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2주간 화요일] 잃어버린 양 (마태18,12-14)

2025. 12. 7. 오후 8: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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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9일 화요일

[대림 제2주간 화요일] 잃어버린 양 (마태1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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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신다.>(이사40,1-11)

1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2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3 한 소리가 외친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4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5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6 한 소리가 말한다. “외쳐라.” “무엇을 외쳐야 합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7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9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하고 말하여라.

10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

11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화답송>시편96,1-2.310ㄱㄷ.11-12.13(이사 40,10) 보라, 우리 하느님이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주님께 노래하여라,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나날이 선포하여라, 그분의 구원을.

전하여라, 겨레들에게 그분의 영광을, 모든 민족들에게 그분의 기적을. 겨레들에게 말하여라. “주님은 임금이시다. 그분은 민족들을 올바르게 심판하신다.”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여라. 바다와 그 안에 가득 찬 것들은 소리쳐라. 들과 그 안에 있는 것도 모두 기뻐 뛰고, 숲속의 나무들도 모두 환호하여라.

그분이 오신다. 주님 앞에서 환호하여라. 세상을 다스리러 그분이 오신다. 그분은 누리를 의롭게, 민족들을 진리로 다스리신다.

 

복음<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마태18,12-1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대림 제2주간 화요일 제1독서(이사40,1~11)

 

이스라엘이 바빌론 유배를 간 이유는 야훼 유일신 신앙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졌기 때문이다.

주님은 이스라엘이 당신을 배신할 때,주변 이교 강대국(앗시리아,바빌로니아 등등)을 통해 전쟁을 일으키고, 나라 잃은 설움을 주거나 유배를 보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그들의 죄의 벌에 대한 (죗값; 갑절의 벌; 복역)을 치루고, 정신차리게 하며,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 깨닫게 한다.

 

오늘 이사 40.1-2를 보라.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여기서 '나의 백성' '예루살렘'으로 정의할 수 있다. 바빌론 유배지에 있는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 '복역의 때'가 끝났음을 외치라는 소명을 받는다. 이것이야말로 예루살렘의 지위의 변화를 묘사하는 것이다.

 

이 요새화된 성은 다윗의 전투시 군사적 중심지로 사용되었고, 그 이후로도 수없이 많은 전쟁을 위하여 사용되었다. 전쟁은 국가 존립을 위하여 필수 불가결한 부분이었다. 이스라엘(북)과 유다(남)는 더 이상 국가로 남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주변 이교 강대 제국에게로 넘어갔다.

그러나 이제 예루살렘은 자유롭게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자신의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제 이스라엘 40.3-11에서 하느님을 위하여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과 삶의 터전과 공동체에 주님으로 찾아오시고, 통치하실 수 있도록, 주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길을 닦으라는 말씀이 선포된다.

 

성전 전승에 의하여 잘 알려진 야훼의 길은 시내산이나 에돔에서 나와(이사 34장; 63.1-6 참고) 사해 남쪽의 사막(=아라바)를 지나 동쪽으로부터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이다(Diaspora가 거주하는 길).

 

이 선포의 핵심, 즉 이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이유는 야훼께서 다시 오셔서 예루살렘에 좌정하시겠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왕의 행차를 준비하라고, 한 외침(소리)이 촉구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마르코복음1장 2~3절에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맞이할 마음 준비를 하도록 구약과 신약의 교량 역할을 하며, 예수님 앞에 오셔서 정지 작업을 하는 소명을 받은  예수님의 선구자이신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미리 보여준다.

 

"사막에 길을 곧게 내는 것,  골짜기를 모두 메우고, 산과 언덕을 낮게 하는 것,  거친 곳을 평지로, 험한 곳을 평야로 만드는 것"

 

이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한 정지작업은 높은 것을 깎아내리고, 골짜기는 메우는 작업이다.

 

하느님 위에 올라간 영적 교만은 겸손으로, 죄악과 분열과 열등감의 깊은 계곡은 회개를 통해 은총을 받을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다.

거칠고 험한 곳은 주님께 반항하고 대들고,제 마음대로 하던 마음인데, 그 폭력과 고집의 마음을 겸손과 온유의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주님의 영광" (이사40.5)이 드러나, 모든 사람이 그것을 다함께 보게 된다고 한다.

하느님 임재와 능력의 표징을 예루살렘에서 다시 볼 수 있고,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40.9ㄹ-10ㄴ). 상급과 보상이 무상으로 내린다(10ㄷ).

