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주간 목요일] 나병(癩病) 치유 (마르1,40-45)

2026. 1. 13. 오후 5:4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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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15일 목요일

[연중 제1주간 목요일나병(癩病치유 (마르1,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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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이스라엘은 크게 패배하고하느님의 궤도 빼앗겼다.>(1사무4,1-11)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우러 나가 에벤 에제르에 진을 치고필리스티아인들은 아펙에 진을 쳤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전열을 갖추고 이스라엘에게 맞섰다싸움이 커지면서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에게 패배하였다필리스티아인들은 벌판의 전선에서 이스라엘 군사를 사천 명가량이나 죽였다.

군사들이 진영으로 돌아오자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말하였다. “주님께서 어찌하여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앞에서 우리를 치셨을까실로에서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옵시다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시어 원수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백성은 실로에 사람들을 보내어거기에서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만군의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왔다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하느님의 계약 궤와 함께 왔다.

주님의 계약 궤가 진영에 도착하자온 이스라엘은 땅이 뒤흔들리도록 큰 함성을 올렸다.

필리스티아인들이 이 큰 함성을 듣고, “히브리인들의 진영에서 저런 함성이 들리다니 무슨 까닭일까?” 하고 묻다가주님의 궤가 진영에 도착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말하였다. “그 진영에 신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8 “우리는 망했다이런 일은 일찍이 없었는데 우리는 망했다누가 저 강력한 신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겠는가저 신은 광야에서 갖가지 재앙으로 이집트인들을 친 신이 아니냐!

그러니 필리스티아인들아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히브리인들이 너희를 섬긴 것처럼 너희가 그들을 섬기지 않으려거든사나이답게 싸워라.”

10 필리스티아인들이 이렇게 싸우자이스라엘은 패배하여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도망쳤다이리하여 대살육이 벌어졌는데이스라엘군은 보병이 삼만이나 쓰러졌으며,

11 하느님의 궤도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죽었다.

 

<화답송>시편44(43),10-11.14-15.24-25(27◎ 주님당신 자애로 저희를 구원하소서.

○ 당신은 저희를 버리시고 치욕스럽게 하셨나이다저희 군대와 함께 출정하지 않으셨나이다당신이 저희를 적에게 쫓기게 하시어저희를 미워하는 자들이 노략질하였나이다

○ 당신은 저희를 이웃에 우셋거리로주위에 비웃음과 놀림감으로 삼으셨나이다저희를 민족들의 이야깃거리로겨레들의 조솟거리로 삼으셨나이다

○ 깨어나소서주님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일어나소서저희를 영영 버리지 마소서어찌하여 당신 얼굴을 감추시나이까어찌하여 가련하고 비참한 저희를 잊으시나이까

 

복음<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마르1,40-45)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연중 제1주간 목요일 제1독서 (1사무4,1ㄴ-11)

 

"그리하여 백성은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거기에서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만군의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왔다.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하느님의 계약 궤와 함께 왔다. 주님의 계약 궤가 진영에 도착하자, 온 이스라엘은 땅이 뒤흔들리도록 큰 함성을 올렸다."  (4~5)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만군의 주님의 계약 궤를'에서 '좌정하신'에 해당하는 '요세브'(yosheb; is enthroned; dwells)는 '앉다', '머무르다'라는 뜻의 동사 '야샤브'(yashab)가 분사 형태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가 '커룹'과 같은 단어와 함께 사용되면, '커룹들 위에 좌정하시다', '커룹들 사이에 좌정해 계시다'와 같은 신학적 의미를 갖게 된다(2사무6,2; 시편99,1). 새 성경이 번역한 '커룹'은 복수형 '케루빔'(kerubim)이 단수형 '케루브'(kerub)를 한글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케루빔'은 천사의 한 이름으로 묘사되는데, 얼굴과 날개를 가졌다고 하는 것 외에 성경이 그들에 대해 더 이상 말하고 있는 것은 없다(탈출25,20).

이들의 역할은 계약 궤를 보호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하느님의 어좌를 떠받치는 것인데, 성경은 두 커룹 사이에서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거나(탈출25,22; 민수7,89) 좌정하신다고(2사무6,2) 묘사하고 있다.

 

사무엘서 상권 4장 3절에서는 단순히 '주님의 계약 궤'로 언급되고 있는 반면, 여기 사무엘서 상권 4장 4절에서는 저자의 관점에서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만군의'라는 수식어가 첨가되었다.

