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5일 목요일
[주님 성탄 대축일]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요한1,1-18)
제1독서<땅끝들이 모두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이사52,7-10)
7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 “너의 하느님은 임금님이시다.” 하고 시온에게 말하는구나.
8 들어 보아라. 너의 파수꾼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다 함께 환성을 올린다. 주님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심을 그들은 직접 눈으로 본다.
9 예루살렘의 폐허들아, 다 함께 기뻐하며 환성을 올려라.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예루살렘을 구원하셨다.
10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의 거룩한 팔을 걷어붙이시니 땅끝들이 모두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화답송>시편98,1.2-3ㄱㄴ.3ㄷㄹ-4.5-6(◎3ㄷㄹ)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
○ 비파 타며 주님께 찬미 노래 불러라. 비파에 가락 맞춰 노래 불러라. 쇠 나팔 뿔 나팔 소리에 맞춰, 임금이신 주님 앞에서 환성 올려라. ◎
제2독서<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1,1-6)
1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2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4 그분께서는 천사들보다 뛰어난 이름을 상속받으시어, 그만큼 그들보다 위대하게 되셨습니다.
5 하느님께서 천사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6 또 맏아드님을 저세상에 데리고 들어가실 때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은 모두 그에게 경배하여라.”
복음<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1,1-18)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5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16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예수 성탄 대축일 제1독서 (이사52,7-10)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 "너의 하느님은 임금님이시다." 하고 시온에서 말하는구나." (7)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문자적으로 '그 산들 위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라는 의미가 된다.
발은 신체의 지체 중에서 아름답지 못한 부분으로 간주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발이 아름답다고 표현되는 것은 그 발을 통해서 아름다운 하느님의 구원의 소식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본문에서 '산'에 해당하는 '헤하림'(heharim; the mountains)은 복수로서 '그 산들'이라는 의미이므로, 여기서 그 발은 여러 봉우리의 산들 위에 서 있는 것이 된다.
그리고 '위에'로 번역된 '알'(al)은 전치사로서, 본문은 발이 산을 넘는 동작을 강조하기보다 산 위에 굳게 서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How beautiful upon the mountains are the feet of him'의 뜻이다.
즉 원문은 복음 선포자가 높은 곳에 올라 거기에서 만방에 복음을 전하는 이미지를 전달한다.
이것은 이사야서 40장 9절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하고 말하여라."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라고 한 표현과 유사하다.
그리고 본문은 궁극적으로 사탄의 세력에 포로된 자들에게 영적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복음 선포자들의 활동을 칭송하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본문을 인용한 사도 바오로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로마10,15).
이사야서 52장 7절은 주님의 승리를 전달하는 전령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앞선 이사야서 40장 9절과 41장 27절과 유사하게 되어 있다.
본절은 원문상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에 해당하는 구절이 맨 앞에 위치해 강조되고 있으며, 그 이하를 다섯 개의 분사 구문이 뒤따르는 형태로 되어 있다.
이 다섯 개의 분사는 모두 남성 단수로서, '발'에 해당하는 '라글레'(laglle; are the feet of)라는 단어를 수식하고 있다.
즉 그 발은 첫째, 기쁜 소식을 전하는 발이며, 둘째, 평화를 선포하는 발이며, 셋째, 기쁜 소식을 전하는 발이며, 넷째, 구원을 선포하는 발이며, 다섯째, 시온에서 '너의 하느님은 임금님이시다'(너의 하느님이 통치하신다)라는 사실을 전하는 발이다.
먼저 '기쁜 소식을 전하는'에 해당하는 '메밧세르'(mebasser; those who bring goods news)의 원형 '빠사르'(basar)는 주로 전쟁과 관련하여 전령이 승전 소식을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2사무18,19.26.31).
여기에서는 일차적으로, 바빌론 압제하의 이스라엘 자손이 해방되어 곧 시온으로 귀환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는 것을 의미하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관련된다.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실 때 천사는 베들레헴 근처의 목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라고 선언하였는데, 이것은 본문 내용과 깊은 관련을 가진다(루카2,10).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소식 가운데서 그리스도 탄생보다 더 기쁜 소식도 없다.
