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주간 수요일] “손을 뻗어라.” (마르3,1-6)

2026. 1. 20. 오전 7: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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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1일 수요일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손을 뻗어라.” (마르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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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다윗은 필리스티아 사람을 눌렀다.>(1사무17,32-33.37.40-51

32 다윗은 사울에게, “아무도 저자 때문에 상심해서는 안 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필리스티아 사람과 싸우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사울은 다윗을 말렸다. “너는 저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마주 나가 싸우지 못한단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전사였지만, 너는 아직도 소년이 아니냐?”

37 다윗이 말을 계속하였다.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저를 빼내 주신 주님께서 저 필리스티아 사람의 손에서도 저를 빼내 주실 것입니다.” 그제야 사울은 다윗에게 허락하였다. “그러면 가거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빈다.”

40 그러고 나서 다윗은 자기의 막대기를 손에 들고, 개울가에서 매끄러운 돌멩이 다섯 개를 골라서 메고 있던 양치기 가방 주머니에 넣은 다음, 손에 무릿매 끈을 들고 그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다가갔다.

41 필리스티아 사람도 방패병을 앞세우고 나서서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42 그런데 필리스티아 사람은 다윗을 보더니, 그가 볼이 불그레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소년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그를 업신여겼다.

43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윗에게 막대기를 들고 나에게 오다니, 내가 개란 말이냐?” 하고는,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였다.

44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시 다윗에게 말하였다. “이리 와라. 내가 너의 몸을 하늘의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주겠다.”

45 그러자 다윗이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이렇게 맞대꾸하였다. “너는 칼과 표창과 창을 들고 나왔지만, 나는 네가 모욕한 이스라엘 전열의 하느님이신 만군의 주님 이름으로 나왔다.

46 오늘 주님께서 너를 내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나야말로 너를 쳐서 머리를 떨어뜨리고,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진영의 시체를 하늘의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주겠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계시다는 사실을 온 세상이 알게 하겠다.

47 또한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로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도, 여기 모인 온 무리가 이제 알게 하겠다. 전쟁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그분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48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윗을 향하여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다윗도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향하여 전열 쪽으로 날쌔게 달려갔다.

49 그러면서 다윗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 하나를 꺼낸 다음, 무릿매질을 하여 필리스티아 사람의 이마를 맞혔다. 돌이 이마에 박히자 그는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쓰러졌다.

50 이렇게 다윗은 무릿매 끈과 돌멩이 하나로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누르고 그를 죽였다. 다윗은 손에 칼도 들지 않고 그를 죽인 것이다.

51 다윗은 달려가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밟고 선 채, 그의 칼집에서 칼을 뽑아 그를 죽이고 목을 베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저희 용사가 죽은 것을 보고 달아났다.

 

<화답송>시편144,1.2.9-10(1) 나의 반석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나의 반석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그분은 내 손가락에 싸움을, 내 손에 전쟁을 가르치셨네.

그분은 나의 힘, 나의 산성, 나의 성채, 나의 구원자, 나의 방패, 나의 피난처, 민족들을 내 밑에 굴복시키셨네.

하느님, 당신께 새로운 노래 부르오리다. 열 줄 수금으로 찬미 노래 부르오리다. 당신은 임금들을 구원하시고, 당신 종 다윗을 악독한 칼에서 구하시나이다.

 

복음<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마르3,1-6)

1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4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5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6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제1독서 (1사무17,32-33.37.40-51)

 

"또한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로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도,  여기 모인 온 무리가 이제 알게 하겠다.  전쟁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그분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다."  (47)

 

사무엘서 상권 17장 47절은 목적절을 이끄는 '키'(ki)로 시작되는데, 전쟁에 모인 무리들이 앞으로 전개될 사건을 통해 알게 될 내용을 나타낸다.

 

여기서 수단을 나타내는 전치사 '뻬'(be)가 사용되면서  주님의 구원은 칼이나 창을 수단으로 하여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로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내용은  사무엘서 상권 14장 6절의 요나탄의 신앙고백과 맥을 같이 한다.

 

"자! 저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전초 부대로 넘어 들어가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동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승리하시는 데에는 수가 많든 적든 아무 상관이 없다."

