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1일 목요일
[대림 제2주간 목요일]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 (마태11,11-15)
제1독서<나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 너의 구원자이다.>(이사41,13-20)
13 나 주님이 너의 하느님, 내가 네 오른손을 붙잡아 주고 있다. 나는 너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14 두려워하지 마라,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너의 구원자이다.
15 보라, 내가 너를 날카로운 타작기로, 날이 많은 새 타작기로 만들리니 너는 산들을 타작하여 잘게 바수고 언덕들을 지푸라기처럼 만들리라.
16 네가 그것들을 까부르면 바람이 쓸어 가고 폭풍이 그것들을 흩날려 버리리라. 그러나 너는 주님 안에서 기뻐 뛰놀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 안에서 자랑스러워하리라.
17 가련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이 물을 찾지만 물이 없어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탄다. 나 주님이 그들에게 응답하고 나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리라.
18 나는 벌거숭이산들 위에 강물이, 골짜기들 가운데에 샘물이 솟아나게 하리라. 광야를 못으로, 메마른 땅을 수원지로 만들리라.
19 나는 광야에 향백나무와 아카시아, 도금양나무와 소나무를 갖다 놓고 사막에 방백나무와 사철가막살나무와 젓나무를 함께 심으리라.
20 이는 주님께서 그것을 손수 이루시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 그것을 창조하셨음을 모든 이가 보아 알고 살펴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다.
<화답송>시편145,1과 9.10-11.12-13ㄱㄴ(◎8) ◎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네.
○ 저의 임금이신 하느님,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며, 그 자비 모든 조물 위에 내리시네. ◎
○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
○ 당신의 위업과 그 나라의 존귀한 영광, 사람들에게 알리나이다. 당신의 나라는 영원무궁한 나라, 당신의 통치는 모든 세대에 미치나이다. ◎
복음<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11,11-15)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12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13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
14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
15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대림 제2주간 목요일 제1독서 (이사41,13-20)
"보라, 내가 너를 날카로운 타작기로, 날이 많은 새 타작기로 만들리니, 너는 산들을 타작하여 잘게 바수고, 언덕들은 지푸라기처럼 만들리라." (15)
이사야서 41장 15절과 16절에서 주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을 주님의 타작기로 삼으시고 영광을 누리도록 하실 것이라고 약속한다.
농사가 끝난 이후에 최종적으로 이루어지는 타작은 심판의 양상을 나타내는 예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고대 근동에는 두 가지 타작 방식이 있었다.
하나는 소가 돌리는 육중한 맷돌을 이용해 타작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끝이 날카로운 타작기계를 손에 쥐고 타작 마당에서 도리깨질을 하면서 타작하는 방식이다.
본문은 후자의 방식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하느님께서 이방 땅에 있는 이스라엘을 자기 손에 들린 타작기로 삼는다는 것은 이방 사람들을 파괴한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이방 사람들이 그들을 통해 알곡과 쭉정이로 갈리게 될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해 내는 심판의 기준이 될 것을 암시한다.
본문은 종말론적 상황과 관련하여 장차 영적 이스라엘로 세워질 교회와 그 성도들이 만왕의 왕, 만민의 주님으로 영광 중에 재림하실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며, 이 세상을 심판할 것을 나타내는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마태19,28).
한편 앞선 이사야서 14장 14절 상반절에서 이스라엘은 '벌레', 즉 지렁이처럼 사람이 밟고 지나가면 터져서 죽는 초라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묘사되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스라엘을 가리켜 '날카로운 타작기', '날이 많은 새 타작기'로 묘사한다.
이것은 너무나도 급작스런 변화, 너무나도 상이한 대상을 묘사한 것이 아닐수 없다.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일으키는 분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 주 하느님이시며, 그분이 이스라엘을 도우실 것임을 약속하셨기에 이는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신실하신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그대로 시행된 지극히 당연한 일일뿐이다. 아울러 이러한 일로 이제 이스라엘이 회복될 시점이 가까웠다는 것을 나타낸다.
