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주간 금요일] 예수님의 권한 (마르2,1-12)

2026. 1. 14. 오전 7: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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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6일 금요일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예수님의 권한 (마르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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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주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1사무8,4-7.10-22)

4 모든 이스라엘 원로들이 모여 라마로 사무엘을 찾아가 청하였다.

5 “어르신께서는 이미 나이가 많으시고 아드님들은 당신의 길을 따라 걷지 않고 있으니, 이제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우리에게 세워 주십시오.”

6 사무엘은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정해 주십시오.” 하는 그들의 말을 듣고, 마음이 언짢아 주님께 기도하였다.

7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이 너에게 하는 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은 사실 너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배척하여, 더 이상 나를 자기네 임금으로 삼지 않으려는 것이다.”

10 사무엘은 자기한테 임금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주님의 말씀을 모두 전하였다.

11 사무엘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이 여러분을 다스릴 임금의 권한이오. 그는 여러분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병거와 말 다루는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오.

12 천인대장이나 오십인대장으로 삼기도 하고, 그의 밭을 갈고 수확하게 할 것이며, 무기와 병거의 장비를 만들게도 할 것이오.

13 또한 그는 여러분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 제조사와 요리사와 제빵 기술자로 삼을 것이오.

14 그는 여러분의 가장 좋은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을 빼앗아 자기 신하들에게 주고,

15 여러분의 곡식과 포도밭에서도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 내시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이오.

16 여러분의 남종과 여종과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 그리고 여러분의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오.

17 여러분의 양 떼에서도 십일조를 거두어 갈 것이며, 여러분마저 그의 종이 될 것이오.

18 그제야 여러분은 스스로 뽑은 임금 때문에 울부짖겠지만, 그때에 주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오.”

19 그러나 백성은 사무엘의 말을 듣기를 마다하며 말하였다. “상관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임금이 꼭 있어야 하겠습니다.

20 그래야 우리도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임금이 우리를 통치하고 우리 앞에 나서서 전쟁을 이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1 사무엘은 백성의 말을 다 듣고 나서 그대로 주님께 아뢰었다.

22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그들의 말을 들어 그들에게 임금을 세워 주어라.” 하고 이르셨다.

 

<화답송>시편89,16-17.18-19(2) 주님, 당신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행복하여라, 축제의 기쁨을 아는 백성! 주님, 그들은 당신 얼굴 그 빛 속을 걷나이다. 그들은 날마다 당신 이름으로 기뻐하고, 당신 정의로 힘차게 일어서나이다.

정녕 당신은 그들 힘의 영광, 당신 호의로 저희 뿔을 들어 올리시나이다. 저희 방패는 주님의 것, 저희 임금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의 것이옵니다.

 

복음<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마르2,1-12)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제1독서 (1사무8,4-7.10-22ㄱ)

 

사무엘은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정해 주십시오." 하는 그들의 말을 듣고, 마음이 언짢아 주님께 기도하였다.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이 너에게 하는 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은 사실 너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배척하여,  더 이상 나를 자기네 임금으로 삼지 않으려는 것이다."  (6~7)

 

사무엘서 상권 8장 5절에 나오는대로, 당시 이스라엘 모든 원로들이 왕정을 요구한 이유는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되기 위해서이다.

즉 그들은 하느님의 선택받은 백성답게 하느님의 말씀에서 행동의 근거를 찾기보다는 무작정 이방인들의 정치 체제를 모델로 삼았던 것이다.

원로들의 요구는 하느님께서 세우신 판관이 아닌 다른 모든 민족들과 같은 임금을 세워달라는 것이었다.

 

이같은 원의가 담고 있는 것은 정치적인 안정이었는데, 그들은 지금처럼 보이지 않는 하느님에 의해 다스려지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강한 임금이 나타나 강력한 리더쉽으로 자신들을 이끌 때 더욱 더 효과적으로 나라가 번영할 수 있고 안정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 사무엘서 상권 8장 6절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모든 원로들의 왕정 요구에 대한 사무엘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다.

