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1월 02일 금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요한1,19-28)
제1독서<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1요한2,22-28)
사랑하는 여러분, 22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아버지와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가 곧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23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는 아무도 아버지를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아드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라야 아버지도 모십니다.
24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면, 여러분도 아드님과 아버지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25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26 나는 여러분을 속이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 글을 씁니다.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28 그러니 이제 자녀 여러분,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래야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의 재림 때에 그분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화답송>시편98,1.2-3ㄱㄴ.3ㄷㄹ-4(◎3ㄷㄹ)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
복음<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요한1,19-28)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1월 2일 성 대 바실리오 학자 기념일 제1독서(1요한 2,22-28)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속이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 글을 씁니다" (25-26)
'영원한 생명'으로 번역된 '텐 조엔 텐 아이오니온'(ten zoen ten aionion)에서 '영원한'으로 번역된 '아이오니온'(aionion)의 원형 '아이오니오스'(aionios)는 시간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을 가리킨다.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펼쳐질 영원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러한 영원한 생명은 미래적 약속일 뿐 아니라 현재적 약속이기도 하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즉각적으로 영생이 주어지게 되고 또한 그들은 하느님 안에서 풍성한 생명의 삶을 영위하게 된다. 그리고 종국에 가서 영원히 하느님과 함께 머무르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 약속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드님과의 일치이다(1요한2,23). 아드님 없이는 생명이 없고,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자에게만 영생이 있다(요한3,36; 1요한5,12).
한편 '생명'으로 번역된 '조엔'(zoen)의 원형 '조에'(zoe)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들이 가지게 될 생명을 뜻한다.
이 생명을 소유한 자에게는 부활의 약속과 천국의 희망이 주어지게 된다.
'속이는 자들'로 번역된 '톤 플라논톤'(ton planonton)에서 '플라논톤'(planonton)의 원형 '플라나오'(planao)는 '길을 잃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명사 '플라노스'(planos)에서 유래하며 바른 진리의 궤도를 걷고 있는 자를 이탈시켜 탈선시키는 것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유혹하다', '탈선시키다' 라는 뜻이다.
특히 여기서는 정관사를 동반하여 현재분사형으로 쓰였는데, 당시 초대 교회 공동체 안에 활동하고 있었던 특정한 '적 그리스도'적 인물과 집단으로서 사도 요한 당시에 대표적인 이단이었던 영지주의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그리스도인을 속이는 무리들로서 성도들에게 자신들의 거짓된 교리를 주입시킴으로써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되심을 믿지 못하게 하며 바른 신앙에서 이탈하도록 계속 시도하고 있었다.
이들의 특이한 점은 불신자들보다는 성도들을 속이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27)
27절에서 사도 요한이 말하는 '기름부음'(토 크리스마; to chrisma)은 20절에도 나오지만 성도에게 임하는 성령을 지칭한다. 그 성령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본절에서 '주님께'에 해당하는 '아프 아우투'(ap autu)는 '그분에게서'(from Him)라는 의미로서 성령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나타낸다.
그런데 요한 복음 14장 16절, 26절에 따르면 성령을 보내주는 분은 '성부 하느님'인 반면에, 요한 복음 16장 7절에 따르면 성령을 보내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요한 복음 15장 26절에 따르면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받아서 사도들에게 보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사도행전 2장 33절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받아서 성령을 부어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문의 '아프 아우투'(ap autu)는 일차적으로는 '성부 하느님으로부터'라는 의미이며 이차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라는 의미가 된다.
초대 교회 교부들이며 신앙의 옹호자들인 성 아타나시우스, 성 바실리오와 성 니사의 그레고리오는 성령이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성자에게서도 왔다는 사실을 반대하지 않았고, 일반적으로 서방 신학자들은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출하였다는 데에 동의하였다.
그렇게 해서 성도에게 임하신 성령은 성도의 영(심령) 안에(엔; en) 지속적으로 머무른다(메네이; menei).
