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1월 14일 수요일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시몬 장모의 열병치유 (마르1,29-39)
제1독서<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3,1-10.19-20)
1 소년 사무엘은 엘리 앞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었다. 그때에는 주님의 말씀이 드물게 내렸고 환시도 자주 있지 않았다.
2 어느 날 엘리는 잠자리에 누워 자고 있었다. 그는 이미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하여 잘 볼 수가 없었다.
3 하느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기 전에, 사무엘이 하느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자고 있었는데,
4 주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다. 그가 “예.” 하고 대답하고는,
5 엘리에게 달려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하였다. 그래서 사무엘은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6 주님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자,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내 아들아,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하였다.
7 사무엘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8 주님께서 세 번째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자, 그는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엘리는 주님께서 그 아이를 부르고 계시는 줄 알아차리고, 사무엘에게 일렀다.
9 “가서 자라. 누군가 다시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사무엘은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다.
10 주님께서 찾아와 서시어, 아까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은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그가 한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20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은 사무엘이 주님의 믿음직한 예언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답송시편 40(39),2ㄱㄴ과 5.7-8ㄱㄴ.8ㄷ-9.10(◎8ㄴ과 9ㄱ) ◎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 주님께 바라고 또 바랐더니, 나를 굽어보셨네.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오만한 자들과 어울리지 않고, 거짓된 자들을 따르지 않는 사람! ◎
○ 당신은 희생과 제물을 즐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저의 귀를 열어 주셨나이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바라지 않으셨나이다. 제가 아뢰었나이다. “보소서, 제가 왔나이다.” ◎
○ 두루마리에 저의 일이 적혀 있나이다. 주 하느님, 저는 당신 뜻 즐겨 이루나이다. 당신 가르침 제 가슴속에 새겨져 있나이다. ◎
○ 저는 큰 모임에서 정의를 선포하나이다. 보소서, 제 입술 다물지 않음을. 주님, 당신은 아시나이다. ◎
복음<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마르1,29-39)
예수님께서 29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제1독서 (1사무3,1-10.19-20)
"하느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기 전에, 사무엘이 하느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자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다." (3~4ㄱ)
사무엘서 상권 3장 3절은 사무엘이 소명받은 시점과 장소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사무엘서의 저자는 본격적으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무엘을 '하느님의 등불', '하느님의 궤', '주님의 성전'이라는 하느님과 연관된 대상물과 더불어 등장시키고 있다.
이것은 사무엘서 저자가 타락한 엘리 가문에서는 하느님의 영광이 떠나가고 있지만,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하고 있는 사무엘에게는 하느님께서 함께 하셔서 당신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성소의 등잔대의 불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즉 해가 져서 해가 다시 뜨기 직전까지 켜도록 되어 있었다(탈출25,31-37; 27,31)
따라서 '하느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기 전에'라는 말은 사무엘이 날이 밝아오기 전에 깊이 잠들어 있을 때 하느님께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사무엘 상권 3장 3절은, 앞의 1절과 2절에서 주님의 말씀이 드물고 환시도 자주 없는 어두운 절망의 상황이 표현된 것에 반해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상징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풍전등화와 같은 운명에 처한 이스라엘을 하느님께서 아직 포기하시지 않았다는 내면적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특히 사무엘 상권 3장 3절의 '아직 ~(아니하니)'에 해당하는 부정 부사 '테렘'(terem)의 사용이 이런 사실을 강하게 암시한다.
이 부사는 사무엘 상권 3장 7절의 '사무엘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라는 문구에서 다시 등장하지만, 이 단어는 말씀도 드물고 환시고 자주 없는 암물한 시대의 상황에서 사무엘이 누워있는 장소에는 '아직'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희망의 가능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것이다.
또한 여기서 '하느님의 궤'에 해당하는 '아론 엘로힘'(aron ellohim; the ark of God)이 언급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당시 사무엘은 '하느님의 궤'가 있는 지성소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지성소는 대사제만이 일년에 한번 대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장소였기에 사무엘이 지성소에서 잘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사무엘이 잠잔 장소를 '하느님의 궤'와 관련시키는 것은 '하느님의 궤'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다.