하느님께서 약속하시고 보증하신 그 때가 가까워오고 있으며, 실제로 하느님께서 행하신다면, 사람의 시각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지라도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는 산들을 타작하여 잘게 부수고, 언덕들은 지푸라기처럼 만들리라'
본문은 앞서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이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처럼 된 결과, 이루어질 일을 나타낸 것이다.
그것은 과거 '벌레'같은 존재로서 이스라엘이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산들과 언덕들은 이스라엘을 압제하던 이방인들, 이방 국가, 이방 권세자들을 지칭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권능으로 강해진 그들,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처럼 견고하게 된 그들은, 산같은 힘을 가진 압제자들을 부스러기나 겨와 같이 흩어버리고, 그 압제를 통해 해치고 말 것임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서 먼저 제시된 '산들'에 해당하는 '하림'(harim)은 이스라엘을 적대하는 자들 가운데 큰 세력을 가진 존재를 의미한다.
이를 쳐서 부스러기로 만든다는 것은 영적으로 하느님의 백성들이 세상의 불신자들 가운데서 산들처럼 스스로를 높이는 교만한 자들을 심판할 것임을 나타낸 것이다.
이어 제시되는 '언덕들'은 앞서 나온 '산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적대하는 불신자들을 지칭한다.
그들의 영향력이 미미하더라도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임을 보여주기 위하여 '산들'과 대비되는 '언덕들'에 해당하는'우게바오트'(ugebaoth)란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 언덕들은 '지푸라기'(겨)같이 될 것인데, 본문에서 '지푸라기'(겨)에 해당하는 '모츠'(mots)는 탈곡한 곡물 가운데서 알곡이 빠져 나와 버린 쭉정이, 껍질, 왕겨를 의미한다.
이러한 본문이 전달하는 표면적 의미는 이스라엘이 강성하여 주변 여러 나라들을 허무하고 무가치한 부스러기나 '지푸라기'(겨)처럼 만들어 버리며 짓밟을 것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스라엘이 그만큼 강하게 성장하고 영예로운 지파에 설 것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신약 시대의 성도들의 삶과 관련된 것으로 풀이된다.
세례자 요한이 그러하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활동이 그러하였듯이 하느님 말씀을 증거하는 성도들은 높은 산을 낮추며, 거만한 자들을 하느님의 권세와 그 말씀 아래 굴복시키는 일을 행할 것이고, 하느님의 권능 앞에서 악인들과 불신앙적인 삶을 사는 교만한 자들이 얼마나 무력하고 초라한 삶을 살게 될 것인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대림 제2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정천 사도 요한)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
일부 사람들은 상대를 비하하거나 업신여길 때, 벌레 같다거나 벌레만도 못하다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이런 심한 표현이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니 조금은 당황스럽습니다.
당신께서 몸소 선택하신 백성인데도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하여 봅니다.
어제 독서에서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이런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나의 길은 주님께 숨겨져 있고, 나의 권리는 나의 하느님께서 못 보신 채 없어져 버린다.”
여기서 말하는 ‘길’과 ‘권리’는 이스라엘의 생각과 기대로 가득 찬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외세의 침략과 유배 생활에서 겪었듯이 그들의 예상과 바람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게 되자, 자기들이 걷고 싶은 길과 누리고 싶은 권리를 하느님께서 철저히 외면하셨다며 불평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치 그들과 논쟁하듯 당신 자신을 항변하십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주님의 모든 계획을 꿰뚫어 보고 있으며, 일이 그 계획대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여기지만, 하느님 백성의 길과 권리를 결정하는 이는 그들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 당신이심을 일깨우십니다.
주님께서는 ‘벌레’와 같은 당신 백성의 처지를 제대로 보게 하시지만, 또한 그 처량한 사정에 놓인 그들을 몸소 도우시겠다는 약속도 함께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너의 구원자이다.”
