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주간 월요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마르2,18-22)

2026. 1. 18. 오전 7: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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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9일 월요일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마르2,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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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다.>(1사무15,16-23)

16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그만두십시오. 간밤에 주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가 사무엘에게 응답하였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17 사무엘이 말하였다. “임금님은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여기실지 몰라도,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아니십니까? 주님께서 임금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이스라엘 위에 임금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18 주님께서는 임금님을 내보내시면서 이런 분부를 하셨습니다. ‘가서 저 아말렉 죄인들을 완전히 없애 버려라. 그들을 전멸시킬 때까지 그들과 싸워라.’

19 그런데 어찌하여 임금님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전리품에 덤벼들어, 주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셨습니까?”

20 사울이 사무엘에게 대답하였다. “저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가라고 하신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아말렉 임금 아각은 사로잡고 그 밖의 아말렉 사람들은 완전히 없애 버렸습니다.

21 다만 군사들이 완전히 없애 버려야 했던 전리품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양과 소만 끌고 왔습니다. 그것은 길갈에서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습니다.”

22 그러자 사무엘이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

23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배척하셨기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

 

<화답송>시편50,8-9.16ㄴㄷ-17.2123(23)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제사 때문에 너를 벌하지는 않으리라. 너의 번제야 언제나 내 앞에 있다. 나는 네 집의 수소도, 네 우리의 숫염소도 받지 않는다.

어찌하여 내 계명을 늘어놓으며, 내 계약을 너의 입에 담느냐? 너는 훈계를 싫어하고, 내 말을 뒷전으로 팽개치지 않느냐?

네가 이런 짓들 저질러도 잠자코 있었더니, 내가 너와 똑같은 줄 아는구나. 나는 너를 벌하리라. 너의 행실 네 눈앞에 펼쳐 놓으리라. 찬양 제물을 바치는 이는 나를 공경하리라.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복음<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마르2,18-22)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제1독서 (1사무15,16-23)

 

그러자 사무엘이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더 낫습니다."  (22)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에 해당하는 '하헤페츠'(hahepets)는 '기쁨', '즐거움'을 의미하는 '헤페츠'(hepets) 의문사 '하'(ha)가 붙은 형태로서 '기쁨이겠는가?' 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사무엘이 반문형식으로 표현한 것은 강한 어조의 부정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다음에 이어지는 자신의 말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한편 '번제물'로 번역된 '뻬올로트'(beolloth; in burnt offerings)의 원형 '올라'(olla)는 '올라가다' 라는 뜻의 동사 '알라'(alla)에서 유래하여 '올라가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것은 가죽을 제외한 제물 전체를 제단에서 불살라 드려 그 향기로운 냄새를 하느님께서 흠향하도록 드리는 제사를 뜻한다(레위1,3~17). 따라서 '올라'(olla)에는 '완전한 제사'(whole offering)이라는 신학적 의미가 있다.

그리고 '희생 제물'로 번역된 '제바힘'(zebahim)은 '희생'(sacrifices), '산 제물'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복수형으로 언급되어 있다는 점에서 '번제물' 이외의 '희생 제물'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에 해당하는 '키쉬모아으 뻬콜 예흐와' (kishmoah beqol yehwa; as much as in obeying the voice of the LORD)는 '주님의 목소리(음성)를 듣는 것만큼'이라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주님께서 번제물들과 희생 제물들보다 당신의 음성을 듣는 것을 더 기뻐하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무엘은 이러한 답변을 통해 사울의 변명에 대한 논란을 뛰어넘어 사울의 뜻하는 바의 정곡을 찌르고 있다.

사무엘은 번제물들과 희생 제물들을 기쁘게 받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단지 제사를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과 비교하여 말하고 있는 것뿐이다(마르코12,33참조).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더 낫습니다'

 

원문은 '힌네 셰모아흐 밋제바흐 토브 레하크쉬브 메헬레브 엘림' (hinne shemoah mizzebah tob lehaqshib mehelleb ellim; Behold, To obey is better than sacrifice, and to heed is better than  he fat of rams)이다.