 

다윗과 요나탄은 모두 주님의 구원이 객관적인 군사력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주님의 개입과 역사하심에 달려 있음을 고백하는 성숙한 신앙의 소유자였다.

 

'전쟁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에 해당하는 '키 라이흐와 함밀르하마' (ki laihwa hammilhama; for the battle is the LORD's)에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키'(ki; for)가 등장하여, 주님의 구원이 세상적인 무기에 의존하지 않는 이유를 나타낸다.

 

'전쟁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는 말은 '전쟁'('함밀르하마'; hammilhama; the battle)의 승리와 패배 여부가 전적으로 '주님께 달려 있다'('라이흐와'; laihwa;  is the LORD)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여러 사건을 통해서 분명하게 입증되었다.

주님의 계약 궤로 인하여 필리스티아의 여러 도시들이 재앙을 받은 사건(1사무5장), 사무엘을 통한 필리스티아와의 전쟁 승리(1사무7장),  사울을 통한 암몬족과의 전쟁 승리(1사무11장),  요나탄을 통한 필리스티아와의 전쟁 승리(1사무14장) 등은 모두 전쟁이 주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자명하게 입증하는 사건들이었다.

 

말하자면 본문은 전쟁의 결과가 인간의 노력이나 군사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주 하느님의 섭리에 달려 있음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그분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다'는 문장은  사무엘서 상권 17장 46절에 대한 반복인데,  '너를'이 '너희를', '내 손에'가 '우리 손에'로 보다 확대되었다.

 

'넘겨 주실 것이다'에 해당하는 말이 사무엘서 상권 17장 46절에는 '예싹게르카'(yesaggerka; will hand you over; will deliver you), 사무엘 상권 17장 47절에는 '웨나탄 에트켐'(wenathan ethkem;  and he will give all of you; and he will give you)으로 나온다.

 

'예싹게르카'(yesaggerka)는 '닫다', '폐쇄하다'라는 뜻의 원형 '싸가르'(sagar)의 강조형과 필리스티아 사람을 지시하는  2인칭 대명사 접미어 '카'(ka)가 결합된 것으로서  직역하면 '그가 너를 반드시 닫으실 것이다'가 된다.

 

이 동사에 '내 손에'라는 뜻의 전치사구 '뻬야디'(beyadi;  into my hand)가 결합되어 '주님께서 다윗의 손안에 필리스티아 사람을 가두어 놓을 것이다'라는 의미가 된다.

 

일반적으로 '누구의 손에 붙이다(넘겨 주다)'라는 표현에는 사무엘 상권 14장 10절과 17장 47절처럼 '주다'라는 뜻의 '나탄'(nathan) 동사가 사용되는데,  사무엘 상권 17장 46절처럼 '싸가르'(sagar) 동사를 사용한 것은  필리스티아 사람(골리앗)의 목숨이 완전히 다윗 자신의 손에 맡겨져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구체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말하자면 다윗이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에 근거하여 필리스티아 사람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확신하는 표현인 것이다.

 

이제 이러한 다윗의 확신이 사무엘서 상권 17장 47절에서 확대되어 다윗과 필리스티아 사람의 싸움이 이스라엘과 필리스티아 전체의  싸움이라는 사실로 넘어가고, 다윗 개인의 구원이 이스라엘 전체의 공동체적 구원으로 확장되고 있다.

 

골리앗은 필리스티아의 대표이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대표이기 때문에, 그들의 싸움을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제로 필리스티아인들은 그들의 용사인 골리앗이 다윗에게 죽임을 당하자 도망을 쳤던 것이다(1사무17,51).

 

다윗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승리케 하심으로 이스라엘 전체를  필리스티아의 손에서 구원하실 것이라는 확신에 찬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마르 2,28)이라는 어제 예수님의 선포가 오늘 치유 기적으로 증명됩니다.

이 기적은 유다인들에게 중요한 시간(안식일)과 공간(회당)에서 일어납니다.

 

안식일, 어느 회당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과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위축된 삶을 살았을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가운데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물으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이 질문은 ‘선한 일’이나 ‘생명을 구하는 일’이 율법의 맹목적인 준수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안식일은 선한 일을 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날입니다.

소외되고 위축된 삶을 회복시켜야 하는 날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분께서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하시려는 일입니다.

 

“손을 뻗어라.”