 

'만군의 주님이'에 해당하는 '예흐와 체오바트'(yehwa tsebaoth)에서 '만군의'로 번역된 '체바오트'(tsebaoth)는 '군대들' 혹은 '많은 군대'를 뜻한다.

영어 성경에서는 대개 이것을 '주인', '군대'를 의미하는 'host'와 같은 명사를 사용하여 'hosts'로 번역하거나 '전능하심'이란 뜻으로 이해해서 'almighty'로 번역한다.

 

사무엘서 저자는 '만군의 주님'에 해당하는 '예흐와 체오바트'라는 표현을 성경에서 처음으로 사용할 뿐 아니라 사무엘서 전체에서 지속적으로 이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구체적으로는 모든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승리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만군의 주님'이심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보여진다.

 

이 표현은 또한 사무엘서의 실질적인 중심 인물인 다윗이 위대하게 된 것이 그를 인도하신 '만군의 주님' 때문임을 알게 하는데 쓰여진다.

다윗은 자신의 마지막 노래인 사무엘서 하권 22장 18절에서 "나의 힘센 원수에게서 나보다 강한 적들에게서 나를 구하셨네"라고 고백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용사는 자신이 아니고 주 하느님이심을 밝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군의 주님'이라는 표현은 사무엘서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중심 단어들 중에 하나이며, 이것은 온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시고 다스리시는 만물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증거하는 것이다(판관4,2; 1열왕22,19; 신명4,19).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하느님의 계약 궤와 함께 왔다'

 

계약 궤가 실로에서부터 도착하였고,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가사제로서 계약 궤와 동행했다. 원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거기에 엘리의 아들 둘이 하느님의 계약 궤와 함께 있었는데, 호프니와 피느하스였다' 이다.

 

호프니와 피느하스를 강조적으로 표현하는 이러한 문장 구조를 통해 엘리의 아들들이 맞이하게 될 운명에 대해 독자들로 하여금 극적인 긴장감을 갖게 한다.

 

또한 '거기'에 해당하는 '샴'(sham)과 '함께 왔다'에 해당하는 '임'(ym)은 주님의 계약 궤를 가져온 이 사건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 암시를 주고 있다.

 

사무엘서 상권 2장 12절에서 저자는 호프니와 피느하스를 '불량한 자들'로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불량한 자들'에 해당하는 '뻬네 벨리야알'(bene belliyaal)은 '무가치한 자의 아들들' 혹은 '사악한 자의 아들들'을 의미한다.

 

또한 사무엘서 상권 2장 17절에서 그들의 죄가 주님 앞에서 매우 커진 것은 그들이 주님의 제물(제사)을 업신여겼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불의한 호프니와 피느하스가 주님의 궤와 함께 있다고 하는 것은 하느님의 거룩함과 인간의 불결함이 충돌을 일으킬 수 밖에 없음을 암시해 준다.

 

만약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위해 계약 궤를 앞에서 전진하게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요구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의 이스라엘의 거룩함과 순결함일 것이다(여호3,15).

 

그런데 호프니와 피느하스와 같은 부정한 자가 스스로 거룩함을 회복하지 못한 채

 불결하게 주님의 계약 궤와 '함께' 있다는 것은,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모욕하는 것으로서

 그들이 어떤 최후를 맞이할 지 충분히 예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한편 사무엘서 상권 4장 5절의 큰 함성은 하느님의 궤는 있지만, 사실상 하느님의 개입은 전혀 없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땅은 온 이스라엘의 함성으로 뒤흔들렸지만,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는 침묵하신다.

 

따라서 본 단락은 주님의 계약 궤의 출현으로 승리를 확신하는 이스라엘의 떠들썩한 분위기로 시작되었지만, 결국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약 궤를 빼앗기고 온 성(城)이 패배를 부르짖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1사무4,13).

 

 

 오늘 독서는 이스라엘이 필리스티안인들과의 싸움에서 패하고, 주님의 계약 궤를 빼앗기는 이야기이다.