그 사건은 인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와 영원한 죽음과 멸망의 문제를 해결하는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 확대하여 말하자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 사업을 바탕으로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 놓여진 인간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70인역(LXX)에서는 이 단어를 '복음을 전하다'는 의미를 갖는 희랍어 '유앙겔리조'(euangellizo)의 분사형으로 번역하여 이런 의미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평화를 선포하고'에서 '평화'에 해당하는 '샬롬'(shallom)은 기본적으로 더 이상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할 뿐 아니라,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완전한 영육간의 복지(well-being)의 상태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
본절의 세번째 분사 구문인 '기쁜 소식을 전하며'에 해당하는 '메밧세르 토브'(mebasser tob)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으로 번역된 첫번째 분사 '메밧세르'(mebasser)의 내용을 강화하는 문장이다.
즉 '기쁜', '좋은', '선한', '아름다운'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토브'(tob)란 표현을 첨가해서 동일한 표현을 다시 반복하여 매우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네번째 분사 구문인 '구원을 선포하는구나'라는 표현은 '복된 기쁜 소식'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이것은 물론 일차적으로 바빌론의 압제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통한 죄와 죽음과 사탄에게서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서 '구원을'에 해당하는 '예슈아'(yeshuah; salvation)가 주님의 이름 '예수'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마태1,21).
''너의 하느님은 임금님이시다'하고 시온에서 말하는구나'
여기서 '임금님이시다'에 해당하는 '말라크'(mallak; reigns)는 '통치하신다'는 뜻으로 왕의 지배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바빌론의 포로로서 잔혹한 바빌론의 군주에게 다스림을 받아왔는데, 이제 그 압제에서 벗어날 것이며,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친히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 되어 이들을 다스리신다는 뜻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바빌론 유배의 근본 원인은 하느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는 불신앙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하느님께서 통치하신다는 본문은 가장 근원적인 측면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완전히 회복하게 하심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은 보다 궁극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께서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게 되는 비참한 인생을 해방시켜서(로마5,14; 8,2), 하느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과 가족(자녀)이 되게 하심(에페2,19)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주님 성탄 대축일 밤미사]
‘그리스도인’에게는 말씀을 깨닫는 매일이 성탄절
(루카2,1-14)
1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 2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실시되었다. 3 그래서 모두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본향으로 갔다.
= 성경은 왜 하느님의 말씀인 이 귀한 책에 세상 호적 등록이야기를 세절이나 쓰셨을까? 그것은 이 세상에 어둠을 밝혀줄 하늘의 빛이 오심을 알리고 싶으신 것이다.
(이사9,1) 1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 빛이신 분이 루가3,25이하~ 하늘족보(호적)의 아들이다. 그 하늘의 아들이 오심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4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5 그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6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 세상 호적 등록을 하는 동안, 곧 세상에 머무르는 동안 하늘의 아들을 잉태했고, 낳았다는 것이다. 세상 속에서 하늘을 깨닫고(낳고) 하늘을 미리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사9,5) 5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이다.
7a 첫아들을 낳았다.
= 신약의 아들, 새 계명, 새 계약의 아들, 곧 구원의 진리로 오셨고 구원받은 이들의 ‘맏이’로 나셨다는 것이다.
(골로1,13-15)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14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15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7b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 구유와 여관, 말씀을 축복(생명)과 저주(죽음)로 주셨던(신명11.26~참조) 그 축복의 실체이신 생명이 있는 곳을 ‘보라’하시는 것이다. 구유는 짐승들의 먹이통, 곧 아기 예수께서 죽을 죄인들의 먹이로 오셨다는 것이다.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하는 그들만이 먹을 수 있는 양식이다. 곧 죄인들만이 예수님을 구원의 진리로 받아드린다는 것이다.
여관처럼- 자신이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구원의 진리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요한8,37) 37 나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 제사와 윤리로 착하게 살아왔던 유대인들, 말씀을 사람의 규정과 교리로 가르쳤던 지도자들(마태15장, 23장 참조) 그들의 삶이 하느님의 뜻을 헛되게 하는 잘못이라고 사람들을 오히려 지옥의 자식으로 만든다고 지적하시며 ‘회개하라’ 하시니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것이다.