 

'마음이 언짢아'로 번역한 '와이예라으'(waiyerah; but displeased)는 일차적으로 '떨다'(이사15,4)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야라으'(yarah)를 원형으로 하는데, 이것은 분노나 격정에 휩싸였을 때 몸이 떨리는 것을 나타내므로, '슬프다'(1사무1,8) 또는 '몹시 화가 나고 속이 상하다', '불쾌하다'(1사무18,8)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사무엘이 원로들이 말한 것을 언짢게 여긴 것을, 정치적 권력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무엘을 포함한 지도층과 하층 계급 사이의 대결로 본문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

 

만약에 세속적인 의미의 정권 유지에 대한 불만이었다면 사무엘 역시 세속적인 방법들을 통해 반응했을텐데, 사무엘의 즉각적인 반응은 주님께 기도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도하였다'로 번역된 '와이트팔렐'(waithpallel; and prayed)은 계속적 '와우'(wau; and)가 사용된 단어로서,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원로들로부터 마음에 언짢은 일을 당했을 때 인간적인 대처 방법을 구하지 않고 즉시 하느님께 기도하였음을 나타내준다.

 

사무엘은 이러한 상황에서 믿음의 지도자가 취할 자세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기도하였다'에 해당하는 '와이트팔레'(waithpallel)의 원형 '팔랄'(pallal)은 일차적으로 '기도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여기처럼 수동의 뜻이 강한 재귀형으로 사용될 경우에는 '중재(중보)하다'라는 어감을 포함하고 있다.

 

사무엘은 이미 이스라엘의 모든 원로들이 요구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기도했다고 보기보다는 자신의 불쾌한 감정을 자제하고 하느님께 그들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간구했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이해이다.

 

이제 사무엘서 상권 8장 7절에서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에게 그 백성의 요구를 다 들어주라고 명령하신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백성들의 요구가 정당했음을 인정하신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왕정에 대한 그들의 요구가 인본주의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아셨지만, 백성들이 생각하고 있는 인본주의적 왕정 체제가 아닌 신본주의적 왕정 체제로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실 것이므로 이것을 허용하신 것이다.

그러나 왕정을 요구하는 그들의 근본 동기가 그릇되었음을 간과하지 않으시고, 사무엘서 상권 8장 7절 후반부에서 그것을 분명하게 지적하시며 그들을 질책하신다.

 

원문에는 '왜냐하면'으로 번역된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키'(ki)와 '배척하다', '버리다', '거절하다'는 뜻을 가진 의미의 동사 '마아쓰'(maas) 역시 2회 반복 사용되어 매우 강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특히 여기서 두 동사는 모두 완료형으로 쓰여 그들의 배반이 이미 재론의 여지가 없이 굳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강조적 문장으로, 그들의 행위가 겉으로 드러난 것처럼 사무엘을 배척한 것이 아니라 실상은 하느님의 임금되심을 배척한 것임을 암시적으로 드러내어 하느님께 대한 반역임을 분명히 했다. 

 

 

 

 

 

    


[연중 제1주간 금요일오늘의 묵상 (사제 김재덕 베드로)

 

중풍 병자의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을 두고 율법 학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구약 성경의 신학에 따르면 율법 학자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죄를 용서하시는 분은 하느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용서가 이제 당신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신비를 드러내십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리고 뒷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사도들과 교회의 사제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

많은 교우가 고해성사를 부담스러워합니다아마도 고해 사제를 너무 의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고해성사는 오늘 복음이 선포하는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이루어지는 성사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중풍 병자의 죄를 용서하여 주신 것처럼고해소에서 사제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중풍 병자의 죄를 용서하여 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눈여겨봅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얘야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의 죄를 보지 않으셨습니다그를 예수님께 데려간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며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우리가 고해소에서 죄를 고백할 때도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보지 않으십니다.

믿음을 보시며사제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십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사람으로 만드시어 다시 고해소 밖으로 내보내십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하느님께서는 몇 천 번이고 이 은총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김재덕 베드로 신부)

 


 

 

   [연중 제1주간 금요일복음묵상 

 

(마르 2,1-5)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 카파르나움은 나를 위한 고을(성전)이라고 공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집, 성전에 계십니다. 집 또한 성전을 의미 합니다.

 

(요한20,10)  10 그 제자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 말씀은 들었지만 다시 자기 집(신앙)으로 돌아갔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본능, 그 자기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버리지 못하는 존재, 그래서 나를 위한 신앙의 집(카파르나움)을 위해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서 많은 일을 하신 것인데 사람들은 그 카파르나움을 고집합니다.

