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1월 08일 목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루카4,14-22ㄱ)
제1독서<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합니다.>(1요한4,19-5,4)
우리가 하느님을 19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20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21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5,1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2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면, 그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3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4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화답송>시편72,1-2.14와 15ㄷㄹ.17(◎11) ◎ 주님, 세상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경배하리이다.
○ 하느님, 당신의 공정을 임금에게, 당신의 정의를 임금의 아들에게 베푸소서. 그가 당신 백성을 정의로,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
○ 그의 눈에는 그들의 피가 소중하기에, 그는 억압과 폭행에서 그들의 목숨을 구하리이다.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늘 기도하며, 날마다 축복하게 하소서. ◎
○ 그의 이름 영원히 이어지며, 그의 이름 해처럼 솟아오르게 하소서. 세상 모든 민족들이 그를 통해 복을 받고, 그를 칭송하게 하소서. ◎
복음<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루카4,14-22ㄱ)
14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
15 예수님께서는 그곳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다.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주님 공현 후 목요일 제1독서 (1요한4,19-5,4)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4,20)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형제를 사랑하게 된다는 사실과 또한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 가운데서 본문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임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사랑한다'로 번역된 '아가포'(agapo)는 하느님 대전에 올려드리는 신앙 고백적인 어투가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서 뱉어진 말이다.
그리고 '거짓말쟁이'로 번역된 '프슈스테스'(pseustes)는 하느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자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는 당연히 형제를 사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미워하면'으로 번역된 '미세'(mise)의 원형 '미세오'(miseo)는 강한 의지로 어떤 대상을 싫어하고 증오하는 의미도 있지만(히브1,9) 보다 덜 사랑하는 상태를 가리키기도 한다(로마9,13).
본절인 요한1서 4장 20절에서 사용된 '미세'(mise)는 이웃에 대한 이러한 두 가지 감정을 다 포함하는 내용이다.
특히 여기서 이 단어는 가정법 현재 능동태로 사용되어 형제에 대한 지속적으로 이러한 부정적 감정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요한1서 4장 20절 후반부에서는 눈에 보이는 형제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대조되고 있다.
'눈에 보이는'으로 번역된 '헤오라켄'(heoraken; he has seen)의 원형 '호라오'(horao)는 눈으로 보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이다.
하느님께 대해서는 이 동사와 더불어 부정어 '우크'(uk)가 함께 쓰여 하느님은 인간의 눈으로 절대로 볼 수 없는 분이심이 잘 드러나고 있다.
순수한 영적 존재이신 하느님께서는 그 어느 누구도 볼 수 없다. 인간의 눈으로 영적인 존재를 인식할 수 없고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혹 보는 일이 있더라도 부정(不淨)한 인간으로 절대 거룩하신 하느님을 보는 것은 죽음을 가져온다(탈출33,20).
한편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더 쉬운 일인데, 이렇게 보다 쉬운 형제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사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검증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형제에 대한 사랑은 쉽게 검증된다.
따라서 하느님을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의 여부는 형제 사랑의 여부로 확인할 수 밖에 없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을 사도 요한은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당시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떠들어대는 이단들의 거짓말들을 매우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2026년 01월 08일 목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김동희 모세 신부)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에서 밝히신 당신 공생활의 출사표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이어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의 눈길이 당신께 향하고 있을 때 짧은 한마디를 하셨습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4,21).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설명하시지 않았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신 가운데 사람들을 찾아 나서신 당신 사랑의 행보와 더불어 ‘지금 여기에서’ 그것이 실현되고 있음을 밝히셨습니다.
가난한 이들, 잡혀간 이들, 눈먼 이들, 억압받는 이들은 저마다 사정은 다를지라도 모두 감내해야 할 삶의 무게가 만만하지 않은 이들입니다.
그러기에 체념과 포기 한편에 또 그만큼의 간절함을 품고 살아왔겠지요.