 

"상급"과 "보상"은 승리한 전사가 집으로 가져오는 노획물과 공물을 표현하는 용어이다. 야훼 하느님의 예루살렘 귀환이 승리의 행사로 묘사된다.

 

그분은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양무리)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이스라엘 백성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어미 양들(지도자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이사40.11).

 

이 목자와 양무리에 대한 시구는 시편 23.1-3과 유사하다. 목자는 대개 "왕"을 위한 비유로 쓰인다. '그의 양무리, 어린 양, 암컷들' 하느님의 백성 넓은 의미로 묘사한 것이다.

 

유다의 성읍은 그들의 지도자들과 절대 다수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간 후에, 수십 년동안 외면과 고통스런 상황으로 고난 받아온 사람들을 묘사한다.

예루살렘에로의 하느님의 귀환 그들 모두, 특히 약한 자와 곤궁에 빠지고 궁핍한 자를 위한 목자의 외투 속 사랑 가리킨다.

 

"젖먹이는 암컷들"은 "갓난 어린양들"과 함께 지내며 돌보는데, 양떼가 이동할 때마다 어린양들도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림 제2주간 화요일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제자 공동체를 위한 예수님의 긴 설교문을 담고 있는 마태오 복음 18장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고(17,22-23 참조) 이후에 자리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러한 이야기 배열 순서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려 주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고난과 희생으로 얼룩진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어갈 준비가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의 중심 주제는 작은 이에 대한 관심입니다.

이 주제는 마태오 복음 18장의 전반부(1-14절 참조)를 관통하며, 12-13절에서 길 잃은 양에 관한 비유로 강조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14절에 나오는 ‘작은 이’를 길 잃은 양 한 마리에 비유하는데, 이는 제자 공동체 구성원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표현은 앞서 18장 6절과 10절에서도 사용되었으며, “어린이”(18,2-5)라는 낱말로 그 의미를 보충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짧은 비유를 통하여 제자들 모두 매우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키시며(10,42; 25,40.45 참조), 공동체 구성원 가운데 누구도 길을 잃지 않도록 돌보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십니다.

작은 이를 향한 관심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 가운데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고 돌보신다는 확신을 줍니다.

동시에 우리도 하느님께서 보여 주신 작은 이를 향한 관심을 가지도록 요청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우리에게 전하고 계십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대림 제2주간 화요일]

되찾은 양의 비유

 

복음(마태18,12-1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 양(羊) 아흔아홉 마리가 모여 있는 산은 율법의 산이다. (숫자99는 100에서 하나가 부족한, 곧 하느님의 뜻, 진리가 빠진 불완전을 뜻한다) 곧 율법(제사와 윤리)의 의로움은 구원의 진리가 아님을 깨달은, 그래서 하느님의 뜻인 율법을 대속으로 완성하신 하늘의 의로움을 찾아야 한다고 그 하느님의 뜻을 위해 자기 부인(否認), 버림, 그 작은이로 율법의 산을 나온 양 한 마리다.

 

(루가9,23)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왜 자신을 버리고(부인하고) 작은이가 되라고 하셨나? 인간의 모든 것, 즉 세상의 명예, 의(義), 생명까지 그 모든 것은 사라질 연기, 그림자일 뿐이기에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이다. 하느님은 그런 작은이를 뒤쫓아 가 찾을 때까지 찾아내신다. 그리고 기뻐하신다.(루가15,4참조)

 

독서(이사40,10-11) 10 보라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보라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 11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 보이는 세상의 것은 보이지 않는 하늘의 것의 그림자일 뿐이다.

 

독서(이사40,6-8) 6 한 소리가 말한다. “외쳐라.” “무엇을 외쳐야 합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7 주님의 입김(말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 인간의 영광의 꽃, 곧 인간의 의로움은 구원의 의로움인 주님의 말씀 앞에 시들어 버릴 풀일 뿐이라는 것이다.(이사64,5참조)

 

(이사45,23-25) 23 내가 나 자신을 두고 맹세한다내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으니 그 말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정녕 모두 나에게 무릎을 꿇고 입으로 맹세하며 24 말하리라. “주님께만 의로움과 권능이 있다그분께 격분하는 자들은 모두 그분 앞에 와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25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들(그리스도인)은 주님 안에서 승리와 영예를 얻으리라.”

 

(바룩2,6) 6 주 우리 하느님께는 의로움이 있지만우리와 우리 조상들 얼굴(의로움)에는 오늘 이처럼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계약약속그 하느님의 말씀만이 변하지 않는 영원한 구원이다.

