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5일 월요일
[대림 제3주간 월요일] 예수님의 권한 (마태21,23-27)
제1독서<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는다.>(민수24,2-7.15-17)
2 발라암은 눈을 들어 지파별로 자리 잡은 이스라엘을 보았다. 그때에 하느님의 영이 그에게 내렸다.
3 그리하여 그는 신탁을 선포하였다.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의 말이다.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며
4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의 말이다. 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된다.
5 야곱아, 너의 천막들이, 이스라엘아, 너의 거처가 어찌 그리 좋으냐!
6 골짜기처럼 뻗어 있고 강가의 동산 같구나. 주님께서 심으신 침향나무 같고 물가의 향백나무 같구나.
7 그의 물통에서는 물이 넘치고 그의 씨는 물을 흠뻑 먹으리라. 그들의 임금은 아각보다 뛰어나고 그들의 왕국은 위세를 떨치리라.”
15 그러고 나서 그는 신탁을 선포하였다.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의 말이다.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며
16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지식을 아는 이의 말이다. 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된다.
17 나는 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그는 모압의 관자놀이를, 셋의 모든 자손의 정수리를 부수리라.”
<화답송>시편25,4-5ㄱㄴ.6과 7ㄴㄷ.8-9(◎4ㄴ) ◎ 주님,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
○ 주님,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 저를 가르치시어 당신 진리로 이끄소서. 당신은 제 구원의 하느님이시옵니다. ◎
○ 주님, 예로부터 베풀어 오신 당신의 자비와 자애 기억하소서. 주님, 당신의 자애에 따라, 당신의 어지심으로 저를 기억하소서. ◎
○ 주님은 어질고 바르시니, 죄인들에게도 길을 가르치신다. 가련한 이 올바른 길 걷게 하시고, 가난한 이 당신 길 알게 하신다. ◎
복음<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마태21,23-27)
23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24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우리에게 말할 것이오.
26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 하자니 군중이 두렵소. 그들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27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대림 제3주간 월요일 제1독서(민수24,2-7 15-7)
"나는 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그는 모압의 관자놀이를, 셋의 모든 자손의 정수리를 부수리라." (17)
'나는 그를 바라본다'에서 '그'는 곧 야곱에게서 나온 한 별이며,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난 왕홀이다. 즉 임금 중의 임금이신 메시야를 발라암이 지금 보고, 또 자세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지금'으로 번역된 '앗타'(atha)는 '이제'(now)라는 뜻의 부사로 현재 시간을 의미하는 말이고, '가깝지는'에 해당하는 '카로브'(qarob; near)는 말 그대로 가까운 미래의 시간을 나타내는 말이다.
본문은 신, 구약에 나타난 '계시(예언)의 시간성'이란 주제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탁월한 표현이다.
구약의 모든 예언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통해 보여준 예언 뿐만 아니라 신약 시대의 예수님의 예언들에까지도 모두 적용되는 '성취의 시간성'이라는 측면을 잘 설명하고 있다.
예언이나 계시는 지금 당장 성취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또 당대의 역사 안에서 실현될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즉 그 성취의 시간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 뿐이다.
'별 하나'
별은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들에게는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구약에서 여기처럼 '별'에 해당하는 '코카브'(kokab; a star)가 단수로 쓰일 때에는 '임금'(왕)을 상징했음이 분명하다(이사14,12; 다니8,10).
더욱이 여기서는 뒤에 나오는 '왕홀'과 평행적인 대구를 이루기 때문에 여기서 '별'은 '임금'을 상징함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신약과 연결시켜 생각해 볼 때, 이 별은 단순한 한 나라의 임금이 아니라 온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만왕의 왕 메시야임을 알 수 있다(마태2,2; 묵시22,16).
'야곱에게서 ~솟고'
'솟고'로 번역된 '따라크'(darak)는 '밟다'(신명1,36), '(활을)당기다' (1역대5,18)라는 뜻으로 크게 두 가지 의미로 나누어지는 동사이다.
