님은 여자의 믿음을 끌어내신 것이다. (주님 이 여인의 믿음을 저희에게도 주소서!)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 거기, 그 곳을 떠나 산에 오르시어 거기에 앉으셨다. 산은 하느님의 현존을 뜻한다. 곧 하느님의 자리, 거기에 앉으신 것, 하느님의 뜻, 일을 하신다는 의미이다.
독서(이사25,7-8)
7 그분께서는 이 산(골고타) 위에서 모든 겨레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덮개를 없애시리라.
= 아담이 뱀에게 씌워진 선악의 심판의 너울과 덮개를 없애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8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야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죄)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정녕 야훼께서 말씀하셨다.
30 그러자 많은 군중이 다리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다. 그들을 그분 *발치(길)에 데려다 놓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 예수님의 발치, 주님께서 걸어오신 길이다. 곧 율법의 죄, 수치인(로마3,20) 온갖 질병을 예수님께서 대신 짊어지신, 대속하신 그 진리로 받은 고침이다.
(이사53,3-4) 3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4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31 그리하여 말못하는 이들이 말을 하고 불구자들이 온전해지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눈먼 이들이 보게 되자, 군중이 이를 보고 놀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 육의 치유 안에 영적 치유를 봐야한다. 곧 진리의 말을하고 진리의 길을 걸으며 진리로 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치유, 구원, 곧 하늘의 존재가 된다.
32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 아직, 사흘(3)동안, 곧 진리를 깨닫지 못했음이다. 그러면 율법의 죄, 세상 고난의 길에서 쓰러진다.(로마3,20 갈라3,22)
33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광야에서 이렇게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 광야(세상)는 하느님의 말씀으로만 살 수 있음을 뜻한다.(신명8,2-3)
34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시자, 그들이 “*일곱 개가 있고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 일곱(7)은 완전함, 안식을 뜻한다. 곧 일곱을 갖고 있으나 그 안식을 깨닫지 못해 누리지 못하고 있다. 성경을 인간의 뜻, 말로 보기에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못해 헛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이다.(마르7,7-9)
비유하지면- 우리가, 하느님께서 주신 밥을 먹고 있으면서도 하느님의 뜻인 양식으로 먹고 있음을 몰라 영이 주리고, 병든 것을 모르고 있음과 같다.
35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 땅, ‘흙의 없음의 존재임을 알라’는 것이다. 곧 하늘의 양식(말씀)을 먹어야 한다는 의미다.
36 그리고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 의미를 몰라 없음이었던 일곱을 살아있는 생명의 일곱으로 다시 돌려주심이다.
사제☞ ‘어떻게 이것들로’ 하고 따지는 우리와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먼저 주어져 있는 것들에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가 기적을 만듬을 목격하게 됩니다.
3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 38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사천 명이었다.
= 하늘의 일곱으로 땅(4, 사천)이 구원을 받음이다. 곧 하느님이 은총, 은혜로, 빛(하늘)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시어 어둠이 받는 하늘의 안식, 구원, 생명이다.
(요한3,16-17)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빛)을 (속죄 제물로)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요한8,12) 12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아멘.
☧ 아버지 !
말씀을 매일 먹으며 낮아지려 하지만 너무 힘듭니다. 가나안 여자처럼 낮은 자로 살겠습니다. 자녀가 누리는 안식을 살게 하소서. 성령의 탄식과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