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1월 17일 토요일
[연중 제1주간 토요일] 레위를 부르심 (마르2,13-17)
제1독서<사울이 그분의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1사무9,1-4.17-19;10,1)
벤야민 사람으로서 힘센 용사였다. 2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사울인데 잘생긴 젊은이였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그처럼 잘생긴 사람은 없었고, 키도 모든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은 더 컸다.
3 하루는 사울의 아버지 키스의 암나귀들이 없어졌다. 그래서 키스는 아들 사울에게 말하였다. “종을 하나 데리고 나가 암나귀들을 찾아보아라.”
4 사울은 종과 함께 에프라임 산악 지방을 돌아다니고, 살리사 지방도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하였다. 그들은 사알림 지방까지 돌아다녔는데 거기에도 없었다. 다시 벤야민 지방을 돌아다녔으나 역시 찾지 못하였다.
17 사무엘이 사울을 보는 순간,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 내가 너에게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 사람이 내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
18 사울이 성문 안에서 사무엘에게 다가가 물었다. “선견자의 댁이 어디인지 알려 주십시오.”
19 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그 선견자요. 앞장서서 산당으로 올라가시오. 두 분은 오늘 나와 함께 음식을 들고, 내일 아침에 가시오. 그때 당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일도 다 일러 주겠소.”
10,1 사무엘은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을 맞춘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그분의 소유인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소. * 이제 당신은 주님의 백성을 다스리고, 그 원수들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할 것이오.”
<화답송>시편21,2-3.4-5.6-7(◎2ㄱ) ◎ 주님, 임금이 당신 힘으로 기뻐하나이다.
○ 주님, 임금이 당신 힘으로 기뻐하나이다. 당신 구원으로 얼마나 즐거워하나이까! 당신은 그 마음의 소원 이루어 주시고, 그 입술의 소망 내치지 않으셨나이다. ◎
○ 은혜로운 복으로 그를 맞이하시고, 그 머리에 순금 왕관을 씌우셨나이다. 그가 당신께 살려 달라 빌었더니, 영영 세세 긴긴날을 주셨나이다. ◎
○ 당신 구원으로 그 영광 크오며, 당신이 존귀와 영화를 내리시나이다. 그를 영원한 복이 되게 하시고, 당신 앞에서 기쁨이 넘치게 하시나이다. ◎
복음<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2,13-17)
13 예수님께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14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5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16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7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연중 제1주간 토요일 (1사무9,1-4.17-19 : 10,1)
사무엘은 베텔, 길갈, 미츠바, 라마를 순회하며 이스라엘을 다스렸지만, 나이가 들면서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지도자가 필요했다.
사무엘은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에게 판관의 업무를 대행하게 했지만, 아들들은 아버지처럼 엄정한 재판을 하지 않고, 뇌물을 받고 잘못된 판결을 내리는 등 부패한 행동을 자주 저질렀다.
이에 대한 백성들의 불안과 원망이 최고조로 이르면서, 왕을 세워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게 된다.(1사무7,15-8,5) 사무엘은 주님의 지시에 따라, 세습적인 왕정 제도의 병폐와 문제점에 대해 백성들에게 설명했으나 그들은 듣지 않았다.
결국 사무엘은 신정(神政)정치를 거부하고, 왕정을 요구하는 백성들에게 왕을 세울 것을 약속하고, 모두 고향으로 돌려 보냈다.(1사무8,10-22)
하느님께서 여러 지파 가운데, 가장 미약하고 가장 작은 벤야민 지파에서 왕을 선택하셨다. 하느님께서는 특별한 방법으로 사울을 부르셨다.
즉, 사울은 아버지 키스의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기위해 집을 떠났다가, 우여곡절 끝에 선견자 사무엘을 만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게 된다.(1사무9장)
사울은 사무엘로부터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하느님의 뜻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했다. 이런 사울에게 하느님께서는 여러 징표를 보여 주시고, 예언의 은사들 통해 확신을 심어 주셨다.