'좋다', '선하다', '낫다'라는 의미의 '토브'(tob; is better)는 원문의 위치상으로 볼 때, '밋제바흐'(mizzebah; than sacrifice)를 수식하는 형용사로 간주되어 '좋은 제물보다'로 해석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밋제바흐'가 '셰모아으'(shemoah; to obey)와 비교되기 위해 앞에 놓여진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말씀을 듣는 것이'(순종이)에 해당하는 '셰모아으'(shemoah; to obey)는 '듣다' 라는 의미를 지닌 '샤마'(shama)의 부정사 연계형이 명사적으로 사용되어 '순종하는 것', '말씀을 듣는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또한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에 해당하는 '레하크쉬브'(lehaqshib; and to heed)는 전치사 '레'(le)에 '귀를 기울이다'라는 의미를 지닌 '카샤브'(qashab)의 사역형 부정사 연계형이 결합한 형태로 명사적으로 사용되어 '주의를 기울기는 것' 이라는 의미로 번역될 수 있다.

또한 '숫양의 굳기름'으로 번역된 '헬레브 엘림'(helleb ellim; the fat of rams)는 양의 내장, 신장 등에 있는 모든 기름을 의미하는데, 모든 굳기름은 오직 주님께 속한 것이었다(레위3,16.17; 7,23-25).

하지만 사무엘은 하느님 대전에 이 모든 제의적 규례를 행하는 것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는 열등한 것임을 알리고 있다. 이러한 제사의 가치에 대한 사무엘의 평가는 형식적인 제사에 대한 예언자들의 비판과 일맥상통한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에서는 제사가 하느님의 뜻에 부합한다는 사실이 아주 자명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당시의 통념을 깨고 단지 동물을 드리는 행위 자체에 제사의 의미가 있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하느님께서 제사라는 제도를 이스라엘에 주신 것은 그들이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는지의 여부를 보기 위함' 이었다.

따라서 사무엘은 제사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 제도의 근본 정신을 밝히 드러냄으로써, 사울의 껍데기뿐인 형식적인 제사관을 비판하고 있다.

여기 본문에 나타난 정신은 사무엘 이후 많은 예언자들에 의해 주님께 대한 합당한 예배의 기본 자세로 누차 강조되었으며 (시편50,8-15; 이사1,11-17; 예레6,20; 호세아6,6; 미카6,6-8),

마침내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 사실이 다시 확증되고 강조되었으며(마태9,13), 사도 바오로에 의해서도 예배의 근본 정신으로 계승되고 있다(로마12,1-2).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마르 2,18-22)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 제자들이 아직 혼인잔치의 손님으로 있습니다. 그 손님은 아직 단식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그때에는 그들도 단식 할 것이다.

= 신랑이신 예수님을 빼앗겨야 손님이 아닌 그 신랑과 혼인하는 신부로 한 몸이 되는, 곧 예수님께서 신부의 값을 십자가에서 치르셔야 손님이라는 그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 단식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단식은, 단식의 자격이 있는 자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곧 세례로, 초대받은 이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단식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알리기 위한 물 세례에 만족하는 신앙을 살고 있습니다.(요한1,31) 그것은 보이는 예수님의 육(땅)의 치유, 기적 등 땅의 복을 위한 신앙을 단식 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사53,5)  5 (예수)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 병자들이 받은 치유(기적) 또한 예수님의 징벌 곧 대속의 댓가 였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치유, 기적을 신앙의 목적으로 보고, 먹는 그 단식을 하면 그리스도의 대속 그 죽음 그 사랑,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 새 천 조각- 새 계약(대속) 헌 옷- 율법

 