그 자기 의로움이 큰 이들의 마음 안에는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의 의로움이 구원의 진리로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8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 자기 의로움이 큰 그 지도자들과 반대되는 모습이다. 영의 눈으로 보면~ 지도자의 잘못된(헛된)가르침으로 고생하고 무거운 삶(신앙)을 사는 이들이다.
(마태24,24)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이들까지 속이려고 큰 표징과 이적들을 일으킬 것이다.
말씀, 기쁜 소식이 그들을 찾아가신다.
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10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 기쁜 소식이 아닌 ‘기쁨이 될 소식’이다. 받아야 기쁨이 되는 소식이라는 것이다. 믿으면 영과 마음에 기쁨이 되는 소식이다.
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主 그리스도이시다.
= 우리는 매일 그 ‘오늘’을 산다.
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 내 소원, 내 뜻을 들어주는 기적과 이적의 그 능력의 분(말씀)이 구원의 표징이 아니고, 죄인들에게 새 생명을 주기위해 십자가에 달이어 목숨을 바치는 그분(말씀)이 구원의 표징이라는 것이다.
구유의 아기 예수를 보며 보이지 않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구원의 기쁜 소식인 것이다. 우리를 위해 죽으러 오신 그 어린양 예수님 앞에 자신의 기분, 마음을 기쁘게 하는 축제로 지내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구원과 상관없는 여관속의 사람들인 것이다. 여관 안에는 아기 예수께서 계시지 않챤은가~~ 그래서 밤에도 양을 지키며 고생하고 무거운 삶(신앙)을 살았던 그 목자들이 구유의 아기를 그리스도로 찾아낸다,(루가2,16)
13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하늘의 평화를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요한17,5) 5 아버지,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제가 아버지 앞에서 누리던 그 영광으로, 이제 다시 아버지 앞에서 저를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 영광을 청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영광(독사)- 인간의 지각으로 알 수 없는 하느님의 이타의 사랑, 애가 끊어지는 자비. 그 하느님의 신성과 성품, 그 속성이 나타난 것이 영광이다. 그 영광이 함축되어 가시적으로 난타난 것이 십자가이다.
☨천주의 성령님, 우리의 삶에서도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소서~아멘.
☞ 그런데, 아기예수께서 목동들이 들에서 양떼를 키울 때 탄생하셨으니 겨울은 아니라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봄에도, 여름에도 지냈단다. 12월 24일만을 성탄절로 지내지 말자는 것이다.- 말씀을 진리로 낳는, 깨닫는 그 매일이 성탄절이라는 것이다.
12월 24일은 ‘로마의 태양신’인 ‘이튜라’의 축일이다. 로마의 국교가 그리스도교가 되면서 그들의 신의 축일을 그대로 정했던 것이다. 당시 교회 안에서도 로마의 힘이 막강했던 것 같다. 이 정도는 알자~
그러면서 우리는 매일 성탄절을 살자는 것이다. 오늘의 성탄 미사에 미련을 두지 말고~ 우리 죄인들을 위해 당신 아드님을 짐승들의 먹이통으로 보내신 그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매일이 크리스마스다.~~살롬*
[주님 성탄 대축일] 오늘의 묵상 (사제 정천 사도 요한)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1).
‘구원자’이시고 ‘주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신 분께서 탄생하셨다는 천사의 기쁜 소식이 온 세상에 울려 퍼지는 날입니다. 주님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위의 호칭들보다 심오한 예수님의 정체를 계시하며, 성자 강생의 신비를 한층 더 깊이 묵상하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여기서 말하는 ‘한 처음’은 세상이 창조되던 ‘한 처음’(창세 1,1)을 훨씬 앞서는 시기, 곧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의 범주를 뛰어넘는 ‘한 처음’입니다.
말씀이신 분께서는 그러한 ‘한 처음’의 순간에 생겨나신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도 이미 존재하고 계셨던 분으로 드러납니다.