더우기 하느님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공인하고, 대외적인 확신을 시켜주기 위해 제비뽑기로 뽑으시고 추인하셨다.(1사무10장)
사울은 '큰 자'라는 뜻으로, 얼굴이 준수하고, 다른 사람들 보다 키가 큰 장대한 사람이었다.(1사무9,2) 더우기 인품도 겸손하여 어진 성품을 가진 출중한 인물이었지만, 왕좌에 앉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배척을 받았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벤야민 지파 출신이 왕이 된다는 것에 대해 적잖은 반발이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십년 전 벌어진 벤야민 지파와의 내전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판관19장)
벤야민 지파는 에브라임 산지에 기거하는 레위인의 첩(소실)을 겁탈한 사건으로, 다른 지파들과 내전을 벌였었다. 이 전쟁으로 벤야민 지파는 다른 지파들의 연합군에 의해, 남자 2만 5천명이 몰살당하는 멸절 위기 상황까지 처해졌다.(판관20,1-47)
산으로 도망간 벤야민 지파의 장정 6백명만이 살아 남을 수 있었다.(판관20,48 : 21장)
사울의 선대는 이 내전에서 멸절을 모면한 6백명중의 한 사람이었다.
판관시대 내전으로 인해, 벤야민 지파는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가장 작은 지파가 되었고, 이로 인해 적잖은 멸시를 당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사울이 사무엘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을 때, "그렇지만 저는 이스라엘의 지파 가운데에서도 가장 작은 벤야민 지파 사람이 아닙니까?"(1사무9,21)라고 반응하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래서 미츠바에서 벤야민 지파의 사울이 왕으로 제비 뽑혔을 때, 일부의 반응이 시큰둥하고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에 대해 사무엘 상권 10장 2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친구가 어떻게 우리를 구할 수 있으랴?" 하면서 사울을 업신여기고 그에게 예물도 바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은 좋았으나, 하느님의 뜻을 찾지 않고, 왕이 된 후 자신이 하느님이 된,
자기 식의 의에 사로잡힌, 왕정 제도의 실패작 사울의 행보가 시작된다.
[연중 제1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김재덕 베드로)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주 하느님의 말이다.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에제18,23)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를 통하여, 죄인들이 당신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인들도 당신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결코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죄인들이 하느님께 돌아가는 법을 잃어버렸다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 복음에서 레위는 세관에 앉아 있었습니다. 세관은 레위의 일터였습니다.
돈으로 죄를 저지르는 장소였지만, 또한 살아가려면 큰 각오 없이는 떠날 수 없는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죄와 적당히 타협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벗어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레위에게 찾아오십니다. “나를 따라라.”
이 말씀과 함께 레위의 삶은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으로 바뀝니다.
회개하는 법을 잃어버린 죄인들, 어쩔 수 없이 죄에 머물 수밖에 없는 죄인들, 예수님께서는 그런 죄인들에게 찾아오시고, 그들을 부르십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벗어나기 힘든 죄 안에 있다면, 예수님의 이 말씀을 꼭 기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부르고 계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용기 내어 우리 영혼의 의사이신 예수님께 나아가십시오.
비록 이렇게 죄를 지었어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단 한 순간도 여러분을 잊으신 적이 없음을 깨닫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 신비가 고해성사 안에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김재덕 베드로 신부)
[연중 제1주간 토요일]
자신이 어둠임을 모를 때 빛은 보이지 않는다.
(마르2,13-17)
13 예수님께서 *다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 앞 절에서 중풍병자에게 생명, 곧 구원을 주시고 다시 가신 것이다.
(영성체송)요한 10,10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14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 당신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 따라라 하셨던 것이다. 그 하늘의 생명을 받기 위해 전제되어야할 것이 있다.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일어나’ 따르는 것이다. 곧 옛 자이, 죄와 욕망의 자신을 버리는, 부인하는 것이다.
병행복음(루가5,28) 28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5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들과 같아지려 하는 것이다.
