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주간 화요일]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 (마르1,21ㄴ-28)

2026. 1. 12. 오전 8: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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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3일 화요일

[연중 제1주간 화요일]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 (마르1,21-28)


 

1독서<하느님께서 당신이 드린 청을 들어주실 것이오.>(1사무1,9-20)

9 실로에서 음식을 먹고 마신 뒤에 한나가 일어섰다. 그때 엘리 사제는 주님의 성전 문설주 곁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10 한나는 마음이 쓰라려 흐느껴 울면서 주님께 기도하였다.

11 그는 서원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만군의 주님, 이 여종의 가련한 모습을 눈여겨보시고 저를 기억하신다면, 그리하여 당신 여종을 잊지 않으시고 당신 여종에게 아들 하나만 허락해 주신다면, 그 아이를 한평생 주님께 바치고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겠습니다.”

12 한나가 주님 앞에서 오래도록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 엘리는 그의 입을 지켜보고 있었다.

13 한나는 속으로 빌고 있었으므로, 입술만 움직일 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14 그래서 엘리는 그를 술 취한 여자로 생각하고 그를 나무라며, “언제까지 이렇게 술에 취해 있을 참이오? 술 좀 깨시오!” 하고 말하였다.

15 그러자 한나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나리!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닙니다. 저는 마음이 무거워 주님 앞에서 제 마음을 털어놓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16 그러니 당신 여종을 좋지 않은 여자로 여기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너무 괴롭고 분해서 이제껏 하소연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17 그러자 엘리가 안심하고 돌아가시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당신이 드린 청을 들어주실 것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18 한나는 나리께서 당신 여종을 너그럽게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는 그길로 가서 음식을 먹었다. 그의 얼굴이 더 이상 전과 같이 어둡지 않았다.

19 다음 날 아침, 그들은 일찍 일어나 주님께 예배를 드리고 라마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엘카나가 아내 한나와 잠자리를 같이하자 주님께서는 한나를 기억해 주셨다.

20 때가 되자 한나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한나는 내가 주님께 청을 드려 얻었다.” 하면서, 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 하였다.

 

<화답송>1사무2,1.4-5.6-7.8ㄱㄴㄷㄹ(1) 저의 구원자 주님 안에서 제 마음 기뻐 뛰나이다.

주님 안에서 제 마음이 기뻐 뛰고, 주님 안에서 제 얼굴을 높이 드나이다. 당신의 구원을 기뻐하기에, 제 입은 원수들을 비웃나이다.

힘센 용사들의 활은 부러지고, 비틀거리던 이들은 힘차게 일어선다. 배부른 자들은 양식을 얻으려 품을 팔고, 배고픈 이들은 더는 굶주리지 않는다. 아이 못낳던 여자는 일곱을 낳고, 아들 많은 여자는 홀로 시들어 간다.

주님은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며, 저승으로 내리기도 저승에서 올리기도 하신다. 주님은 가난하게도 가멸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높이기도 하신다.

주님은 비천한 이를 땅바닥에서 일으켜 세우시고, 가난한 이를 잿더미에서 들어 높이시어, 존귀한 이들과 한자리에 앉히시며,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

 

복음<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마르1,21-28)

카파르나움에서, 21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22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2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말하였다.

24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26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27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28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연중 제1주간 화요일 제1독서 (1사무1,9-20) 

 

"만군의 주님, 이 여종의 가련한 모습을 눈여겨보시고 저를 기억하신다면, 그리하여 당신 여종을 잊지 않으시고 당신 여종에게 아들 하나만 허락해  주신다면, 그 아이를 한평생 주님께 바치고,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겠습니다."(10절)

 

실로에 있는 성전에서 한나는 '마음이 쓰라려 흐느껴 울면서' 이렇게 기도하고 서원하였다(10). 그리고 한나는 '오래도록' 기도하였고(12), 입술만 움직이며 속으로 빌었다(13).

얼마나 혼신을 다해 속으로 신음하면서 기도했으면, 얼굴이 뻘겋게 달아 오르고 상기되어서, 엘리 사제가 그를 '술취한 여자'로 생각하고 나무랐겠는가?