(히브9,15-16) 1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첫째 계약(율법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16 유언이 있는 곳에서는 유언자의 죽음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 하느님의 말씀, 모든 약속은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제사와 윤리, 그 율법의 행위로 예수님을 섬기는 것, 헌 옷을 입는 것이고 십자가의 대속 그 죽음, 예수님을 진리로 깨닫는 것, 새 옷을 입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덕과 윤리의 예수님과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의 예수님이 섞어 버리면 둘 다 못쓰게 되는, 곧 구약의 제사와 율법, 계명을 신약이 대속으로 완성하는 그 진리로 구원을 받는 것인데~ 그 구원의 일, 하느님의 모든 말씀이 헛된 것이 되어 세상에 구원이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죄의 용서, 그 구원의 예수님이 아닌 육의 만족을 위한 기적의 예수님만을 따르고 좋아하게 되니, 사랑하게 되니 구원을 못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이가 그렇게 살고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로마3,10~ 필리3,18)

십자가 이전, 육의 치유의 예수님을 기억하고 섬기는 것, 헌 옷입니다. 그 예수님을 십자가의 대속 구원자로 깨달아 의지하는 것,새 계약의 새 옷을 입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22ㄱ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 새 포도주- 피의 새 계약 헌 가죽- 육(몸)

 

(루가22,16-20) 1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파스카 축제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다 이루어질 때까지 이 파스카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

= 예수님께서 파스카의 제물로~ 땅(죄)의 존재들의 구원의 값을 당신 목숨으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 하시며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죽어야 할 강도가 그날 바로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루가23,42) 그래서 그에게는 더 이상 파스카의 제물, 예물이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히브10,18)

이제는 하느님께 감사의 찬양을 ~ 그분께서 하신 일이 참 사랑, 참 의로움의 진리시라고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 뿐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창조하신, 구원하신 하느님의 목적이시고요~(이사43,7)

그 하느님의 목적을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에페1,6) 그렇게 십자가의 대속 그 죽음 그 사랑으로 내가 용서 받았다. 라고 믿으면 하느님 나라가 내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고(1요한2,5) 그 하늘의 존재가 된 이에게는 더 이상 파스카제물, 그 예물이 필요 없다는 말씀입니다.

17 그리고 잔을 받아 감사를 드리시고 나서 이르셨다. “이것을 받아 나누어 마셔라.  1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나는 이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

= 너희도 파스카의 피로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미 모든 것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음을 믿는 이는 구원의 표징인 포도 즙, 그 피로 마시지 않게 됩니다.

19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 행하여라(킵)- 밖으로 흘리지 않고 ‘마음 안에 간직하여 지키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흘려듣지 말고 마음에 담아 예수님의 몸을 파스카 제물이 아닌 다른 차원의 몸과 피로 먹고 마시라는 말씀입니다.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 구원의 완성, 그 십자가를 믿는 이는 더 이상 제사 행위가 아닌 그 십자가를 통해 주시는 용서, 자유, 평화 그 구원의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그가 곧 새 계약을 지키는, 행하는 이입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는 대속의 죽음, 그 사랑,  피의 새 계약으로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22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 그 피의 새 계약으로 받는- 구원은 새로 태어난, 그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요한3,3.5)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에게 말한다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에게 말한다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 보이는 모든 것은 구원을 줄 수 없습니다.(로마8,24) 육을 위한 종교 행위 헌 옷, 헌 부대입니다. 그 육의 치유를 위한 예수님을 끊는, 그 단식을 하고~ 구원의 그 십자가 피로 받는, 보이지 않는 용서를 깨닫게 해 주실, 그리고 무죄를 증언해 주실~(로마8,2) 성령을 받게 된다면 새 부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 성령께서 땅의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58,6) 6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 치유(육)의 예수님을 자랑하면 다른 이에게 희망이 아닌 절망을 줍니다. 또 도덕과 윤리의 예수님을 말하면 법에 묶이는, 무거운 짐의 신앙을 주게 됩니다. 그러니 십자가의 대속으로 얻는 용서 그 진리의 예수님을 올바로 말하는 것, 전하는 것, 그래서 이웃이 용서, 자유 그 하늘의 새 생명을 받게 되는 것,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단식이라 하십니다.