이렇게 치유는 안식일을 위반하는 구체적인 행동 없이 권위 있는 말씀으로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곧바로 사형 권한을 지닌 헤로데의 추종자들과 예수님을 없애기로 모의합니다.

그들의 행동은 “남을 해치는 일”, “죽이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하신 “좋은 일”, “목숨을 구하는 것”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사람을 위하여 생긴”(마르 2,27) 안식일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이집트 종살이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이 누리게 된 자유와 구원을 기억하는 날입니다(신명 5,12-15 참조).

우리도 모든 죄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져, 우리 안에 담긴 하느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주님께 은총을 청합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김재덕 베드로)

 

제1독서에서 다윗은 골리앗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칼과 표창과 창을 들고 나왔지만, 나는 네가 모욕한 이스라엘 전열의 하느님이신 만군의 주님 이름으로 나왔다. ……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로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도, 여기 모인 온 무리가 이제 알게 하겠다.”

다윗의 무기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시편 23(22)편을 살펴보면 다윗이 하느님에 대하여 어떤 믿음을 가졌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4절).

다윗은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믿음을 가졌고, 절대로 이길 수 없어 보이는 골리앗을 “무릿매 끈과 돌멩이 하나”로 쓰러뜨립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믿음으로 구원을 체험하게 됩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사이들은 예수님 시대에 ‘열심인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열심’으로 이웃들을 죄인으로 만드는 데 익숙하였습니다.

그들에게 하느님께서는 계명과 규정을 철저히 지켜야만 함께 계셔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죄인이며, 비난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아니겠지요?)

이 모습을 오늘 복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구원을 체험하게 하는 믿음은 다윗과 같은 믿음입니다.

계명과 규정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하여 주는 특별한 은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처럼 ‘지키는 것만’(교리우선주의)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은 계명과 규정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게 합니다.

이웃들을 심판하고 싶은 마음, 비난하고 싶은 마음, 죄인으로 단죄하고 싶은 마음이 자라게 될 뿐입니다.

오늘 하루는 ‘지키지 않으면 죄를 짓게 된다.’는 마음이 아니라 ‘하느님을 만나는 마음’으로 계명과 규정들을 대하여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재덕 베드로 신부)

 


 

 

 [연중 제2주간 수요일]

 

한 대적자를 이기는 무릿매

 

1독서 (1사무17,32-33.37.40-51)

이스라엘이 필리스티아 장군 골리앗의 도전을 받았을 때 32 다윗은 사울에게, “아무도 저자 때문에 상심해서는 안 됩니다임금님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필리스티아 사람과 싸우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사울은 다윗을 말렸다. “너는 저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마주 나가 싸우지 못한단다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전사였지만너는 아직도 소년이 아니냐?” 37ㄱ 다윗이 말을 계속하였다.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저를 빼내 주신 주님께서 저 필리스티아 사람의 손에서도 저를 빼내 주실 것입니다.”

=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느님을 믿었기에 나오는 용기다.

 

37그제야 사울은 다윗에게 허락하였다. “그러면 가거라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빈다.” 40 그러고 나서 다윗은 자기의 *막대기를 손에 들고개울가에서 매끄러운 *돌멩이 다섯 개를 골라서 메고 있던 양치기 가방 주머니에 넣은 다음손에 *무릿매 끈을 들고 그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다가갔다. 41 필리스티아 사람도 방패병(당번)을 앞세우고 나서서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42 그런데 필리스티아 사람은 다윗을 보더니그가 볼이 불그레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소년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그를 업신여겼다.

43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윗에게 막대기를 들고 나에게 오다니내가 개란 말이냐?” 하고는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였다. 44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시 다윗에게 말하였다. “이리 와라내가 너의 몸을 하늘의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주겠다.”

45 그러자 다윗이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이렇게 맞대꾸하였다. “너는 칼과 표창과 창을 들고 나왔지만나는 네가 모욕한 이스라엘 전열의 하느님이신 만군의 주님 이름으로 나왔다. 46 오늘 주님께서 너를 내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나야말로 너를 쳐서 머리를 떨어뜨리고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진영의 시체를 하늘의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주겠다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계시다는 사실을 온 세상이 알게 하겠다.(아멘)

= ‘다윗의 믿음을 저희에게도 주소서그 믿음의 뱃장을 주소서.’ 하고 기도(祈禱)하자.