 

한나는 '마음이 무거워, 주님 앞에서 제 마음을 털어놓고 있었을 따름'이며(15), '너무 괴롭고 분해서 이제껏 하소연하고 있었을 뿐'이었다(16).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자가 자식을 못 낳는 것은 심각한 문제인 것 같다. 우리나라는 이런 여자를 '석녀(石女: 돌계집)이라고 부르고, 의학적 용어로는 성기능 장애의 질병인 '불감증'에 걸렸다고 말할 수 있다.

영어로는 '불감증'을 'Frigidity'라고 하는데, 이것은 '얼다'라는 뜻의 'Freeze'에서 파생된 말로, '돌'이란 단어처럼 차갑고 단단하다는 느낌을 준다.

 

우리나라는 '석녀'에 대한 형벌이 가혹했던 나라였다. 자식을 낳지 못라는 것은 '칠거지악(七去之惡)'의 하나였다.

농가에서 볍씨를 뿌리거나 감자를 심을 때, 콩 씨앗을 뿌릴 때는 여자 품을 샀는데, 이때 다산한 여인은 대우를 받았지만,석녀는 제외 당했다. 

물론 다산한 여인의 번식력을 통해 풍년을 기원하는 속내가 담겨 있지만, 아이를 못 낳으면 품도 팔 수 없다는 절박함이 바로 자식욕으로 나타나고, 이왕 낳을 바에는 아들을 낳겠다는 남아 선호 사상을 잉태시켰다.

전통적으로 민간에 전해 오던 '석녀'를 면하기 위한 이야기는 여기서 생략한다.

유대인들의 자녀 출산은, 욕정의 만족과 더불어 선민 이스라엘의 종족 번식과도 관련되어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협력하는 일이 된다.

 

그런데, 생명의 절대권을 가지신 하느님께서 여성의 태를 열어 주셔야 임신이 가능하므로, 자녀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에서 제외된 불행한 삶이다.

따라서 종교 율법적인 유대인 사회에서, 항상 소외되고 손가락질을  받는 불행한 처지와 神의 저주받은 죄인 신세를 면하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한나처럼,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처럼, 늘 하느님께서 자식을 점지해 주시도록,  성전에서 기도를 드리고 제물을 바쳤던 것이다.

 

한나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청하며 기도드렸고, 일찍 일어나 주님께 예배를 드렸다(19ㄱ).

주님께서는 한나의 속 마음을 보시고 기억해 주셔서(19ㄴ), 때가 되어 훌륭한 예언자가 될 사무엘을 낳게 되었다.

 

 

 

[연중 제1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김재덕 베드로)

 

예수님을 만난 마귀는 이렇게 외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마귀의 이 말은 악마가 우리를 어떻게 지배하는지 잘 보여 줍니다.

마귀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분명히 알고 있듯, 악마는 우리가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아 가는 데 방해하지 않습니다. 악마가 노리는 것은 마귀의 이 말 한마디에 담겨 있습니다.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악마는 우리가 하느님과 아무 상관 없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는 구원받으려면 미사와 고해성사를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기도로 하느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는 삶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에서 하느님과 그 어떤 것도 함께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무엇인가 함께하여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면,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라는 마귀의 말처럼, 아주 부담스럽고 괴롭게 느껴집니다. 신앙이 짐처럼 귀찮게 느껴집니다.

오히려 하느님과 아무 상관 없이 살아가는 것이 매우 편하고 기쁩니다. 악마는 이렇게 우리를 지배합니다.

‘권위’라는 말은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힘’ 또는 ‘누군가의 행동에 변화를 줄 수 있는 힘’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악의 지배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줄 수 있는 힘입니다.

이 힘이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드러납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이 말씀 한마디가 한 사람의 삶을 지배하던 악마를 떠나가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그분의 말씀에는 우리를 빛으로,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으로 인도할 수 있는 탁월한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기억하는 신앙인이 되십시오.

 

(김재덕 베드로 신부)

 

 


 

[연중 제1주간 화요일]

성경은 인간의 지혜, 논리의 책이 아니다. 하느님의 지혜가 계획하신 구원의 약속이다.