이는 하느님의 교육법이기도 합니다.
강한 어조의 훈계로 그들의 처지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하시며, 그렇게 당신께 온전히 의존하는 것만이 구원에 이르는 길임을 알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그러하였듯이, 우리도 예상에서 벗어난 길을 걸을 때가 있습니다.
시련 속에서 ‘과연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가?’ 하고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의 가련한 처지를 잘 아시고 늘 우리 손을 붙잡아 주심을 기억하여야겠습니다.
“나 주님이 너의 하느님, 내가 네 오른손을 붙잡아 주고 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대림 제2주간 목요일]
자신을 부수는 이가 세례자 요한 보다 크다.
독서(이사41,13-20)
13 나 주님(야훼)이 너의 하느님, 내가 네 오른손을 *붙잡아 주고 있다. 나는 너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가 “아멘”이다. 오늘 말씀 하나하나를 ‘아멘’으로 받아 간직하고 되새기자. 힘이다.
구원(救援)에 있어서 우리가 하느님의 손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의 손을 붙잡고 계시기에 가능(可能)하고 안심(安心)할 수 있다. 그것이 복음(福音)이다.
14 두려워하지 마라,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너의 구원자이다.
= 벌레, 구더기 같은 우리, 나. 그 쓴물(마리아), 죄인(罪人)들의 구원자 시다.~아멘.
15 보라, 내가 너를 날카로운 타작기로, 날이 많은 새 타작기로 만들리니 너는 산들을 타작하여 잘게 바수고 언덕들을 지푸라기처럼 만들리라.
= 인간의 불가능(不可能), 죄(罪)를 알라고, 그래서 ‘하늘의 구원자를 기다리라’고 율법(律法)을 주셨는데, 율법(제사와 윤리)을 지킬 수 있다고 자신들의 뜻을 위해 열심히 율법을 지킨 그 행위의 의로움으로, 높아진 교만(驕慢)의 산과 언덕을 부수어 버리도록, 곧 부인(否認)하도록 우리(나)를 그렇게 만들어 쓰시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구원하시겠다는 것이다.
(신명28,1-2.15) 1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모든 계명을 명심하여 실천하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땅의 모든 민족들 위에 너희를 높이 세우실 것이다. 2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이 모든 복이 내려 너희 위에 머무를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모든 계명과 규정을 명심하여 실천하지 않으면, 이 모든 *저주가 내려 너희 위에 머무를 것이다.”
= 하느님의 모든 계명(誡命)과 규정(規定)을 다 지킬 수 있는 인간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모든 저주(詛呪)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 저주(詛呪)에서 구(求)해주실 분을 찾아야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로마7,21-25참조)
16 네가 그것들을 *까부르면 바람이 쓸어 가고 폭풍이 그것들을 흩날려 버리리라. 그러나 너는 주님 안에서 기뻐 뛰놀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 안에서 자랑스러워하리라.
= 인간의 죄악(罪惡)은 물론 육(肉)의 욕망(慾望)을 위한 의로움 또한 구원의 무가치(無價値), 무력(無力)함을 깨닫고, 육(肉)을 위한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고백(告白)하면(드러내면) 바람, 폭풍의 힘, 곧 하느님의 영, 성령(聖靈)께서 그 모든 죄악을 날려 없애 버리신다는 것이다.
육(肉)이 죽어 영(靈)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그 영의 내가 하느님 안에서 자랑스러워하며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17ㄱ 가련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이 물을 찾지만 물이 없어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탄다.
= 육(肉)의 욕망(慾望)을 위한 모든 것이 가련한, 헛된 것임을 깨달은 그 가난한 이들이 갈증(渴症)을 느낀다.
17ㄴ 나 주님이 그들에게 응답하고 나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리라.(아멘) 18 나는 *벌거숭이산들 위에 강물이, *골짜기들 가운데에 샘물이 솟아나게 하리라. *광야를 못으로, 메마른 땅을 수원지(水源池)로 만들리라.