 

(루가10,15)  15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오늘 독서에서도 하느님의 뜻이 아닌 자신들의 뜻을 더 원하는 그 카파르나움성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1사무8,7) 7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이 너에게 하는 말을 다 들어 주어라그들은 사실 너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배척하여더 이상 나를 자기네 임금으로 삼지 않으려는 것이다.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 그러니까 카파르나움성 성전, 그 헛된 신앙으로 줄을 수 밖에 없는 이들을 살리시기 위해 주시는 복음입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 네 사람이 -성전 지붕을 벗기는 그 믿음으로 용서 받았다 하심입니다. 숫자 4는 땅의 구원, 그 완성의 숫자라 했습니다. 그 땅을 구원하는데 필요한 네 사람입니다.

그것이 땅의 구원을 위해 에덴동산(하늘)에서 흘러나온 네 줄기의 물, 곧 생명수와 같은 말씀, 4복음의 믿음을 뜻합니다.

카파르나움에 있는 성전 곧 스스로 지은 그 성전의 헛됨을 깨닫는 것이 복음 안에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그 성전 곧 너를 벗는, 부수는 나의 버림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이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우리가 해야할 참 신앙인의 길입니다.

 

(마태8,8.10)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저는 주님을 제 지붕(카파르나움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 카파르나움에 있는 성전 그 성전은 자격 없음을 알았던 네 사람의 믿음입니다. 그래서 ‘치유 받았다’가 아닌 “용서 받았다.”입니다. 성경에서 ‘병이 나았다’라는 말씀은 다 치유가 아닌 요서(죄 사함)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치유속에 하느님의 용서를 찾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성전을 벗기는, 부수는 믿음~~~

 

(요한2,16.18-21) 16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내 정성, 이만큼 드릴테니 내 뜻을 들어 주십시오 하는 그 거래의 신앙, 장사하는 것이라 하십니다.

18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20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 솔로몬이 지은 옛 성전입니다.( 그 옛 성전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21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 성전이신 당신을 허물어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허물어지시기 위해, 죽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입니다. 그러니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신앙의 목적인 것입니다.

 

(마태20,28)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곧 끝나버릴 세상 것을 위해 하늘이신 예수님께서 죽으러 오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세상 것, 내 뜻을 위해 섬기는 그 예수님을 허물고 내 죗값을 위해 목숨을 바치러 오신 , 그 구원의 그리스도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요한 19절에 “이 성전(예수)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입니다.

*첫 번째 것- 보이는 옛 성전 *두 번째 것- 보이는 예수님 성전.

그 예수님이 허물어 지셔야~ 곧 십자가(대속)의 그리스도로 죽으셔야, 영으로 오시는 그 영을 받는 이들이 *세 번째 것- 하느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 것이 본문의 네 사람의 믿음이며 그 믿음이 네 복음 안에 들어 있습니다.

 

(1고린6,19) 19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 성령께서 구원의 올바른 길로 이끄십니다.

 

(에페2,8-9)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 구원은 인간의 열성이 아닌 하느님의 일(계획)하심으로 완성 됩니다. 그러니 보이는 그 치유의 예수님만을 섬기기 위해 나의 열성, 그 거래 종교 행위에만 바쁘면 시간을 빼앗기면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네 복음 그 안에 숨어 계신 그리스도를 만나 그 분과 함께-한 몸이 되어 들어가는 곳이 하느님 나라입니다.(에페1,4-7참조)

 

(루가10,41-42)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마르타야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바른 종교행위 말씀을 빼앗기지 맙시다. 그 시간을 세상에게도 빼앗기지 맙시다.

♡ 아멘 -*^ㅇ^*-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어제 복음에서 나병 환자에게 ‘정’(淨), 곧 깨끗함을 선물하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중풍 병자에게 ‘죄의 용서’와 ‘병의 치유’를 선물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데, 어떤 네 사람이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옵니다.

군중 때문에 예수님께 다가갈 수 없자, 그들은 지붕을 벗겨 내고 구멍을 내어 그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예수님 앞으로 내려보냅니다.

그분께서는 어려움을 헤치고 자신에게 다다른 그들의 정성과 행동을 ‘믿음’으로 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병을 고쳐 주시는 대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예수님께는 병의 치유보다 죄의 용서가 더 급하고 중요합니다.

