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9일 금요일
[대림 제3주간 금요일] 그 이름 요한 (루카1,5-25)
제1독서<천사가 삼손의 탄생을 알리다.>(판관13,2-7.24-25)
2 초르아 출신으로 단 씨족에 속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마노아였다. 그의 아내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
3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그 여자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보라, 너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지만,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4 그러니 앞으로 조심하여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마라.
5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기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어서는 안 된다.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구원해 내기 시작할 것이다.”
6 그러자 그 여자가 남편에게 가서 말하였다. “하느님의 사람이 나에게 오셨는데, 그 모습이 하느님 천사의 모습 같아서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묻지도 못하였고, 그분도 당신 이름을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7 그런데 그분이 나에게, ‘보라, 너는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마라.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4 그 여자는 아들을 낳고 이름을 삼손이라 하였다. 아이는 자라나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
25 그가 초르아와 에스타올 사이에 자리 잡은 ‘단의 진영’에 있을 때, 주님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화답송>시편71,3-4ㄱㄷ.5-6ㄱㄴ.16-17(◎8) ◎ 저의 입은 당신을 찬양하고 당신 영광을 찬미하나이다.
○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할 산성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보루시옵니다. 저의 하느님, 악인의 손에서 저를 구원하소서. ◎
○ 주 하느님, 당신은 저의 희망, 어릴 적부터 당신만을 믿었나이다. 저는 태중에서부터 당신께 의지해 왔나이다. 어미 배 속에서부터 당신은 저의 보호자시옵니다. ◎
○ 저는 주 하느님의 위업에 둘러싸여, 오로지 당신 의로움만을 기리오리다. 하느님, 당신은 저를 어릴 때부터 가르치셨고, 저는 이제껏 당신의 기적을 전하여 왔나이다. ◎
복음<가브리엘 천사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알리다.>(루카1,5-25)
5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에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로서 즈카르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으로서 이름은 엘리사벳이었다.
6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7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낳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다.
8 즈카르야가 자기 조 차례가 되어 하느님 앞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할 때의 일이다.
9 사제직의 관례에 따라 제비를 뽑았는데, 그가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기로 결정되었다.
10 그가 분향하는 동안에 밖에서는 온 백성의 무리가 기도하고 있었다.
11 그때에 주님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분향 제단 오른쪽에 섰다.
12 즈카르야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13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15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않고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다.
16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17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18 즈카르야가 천사에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하고 말하자,
19 천사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20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 하게 될 것이다.”
21 한편 즈카르야를 기다리던 백성은 그가 성소 안에서 너무 지체하므로 이상하게 여겼다.
22 그런데 그가 밖으로 나와서 말도 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그가 성소 안에서 어떤 환시를 보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몸짓만 할 뿐 줄곧 벙어리로 지냈다.
23 그러다가 봉직 기간이 차자 집으로 돌아갔다. 24 그 뒤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였다. 엘리사벳은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25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대림 제3주간 금요일 제1독서(판관13,2~7.24~25)
"그리고 아기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어서는 안된다.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구원해 내기 시작할 것이다." (5)
'머리에 면도칼을 대어서는 안된다'
'면도칼'로 번역된 '우모라'(umorah)는 접속사 '와우'(wau)와 '면도칼'이라는 뜻을 가진 명사 '모라'(morah)가 결합된 것이다. '대어서는'으로 번역된 '야알레'(yaalleh)는 '올라가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얄라'(alla)의 미완료형이다.
직역하면, '그리고 면도칼이 (그의 머리 위에)올라가게 하지 말라'이다.
히브리어 문법에서 금지 명령은 동사의 미완료형에 부정어 '로'(lo)나 '알'(al)을 사용하여 표현하는데, '로'(lo)를 사용하면 '절대적이고 영원한 금지'를 나타내는 반면에 '알'(al)을 사용하면 '일시적인 금지'를 나타낸다.
본문에서는 미완료형에 '계속적인 금지'를 나타내는 부정어 '로'(lo)를 사용하여 표현하였으므로 머리에 면도칼이 올라가는 것, 곧 머리카락 자르는 것을 그의 평생동안 계속적으로 금지하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삼손은 필리스티아 제후들의 금전 공세에 넘어간 들릴라에게 자신의 비밀을 누설함으로써 머리털을 밀리우게 되고(판관16,17-19), 결국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되고 만다.