예수님의 말씀에서 얼마나 많은 이가 감격과 위안을 느꼈을지 짐작이 갑니다.
한 달에 한 번 아버지가 계신 요양원에 미사를 갑니다.
그때마다 열 분 조금 넘게 미사에 오십니다.
귀가 어두운 분들이 많아 제가 목소리를 높여 경문을 읽으면 그분들도 큰 소리로 우렁차게 화답해 주십니다.
치매 어르신들이 많은데도 기도문은 참 잘 외우십니다. 신앙의 신비입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는 또 힘을 내어 서로 사랑합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
사랑의 계명
(1요한 4,19-5,4)
19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 성경의 사랑이란? 인간의 사랑이 아닌 하느님의 사랑을 말씀하심입니다.
1요한 4,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 남을 위해 대신 죽을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참으며 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기뻐하는 마음으로 내 자신처럼 생각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 사랑, 하느님만이 하신 사랑입니다. 사람은 그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20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 하느님께서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원수를 위해서도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러니 그의 잘못도 용서 받았음을 인정하라는 말씀입니다.
21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형제에게 십자가의 대속 그 죽음 그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 주어 용서받게 해주는 그 사랑, 형제를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아무리 많이 주어도 형제의 잘못을 없애주지는 못하쟌아요? 인간의 사랑은 구원의 능력이 없기 때문에~
구원을 위한 사랑은 흠도 티도 없는 깨끗한 완전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5,1ㄱ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 보이는 치유, 그 능력의 예수님이 아닌 그 보이는 기적(표징) 속에 보이지 않는 대속의 용서 그 구원의 그리스도를 깨달아 믿는 사람 덮음, 대속의 사랑 그 하늘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으로~~~ 그가 위로부터 다시 태어난(요한3,3)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마르코복음에서 나병환자가 치유 받음은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이 되어라. 그러자 곧 병이 가셨다.(1,41)- 하십니다.
그 ‘내가’ 십자가의 그 내가 흠도 티도 없는 그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짐, 용서 받았음을 믿는 것, 예수님을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5,1ㄴ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 아버지를 사랑한 사람은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뿐이십니다. 모든 사람, 많은 사람이 하느님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필리3,18 로마3,10! 시편14,1~ 코헬9,20) 그래서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완전히 순종하셔서 하느님의 자녀인 죄인들을 위해 사랑으로 당신의 목숨을 바치러 오셨습니다.
우리가 그 아버지와 예수님의 목숨 바치는 사랑을 형제들과 서로 나누는, 그 서로 사랑함을 말씀하심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그 인간들끼리의 사랑은 道理이지 信仰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2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면, 그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하느님의 계명 실천~ 십자나무 하나의 희생(탈출15,25). 그 대속을 진리로 믿고, 그 진리를 전해주는 것, 그래서 이웃들도 그 십자가를 의지하여 용서의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계명의 실천이며 그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3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4ㄱ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 세상은 선악의 그 罪, 義, 審判이 옳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세상의 죄, 심판을 어린양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없애셨습니다.
콜로 2,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15 권세와 권력들의 무장을 해제하여 그들을 공공연한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을 이끌고 개선 행진을 하셨습니다.
1고린 15,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4ㄴ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 믿음의 승리입니다.
1요한 5,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요한3,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 그 속죄의 제물-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 구원(생명)의 진리임을 믿는 것, 우리의 승리입니다.
♡아멘♡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성령에 이끌려”(루카 4,1) 광야로 가신 예수님께서 사십 일 동안 악마의 유혹을 이기시고,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선포하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이사 61,1).
루카 복음은 다른 복음보다 ‘성령’을 자주 언급하며, 예수님 활동의 힘(근원)이 성령께 있음을 강조합니다.