'하느님의 궤'는 십계명의 돌판이 들어 있기 때문에 '계약 궤'(민수10,33) 혹은 '증언 궤'(탈출26,33)라고도 불리웠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궤에 하느님께서 임재하신다고 믿었으므로, 절기 축제 행진이나 전쟁 때에 하느님을 찬양하고 승리를 기원하면서 항상 '계약 궤'를 앞세웠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 궤를 상실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영광이 이스라엘로부터 떠나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사무엘이 하느님 임재의 상징인 '계약 궤'가 있는 장소에 있었다고 저자가 굳이 밝히고 있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는 사무엘의 신앙적인 태도를 나타냄과 동시에 앞으로 '하느님의 궤'를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쟁에서 빼앗기고 몰락하게 될 엘리 가문과 사무엘을 대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사무엘서 상권 3장 3절은 3장 4절부터 시작되는 사무엘의 소명 기사를 알리기 위한 일종의 서곡같은 역할을 한다.
점점 어두워지게 된 눈을 가지고 자기 처소에 누워있는 엘리 사제의 모습이 영적 무능함을 통한 하느님과의 관계 단절과 이스라엘의 몰락을 상징한다면, '하느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고 '하느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 머물고 있는 사무엘의 무습은 빛으로 오시는 하느님과 만남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김재덕 베드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도록 주도적인 구실을 한 것은 누구일까요? 바로 ‘사람들’입니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사람들은 시몬의 장모를 위하여 예수님께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치유가 필요한 모든 이를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 말씀도 함께 살펴볼까요?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사무엘이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기 전까지,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그를 부르기만 하십니다.
‘듣는 마음’이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비로소 우리와 대화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살아 있는 믿음이 무엇인지 잘 보여 줍니다.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하여 예수님께 ‘이야기’하고, 그들을 예수님께 ‘데려온’ 것처럼, 살아 있는 믿음은 이웃을 향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하느님께 말씀드린 것처럼, 살아 있는 믿음은 주님의 말씀을 먼저 듣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어떠한가요?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는 않고 내 이야기만 늘어놓는 기도, 이웃을 향한 마음은 없고 자기밖에 모르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한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김재덕 베드로 신부)
[연중 제1주간 수요일] 복음
(마르 1,29-39)
29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 시몬과 안드레아가 함께 사는 집이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아직 물이 나오지 못한, 시몬(자갈-물이 없음)의 집입니다. 하느님의 진의, 진리 곧 대속으로 얻는 치유(용서)의 말씀(물)이 아닌 소문으로 들은~~
그래서 물(말씀), 그 복음이 없어서 자신의 의로움을 위해 참고 또 참았던 그 열병(화)이 난 장모( 여자-그릇. 피조물)입니다. 사위와 그의 동생까지 함께 사는 장모의 화병입니다.
그 사정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손(말씀, 물)으로 화를 덮으시니 화가 쫓겨납니다. 말씀을 대속(십자가)의 그 하늘의 진리로 받으면 질서(치유)가 일어납니다.
(히브1, 3)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 문- 나는 양들의 문이다.(요한10,7) 하신 그 문입니다.
(요한 10, 1) 1 “내가 진실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의 길이 생명 곧 구원의 문, 진리라는 말씀입니다. (요한14,6)
예수님만이 치유의 문,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치유는 용서를 뜻합니다. (마태9,2참조)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질병 또한 마귀(뱀)의 거짓을 들은 영적인 병입니다. 말씀을 도덕과 윤리로 보고 들으면(가르침) 신앙이 짐이 되고 독이 되어 마음도 몸도 아프게 됩니다.
그것이 모든 질병의 뿌리인 것입니다. 그 뱀의 말, 질병의 뿌리인 인간의 말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심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대속 그 의로움을 먼저 찾아야 , 깨달아야 합니다.
(마태6,33)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치유, 용서)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 무슨 기도를 하셨을까요? 병자 치유, 용서가 당신 목숨 값임을 아시기에(마르10,45참조) 구원의 아버지의 뜻을 기억하지 않으셨을까요? 그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계속 하시기 위해 힘을 얻으시려고요~~
우리 또한 그렇습니다. 성경 속 구원의 진리, 그 십자가의 대속의 말씀(약속)을 기억하는 그 기도를 했을 때 하느님의 약속으로 힘을 얻을 수 있고 또 거짓말, 거짓 가르침에 속지 않아 질병에 걸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 기도로 힘을 얻으시고 계속 일하십니다. 당신의 죽음을 향한 일인 것입니다. 죄인들을 당신 자신처럼 생각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사랑)입니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 마귀의 거짓 그 힘은 복음으로만 쫓아낼 수 있습니다. 복음으로만 영, 육의 질서를 이룰 수 있음입니다.