이 말씀이 율법 학자들에게 ‘하느님 모독’으로 들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죄의 용서에 대한 권한은 오직 한 분, 하느님만이 가지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들것을 들고 걸어 나가는 중풍 병자의 모습은 그의 병이 나았음은 물론, 그의 죄가 용서받았음을 증명합니다.

이로써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 곧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권한을 지니신 분이시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병의 치유’와 ‘죄의 용서’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쉬울까요?

이 질문은 병의 치유와 죄의 용서가 밀접히 관계되며, 둘 다 오로지 하느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비된 병자를 일으키시는 분, 죄를 용서하시는 분, 곧 참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하여 ‘지금 그리고 여기에’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를 받아들이는 믿음입니다.

오늘 중풍 병자의 치유와 용서는 예수님의 ‘권한’과 사람들의 ‘믿음’이 만나 이루어졌습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연중 제1주간 금요일 복음 (마르2,1~12)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4~5)

 

'중풍 병자'에 해당하는 '파랄뤼티코스'(paralytikos; the sick of the palsy)에서 영어 단어 'paralysis'가 나왔다.

이 병은 뇌출혈(cerebral hemorrhage)등으로 몸의 일부분이나 전신을 움직일 수 없게 되는 증상을 갖는다.

마르코 복음 2장 3절에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침상)에 실어서 예수님께로 옮겨졌다.

 

학자들에 의하면, 이 중풍 병자를 옮긴 사람들은 그의 종들이라고 간주하는 경우도 있고,  가족이나 친구들로 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마르코 복음 2장 5절에서 중풍 병자와 그를 메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를 치유하셨다는 구절을 볼 때, 주인의 명령에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종들은 아니라고 본다.

 

한편 '지붕을 벗기고'에 해당하는 '아페스테가산'(apestegasan; they uncovered; they made an opening in the roof)의 원형 '아포스테가조'(apostegazo)는 '지붕의 덮개를 벗기다'(unroof)는 정도의 뜻이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의 가옥 구조는 지붕이 평평하고 외부의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계단을 통해 지붕 위로 올라갈 수 있었으며, 팔레스타인에 있던 서민들의 집의 지붕은 들보를 중심으로 나무들을 걸치고 짚으로 덮고 진흙을 발라 놓은 것이었기 때문에 쉽게 벗겨 낼 수가 있었다.

 

중풍 병자가 누운  들것을 멘 자들은 군중들이 너무 많아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로 데려 가기 힘들자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집의 지붕으로 올라간 것이다.

그러나 집의 지붕을 갑자기 벗겨 내고 구멍을 내어 들것을 내림으로써, 방 안에 모여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흙 먼지가 쏟아져 내리게 하고, 느닷없이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계시는 그 가운데로 달아내리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여기 치유 기사의 주인공이 된 사람도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데에는 '군중들'이라는 장벽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유에 대한 확신과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갔고, 그 결과 중풍 병자는 질병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그들의 믿음'에 해당하는 '텐 피스틴 아우톤'(ten pistin auton; their faith)에서 '아우톤'(auton; their)은 3인칭 복수 인칭 대명사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병을 가진 당사자만의 믿음이나 반대로 그를 예수님께로 이끌고 나간 동료들의 믿음만이 아닌, 그들 모두의 믿음의 결과였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여기서 '보시고'에 해당하는 '이돈'(idon; saw)의 원형 '호라오' (horao)는 어떤 대상을 시각적으로 관찰하다는 뜻만이 아니라 인지적으로 상대를 파악한다는 뜻도 갖는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와 그를 메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셨다는 것은 단순히 나타난 행동 뿐만 아니라 그 마음 속에 있는 믿음도 꿰뚫어 보셨다는 뜻이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얘야'에 해당하는 '테크논'(teknon; son)은 '자녀'(마태2,18)를 가리킨다. 히브리적으로는 신적인 존재에 대한 추종자(1베드1,14), 영적인 상하 복종 관계에서의 따르는 자(에페5,8)라는 의미를 갖는다.