하지만 '(활을)당기다'는 뜻과 같이 '밟는다'는 것도 곧 '소유'(신명11,24), '정복'(판관20,43), '통치'(신명33,29)라는 이면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따라크'의 기본 개념은 '전쟁'과 연결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원문은 '별 하나'(한 별)가 마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행진하듯이 걸어 나오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상징적인 묘사이기는 하지만, 별이 땅을 밟고 전진하는 것은 매우 신비롭고 기이한 모습이다. 이것은 물리적인 육적인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발라암은 환시 중에 환히 빛나는 별 하나가 악한 적들을 섬멸하기 위해 야곱의 진영 가운데서 행진하여 나오는 모습을 본 것이다. 이 예언은 하느님을 적대하는 악한 세력과 싸워 이긴 임금, 곧 메시야를 상징한다.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왕홀'로 번역된 '셰베트'(shebet)는 원래 '막대기'(레위27,32), '지팡이'(판관5,14)를 뜻하는 말이었으나, 그 의미가 발전하여 '지파'(창세49,28)를 뜻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여기서는 특히 임금의 지위를 나타내는 지팡이인 '왕홀'을 의미한다. 이것은 분명 과거 야곱의 유다에 대한 예언에 나타난 '홀'과 연관되어 있으며 (창세49,10), 본문과 대구를 이루는 '별'과 관계되어 메시야의 왕권을 상징하는 것이 분명하다(시편45,7; 아모스1,5.8).
한편 '일어난다'에 해당하는 '웨캄'(weqam)의 기본형 '쿰'(qum)은 특별히 발라암의 이야기 가운데서 암사자의 '일어남'('쿰'; qum)을 묘사할 때도 쓰인 동사이다(민수23,24).
즉 이 단어는 암사자가 사냥감을 공격할 때 일어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었는데, 이런 의미가 여기서도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말하자면, 별 하나가 악한 세력과의 전쟁을 위해 행진하여 나오고, 홀이 '일어나'(쿰) 그 세력을 치려는 모습을 발라암이 환시 중에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별과 홀에 의해 모암, 에돔, 아말렉 등의 나라와 아시리아까지 멸망하게 될 것임이 이어지는 예언에서 밝혀지고 있다.
'모압의 관자놀이를, 셋의 모든 자손의 정수리를 부수리라'
여기서 '모압'은 단순히 당시에 있었던 근동의 한 나라 '모압'만을 말하지 않는다. 실제로 '모압'이라는 나라의 멸망과 '별'과 '왕홀'로 상징된 메시야의 출현과는 실제 역사 안에서 특별한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단지 한 민족을 말한다기보다는 모압으로 대표되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을 적대하는 세상의 세력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셋'은 노아의 셋째 아들인 '셋'('셰트'; sett; 창세4,25)이 아니고, 노아의 셋째 아들과는 다른 사람으로서 모압 족속의 기원과 깊은 연관을 지닌 인물이거나 부족으로 보고 있다.
[대림 제3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뒤, 예수님과 종교 지도자들의 갈등은 더욱 깊어집니다.
마태오 복음 21장 23절-22장 46절에서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수난 전 반대자와 하신 마지막 논쟁을 보도합니다.
이 부분은 다섯 가지 논쟁과 세 가지 비유로 구성되는데, 오늘 복음은 첫 번째 논쟁 사화입니다.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예수님의 권한을 의심하며 묻습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안에서 메시아로서 공개적으로 보여 주신 활동(성전 정화, 병자 치유, 무화과나무 저주) 때문에 반대자들과 대결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권한이 하느님에게서 직접 왔다고 스스로 인정하시도록 강요함으로써 그분께 신성 모독이라는 죄명을 씌워 죽음으로 몰아가려고 합니다(마태 26,65-66 참조).
반대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질문 형식으로 답하십니다.
라삐 논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러한 방식은 반대자들의 질문에 직접적 답변을 피할 뿐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위가 오로지 하느님께 근거한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적대자들을 무력한 침묵에 빠지게 합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도 당신처럼 하느님에게서 파견된 이로서 신적 권한을 가지고 활동하는 예언자라고 인정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과 논쟁을 벌이는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어쩌면 우리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지는 않나요?
예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활동하시며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고자 하시지만,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지키려고 예수님의 권한을 의심하면서 그분의 죄를 단정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대림 제3주간 월요일]
무슨권한(權限)으로
사탄(Satan, 魔鬼)~ 우리들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귀신이나 마귀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다.