엘리 사제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의 범죄로 인해 하느님의 심판이 시작되고, 그 결과 주님의 궤를 빼앗기게 된다. 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직분을 소홀히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사제의 신분으로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를 경멸했고, 하느님께 드려야 할 제물을 먼저 빼앗아 먹었으며, 만남의 천막 어귀에서 봉사하는 여인들과 음란한 죄를 범했다.(1사무 2,11-17.22-25)

그들은 아버지 엘리의 말도 듣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죄를 지으면 하느님께서 중재하여 주시지만,  사람이 주님께 죄를 지으면 누가 그를 위해 빌어 주겠느냐?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주님께서 그들을 죽이실 뜻을 품으셨기 때문이다." (25)

 

이스라엘은 이제 에벤 에베르 전투에서 비참하게 패배하고, 군사가 사천명 가량이나 죽었다.(1-2)

그래서 군사들이 진영으로 돌아오자,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패배 원인에 대한 반응을 나타내고 대책을 내놓는다.

이스라엘의 원로들은 패배가 전혀 뜻밖이라는 탄식조의 발언을 하며, 필리스티아인들에 비해 병력이나 군비면에서 전혀 손색이 없었음에도, 무참하게 패배한 데에는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엘리 사제와 그 아들들에 대한 심판이 전쟁의 패배로 나타났는데도, 그들은 하느님께도 책임이 있다는 말투를 드러낸다.

 "주님께서 어찌하여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앞에서 우리를 치셨을까?" (3)

 이들은 지금 전쟁에서 패한 이유를 정확히 모르고 있다.  이들은 하느님은 무조건 전쟁에서 이기게 하시고, 복을 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을 뿐,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심판하시는 분임을 모르고 있다.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인 동시에 정의의 하느님이신대도 말이다.

 

바로 <실로>에 있는 주님의 <계약 궤>를 진중으로 가져오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쟁에서 패한 원인이 주님의 <계약 궤>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님의 <계약 궤>만 있으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시어 원수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합시다." (3-4)

그런데, 그 <계약 궤>를 지키고 있는 두 사람이 바로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였다.

하느님의 심판의 대상인 그들이 거룩한 하느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계약 궤>를 지킨다는 것은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주님의 계약 궤가 진영에 도착하자, 온 이스라엘은 땅이 뒤흔들리도록 큰 함성을 올렸다." (5)

이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 함성이다. 그러나 이들은 큰 착각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주님이 떠나버린 <계약 궤>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상징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필리스티아인들은 히브리인들의 진영에서의 함성 소리를 듣고, 주님의 궤가 진영에 도착한 사실을 알게 되어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우리는 망했다! 이런 일은 일찌기 없었는데~" (8) 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 전쟁 중에 <계약 궤>를 가지고 온 것이 처음이라는 뜻도 되고, 필리스티아인들이 처음으로 전쟁 중에 공포를 느꼈다는 의미도 된다.

그리하여 필리스티아인들은 히브리인들의 포로와 종이 되지 않기 위해서 "사나이답게 싸우자"고 격려하며 대담하게 싸워서, 이스라엘의 보명 십만명을 죽이고, 하느님의 궤도 빼앗는다. (9-11)

 

우리 주님께서는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심으로, 어떤 장소나 어떤 상징적인 물건에 구속받지 않으신다. 주님의 임재가 떠난 <계약 궤>는, 아무런 힘도 소용도 없는 나무 궤짝에 지나지 않는다.

범죄한 백성이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은 전혀 방패와 도움이 되어 주시지 않는다.

 

이 전쟁에서 중요한 사건은 바로 엘리의 두 아들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징계이다.

영적으로 타락한 이스라엘 대한 징계인 동시에, 엘리 가문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 성취된 것을 보여준다. (1사무 2,34)

 

<계약 궤>는 하느님이 임재하신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그들은 <계약 궤>자체에 어떤 능력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여 그 상징이 의미하고 있는 본질을 바로 알지 못함으로, 미신적인 신앙으로 흘려 버렸다. 무조건 <계약 궤>만 있으면, 거기에서 능력이 나와서 이기는 것으로 착각하고 오해했던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하느님의 놀라운 특권을 가진 이스라엘이 그 특권을 누리려면,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죄는 그대로 품은 채, <계약 궤>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계약 궤>가 진중에 도착한 것을 보고, 함성을 지르는 것은 소용이 없다. 우리 주님은 겉이 아니라 속(중심)을 보시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눈에 보이는 성전이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이면 무엇하는가? 그 성전 안에, 진정으로 살아계신 하느님께서 임재하시는가? 가 중요하다. 겉만 잘 포장된 위선적인 신앙인 말고, 인격의 중심에 항상 주님을 모신 자녀, 겉과 속이 같은, 진실하고 거룩한 주님의 자녀로서 살아가자.

