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3주간 화요일] 세리와 창녀들의 믿음 (마태21,28-32)

2025. 12. 14. 오후 7:5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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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6일 화요일

[대림 제3주간 화요일] 세리와 창녀들의 믿음 (마태21,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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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구세주의 구원이 가난한 모든 사람에게 약속된다.>(스바3,1-2.9-13)

주님께서 1 “불행하여라, 반항하는 도성, 더럽혀진 도성, 억압을 일삼는 도성!

2 말을 듣지 않고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하느님께 가까이 가지 않는구나.

9 그때에 나는 민족들의 입술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리라. 그들이 모두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주님을 섬기게 하리라.

10 에티오피아 강 너머에서 나의 숭배자들, 흩어진 이들이 선물을 가지고 나에게 오리라.

11 그날에는 네가 나를 거역하며 저지른 그 모든 행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때에는 내가 네 가운데에서 거만스레 흥겨워하는 자들을 치워 버리리라. 그러면 네가 나의 거룩한 산에서 다시는 교만을 부리지 않으리라.

12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

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 입에서는 사기 치는 혀를 보지 못하리라. 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

 

<화답송>시편34,2-3.6-7.17-18.1923(7)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어 주셨네.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주님의 얼굴은 악행을 일삼는 자들에게 맞서, 그들의 기억을 세상에서 지우려 하시네. 의인들이 울부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시고, 영혼이 짓밟힌 이를 구원해 주신다. 주님이 당신 종들의 목숨 건져 주시니, 그분께 피신하는 이 모두 죗값을 벗으리라.

 

복음<요한이 왔을 때, 죄인들은 그를 믿었다.>(마태21,28-32)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28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29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30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31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대림 제3주간 화요일 제1독서(스바3,1~2.9~13)

 

"불행하여라. 반항하는 도성, 더럽혀진 도성, 억압을 일삼는 도성! 말을 듣지 않고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하느님께 가지 않는구나." (1~2)

 

스바니야서는 히브리어 성경의 열두 소예언서에서 아홉 번째에 위치한다.

'주님께서 보호하셨다'는 이름 뜻을 지닌 '스바니야'의 생애에 대해서는 머리글에 나오는 족보 말고는 알려진 바 없다.

 

그리고 머리글은 스바니야서의 작중 연대를 요시아 임금의 통치시절(B.C.640~609년)로 제시한다.

 

한 세기 이상 고대 근동 전체를 호령하던 아시리아 대제국이 서서히 몰락해 가는 것을 보면서, 유다 임금 요시아는 가나안의 바알 숭배와 아시리아의 천체 숭배를 근절하는 종교 개혁을 단행한다(2열왕23,4~14).

 

이런 상황에서 스바니야 예언자는 주님의 권능이 온전히 드러나게 될 '주님의 날'을 선포한다.

 

스바니야서는 니네베의 파괴를 주님께서 하늘과 땅의 임금이심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계시한다.

 

오늘 독서는 스바니야서의 셋째부분(3장)의 내용이다.

 

'불행하여라. 반항하는 도성, 더럽혀진 도성, 억압을 일삼는 도성! 말을 듣지 않고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하느님께 가지 않는구나.' (1~2)

 

먼저 예루살렘 주민을 대표하는 지도자, 통치자, 예언자, 사제들의 잘못을 고발함으로써 그곳을 단죄한다(1~4).

 

대신과 판관들은 백성을 착취하고, 예언자들은 거짓 예언으로 사람들을 속이며 사제들은 혼합주의로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짓밟는다.

 

그분은 당신의 도읍인 예루살렘만은 당신을 경외하고 당신의 가르침을 받들리라고 기대하였으나, 그들은 그분의 기대를 저버리고 빗나갔다(7).

 그래서 그분은 뭇 민족과 더불어 당신의 백성도 없애 버리기로 작정하셨다(8~9).

 

그러나 주님의 뜻을 받드는 적은 수의 겸손한 이들을 살아남게 하심으로써, 그들에게서 당신의 백성을 새롭게 일으키리라고 하신다.

 이들이 바로 '남은 자들'이다.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 입에는 사기 치는 혀를 보지 못하리라. 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12~13)

 

스바니야서의 첫째 주제가 '주님의 날'(1,4; 2,3)이며, 둘째 주제가 '남은 자들'사상이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단죄하시고 징벌하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그들을 다시 구원하신다.

 

그분은 당신 백성 한가운데에 가난한 이들 한 무리를 남겨 당신 이름에 피신 할수 있게 하신다.

 

이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 구원을 위한 희망의 불씨이다.

그들은 불의와 거짓을 저지르지 않고, 사기를 치지않는 의로운 이들이다.