사람의 말, 소문으로 듣고하는 신앙은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마르1,21-28)

21ㄱ 그들은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 카파르나움- ‘나를 위한 고을, 성전’이라는 뜻이다. 곧 나의 희생, 노력으로 지은 나를 보호하는 성전, 신앙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제 지금까지 살아왔던 구원이 없는 헛된 생활방식에서 구원의 진리의 삶으로 돌아 오라고 하시는 회개의 말씀을 들었다. 그 옛생활 방식을 버리지 못해서 ~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여 하느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뜻을 위한 헛된 신앙이 돼버린 그 사람의 계명으로 자기 의로움으로 구원에 이르겠다고 하는, 그래서 하늘의 보호하심으로 누리는 쉼(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모르는 가파르나움인 것이다. 그 헛된 신앙에서 돌아서게 그들 가파르나움을 구원하시기 위해 가신 것이다. 옛 방식에 젖어있는 그들에게 하늘나라의 복음을 주어 고치시려는 것이다. 우리를 보호할 참 성전 예수그리스도 시다.

 

(1데살2,13)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편 71,2-3) 2 주님, 당신의 의로움으로 저를 구출하소서, 저를 구원하소서. 저에게 당신의 귀를 기울 이소서, 저를 구하소서. 3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할 산성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성곽이십니다.

 

21ㄴ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22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 시편과 같은 가르침을 주셨기에 놀랐을 것이다. 율법학자들의 가르침은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법으로 가르쳐 인간의 거룩, 자기 의로움을 지키도록 했었다. 그래서 하늘의 안식을 모르는 회당에서 예수님은 그 가르침을 부수시는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 독서 말씀으로 듣는다(하느님의 뜻이니까)

(히브2,9-12) 9 그러나 우리는 “천사들보다 잠깐 낮아지셨다가” 죽음의 고난(십자가)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대속)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10 만물은 하느님을 위하여 또 그분을 통하여 존재합니다. 이러한 하느님께서 많은 자녀들을 영광으로 이끌어 들이시면서, 그들을 위한 구원의 영도자를 고난(십자가)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11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이나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12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당신 이름을 제 형제들에게 전하고 모임 한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 이 같은 하느님의 뜻, 말씀에 놀랐던 것이다. 그 말씀이 하느님나라에 기쁜 소식, 복음이다.

 

2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 말씀(빛)이 선포되자 거짓, 그 어둠이 드러난 것이다.

 

24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 카파르움 회당에 더러운 영(어둠, 마귀)이 들린 사람의 말이다. 더러운 영, 뱀의 유혹을 받고 하는 거짓말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들의 선악의 말로, 법으로 말해 인간들이 하늘의 대속, 그 의로움의 용서와 상관없는 자기 의로움을 위한 신앙(성전)을 살게 해, 하느님의 듯을 거짓되게(더럽게)하는 말, 카파르나움이다.

그래서 그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자신은 예수님과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대속, 그분의 십자가로 거룩해지고 의롭게 되는 것과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은 알지만 구원의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의 열심과 노력으로 거룩해지고 의롭게 되는 것이 맞다고 하는 카파르나움이다,

 

(루가10,15) 15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모르기 때문이다. 전능하신 사랑, 전능하신 자비.

 

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26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27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 마귀를 쫓아낸 것에 놀라워한다. 앞 독서에서 ‘하느님께서 많은 자녀들을 영광으로 이끌어 들이면서, 그들을 위한 구원의 영도자를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라는 이 엄청난 말씀을 듣고도 우리, 나는 경악할 줄을 모른다.

창조주께서 피조물들의 구원을 위해 그들의 죄를 다 받으시고 저주가 되시어 저주의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신, 그 고난을 받으셨다는 사실이, 귀신이 쫓겨나고 나병과 중풍병자가 치유 받는 것보다 더 놀랍지 않다는 것이다. 하늘의 표징을, 발현을, 그 현상을 더 놀라워하는 우리들이다.(보이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고 그분의 숨으로 숨을 쉬는 생명의 존재라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말씀 안에 하느님의 전능하신 사랑과 자비, 그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28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 하느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뜻에 맞춘 그 소문으로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모두가 그 소문을 듣고 하는, 그런 신앙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피라는 말씀이시다. 사실 우리 모두는 소문을 듣고 성당에 왔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부르신 것은 맞다.