사도 바오로는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자들에게만 성령이 내주하고 있다고 말하였다(1코린12,3). 그러한 성령은 성도의 영 안에서 슬퍼하기도 하시며(에페4,30), 탄식하기도 하시며(로마8,26),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도록 거룩한 열망을 일으키기도 하신다(갈라5,16.22.23).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27)
성도안에 머무르시는 성령께서 몸소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기 때문에(요한14,26), '그리스도의 적'(적 그리스도)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가르칠'로 번역된 '디다스케'(didaske)는 '디다스코'(didasko)의 현재 가정법이고, '가르치십니다'로 번역된 '디다스케이'(didaskei)는 '디다스코'의 현재 직설법이다.
여기서 사용된 '디다스코'는 모르는 내용을 가르쳐 알게 하는 것도 아니고 어느 특정한 시간과 기간 동안 다 가르쳐서 알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그때 그때 가르쳐주는 것을 가리킨다.
당시 초대 교회 공동체에 있었던 영지주의 이단들은 성령의 가르침보다는 사람의 가르침을 중요시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가르침을 지적인 기름부음으로 보았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영지(靈知)라는 지적 기름부음을 소유하고 있음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연약한 성도들을 속이고 유혹하였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이단을 염두에 두고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통한 가르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가르치십니다'의 '디다스케이'(didaskei)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해서 성령이 가르치는 것을 뜻한다.
사도 요한은 요한 복음 14장 26절의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는 말씀을 염두에 두고 이와같이 진술하였을 것이다.
(성 바실리오 기념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로고스 찬가’라고 부르는 서문(요한 1,1-18 참조)을 제외하면 요한복음은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세례자 요한의 “증언”에 초점을 맞추게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조금은 어색한 이 표현은 오늘 복음의 마지막에 언급되는 “너희가 모르는 분”, “내 뒤에 오시는 분”과 이어집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에게 가지고 있던 생각이 틀렸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뒤에 오시는, 아직은 사람들에게 드러나시지 않은 예수님이시라고 증언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야인지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세례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엘리야는 독특하게 세상에서 죽음을 맞지 않고 하늘로 불려 올라간 구약의 예언자입니다(2열왕 2,1 참조).
하느님께서는 그를 종말의 때에 앞서 백성들에게 보내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말라 3,23 참조).
다시 한번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에게 그 예언자인지 묻습니다.
그의 답은 여전히 부정적입니다.
“그 예언자”는 표현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이미 정해진 인물을 가리킵니다.
그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약속하신 것으로 후손들 가운데에서 일으켜 세울 ‘모세와 같은 예언자’입니다(신명 18,18 참조).
오늘 복음은 아니라고 부정하는 세례자 요한의 대답을 통하여 오히려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이시면서 엘리야나 모세와 같은 예언자, 곧 종말론적인 예언자이십니다.
두 표상 모두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보내실 구원자에 대한 기대를 나타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믿는다는 것, 같은 생각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1요한2,22-28)
22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아버지와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가 곧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곧 하느님께서 당신 외아드님을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의 적이다.(요한3,16)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의 의로움으로 받는 구원이 아닌, 인간들의 의로움으로 구원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다.(티토3,5)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예수그리스도께서 *실행하셨고 성령께서 *적용하셨다. 곧 십자가의 길을 진리로 증언하시며 그 진리를 믿는 이들의 무죄를 선언 하셨다.(로마8,1~)
23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는 아무도 아버지를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아드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라야 아버지도 모십니다.
= 예수님은 하느님의 일, 말씀을 실행하셨으니 예수님을 모른다면 하느님을 모르는 것이다.
24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면, 여러분도 아드님과 아버지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25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 처음부터 들은 약속을 간직하는 것이 영원한 생명이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1을 한 처음으로 시작해서 창조사건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 구원의 약속(말씀)을 정했다.
요한1서(1,1) 1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한다. 라고 시작한다. 그렇듯 오늘 본문 역시 처음부터 들은 것~으로 하느님의 사랑인 구원의 말씀을 간직하라는 것이다. 그 말씀이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이다.(요한1,4)
(창세1,1 2,2) 1,1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2,2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 창조는 육(6)일 동안 다 이루셨는데, 그런데 이렛(7)날에 다 이루셨단다. 그리고 그날이 쉼의 날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7(샤바-안식)이 쉼이라고 하신 것이데, 곧 창조6일 안에 들어있는 하느님의 사랑, 그 하나로 7(안식), 쉼이 되는 것이다. 그 사랑이 모든 죄를 덮으시고 품으시기 때문이다.