복(福 바라크)은 하느님의 생명력입니다. 그 복, 하늘의 생명은 하느님으로부터 흘려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삶, 그곳이 천국입니다. 그런데 선악의 도덕과 윤리로 거짓 가르침으로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생명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 삶이 지옥입니다.
우리 모두는 인간들의 계명으로 사는, 그래서 그 하느님의 계명에서 끊어진, 하느님의 원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는 죄인들입니다. (필리3,18참조) 그래서 자신처럼 생각하시는 죄인들에게 복(생명력)이 들어있는 그 복음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생명력 그 복을 다시 흘려 받을 수 있도록 그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요한4,13-14)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 사람의 물, 그 가르침은 곧 죽을 것이지만 하느님의 물, 말씀은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지금도 그 말씀은 계속 흐르고 계십니다. 지금도 일하고 계시니까요~~!!!
♡ 아멘 -*^ㅇ^*-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가 이어집니다.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마르 1,27)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신 예수님께서
회당을 나와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십니다.
그곳에는 그분의 도움이 필요한 시몬의 장모가 있습니다.
어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말씀’으로 치유하신 예수님께서, 오늘은 ‘행위’로 그를 치유하십니다.
그분께서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십니다.
치유받고 나서 곧바로 “시중을 드는” 그의 모습은, 하느님께 받은 ‘은혜’가 이웃을 위한 ‘봉사’로 이어져야 함을 묵상하게 합니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안식일이 끝나고 사람들은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데려옵니다.
그들을 낫게 하신 예수님께서는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외딴곳으로 가시어 기도하십니다.
이는 병자를 고쳐 주고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분의 능력은 하느님을 만남으로써, 곧 하느님에게서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만나는 때인 기도 안에서 새로운 결단을 내리십니다.
모든 이가 열광하며 당신을 찾는 그곳에 머무르시지 않고, 다른 고을을 찾아 나서십니다.
온 백성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당신께서 오신 목적이며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마르코 복음사가는 어제와 오늘 복음에 걸쳐 예수님의 모든 활동을 요약하여 소개합니다.
하루에, 그것도 안식일에 이렇게 많은 활동을 하셨다는 것은 복음 선포가 그만큼 급하고 중요하였음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항해 여정을 기도로 시작하시고, 기도로 마무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합시다.
믿음은 하느님과 만나는 시간 안에서 커 나갑니다.
기도는 우리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채워 주고, 우리의 분주한 일상을 이끌어 주는 근원입니다. “기도는 노력입니다.”
“기도를 가까이할 때에 삶이 바뀝니다”(기도, 새 생명의 숨결). 그래서 기도는 남는 시간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 속에서 희생하고 투쟁하며 기도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주신 말씀을 실천하도록 지켜주소서.
복음(마르1,28-39)
28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게 해, 하늘의 대속(代贖), 진리(眞理), 구원(救援)의 의로움과 상관없는 인간 스스로의 자기 의로움(율법- 제사와 윤리)으로 안식(安息), 구원에 이르도록 헛된 신앙을 살게 해 영원한 멸망(滅亡), 병(病), 죽음에 갇히게 했던 카파르나움의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고 살리신,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福音)이 빨리도 인간들의 이야기(소문)로 퍼져 나간 뒤~
29 그들(예수님 일행)은 회당에서 나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 베드로를 시몬으로 소개(紹介)했다. 생명수(물)가 나오는 반석(베드로)이 아닌 물 없는 모래, 조약돌(시몬)로, 곧 사람을 살리시는 생명의 물, 복음, 진리의 말씀을 사람들의 소문(所聞)으로 들어 생명의 물(진리의 말씀)이 없는 시몬의 집으로 가신 것이다.