 

이들 때문에 공동체 전체는 주님을 거역하며 저지른 그 모든 반역을 부끄러워 하지 않게 될 것이다(11).

 

이 시대에는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말할 수 없는 죄악이 만연하고 창궐하고 있다.

하느님의 징계와 정화가 필연적으로 올 것 같다.

 

우리도 주님의 이름에 피신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되어 하느님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으로 끝까지 남게 되기를 바란다.

 

 


 [대림 제3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어제 복음에서 벌어진 예수님과 반대자들 사이의 논쟁은 오늘 복음에서도 이어집니다.

특별히 마태오 복음 21장 25절에서 언급된 세례자 요한의 권한에 대한 쟁점이 31ㄴ-32절에서 반대자들을 꾸짖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어제와 오늘 복음을 나누어서 읽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세례자 요한을 거부하였는데, 그를 거부하는 것은 예수님과 그를 파견하신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도록 하느님에게서 파견된 예언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대자들과 하신 논쟁에서 비유 하나를 소개하십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두 아들은 대조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한 부류는 특권적 지위에서 그에 따르는 권리를 누리는 사람들이고, 다른 부류는 그런 지위와 권리를 누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1세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사회적으로 멸시받던 소외 집단 가운데 대표적으로 세리와 창녀가 후자에 속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창녀를 전자에 속하는 종교 지도자들과 대조하면서 그들이 본받아야 할 본보기로 소개합니다.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거부한 종교 지도자들과는 달리, 세리와 창녀는 세례자 요한의 가르침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속에 등장하는 두 아들은 신앙의 여정을 걷고 있는 우리 각자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우리는 ‘맏아들’에게서 신앙의 모범을 찾아야 합니다.

그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였기 때문입니다.

회개와 믿음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방법입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대림 제3주간 화요일]

 

생각을 바꾸는 것이 生命救援의 길이다.

 

복음(마태21,28-32)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28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맏아들에게 가서 얘야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 하느님의 뜻인 구원의 길을 깨닫는 일을 하라는 말씀이다.

 

29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 세리와 창녀, 罪人들을 비유한 말씀이다.

 

30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그는 가겠습니다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 의롭다는 司祭와 元老들이다.

 

31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진리진짜)로 너희에게 말한다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 사제(司祭)와 원로(元老)들은 자신들의 지혜(知慧)로 율법(제사와 윤리)을 열심히 지킨 그 자신들의 의로움을 진리로 고집했기에, 구원(救援)의 길(진리)의 의로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총(恩寵)으로 온다고 전(傳)한 세례자 요한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요한1,17참조)

세리와 창녀들, 그 죄인(罪人)들은 말씀을 듣고 꼭 붙들고 믿었다. 그것이 ‘포도밭의 일’인 것이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은 세리와 창녀들은 요한이 전한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 곧 포도밭에 관한 복음(福音)을 곰곰이 되새기는 기도(祈禱), 묵상(黙想), 그 일로 깨닫고 믿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죄인의 삯인 죽음으로 지옥에 가야할 존재임을 잘 알았기에 자들의 죄를 없애실(대속하실) 예수님을 꼭 붙잡은 것이다. 한 몸(하나)이 되어야 살 수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기도와 묵상으로 깨달아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의 가지로 붙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말씀을 믿는 것이다. 그것이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다.

 

(요한15,1.4-5)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4 내 안에 머물러라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 예수님 안에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씀이다. 곧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 그 예수님의 사랑, 의(義), 그분의 용서(容恕)를 나누는 것이 참이라는 것이다.

 

(요한15,6)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 성경(聖經)말씀을 인간의 뜻(지혜)으로 보고 들어 자신의 의로움을 위해 살았던 신앙(信仰)을 잘라버리고 하느님의 뜻(지혜)이신 하늘의 대속, 그 십자나무의 그리스도의 지체가되어 그분의 의로움을 전가(傳家)받아 받는 구원(열매)이다.

 

(로마3,24-25)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 이것이 그리스도교 신앙(信仰)이다. 사제와 원로들, 율법자들은 자신들의 권세, 권한을 잘라버리지 못한다. 자신들의 생각이, 길이, 그릇된 것임을 알고도 바꾸지 못한다.

 

그래서~~

(마태23,13) 13 불행하여라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요한10,1.7)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나는 양들의 문이다.

= 하늘의 문(門), 구원의 문은 예수 그리스도, 율법(律法)은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게 하는 도적(盜賊)이며 강도(强盜)다. 율법은 죄를 알게 할 뿐, 하늘의 용서(구원)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로마3,19-20 야고2,8-10 참조)

예수님을 믿겠다고(따르겠다고) “예”하고 세례(洗禮)를 받고서는 자신을 버리지 못해 그분의 지체가 되지 않는 신앙인(信仰人)들이 너무 많다.

