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신부를 차지하는 신랑 (요한3,22-30)

2026. 1. 9. 오전 7:18:22

글자

20260110일 토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신부를 차지하는 신랑 (요한3,22-30)




1독서<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1요한5,14-2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14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5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16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17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18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19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20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21 자녀 여러분, 우상을 조심하십시오.

 

<화답송>시편149,1ㄴㄷ-2.3-4.5-69(4)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신다.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충실한 이들의 모임에서 찬양 노래 불러라.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분을 모시고 기뻐하고, 시온의 아들들은 임금님을 모시고 즐거워하여라.

춤추며 그분 이름을 찬양하고, 손북 치고 비파 타며 찬미 노래 드려라.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

충실한 이들은 영광 속에 기뻐 뛰며, 그 자리에서 환호하여라. 그들은 목청껏 하느님을 찬송하리라. 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에게 영광이어라.

 

복음<신랑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요한3,22-30)

2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24 그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25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26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27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8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30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주님 공현 후 토요일 제1독서 (1요한5,14-21)

 

"누구든지 제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16~17)

 

요한 1서의 맺음말(5,13~27)도 요한 복음처럼 이 글을 쓰는 목적을 다시 밝힌다.

요한 복음에서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집필 목적이었는데(요한20,31), 여기서는 하느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이 이미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 집필 목적이라고 말한다(1요한 5,13).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1요한 1,1)

이렇게 머리말이 생명의 말씀으로 시작된 요한 1서의 가르침이 '이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1요한5,20)라는 신앙 고백으로 끝을 맺는다.

 

오늘 말씀에서 특이한 것은 '죽을죄'(1요한 5,16)에 관한 언급이다.

'누구든지 제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죽을죄'와 '죽을죄가 아닌 죄'가 무엇인가?

구약에서는 '살인, 간음, 배교'를 죽을죄<대죄(大罪)=중죄(重罪)=사죄(死罪)>라고 했다.

 

신약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교회는 하느님의 천주성(신성)에 참여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은혜 '생명의 은총'(성화은총=초성은혜=상존성총)을 잃어버리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죽을죄'(대죄) '죽을죄가 아닌 죄'(소죄) 구분된다.

 

윤리신학에서나 교리에서는 '대죄'와 '소죄'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우리 인간은 생각과 말과 행위로 대죄를 짓는다. 대죄가 성립되려면, 세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계명과 지성의 인식 행위와 자유 의지의 동의이다.

 

우리가 무슨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할 때,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는 줄 분명히 지성으로 알면서도 자유 의지로 좋아서 동의할 때 대죄가 성립되고, '생명의 은총'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 '생명의 은총'은 세례성사때 예수님의 십자가상 구속(해방)사업의 공로로 주어진 것인데, 대죄를 지음으로 잃게 된다.

 

오늘 독서에서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지은 사람을 위해서는 하느님의 생명(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간구(청)하라고 가르친다(1요한 5,16).

 


 

  

 01월 10일 토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김동희 모세 신부)

 

어느 날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이야기합니다.

“요르단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요한 3,26).

그런데 요한이 뜻밖의 대답을 합니다.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3,29-30).

요한은 참으로 겸손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과 경쟁하려 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전하는 인류 최초의 죄는 하느님과 한 경쟁입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어느 날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습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지]?”

하느님을 야박하기 이를 데 없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하와가 저항합니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시 뱀이 유혹합니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될까 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하느님을 사람이 자신처럼 되지 못하도록 시기하시고 경쟁하시는 분으로 의심하게 합니다.

그리고 원조들은 마침내 하느님에 대한 의심과 경쟁심으로 타락하고 말지요.

오늘 요한은 이 모든 것을 되돌려 놓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으로 커지셔야 하고 우리 자신은 작아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멋진 신랑이시고 우리는 그분 최고의 사랑스러운 동반자, 신부입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죄 중에는 죽을죄가 아닌것도 있다?

