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3일 화요일
[대림 제4주간 화요일] 세례 요한의 탄생 (루카1,57-66)
제1독서<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말라3,1-4.23-24)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23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24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화답송>시편25(24),4-5ㄱㄴ.8-9.10과14(◎루카 21,28) ◎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
○ 주님,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 저를 가르치시어 당신 진리로 이끄소서. 당신은 제 구원의 하느님이시옵니다. ◎
○ 주님은 어질고 바르시니, 죄인들에게도 길을 가르치신다. 가련한 이 올바른 길 걷게 하시고, 가난한 이 당신 길 알게 하신다. ◎
○ 주님의 계약과 법규를 지키는 이들에게, 주님의 모든 길은 자애와 진실이라네. 주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와 사귀시고, 당신의 계약 그들에게 알려 주신다. ◎
복음<세례자 요한의 탄생>(루카1,57-66)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대림 제4주간 화요일 제1독서 (말라3,1-4.23-24)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24)
앞선 말라기 3장 23절에서 주님께서 최후의 심판에 예언자 엘리야를 파견할 것을 예언하였다. 이어지는 말라기 3장 24절에서는 그의 사명을 통하여 주님과 선민 이스라엘의 관계가 회복될 것을 예언함과 더불어 그의 사명을 거부하는 자에 대하여 경고를 주고 있다.
즉 말라기 3장 24절은 장차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으로 올 세례자 요한의 사명이 제시된다(루카1,17). 본문에서 '부모'에 해당하는 '아보트'(aboth), '아보탐'(abotham)은 모두 복수형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이 예언을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관련해서 그의 사명에 적용한 주님의 천사는 루카복음 1장 17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여기서 '부모의 마음'과 '의인들의 생각'을 같은 뜻의 표현으로 보고, '자녀'와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같은 뜻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린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경건한 조상들의 신앙을 불경건한 후손들의 마음 속에 들어가게 하여 그들의 신앙을 조상들의 신앙처럼 경건하게 만든다는 뜻이 된다.
말라기 예언자 당대나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당시의 이스라엘이 갖고 있던 가장 큰 문제는 과거에 신앙의 조상들이 주님 대전에 가졌던 경건하고 의로운 신앙의 결핍이었다.
이를 감안할 때, 세례자 요한은 부모들, 즉 이스라엘의 경건한 조상들이 가졌던 그 신앙심을 자녀들, 즉 그 후세대들이 회복하여 메시야를 맞을 준비를 갖추도록 하는 사명을 맡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그가 ~돌리리라'에 해당하는 '웨헤쉬브'(weheshib; and he will turn)는 '그가 회복시킬 것이다'(he will restore)라는 의미인데, 문맥과 구세사의 전개 과정을 볼 때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좋다.
[대림 제4주간 화요일] (김재덕 베드로 신부)
루카 복음서는 아기의 이름을 ‘요한’으로 짓게 된 일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1,66).
어쩌면 아기에게 ‘요한’이라는 이름을 지어 준 것이 하느님께서 그를 보살펴 주고 계신 일로 받아들일 만큼 대단한 일인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 장면을 보면, 즈카르야가 “그의 이름은 요한”(1,63)이라고 쓴 것은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1,13)라는 주님의 천사의 말에 온전히 순종한 ‘믿음에서 나온 행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은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태어난 아기는 부모의 이 믿음 안에서 자랄 것입니다.
그 아기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부모에게 물려받을 것입니다.
기도하는 법도 그분을 사랑하는 법도 배울 것입니다.
‘거룩한 침묵’과 ‘온전히 하느님의 시선 안에 머무르는 시간’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법도 배울 것입니다(12월 19일 ‘오늘의 묵상’ 참고).
실제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며, 거룩한 침묵과 온전히 하느님의 시선 안에 머무를 수 있는 장소인 ‘광야’에서 지냅니다.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도록 태어난 아기, 세례자 요한을 보살폈던 주님의 손길은 이미 그의 부모 안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길’이 자녀를 특별하게 돌볼 수 있게 협력하는 부모들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자녀에게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물려주는 것보다 더 큰 유산은 없습니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아멘.
(김재덕 베드로 신부)
12월 23일 [대림 제4주간 화요일]
그의 이름은 요한
히브리어 콜(소리)은 *코프(파괴하고 다시 세우다)와 *라메드(교훈하다. 가르치다)로 되어있다. 파괴하고 다시 세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서 알게 하는 것이 콜-소리, 그 소리로 깨달아 옛것을 부수고, 버리고(죽고) 다시 일어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루카1,57~66)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 히브리인들은 아기 이름을 조상들의 이름 중에서 선택한다(조상의 뜻을 이어 받겠다는 의미)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 요한은 하느님께서 주신 이름으로 옛 이름(것)은 안된다는 의미.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 옛것을 버리자 입이 열리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할, 큰 인물을 아들로 주시겠다는 천사의 말을 믿지 못하자~
(루가1,20)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 믿음이 없는 옛 입을 막으셨던 것이죠.
자신이 믿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고 입이 열리자,
(루가1,67-69) 67 아기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이렇게 예언하였다. 68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69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 인간의 구원을 위해 神이 찾아오시는 것이 그리스도교입니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 이 아기,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소리가 될 것입니다.
(요한1,23.29)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예수님께서 세상의 죄를 어떻게 없애시나? 세상의 모든 죄를 다 받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이사53,4-7) 4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6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7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 그렇듯, 그리스도교는 하느님께 인간이 자신들의 희생, 빵을 드리는 것이 아닌 하늘의 희생 제물, 빵을 받아 먹는 것입니다.