오늘 말씀은 다른 이들이 아닌 자기를 부인(否認)하지 못한 자아(自我)숭배(崇拜)를 하고있는 나 자신을 들여다 보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사실은 자신을 버림을(부인하는) 우리는 할 수 없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버리게(부인하게) 부수신다.(어제 확인했듯) 살리시려는 은총(恩寵)의 시련(試鍊)이다. 그리스도의 가지(지체)로 하늘의 새 생명을 주시려는 하느님의 자비(慈悲)다.

 

(1베드1,6-7) 6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 하느님은 맏아들(첫아들)만 받으신다. 곧 흠도 티도 없는 깨끗한 맏물만 받으심이다.(탈출13,2 참조) 그래서 예수님께서 맏아들, 첫아들로 오셨고(루가2,7) 우리 죄인들은 그 첫아들 예수님의 지체(肢體)로 맏물이 되어 그 첫아들 예수와 함께 첫아들로 들려 올려지는 것이다.

곧 죄를 대속하시고 새 생명을 주시는 ‘십자나무(포도나무)에서 하나 됨’ 이다.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신 예수님을 자신의 구원자로 깨닫고 자비(慈悲)를 청했던 강도(强盜)처럼(루가23,42) 예수님의 지체로, 맏아들로, 구원(救援) 받은 첫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요한19,31-32) 31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 예수님을 자신의 죄(罪)를 대속(代贖)하신 구원자로 깨닫지 못해 군중(群衆)들과 함께 비양(飛揚)거리는 강도(强盜)를 성경(聖經)은 첫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말한다.

 

(1베드2,24) 24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 마음을 바꾸어 첫째 아들이 된 강도(强盜)의 고백(告白)이다.

 

(마태27,44) 44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마찬가지로 그분께 비아냥거렸다.

 

(루가23,39-43)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40 그러나 다른(생각을 바꾼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42 그러고 나서 예수님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아멘)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강도(죄인)인 나(우리)가 십자나무의 그리스도로 깨끗하고 의로운 맏물첫아들이 되었음을 깨닫고 믿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대림 제3주간 화요일 복음(마태21,28~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31ㄷ~32)

 

마태오 복음 21장 28~32절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인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하신 '두 아들의 비유'이다.

 

이 비유는 앞선 마태오 복음 21장 23~27절에서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폭로하는 의미를 가진다.

즉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지시에 순종할 것처럼 말하고는 실제로 순종하지 않는 불의한 아들을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비유하심으로써, 그들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계시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 21장 30절에 '가겠습니다. 아버지!'로 번역된 '에고, 퀴리에' (Ego, kyrie; I go, sir; I will, sir)에서 '에고'(ego)는 1인칭 대명사로서 아버지의 명령에 바로 자신이 순종하겠다는 자발적인 의지가 나타난다.

그러나 원문에는 '카이'(kai; 여기서는 but의 의미)라는 접속사를 사용해서, 자신이 가겠다고 했지만 행동으로는 가지 않은 상태를 대조하여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대조를 통해 불순종의 아들로 상징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적인 행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입으로는 하느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함을 강조했으나, 그들의 마음속에는 진정한 순종이 없는 자들이었으며, 심지어 하느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에 적극적으로 동참함으로써 불순종의 극치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마태오 복음 21장 29절에서 맏아들은 처음에는 싫다고 대답했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간 것으로 비유에 나온다.

여기서 '나중에'로 번역된 '휘스테론'(hysteron; afterwards; later)은 시간의 결과를 나타내는 부사로서, 아버지의 명령에 대한 일차적 불순종 뒤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되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생각을 바꾸어'로 번역된 '메타멜레테이스'(metameletheis; he repented; he changed his mind)는 '메타멜로마이' (metamelomai)의 부정 과거 분사로서 감정적인 후회나 뉘우침을 뜻한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의지의 변화까지를 의미하는 '메타노에오'(metanoeo)와는 구분되게 사용되는데, 단지 마음을 바꾸어 먹는 후회 정도를 나타낸다(마태27,3).

 

하지만, 여기서는 합당한 행동이 뒤따랐으므로 진정한 회개로 볼 수 있다.

자신의 욕심에 따라 살던 '세리들과 창녀들'('호이 텔로나이 카이 하이 포르나이'; hoi telonai kai hai pornai; the tax collectors and the prostitutes; the publicans and the harlots) 같은 사람도 뉘우침으로 순종의 길을 갔던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회개를 나타내는 데 주로 사용되는 '메타노에오'(metanoeo)보다 한 단계 정도 낮은 단어를 사용하여, 이러한 정도에도 미치지 못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뉘우침이 없는 굳은 마음을 더 효과적으로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여기서 '먼저 ~들어간다'로 번역된 '프로아구신'(proagusin; go before; are entering ahead of)는 '프로아고'('proago')의 현재형으로서, 진리를 나타내는 현재형으로 쓰였다.