여기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서 그렇게 부르시는 것은 예수님 당신의 치유 능력을 믿고서 자신의 몸을 맡기는 믿음을 보시고 당신을 따르는 자라는 의미로 불렀다고 본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에 해당하는 '테크논, 아피엔타이 수 하이 하마르티아이' (teknon, aphientai sou hamartiai; son, your sins are forgiven)에서 드러난데로,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신 행위는 중풍 병자의 죄를 먼저 제거함으로써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모든 병이 직접적으로 죄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의 중풍 병자는 죄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병에 걸렸으므로, 예수님께서 죄사함을 선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죄의 용서의 선포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 자신에게 죄를 사하는 권한이 있다는 사실을 선포하기 위해서였다(마르2,10).

 

원래 죄의 용서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고유 권한이기에(시편50,1.2;  130,4; 느헤9,17; 이사1,18), 예수님께서 죄의 용서를 선포하셨다는 것은  당신 자신이 성자 하느님이시며(로마9,5), 당신에게 죄사함의 권한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20260116일 금요일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이철구 요셉 신부)

 

발 디딜 틈 없이 예수님을 에워싼 군중 가운데 네 사람이 어떤 중풍 병자를 들것에 눕혀 데려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붕을 벗겨서 그를 내려보냅니다.

이는 병을 낫게 하려는 간절함을 넘어, ‘예수님께 보이기만 하면 반드시 나을 수 있다.’는 온전한 믿음에서 나온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들의 믿음을 보십니다.

중풍 병자를 위하여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는 사랑에 담긴 믿음을 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고쳐 주시면서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르 2,5)라고 말씀하십니다. 육신과 함께 영혼도 낫게 해 주시는 주님의 자비로운 사랑입니다.

우리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중풍 병자와 같이 일어서기도 힘든 순간에 놓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들것에 싣고 지붕을 벗겨서라도 우리를 주님께 데려다줄 믿음의 친구들, 곧 신앙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누군가에게 믿음의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 주위의 어려운 이웃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그리스도의 벗이 되어 주십시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고 배려하며 참된 우정을 실천할 때, 우리는 주님의 이끄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율법 학자들처럼 불신 속에서 편을 가르며 살 것이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하나 되어 주님과 함께 은총의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이철구 요셉 신부)

 


 

  

 [연중 제1주간 금요일]

 

하늘이 대신 죽는 그 사랑으로 땅이 존재한다.

3(하늘)+ 1(사랑) = 4(땅)

 

복음(마르2,1-12)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ㄱ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 많은 사람들이 나병환자(癩病患者)를 깨끗하게 하신 예수님을 영(靈)의 치유(治癒), 곧 구원자(救援者)의 복음(福音)으로 깨닫지 못해 신기(神奇)한 일, 소문(所聞)으로 퍼져 나갔고, 육의 치유를 위해 사람들이 몰려온 것이다.

 

2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 신기한 소문(所聞)을 참 복음(福音)으로 주신 것, 가르치신 것이다.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 네 사람, 땅(4)의 완성, 곧 구원 받은 사람을 뜻하는데 하늘(3)의 대속, 죽음, 그 하늘의 사랑 하나(1)로 완성된 땅(4)의 사람이다. 그 완성(完成)인 네 사람이 아직 완성되지 못한, 곧 병(病)든 땅의 사람, 그의 구원(완성)을 위해 하늘의 대속(代贖), 그 사랑(1)께 데리고 온 것이다.

 

4ㄱ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 육의 치유를 원하는 사람은 영의 치유를 원하는 사람들의 걸림돌이다. 그리고 육의 치유를 원하는 그들을 뚫고 들어간다는 것은 그들과 똑같은 목적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다른 차원의 길, 방법으로 주님께 가야한다.

 

4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내려 보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 카파르나움(나를 위한 고을, 성전), 그 교만(驕慢)의 지붕을 벗기는, 부수는 길, 방법(方法)이다. 곧 자신의 뜻을 위한 집의 지붕을 부셔야 구원자(救援者) 주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믿음이다.

그 믿음의 사람들에 의해 온 중풍병자(中風病者) 또한 그 믿음의 사람들에 믿음으로 왔기에 그 믿음으로 죄를 용서 받은 것이다.

그런데 중풍병자(中風病者)가 무슨 죄를 용서 받은 것일까?

먼저 어제 묵상 중에서, 하느님의 말씀(계명)을 사람의 말(계명)로 들어, 자기 스스로의 의로움을 위한 삶을 살았기에 하늘의 의(義)로 생명, 구원을 받지 못하는 나병(癩病)으로, 곧 하늘의 대속(代贖), 그 구원의 의로움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기에 죄가 그대로 남아있어, 그 죄로 자신의 영이 죽어가도 고통(苦痛)을 모르는 것이 나병(癩病)임을 봤다.