 

(1요한5,14-21)

 14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 아드님에 대한 확신

 

(요한3,16)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죄의 속죄 제물로 주셨기에 그분의 십자가로 하늘의 생명을 받을 것을 믿는 확신이다.

그 하느님의 뜻인 영원한 생명을 위한 기도와 신앙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요한6,39-40)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15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 하느님의 뜻인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기에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와 네가 함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느님의 말씀과 계명을 구원의 진리로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믿음을 청한다면 들어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큰 계명의 이웃을 지키기 위해서 진리의 성령을 우리의 보호자로 주셨다.

 

16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17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 말씀이 너무 어렵다.(오소서 성령이여~) 예수님은 모든 죄인들을 구하시려 당신의 목숨을 바치려 오셨다.(마르10,45) 그런데 죽을 죄가 아니면 기도하라? 말씀이 이해가 안 된다.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기 때문이다.

죽을죄가 아니면, 곧 죄가 아직 죽은 죄가 아니면~용서받지 못해 죄가 살아있다면 기도하여 구원을 받게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할 필요가 없는 죽을죄란 이미 죄를 용서받아 죄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는 하늘의 생명(성령)을 받아 이미 이 세상에서 하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다. 그러나 십자가로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18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신앙인이라고 왜 죄를 짖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아닌가? 그래도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이다.

 

(로마8,10)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히브10,14) 4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 성령께서 생명으로 계시고 그리스도의 피로 영구히 거룩하게 완전하게 되었으니~ 우리에게 죄가 성립이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전능하신 분의 죽음의 힘, 당신 아드님을 대속으로 내주신 그 사랑의 힘이며 영원히 살아 움직이시는, 일하시는 구원의 새 계약, 법, 말씀이다. 그래서 악마가 죄를 빌미로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19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늘의 백성, 자녀들이지만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 악마의 거짓 유혹을 받는다는 것이다.

 

20ㄱ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 거짓,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진리를 깨닫게 하실 성령을 보내신 것이다.

 

(요한16,13)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요한2,27)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20ㄴ우리는 참되신(진리)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21 자녀 여러분, 우상을 조심하십시오.

= 오늘 말씀의 결론이다.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외에 다른 것들을 믿고 의지 한다면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골로3,5) 5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

= 세상이나, 믿는다는 우리나, 인간 본능인 자신의 뜻을 위해 욕심, 탐욕을 부리며 산다. 우리 모두가 자신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다는 것을, 그 모습으로 신앙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십자가를 구원의 진리로 의탁하지 않고 자신의 희생, 열심을 더 가치로 여기며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니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 아직 자신을 버리지 못한(죽이지 못한) 그 죄의 용서를 위한 기도가 필요한 죄인이라는 것이다.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것이다.

 

예전에 묵상했던 탐욕(에피 투미아)을 기억해 보면~

(루가22,15) 15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고난을 겪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

= 우리 죄인들에게 당신의 몸을 생명의 양식으로, 당신의 피(죽음) 로 맺는 구원의 새 계약을 주실 때에 간절히 바랐다- (에페 투미아)탐욕이다. 탐욕은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믿는 대상이 잘못된 것이 탐욕, 우상이며 믿는 방법이 잘못된 것이 미신이다.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가 당신으로 충만케 하소서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오늘의 묵상]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주님 세례 축일을 하루 앞둔 오늘 세례자 요한이 등장합니다.

오늘 복음은 ‘세례’를 통하여,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관계를 극적으로 드러냅니다.

대화가 전개될수록 이야기의 무게 중심이 세례자 요한에게서 예수님께로 완전히 옮겨지는 느낌입니다.

뒤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례를 준 것이라고 바로잡히지만(요한 4,2 참조), 예수님께서는 유다에서, 세례자 요한은 애논에서 세례를 줍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자신의 사명에 최선을 다합니다.