그러니까 더러운 영의 거짓으로 생명인 말씀(물)이 없어 스스로 안식(安息), 구원(救援)에 이르려 열심(熱心)을 부렸던, 그래서 신앙(信仰)이 무거운 짐이 되어 열(熱)이 난 이를 찾아가신 것이다. 오늘 행위의 열심(祭祀와 倫理)을 믿는 우리를 찾아오심 이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잠깐 짚고 가자~
독서(1사무3,19) 19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그가 한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 하느님의 말씀은 하늘의 뜻, 길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로마10,2-3) 2 *(율법-제사, 윤리) 그들은 하느님을 위한 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열성입니다.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 하늘의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의 손이, 땅, 인간의 의로움의 열(熱), 화(火)를 없애신 것이다. 다시, 더러운 영의 거짓말, 거짓 가르침으로 무거운 신앙을 살았던 화병(火病), 열병(熱病)을 진리(오른손)의 손이 고치신 것이다. 창조(創造)의 손이 새 창조로 다시 살리신(낳으신) 것이다.
오른 손으로~
(예레18,4) 4 옹기장이는 진흙을 *손으로 빚어 옹기그릇을 만드는데, 옹기그릇에 흠집이 생기면 자기 눈에 드는 다른 그릇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그 일을 되풀이하였다.
(시편18,36) 36 당신께서는 구원의 방패(말씀, 믿음)를 제게 주시고 당신 *오른손으로 저를 받쳐 주시며 손수 보살피시어 저를 크게 만드셨습니다.
(시편138,7) 7 제가 비록 곤경 속을 걷는다 해도 당신께서는 제 원수들의 분노를 거슬러 저를 살리십니다. 당신 *손을 뻗치시어 당신 *오른손으로 저를 구하십니다. ~아멘!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 해가 있는 낮에 안 오고 왜? 어둠을 향해가는 저녁에 왔을까? 땅의 소원(所願), 땅의 의(義)를 위해 사는 것이, 그렇게 가르친 마귀(사람)의 말이 어둠(죄, 죽음)을 향(向)해가는 거짓이라는 것이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 온 고을, 곧 온 세상 사람들이 마귀(魔鬼)의 거짓말로 병(病)들어 있다는 것이다.
*독서(1사무3,1) 1 소년 사무엘은 엘리 앞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었다. 그때에는 주님의 말씀이 드물게 내렸고 환시도 자주 있지 않았다.
= 구약에는 예언자(預言者)를 통해 말씀과 환시(幻視)를 내려 주셨지만, 신약을 지난 성령(聖靈)의 시대인 지금은 모든 것이 완성되어 성경(星鏡)에 다(전부)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개인에게 내리는 예언, 말씀, 환시는 모두 사탄, 마귀가 주는 영의 죽음, 질병(疾病)으로 이끄는 유혹(誘惑)이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질병(疾病)을 일으키는 마귀(魔鬼)의 거짓의 말(가르침)을 막으신 것이다.
시몬의 장모(丈母)처럼, 구원의 복음을 사람들의 말, 소문으로 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들어 헛된 신앙을 살아 영적(靈的)질병이 든 이들을 살리셨고, 막으신 것이다. 마귀(魔鬼)는 예수님을 잘 알기에 위장(僞裝)하여 사람들을 잘 속인다.
(2코린11,14-15) 14 그러나 놀랄 일이 아닙니다. 사탄도 빛의 천사로 *위장합니다. 15 그러니 사탄의 일꾼들이 의로움의 일꾼처럼 위장한다 하여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종말은 그들의 *행실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 우리가 배워야 할 기도(祈禱)의 자세(姿勢)다. 새벽, 곧 일찍 일어나 하느님부터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말, 세상의 말(TV)부터 듣지 말고,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보고, 먹어 하루를 살 수 있는 힘을 기도(祈禱)로 받아야한다. 그래야 사탄, 마귀가 위장(僞裝)한 거짓된 의(義)의 유혹(誘惑)으로, 곧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늘의 대속, 그 십자가(十字架)의 의로움(그리스도)을 빼앗기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 당신의 죽음을 위해 기도(祈禱)하신 것이다. 그러니 아침마다 그 주님과 함께 해야 하지 않겠는가...........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온갖 질병(疾病)을 치유(治癒)받고자 찾는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 사실은, 질병을 고치심이 당신의 목적(目的)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물론, 아플 때 주님께 기도(祈禱)할 수 있다. 그리고 주님께서 고쳐 주시기도 하신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필요(必要)에 따라서다. 곧 하느님의 백성(百姓)을 구하시기 위한 영적치유, 구원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기도 했는데 고쳐 주시지 않았다? 사도 바오로처럼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이다.(2코린12,7-9참조) 그래서 복음(福音)선포(宣布)가 목적이시다. 십자가의 대속, 그 당신의 죽음을 진리로 선포하시는 것이다.