<간혹 봤다고 하는 사람들, 그들은 영화나 드라마로, 또 사람들의 이야기로 자신이 갖고있던 것이 마음의 상처나 아픔으로 마음이 약해졌을 때, 두려울 때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성경은 그것을 사탄, 마귀라고 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말씀(뜻, 계명)을 사람의 뜻을 위한, 말씀, 계명으로 듣게 해, 하느님의 뜻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 그래서 영(靈)의 구원이 아닌 육(肉)의 만족을 위한 신앙을 살게하여 이 땅(地獄)에 묶이게 하는 것이 사탄(Satan)이다.
그 사탄이 사람의 마음을 가르치게 한다. 그 사탄(Satan)인 뱀의 유혹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계명으로 받아, 무화과 잎으로 스스로 옷을 만들어 입고 자신의 부끄러움(죄)을 가리려 했던 아담 - (그 상태가 마귀, 귀신 들리는 것이고 말씀을 진리로 깨닫게 되면 그 귀신이 쫓겨나는 구마인 것이다.) 그러나 아담 자신이 스스로 만든 열심(계명), 그 자기 의로움의 옷(무화과 잎)으로는 죄를 덮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어린양이 죽어 남긴 그 가죽으로 친히 옷을 만들어 입히시어 죄를 덮어 주셨다.(창세3,7)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다. 하느님께서 손수 준비하신 그 가죽 옷만이 죄를 덮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의 피로 죄가 씻겨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구원을 위한 계명이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 곧 사람(아담)의 스스로 행위만 무성한 그 신앙은 죄의 용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화과는 열매가 없다. 우리가 열매라고 먹는 것은 사실은 꽃이다. 그렇듯 우리가 한 의로운 일이 구원의 열매라고 착각하고 그 착각으로 열심을 부리는 그 헛된 신앙을 살고 있다는(티토3,5) 말씀이 앞절(마태21,18-22)에 있었고 오늘 복음으로 이어진다.
(마태21,23-27)
23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 어린양의 권한이다. 하느님께서 주셨다.
(요한17,2) 2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24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우리에게 말할 것이오.
= 요한의 세례, 하느님께서 주셨다.(요한1,33)
26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 하자니 군중이 두렵소. 그들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 하느님보다 사람의 눈을 더 의식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라는 것이다.
베드로 역시 그랬다. 그랬던 그가 성령을 받은 후에 예수님을 선포하지 말라는 최고 지도자들의 말을 듣고~
(사도4,19) 19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27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 자신들의 뜻을 고집하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른다고 하는 그 속셈을 아시기에 말씀을 주시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우리)도 곧 깨닫게 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는 발락의 청을 바라암은 자신의 욕망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고 가던 중, 그의 뜻을 넘어뜨리시는 하느님을 체험한다.(민수22,22-25) 그리고 그가 그리스도를 깨닫게 된다.
(민수24,16-17)16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지식을 아는 이의 말이다. 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된다. 17 나는 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王笏, 지팡이)이 일어난다. 그는 모압의 관자놀이를, 셋의 모든 자손의 정수리를 부수리라.”
= 그 왕홀이신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성경의 모는 율법, 계명은 그 예수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루가24,27.46 요한5,39) 그러나 그 율법, 계명을 사탄의 작용으로(2데살2,7) 도덕과 윤리로 사람의 생각으로 제멋대로 말하기에~ 하느님의 길이 아닌 사람의 길을 진리로 신앙하는 이들이 많다.
그 많은 이들이 구원의 열매 없는 도덕과 윤리의 그 자기의 행위를 가치로 여기며, 무화과 잎 같은 신앙을 살고 있음을 오늘 보라는 것이다. 그 도덕과 윤리의 신앙은 믿음과는 상관이 없다. 아무리 열심을 부려봐야 의혹만 생길 뿐, 믿음은 생기 질 않는다. 믿음의 주체는 하느님이시다.
우리를 구원 하시겠다는 그 하느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그래서 성경을 모르면 믿음이 생길 수 없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받는 하늘의 용서, 의로움, 거룩인데 말이다.(사도26,18 외 다수)
(로마8,24-25) 24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25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 말씀은 보이는 행위로 지키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하늘의 뜻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야 믿음이 생긴다.
(요한8,37-38) 37 나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이야기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실천한다.”