 

47ㄱ 또한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로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도여기 모인 온 무리가 이제 알게 하겠다.

= 오늘 전쟁은 구원을 위한 영적 전쟁의 모형이다.

 

47전쟁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그분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아멘)

= 다윗에게 주신 믿음을 저희에게도 주소서.

 

48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윗을 향하여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다윗도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향하여 전열 쪽으로 날쌔게 달려갔다. 49 그러면서 다윗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 *하나를 꺼낸 다음, *무릿매질을 하여 필리스티아 사람의 이마를 맞혔다돌이 이마에 박히자 그는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쓰러졌다.

= 인간의 만들어낸 칼(劍)과 표창과 창(槍). 그 인간의 생각을 돌(?)이 쓰러뜨린 것이다.(이사2,3-4 미카4,2-3 참조)

 

50 이렇게 다윗은 *무릿매 끈과 *돌멩이 하나로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누르고 그를 죽였다다윗은 손에 칼도 들지 않고 그를 죽인 것이다.

= 다윗이 준비했던 것은 자신의 막대기와 돌멩이 다섯 개, 그리고 무릿매 끈이었다. 그런데 무릿매질을 하여 돌멩이 하나로 이겼다.(다섯을 하나로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릿매 끈(카라)은 휘장을 뜻하며 돌멩이 다섯은 모세오경(율법)을 뜻하며, 돌멩이 하나는 율법을 대속으로 완성하시고 죄인들의 구원을 이루는 그 진리를 뜻하는데, 곧 돌멩이는 그리스도를(1베드2,7), 하나는 하느님을 뜻한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 하느님의 뜻, 말씀으로 오셔서 죄인들의 구원을 대속으로 완성, 이루실 그 진리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한 말씀을 뜻한다. (외아들- 모노게네스- 하나를 갖은 자)

그러니까 율법(제사와 윤리)이 아닌 하늘의 대속, 그 진리의 말씀으로 이긴 것이다.


(마태8,8)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 그러니 영적 전쟁은 하느님의 뜻을 적대하는 죄 때문에 하늘 길을 막고있는 , 곧 구원을 가로막고 있는 휘장을 가르기 위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죄의 대속, 피, 그 ‘새 계약의 한 말씀’으로 된다는 것이다.

 

(루가22,20)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요한19,30)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마르15,37-38) 37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 38 그때에 성전 *휘장(카라)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히브10,19-20) 19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우리는 예수님의 *피 덕분에 성소(하느님나라)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20 그분께서는 그 *휘장을 관통하는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곧 당신의 *몸을 통하여 그리해 주셨습니다.

= 이 모든 말씀을 듣고, 깨닫고, 믿고, 의지하는 것. 원수를 이기는 *무릿매질 하는 것이다.

 

51 다윗은 달려가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밟고 선 채그의 칼집에서 칼을 뽑아 그를 죽이고 목을 베었다필리스티아인들은 저희 용사가 죽은 것을 보고 달아났다.

= 하느님의 말씀을 도덕과 윤리의 가르침으로 받아 열심히 제사드리는 율법 신앙을 산다면, 그래서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받는 하늘의 용서, 생명, 그 살아있고 새로운 길인 새 계약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믿고, 의지하지 못한다면, 소리 내지 못한다면. 구원의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안식을 위한 무릿매질을 못하게 되는데 그것이 오늘 복음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고쳐주신 것이다. 그런데~

(마르3,5-6) 5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율법자)을 둘러보셨다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6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하느님의 뜻인 ‘새 계약으로 살아있고, 새로운 길’임을 깨닫지 못하고 병을 고치신 기적으로 보게 되면, 믿음이 아니라 완고한 마음이 가중될 뿐이다.

율법으로 흠 없이 열성을 다해 의롭게 살았던 그 착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였듯이 말이다.(2코린11,14-15 참조) 어제 확인했듯 새로운 길을 몰랐을 때, 사도 바오로처럼 인간들의 도리인 인간 스스로의 의로움, 그러나 구원을 줄 수 없는 사람의 길을 구원의 진리로 고집하는 그들의 뜻, 생각을 완악함이라 하신 것이다.(로마3,20 10,1-3참조)

 

진리의 성령님!