 

요한은 이미 자신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으로 증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증언은 자신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하는 결실을 거두었습니다(요한 1,35-42 참조).

그런데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께 세례를 받으러 가는 것’이 못마땅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바로 그리스도라고 증언합니다.

‘신부’인 이스라엘이 준비하고 맞이해야 하는 ‘신랑’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신랑의 친구’로서 충만한 기쁨을 얻었던 세례자 요한은 이 증언을 끝으로 무대에서 물러납니다.

작아져야 하는 세례자 요한의 삶은 커지셔야 할 예수님의 삶 안에 녹아 들어갑니다.

 

이제 구원의 무대에는 예수님만 계십니다.

그분께서 메시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언제나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합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주님 공현 후 토요일 복음(요한3,22~30)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6~27)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의 스승 세례자 요한 보다 늦게 등장하였으며, 세례자 요한에 의하여 세례를 받았던 예수님께서 자신의 스승보다 더 인기와 명성이 있게 되자, 이것을 시기하여 예수님을 폄하하는 호칭을 쓰고 있다.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이라는 호칭 속에는 존경의 의미가 보이지 않으며, 동시에 스승님이신 세례자 요한에게 의존하는 자라는 뉘앙스를 주고 있다.

 

여기서 '증언하신던'에 해당하는 '메마르튀레카스'(memartyrekas)는 완료형으로 사용되었는데, 희랍어에서 완료형은 과거 행하여진 동작의 영향이 현재에까지 미치는 것을 나타내므로, 이러한 표현은 그들이 예수님을 아직 세례자 요한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생각이 잠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로'에 해당하는 '이데'(ide; behold)는 '보라'라는 뜻으로 '에이돈'(eidon) 명령형인데, 말하는 사람이 어떤 것에 주의를 집중시키고자 할 때 쓰는 말로서, 이것을 통해 당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인기에 시기와 불안을 느끼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의 관심은 자기들의 지도자인 세례자 요한이 영향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는 현실에만 쏠려 있어서, 군중들이 세례자 요한을 외면하고 예수님에게로 몰려드는 것이 세례자 요한에게는 중대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했다고 본다.

 

여기서 '가고 있습니다'로 번역된 '에르콘타이'(erchontai)는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현재형으로 사용되었으므로, 세례자 요한을 만나고자 찾아오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몰려갔으며, 이런 현상이 계속 진행중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요한 복음사가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의 말을 빌어서 이제 세례자 요한의 시대가 가고 예수님의 시대가 새롭게 열리고 있음을 객관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사람은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

 

세례자 요한의 하느님 중심 주의적 신앙과 겸손이 잘 배어있는 구절이다.

그는 자신의 몫과 예수님의 몫이 각각 다르다는 사실과 이것을  정해 주신 분 '하늘', 곧 하느님이심을 알고 있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과 자신 사이를 마치 경쟁 상대(라이벌)라고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예수님께 대하여 시기하고 폄하하는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이다.

 

여기서 '아무 것도'로 번역한 '우데 헨'(oude hen; not even one)은 '하나도 ~아니다' 라는 뜻인데, 앞에 나오는 '없다'로 번역된 부사 '우'(ou)를 강조해 준다.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이중 부정을 통해 하늘에서 주어진 것만 사람이 받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것은 '하늘로부터'에 해당하는 '에크 투 우라누'(ek tou ouranou; from heaven)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뿐이다(only what is given him from heaven).

 

세례자 요한은 참으로 사심없는 하느님의 일꾼이며 종이었고, 하느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하는 신본주의자(神本主義者)였다.

 

 

 

  

20260110일 토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이철구 요셉 신부)

 

같은 장소라도 마음이 편할 때가 있고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또 칭찬을 들으면 보통은 감사한 마음이 들지만, 때로는 그마저 불편하기도 합니다.

성당에서 미사에 참례할 때 마음은 어떻습니까? 편안하십니까? 불편하십니까?