'모태에서부터'
'모태'로 번역된 '합바텐'(habbaten)은 정관사 '하'(ha)와 '자궁','배'라는 뜻을 가진 '뻬텐'(beten)이 결합된 형태이다. 그리고 '~에서부터'로 번역된 '민'(min)은 '~으로부터'(from)이라는 출발 지점을 나타내는 전치사이다.
따라서 본문은 '그 태로부터'라는 의미이다.
새 성경은 출산 순간의 뉘앙스를 주지만, 원문 성경의 표현은 여인의 자궁에서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삼손은 자궁 안에서의 수정 순간부터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되는 것이며, 따라서 마노아의 아내는 삼손을 임신하는 순간부터 나지르인 자녀를 잉태한 어머니로서 그녀 자신의 몸을 구별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구약에서 '뻬텐'(beten)은 인간의 생명이 생성되는 시초를 가리키는데, 하느님께서는 자궁에서 생명이 잉태하는 순간부터 그 생명을 보호하시고 감독하는 분이심을(시편71,6; 이사49,1) 묘사하는 데 사용된 단어이다.
그런 맥락에서 본문은 탄생 이전에 생명이 생성되는 장소에서부터 하느님께서는 그 아이를 나지르인으로 인정하셨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생명이 전적으로 하느님께로 말미암아 시작되었으며 또한 태어난 이후의 나지르인으로서의 삶도 온전히 하느님께 달려 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마노아의 아내는 생명을 잉태한 그 순간부터 주님의 사자가 명하는 모든 규정들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율법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 중에 어떤 사람이 일정 기간 동안 나지르인으로 서원하면 서원한 봉헌 기간 내내 머리를 깎을 수 없었다(민수6,5). 다시금 일반인의 신분으로 돌아갔을 때 머리를 깎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삼손이나 사무엘처럼(1사무1,11) 출생이전부터 나지르인으로 구별된 자는
일평생 동안 머리털을 밀 수 없었다. 왜냐하면 죽을 때까지 '영원한 나지르인'으로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이 될 것이다'로 번역된 '키'(ki)는 앞 문장에 대한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로서 '왜냐하면 ~이기 때문이다' 라는 의미이다.
태어날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서는 안될 이유는 바로 그 아이가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기 때문이다.
한편 '나지르인'으로 번역된 '네지르'(nezir)는 '구별하다','바치다', '거룩하게 하다' 라는 뜻을 가진 동사 '나자르'(nazar)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성별된 사람'을 가리킨다.
이러한 원어의 의미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나지르인'은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하기로 특별한 서원을 한 사람이다.
따라서 특별히 하느님께 봉헌한 나지르인에게는 그 삶 가운데 보통 사람과는 구별된 그 무엇이 요구되었고, 나지르인에게 주어진 이러한 규정은 율법에 자세히 나타나고 있다(민수6,1-21).
이러한 나지르인의 규정은 구원사적 관점에서 볼 때 하느님 대전에 이방인과 구별되는 계약 백성의 규정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로마12,1.2).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하느님 아버지 대전에 온전한 봉헌으로 섬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기능도 가진다.
한편 나지르인은 유기(有期)와 종신(終身) 두 종류가 있다.
실제적으로 구약에 기록된 종신 나지르인은 삼손과 사무엘 뿐이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종신 나지르인이 된 자들이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삼손의 경우는 하느님께서 친히 나지르인으로 바칠 것을 지시하였던 반면(판관13,5.7), 사무엘의 경우는 부모가 자식을 나지르인으로 바치겠다고 서원하였다는(1사무1,11)점에서 차이점을 지닌다.
또한 이 둘 중에서 사무엘은 평생을 나지르인으로 살아 세상과 구별되어 하느님께 충성으로 헌신했지만, 삼손은 정결치 못한 세속적인 삶을 살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하느님께 생명까지 봉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기 시작할 것이다'
'구원해 내기' 라고 번역한 '레호쉬아'(lehoshia)는 '~를 하여', '~하는 것을' 이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 '레'(le)와 '구원받다', '구출되다' 라는 뜻을 가진 동사 '야샤'(yascha)의 사역형 부정사 연계형 '호쉬야'(hoschia)가 결합된 형태로서 '구원하는 것을'이라는 의미이다.