= 율법(律法)으로 헛된, 그 벌거숭이, 골짜기, 광야(廣野)의 갈증을 해소시켜 줄 강물, 샘물 같은 생명수인 구원(생명)의 말씀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구약(舊約)을 신약(新約)에서 완성(完成)하시겠다는 약속(約束)이시다.
(요한4,13)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 율법(律法, 제사와 윤리)과 이방(세상)의 물, 곧 육의 욕망을 위한 말을 찾는 여자에게 하신 말씀이다.
(요한4,14)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말씀)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 영원한 하늘의 생명은 십자나무에서 대속(代贖), 새 계약(契約)의 말씀(물)이 ‘다 이루어졌기에’ 받는다. 그 십자나무가 어제 공부(工夫)했듯 하느님의 구원의 계약, 새 계약의 나무다.(탈출15,23-25참조)
19 나는 광야에 향백나무와 아카시아, 도금양 나무와 소나무를 갖다 놓고 사막에 방백나무와 사철가막살나무와 젓나무를 함께 심으리라.
= 모두 성전에 쓰이는 나무들이다. 율법(律法)의 성전(聖殿)이다. 그러나 후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영, 성령을 모신 참 성전이 되어야 할 성전(聖殿)이다. (요한3,19-21 코린전6,19 참조)
다른 말로 물(샘물)이 없는 광야, 사막(沙漠) 같은 율법의 세상에 나무들, 곧 옛 계약을 새 계약으로 완성하실 십자나무의 대속으로 다시 세우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이 들어있는 희망(希望)의 말씀, 복음(福音)인 것이다.
20 이는 주님께서 그것을 손수 이루시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 그것을 창조하셨음을 모든 이가 보아 알고 살펴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다.
= 어제 묵상했듯, 옛 창조를 예수 그리스도로 새 창조를 이루심이다. 십자나무, 새 계약의 말씀으로 새로 낳으시겠다는 것이다.
(야고1,18)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갈라6,14-15) 14 그러나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15 사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 그런데 아직도 내 뜻, 육의 욕망을 위해 옛 계약인 율법(제사와 윤리)의 신앙을 살며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는(뺏는) 그 강도(强盜)짓인 폭력(暴力)을 쓰고 있다고 하신다.
복음 (마태11,12-15)
12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13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 14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
= 엘리야로 온 요한이라 하신다. 구약의 마지막 예언서(豫言書)인 말라기서의 마지막 장절(章節)을 말씀하신 것이다.
(말라3,23-24) 23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24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 그런데 세례자 요한이 그 하늘의 일을 했는가? 아니다 못했다. 그리고 의심(疑心)을 품었다.(루가7,8-23참조) 부모(하느님)의 마음을 자녀(죄인)에게 돌리고, 자녀(죄인)의 마음을 부모(하느님)에게 돌려 이 땅의 파멸(破滅)이 아닌 구원(救援)으로 완성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15 그래서~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 ‘성령(聖靈)의 귀로 들어 깨달으라.’는 말씀이다. 엘리야는 하느님의 소리, 말씀을 뜻한다. 곧 엘리야 (엘리+야).
엘리(하느님)+야(야훼, 소리, 말을 줄 거야) 그러니 하느님의 말씀, 그 하늘나라의 복음으로 살리시겠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 나라로 오셔서 모든 것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아기 예수께서 이집트에 들어가셨다가 돌아온 후~
(마태3,1-2) 1 그 무렵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2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리고~
(마태4,23) 23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 율법(律法)의 신앙(信仰)에서 율법을 다 이루신 십자가(十字架)의 복음(福音)으로 돌아와 하늘의 용서, 구원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感謝)의 예배(禮拜)를 드리는 삶으로 돌아서라는 말씀이다. (요한4,23-24 참조)
사람의 이름(영광)을 낮추고 하느님의 이름(영광)을 높여드리는 그것이 신앙(信仰), 구원의 목적(目的)임을 간과(看過)해서는 안 된다.