(히브2,14-15.17) 14 이 자녀들이 피와 살을 나누었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15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7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 그들의 죄(죽음)의 음식을 먹고, 대신 죽으시고 당신의 생명을 주시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함께 밥을 먹는 것을 꺼려할 때, 누군가가 함께 해 줄 때, 같이 밥을 먹어줄 때 얼마나 힘이 나겠는가, 생명(자존감), 그 힘으로 오신 예수님이다. 그래서 예수님 곁에 죄인들이 많이 따랐던 것이다. 그러나 의롭다하는 이들은 죄인들을 기피했다. 죄인(부정한)들과 함께 하는 것이 율법을 어기는 것으로 같은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16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7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으니,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사람들은 문제가 없다. 치료자, 구원의 빛이신 주님을 만났으니까. 앞에서 보았듯이 그들은 빠른 응답으로 예수님을 따랐다.
문제는 자신이 죄인임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제사와 윤리로 충실하며 ‘의롭다’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다. 죄인들은 용서받을 길이 있지만 스스로 의롭다하는 그들은 용서받을 길이 없다.
(루가18,9-14) 9 예수님께서는 또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참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가?)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죄인임을 인정하며 자비를 청하는 세리다. 이 죄인을 위해 예수님이 오셨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그 착하고 의롭다는 자들이 예수님을 죽이지 않았는가? - 그래서 사람의 의로움은 위선이요 개짐(똥 걸레)이라고 하신 것이다.(이사64,5) 모든 인간은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 그리스도’로만 구원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죄(하마트리아 - 과녁을 벗어난), 하느님의 뜻에서 벗어난 것이 죄다.
(요한3,16)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속죄 제물)을 내 주시어,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 예수님의 대속으로 얻는 생명이다.
(요한6,40)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그 하느님의 뜻을 믿지 않고, 의지하지 않는 것, 하느님의 뜻에서 벗어난 죄다. 곧 하느님의 말씀, 지혜, 계명, 그 하느님의 뜻인 구원의 길, 진리를 사람의 뜻을 위한 계명, 길로 만드는 것이 죄다.
관련된, 참조할 성경의 말씀이다.~
(이사29,13) 13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에게 다가오고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고 나에 대한 그들의 경외심은 사람들에게서 배운 계명일 뿐이다.
(마르7,7)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티토1,14) 14 유다인(사람)들의 신화, 그리고 진리를 저버리는 인간들의 계명에 정신을 팔지 않게 하십시오.
= 하느님의 뜻, 그 과녁을 벗어난 죄다. 하늘의 진리를 깨닫는, 곧 하느님의 약속을 믿기 위한 열심이 아닌 자기 열심, 의로움의 종교 행위로 하는 것, 과녁을 벗어난 죄다. (참조 이사1,11-14 마태7,21-23 루가10,38-42)
그래서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죽으신 그 예수님의 의로움이 아닌, 제사와 윤리로 지킨 그 사람의 자기 의로움으로 구원에 이르려 하는 것, 죄다.(로마10,1-4 티토3,5 참조) 예수님의 대속, 그 죽음을 헛되게, 거짓되 게 하는 큰 죄다.
(마태5,20)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인간들의 의로움이 아닌 하늘(예수님)의 의로움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마태6,33)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어떻게? 오늘 세리처럼 자신이 하느님의 뜻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았던 죄인임을 고백하고, 그 자신의 죄로 십자가에 대신 죽으신 그 예수님의 의로움을 구원의 진리로 믿는 것, 받아들이는 것, 구원이다.
세리나 바리사이나 다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서 살았다. 그러나 세리는 자신의 잘못, 죄를 알았던 것이고, 바리사이는 몰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성도, 신자) 안에는 그 두 부류가 있다. 그것은 자기 의로움을 위한 가르침이 있고, 본 모습을 보게 하는 가르침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의 속셈, 죄의 모습을 드러내러 오셨다.
(히브4,12) 12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 왜? 심판 하시려고? -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속셈, 위선, 그 죄로 대신 죽으시고 당신의 생명으로 살리시려고....