말씀은 하느님과 늘 함께 계셨으며, 그분도 하느님이셨습니다. 곧 아버지 하느님과 가장 가까우신 외 아드님이신 성자 하느님이셨습니다. 성부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시어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생명을 지니신 분으로 사람들을 비추는 빛이셨습니다. 곧 말씀은 당신을 통하여 창조된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모든 은총의 원천이셨던 것입니다.
말씀이시고 하느님이시며 빛으로 정의되시는 분께서 오늘 이 세상에 몸소 내려오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당신의 본모습대로 내려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시어, 곧 인간의 육을 취하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사람이 되신 당신을 믿고 받아들이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 곧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그리하셨습니다.
구유에 누워 곤히 잠든 이 아기는 이처럼 놀라운 신비로 가득하신 분이십니다.
초라한 마구간에 가려져 잘 드러나지 않는 영광이지만, 우리의 영적인 눈은 이미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 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주님 성탄 대축일(새벽)]
기적(奇蹟)이다.
복음(루카2,6-20)
6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7ㄱ 첫아들을 낳았다.
=우리 죄의 속죄(贖罪) 제물로 오신 아기다. 율법(옛계약)의 죄를 대속(代贖), 그 새 계약으로 완성하실 그리스도시다.
7ㄴ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 여관(挔館)- 깨끗하다고 자만(自慢)하는 이들의 마음(집)에는 대속(代贖)의 아기(말씀)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8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으니 예수님의 탄생은 적어도 겨울은 아니다. (12월25일은 아니라는 것)
성경(聖經)에서 날짜를 알려주지 않은 것은, 특정(特定)한 날을 정할 것이 아니라 매일, 늘 마리아(쓴물)들인 우리가 아기(말씀)를 잉태하고 낳아야(깨달아야)함을 의미한다.
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10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 말씀으로 큰 기쁨을 받아야한다. 육(肉)의 기쁨이 아닌 영(靈)을 위한 기쁜 소식이다. 곧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더럽고 추악(醜惡)한 우리(내)가, 어두운 땅(지옥)속에 영원히 갇혀야할 내가, 빛이신 하느님 앞에 두려워하지 않고 영원히 거룩하고 의롭게 살 수 있는 기쁜 소식이다.
하느님께서 우주(宇宙) 만물(萬物)을 창조(創造)하신 것보다 더 큰 일, 그 어떤 기적(奇蹟)보다 놀랍고 큰, 기쁜 소식이다.
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짐승 같은 죄인(罪人)들과 하나, 한 몸이 되시기 위해 짐승의 집, 먹이통에 누우심이 구원(救援)의 표징(表徵)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에게 먹히심으로 죄인들이 그분과 한 몸이 되는 것이 구원(救援)이다. 그것이 어찌 놀라운 기적(奇蹟)이 아니겠는가?
예수님은 당신의 목숨을 바치러 오셨지(마태20,28) 세상 사람들이 애써 찾는(원하는) 사람의 소원(所願)을 들어 주시러 오시지 않으셨다.(마태6,31-32)
13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 하느님께 영광(榮光)드림이 먼저인 것이고, 그리고 땅에 평화(平和)다. 곧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외아들(예수)을 우리 죄인들의 생명, 구원의 양식(糧食)으로 보내신 그 큰 일, 그 기적(奇蹟)이 믿어진다면 당연히 하느님께 감사(感謝)의 영광(榮光)드림이 먼저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평화(平和)가 있어야 감사, 영광이 나온다는 것은 잘못된 착각(錯覺)이다.(야고1,2-4.12 참조)
15 천사들이 하늘로 떠나가자 목자들은 서로 말하였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일,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봅시다.” 16 그리고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 말씀을 기쁜 소식으로 들으면 성모님처럼(루가1,39), 목동들처럼 서두르게 된다. 일상의 삶을 떠나 구원자를 찾고, 전하는 삶을 살게 된다. 곧 시간을 내서 나의 구원자(救援者) 그리스도를 성경(聖經)에서 찾는 일(공부, 기도)을 한다는 것이다.