그들 중 하나를 예로 들자면, 창조 사흗날의 씨다. 빈땅을 위해 씨가 들어가 썩어 열매를 맺는(창세1,11), 그래서 빈땅이 존재(하늘)가 되게 하시는 그 사랑이다. 그것이 원시복음인 창세기 3,15. 20절의 여자(땅)를 살리는 후손(씨)인 것이고(후손-제라-씨), 그 후손이 죄인(여자)들의 대속으로 죽으시고 사흗날에 부활하신 십자가의 그리스도다(갈라3,16참조) 사흗날의 씨가 사흗날의 죽음과 부활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성경은 그렇게 그 처음의 일, 그 하느님의 사랑인 구원의 계획을 반복적, 점진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성경 전체는 다 그 말씀, 이야기다. 그렇게 하느님과 후손(씨)인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알아야 빈땅(여자)인 내가 하느님과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의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요한17,3) 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1요한5,20) 20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로마6,23) 23 죄가 주는 품삯은 죽음이지만, 하느님의 은사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사흗날의 씨의 희생, 사흗날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성경은 처음부터 그 십자가(대속)의 그리스도를 구원의 진리로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들려주신 그 말씀으로 구원,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속이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26 나는 여러분을 속이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 글을 씁니다.
= 교회 안에 거짓 그리스도, 거짓 예언자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마르13,22참조)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그리스도)에게서 기름(성령)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 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 성경을 도덕과 윤리로 사람의 말, 지혜로 가르치는 것, 거짓이라는 것이다.(티토1,14) 그러나 성령께서 보호하시며 가르치시기에 올바른 구원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어 거짓에 넘어가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이기에(2티모3,16) 그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하느님의 뜻을 깨달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1코린2,4-7참조)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영을 보내신다고 약속하셨고, 구하고 청하고 두드리면 주신다고 약속하셨던 것이다. 성령을 두드려서, 곧 읽고 묵상하면 그 말씀 안에서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로마8,9)
28ㄱ 그러니 이제 자녀 여러분, 그분(그리스도) 안에 머무르십시오.
= 말씀 안에 머무름인데- 보이는 예수님을 넘어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 안에 머무름이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진리의 그리스도, 진리의 성령이시다.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가 주는 용서, 해방, 자유가 말씀 안에 있다는 말이다. 성령께서 함께 하셔야 깨달을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것이다.
28ㄴ그래야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의 재림 때에 그분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 처음부터 들은 말씀, 씨, 후손이신 그리스도의 희생, 대속- 그 말씀과 그 말씀을 구원의 진리로 증언하실 성령과 함께 한다면, 하느님과 예수님 앞에 죄의 부끄러움(심판)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말씀 앞에, 죄의식으로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로마8,1-2)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티토2,14) 1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해방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시어,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 선행(善行)- 십자가의 대속, 그 구원의 진리를 전하여 죄인들을 살리는 착한 일, 그 선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곧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 하신 큰 계명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골로3,16) 6 이것들 때문에 하느님의 진노가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내립니다.
☨은총과 진리의 성령님! 올 한해도 늘 당신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저희 모두가 의탁합니다.~아멘!!!
1월 2일 성 대 바실리오 기념일 복음(요한1,19~28)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7)
여기서 '뒤에'로 번역된 '오피소'(opiso; after)는 장소에 관한 부사가 아니고 시간 부사로 쓰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자 요한보다 시간적으로 뒤에 오셨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출생에 있어서도 예수님께서는 6개월이 늦으셨고, 활동을 시작하신 것도 그렇다.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도록 파견된 일꾼이므로, 언제나 그분보다 시간적으로 앞서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오시는 분'으로 번역된 '호 에르코메노스' (ho erchomenos; one who comes; He who comes)이다.
그리스도교는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시작되었으므로, '오시는 분'의 사상은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요한의 문헌들에서는 예수님의 오심에 관한 언급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요한 복음 7장 28절의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요한 복음 8장 42절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다.' 요한 복음 5장 43절의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요한 복음 10장 10절의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요한 복음 12장 47절의 '나는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라는 구절들이 있다.