 


 

 

[연중 제1주간 목요일오늘의 묵상 (사제 김재덕 베드로)

 

레위기에 따르면 나병 환자는 사람들이 다가오거나 누군가 자신의 주변에 있으면, “부정한 사람이오.”(레위 13,45) 하고 외쳐야 하였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손을 대서도 안 되고그 또한 누군가와 접촉하여서도 안 되었습니다.

진영이나 도시 밖에 살아야 하는(13,46 참조나병 환자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경멸과 모욕하는 마음으로 그를 피하였을 것입니다.

나병에 걸리면 병으로도 고통받았지만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아마도 사람들에게서 겪는 깊은 단절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병 환자는 오늘 복음에서 결코 하여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합니다.

예수님께 다가가 도움을 청합니다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자신을 고쳐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 그를 이렇게 움직이게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마음은 가엾은 마음이었습니다.

가엾은 마음으로 옮긴 그리스 말의 어원적 의미를 보면, ‘애가 타는 마음’, ‘심장이 찢어지는 마음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엾은 마음은 그분께서 나병 환자의 몸에 몸소 손을 대시게 만듭니다.

사람들과의 단절로 상처받은 그의 마음과 영혼을 예수님께서 고쳐 주십니다.

그리고 나병 환자에게 정말로 필요한 말씀그가 생명을 누릴 수 있는 말씀을 하여 주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가장 절망적일 때 우리가 찾고 만나야 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성체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성체 앞에 머물 때마다 나병 환자에게 행하신 기적을 그대로 일으키십니다.

그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는 우리 영혼의 깊은 상처에 손을 대시며생명의 말씀과 치유의 말씀을 하여 주십니다.

성체 앞에 머물러 보지 않은 사람은 이 신비를 알 수 없습니다.

 

(김재덕 베드로 신부)

 

 

 


 


 

 [연중 제1주간 목요일독서묵상(1사무 4,1ㄴ-11)

 

(1사무 4,1-11)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우러 나가 에벤 에제르에 진을 치고필리스티아인들은 아펙에 진을 쳤다. 2 필리스티아인들은 전열을 갖추고 이스라엘에게 맞섰다싸움이 커지면서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에게 패배하였다필리스티아인들은 벌판의 전선에서 이스라엘 군사를 사천 명가량이나 죽였다. 3 군사들이 진영으로 돌아오자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말하였다. “주님께서 어찌하여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앞에서 우리를 치셨을까실로에서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옵시다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시어 원수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합시다.” 4 그리하여 백성은 실로에 사람들을 보내어거기에서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만군의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왔다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하느님의 계약 궤와 함께 왔다. 5 주님의 계약 궤가 진영에 도착하자온 이스라엘은 땅이 뒤흔들리도록 큰 함성을 올렸다.

필리스티아인들이 이 큰 함성을 듣고, “히브리인들의 진영에서 저런 함성이 들리다니 무슨 까닭일까?” 하고 묻다가주님의 궤가 진영에 도착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7 필리스티아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말하였다. “그 진영에 신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망했다이런 일은 일찍이 없었는데. 8 우리는 망했다누가 저 강력한 신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겠는가저 신은 광야에서 갖가지 재앙으로 이집트인들을 친 신이 아니냐!

그러니 필리스티아인들아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히브리인들이 너희를 섬긴 것처럼 너희가 그들을 섬기지 않으려거든사나이답게 싸워라.” 10 필리스티아인들이 이렇게 싸우자이스라엘은 패배하여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도망쳤다이리하여 대살육이 벌어졌는데이스라엘군은 보병이 삼만이나 쓰러졌으며, 11 하느님의 궤도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죽었다.

= 하느님의 궤의 의미도 모르면서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섬기고 의지하는 행위, 하느님의 진노를 살 일입니다.

그래서 그랬던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하고 하느님의 궤도 빼앗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궤를 빼앗아 갔던 필리스타인들 또한 그 때문에 하느님께 벌을 받자 궤를 돌려보냅니다.

 

(1사무6, 13) 13 그때에 벳 세메스인들은 골짜기에서 밀을 거두어들이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는 기뻐하며 나가 맞았다. 19 그런데 주님께서는 벳 세메스 사람들이 주님의 궤를 보았기 때문에 그들을 치셨다. 그 백성 가운데에서 일흔 명과 오만 명을 치신 것이다. 주님께서 그 백성을 그토록 크게 치셨기 때문에 그들은 애도하였다.