*육(肉)의 예수님을 영(靈)이신 그리스도로, 나의 구원자로 깨닫고, 믿기 위해 시간(時間)을 투자(投資)해야 한다는 것이다. 육의 양식을 구하기 위해, 먹기 위해 애쓰는 그 만큼만이라도~~~
17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18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19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 전(傳)해들은 소식, 말씀을 곰곰이 되새겨야 한다. 곧 공부해서 찾은(깨달은) 말씀을 곰곰이 되새겨 내 것으로 소화(消化)하여 서로 나누는 것이다. 그것이 거룩을 위한 올바른 행위(行爲), 기도(祈禱)다.
(1티모4,5) 5 사실 그것들은 하느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집니다.
20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 어떤 상황(常況), 어떤 처지(處地)에서도 늘 감사(感謝)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일 보다 더 큰, 곧 우리 죄인들, 나를 구원 하시려 당신 아드님을 십자가의 저주로 죽이신, 우리 인간의 지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다면, 곧 기적보다 더 큰, 그 구원의 말씀, 하느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어떤 처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희망으로 하느님께 영광 드리는 감사의 삶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창조(創造)하신 하느님의 뜻이며, 우리 구원(救援)의 완성(完成)이다.(루가17,17-19참조)
(코헬7,14) 14 행복한 날에는 행복하게 지내라. 불행한 날에는, 이 또한 행복한 날처럼 하느님께서 만드셨음을 생각하여라.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인간은 알지 못한다.
그 인간(人間)이 알지 못하는 일~
(스바3,15.17) 15 주님께서 너에게 내리신 판결을 거두시고 너의 원수들을 쫓아내셨다. 이스라엘 임금 주님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니 다시는 네가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17 주 너의 하느님, 승리의 용사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다.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 당신 사랑(십자가의 대속, 새계약)으로 너를 새롭게 해 주시고 너 때문에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시리라.
사도(使徒)들의 믿음을 내 것으로~
(로마8,28-39)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첫아들, 예수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31 그렇다면 우리가 이와 관련하여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비난, 고발한다)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진ㄹ히)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육적자아를 죽이심)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아멘)
☨오소서,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힘센 구원자 창조주 하느님께서 내편이라 하시니, 그리고 의롭다. 괜찮다 하시니 정말 기쁩니다. 그 기쁜 소식 놓치지 않고 지킬 수 있도록 오늘 말씀이 믿음으로 자라나게 하소서, 감사로 영광드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예수 성탄 대축일 복음(요한1,1~18)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14ㄱㄴ)
요한 복음 1장 14절부터 18절까지는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강생(육화)의 신비를 통한 그리스도의 하느님 되심을 보여 준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교리 가운데 그리스도론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구절들은 요한 복음 1장 1절과 연결되어 사람이신 그리스도 안에 그분의 본질인 영원한 신성(神性)이 내재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요한 복음사가가 이처럼 강생(육화; incarnation)의 진리를 요한 복음 도입부에서부터 강조적으로 진술하는 방법을 택한 것은 당시의 영지주의적 (Gnostic) 경향을 반대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희랍인들에게 있어서는 하느님의 육신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으므로, 그들 사이에서는 가현설(假現說 ;docetism)이 큰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즉 그리스도는 실제로 사람이 되신 것이 아니라 다만 '사람인 것처럼' 보이고 행동하셨을 뿐 이라는 주장이다.
그리스의 현인들 중에는 초월적인 신을 현상 세계 가운데 포함시킨다는 것은 신성모독일 뿐 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인본주의적 주장은 아직 확립된 교리를 갖지 못했던 초대 교회에 큰 위협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요한 복음사가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직설적으로 반박하는 내용을 본문과 같은 명제 형식을 통해 펼쳐나가고 있다.
한편 '사람'으로 번역된 '사륵스'(sarks; flesh)는 기본적으로 '살'을 뜻하지만, '몸', '육신', '혈육을 가진 인간', '인간성'(human nature), '혈통', '육체적 제한성', '이 세상 생활' 등 문맥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쓰인다.
'사륵스'(sarks)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빠샤르'(bashar)인데, 70인역(LXX)에서는 '빠샤르'의 절반 이상을 '사륵스'로 번역했다.