*(2티모1,9-10) 9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義)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은총은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10 이제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환히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법)을 폐지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
☨보호자 성령님! 율법의 나를 부수고 율법을 다 이루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하늘의 큰 인물이 되게 하소서.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을 위해 간구해 주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어찌 생각하십니까? 사제 들의 총화인 주교님들께서 복음해설을 중단시킨지가 3년째를 넘어갑니다.
매일미사책 오늘의 묵상 ※2021년 11월부터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 요청으로 오늘의 묵상 제공을 중단하고 있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자기들의 율법 해석으로 하느님의 통치에 다가가는 길을 열었다고 하지만, 실상은 사람들 앞에서 하늘나라의 문을 잠가 버려 그들 스스로도 들어가지 않을뿐더러 들어가려는 사람들마저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마태 23,13 참조).
오늘날은 누가 이런짓을 하고 있을까요?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마태26,25)
[대림 제2주간 목요일] (김재덕 베드로 신부)
유배 중이던 이스라엘에게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 주님이 너의 하느님, 내가 네 오른손을 붙잡아 주고 있다. ……
두려워하지 마라,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너의 구원자이다”(이사 41,13-14).
여기서 ‘벌레’와 ‘구더기’는 비참함과 경멸을 뜻합니다(시편 22[21],7 참조).
이스라엘이 유배로 벌레와 구더기처럼 비천하고 경멸당하는 대상이 되었더라도,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오른손’을 붙잡고 계십니다.
여전히 그들을 잊으시지 않고, 포기하시지도 않으며, 오히려 구원으로 이끄시고자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광야에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마르 1,4)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증언한 예수님께서는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 9,13)라고 말씀하시며, 하느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를 바라고 계시다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죄로 내 처지가 벌레나 구더기와 같아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음을 당신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증명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 나아가 모든 죄인에게도 이 사랑을 멈추시지 않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이 사랑이 ‘나에게만’ 이루어지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면, 우리도 하느님 나라를 폭력으로 빼앗으려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11,12). 아멘.
(김재덕 베드로 신부)
[대림 제2주간 목요일]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
독서(이사41,13-16)
13 나 주님(야훼)이 너의 하느님, 내가 네 오른손을 붙잡아 주고 있다. 나는 너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아멘) 14 두려워하지 마라,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너의 구원자이다. 15 보라, 내(야훼)가 너를 날카로운 타작기로, 날이 많은 새 타작기로 만들리니 너는 산들을 타작하여 잘게 바수고 언덕들을 지푸라기처럼 만들리라. 16 네가 그것들을 까부르면 바람이 쓸어 가고 폭풍이 그것들을 흩날려 버리리라.
= 구원에 이르는 길은 날카로운 새 타작기를 만들기 위해 불에 달구는 수난,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
16ㄴ 그러나 너는 주님 *안에서 기뻐 뛰놀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 안에서 자랑스러워하리라.(아멘)
복음(마태11,11-15)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이라 함은 그리스도이 지체(肢體)들이다. 그 작은 지체들이 가장 크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그분 안에서 그분과 함께 가장 큰 사람이 된다. 곧 구약의 큰 인물보다 신약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더 크다는 것이다.
12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 하느님의 뜻, 이름, 영광의 하늘나라를 인간의 뜻, 이름을 위한 나라로 거짓되게 한다는 것이다. 곧 하느님의 뜻, 말씀대신, 인간의 뜻, 말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인간의 큰 인물로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최고 의회 의원인 니고데모에게~
(요한3,3.5-6) 3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말씀)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6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 아무리 커도 육은 육이라는 말씀이다. 곧 땅의 존재가 스스로의 능력으로 하늘의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靈), 성령으로만 들어갈 수 있다. 영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이다.(로마8,9)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육적(肉的) 인간이 죽어 그분 안에서 영적(靈的)으로 다시 살아난 사람이다.