 

그러나 그 부르심에 응답한 이들(세례자들)이 반드시 해야 할일이 성경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으로 찾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소문의 진의, 진실을 다시 배우고,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세상의 것, 소문을 가지고 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을 주신 것이다.

구약 - 구 약속(계약), 신약- 새 약속(새 계약) 이다. 그 하느님의 약속을 가지고 가는 곳이 하느님 나라다. 우리 죄인들의 구원의 영도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로 대신 고난(죽음)을 받으셨기에 완전하게 깨끗하게 거룩하게 되었다는 그 말씀(약속)을 증표로 가지고 가는 것이다. 그랬을 때 그 말씀으로 무죄로 구원의 판결을 받는다.

 

(에페1,7)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믿음을 청합니다. 구원의 약속을 잃지 않게 하소서~아멘!!!

 

 

 

 

 

연중 제1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그물을 던지던 시몬과 안드레아, 그리고 그물을 손질하던 야고보와 요한을 첫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사람 낚는 어부”(마르 1,17)가 된 그들과 함께 항해를 시작하십니다.

 

오늘 복음과 내일 복음은 이 항해의 첫날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그 무대는 카파르나움입니다.

안식일에 어느 회당에서 시작하신 예수님의 첫 항해는 사람들을 몹시 놀라게 합니다.

그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이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는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이는 마르코 복음에 기록된 첫 기적이기도 합니다.

이 기적은 오로지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더러운 영은 예수님의 이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모두 놀랍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그들은 기적 자체가 아니라,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 말씀에 복종하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을 주시는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오늘 복음은 더러운 영을 통하여 그분의 정체를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으로 밝힙니다.

‘거룩함’은 하느님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은 하느님에게서 오신 분, 하느님께 속하신 분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권위’도 하느님에게서 왔기에 더러운 영을 몰아내는 힘을 지닙니다.

‘거룩하신’ 분께서 ‘더러운’ 영을 몰아내십니다.

이는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표지입니다(마르 1,15 참조).

참된 믿음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께 속하고, 그분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과 함께 하느님 나라를 향한 믿음의 항해를 시작합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연중제1주간 화요일 복음 (마르1,21ㄴ-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25~26)

 

마르코 복음 1장 24절에서 더러운 영이 예수님께 대하여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고 부른다.

나자렛이 예수님의 출생지는 아니지만, 유년 시절을 보내신 곳이므로 실질적인 출신지라고 볼 수 있다.

당시 나자렛은 유대인에 의해 경멸받던 지명이므로(요한1,46), 더러운 영이 갈릴래아를 대표할 수 있는 큰 도시인 카파르나움에서 사람들 앞에 예수님을 그렇게 부른 것은 예수님의 권위를 떨어뜨리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리고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에 해당하는 '티 헤민 카이 소이'(Ti hemin kai soi; what do you want with us)를 직역하면, '우리가 당신에게 무엇입니까?'이다.

 

말하자면 예수님과 더러운 영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므로 우리를 괴롭히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서 더러운 영은  자신들을 가리켜, '우리','저희'라는 표현으로 쓰고 있는데, 더러운 영이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과 자신을 복수 위격으로서 말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더러운 영이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의 입을 빌어 말하는 악한 영이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을 썼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라는 표현은 악한 영들이 내용적으로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조롱하며 자신을 방해하는 투의 설의적 형태의 문장이다.

그러니까 영적으로 상당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던 악한 영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사탄의 권세를 멸망시켜서 사탄의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 고통 당하고 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다(마르2,10; 1요한3,8).

 

그리고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에 해당하는 '호 하기오스  투 테우'(ho hagios tou theou; the Holy One of God)는 마르코 복음 1장 23절의 '더러운 영'에 해당하는 '프뉴마티 아카타르토'(pneumati akatharto; an evil spirit; an unclean spirit)와 대조되는 개념으로서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정확하게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다(잠언1,7; 야고2,19).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하고 꾸짖으시니

 

여기서 '꾸짖으시니'이 해당하는 '에페티메센'(epetimesen; rebuked)의 원형 '에피티마오'(epitimao)는 '엄하게 경고하다','책망하다'는 뜻이다.