= 하느님의 궤를 하느님의 뜻으로 깨닫지 못하고 사람의 눈으로 보이는 그대로 보면 죽음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모르고 하는 모든 것은, 구원의 헛된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오늘 그 하느님의 궤를 올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탈출25, 17-22) 17 너는 순금으로 속죄판을 만들어라. 그 길이는 두 암마 반, 너비는 한 암마 반으로 하여라.

=순금-하늘의 왕께서 속죄 제물로 오신 그 대속의 의미인 속죄판 입니다.

18 그리고 금으로 커룹 둘을 만드는데, 속죄판 양쪽 끝을 마치로 두드려 만들어라.

= 금- 왕의 심판권을 갖는 커룹입니다.

19 커룹 하나는 이쪽 끝에, 다른 하나는 저쪽 끝에 자리 잡게 만들어라. 그 커룹들은 속죄판 양쪽 끝에 만들어야 한다. 20 커룹들은 날개를 위로 펴서 그 날개로 속죄판을 덮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게 하여라. 커룹들의 얼굴은 속죄판 쪽을 향해야 한다.

= 커룹이 속죄판을 향하고 있습니다. 심판이 속죄(대속)판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21 너는 그 속죄판을 궤위에 얹고, 궤 안에는 내가 너에게 줄 증언판(십계명)을 넣어라. 22 내가 그곳에서 너를 만나고, 속죄판 위, 곧 증언 궤위에 있는 두 커룹 사이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하여 내가 너에게 명령할 모든 것을 일러 주겠다.”

= 증언판(십계명)위에 속죄판(대속-용서)이 있고 그 속죄판 위에 커룹(심판) 둘이 있는 모습입니다.

다시- 1 맨위에 커룹 2 그 밑에 속죄판 3 그 밑에 증언판- 하느님의 계약의 궤입니다.

하느님의 심판권을 갖은 커룹(천사) 둘이 증언판 곧 십계명으로 심판을 하려고 하지만 중간에 속죄판이 가로 막고 있어 심판을 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궤위에서 우리를 만나 주시고 우리를 위한 모든 명령(계명), 말씀을 주신다. 하십니다. 곧 하느님의 명령(계명) 그분의 말씀을 어겨 반드시 죽어야만 될 우리 죄인들을 속죄판 곧 대속의 죽음으로 만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속죄 제물의 그 대속의 죽음은 모르는체 보이는 그대로, 그 궤의 형상만을 섬기게되면 우상의 행위가 되니 하느님을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20,12)  12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 우리의 죄를 증언할 그 계명판을 가로 막고 계시는 속죄판 이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 위에 두 천사, 두 커룹이 있습니다. 속죄판 그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예수님 때문에 심판권을 가진 천사(커룹)가 심판을 못합니다.

 

(루카12,8-9)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커룹 둘)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 십자가의 예수님, 그 나께서 당신의 대속으로 나의 무죄를 증언해 주시는 것입니다.

9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 십계명을 열 개의 법으로 받아 온전히 지키지 못한 그 죄를 예수님께서 속죄 제물로 대신 죽으신 그 무죄의 증언입니다. 그리고 진실은 ~ 십계명 각 계명 안에는 속죄 제물로 죽으신 그 대속의 죽음 그 사랑 하나가 들어있는 하나의 계명인 것입니다.(마태 223,38참조)

그 하느님의 뜻, 그 구원의 계명, 십자가의 의미는 모르면서~~ 내 뜻을 위한 섬김, 십자가 경배 등 그 종교행위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아니 불법, 죄입니다. (마태7,23. 20,28참조)

그래서 그 열심한 종교행위로 영적으로 죽어가지만 고통을 모르는 그 나병에 걸리는 겁니다. 오늘 복음의 그 나병 환자가 바칠 예물이 바로 어린양의 죽음, 그 속죄판임을 깨닫고 감사드리는 것입니다.(레위14,11참조)

성경 속에서 그 대속으로 얻는 용서, 생명, 구원, 그 하느님의 약속을 찾아 내안에 간직하면 됩니다. 그 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입니다.

♡ 아멘 -*^ㅇ^*-

 

 

   

연중 제1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구약 성경을 보면,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은 “죽음의 맏자식이 사지를 갉아먹는”(욥기18,13) 육체의 고통뿐만 아니라, ‘부정(不淨)한 자’로 여겨져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마침내 단절되어야 하는 고통을 받습니다(레위 13,45-46 참조).