오늘 복음에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불편한 마음을 느끼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요한 3,25).

그들은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께 세례를 받으러 가는 것에 불편한 마음을 드러냅니다(3,26 참조).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3,28).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3,30). 예수님께서 중심이심을 확실히 밝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같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잘 몰라서 이해가 되지 않거나, 어색하고 불편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처럼 우리도 예수님께서 우리 신앙의 중심이심을 마음에 새기고, 꾸준히 미사에 참례하며 전례를 따르다 보면 어느덧 편안해지고 충만해지는 마음을 느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신앙이 생활이고 생활이 신앙이 되어 갈 것입니다.

때로 신앙생활이 어렵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주님의 뜻을 찾으며, 기도와 인내로 이겨 나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주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불안해서 주님을 더 찾고 무엇이든 주님과 나누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철구 요셉 신부)

 

 

 

 


 2026년 1월 10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우리는 죽을죄를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구원을 받는다.

 

독서(1요한5,14-21)

14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하느님)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5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16ㄱ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 생명- 하느님의 뜻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으로 받는 죄의 용서, 새 생명이다.

 

16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죽을죄가 있는데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17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 하느님의 아드님의 대속, 죽음, 그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 받지 못할 죄가 있다는 말인가? 아니, 없다. 하느님의 대속인 죽음, 그 그리스도의 피의 값은 영원한 전지전능이다.(히브10,14)

그러므로 기도를 해줄 필요가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든지, 무슨 죄를 지었든지 기도해 주어야한다. 하느님은 당신의 원수들을 위해 외아들 예수를 속죄제물로 내어 주셨지 않은가?(골로1,20-22)

그렇다면 하늘의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할 수 있는 죽을죄가 아니 것은 무엇이며, 새 생명을 얻을 수 없으니 기도할 필요도 없는 죽을죄는 무엇인가? 도대체 무슨 말일까?

성경에서 답을 찾아보자, 먼저 제자들이다. 죽음 앞에 놓이신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했던 베드로’는 새 생명을 받았다. 그러나 ‘한번 배반했던 유다’는 새 생명을 받지 못했다. 곧 베드로는 죽지 않았기에 받았던 것이고, 유대는 죽었기에 받지 못한 것이다.

베드로는 살아 있음으로 새 생명을 받을 수 있는 기회로 기도가 필요한 죽을죄가 아닌 것이고, 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버렸기에 새 생명을 얻을 기회가 없었기에 죄를 위한 기도가 필요 없는 죽을죄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태어남(살아 있음)이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인 것이고, 기도 받을 수 있는 복인 것이다.

 

(루가9,60)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 하느님의 뜻을 위한 올바른 기도는 우리의 보호자(중개자)이신 예수님, 성령께서 먼저 하심을 알아야 한다.(요한17장 갈라3,20 로마8,26 참조)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를 보자, 한 강도는 새로운 삶, 새 생명을 받았고, 다른 강도는 받지 못했다. 받지 못한 강도는 죽어가는 끝까지 자신의 죄로 죽으시는 하느님의 뜻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모독했기 때문이다.

 

(루가23,39-43)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42 그러고 나서 예수님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 그러나 새 생명을 받은 강도도 처음에는 다른 강도와 함께 예수님을 조롱했었다(마르15,32) 그러다가, 자신의 죄가 죽을 ‘합당한 죄(罪)’임을 인정하고, 그 자신의 죄로 죽으시는 메시아, 구원자인 예수님을 깨닫고 돌아온 것이다. 누군가 그를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그 시간에 지은 죄, 있는 죄는 새 생명을 받을 수 있는 죽을죄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끝까지 모독해 새 생명을 받지 못한 강도의 죽을죄는 하느님의 뜻을 모독한 것이고, 그 하느님의 뜻을 진리로 증언한 ‘성령을 모독한 죽을죄’인 것이다.