♡ 아멘♡ -*^ㅇ^*-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공동체를 이루며 자신들의 스승처럼 단식하였고(마태 9,14 참조), 바리사이들은 속죄일 외에,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였습니다(루카 18,12 참조).

물론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였습니다(『디다케』, 8,1 참조).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의 신랑과 손님을 비유로 들어, 제자들이 당신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필요가 없다고 변호하십니다.

혼인 잔치의 신랑은 예수님이시며 손님은 제자들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혼인 잔치는 ‘구원의 시간’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혼인 잔치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오신 ‘지금’이 바로 구원의 시간임을 드러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사 65,17)을 창조하시고, “새 마음”과 “새 영”(에제 36,26)을 주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시간,

바로 하느님 나라의 시간입니다.

 

이렇게 혼인 잔치는 구원의 시간, 기쁨의 시간이기에 슬퍼할 수 없고(마태 9,15 참조), 단식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자들도 “신랑을 빼앗길 날”에는 단식할 것입니다.

헌 옷에 새 천 조각을 대고 깁지 않으며, 헌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 주어진 새로운 것, 곧 그분의 말씀과 행적 안에서 점점 가까워지는 하느님 나라를 강조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의 낡은 사고와 습관 안에 담을 수 없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회개와 이를 통하여 하느님과 이루는 화해 안에 그분의 나라를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기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2코린 5,17-18).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김재덕 베드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바라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누군가의 말을 진심으로 들을 때, 그 사람의 말은 우리 생각에 영향을 주고, 생각이 바뀝니다.

그렇게 되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삶의 방향도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하느님 말씀을 진심으로 듣게 될 때, 우리 안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나만 생각하는 마음이, 나밖에 모르는 마음이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말씀이 우리 생각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고, 우리의 행동은 하느님 말씀이 이루어지는 신비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 삶은 하느님 말씀이 이루어지는 장소, 하느님 말씀이 살아 계시는 장소, 하느님께서 구원하시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바뀝니다. 삶 전체가 살아 있는 성경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는 삶은 언제나 우리를 “헌 가죽 부대”로 남아 있게 만듭니다. 신앙생활이 점점 짐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희생과 용서와 나눔을 실천하여야 하는 상황이 다가오면, 신앙생활 자체가 괴롭게 느껴지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은 힘을 점점 잃어가고 결국 하느님을 떠나는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한 가지 꼭 기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바라시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듣게 될 때, 말씀은 하느님의 새로운 은총을 언제나 충만히 받아 낼 수 있는 “새 부대”로 우리를 변화시켜 줍니다.

오늘 하루는 하느님 말씀을 듣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재덕 베드로 신부)

 


 

 

 [연중 제2주간 월요일]

 

먹기 위한 단식(斷食)이다.

율법그 옛 계약을 버리고 새 계약인 십자가의 복음을 먹는 것단식이다.

 

복음(마르2,18-22)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 율법, 곧 낡은 첫째 계약의 단식을 하는 이들이 묻는다.

 

(히브8,13) 13 하느님께서는 새 계약이라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첫째 계약을 낡은 것으로 만드셨습니다낡고 오래된 것은 곧 사라집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율법(律法), 그 첫째 계약(契約)으로는 죄가 드러날 뿐이기에 율법(제사와 윤리)으로는 구원이 이루어질 수 없다.(로마3,20) 그래서 율법의 죄(罪)를 대속(代贖)으로 완성하시고 구원을 주실, 그 새 계약의 신랑 예수님이시다. 곧 우리의 죄로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실, 죽으실, 그 빼앗길 때, 다시 십자가의 대속, 그 새 계약이 다 이루어지게 되면 율법, 그 낡은 것을 버리는, 끊는 단식(斷食)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로마3,21)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첫계약)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새계약)이 나타났습니다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 (풀어보면) 새 계약을 헌 계약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계약, 그 율법 때문에 새 계약의 옷, 곧 사람이 찢어진다(죽는다). 함께 지키면, 섞이면 죽는다는 것이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 풀어보자. 새 계약을 헌 계약의 사람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계약의 피가 사람을 터트려(죽여) 새 계약도, 사람도 버리게 된다는 말씀이다.(1베드2,6-9 참조) 곧 헌 계약을 비워내는, 끊는 그 단식(斷食)을 해야 담을 수 있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 계약은 율법(제사와 윤리, 낡은 것)을 버린, 단식한 그 사람이 담아야, 받아야 된다는 말씀이다.