무릿매 끈과 돌멩이 하나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그 피의 새 계약그 한 말씀으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늘 계시다는 것을아니 오히려 우리 손에 그들을 넘겨주셨다는 것을 믿고의탁하고 소리 내는이웃에게 전하는 그 무릿매 질을 할 줄 알게 하소서그래서 저와 이웃이 적대자들 때문에 상신하지 않는 새롭고 살아있는 신앙의 길삶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2주간 수요일 복음 (마르3,1-6)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5)

 

여기서 '노기'에 해당하는 '오르게스'(orges; anger)의 원형 '오르게'(orge)가 사람에게 적용되면 일반적으로 감정적 분노를 나타내며, 성경은 이런 종류의 감정 표출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언급하고 있다(야고1,20).

 

그러나 이 단어가 마르코 복음 3장 5절처럼 악(惡)에 대한 신적(神的) 반응으로서 언급되면, 이것은 하느님의 공의의 심판과 형벌이라는 뜻을 갖는다.

 

이 분노는 마지막 심판의 때에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쌓아 놓았다가 부어지는 하느님의 공의로운 진노(indignation)를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다 (로마2,5; 묵시6,17).

마르코 복음 3장 5절에서 예수님의 분노 역시 공의의 분노이다.

 

이것은 바리사이들이 헤로데 당과 결탁하여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려는 사실 때문이 아니고, 그들이 부인할 수 없는 진리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몹시 슬퍼하시면서'로 번역된 '쉴뤼푸메노스'(syllypumenous; being grieved; deeply distressed) 원형 '쉴뤼페오'(syllypeo)는 '함께'라는 뜻의 '쉰'(syn)과 '슬퍼하다','괴로워하다'라는 뜻의 '뤼페오' (lypeo)가 결합되어, 어떤 사람으로 말미암아 또는 그와 함께 '깊이 슬퍼하다' 또는 '고뇌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러 온, 하느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이신 당신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율법에 대한 편협한 해석에 연연하여 당신을 감히 판단하고 단죄하려는 바리사이 무리들에 대해서 공의로운 분노를 품으시면서도, 그들의 어리석음을 깊은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심을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한편, 예수님께서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하는 과정은 간단하다.

'손을 뻗어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자신의 손을 '뻗어'  순종하자 '다시 성하여졌다'는 즉각적인 결과가 나왔다.

 

특히 '다시 성하여졌다'라고 번역된 '아페카테스타테'(apekatestathe; was restored)의 원형 '아포카티스테미'(apokathistemi)는  '이전 상태로 완전히 돌아가다'(히브13,19)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하느님의 나라가 회복되는 것을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다(사도1,6).

 

따라서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치유를 통해서도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느님의 첫 창조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더군다나 이 회복은 첫 창조보다 더 나은 상태로 이루어질 것이고, 그 궁극적인 상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처럼 주님 앞에 나아오는 이들이 모두 온전하게 회복되어 주님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영광스럽게 살게 될 것이다.

 

오늘 마르코 복음 3장 2절에 나오는 데로, 바리사이들은 이전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관하여 자신들이 따르는 규정들보다  당신 자신의 해석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단죄하기 위한 구체적인 증거를 잡기 위해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특히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의 시제가 행동의 반복이나 계속을 보여주는 미완료의 시제로 기록된 점을 볼 때, 마르코 복음 2장 23~28절에서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며 당신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에서 곡식을 자른 행위를 정당화시킨 사실을, 바리사이들이 공개적인 석상에서 드러내어 율법을 어긴 자로 고발하기 위해 파놓은 함정이라고 할 수 있다.

 


 

 

 

20260121일 수요일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이철구 요셉 신부)

 

어떤 일을 선한 뜻으로 시작하고서도 이내 마음이 완고해져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기도 합니다.

선한 의향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기심과 두려움과 편견 때문에 마음이 굳어지면 하느님께서 주신 선한 뜻은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예전에 본 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한 의대생이 죽을 위험에 놓인 사람을 살리려고 최선을 다하였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이는 응급 의료에 관한 법률, 5조의 2(선의의 응급 의료에 대한 면책)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이 법은 위험을 무릅쓰고도 이웃을 돕는 사람의 선한 의도를 존중합니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성경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나온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처럼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먼저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채어 계산하지 않고 용기 있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신 예수님께서는 이를 지켜보던 마음이 완고한 사람들을 보시고 몹시 슬퍼하셨습니다.