 

‘부정한 사람’이라 외치며 다른 사람의 접근을 막아야 하는 나병 환자가 용기 내어 예수님께 다가갑니다.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무릎 꿇은 그의 간청에서 신뢰와 확신이 느껴집니다.

 

‘접촉해서는 안 되는’ 나병 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시며, 깨끗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도 놀랍습니다.

나병 환자의 치유는 부정(不淨)을 정(淨)으로 바꾼 기적입니다. 그래서 사회적 종교적으로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킵니다.

 

당시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나병을 고치는 것은 하느님만이 가지고 계시는 능력으로, 죽은 이를 살리는 것과 맞먹는 능력입니다(2열왕 5,1-7 참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능력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이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시지만, 나병 환자는 놀라움과 기쁨을 혼자 간직할 수 없었나 봅니다.

 

그는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합니다.

이 문장은 직역하면, ‘그 말씀을 널리 선포하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입니다.

어쩌면 마르코는, 나병 환자가 예수님을 만난 뒤, 복음을 선포하는 제자가 되었음을 전하려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다양한 고통과 단절의 상황에 부딪힙니다.

그럴 때마다 용기 내어 예수님께 다가가 엎드려 청합시다. 그리고 복음을 선포하는 제자의 삶을 충실히 살아갑시다.

그분께서는 간절히 청하는 우리를 자비의 손길로 깨끗하게 하시고, 고통과 단절에서 구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연중 제1주간 목요일 복음 (마르1,40~45)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4)

 

여기서 '모세가 명령한 예물'이란, 모세의 율법에 부정한 이가 정결함을 입었을 경우에 사제에게 가서 바쳐야 할 제물들을 가리킨다.

 

정결례에 관해 기록된 레위기의 규정을 보면, 이것은 살아있는 정결한 새 두마리, 향백나무, 다홍실, 우슬초였고(레위14,4), 다시 여드레째 되는 날에 바쳐야 하는 것으로는 흠없는 어린 숫양 두 마리와 일 년 된 흠없는 어린 암양 한 마리, 곡식 제물로 바칠 기름 섞은 고운 곡식 가루 십분의 삼 에파와 기름 한 록이었다(레위14,10).

 

또한 마르코 복음 1장 44절 전반부에 기록된 것처럼, 그 제물을 바치기 전에 자신이 병이 나았음을 먼저 사제에게 보이고 정결한 이로 선언을 받아야 한다(레위13,16.17).

 

사실 예수님께서는 제사가 바쳐지던 성전보다 더 크신 분이시고(마태12,6), 당신 자신이 임금같은 대사제인 멜키체덱의 반열을 따르신 대사제이시므로, 반드시 구약의 제의적 행위를 필요로 했던 것은 아니다(히브6,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치유받은 나병 환자에게 율법의 규정을 준수하도록 명령하신 것은, 당신이 율법을 폐지하거나 부정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온전케 하고 완성하러 오셨다(마태5,17)는 사실을 확인하여 보여 준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치유의 완전성을 보여 준다.

당시 나병 환자의 완치를 공적으로 확인해 주던 사제에게 보여도 아무런 하자가 없을 정도로 예수님의 치유는 완벽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환자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유대인 공동체 안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하는 우리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아무런 하자없이 그리스도의 왕국에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예표하는 것이다.

 

 

 

 [연중 제1주간 목요일]

 

하늘은 실체(實體), 땅은 실체(實體)의 그림자

 

1독서(1사무4,1-11)

1ㄱ 그리하여 사무엘의 말은 그대로 온 이스라엘에 전해졌다.

= 사무엘이 전(傳)한 말은 하느님의 뜻, 말씀으로 하늘, 평화(平和), 용서(容恕), 생명(生命)을 위한 약속(約束)이 아니었다.

 

1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우러 나가 에벤 에제르에 진을 치고필리스티아인들은 아펙에 진을 쳤다.

= 이스라엘은 과거(過去)에 필레스티나의 노예(奴隸)였다.