 

(루가9,23)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구원의 진리, 곧 ‘대속으로 새 생명을 주시는 새 계약의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옛 계약의 사람인 나를 부인(否認)하는 자기 버림(否認)으로 따라오라’는 말씀이다. 옛 계약의 자기 의(義), 열심히 아닌, 새 계약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하늘의 의(義)’인 십자가를 내 십자가로 지고 따라오라는 말씀이다.

내 십자가(十字架)의 죄(罪)를 대속(代贖)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마태11,28-30)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십자가)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 예수님의 대속(代贖), 그 주님의 십자가가 새 계약의 능력, 힘이다. 죄인들을 살리시려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죄로 저주의 십자가에서 저주(詛呪)로 죽으심, 그것이 능력(能力)이다.

 

(에페1,17-23) 17 그래서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영광(사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 영(靈, 푸뉴마)은 ‘숨, 호흡, 원리’라는 뜻이다. 곧 하늘의 지혜의 원리로 하느님을 알게 되어...

18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사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19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20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 그 새 계약(契約)의 능력(能力)이다.

21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 위에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22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 모두 새 계약의 능력이다.

 

(에페2,1-10) 1 그리고(카이여러분도 전에는 잘못과 죄를 저질러 죽었던 사람입니다. 2 그 안에서 여러분은 한때 이 세상의 풍조에 따라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곧 지금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 안에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우리도 다 한때 그들 가운데에서 우리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그리하여 우리도 본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 옛 계약(契約)의 사람이다.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십자가의 대속)으로,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은총(恩寵)- 은혜(恩惠)의 새 계약(契約)으로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새 계약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호의로당신의 은총이 얼마나 엄청나게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시대에 보여 주려고 하셨습니다.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은혜)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 율법(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의 행위의 ‘의(義)’가 아니라 은혜, 선물로 주신 새 계약의 십자가의 의(義)로다.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 선행(善行)이란, 나를 희생(犧牲)하여 남을 살리는 것이다. 곧 남(이웃)이 옛사람의 자신, 그 육의 삶을 버리고(단식) 영으로 다시 살아나 영원한 생명을 살도록 하느님께서 창조(創造)이전(以前) 미리 준비하신 그리스도를 구원의 새 계약으로 주는 것이 선행(善行)이다.

 

(에페1,4-5)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 십자가의 대속(代贖), 그 큰사랑의 능력인 새 계약으로다. 그러므로 현실의 내 멍에, 내 십자가를 지려고, 애쓰고, 노력하고 희생(犧牲)한다. 하늘의 용서, 새 생명, 구원의 새 계약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럼 현실의 내 십자가를 지지 않아도 되냐?’ 고 묻는다. 아니, 열심히 져야한다. 현실의 내 십자가는 새 계약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가게 하기 위한 하느님의 교육, 훈련을 위한 의무(義務), 직분(職分)이다.

우리의 더러운 죄성(罪性), 우리의 불가능을 보게 하시기 위한 도구(道具)다. 그러니 가족들, 이웃들에게 열심히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하는 것이다. 실패(失敗)해도, 넘어져도 괜찮다, 또 일어나면 된다.