 

그래서 세상 모든 영광권세의 주인인 사탄에게~

(루가4,4) 4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 그러니 율법(제사와 윤리)의 의로움과 사람들의 감동적 이야기를 많이 알고, 들었어도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 새 계약의 말씀을 모르면, 믿지 못하면 헛 것인 것이다. 사람 뿐만 아니라 하늘 아래 모든 것은 헛 것일 뿐이라 하신다.

 

(코헬1,2-3) 2 허무로다허무코헬렛이 말한다허무로다허무모든 것이 허무로다! 3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 모든 노고? 율법의 행위와 세상의 선악의 도덕과 윤리의 삶이 하늘의 용서, 구원에 무익한, 보람이 안된다는 것이다.

 

독서(이사40,1-2) 1 위로하여라위로하여라나의 백성을.-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 2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 죄의 값은 두배, 갑절로 갚아야 한다. 하느님의 명이시다.(탈출22,4-8참조) 곧 우리의 죄 값이 하늘의 대속으로 갚아져 죄의 복역 기간이 끝난 것이고 그것이 하느님의 손, 일로 갑절의 벌을 치룬 것이다. 그런데 왜 갑절일까? 그것은 하늘의 대속이 갑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곧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하늘의 쉼,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말씀인데~

 

(탈출16,16) 16 주님께서 내리신 분부는 이렇다. ‘너희는 저마다 먹을 만큼 거두어들여라너희 식구의 머리 수대로 한 오메르씩저마다 자기 천막에 사는 이들을 위하여 가져가거라.’”

= 하늘에서 내려주신 하루 양식으로 주신 ‘만나, 한 오메르’다.

 

(탈출16,22.29) 22 엿샛날에는 한 사람에 두 오메르씩양식을 *갑절로 거두어들였다공동체의 수장들이 모두 와서 모세에게 이 일을 알리자, 29 보아라주님이 너희에게 안식일을 주었다그래서 엿샛날에는 너희에게 *이틀치 양식을 준다그러니 이렛(7)날에는 저마다 제자리에 머무르고아무도 자기가 있는 곳을 떠나 밖으로 나가지 마라.”

 

= 양식인 만나, 곧 생명의 양식인 그리스도의 복음, 말씀으로 하늘의 안식, 쉼을 누리게 된 것이다. 율법을 열심히 지킨 그 사람의 의로움은 구원의 진리가 아님을 깨달은, 그래서 인간의 영광이 헛된 것임을 깨닫고 버린, 작은이 만이 누릴 수 있는 갑절의 용서, 자유, 쉼, 안식이다.

그러니 광야 같은 우리의 삶에 그리스도로 안식을 주신 하느님의 길, 하느님의 영광의 길을 내야(닦아야)한다.

 

독서(이사40,3-5) 3 한 소리가 외친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4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5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 우리의 삶에서 하느님의 영광만이 오롯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메우고 낮추는 삶이 우리의 구원을 넘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1코린10,31) 31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가 사람의 뜻을 위한 세상의 말이 아닌하느님의 뜻인 그리스도의 복음그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먹고마시고입어 하늘의 안식을 누리는 하느님의 영광이 되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대림 제2주간 화요일 복음(마태18,12~14)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2)

 

'길 잃은'에 해당하는 '프라노메논'(planomenon; which is gone astray; that wandered off)의 원형 '플라나오'(planao) '길을 잃다'(to go astray), '방황하다'(wander roam about)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방향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는 모습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실제로 양은 심한 근시이므로, 무리와 조금만 떨어져도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여기에 나오는 '길 잃은' 양도 무리로부터 떨어져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해 애처롭게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이 단어는 은유적으로 '속이다' '유혹하다', '꾀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이 단어는 수동형으로 쓰이고 있다.

 

따라서 마태오 복음 18장 12절은 자신의 잘못에 의해 길을 잃게 된 행위 뿐 아니라, 유혹당하여 진리로부터 벗어나 죄에 빠지게 된 상황까지도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않느냐?'에 해당하는 '우키'(ouchi)는 '아니다'(not)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부정어이다.

 

하지만 본문처럼 의문문에서 사용되면 당연히 그렇게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본문은 '반드시 그 한 마리를 위해 나머지를 버려두고 찾는다'라는 뜻이다.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산에 그냥 남겨 둔다는 것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다소 이해되지 않지만,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맡겨진 자들에 대해서는 한 영혼이라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이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 더 소중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착한 목자되신 예수님께서는 길잃은 양 한 마리일지라도 크나큰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20251209일 화요일

[대림 제2주간 화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위로의 책이라고도 불리는 이사야서는 오늘 독서에서 희망을 주는 위로가 무엇인지를 뚜렷이 보여 줍니다.