 

(판관16,30) 30 삼손이 필리스티아인들과 함께 죽게 해 주십시오.” 하면서 힘을 다하여 밀어내니그 집이 그 안에 있는 제후들과 온 백성 위로 무너져 내렸다그리하여 삼손이 죽으면서 죽인 사람이그가 사는 동안에 죽인 사람보다 더 많았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전열을 갖추고 이스라엘에게 맞섰다싸움이 커지면서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에게 패배하였다필리스티아인들은 벌판의 전선에서 이스라엘 군사를 사천 명가량이나 죽였다. 3 군사들이 진영으로 돌아오자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말하였다. “주님께서 어찌하여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앞에서 우리를 치셨을까실로에서 주님(야훼)의 계약 궤를 모셔 옵시다(야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시어 원수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합시다.” 4 그리하여 백성은 실로에 사람들을 보내어거기에서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만군의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왔다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하느님의 계약 궤와 함께 왔다.

= 엘리 사제(司祭)의 두 아들은 하느님께 뜻으로 들릴 제물(祭物)을 자신들의 뜻대로, 멋대로 먹는 등, 불량(不良)한 사제(司祭)였다.

 

주님(야훼)의 계약 궤가 진영에 도착하자온 이스라엘은 땅이 뒤흔들리도록 큰 함성을 올렸다. 6 필리스티아인들이 이 큰 함성을 듣고, “히브리인들의 진영에서 저런 함성이 들리다니 무슨 까닭일까?” 하고 묻다가주님(야훼)의 궤가 진영에 도착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7 필리스티아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말하였다. “그 진영에 신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망했다이런 일은 일찍이 없었는데. 8 우리는 망했다누가 저 강력한 신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겠는가저 신은 광야에서 갖가지 재앙으로 이집트인들을 친 신이 아니냐! 9 그러니 필리스티아인들아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히브리인들이 너희를 섬긴 것처럼 너희가 그들을 섬기지 않으려거든사나이답게 싸워라.” 10 필리스티아인들이 이렇게 싸우자이스라엘은 패배하여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도망쳤다이리하여 대살육이 벌어졌는데이스라엘군은 보병이 삼만이나 쓰러졌으며, 11 하느님의 궤도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죽었다.

= 야훼 하느님의 계약(契約)의 궤(櫃)로 요르단 강물이 멈추고, 갈라져 이스라엘은 마른땅을 밟고 무사히 약속(約束)의 땅을 향(向)해 건너갈 수 있었다.(여호수3,17- 참조)

하느님의 계약(契約)궤(櫃)로 예리코의 강한 성읍(城邑)을 무너뜨리고 예리코의 힘센 임금(王), 용사(勇士)들을 이길 수 있었다. (여호수6,2-20)

본문에서도 “저 신(야훼)은 광야(廣野)에서 갖가지 재앙(災殃)으로 이집트인들을 친 신()” 이라고 팔레스타인들 까지 알고 있지 않은가그런데 왜 이스라엘이 팔레스티아에게 패배(敗北)했을까그것은 본문 1절에 사무엘이 전()한 말곧 하느님의 구원의 계약인 말씀과 관련(關聯)이 있다.

 

먼저 하느님의 계약 궤부터 알아야 한다하느님께서 아카시아 나무로 궤()를 만들어 순금(純金)을 입혀서 (완성만들라고 하시고 속죄판(贖罪板또한 금()을 입혀서 만들고거룹(천사둘도 만들어 속죄판(贖罪板양쪽 끝에 자리 잡게 하라고 하셨는데 ~

(탈출25,20-22) 20 커룹들은 날개를 위로 펴서 그 날개로 속죄판을 덮고서로 얼굴을 마주 보게 하여라커룹들의 얼굴은 속죄판 쪽을 향해야 한다. 21 너는 그 속죄판을 궤 *위에 얹고궤 안에는 내가 너에게 줄 증언판(십계명판)을 넣어라. 22 내가 그곳에서 너를 만나고속죄판 위곧 증언 궤 위에 있는 두 커룹 사이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하여 내가 너에게 명령할 모든 것을 일러 주겠다.”

= 십계명(十誡命), 그 법(法)으로는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법(法)으로 심판(審判)해야할 커룹(천사) 둘이 죄(罪)를 증언(證言)할 증언판(證言板)을 덮고 있는 속죄판(贖罪板) 때문에 심판(審判)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것이 “주님의 계약 궤”의 전체의 뜻, 하느님의 뜻이다.

생각해보자, 하느님의 계명을 온전히 다 지키지 못해 죽어야할 우리다. 그 죽어야할 우리의 죄(罪)를 덮어 커룹 둘이 죄의 심판(審判)을 내리지 못하도록 가린 속죄판(贖罪板)이 누구시겠는가!~

우리의 모든 죄(罪)를 대속(代贖)하시고 피로 덮으신, 우리 죄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곧 ‘하느님의 계약의 궤’의 완성된 모습이 하느님의 뜻을 다 이루신 “예수님의 무덤”이다.