당시에 마술사들은 독특한 도구를 사용해서 주술적 행위를 하여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는 시늉을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당신 자신의 말씀의 권위를  사용하셔서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셨다.

 

그리고 구마행위를 하시는 예수님의 선포는 '조용히 하여라'와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는 두 가지 명령으로 나눌 수 있다.

'조용히 하여라'는 첫번째 명령은 더러운 영이 이미 알고 있는 메시야로서의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발설을 엄하게 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전에 미리 알려지면, 사람들에 의해 정치적  메시야로 옹립되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데 지장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용히 하여라'에 해당하는 '피모테티'(phimotheti; he quiet;  hold your peace)의 원형 '피모오'(phimoo)라는 단어가 '입에 재갈을물리다'라는 의미가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까지 그 함구령이 얼마나 비밀스럽게 지켜져야 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나가라'에 해당하는 두번째 명령은 직접적으로 '치유 행위'와 관련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항변하는 더러운 영을 잠잠케 하시는 데 그치지 않고, 이어서 더러운 영에 들려 고생하는 부마자로부터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는 구마 행위를 하신다.

 

여기서 '나가라'에 해당하는 '엑셀테'(ekselthe; come)의 기본형은 '에르코마이'(erchomai)인데, 앞에 '안으로'에 해당하는 '에이스'(eis; into)라는 접두사가 붙으면 '들어가다'는 뜻의 '에이세르코마이'(eiserchomai)가 되고, 앞에 '밖으로'에 해당하는 '에크'(ek; out of)라는 접두어가 붙으면 '나가다'라는 뜻의 '엑세르코마이'(ekserchomai)가 된다.

그래서 마르코 복음 1장 21절의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에 해당하는 '에이셀톤'(eiselthon; he entered)과 마르코 복음 1장 25절의 '나가라'에 해당하는 '엑셀테'(ekselthe; come)가 대조가 되어, 예수님께서 '회당 안으로 들어오심'이 더러운 영의 '회당 밖으로 (사람 밖으로) 쫓겨남'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들어 오심과 더러운 영의 쫓겨남 사이에는 예수님의 권위있는 말씀의 선포가 놓여 있다(마르1,22).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자로서의 신적 능력과 권세가 있었다.

그래서 더러운 영은 자신의 지혜에 근거한 항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거주하던 사람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당신의 장면을 '경련을 일으켜 놓고'에 해당하는 '스파락산'(sparaksan; had torn; shook violently)과 '(큰 충격에 의한) 큰 소리'에 해당하는 '포네 메갈레'(phone megale; with a shriek; with a loud voice)라는 두 단어를 사용해서 더러운 영이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 아래 저항하지 못하는 모습을 시각과 청각적인 이미지를 사용하여 묘사하고 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더러운 영이 자신이 머물렀던 사람에 대해서 행하는 최후의 학대 장면인 경련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리면서도, 그가 내지르는 죽음에 이르는 듯한 비명과 통곡의 소리를 동시에 표현함으로써 더러운 영의 극한 상실감과 마지막 저항을 묘사했다.

이것은 공관 복음서 안에서 마르코 복음사가만의 독특한 표현인데, 사탄의 세력의 완전한 패배를 강력하게 암시하는 것이다.

 

 

 

20260113일 화요일

[연중 제1주간 화요일] (이철구 요셉 신부)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시라고 고백하면서도, 과연 자신 있게 이웃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아직 주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더러운 영이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마르 1,24)라고 고백합니다.

더러운 영조차도 주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자녀인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알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세상 것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긴 상태에서 유혹은 더 크게 다가옵니다.

그렇다면 유혹에 빠지지 않고 주님을 올바로 알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주님을 아는 것은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생활은 주님을 믿는 데서 시작되지만, 믿음은 앎을 통하여 더 깊어집니다.

우리는 알아 가면서 더 믿게 되고, 믿으니까 더 알고 싶어지는 신비를 체험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알고 있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정말 그분을 인격적으로 알고 신뢰하며 사랑하고 있습니까?

날마다 삶 안에서 주님을 더 깊이 알아 가면 좋겠습니다.