성령의 힘으로 공생활을 시작하시는 예수님의 시선은 먼저 ‘가난한 이들, 잡혀간 이들, 눈먼 이들, 억압받는 이들’을 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시고, 이들을 치유하시려고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주님의 은혜로운 해”, 곧 구원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그리고 이어지는 짧은 말씀은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합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는 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느님 말씀이 ‘오늘’ 그리고 ‘여기’에서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참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복음은 우리를 통하여 ‘지금 그리고 여기’에 선포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를 통하여 ‘지금 그리고 여기’에 실현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우리의 복음 선포와 사랑의 실천이 무엇보다 먼저 ‘가난한 이들, 잡혀간 이들, 눈먼 이들, 억압받는 이들’을 향할 수 있도록 성령의 은혜를 청합시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받아들임, 그 실천이 살(존재)게 한다.
(루카4,14-22ㄱ)
14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께서 내리셨고~
(루가4,1) 1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 아담이 뱀의 유혹으로 받았던 육(빵)의 욕망, 명예의 욕망, 종교적 욕망을, 예수님께서 다시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시고 말씀으로 모든 유혹을 물리치시고 돌아오신 것이다. 그 예수님과 함께 할 때, 그 모든 욕망에서 자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15 예수님께서는 그곳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다.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그리스도)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 마음이 가난한 이다. 곧 사탄의 유혹인 빵의 기적, 그 육의 욕망이 없는 마음이 가난한 이에게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라. 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
(마르10,45)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요한10,28)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요한11,25)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세상의 목숨보다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기다렸던 그 마음이 가난한 이에게 기쁜 소식이다.
*잡혀간 이들~ 사탄이 약속했던 세상의 권세와 명예에 잡혀 쉼(안식)을 모르는 이들에게 그 기쁜 소식으로 해방을 선포하라 하신다.
*눈먼 이들~ 사탄의 유혹으로 기적, 신화 등 종교적 욕망으로 그리스도의 대속, 그 구원의 진리를 모르는, 그 눈먼 이들에게 진리를 보게, 깨닫게 하라 하시며,- 그래서 그 모든 욕망, 곧 거짓그리스도들의 거짓 가르침으로 억압 받는 이들을 해방시키라 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의 때,~ 곧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누리는 자유, 기쁨의 은혜의 때가 되었다는 말씀이다.
(히브10,9-10. 12. 14) 9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10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12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14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로마3,24)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 그 기쁜 소식, 말씀(생명수)은 가난하고 삶에 지친, 그래서 갈망하는 이들에겐 福音이다.
(묵시22,17) 17 성령과 신부가 “오십시오.” 하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듣는 사람도 “오십시오.” 하고 말하여라. 목마른 사람은 오너라. 원하는 사람은 생명수를 거저 받아라.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 예수님께서 말씀이신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이다. 말씀은 살아 계신다. 운동력이 있으시다는 것이다. (히브4,12) 그러므로 선포와 동시에 이루어진다. 천지창조도 말씀으로 이루셨다. 그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 말씀께서 말씀으로 마음이 가난한 이들, 그리고 거짓 그리스도인들의 거짓말로 세상 욕망에 잡혀 눈 멀고, 억압 받는 모든 이들에게 기쁜 소식으로 은혜의 해방을 주신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이루어진다. 그 받아들임이 오늘 독서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세상을 이긴 사람인 것이다.
그 기쁜 소식, 십자가의 복음으로 형제를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형제의 잘못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대속으로 용서하셨으니 형제를 미워할, 용서할 자격이 나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그 진실을 인정할 때, 용서가 되는 것이고,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대속, 그 십자가로 매일 용서하고 매일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그래야 산다)
그래서 우리에게서 남을 욕하고, 판단하는 그 행위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의 중심의 그 본성으로 자꾸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 십자가의 복음을 이웃에게 전하는 것, 이웃 사랑이다. 그 모든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 세상을 이긴 승리인 것이다.
제자들이 풍랑이 이는 밤 바다에서 힘들어 할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가시며~
(요한6,20-21) 2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1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하는데, 배는 어느새 그들이 가려던 *곳에 가 닿았다.