세례자 요한은 구약의 예언자로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지 못하였으니 육적으로 머문 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신 영적사람이니 하늘나라 사람이다.
예수님의 진의는 요한은 구약 시대에서는 가장 큰 인물이지만 신약시대(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인물이니 하늘나라에 들어가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헛된 짐 다 버리고(요한을 버리고) 그리스도만 따르라는 말씀이다. (책, 황금율‘ 참조)
13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 14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 15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 구약의 마지막 예언서 말라기서의 마지막 장절(章節)이 엘리야가 다시 올 것을 예언하고 끝난다. 곧 세례자 요한을 가리키는 예언(豫言)이다.
(말라3,23) 23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 죽은 엘리야 예언자를 다시 살려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세례자 요한을 뜻한다.(마르9,13참조)
(말라3,24) 24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 그리고 아버지의 진노, 파멸에서 구원해 주실 구원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신약이 열린다.
(콜로1,21-22) 21 여러분은 한때 악행에 마음이 사로잡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그분과 원수로 지냈습니다. 22 그러나 이제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육체(대속)로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이 거룩하고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 (마태11,11-15)다.
☧ 아버지!
아버지께서 벌레 같은 제 손을 잡고 계시며 ‘두려워 말라’하시니 감사합니다. 힘과 용기를 주소서. 성령님과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대림 제2주간 목요일 복음(마태11,11~15)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12)
여기서 '폭행을 당하고 있다'로 번역된 '비아제타이'(biazetai)는 '강제로 들어가다'(루카16,16),'폭력을 쓰다'(apply force)등의 뜻을 가진 동사 '비아죠'(biazo)의 현재 중간태 내지는 수동태이다.
또한 '폭력을 쓰는 자들'로 번역된 '비아스타이'(biastai)도 같은'비아죠'(biazo)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이것을 성서학계에서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한다.
첫째로, 긍정적인 의미로 '용기있는 자' 혹은 '몹시 단호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임박해 오는 천국을 향하여 돌진하는 강력한 제자도'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생업과 가족까지도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는 사람들에 의해 하늘 나라가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구약과 신약의 교량 역할을 하며, 오시는 구원자 예수님을 주님으로 맞이하도록 마음 준비를 시킨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인 세례자 요한 시절부터 천국에 서로 들어가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과 희생을 기울이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율법과 예언자의 시대는 요한까지다. 그 뒤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 이 나라에 들어가려고 힘을 쓴다.'(루카16,16)
둘째로, '비아스타이'(biastai)는 한번도 그리스도교 안의 문서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 적이 없기에 부정적인 의미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다.
그래서 그것은 'men of violence'(the violent)라는 뜻으로 바리사이인들, 악한 영들과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 세례자 요한을 죽였던 헤로데 안티파스, 그리고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께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 즉 적대자들에 의해 하느님 나라를 추구했던 사람들이 고난을 받아 왔다는 사실을 이야기 한다.
'세례자 요한때부터'라는 말 속에는 세례자 요한이 감옥에 갇힌 사실을 전제하고 있는데, 하느님 나라는 그 도래함이 선포되는 그 순간부터 벌써 강력한 반발에 휩싸였고, 고난을 동반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두 가지 견해가 지금까지 함께 내려 온다.
어쨌든 우리는 천국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 하느님도 천국도 믿지 않는 세속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영생의 복음적 가치관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이 땅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천국과 하느님의 옥좌를 바라보며 그분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해야만 한다.
또한 동시에 주님의 진리와 정의, 생명과 사랑의 가치관을 추구하다 보면 세속의 가치관과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들과의 충돌이 불가피하여 그들로부터 오해와 박해, 고난을 필연적으로 당하게 됨으로, 그 고난을 주님과 주님의 섭리안에서 고찰하고 해석하며 그것을 기꺼이 받을 각오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이제 교회안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룩함과 절대적 생명을 가진 하느님의 말씀과 정통 교리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하느님 중심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의 마찰이 그것이다.