승리(勝利), 성공(成功)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실패(失敗)를 위한 훈련(訓練)이다. 열심히 살아봐야 실패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救援)의 새 계약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가기 위한 실패다.

구원은 죄(罪)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로 가지 못하는 실패는 죄의식으로 쌓여 사람을 병(病)들게 한다.

 

(1코린15,57)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새계약)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 이미 준비(準備)하신 승리(勝利), 선(善)이 있기에, 이 악(惡)한 세상의 삶을 희망(希望)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 새 계약의 그리스도를 구원의 진리로 증언하시는 하느님 지혜의 영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도 대속그 능력의 새 계약그 새로운 길을 바라보며 끝까지 갈 수 있도록 사랑하는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2주간 월요일 복음(마르2,18~22)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21~22)

 

'새 천 조각'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찾아온 새로운 복음의 질서를 상징하는 반면에, '헌 옷'은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을 인간적으로 해석하여 문자적인 준수에 얽매이는 구질서를 상징한다.

 

'새 천 조각'에 해당하는 '에피플레마 라쿠스 아그나푸'(epiblema rekous agnaphou; a piece of unshrunk cloth)는 세탁을 한 적이 없어 줄지 않은 옷감 말한다.

 

그러니까 마르코 복음 2장 21절의 의미는, 이러한 '새 천 조각'이므로 '헌 옷'을 기우게 되면 그 기운 옷을 세탁할 때 아직 줄어들지 않았던 '새 천 조각'이 물을 흡수하여 급격히 줄어들면서 '헌 옷'을 망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 뜻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유대교의 전통은 함께 조화될 수 없으며,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망칠 수 밖에 없는 상충적 관계라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구시대의 질서인 단식의 문제를 가지고, 하늘 나라의 신랑인 예수님을 맞이하여 기쁨의 복음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판단하지 말라고 경고하신 것이다.

 

한편, 마르코 복음 2장 22절의 '새 포도주'의 '새' '네온'(neon; new)이지만, 후반절에 나오는 '새 부대'의 '새'는 '카이누스'(kainous; new)이다.

전자의 원형 '네오스'(neos)는 시간적으로 새롭다는 뜻이고, 후자의 원형 '카이노스'(kainos)는 본질적으로 새롭다는 뜻이다.

 

특히 '카이노스'(kainos)는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더러운 영이 들린 자를 고치셨을 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새롭고 권위있는 가르침'이라고 했을 때의 '새롭고'에 해당하는 단어의 원형과 같다(마르1,27).

새 포도주는 아직 발효가 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발효가 시작되면서 그 부피가 늘어난다.

이 때 새 가죽 부대는 유연하고 신축성이 있어서 변화에 따라 늘어나지만, 헌 가죽 부대는 그 변화를 견딜 수 없고 곧 터지고 만다.

 

말하자면, 왕성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낡아서 헌 가죽 부대 같은 바리사이인들의 전통이 수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는 헌 가죽 부대 같은 바리사이들의 슬픔의 단식은 합당하지 않으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도래한 하느님의 나라를 맞이하는 기쁨의 혼인 잔치와 같은 축제가 합당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는다는 비난에 대해 '혼인 잔치 집의 비유'(마르1,19~20), '새 천 조각의 비유'(마르1,21), '포도주와 부대 비유'(마르1,22)를 연이어 말씀하셨다.

과거의 전통적인 종교 관습을 기준으로, 단식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예수님을 비난하는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그런 질문에 국한하지 않으시고 모든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당신 자신으로 말미암아, 이미 도래한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복음이 갖고 있는 역동성을 이런 비유들로 밝히신 것이다.

  


20260119일 월요일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이철구 요셉 신부)

 

옛말에 회두라는 말이 있는데, ‘머리를 돌린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향하여 머리를 돌려야 합니다.

부귀영화를 향해 있던 머리를 하느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머리를 돌린다는 말은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을 뜻합니다.