또한 그분의 오심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그분은 지금도 각 사람들을 찾아오셔서 문을 두드리시며 앞으로도 그러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심판하시는 주님으로 재림하실 때까지는 끊임없이 각 사람을 찾아오셔서 구원의 초청에 응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신다.
여기서 '오시는 분이신데'로 번역된 '에르코메노스'(erchomenos)가 현재 분사인 것은 예수님께서 계속 우리에게도 '오시는 분'임을 알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오시는 분'의 개념은 주님의 재림과도 관련된다.
요한 복음 14장 3절의 '내가 ~다시 와서'라는 표현에 이러한 사실이 잘 드러난다. 그분께서는 약속대로 다시 오신다.
어느 누구도 그날과 그 시간을 알 수 없지만(마태24,36), 오로지 하느님께서 정하신 그때에 다시 오실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도둑같이 오실 주님의 재림에 준비하지 않는다면, 영원한 그분의 생명과 복락의 나라에 결코 참여할 수가 없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라는 것은 일상의 삶 속에서 죄와 불의를 멀리하고, 거룩하고 흠없으며 경건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세례자 요한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와 관련해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자신을 종으로 비유하는데, 자신은 유대인 가정에 있는 종 가운데서도 가장 비천한 종이 하는 일인, 외출에서 돌아온 주인의 신을 벗기고 발을 씻어 주는 자격조차 없음을 '나는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는 표현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세례자 요한이 자신을 종보다 더 못한 존재로 극진히 낮추는 것은 바로 이어 등장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기 위함이다(마태3,11; 마르1,7; 루카3,16참조).
2026년 01월 02일 금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이철구 요셉 신부)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한 1,23)라고 말합니다.
저는 ‘광야’라는 낱말을 보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 앞섭니다.
광야에 서면 나 자신의 모든 것이 그대로 다 드러나고, 나 자신과 치열한 싸움을 마주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삶의 어떤 조건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그곳은, 내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욕심에 가득 차 있는지를 깨닫게 할 것 같아, 할 수 있는 한 광야보다는 세상이라는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제 마음입니다.
견딜 수 없는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광야는 예수님께서 유혹을 받으셨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 광야에서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였고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1,27)라고 고백하며, 주님 앞에서 겸손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리는 광야에 당당히 설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은수자가 광야에서 주님을 찾았듯이, 우리도 광야에 서서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또한 주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 속에서, 우리는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자연스럽게 겸손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 모두 ‘광야에 선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도 세례자 요한처럼 겸손한 자세로 주님의 앞길을 준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철구 요셉 신부)
2026년 01월 02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처음부터 들은 것
독서(1요한2,22-28)
여러분, 22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아버지와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가 곧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23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는 아무도 아버지를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아드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라야 아버지도 모십니다.
=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외아들 예수님이시다. ‘하나’시다(요한17,8.21)
24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면, 여러분도 아드님과 아버지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25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처음부터 들은 것~
(요한1,1.4.9-12.14) 1 한 처음에 말씀이 게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 어둠인 세상이 빛이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 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 하느님의 외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 성령께서 증언하신다.(요한15,26)
26 나는 여러분을 속이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 글을 씁니다.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성령)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 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 성령을 청하고 의탁함이다.
(요한14,26)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28 그러니 이제 자녀 여러분,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래야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의 재림 때에 그분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요한1,19-23)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 소리- 콜 = 코프(파괴하고 다시 세우다) +라메드(가르치다. 교훈하다). 곧 가르쳐서 옛사람을 파괴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다시 세우는 것. 곧 복음 선포다.(2코린5,17)
‘콜’에서 파생된 말이 ‘카라’(초청하다). ‘카라’에서 나온 말이 ‘파라칼레토스’(성령)- 보호자 성령이시다. 보호자 성령께서 이끄시고 완성하신다.
(1코린2,9-10) 9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로마8,12-14) 12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육에 따라 살도록 육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
= 그리스도께서 육적인 모든 것을 대속하셨기 때문이다.
13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14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에페3,16-17) 16 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17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 (~아멘)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이신 천주의 성령님!
말씀하신대로 저와 이웃에게 이루어 주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