동사 '야샤'(yascha)는 구약의 군사적, 정치적인 측면에서부터 시작하여 궁극적으로 신약의 영적인 측면에 이르기까지 구세사의 맥을 형성하는 의미를 가진 대단히 중요한 단어이다.
구약에서의 고통은 주로 군사적, 정치적, 개인적인 적대자와 자연적인 재해들로부터 왔다.
그런데 이러한 고통 가운데서 구원받는다(야샤)는 것은 고통받는 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 이외의 다른 외부의 힘의 도움을 받아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모든 고통의 현장으로부터 인간을 온전히 구원해 주시는 이는 궁극적으로 주님 한 분 뿐이시다.
이와 같은 구약의 이스라엘을 향한 외적이며 육체적인 구원이 신약에서는 영적인 구원의 개념으로 발전 확대되는데, 주로 죄의 용서 및 사탄의 권세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로마8,1-2; 에페2,4-5).
본문이 '구원해 내기 시작할 것이다' 라고 표현하는 것은 삼손의 탄생 자체가 필리스티아로부터 완전한 구원을 가져와 주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시작과 단초가 될 것임을 의미한다.
즉 이스라엘이 필리스티아의 압제로부터 완전히 구원받는 것은 삼손에 의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삼손 이후에도 필리스티아인은 여전히 아스라엘을 괴롭혀왔으며, 사울과 다윗 왕이 그들의 세력을 몰아내는 데 큰 기여를 했지만(1사무14,1~46; 2사무5,25; 8,1) 그들이 앗시리아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기 전까지는 필리스티아의 세력이 이스라엘로부터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었다.
[대림 제3주간 금요일] (김재덕 베드로 신부)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 하게 될 것이다”(루카 1,20).
하느님께서는 믿지 못하는 즈카르야를 ‘침묵’ 안에 머물게 하십니다.
침묵 속에서 그는 하느님의 신비를 깨닫게 되고, 세례자 요한의 할례식 때, “그의 이름은 요한”(1,63)이라고 글 쓰는 판에 아기의 이름을 적으며 하느님을 찬미하게 됩니다.
즈카르야가 벙어리가 되었기 때문에, 엘리사벳은 나이 많은 자신이 어떻게 임신하게 되었는지 알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엘리사벳이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히 하느님의 시선 안에 머물게 하십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은 이 모든 일이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신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1,24-25 참조).
‘경건한 침묵’과 ‘온전히 하느님의 시선 안에 머무름’은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는 방법이며, 하느님과 대화하는 방법입니다.
믿음은 침묵과 하느님의 시선 안에 온전히 머무르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자라납니다.
생각 없이 떠들어 대는 수다, 소란스러움, 요란함, 남들의 시선을 의식함 등 이런 방법으로 믿음은 성장할 수 없습니다.
성체 앞에 있는 시간은 우리를 ‘경건한 침묵’과 ‘하느님의 시선’ 안에 온전히 머물도록 초대합니다.
예수님 성탄을 준비하며 성체 앞에 머무는 시간을 자주 가지면 좋겠습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 하게 될 것이다.” 아멘.
(김재덕 베드로 신부)
대림 제3주간 금요일 복음(루카1,5-25)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20) 그는 사람들에게 몸짓만 할 뿐 줄곧 벙어리로 지냈다." (22)
루카 복음 1장 20절의 '너는 ~되어'로 번역된 '에세'(ese; yo shall be)는 '~이다', '되다'라는 뜻의 '에이미'(eimi) 동사의 미래형으로서 '네가 될 것이다' 라는 뜻이며, 단순 미래가 아니라 말하는 이의 의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벙어리가'로 번역된 '시오폰'(siopon; dumb)은 '말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다'라는 뜻의 '시오파오'(siopao)의 분사형으로서 말하지 못하는 상태가 한동안 지속될 것을 의미한다.
한편 즈카르야가 말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은 본절에 부연 설명된 것처럼, 천사의 기쁜 소식에 대한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벌이기도 했고, 주어진 계시를 적당한 때까지 다른 사람들로부터 감추는 방법이기도 했다(다니8,26; 2,4.9; 묵시10,4).
또한 앞으로 이루어질 일에 대한 확실성을 보증하는 징표이기도 했다 (창세15,9~21; 판관6,36~40; 2열왕20,8~11).