(요한6,48.51)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 사람(피조물)은 하느님(창조주)만으로 존재일 수 있는 것이지요. 하늘의 빵을 먹어야 하늘의 생명으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탈출16,12) “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희가 *저녁 어스름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양식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6,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 하늘의 빵을 파스카의 고기로 먹기 위한 모든 행위는 저녁(어둠)의 양식인 것이고 그 옛것을 버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 피로 맺은 새 계약으로 먹으면 아침(빛)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희생, 열성, 의로움이 아닌 하늘의 희생, 열심인 십자가의 의로움을 받아 그 의로움으로 사는 곳이 하느님 나라죠. 그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세례자 요한이 하느님의 소리입니다.
(히브10,9-10)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또한 그 소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멘.
2025년 12월 23일 화요일
[대림 제4주간 화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성탄의 신비가 깊어지는 오늘 전례는 세례자 요한의 탄생 이야기를 통하여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이름이 운명이다.”라는 라틴 말 표현처럼, “하느님의 크신 자비”(루카 1,78)를 드러낼 아기의 이름 ‘요한’은 ‘주님께서는 자비로우시다.’라는 뜻입니다.
장차 ‘말씀’이신 분께 ‘소리’를 내어 드리게 될 아기는 이 이름을 받으면서 아버지에게 말을 되찾아 줍니다.
주님께서는 세 가지 방식으로 오십니다. 첫 번째로 역사 안에서 태어나시고, 두 번째로는 역사의 종말에 오십니다. 세 번째로 날마다 우리에게 오십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당신 교회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오십니다.
우리는 늘 깨어 그분을 기다립니까? 아니면 문에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써 붙여 놓지는 않았나요?
세례자 요한의 탄생 이야기는 바야흐로 코앞에 다가온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우리의 설렘을 더욱 커지게 합니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립니다.
출산을 앞둔 성모님의 심정이 어떠셨을지를 우리가 충분히 상상할 수는 없지만 분명 설렘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엄마가 된다는 기쁨과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1,32)을 낳는다는 떨림으로 보낼 이 시간을 성모님과 함께하며,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합시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2025년 12월 23일 [대림 제4주간 화요일]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셨다.’
독서(말라3,1-4.23-24)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나)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구원)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 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 하느님은 당신 자녀들을 깨끗하고 의로게 하시기 위해 다 태워버리시는 불이십니다.(히브12,29)
(즈카13,8-9) 8 주님의 말씀이다. 온 땅에서 삼분의 이가 잘려 죽고 삼분의 일(믿는 우리)만 살아남으리라.
= 숫자 3은 하늘의 숫자로 완성을 뜻한다. 삼(3)을 둘(2)로 나누면 선악의 둘로 심판이 되어 죽음을 준다. 삼을 하나로 갖으면 완성, 진리인 생명이다.(1요한5,5-8)
9ㄱ 나는 그 삼분의 일을 불 속에 집어넣어 은을 정제하듯 그들을 정제하고 금을 제련하듯 그들을 제련하리라.
= 열매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하는 하느님의 손질, 단련하심이다. (요한15,2)
9ㄴ 그들은 나의 이름을 부르고 나는 그들에게 대답하리라. 나는 ‘그들은 나의 백성이다!’ 하고 그들은 ‘주님께서는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하리라.”
(1베드1,5-7) 5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는 구원을 얻도록,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힘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6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 대속(代贖)의 십자가, 곧 그리스도의 피, 그 새 계약으로 더러운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씻겨 흠없이 의로운 하늘의 사람이 된 우리다. 그래서 하늘의 합당한 삶을 사는 연습(練習), 곧 자신을 버리는(루카9,23) 불의 단련인 시련(試鍊), 고난(苦難)의 훈련을 현세에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히브12,5-11) 양다리 신앙이 아닌, 오롯이 하느님만을 아버지로 부르며 의탁하여 진리로 믿는 순수성이다.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23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 세례자 요한이다.
24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 엘리야 엘(하느님)+ 야(야훼) 야훼 하느님의 뜻은 “내 말을 줄게, 네 말로”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의 말, 문자로 주셨기에, 성경(聖經) 문자 안에 숨어있는 하느님의 뜻(생명, 빛, 진리)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의 뜻(욕망)을 위해 살기에 어둠, 죄 속에 두려운 파멸의 날을 맞는다. 곧 세상(어둠)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요한1,9-11. 3,19) 그래서 말씀이 사람이 되어 하느님의 진노(震怒)의 파멸을 막으시려 오셨다.
(요한1,14.29-31)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0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31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시편25,8-9.) 주님은 어질고 바르시니,(진리) 죄인들에게 길을 가르치신다. 가련한 이 올바른 길(진리) 걷게 하시고, 가난한 이 당신 길 알게 하신다.
복음(루카1,57-66)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 세례자 요한이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 사람의 관습에 따라 짓는 이름이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 ‘요한’-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셨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 사람의 관습에 따른 이름(존재)이 아니라 하느님 뜻에 따른 하늘의 존재로 말을 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사람의 율법, 관습,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말이다. 곧 율법의 하느님의 진노, 파멸의 길을 피하고 진리, 생명, 빛의 길을 걷게 하려는(요한14,6 로마3,19-25) 엘리야, 세례자 요한이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즈카르야의 노래♪>
(루카1,76-79) 76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77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78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 어둠인 세상이 약속한, 속이는 평화가 아니라, 주님의 불로 순수한 믿음이 되어 받는 평화다.
(루카12,49)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 아버지!
저희의 고난이 아버지 만을 찾고 의탁하라는 순수한 믿음을 얻는 하늘의 영광, 생명을 위한 단련인가요? 그래서 기뻐하며 기도속에 감사하라 하셨나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손길, 힘으로 지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성령의 탄식의 기도와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