즉 세속화된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로서 영이신 하느님께서는 눈에 안보이니 눈에 보이는 사람을 섬겨야 하고, 사람안에 있는 하느님을 섬겨야 한다고 강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언젠가 없어질 이 땅에 자신의 힘으로 하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며, 겉으로는 하느님 이름을 거론하고 애덕실천, 사랑타령을 하지만, 그속엔 진정한 하느님 사랑과 흠숭의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절대적 생명의 말씀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이 하느님이 되어 교회를 다스리는 인본주의 사상을 지닌 자들이다.
바로 이들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권세를 가진 자들인데, 이들은 교회안에서 이미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을 갖고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사상을 가지며 전통적인 전례와 거룩한 신심을 추구하는 교인들을 퀘퀘묵은 정신을 가진, 시대에 뒤떨어진 자들로 치부하며, 그들을 교회안에서 의도적으로 몰아내고, 고난과 박해를 서서히 행사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조금도 걱정할 것도 두려워 할 것도 없다. 그들은 사람이며, 그들안에 역사하는 악한 영들도 하느님의 손안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시기(묵시1,8) 때문이다.
2025년 12월 11일 목요일
[대림 제2주간 목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오늘 독서인 이사야서에서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방식이 두드러집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41,14)
벌레와 구더기라는 표현 자체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라는 말씀에서 그 표현들이 애틋한 사랑에서 나왔음을 알아차리게 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할머니나 엄마가 아기에게 볼을 비비면서 “아이구, 내 강아지! 내 새끼! 요 못난이!”라고 하듯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아기에게 말할 때 스스로 아기가 되어 아기처럼 말하고 아기의 몸짓을 합니다.
그들은 사랑으로 다가가면서 아기가 되는 것이라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벌레 같은 야곱, 너는 작은 벌레 같은 존재, 아주 조그만 존재이지만. 나는 너를 많이 사랑한단다.’
이것이 우리 가운데 하나가 되시고자 내려오시는 하느님의 겸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말하는 “구원자”(41,14)는 히브리 말로는 ‘고엘’입니다.
고엘은 살해당한 친족을 위하여 대신 복수하는 자(민수 35,19 참조), 과부의 보호자를(룻기 2,20 참조) 뜻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위하여 몸소 이 몫을 맡으시면서 다가오십니다.
이 대림 시기에 우리도 하느님의 방식대로, 자신을 낮추는 겸양과 다정함과 사랑으로 형제들에게 다가갑시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대림 제2주간 목요일]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
(마태11,11-15)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 곧 땅의 육적 사람들 중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제일 큰 인물이지만~그 육적 자아, 그 옛사람을 벗고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하늘의 존재로 거듭난 그 하늘의 백성 중에서는 가장 작은 사람이라 하신다.
(요한3,3)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12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 하늘나라는~ 이 나무 하나의 희생, 그 구원의 계명 곧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 그 진리의 계명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시어 하늘나라를 완성하시려는 하느님의 나라인데~
(시편119,151) 151 주님, 당신께서는 가까이 계시며 당신의 계명은 모두 진리입니다.
= 그 하느님의; 뜻을 뱀의 유혹으로 먹은 거짓 가르침으로 왜곡해 인간의 계명으로 받아 인간 스스로 의 의로움으로 구원에 이르려 하며, 또한 그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욕만, 그 자신의 뜻을 위해 쓰는 이들,
(1티모6,5) 5 끊임없는 알력이 나와, 정신이 썩고 진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사이에 번져 갑니다. 그들은 신심을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 그들은 신심(종교, 거룩)을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자들로 그들의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하느님의 뜻을 빼앗고 폭행하는 자들인 것이다.