=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이야기 하시고(전하시고)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사람의 법, 관습으로 실천한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이유인 것이다. 곧 뱀(사탄)의 거짓을 그대로 받아, 말씀을 행위로 실천한다는 말씀이시다. 그것이 사탄의 계략이다.
사람의 본성을 만족시켜 주는 가르침과 사람의 의로움을 진리로 말하며 빛의 천사의 모습으로 위장하기에(2코린11,14-15) 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진리와 멀어져 사람의 뜻이 구원의 진리라며 육의 욕망을 위한 잎만 무성한 헛된 신앙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늘의 진리를 모른척하며 자신들의 뜻, 이익을 위해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하늘의 진리를 말하는 이들이 틀렸다고 한다.
(갈라6,14) 14 그러나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래서 그 무화과 신앙과 대조 되는 구원의 열매를 찾을 수 있는 길을 다시 마태복음 21장 28절 이하 포도밭의 말씀으로 깨달으라 하신다. 낼 복음이로 이어지네요~~~ ♪살롬.
[대림 제3주간 월요일] 사제의 묵상
오늘 독서에서는 광야를 지나 약속된 땅으로 향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진영을 눈앞에 두고 있는 예언자인 이방인 점쟁이 발라암의 신탁을 들려줍니다.
발라암은 모압의 임금 발락의 요청에 따라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대신, 메시아의 축복을 들려줍니다.
주님의 영에 이끌려, 야곱에서 나온 임금이 이스라엘과 많은 민족들을 다스릴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교회 전통은 전체적인 의미에서, 이 예언이 기다리던 메시아 예수님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 합니다.
복음에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라고 묻는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에게서 파견되신 분으로 받아들이지도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정통 교리(敎理)를 지키는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그들은 자신의 불신 때문에, 그리고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는 군중과 타협하지 않으려고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합니다.
하느님처럼 예수님께서도 하늘에서 오는 신비에 겸손하게 마음의 문을 열어 놓지 않는 이들에게 당신의 비밀을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권한에 대하여 대답하지 않으시는 것은, 비난을 일삼는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의 권한을 조용히 부인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인 그들은 거짓 예언자들과 참예언자들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하였습니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대림 제3주간 월요일]
인간의 관자놀이, 정수리를 부수심은 하느님의 크신 자비(慈悲).
복음(마태21,23-27)
23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오늘 본문 앞 절에서~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 무화과나무에 일어난 일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여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가 기도할 때에 *믿고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 하신 말씀 때문이다.
곧 구원의 씨가 없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그리고 오르기 힘든 무거운 짐 같은 산, 모두 구원을 주지 못하는 무거운 짐을 주는 율법을 뜻한다.
그 율법이 주는 죄의식과 무거운 짐을, ‘기도하면 없앨 수 있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말씀이다. 기도하면, 곧 말씀을 되새기면 율법(제사와 윤리)의 의로움이 아닌, ‘율법을 대속으로 완성하신 하늘의 의로움이신 그리스도로 받는 구원임을 깨닫게 된다.’는 말씀이신 것이다.(로마3,20-5 8,1-3 참조)
24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우리에게 말할 것이오. 26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 하자니 군중이 두렵소. 그들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27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 예언자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있던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권한을 증언하며 외쳤다.
(요한1,17-18.29)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런데 왜 다시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을까?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종교 지도자의 권세를 누르고 싶어서, 버리고 싶지 않아서 모르는 척 했기 때문이다.
현세의 교회 지도자들도 생각해볼 일이다.
곧 ‘성경(聖經) 위에 교리(敎理)가 있다’고, ‘성경보다 교리가 먼저라고 가르치는 사제나 그 가르침을 묵인하는 지도자들’이다.
많은 분들이 하느님의 뜻(지혜)으로, 곧 모든 죄를 십자가(十字架)에서 대속(代贖)하신 그 주님의 의로움을, 구원의 새 계약으로 받아 하늘의 용서, 구원에 이르도록(받도록) 믿음을 위한 가르침이 아닌, 인간의 뜻(지혜)으로 믿음과 상관없는 가르침을 준다는 것이다.