'빠샤르'의 기본적인 의미는 '사륵스'와 마찬가지로 살'(flesh), 즉 짐승의 근육 조직을 가리키지만, 나중에는 그 의미가 확대되어 사람의 몸이라든지 혈연 관계, 생명 그 자체등을 나타내는 데 폭넓게 쓰였고, 신적(神的)인 생명과 대조되는 '창조된 생명'(Created life)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두 개의 단어들 속에 내포된 의미들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같은 혈육을 가진 인간이 되셨음과 그분에게도 육체적 제한성이 따랐음을 확인하게 된다.
피로를 느끼신 것(마르4,38), 시장함을 느끼신 것(마태21,18) 등은 그분에게도 우리와 같은 육체적 제한성이 따랐음을 보여 준다.
또한 라자로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마리아와 사람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신 사실을 통해(요한11,35) 그분도 우리와 똑같이 연민과 사랑, 슬픔과 기쁨 등의 감정을 느끼셨음을 알 수 있다.
그분께서는 완전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죄에 약하고 악에 기울여지기 쉬운 인간의 육체와 본성을 입고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우리 인간과 구별되는 분명한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그분에게는 죄가 없고, 죄를 지을 수 없다는 점이고(히브4,15),
둘째는 그분께서는 모든 일에 완전한 모범을 보이셨다는 점이다(요한13,15).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만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구속하실 수 있으신 분이심과 동시에 그분을 통하여 새롭게 됨으로 말미암아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우리 가운데 사셨다'
원문은 '에스케노센 엔 헤민'(eskenosen en hemin; dwelt among us)인데, 직역하면 '그는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셨다'가 된다.
'사셨다'로 번역된 '에스케노센'(eskenosen)은 '천막을 세우다' 혹은 '천막에 살다'를 뜻하는 '스케노오'(skenoo)의 부정 과거이다.
요한 복음사가가 여기서 부정 과거형을 사용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로고스가 육체를 취하여 사시는 것은 일회적이며 일시적이라는 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같은 모양, 즉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머무신 기간은 짧았다.
시간적으로 보면 불과 33년 정도가 전부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성령을 통해 우리와 늘상 함께 계신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우리는 ~보았다'로 번역된 '에테아사메타'(etheasametha ; we have seen; we behold)의 원형 '테아오마이'(theaomai)는 언제나 실제적인 육안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
즉 이 단어는 영이나 마음의 눈으로 보는 영적인 통찰에는 쓰이지 않는다.
요한 복음사가는 로고스가 현실적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서 세상에 오셨으므로, 육안으로 볼 수가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들이 본 것은 바로 인간 예수님 안에 내재된 신적(神的) 영광이었다.
하느님께서 그분을 이 세상에 육신을 입게 하여 보내신 것은 우매하고 무지한 백성들로 하여금 직접 눈으로 보고 믿게 하려는 사랑의 배려였다.
요한 복음 사가는 여기서 직접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눈으로 목격했다는 확고하고도 영속적인 증거를 하고 있으며,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신적인 영광과 위엄이 예수님께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예수님을 만나고도 이 영광을 깨닫지 못하거나 그분의 발 아래 승복하지 않는 이들은 다른 방법으로는 결코 하느님을 만날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요 길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영광'으로 번역된 '독사'(doxa; the glory)란 무엇인가?
이 단어는 '영광'이라는 말 이외에도 '광휘', '광채', '위엄' 등 여러 의미들을 가지고 있다.
구약에서 이에 상응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카보드'(kabod)이다.
이것은 물건의 큰 무게나 엄청난 양을 언급하고, 종종 부와 재물, 중요하고 긍적적인 명성 등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하느님께 사용될 때에는 하느님께 합당한 영광스러운 속성을 나타낸다.
즉 히브리어 '카보드'(kabod)는 희랍어 '독사'(doxa)와 함께 하느님의 존재 양식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한편 하느님의 영광의 가시적 현상과 관련되어 유대인들이 귀중하게 쓰는 단어로는 '셰키나'(shekinah)가 있다.
이것은 히브리어 '샤칸'(shakan)에서 유래하여 '머물러 거주하는 것'을 의미하며, 사람들 가운데 하느님의 현존과 임재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우리는 구약에서 하느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나타나신 때를 여러 번 볼 수 있다.