'프로아고'(proago)는 비교를 나타내는 동사로서 '~보다 먼저 들어간다'는 뜻이기에 순서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주님께서 여기서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은 시간적 순서의 차이가 아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와 못들어갈 자이다.

마치 루카 복음 18장 9~14절의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에서처럼,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루카18,14)로 번역된 경우가 그것이다.

 

이것은 '이 세리가 저 바리사이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하는 비교급 표현인데, 문맥상 세리가 바리사이보다 더 의롭다는 표현이 아니라, 세리만의 의로움을 나타내는 강조적인 표현이다.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실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는 세리와 창녀들뿐임을 강조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비교급이 사용된 것이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여기서 '의로운 길'로 번역된 '호도 디카이오쉬네스'(hodo dikaiosynes; the way of righteousness)에서 '길'(道)로 번역된 '호도'(hodo)는 '호도스'(hodos)의 속격으로서, 비유적으로는 방법(수단)과 방편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의로움'에 이르는 방법, 즉 '의(義)로움'의 방향성을 세례자 요한이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義) 또는 '의로움'으로 번역된 '디카이오쉬네스'(dikaiosynes)는 '의무를 이행한 상태' 또는 '하느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조건'이라는 뜻이다.

세례자 요한이 죄 때문에 하느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존재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풂으로써 하느님 대전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의로움의 길을 선포했다.

 

이러한 세례자 요한의 회개의 세례를 세리와 창녀들은 믿고 받았지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그의 정체에 대하여 질문하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요한1,19~28).

 

 

20251216일 화요일

[대림 제3주간 화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은 예수님께 그리 호감을 느끼는 청중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비난하거나 그분께 시비를 걸기가 일쑤였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도 깨우쳐 주시고자 두 아들의 비유로 그들의 가면을 벗겨 주십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만이 전하는 이 이야기 속의 두 아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대하는 두 부류의 사람을 가리킵니다.

맏아들은, 처음에는 길을 잃었지만 세례자 요한의 선포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바꾸어”(21,29)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 곧 세리와 창녀들입니다.

둘째 아들은, 말로는 신앙을 과시하지만 실제로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생각을 바꾸지 않[]”(21,32)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입니다.

이 이야기는 요한 사도의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8).

물론 .”라고 말하고 실천도 하면 가장 좋겠지요. 그런데 늘 그러지는 못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는 일상에서 때때로 내적 갈등을 겪습니다.

기도할 때, 맡은 일을 할 때, 남을 위하여 양보하거나 희생해야 할 때 아니오.’.’ 사이에서 싸움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전환점은 생각을 바꾸어”(마태 21,29)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의 거절이 아니라 마지막 선택을 보십니다.

아니오.’에 끌릴 때 생각을 바꾸어 봅시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2025년 12월 16일 [대림 제3주간 화요일]

 

세리와 창녀의 믿음

 

복음(마태21,28-32)

자신들의 뜻이익을 고집하기 위해 세례곧 예수님의 권한에 대해 모른다 대답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28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맏아들에게 가서 얘야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29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30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그는 가겠습니다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31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ㄱ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선포(宣布)했다.(요한1,29) 곧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심으로 없애시고 죄인(罪人)인 우리가 그분 안에서 거저 의롭게 됨이다.(로마3,24 2코린5,21)

인간의 의(), 열심한 제사(祭祀), 종교(宗敎)행위 등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의롭게 될 수 없음이다.(이사64,5 에페2,9) 율법주의(律法主義), 인본주의(人本主義)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믿지 못한다.

 

32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는 의미는 주님께서는 모든 권한(權限)을 가지신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분의 가지임을 깨달아라.’ 하심이다.

 

(요한15,1-5)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내시고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미 깨끗해 졌음을 믿는 것, 열매(果實)다. 곧 예수님의 대속으로 거저 의롭게 되었음을 믿는 것이다.

내 안에 머물러라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나무라 착각(錯覺)했던 자신을 부인(否認)하고버리고나무이신 주님께로 들어가 그분의 가지로 붙는 것믿음의 열매다.

세리와 창녀처럼 자신의 죄인임을 아는 사람만이 그리스도라는 나무에 가지가 되기를그분과 하나 되기를 원()한다.

 

(에페1,22-23) 22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나도 너희 안에 머물겠다.“ ~아멘.

 

보호자로 탄식하시며 대신 기도해 주시는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하느님의 사랑그리스도의 사랑이저희 마음 안에서 타오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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