곧 사람의 지혜(지식)는 주면서 하느님의 지혜는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1코린2,1-5.7) 1 형제 여러분, 나도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뛰어난 말이나 지혜로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하려고 가지 않았습니다. 2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3 사실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 4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5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7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 하느님의 지혜(智慧), 우리의 영광을 위해 미리 정하신 지혜,- 예수 그리스도시다. 곧 우리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창조 이전에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자 이시다. (에페1,4 참조)
(민수24,16-17) 16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지식을 아는 이의 말이다. 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된다. 17 나는 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그는 모압의 *관자놀이를, 셋의 모든 자손의 *정수리를 부수리라.”
= 하늘의 별 하나, 빛이신 예수님께서 왕으로 오심이다.(루가1,78-79참조) 그런데 모압을 부수심은 알겠는데 셋의 모든 자손들을 부수신다?
*형제 아벨을 죽인 카인은 하느님을 떠난다. 그리고~
(창세4,25)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그 여자가 아들을 낳고는, “카인이 아벨을 죽여 버려, 하느님께서 그 대신 다른 자식 하나를 나에게 *세워 주셨구나.” 하면서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다.
= 그리고 셋이 아담의 족보에 처음으로 올라간다. 세워진다. ‘셋’은 ‘슛트’로 옷을 뜻한다.
그러니까 셋의 모든 후손들은 하느님께서 아담의 죄를 덮으시기 위해 입혀주신 ‘어린양의 가죽, 그 희생 대속의 옷’이 아닌 ‘자신들이 스스로 만들어 입은 옷’, 구원의 열매 없는(무화과나무처럼) 자신들의 의로움으로, 종교 행위로 죄를 가리겠다고 하느님의 뜻을 적대했기에 그들을 부수시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 지혜를 적대하는 관자놀이, 정수리.’ 곧 오늘날 까지 전해진 인간의 뜻, 지혜, 생각을 부수심이다. 그 부수심으로 다시 살리신다.
(예레31,31-34) 31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32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은 내가 저희 남편인데도 내 계약을 깨뜨렸다. 주님의 말씀이다. 33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34 그때에는 더 이상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자기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그래서 죄, 용서, 구원(福)을 위한 제사도 예물도 필요 없게 된 것이다. (히브10,16-18 참조) 성경에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셨으니 남(사제) 탓할 일이 아니다.
하느님의 뜻, 지혜를 깨닫기 위해 성경을 공부하지 않는 우리 자신을 탓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관자놀이, 정수리를 부수심이, 하느님의 은총, 큰 자비임을 깨달아야 한다(루가1,51-55 참조)
(루가2,34)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을 위해 간구(기도)해 주소서. 우리 생각을 부수시고, 다시 살리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게 하소서. 그래서 시메온처럼 하늘의 평화, 구원을 깨닫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대림 제3주간 월요일 복음(마태21,23~27)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25)
'어디에서'라고 번역된 '포텐'(pothen; where)은 '기원', '원인'을 물어보는 의문사이기에, 본문은 세례자 요한의 권한(권세)이 어디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여기서 '하늘'로 번역된 '우라누'(uranu; heaven)는 '우라노스'(uranos)의 탈격으로서 '하늘로부터'라는 기원을 나타낸다.
유대인들은 '하느님'이라는 명칭을 거룩하다고 생각하여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하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요한의 세례'가 하느님으로부터 기원되었다는 것을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사람'으로 번역된 '안트로폰'(anthropon; men) 역시 '안트로포스'(anthropos)의 탈격으로서 기원 및 출처를 나타낸다.
여기서 '사람'은 '하느님'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불완전하고 거짓된 계시를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권한의 출처에 대해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반문한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 입장 표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은 요한의 세례의 출처가 하늘이라고 하면, 하느님께서 보내신 자를 질시하여 결국 죽게 하였다는 점에서 곤경에 빠지게 되고, 출처가 사람이라고 하면, 세례자 요한을 예언자로 여겼던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틀려서 반발을 사게 되는 곤경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질문으로써 그들의 위선과 간교하고 사악함을 드러내시고자 하신 것이다.
또한 이 질문은 통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권한을 입증하려고 하셨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을 하느님께로 보내신 예언자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널리 인정받던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메시야와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다(요한1,32~36).
예수님께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 당신의 권위의 출처와 관련해서 질문해오자, 오히려 요한의 세례의 출처에 대한 역질문을 던지심으로써, 자신이 세례자 요한의 참된 증거에 근거한 메시야임을 증명하려 하셨던 것이다.