광야에서 굶주림으로 원망하는 이스라엘에 만나와 메추라기를 약속하실 때(탈출16,10).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계약을 체결하러 갔을 때(탈출24,16), 모세가 만남의 천막을 세우는 일을 마쳤을 때에도 주님의 영광이 거기에 충만히 내렸으며(탈출40,34),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 봉헌할 때에도 그러했다(1열왕8,11).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영광이란 말이 바로 그분의 현존과 임재를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바로 하느님의 현존과 임재를 보았던 것이다.
그는 사람이 되신 예수님에게서 하느님을 발견했던 것이다(요한10,30; 14,9).
2025년 12월 25일 목요일
[주님 성탄 대축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오늘 복음은 요한 복음서 전체의 요약이라 하겠습니다.
‘로고스 찬가’로 알려진 이 서문은 창조 이전의 “한처음”(1,1.2)에서 시작하여 창조를 거쳐(1,3 참조) 여러 세기에 걸쳐 준비된 말씀의 육화 사건을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1,14)라는 구절은 이 찬가의 핵심으로, 그리스 말을 그대로 옮기면 “말씀이 살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셨다.”입니다.
‘살’은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생생한 표현이자 피조물로서의 특성을 가리키는 가장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라는 교리에는 익숙하지만, 그분의 몸이 우리의 몸처럼 피로를 느끼고 병에 걸릴 수 있으며, 죽을 몸이요 냄새가 날 수도 있고 더러워지기도 하는 살이라는 사실에는 당혹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육화의 진실입니다.
육화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긍정이요 사랑 고백이라고 신학자 칼 라너는 말합니다.
“‘영원이신 분’이 ‘시간’이 되셨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의 모든 현실에 대한 마지막 설명이신 분이 육신이 되셨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마지막 말씀, 가장 아름답고 가장 깊은 말씀을 세상에 보내셨다.
바로 이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세상의 한 부분이 되어 오시면서 하시는 말씀, ‘세상아, 너를 사랑한다, 사람아, 너를 사랑한다. 로마노야, 데레사야, 너를 사랑한다.
너를 사랑하기에 너와 같이 되었다. 네가 되었다. 너의 그 비참함, 너의 죽을 운명까지도 나의 것으로 삼아 너와 일치되고 싶었다’”(『소 전례력, 기도의 길』, 15-16).
이는 믿기 어렵지만 사실입니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주님 성탄 대축일]
“내 모든 삶은 새 창조를 위한 하느님의 뜻이다. ”
양들이 풀을 먹을 수 있는 봄, 여름, 혹은 가을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을(루가2,7-11) 왜 로마 태양신(太陽神)의 축일인 12월 25일에 지낼까? 세상과 똑같이 성경(聖經)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 죽으러 오신, 곧 짐승들의 오물로 냄새나는 짐승들의 먹이 통에 누우신, 그 아기 예수님을 경배(敬拜)하며 기뻐들 할까? 물론 기뻐해야 한다. 그러나 색깔이 다르다. 퇴색 되었다. 세상과 함께 춤추지 말자는 것이다.
성경에서 날짜를 알려주지 않은 것은 그 날을 기념(記念)하지 말고 ‘하느님의 뜻을 깨달으라.’ 하심이다.(이사1,14참조) 곧 조용히! 하느님의 뜻을 묵상(黙想)할 때라는 얘기다.
복음(요한1,1-18)
1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 본 요한복음 1장과 창세기 1장은 같은 창조(創造), 곧 새 창조, 구원의 복음(福音)이다.
(창세1,1-3) 1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2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 땅, 육적 내 모습이다. 그곳에~-
3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 생명의 빛이다.
(티토3,3-5) 3 사실 우리도 한때 어리석고 순종할 줄 몰랐고 그릇된 길에 빠졌으며, 갖가지 욕망과 쾌락의 노예가 되었고, 악과 질투 속에 살았으며, 고약하게 굴고 서로 미워하였습니다.
= 육(肉)의 본능으로 사는, 곧 꼴을 갖추지 못한 어둠의 옛 사람이다.