즈카르야는 가브리엘 천사의 예언(루카1,20)이 끝나기가 무섭게 말문이 닫혀 일시적인 벙어리가 되었다.
그래서 아들이 태어날 때까지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사람들에게 몸짓만 할 뿐'으로 번역된 '엔 디아뉴온'(en dianeuon; kept making signs; beckoned)은 미완료 과거 동사와 현재 부사가 나란히 쓰인 형태로서 '고개를 끄덕이며 표시하고 있었다' 또는 '몸의 일부를 가지고 표시를 나타내고 있다'라는 뜻으로 그런 상태가 지속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러한 행동은 예식의 마지막 순서로서 사제가 선포해야 할 축복을 하지 못하는 즈카르야가 백성들에게 벙어리가 된 자초지종을 여러 몸짓으로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한편 '벙어리'로 번역된 '코포스'(kophos; speechless; unable to speak)는 '귀머거리'라는 뜻도 가진다(루카7,22).
루카 복음 1장 62절을 참조해 볼 때 즈카르야는 벙어리인 동시에 귀머거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25년 12월 19일 금요일
[대림 제3주간 금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아이를 못낳는 여자에게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생명의 선물을 알리시는 이야기가 오늘 독서와 복음의 공통 내용입니다.
삼손의 잉태 소식은 어머니에게, 요한의 잉태 소식은 아버지에게 전해집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자들에게서 생명이 나옵니다. 주님께서 이들의 삶에 개입하시어 사막에서 꽃을 피워 내십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 자연의 원리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이루어지게 합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루카 1,18).
자기의 인간적 한계를 말하는 즈카르야의 이러한 반응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을 하실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한계에서 일을 시작하시는 분이심을 더 명확히 드러내 줍니다.
교회 역사에서 인간이 노력하는 것만으로 구원을 얻어 낼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신앙은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시고 성덕을 이루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 은총에 응답하여 삶 안에서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여 일상생활에서 가꾸며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청해야겠지요.
‘주님, 저는 할 수 없지만 당신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사막이지만 당신께서는 거기서 꽃을 피우실 수 있습니다. 제 안에 당신 생명을 키워 주십시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2025년 12월 19일 [대림 제3주간 금요일]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
(루카1,5-25)
5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에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로서 즈카르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으로서 이름은 엘리사벳이었다. 6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7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낳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다.
= 구약(율법)의 계명과 규정에 따른 의로움은 구원의 진리, 아들을 못 낳는다는 것, 곧 구약 만으로는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구원의 의로움, 그 진리가 감추어져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심판할 때,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인이 필요하다 하신 것이다.
구약의 율법, 신약의 진리, 그것을 하나로 줄 성령의 뜻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하느님의 뜻을 깨달을(낳을) 수도, 믿는 행실을 할 수도 있다. 오늘 독서, 구약의 마노아 아내 역시 아들을 못 낳는 여인으로 나오는 것이다.
8 즈카르야가 자기 조 차례가 되어 하느님 앞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할 때의 일이다. 9 사제직의 관례에 따라 제비를 뽑았는데, 그가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기로 결정되었다.
= 제비를- 사람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맡긴다는 의미이다.
10 그가 분향하는 동안에 밖에서는 온 백성의 무리가 기도하고 있었다. 11 그때에 주님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분향 제단 오른쪽에 섰다.
= 오른쪽- 오른나라, 하늘나라의 일을 알리러 왔다는 의미다.
12 즈카르야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13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15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않고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다. 16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17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18 즈카르야가 천사에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하고 말하자,
= 하느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는데 “네 감사합니다”가 아닌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응답도 사람의 기준으로 이해하려는 것이다. 우리들도 기도 응답을 내 뜻 기준으로 생각해, 매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두고 맹세하시며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통한 하늘 생명, 그 복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성경 전체는 그 말씀, 약속 뿐이다. 그 말씀을 약속으로 매일 독서와 복음으로 응답을 주시는 것이다.