(마태6,33)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 영원한 치유(治癒), 자유(自由), 평화(平和), 생명(生命)을 약속하신 하느님의 말씀 안에 머무르는 것이 구마(驅魔)다. 곧 모든 죄(罪)를 대속하시고 흘리신 피, 하느님의 구원의 새 계약(契約), 새 계명(誡命)인 하느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가 씻겨 마귀(魔鬼)가 흠 잡을 때가 없기 때문이다.
(히브11,28) 28 (하느님, 말씀)을 믿음으로써, 모세는 파스카 축제를 지내고 (어린양의) 피를 뿌려, 맏아들과 맏배의 파괴자(사탄, 마귀)가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보호자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 말씀이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 진리임을 깨달아 거짓 빼앗기지 않고 지킬 수 있도록 마음에 새겨 주소서, “주님의 종이오니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아침부터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1주간 수요일 복음(마르1,29~39)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5)
'새벽 아직 캄캄할 때'에 해당하는 '프로이 엔뉘카 리안'(proi ennycha lian; very early in the morning)은 마르코 복음에 나타나는 시간에 대한 전형적인 이중 표현이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마르코 복음 1장 21절에서 38절까지에서 '낮'(21~31절), '해질녘'(32~34절), '새벽녘'(35~38절)에 이르는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러한 예수님의 하루 일과 시간표를 통해서 예수님의 활동이 잠시도 쉴 틈도 없이 매우 바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서 '새벽'으로 번역된 '프로이'(proi; in the morning)는 유대인의 시간 기준으로 계산하면, 네번째 밤인 새벽 3시부터 새벽 6시 사이의 시간을 말한다.
또한 '아직 캄캄할 때' 혹은 '미명(未明)에'로 번역될 수 있는 '엔뉘카'(ennycha; before day)는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시간을 말한다.
이렇게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중적 표현을 사용해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편히 쉬는 시간에 깨어서 제일 먼저 기도하셨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장면이 이곳을 포함해서 세 번 등장한다.
시간에 있어서 마르코 복음 1장 35절은 밤이 거의 끝나가는 새벽 무렵이고, 마르코 복음 6장 46절에서는 해가 진 이후인 저녁이었고, 마르코 복음 10장 32~42절에서는 한밤중이었다.
또한 모두 혼자 기도하셨거나, 제자들을 데리고 있었어도 따로 떨어져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
그리고 공생활 활동 초기의 갈릴래아 선교, 활동 중간시기, 또는 활동 말기의 수난 이전 등 큰 사건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기도한 것으로 묘사되며, 큰 일을 앞두고 있을 때일수록 더욱 성부 하느님 대전에 열심으로 기도하셨음을 보여준다.
또한 위의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의 기도는 바리사이들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건함이나 신심있음을 과시하기 위해서 (루카18,11.12)나 교훈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성부 하느님과의 은밀한 친교를 통해 자신의 활동의 힘을 얻기 위해서 하는 기도였다(마태6,6).
그리고 '기도하셨다'에 해당하는 '프로세위케토'(proseycheto; prayed)는 원형 '프로슈코마이'(proseuchomai)의 미완료 과거형이다.
희랍어에서 미완료 과거형은 과거 사실의 반복과 계속을 나타내므로, 예수님의 기도가 장시간 동안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26년 01월 14일 수요일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이철구 요셉 신부)
우리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조용한 곳을 찾습니다.
그 내용이 중요하다면 더더욱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을 장소를 찾습니다.
그곳에서 서로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조언을 주고받으며, 특별한 우정을 나누기도 합니다.