4 그러나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호의와 인간애가 드러난 그때, 5ㄱ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 하느님의 은혜로 창조, 곧 새 창조, 구원의 빛으로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
(루가1,78-79) 78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티토3,5ㄴ) 5ㄴ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 성령(聖靈)을 통하여 물(생명수-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새것으로, 새 창조하였음이다.(2코린5,17)
(히브10,22)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 졌습니다.
6 이 성령을 하느님께서는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령과 하느님이 계심이다. 곧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삼위(三位)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두 들어있음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7 그리하여 우리는 그분의 은총으로 *의롭게 되어,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따라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 인간의 의로움으로 받는 구원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恩寵)으로 받는다. 곧 깨달아 얻은 믿음으로 받는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말씀)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 구유 예물함(禮物函)에 나 자신을 봉헌(奉獻)함이다.
☨ 은총이신 그리스도의 성령님!
말씀을 진리로 먹게 하시고, 주신대로 이루어지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5년 12월 25일 목요일
[주님 성탄 대축일(낮미사)] (김재덕 베드로 신부)
창조 전, ‘한처음’에 세상은 ‘어둠’과 ‘무질서’와 ‘공허’ 속이었습니다(창세 1,2 참조).
그런데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1,3) 하시자, 사람이 전혀 살 수 없던 상태가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상태로 바뀝니다.
하느님 말씀은 ‘생명의 질서’를 세우는 힘이 있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직역하면 ‘말씀이 살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또는 안에) 천막을 치셨다.’입니다.
‘살이 되셨다.’는 예수님의 육화를 뜻합니다.
그리고 ‘천막을 치셨다.’라는 표현은 탈출기에 나오는 ‘성막’을 떠오르게 합니다.
성막은 이스라엘이 어디를 가든지 그들과 함께 계신 ‘임마누엘’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합니다.
말씀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에 ‘천막’을 치셨고, “세상 끝 날까지”(마태 28,20)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제 우리 삶의 자리가 구세주 예수님께서 거처하시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든 삶의 여정이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살아 있는 구원의 역사’로 바뀌었습니다.
이 신비에서 예외가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의 신비입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구유에 누워 계신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빛으로, 구원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빛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아멘.
(김재덕 베드로 신부)
2025년 12월 25일 목요일[주님 성탄 대축일]
참 빛이 세상에 왔다.
<본기도> 하느님, 저희를 하느님의 모습으로 오묘히 창조하시고 더욱 오묘히 구원하셨으니 사람이 되신 성자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하게 하소서.
독서(히브1,1-6)
1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2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진리)에 앉으셨습니다.
<복음환호송> 알렐루야. 거룩한 날이 우리에게 밝았네. 민족들아, 어서 와 주님을 경배하여라. 오늘 큰 빛이 땅 위에 내린다. 알렐루야.
복음(요한1,1-18)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 세상 모든 피조물은 말씀으로 창조 되어 지탱 되고 있다. (독서)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요한3,18-19)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 하느님의 아들의 이름은 빛, 생명, 말씀이다.
사제☞ 죄의 특징은 거절(拒絶)입니다. 인간 본능적으로 빛을 거절하는 것, 죄입니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말씀)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야고1,18)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 영광 하느님의 신성과 본성인 이타적 사랑(아가페)이다. 그 영광, 사랑이 십자가(十字架)에 오롯이 들어있다. 인간의 지각(知覺)을 뛰어넘는 사랑이다.
(요한3,16-17)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십자가에)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콜로1,20) 20 그분(그리스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 시키셨습니다.
15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에페1,4-7)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대속) 그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16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은혜)에 은총을 받았다.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구원의 계약인 십자가에 전날 밤에~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에페2,7-9) 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호의로, 당신의 은총이 얼마나 엄청나게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시대에 보여 주려고 하셨습니다.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 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에페1,17-19) 17 (사도의) 그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18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19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1테살5,23-24) 23 평화의 하느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24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 사도의 기도가 저희에게 이루어지고, 사람이 되신 성자의 신성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령님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무리 성탄이 수 백 번 계속된다 해도 여러분 각자 마음 안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성 예로니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