 

(마태12,31)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사람들이 어떠한 죄를 짓든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을 하든 다 용서받을 것이다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 많은 신앙인들이 ‘성령을 모독하는 믿음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씀하신다.(루가18,8) 그러니 믿음으로 돌아오도록 기도해야 한다. 성령께서 진리로 완성하시고 증언하신 진리, 곧 하느님의 뜻, 구원의 계획(계약)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도록 기도해야 한다.

사랑하는 이들이 하느님의 뜻인,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삶에서 살아있는 동안 돌아와, 새 생명을 얻도록 기도를 해야 한다.

 

18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19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20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진리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우리는 참되신(진리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이분께서 참(진리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21 자녀 여러분우상을 조심하십시오.

= 우상을 섬기는 것이 죄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는 것이 우상이다. 18절에 말하기를 죄가 도덕과 윤리를 거스른 잘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벗어난 그 죄를 말하는 것이다.

*죄(하마트리아- 과녁을 벗어난 길에서 돌아옴) 회개(메타노이아- 벗어난 길에서 돌아옴)  

곧 하느님의 뜻, 그 과녁을 벗어나 악마가 약속한(루가4,6) 세상의 돈과 명예를 따르는 것이 우상을 섬기는 큰 죄다.

그런데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 곧 ‘예수의 십자가로 다시 태어난, 진리가 된 사람’은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빛-진리-말씀)이 계시기 때문에 어둠인 악마가 들어오지 못한다. 손을 못 댄다.

악마는 세상의 유혹을 계속 내 보내지만 빛으로 인해 어둠이 존재할 수 없듯이 유혹이 존재할 수 없다. 곧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복음 말씀이 구원의 새 계약, 새 생명의 진리로 내 안에 있다면 땅(세상)의 생명을 위한 것들이 헛된, 사라질 그림자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리이신 성령께서 늘 함께하시며 지키시어 깨닫고, 믿도록 해 주시기 때문이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유다인들이 의지했던 율법(제사와 윤리)으로 하늘에 오르려 했던 자기열심, 의로움에서, 그리고 자신들의 소원, 욕망을 위한 세상의 것에서 자유하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 처럼,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곧 자신이 흙에서 나온 그 없음의 흙이듯, 자신의 모든 것, 자신의 의(義), 명예, 영광이 흙의 없음(허무)임을 깨닫고 인정하는 그 낮아짐으로 받는 하늘의 생명이다.

 

진리이신 천주의 성령님!

성령께서 주신 깨달음으로 새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늘 함께 해 주실 것에 감사드립니다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연중 제1주간 화요일]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 (마르1,21ㄴ-28)26.01.12조회 9[연중 제1주간 월요일] 사람 낚는 어부 (마르1,14-20)26.01.10조회 9[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신부를 차지하는 신랑 (요한3,22-30)26.01.09조회 8[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나병이 가셨다 (루카5,12-16)26.01.08조회 8[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루카4,14-22ㄱ)26.01.06조회 7[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호수 위를 걸으시다 (마르6,45-52)26.01.06조회 8[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마르6,34-44)26.01.04조회 12[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 하늘나라 (마태4,12-17.23-25)26.01.04조회 10[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하느님의 어린양 (요한1,29-34)26.01.02조회 10[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요한1,19-28)26.01.01조회 18[세계 평화의 날] 그 이름 예수 (루카2,16-21)25.12.31조회 9[성탄 팔일 축제 제7일]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요한1,1-18)25.12.26조회 14[성탄 팔일 축제 제6일] 속량을 기다리는 이들 (루카2,36-40)25.12.26조회 19[성탄 팔일 축제 제5일] 주님께 봉헌 (루카2,22-35)25.12.25조회 11[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보고 믿었다. (요한20,2-8)25.12.24조회 7[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아버지의 영 (마태10,17-22)25.12.24조회 9[주님 성탄 대축일]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요한1,1-18)25.12.24조회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