내 모든 생각과 눈길이 오직 하느님만을 향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을 향하여 머리를 돌렸다면, 이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굳건한 터전 위에 서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르 2,22)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새로운 삶, 회개의 삶을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새로운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때로 우리 스스로가 모범적인 신앙인이라고 생각하는 교만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혹과 맞서 싸우면 이겨 내기가 어렵습니다.

내 힘으로 싸우기보다는 오히려 주님 편에 서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 편에 서는 것, 그것은 주님과 하나가 되려는 우리의 노력입니다.

주님을 향하여 머리를 돌리고 주님 말씀의 터전 위에 서는, 곧 주님과 일치하고 주님께 나를 온전히 맡기고자 애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마음으로 교만에서 벗어나 주님께 기도드리고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하며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이철구 요셉 신부)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십자가 대속으로 다 완성하셨다.

 

(마르2,18-22)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 바리사이 단식 - 음식을 끊는 단식이다. 혼인잔치 - 신랑이신 예수님과 신부인 우리(제자)의 혼인, 곧 구원을 뜻한다.(마태22,2참조) <혼인 법 - 혼인은 신랑이 신부의 몸값을 지불해야 할 수 있다.> 그런데 제자들이 아직 손님으로 있다. 오늘 혼인 잔치는 구원의 잔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신랑을 빼앗길 날(죽는 날), 곧 신부를 얻기 위해 그 신부의 몸(죄) 값을 대신 치르는 날, 신랑이신 우리 주님께서 대속으로 죽게 되면 단식을 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단식이란 단순히 음식을 끊는 것이 아니라 신랑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그 피로 맺는 구원(혼인)의 새 계약을 이룰 것이니, 옛 계약, 그 제사와 윤리, 그 율법의 법, 그 행위를 끊는 그 단식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피의 새 계약’ 그 진리를 먹게(믿게)될 것이라는 말씀이시다.

 

(히브10,8-9) 8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 헌 옷, 헌 것과 새 것이 섞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 옷이 찢어져서는 안 된다고 하신다. 곧 율법으로 죄가 무엇인지를 알고, 또 그 율법을 우리는 다 지킬 수 없는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구원에 이룰 수 없음을 깨닫고(야고2,8-11참조) 그 죄의 법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자유의 법(새 법), 곧 십자가의 대속 그 구원의 진리의 새 계약으로 오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될 것이기에 율법, 그 헌 옷은 그대로 있어야 하는 것이다. 율법으로 죽어 그리스도로 살아 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律法을 또 善이라고도 한다.(로마7,12)

 

(갈라2,19-20) 19 나는 하느님을 위하여 살려고, 율법과 관련해서는 이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 구약에서 죽어 신약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죄인이 용서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희망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율법인 것이다. 그러나 율법(제사와 윤리)에 멈추면 죽음으로 끝나는 죽음의 법이 되는 것이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 헌 가죽 부대는 어린 양의 가죽(죽음)으로 만든 부대, 곧 옛 제사를 열심히 지킨, 그 죽음의 신앙인 것이고, 새 부대는 옛 제사를 예수님께서 대속으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피의 새 계약, 곧 구원(생명)의 신앙인 것이다.

율법의 제사와 윤리, 그 의로움은 구원의 가치, 힘없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구원의 의로움을 따르라 하시는 것이다.

 

(로마3,20-22.24)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 그러니 제사와 윤리, 그 율법에 묶여있지 말고, 단식하고- 용서로 구원의 의로움을 거저 주시는 십자가의 대속, 그 구원의 진리의 신앙을 살라 하시는 것이다.

 

(이사58,6) 6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 ‘구원의 진리인 대속, 그 새 계약의 복음을 주라’는 말씀이시다. 그 복음으로 모든 것에서 풀려나 안식을 얻게 하는 것,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참 단식인 것이다. 그 복음, 주님이시다.~

 

(마태11,29-30)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십자가)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십자가)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 주님! 오늘도 내일의 양식, 구원의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가 의탁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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