= 받아들이는 그 자체가 이루어짐인 것이다. ‘오늘, 지금, 여기서’ 이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 놀라워만 하면 안 된다. 좀 더 진지해져야 한다. 오늘 가난하고, 눈 멀고, 억압 받는 그들이 나 자신의 모습임을 깨닫고 주님의 은혜를 입어야 한다. 다른 이들이 받는 은혜, 곧 성경 속 인물들이 받는 은혜, 그 이야기에 놀라워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은혜를 오늘, 말씀을 되새기는 기도로 받을 수 있다.
오늘 말씀이 나를 찾아 오셨다. 그 말씀을 잉태하면(받아들이면) 우리 집안을 다스리시는 구원자를 성령께서 낳게, 깨닫게 하신다고 약속하신다. 하느님께서는 불가능이 없다 하시면서~
(루가1,31. 38)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말씀을)하여 아들을 낳을(깨달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구원자)라 하여라.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가 말씀을 잉태하여 은혜를 낳게(입게)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멘!!!
주님 공현 후 목요일 복음 (루까4,14-22ㄱ)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0~21)
'시중드는 이'에 해당하는 '휘페레테'(hyperete; the attendant; the minister)의 기본형 '휘페레테스'(hyperetes)는 원래 '하급 노잡이'(subordinate rower)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는 대다수 자신의 손으로 윗사람을 섬기는 자라는 뜻으로 쓰였다(마태5,25; 마르14,54; 루카1,2; 요한7,32).
여기서는 회당에서 성경 두루마리를 관리하고, 회당을 청소하는 봉사 직책을 담당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내려오는 전통적 순서를 따라 그 사람에게 성경 두루마리를 건네주신다.
일반적으로 회당에 초청된 랍비들은 일어서서 성경을 봉독한 후에 그것을 회당지기, 즉 '핫잔'(hazzan)이라고 불리우는 사람에게 주고 마련된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읽은 성경에 대한 가르침을 베푼다. 이때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는 것은 당시의 회당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대목인데, 당시 예수님의 활동에 대한 소문이 퍼져 있었던 것을(루카4,14) 감안한다면, 다른 어떤 랍비들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성경 봉독 후 예수님께서 하신 교훈이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길었고, 내용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루카 복음사가는 4장 21절과 4장 18절,19절의 내용만으로도 예수님께서 베푸신 교훈의 요지를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없기에, 이렇게 압축 요약해서 전달하였다.
여기서 '이루어졌다'로 번역된 '페프레로타이'(peplerotai; is fulfilled)는 구약 예언의 완성과 성취를 묘사하는 전문 용어 '플레로오'(pleroo)의 완료 수동태로서 이사야서 61장 1절과 2절의 예언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회당의 청중들에게 이미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즉 이사야서 61장 1절과 2절에 나오는 '주님의 영을 받은 의로운 종'은 예수 그리스도 당신 자신을 가리키며, 당신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활을 시작하는 시점에 이미 그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이심을 증명하는 중요한 예언으로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앞으로 계속 성취될 예언이기도 한 것이다.
즉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고, 죄와 죽음의 포로되었던 이들이 자유롭게 되며, 영적으로 눈먼 이들이 진리를 보게 되고, 좌절과 절망에 빠진 이들이 희망 가운데 기쁨을 회복하며, 주님께서 베푸실 구원의 은혜의 해(레위25,8~55참조)가 도래하는 일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되었고, 또한 성취되어 가는 것이다.
2026년 01월 08일 목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이철구 요셉 신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기쁜 소식, 곧 복음을 선포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복음은 먼 미래에 이루어질 무엇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 삶 안에서 실현되는 은총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도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합니]다”(4,22).
그런데 마치 복음 선포처럼 보이지만 조심해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거짓 예언자의 선동이 한 예입니다.