(요한12,46-47) 46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47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로마3,23-24)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아멘 -*^ㅇ^*-
연중 제1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해 주겠다.”(마르 2,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마치 이를 증명하시려는 듯, 예수님께서는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고,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를 하십니다.
“나를 따라라.” 예수님의 초대에 세리 레위는, 갈릴래아의 어부들이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것처럼(마르 1,16-20 참조), 현재의 삶의 방식을 모두 버리고 그분을 따릅니다.
당시 세리는 이방인들과 자주 접촉하고, 자신의 직무를 이용하여 부정한 이득을 얻었기 때문에 ‘죄인’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런 죄인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게다가 그의 집에서 많은 세리와 죄인과 자리를 함께하시고 음식을 나누십니다.
율법 학자들은 자신의 깨끗함과 거룩함을 지키려고 세리들과 죄인들과 되도록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런 율법 학자들에게, 세리를 부르시고 죄인과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큰 문젯거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그들은 누구보다 먼저 당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입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율법 학자들이 세리와 죄인을 사회적 종교적 관계에서 단절하고 격리하였다면, 예수님께서는 그 관계를 회복시키십니다.
관계의 회복은 죄의 용서를 전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찾아 나서시는 분이시며,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제자로 부르시며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시는 분이십니다.
“나는 ……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연중 제1주간 토요일 복음(마르2,13~17)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17)
마르코 복음 2장 17절은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이 땅에서 하실 일이 무엇인지 보여 주는 말씀이다.
여기서 '건강한 이들'에 해당하는 '호이 이스퀴온테스'(hoi ischyontes; the healthy)라는 표현은 은유적 표현인데, 자기식의 의(義)를 추구함으로써 스스로 의롭다고 자부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가리킨다.
또한 '의사'에 해당하는 '이아트루'(iatrou; a doctor)도 은유적 표현으로서 죄에 빠진 영혼을 치유하고 구원하시는 예수님 당신 자신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러한 표현 속에는 예수님께서 왜 죄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셔야 했는가에 대한 해답이 주어져 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의 외적 조항을 가지고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예수님을 단죄하려고 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야말로 이 세상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못 알아보고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이것은 그들이 얼마나 교만과 위선에 사로잡혀 있었는가를 명백히 보여 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건강한 척하면서 당신을 외면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위해 오시지 않고, 자신의 영적 건강을 걱정하던 죄인들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의사이셨다.
특히 마르코 복음 2장 17절의 전반부는 예수님 당시 팔레스티나에서 유행하던 속담으로 알려졌는데,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던 속담을 이용해서 바리사이들의 교만과 위선을 지적했던 것이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여기서 '부르러'에 해당하는 '칼레사이'(kalesai; to call)의 원형 '칼레오'(kaleo)는 구원에로의 초대나 제자로의 부름(마태4,21; 1베드2,9)을 의미한다.
이 문장은 동사 하나에 두 개의 목적어 '의인'과 '죄인'이 동시에 사용되어서 서로 강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의인은 진정한 의미의 의인이 아니고, 본인이 자신을 생각하는 관점에서의 자칭 의인이다.
왜냐하면 로마서 3장 10~23절에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의인이 한 사람도 없으며 모두가 죄인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또한 '죄인'이라는 개념 역시 꼭 어떤 죄를 지은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해 겸손한 자세로 응답할 수 있는, 스스로 죄인이라는 의식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루카5,8).
따라서 본문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초대를 받을 자격은 겸손하게 자신이 죄인이라는 정확한 자기 의식이 있어야 함을 가르쳐 준다.
2026년 01월 17일 토요일
[연중 제1주간 토요일] (이철구 요셉 신부)
사제로 살아가며 제가 느끼는 가장 큰 보람 가운데 하나는 고해성사 안에서 진정으로 회개하며 눈물 흘리는 교우를 만날 때입니다.
“저는 하느님께 용서를 청할 자격도 없습니다.”라며 흐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저 자신도 회개해야 하는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저 또한 하느님의 자비에 의지해야 하는 죄인입니다.