 

(요한20,11-12)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12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한 천사(커룹)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 속죄판(贖罪板)이신 예수님의 양쪽 끝에 자리잡은 커룹(天使) 둘이다. 그 커룹 둘이 예수님의 대속(代贖), 그 속죄(贖罪)의 죽음 때문에 죄의 심판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오히려 심판(審判)대신 ‘그리스도의 부활(復活)’ 그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 우리 죄의 용서, 해방, 구원, 부활의 소식(消息)인 것이다.

 

다시~(탈출25,22) 22 내가 그곳에서 너를 만나고속죄판 위곧 증언 궤 위에 있는 두 커룹 사이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하여 내가 너에게 명령할 모든 것을 일러 주겠다.”

= 하느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예수님을 통해 보시기로 하신 것이다.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우리의 모든 것이 “빛, 의(義), 새것, 예(yes)”가 된다.(2코린5,17) 곧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相關)없는 것은 보시지 않기로 하신 것이다.

하느님의 계약의 궤, 하느님의 대속, 그 뜻은 깨닫지 못하고 사람의 뜻, 자신들의 소원(所願)을 위한 말로 들어 실행(實行)하는 것이 패배(敗北)인 것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티아인에 패배한 이유다.

 

(예레3,16) 16 너희가 *그날 그 땅에서 불어나고 번성하게 될 때주님의 -말씀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주님의 계약 궤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것이다그것을 마음에 떠올리거나 기억하거나 찾지 않을 것이며다시 만들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 계명(誡命), 법(法)의 심판(審判)의 말씀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지금이다.

 

(히브9,5) 5 궤 위에는 영광의 커룹들이 속죄판을 덮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것들을 자세히 말할 때가 아닙니다.

=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속죄판(贖罪板), 속죄(贖罪)의 제사(祭祀)를 “다 이루셨기” 때문이다.

 

(로마3,25)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로마10,1-3) 1 형제 여러분내 마음의 소원그리고 내가 그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는 그들(율법)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2 나는 그들에 관하여 증언할 수 있습니다그들은 하느님을 위한 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그것은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열성입니다.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태6,33)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하느님의 말씀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모든 죄(罪)를 대속(代贖)하신 속죄판(贖罪板)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하늘의 의로움을 찾는 것, 깨닫는 것, 믿는 것이 신앙생활(信仰生活)이다.

사람의 자기 의로움을 위한 말씀으로 받아 살면, 그 사람의 의(義)는 차별적(差別的)이고 변(變)하는, 영원하지 못한 의(義)이기에 구원이 없는 패배(敗北)인 것이다.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 나병환자(癩病患者)를 고쳐 주심이 육(肉)의 병(病)을 고쳐주심으로 본다면 패배(敗北)인 것이다. 그가 하느님의 말씀(뜻, 지혜)을 사람의 말(뜻, 지혜)로 들어 구원 못받는, 즉 자신의 영(靈)이 썪어 들어가도 고통(苦痛)을 모르는 나병환자(癩病患者)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하느님 계약의 말씀으로 땅에서 하늘의 찾고깨닫고믿는 신앙을 살게 하소서참 빛참 사랑이 있는 그곳그 위를 향한 기도발길이 되게 하소서서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6년 01월 15일 목요일

[연중 제1주간 목요일(이철구 요셉 신부)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한 나병 환자의 고백을 듣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르 1,40).

이 말은 단순한 믿음을 넘어자신의 고통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는 나병 환자의 절박한 마음을 느끼게 합니다.

이 고백은 주님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1,41)라고 하시며 그를 치유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병자의 간절함과 확신에 찬 믿음을 보시고 그의 바람을 들어주십니다.

누구든지 맑고 깨끗한 영혼으로 살아가기를 바랄 것입니다.

악하고 타락한 마음으로 욕심을 채우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유혹과 시련은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십니다그리고 이 초대에 응답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초대에 귀를 기울이며 믿음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나병 환자처럼 우리도 주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과 간절함을 가져야 합니다.

외적인 병의 치유를 넘어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삶을 향한 믿음으로 주님 편에 굳건히 서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기꺼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당신 은총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 우리 자신을 맡기며 맑고 순수한 본연의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합시다.

 

(이철구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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