(마태6,9-11) 9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나, 우리)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 하늘의 생명의 양식을 매일 주신다. 오늘 본 기도의 ‘저희가 언제나 이 강생의 놀라운 신비를 온전한 믿음과 경건한 마음으로 거행하게 하소서.‘를 말씀을 진리의 양식으로 먹는, 그래서 깨달음을 낳는 그 실행이 아닌 종교 행위로, 전례 행위로 거행하는 그것만으로 만족한다면 그는 끝까지 응답 받았음을 알지 못하게 된다(이사1,12-15참조) ‘하느님의 뜻을 구하라’ 하셨지 않은가. 예수님의 이름(뜻)으로 기도하라 하셨다.
(요한16,24) 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 모든 신앙인들이 예수님의 뜻이 아닌 자신들의 뜻을 위한 기도만 했기에 하시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그릇되다’ 하신(요한16,8~) 그 세상의 의로움과 죄, 그 심판을 기준으로 하는 땅의 신앙을 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것을 깨닫고 하늘에 들어갈 하늘의 백성인 것이다.
(마태6,33)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하늘의 의로움을 받는 것, 그것이 복(바라크-하느님의 생명력)이다. 구약에 즈가리야가 그랬듯이 모든 믿는 이들이 자신의 뜻을 위한 메시아를 기다렸다기에 신약의 시작인 마태오복음 첫장(1,21)에서 예수님(구원자)은 ‘우리를 죄에서 구하실 분’이라고 못 박고 시작한다.
그런데 왜? 내 뜻을 들어주는 예수님으로 사탄이 주겠다고 약속한 그 세상의 것을 위한 메시아로 듣고 말하는 것인지(루가4,6~), 그래서 구원의 길을 잃어버린 그 하늘 아버지께 가는 길을 잃어버린 고아로~ 구원의 확신도 없는, 갖지 못한 불안한 신앙을 살게 하는지~
(탈출20,3) 3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 창조주 하느님의 뜻이 아닌, 피조물인 인간의 뜻을 위한 神으로, 그 다른 신으로 섬기지 말라고 하시는 십계명의 첫 계명이다. 그 첫계명을 어기는 것이 나머지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죽이는 살인이며 하느님의 말씀을 도둑질 하는 탐욕이며 인간의 뜻을 사는 간음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지금도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 간다고 하는 것이다.(필리3,18)
19 천사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 가브리엘 천사는 메시아의 소식을 전하는 천사로, 다니엘서 8장의 메시아 예언 때, 그리고 예수님의 잉태를 알릴 때, 나온다.
20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믿지 못하는 것, 그래서 하늘의 진리를 말 못하는 그 벙어리라는 의미이다.
21 한편 즈카르야를 기다리던 백성은 그가 성소 안에서 너무 지체하므로 이상하게 여겼다. 22 그런데 그가 밖으로 나와서 말도 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그가 성소 안에서 어떤 환시를 보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몸짓만 할 뿐 줄곧 벙어리로 지냈다. 23 그러다가 봉직 기간이 차자 집으로 돌아갔다. 24 그 뒤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였다. 엘리사벳은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25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 왜 다섯달 동안 숨어 지냈을까 늦은 나이라서? 그럼 다섯달 동안만 부끄러운 것인가. 다섯달은 구약의 모세오경을 뜻한다. 앞에서 묵상 했듯이 구약에는 구원을 위한 하늘의 진리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1장36절에서도 ‘그가 임신한지 여섯달이 되었다’고 굳이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육(6)은 칠(7, 안식), 그 하나가 모자람을 뜻한다. 그 하늘의 진리가 비워져 인식(쉼)의 신앙을 살지 못하는 그 처녀, 빈 그릇들의 대표로 마리아(성모님)의 육의 때(여섯째달)에 하느님의 말씀, 곧 안식의 말씀(예수)을 보내신 것이다.
(루가1,26-27) 26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 말씀을 잉태하여 구원의 말씀(예수)을 낳아, 깨달아 하늘의 안식(7)을 누리는 그 신앙을 살라고~사람이 사람의 것으로 하나 되는 것,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동성끼리의 同性愛인 것이다.
창조 주의 피조물이 하나 되는 것이 정상인 혼인, 하늘의 혼인 것이다. 세상 가치의 나를 버리고(부인하고) 오늘도 찾아오신 그 주님의 청혼(말씀)을 받아들여 하늘의 안식(7)을 사는 진리가 되어야 한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마태15,14) 14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은총이시며 보호자이신 천주의 성령님! 사랑하는 모든이를 의탁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