죄인임을 고백하는 제가 누군가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저에게 맡겨 주신 사제직의 은총 안에서 가능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라는 주님의 말씀은,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큰 희망입니다.
스스로 의인이라 여기며 하느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길이 멀리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성찰하고 죄를 뉘우치며 하느님께 돌아오는 사람에게 주님의 용서와 구원의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이 희망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회개하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사랑의 관계를 되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고해성사의 참뜻입니다. 잘못을 뉘우치고 주님의 뜻에 맞갖게 살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이 결심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우리는 화해의 성사인 고해성사가 우리를 회개로 초대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마음으로 고해성사에 임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온전히 받아 주십니다.
참된 회개의 마음으로, 고해성사를 잘 준비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온전히 체험하면 좋겠습니다.
(이철구 요셉 신부)
[연중 제1주간 토요일]
구약(舊約)의 실체(實體)가 신약(新約)이다.
구약은 모든 인간은 죄인인 것이고, 그 죄를 대속하시고 용서, 구원의 의(義)를 주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신약이다. 구약과 신약이 짝하여 구원이 이루어진다.
복음 (마르2,13-17)
13 예수님께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14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적대자(敵對者, 로마)의 세금을 걷었던 세리(稅吏) 죄인(罪人)을 부르신 것이다. 그 죄의 자리에서 일어나, 버리고 따른 것이다. 우리 곁은 매일 매 순간 지나가시는 주님이시다.
15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 예수님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자리다. 곧 하느님의 적대자(敵對者)인 죄인들을 당신의 목숨 값으로 구(求)하신 뒤, 이루어지는 하늘나라 혼인(婚姻)잔치의 모형(模型)이다.
16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 자기 의로움의 자신들이 구원 받을 수 없는 진짜 죄인임을 모르고,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생명의 양식(말씀)을 먹는, 그 구원 받은 이들을 무시(無視)하고 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꼴이다.
17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예수님은 분명히 “의인(義人)이 아니라 죄인(罪人)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우리는 의인(義人)이 되어서 예수님을 만나려 하는지 모르겠다.
성경(聖經)을 도덕(道德)과 윤리(倫理), 그 법의 책으로 보고, 가르침을 받아, 율법(律法, 제사와 윤리) 신앙을 살기 때문이다. 그 율법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신 새 계명, 새 계약의 성령의 법(로마8,1~)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 계약은 이미 구약(舊約)에서부터 주어졌다. 곧 십계명(十誡命), 율법(律法)과 다른 차원의 새 법, 그 새 계약을 우리 마음에 넣어 없애시고, 우리의 죄(罪)를 기억(記憶)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이다.(예레31,31~참조)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이다.(루가22,20~) 우리는 그 새 계약의 일꾼이다.(2코린3,6~) 사람의 법, 곧 율법의 제사(祭祀)와 윤리(倫理), 계명(誡命)으로 전(傳)하면 안 된다. 율법의 계약, 그 옛 계명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히브8,13~)
우리가 가는 하늘나라는 그 새 계약의 피(血)가 있는 곳이다.(히브12,12~) 곧 그 새 계약이 법(法)인 나라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피로 영원한 용서,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로 영광을 드리는 평화(平和)의 나라다.
*율법은 율법자 들에게 그 사람의 열성(熱誠), 의로움을 요구한다. 그래서 세상(타(宗敎까지)은 죄로 드러난다.(로마3,19~)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야고2,10)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의 새 계약을 진리로 믿는 이들만이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가 다 씻겨 없어졌기에 그에게는 죄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욕망(慾望)을 위한 불의(不義, 불법)에 자신을 넘기지 말아야 하는 것(로마6,6-14) 구약, 율법은 믿음을 위한 감시자(監視者)일 뿐이다.(갈라3,23-27)
하느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감시자(監視者)와 후견인(後見人), 율법과 세상 종살이 아래서 믿음을 위한 교육(敎育), 훈련(訓練)을 시키신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의 삶이 중요(重要)한 것이다. 새 계약(契約)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까지, 깨달을 때까지(갈라4,1-5).........