2025년 12월 15일 월요일
[대림 제3주간 월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오늘 복음의 바로 앞부분은(마태 21,18-22 참조) 예수님께서 성안으로 들어가시다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어 말라 버리게 하신 이야기입니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기 시작하시자 백성의 지도자들은 그분께 시비를 겁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마태 21,23)
백성에게만이 아니라 무화과나무에도 절대적 권위를 지니신 예수님께 질투를 느끼고 화가 난 것이겠지요.
예수님께서는 당시 잘 알려진 토론 방식으로 대응하십니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21,24-25)
이 물음에 어떻게 대답하더라도 곤경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진리나 올바른 대답에는 관심이 없으며, 예수님의 권위를 부정하고 자기들의 권력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고자 하는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은 예수님의 물음에 모른다고 합니다.
그들은 영리하게 대답한다고 생각하였겠지만, 사실은 예수님과 한 토론에서 졌을 뿐만 아니라 참된 하느님을 만날 기회를 잃고 맙니다.
만일 나에게 작은 권한이라도 주어지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 씁니까?
다른 이를 섬기는 데 씁니까? 아니면 다른 이를 통제하고 내 뜻대로 움직이려고 씁니까?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의 모습은 어쩌면 마음을 되돌리고 변화하도록 초대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자기 신념과 욕구, 닫힌 마음과 굳어진 습관들에 갇힌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내적 자유와 진리를 향한 순수한 사랑으로 자기 신념과 욕구를 비우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합시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2025년 12월 15일 [대림 제3주간 월요일]
당신의 權限?
어둠인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주님이시다. 곧 주님의 말씀으로 하늘아래 모든 것이 허무요 헛된 것으로 어둠임을 봐야 한다.
(요한1,5)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독서(민수24,16-17)
16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지식을 아는 이의 말이다. 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된다.
= 말씀으로 육(肉)이 쓰러져야(루가2,34) 영(靈)의 눈이 뜨인다.
17 나는 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그는 모압의 관자놀이를, 셋의 모든 자손의 정수리를 부수리라.”
= 하느님은 이방 모압인이나 선택받은 세이 후손 이스라엘이나 인간들의 뜻, 생각을 부수심으로 살리신다.
(이사55,8-9)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9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복음(마태21,23-27)
23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24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우리에게 말할 것이오.
= 세례는 그리스도 안에서 육(肉)이 죽어 새 창조 됨이다.(로마6,3-4 갈라6,15 2코린5,17)
26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 하자니 군중이 두렵소. 그들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27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 지금은 ‘가깝지 않다던 왕홀’(민수24,17)이신 예수님의 권한이 이루어진 때다. 그 예수님의 권한을 모르면 하늘의 용서, 평화, 안식, 생명, 구원이 그에게는 없다.
(필레1,25) 25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은혜. 권한)이 여러분의 영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히브1,1-3) 1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2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진리)에 앉으셨습니다.
= 또한 말씀을 읽으면서 자신의 죄성, 불의한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모른 척 넘어가거나 핑계로 합리화 시킨다면, 주님의 권한인 하늘의 용서, 평화, 안식, 생명을 받지 못해 화(禍)를 입는다. 곧 영원한 죽음, 어둠에 갇히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솔직하게 내(육) 안에, 미움, 판단 등의 교만이 있음을 보고 인정했을 때, 주님 앞에 엎드려 자비를 구하게 되고, 그러면 주님의 권한을 입게 된다.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된다. 깨닫게 하신다.
(루가5,24) 24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에 걸린 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루가10,19) 1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요한1,12) 12 그분(말씀, 예수)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 *말씀 안에서 하는 기도가 아닌 빈말을 되풀이 하는 기도는 주님의 권한을 입지 못한다.(마태6,7-13)
(시편25,4-5) 4 주님, 당신의 길을 제게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제게 가르쳐 주소서. 5 당신의 진리 위를 걷게 하시고 저를 가르치소서. 당신께서 제 구원의 하느님이시니 날마다 당신께 바랍니다.
(루가1,38)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보호자로 탄식하시며 기도해 주시는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하느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이, 저희 마음 안에서 타오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