그 앎을 통하여 신앙이 좀 더 성숙해지며, 이로써 세상 속에서 자신 있게 주님을 증언하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철구 요셉 신부)

 

 

 

  

2026년 1월 13일 [연중 제1주간 화요일]

 

사람의 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을 담아 성전이 되자

 

복음(마르1,21-28)

21 그들은 카파르나움으로 갔다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 헛된 안식(일)을 사는 카파르나움에 급하게 올바른 안식을 위한 가르침을 주신 것인데~

 

22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 카파르나움- 나를 위한 고을, 성전이라는 뜻이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 주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 계약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을 거저 전가 받아 모든 죄가 씻겨 쉼, 안식(일)을 누리게 된다.

그런데 그 하느님의 뜻, 안식을 위한 성전, 신앙이 아닌, 피조물인 인간이 스스로 안식에 이르려, 곧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뜻을 이루기 위해) 율법(제사와 윤리)을 열심히 지킨 그 자기 의로움을 위한 삶이 카파르나움이다. 그 카파르나움의 삶은 하느님의 뜻을 적대하는 교만의 죄다.

 

(루가10,15) 15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로마3,20)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 예수님께서 율법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참 안식을 위한 가르침을 주셨기에 사람들은 하늘의 권위를 느꼈던 것이다. 카파르나움(신앙)은 참 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거짓으로, 고침을 받아야 할 거짓(더러운) 영(靈)의 말이 들린 것임을 오늘 보여주심이다.(2코린11,13-15)

 

2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그가 소리를 지르며 말하였다. 24ㄱ 나자렛 사람 예수님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 맞다. 예수님은 스스로 안식을 누리려는, 곧 자신의 뜻을 위해 안식을 지키려는 그 교만으로 높아진, 거짓말이 들린 카파르나움을 부수시러 오셨다. 그래야 그들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살리시기 위한 주님의 자비다.(루가1,51-55)

 

24ㄴ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 거룩하신 분과 한 몸이 되지 못하고, 내 밖에 예수님을 거룩하신 분으로 섬기는, 그 분리의 신앙(信仰)을 산다면 예수님과 나는 상관(相關)없는 사람이 된다. 예수님은 우리(나)와 한 몸이 되시기 위해, 곧 우리의 거룩을 위해 우리의 죄(罪)로 죽으러 오셨다.

그래서 마르타처럼 사람의 뜻(안식)을 위해 섬김의 열심(熱心)한 종교(宗敎)행위를 할 것이 아니라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뜻(안식)을 깨닫기 위한 삶, 말씀을 열심히 듣는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루가10,42)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오늘 복음 환호송 (1테살2,13) 13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26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 진리의 말씀이 거짓의 영으로 병들었던 사람에게서 그 거짓의 영을 쫓아내시고 살리신 것이다. 그것이 자비요 복음이다.

 

27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28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 복음이 아닌 소문으로 퍼져 나간다. 곧 보이는 대로 인간의 지각으로만 보는 신앙을 산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는 헛된 신앙을 사는 것이다.

*보이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닫기 위한 것이 신앙생활이다. 땅(세상)에서 하늘나라를 보는 것, 깨닫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로마1,18-20) 18 불의로 진리(십자가의 義)를 억누르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과 불의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가 하늘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19 하느님에 관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이미 그들에게 명백히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명백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20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 (이사55,8-9)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9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 (에제28,6) 6 그러므로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네 마음(사랑)을 신의 마음(사랑)에 비긴다.

 

* (1코린1,21)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 하느님의 사랑, 지혜를 깨닫지 못한 인간의 사랑, 지혜의 삶은 신앙이 아니다. 땅에서 끝나는 인간의 도리일 뿐이기에 구원자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독서(1사무1,17-18)

17 그러자 엘리가 “안심하고 돌아가시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당신이 드린 청을 들어주실 것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18 한나는 “나리께서 당신 여종을 너그럽게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는 그길로 가서 음식을 먹었다. 그의 얼굴이 더 이상 전과 같이 어둡지 않았다.

= 한나여!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福)되십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 독서의 ‘한나’처럼 인간의 눈으로 보고, 말한 사제(司祭)의 말은 버리고, 그 사제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만을 붙들어 그 “말씀과 하나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늘의 거룩하신 분 예수님과 하나되어 거룩(구원)이 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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