*율법의 행위인 육의 아들이 있고, 새 계약, 그 약속의 결과로 난 아들이 있다.(갈라4,21-24) 그러나 율육의 아들이 약속의 아들들을 박해(迫害)한다.(갈라4,28)
오늘 육(肉)의 의(義)인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이 구원을 약속 받은 이(죄인)들을 무시하듯, 그래서 교화 안에서 자칭 의인(義人)들이 하느님의 약속 말씀을 깨닫기 위한 삶을 사는 이들을 비난(非難)한다. 그 박해, 유혹 등으로 종살이의 ‘멍에’ 곧 자기 의(義)를 위한 도덕과 윤리, 율법의 삶으로 돌아가면, 살면 안 된다. 다시는 메지 말아야 한다.(갈라5,1)
우리는 인간의 의(義), 율법이 아닌 그리스도의 의(義), 성령의 법아래 있는 것을 놓치면 안된다.(갈라5,18)
*헛된 신앙생활(信仰生活)을 보자~
(이사1,11-14) 11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제사, 곧 인간의 열심인 종교행위다)
12 너희가 나의 얼굴을 보러 올 때 내 뜰(법, 뜻)을 짓밟으라고 누가 너희에게 *시키더냐? 13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14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룻날 행사들과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나는 지쳤다.
= 온갖 기념(記念)전례(典禮)행위(行爲)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의 뜻인 새 계약을 깨닫고 믿기 위한 말씀은 뒤로하고 전례(典禮)를 잘 지키고 기념일(記念日), 축제일(祝祭日)에 잘 참석하고 본당활동, 봉사활동, 열심히 잘하고, 인간들의 계명(교리, 규정)을 잘 지켜서, 그렇게 착하게 살아 예수님을 만나려 한다.
사람의 말, 사람의 규정과 교리, 그 거짓 가르침이 시키기 때문이다.(마르7,7) 하느님께 받는 영광보다 사람에게 받는 높은 평가(評價), 영광(榮光)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요한5,44 루가16,15) 그것이 죄인들의 죄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죽음, 피를 헛되게 하는, 곧 하느님의 새 계약을 모독(冒瀆)하는 것이다. 그것이 당신 아드님을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내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모독(冒瀆)하는 행위다.
*매일 태양이 붉게 떠오른다. 세상의 어둠(죄. 불의-옛 계약, 율법)을 없애시려고, 하늘의 생명, 용서의 빛인 새 계약, 그 사랑(말씀)이 떠오르는 것이다. 발광체(發光體)인 하늘의 빛 아래서 가짜 빛인 세상(나)의 죄성(불의-자기義)을 보고 ‘영원한 사랑, 생명이신 하느님을 알라’고.......
(요한17,3) 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 알고-알다. 히브리어 ‘야다’호 하나, 한 몸이 되는 것이다. 내 머리(생각, 뜻)가 잘리고, 주님을 나의 머리(주인)로 그분의 지체가 되어 한 몸이 되는 것이 생명이다. 그것을 깨닫기(되기) 위한 것이 기도(祈禱)다. 세상 사람들처럼 내 뜻, 내 소망, 내 소원을 위한 기도로 신비 안에 들어있는 하느님의 뜻은 깨닫지 못한채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여 되풀이하는 그 ‘빈말기도’ 하지 마라”고 하셨다.(마태6,7)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곧 하늘의 복(福)인 하늘의 생명, 구원의 약속인 하느님의 말씀에 머물러, 되새기는 그 참된, 올바른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 복(福)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하늘의 의로움으로 받는다.
(마태6,33)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율법(제사와 윤리) 신앙에서 돌아와 하늘의 의로움을 찾고 깨달아, 의지하여 사는 것이 회개(悔改)다.
병행복음~(루가5,31-32)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32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1코린2,9-10) 9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보호자이신 진리의 성령님!
오늘도 아침 빛이 불게 타오르듯 저희 안에 모든 어둠을 몰아내는 성령의 빛,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그래서 구원의 말씀을 의탁하며 하느님께 감사,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