이 위로는 아주 강력해서 죗값을 치르느라 유배살이에 지치고 실의에 빠진 하느님 백성을 새롭게 일으킵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권능으로 새롭게 하시면서 직접 찾아오십니다.

주님의 은총은 타인을 통하여 배달되지 않고 당신께서 몸소 가지고 오시는 것입니다.

아니, 그분께서 모든 은총의 총합이십니다.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이사 40,10).

하느님의 상급과 보상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오실 때 주시는 희망이 아닐까요?

세상에서 인간적 기대는 어긋날 수 있겠지만, 하느님 안에서 희망은 어긋나지 않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희망을 잃어버리면 그의 삶은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과연 인간은 희망으로 존재합니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도 희망을 존재의 필수라고 보았습니다.

비슷하게 사람은 음식 없이는 40, 물 없이는 4, 공기 없이는 4, 그러나 희망이 없으면 단 4초도 살 수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특히 이 대림 시기에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시고 희망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새끼 양들을 안으시며,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시는 그 다정한 사랑으로 우리를 위로하시는 주님을 만나러 기쁨과 희망으로 걸어갑시다.

그분이 오신다. 주님 앞에서 환호하여라. 세상을 다스리러 그분이 오신다. 그분은 누리를 의롭게, 민족들을 진리로 다스리신다”(화답송).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2025년 12월 9일 [대림 제2주간 화요일] 

 

길 잃은 양(한 마리

 

복음(마태18,12-1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 숫자 100은 완전, 충만을 뜻하며 하느님을 뜻한다. 그런데 하나를 잃으면 완전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하나를 찾을 때까지 찾으셔야 한다. (루카15,4)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 길을 잃었다는 것은 죄를 뜻한다. 곧 죄인이 돌아오는(회개) 것을 기뻐하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런데 돌아오도록 하시는 분 또한 하느님이시다. 길 잃은 양이 당신과 한 몸인 당신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본문 앞절로 가보면~

(마태18,10)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내가 너희에게 말한다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 내가 업신여기는 사람이, 내가 죄인이라고 판단하는 이, 내가 가장 미워하는 이가 하느님께서 찾으시는 한 마리 양(羊)일수도 있다. 그런데 나 자신이 나를 업신여긴다면 내가 길 잃은, 하느님께서 애타게 찾으시는 한 마리 양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노력, 열심히 아닌 그리스도의 피로 흠 없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느님의 열심, 열정이 일하신다. 곧 하느님은 우리(나)와 함께 완전함이 되시기로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를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요한10,28)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 그러므로 나 자신도, 그 누구도 업신여기면 안된다.

 

(1코린6,20) 20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콜로1,22) 22 그러나 이제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육체로 여러분과 화해하시어여러분이 거룩하고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1베드1,18-19) 18 여러분도 알다시피여러분은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헛된 생활 방식에서 해방되었는데은이나 금처럼 없어질 물건(노력)으로 그리된 것이 아니라, 19 흠 없고 티 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그리된 것입니다.

 

(야고1,27.2,1) 27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은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1 나의 형제 여러분영광스러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와 함께 충만이 되시기로 하셨다.

 

(에페1,23)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에페2,1-9) 1 여러분도 전에는 잘못과 죄를 저질러 죽었던 사람입니다. 2 그 안에서 여러분은 한때 이 세상의 풍조에 따라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곧 지금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 안에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길을 잃고 살았던 것이다.) 우리도 다 한때 그들 가운데에서 우리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그리하여 우리도 본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4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6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호의로당신의 은총이 얼마나 엄청나게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시대에 보여 주려고 하셨습니다.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열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 하느님의 열심, 열정인 큰 사랑이 이루심이다.(2코린11,2)

 

하느님의 큰 사랑(은총)~

(1요한4,10-11)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 나와 이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한 몸이다. 곧 완전, 충만한 생명이 되었다. 그 길을 잃지 않도록 서로 사랑하자! 곧 하느님의 사랑을 서로 나누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나를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아버지!

길을 잃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제가 길을 잃고 엉뚱한 고난의 삶을 살고 있나요그러면 아버지께서 저를 끝까지 찾아 내시어 기쁨으로 하나되게 하소서성령님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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