주님의 복음 선포는 우리의 삶을 바꾸고 회심에 이르게 합니다. 또한 복음은,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그것을 실천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말씀이 됩니다.
그러나 거짓 선동은 이해관계에 놓인 경우가 많고, 모든 사람을 위한 주장인 듯 보이지만 대부분 소수의 이익을 위한 주장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빌려 과장된 목적을 주장하거나, 그것이 마치 주님의 뜻인 것처럼 복음을 이용합니다.
우리는 참된 복음의 선포자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 4,12)라는 말씀처럼,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힘과 위로를 얻고 그 말씀 안에서 사랑을 전하는 참된 선포자로 살아갑시다.
(이철구 요셉 신부)
2026년 1월 8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우리의 삶(신앙)은 믿음을 위한 것.
제1독서(1요한4,19-5,4)
19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 우리에게는 사랑이라는 것이 없기에 하느님께서 먼저 사랑 해 주신 것이다. 곧 당신 아드님을 속죄 제물로 내어주신 그 사랑을 받았다.
(로마5,10)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대속)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 피조물인 우리는 창조주 하느님의 뜻을 적대하며 내 뜻을 위해 하느님을 방법(方法)으로 삼았던 원수다.
(2코린5,21) 21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 사랑을 먼저 주신 그 하느님을 믿는 것, 우리의 사랑이다.
20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21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원수였던 나를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의롭게 하시어 당신 자녀로 삼아 주셨다면 웬수 같은 내 이웃도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인정하는 그것이 용서,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을 먼저 깨달아 믿어야 형제적 사랑이 나온다.)
그것이 안 되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형제,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하느님 사랑, 곧 구원을 위한 믿음과 관련이 없는 것이다.
5,1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 그리스도의 대속, 곧 새 계명, 새 계약의 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나 뿐만 아니라 이웃, 특히 웬수까지도....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녀로 인정(認定)하는 사랑을 해야 하는 것이다.
2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면, 그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하느님의 계명은 진리이며(1요한2,4), 진리는 하늘(그리스도)의 대속이다.(요한14,6) 그 진리를 이웃에게 주는 것, 죄의 용서로, 구원으로 살리는 사랑이다.
(1요한3,23) 23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요한6,29)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3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 힘겹지 않는 계명을 지키는 것, 그리스도의 대속, 그 진리를 율법(제사와 윤리)에 빼앗기지 않고 믿음으로 마음 안에 간직(지키는)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힘들지 않게 된다.
4 그래서, 하느님에게서 (다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모든 죄가 다 씻겨 의롭게 다시 태어난 우리들이다. 곧 죽음을 부르는 율법의 모든 계명을 예수님께서 당신의 대속, 그 죽음으로 다 이루시고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그 그리스도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임을 믿었을 때 힘들지 않게 된다.
(1코린15,56-57) 56 죽음의 독침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복음(루카4,18-19.21)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이사61,1-2)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 말씀이 살아 계시다는 것이다. 말씀이 일 하신다는 것이다. 그 말씀으로 율법(제사와 윤리)의 열심, 의로움이 구원을 줄 수 없음을 깨닫고 자신의 열심, 행위, 의로움을 갖지 않는(否認)한 그 가난한 이가 그리스도로 거저 의롭게 되고, 율법 곧 제사와 윤리, 죄에 묶인 이들이 해방되며, 그 인간의 의로움 때문에 십자가의 대속, 그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진리로 보지 못한 눈 먼 이들이 다시 보게 되고, 율법에 억압받는 이들, 곧 무거운 짐 같은 사람의 규정과 교리 신앙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말씀으로, 믿음으로..........
열심한 종교 행위로는 절대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말씀 안에 머무를 때, 성령께서 깨닫게 하심으로 생기는 것이다.(요한8,31-32참조)
☨ 진리이신 천주의 성령님!
말씀이 듣는 가운데 이루어짐을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소서. 깨달음을 주소서. 믿음을 주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