중풍(中風)도 그와 같다.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들어, 진짜 머리이신 주님의 말씀, 명령대로 팔 다리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 살지 못하는 것이 중풍(中風)이고 죄(罪)인 것이다. 그래서 “얘야 병이 나았다”가 아니라 “얘야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라고 하신 것이다. 율법자(律法者)들은 알아듣지도, 이해할 수 없는 진리(眞理)의 말씀이다.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하느님을 *모독하는군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 예수님이 성자(聖子)하느님이심을 모르니 하는 소리다. 그 하늘께서 땅(세상)의 ‘속죄제물(贖罪祭物)’로 오셔서 용서(容恕), 구원(救援)하실 구원자(救援者)이심을 모르니 하는 소리다.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 죄인(罪人)들을 위해 당신 아들을 속죄제물(贖罪祭物)로 내어주신 하느님의 사랑으로 받은 용서(容恕)다. 곧 중풍(中風)에 걸리게 했던 죄(罪)를 예수님께서 가져가시고 하신 용서다. 그의 병고(病苦)를 가져가시고 주신 구원(救援)이다. 그래서 실제로 예수님은 병고를 달고 사셨단다.(이사53,3-5)

예수님의 대속(代贖), 그 그리스도의 피의 값으로 받은 용서(容恕)다. 그래서 용서의 권한(權限)은 하느님, 그리스도께만 있다. 그래서 용서라는 단어 인간의 단어, 말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웃을 용서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웃의 죄(罪)까지 다 대속(代贖)하신, 그래서 이웃이 용서 받았음을 인정(認定)하는 것, 그 주님의 용서로 하는 것이다.

 

12ㄱ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 말씀은 살아 계시다(히브4,12) 말씀은 활동하신다.(1테살2,13) 그러므로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살아 활동(活動)하시는 말씀이 중풍병자(中風病者)를 다시 걷게 하신 것이다. 곧 첫 창조를 하신 말씀이 새 창조로, 새롭게, 새 사람으로 낳으신 것이다.(야고1,18)

 

12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 육의 치유, 그 신기(神奇)한 일을 하신, 놀라운 하느님으로 찬양(讚揚)했다면 잘못된 것이다. 모든 인간은 질병(疾病)으로 죽어, 하늘나라에 들어간다. 곧 질병(疾病)등 모든 시련(試鍊)속에서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는 이들이 ‘참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다.

질병, 시련을 통해 교만(驕慢)의 자리에서 끌어 내리시고 부유(富裕)한자를 빈손으로 만들어 다시 살리시는 그 하느님의 자비(慈悲)를 사랑으로, 진리로 깨달았을 때 성모 마리아처럼 찬양할 수 있다. (루가1,50-55)

그 하느님의 사랑인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십자가(十字架)의 죽음을 구원의 진리로 깨달았을 때 시메온처럼 평화(平和)로이 죽을 수 있는 것이다.

 

(루가2,29.34) 29 “주님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 육을 쓰러지게 하는 그 시련으로 영을 다시 일으키시는(살리시는), 그래서 육의 사람들에게 반대를 받는 구원자, 곧 우리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당신 아드님을 내어주신 그 하느님의 사랑의 계약, 그리고 구원에 뜻에 죽기까지 순명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을 구원의 진리로 깨달았을 때 진정한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다.

하느님은 그 감사의 찬양, 영광만 받으신다. 그것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목적, 뜻이다. (이사43,4) 또한 우리 구원의 완성이다.(루가17,8-19)

 

(1테살5,16-18) 16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17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8 모든 일에 (어떤 처지든지감사하십시오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로마8,28-30)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 (喜怒哀樂)이 함께 작용하여 선(구원)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움, 영광이 되도록 이미 정해진 죄인들이다. 믿어지는가? 율법(제사, 윤리)등 종교 행위, 봉사 활동 많이 한다고 생기는 믿음이 아니다. 성경(聖經) 말씀 안에 머물러 매일 되새길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믿음이다. 그가 주님의 참 제자(弟子)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은총이신 진리의 성령님!

믿음의 사람제자가 되도록 주신 은혜진리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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