기도가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라면, 그분과 대화하기 위한 조용하고 특별한 공간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길을 걸으며, 버스 안에서, 때로는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과 깊고 진지하게 대화하기를 바란다면, 그분만을 위한 시간과 장소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 장소가 성당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성당을 찾아 성체 앞에서 조배하는 시간은 은총의 시간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과 대화하시려고 한적한 곳이나 외딴곳을 찾으셨습니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뜻을 물으시고, 그 뜻을 실천하시고자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예수님께 고요한 장소는 그저 피신처가 아니라, 아버지와 사랑의 대화를 나누시는 장소였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자 바쁜 일상에서 잠시 멈추어 성체 앞에 머무는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까요?
아무 말 없이 그저 머물러 있어도 괜찮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우리 마음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고요한 가운데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이철구 요셉 신부)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열병 치유
(마르1,29-39)
29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 예수님의 급하신 마음이 느껴진다. 앞 절에서 사람의 계명으로 지킨 그 자기 의로움으로 구원에 이르겠다고 하는, 그래서 하늘의 쉼,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구원과 상관없는 헛된 신앙을 하는 그들을 예수님께서 가르침으로, 구마로 치유하셨음을 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구원의 참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의 생각 그대로 소문으로 퍼뜨렸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주었더니 소문으로 하느님의 뜻을 헛되게 한 것이다. 그와 같이 자기 의로움을 위해 애쓰는, 그래서 힘든 신앙이 무거운 짐이 되어버린 그 사람을 곧바로 찾아가신 것이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 어떤 사정? - 사위와 그의 동생이 함께 사는 집에 사는 장모다. 엄청 힘들고 화가 날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참아야 한다. 참고 또 참아야 했다. 자기 의로움을 위한 신앙을 살아야 하니 화(禍)병이 났던 것이다. 또한 사람의 말, 소문을 듣고 하는 신앙이니, 죄인들을 구원하시러 오신 메시아를 몰랐기 때문이다.
(골로2,14)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죄)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로마6,6) 6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옛 인간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 *소멸하여,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 하늘에서 죄인들을 찾아 이 땅으로 내려오신, 그리고 그들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 대속의 죽음으로 다 갚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렇듯 주님(하늘, 新郞)이 죄인(婦人, 땅)을 찾아가신 것이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 손과 손이 하나가 되었다. 죄의 손을 용서의 손이 덮으셨다. 대속으로 못 박히신 손이시다. 그 손이 잡아 일으키시니 화(禍)가 가셨다.
화, 분노, 미움의 그 죄(罪)성들은 인간의 힘, 노력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흐려질 수는 있지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쌓이는 것이기에 같은 사건, 상황이 벌어지면 화(禍)가 더 커진다.
그래서 병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모든 질병의 원인이 화(禍), 미움 그 죄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대속으로 십자가를 지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이다.
(히브2,14-18) 14 자녀들이 피와 살을 나누었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15 죽음(죄)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다음절에 고침받은, 구원받은 이들을 소개한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얻는 용서, 그 구원으로 치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기적의 예수님으로, 그 소문으로 퍼뜨릴 것을 막으신 것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 예수님은 죄인들을 찾아다니시는 분이시다. 당신께서 죽으셨다 부활하신 뒤에도 두려워 숨어있는 제자들을 찾아 다니셨다.(요한20,11-24 21,1~) 그리고 당신의 숨, 성령과 하늘의 평화를 주셨다. 그렇듯 오늘 주님이, 말씀이 우리를 찾아 오셨다.
(요한1,14)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 참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의 힘이 아닌 예수님의 힘으로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용서하신 나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신, 또 다른 이의 죄를 위해서도 죽으신 그 서로의 용서이신 예수님 안에서 참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 넘어진다. 열난다. 그랬을 때 매일 찾아오시는, 아니 내 마음과 생각에 새겨주신 용서의 법, 그리스도 피의 새 계약, 그 하느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또 일어나 가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참지 못하는 나의 이기심과 혈기, 그 부족함, 그 죄성을 보는 것이다. 그렇게 갈 때, 그런 나를 위해 대신 죽어주신 그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또 넘어져 힘들 때 곧바로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못 박히신 손’을 다시 잡는 것이다. 그랬을 때 熱病, 火病, 죄의식이 가시곤 한다는 것이다.
(히브10,16-17) 16 “그 시대(십자가)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 새 계약의 법, 그 예수님(말씀)께서 오늘 나에게 다가 오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화가, 죄가 가셨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