하늘나라는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의 의로움을 받아 입고, 그분의 신부가 되어 들어가는 곳이다.
(묵시19,8) 8 그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는 특권을 받았다.” 고운 아마포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입니다.
= 예수님의 수의(壽衣), 곧 내 죄를 대속 하시고 입으신 그 아마포 옷을 구원의 진리의 옷으로 입는 것이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 행실이다.
13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
= 구약의 실체가 신약이라는 말씀이다. 율법이 진리로, 곧 십자가의 대속으로 완성된 것이다.
오늘 독서에서~
(이사41,14) 14 두려워하지 마라,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너의 구원자이다.
= 자격이 있어서 깨끗하고 거룩해서도 아니다. 벌레, 구더기 같은 그 더러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이시다. 물론 그 더러움을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 당신의 백성, 신부로 삼아 주시는 것이다. 그 하느님의 뜻을, 그 하늘나라의 복음을 요한이 한 것이고 또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14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
구약의 마지막 예언서
(말라3,24) 24 그가 부모(하느님)의 마음을 자녀(죄인들)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15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 하느님의 귀로, 뜻으로 들어라~~
(이사41,15) 15 보라, 내가 너(야곱)를 날카로운 타작기로, 날이 많은 새 타작기로 만들리니 너는 산들을 타작하여 잘게 바수고 언덕들을 지푸라기처럼 만들리라.
= 벌레, 구더기 같은 야곱(죄인-나) 우리를 당신의 말씀으로 다듬어서 당신의 도구로 쓰시겠다는 말씀이시다.
(히브4,12.) 12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 우리의 속셈을 부수시고, 치우셔서~ 당신의 뜻(말씀)을 담아 산, 언덕 같은 교만한 이들의 속셈을 드러내어 잘게 부수어 지푸라기처럼 만들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렇게 야곱과 그와 같은 죄인들을 다시 살리시겠다는 말씀이시다.
(이사41,16) 16ㄱ 네가 그것들을 까부르면(말씀으로 드러내면) 바람(성령)이 쓸어 가고 폭풍이 그것들을 흩날려 버리리라.
= 하느님의 훈련, 교육의 시간이다. 그 시간이 肉에게는 힘든 고난이지만 하늘의 새 생명을 주시려는 그 하느님의 뜻 안에서 기뻐하라 하신다.
16ㄴ그러나 너는 주님(야훼) 안에서 기뻐 뛰놀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 안에서 자랑스러워하리라. 17 가련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이 물을 찾지만 물이 없어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탄다. 나 주님이 그들에게 응답하고 나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리라.
= 자기 욕망, 그 속셈이 부서진, 부인한 그 마음이 가난해진 이들이 생명수, 생명의 말씀을 찾지만 주는 이들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손수 직접 주시겠다 하신다. 하늘에서 내리는 말씀(비, 물)이다.
18 나는 *벌거숭이산들 위에 강물이, *골짜기들 가운데에 샘물이 솟아나게 하리라. *광야를 못으로, 메마른 땅을 수원지로 만들리라. 19 나는 *광야에 향백나무와 아카시아, 도금양나무와 소나무를 갖다 놓고 사막에 방백나무와 사철가막살나무와 젓나무를 함께 심으리라.
= 벌거숭이, 곧 십자가의 의로움을 입지 않은 그곳에, 그리고 쓴물(마라-마리아)만 있는 광야, 그곳에 하느님께서 손수 찾아 오셔서 물을 주시고 나무를 심으신다. 곧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당신의 규정과 법규인 나무 하나의 대속, 그 진리의 말씀(물)으로 살리시겠다는 것이다.
20 이는 주님께서 그것을 *손수 이루시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 그것을 창조하셨음을 모든 이가 보아 알고 살펴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다.
=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는 오늘 말씀을 하느님의 귀로, 뜻으로 들어야 알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히브10,10)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에페2,8-9)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