그들은 사랑보다 율법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완고한 마음은 사랑의 길을 막고, 하느님의 뜻을 가리는 장벽이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세상에서 선한 몫을 선택해야 합니다.

길을 가다 어려움에 놓인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라도 채워 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사랑의 발걸음을 내디딜 때, 우리는 예수님의 기쁨이 되고 세상에 하느님의 선하심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완고한 마음에서 벗어나 참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이철구 요셉 신부)

 

 


 

 

 [연중 제2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뜻이 오그라든, 굳은 마음을 보라 하신다.

보는 것, 그것이 풀리는 길이다.

(마르3,1-6)

1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 회당(성당) 안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들의 대표인 것이다. 

전에 안식에 들어 갈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것을 창조하신 후, 맨 나중에 사람을 창조하셨음을 묵상했다, 그러나 뱀의 유혹으로 그 안식의 길을 잃어 버렸음도 봤다. 하느님의 말씀을 선악으로 먹게 했던 그 뱀의 유혹으로 따 먹었던 손이다.(창세3,6) 그래서 하느님의 뜻이 그 사람 안에서 ‘오그라들어 있다’는 것이다.

 

2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 예수님의 십자가 그 대속으로 얻는 쉼, 안식을 깨닫지 못했으니, 법으로 지키는 안식일, 그 자신들의 행위 만을 의지했고, 그런 자신들을 가치로 여기는 신앙이 된 것이다.

 

(티토3,5)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 오그라든 자리, 그 회당(성당), 그 신앙에서 일어나 가운데에 계시는 안식의 실체인 당신께 나오라는 것이다.

 

4(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 좋은 일이란? - 사람을 살리는, 곧 하늘의 생명을 알려주어 살게 하는 일이다. 그것이 안식을 살게 하는 안식일인 것이다. 법으로 지키는 행위, 자기 의로움의 신앙은 사람을 살리는 구원, 안식을 주지 못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마르14,3-6) 3ㄱ 예수님께서 베타니아에 있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의 일이다.

= 나병환자와 함께 하시는, 곧 죄인과 하나가 되신 예수님의 모습이다.

3ㄴ마침 식탁에 앉아 계시는데, 어떤 여자가 값비싼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그분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

=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 곧 자신을 깨트리는 그 자기 버림(否認)으로 죄인과 하나(한 몸)가 되시는 예수님을 자신의 머리(주인)로 하겠다는 신앙의 고백인 것이다.

4그러자 몇 사람이 불쾌해하며 저희끼리 말하였다. “왜 저렇게 향유를 허투루 쓰는가? 5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을 터인데.” 그러면서 그 여자를 나무랐다.

= 말씀을 선악으로 따로 먹고 보는, 하느님의 뜻이 오그라든 사람들의 말이다.

6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가만 두어라. 왜 괴롭히느냐? 이 여자는 나에게 *좋은 일을 하였다.

=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는 일이 아닌,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도리이지 신앙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안식, 구원의 예수님을 주인(주님)으로 따르고 이웃도 따르게 알려 주는 것, 그것이 좋은 일인 것이다. 그 좋은 일, 하느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재물을 이웃과 나누는 그 행실도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예물기도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여 이 제사를 드릴 때마다 저희에게 구원이 이루어지오니 이 거룩한 신비를 정성껏 거행하게 하소서.”

= 그 제사는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졌고(히브10장 참조), 그래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 졌음을 믿고 안식을 사는 그 믿음의 삶, 그 거행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깨달음도 믿음도 없이 기념하며 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5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 말씀이 치유하셨다. 말씀 앞에 뱀의 유혹을 먹은 손이 회복 되었다. 곧 뱀의 유혹 그 거짓이 쫓겨난 것이다. 우리도 말씀을 알아야 뱀의 거짓 가르침, 그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 우리의 행위의 신앙으로는 절대 물리칠 수가 없는 것이다.

 

6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 참으로 인간의 죄성은 집요하다. 첫 인간 아담이 자신의 뜻을 위해 하느님을 배반했고(창세3장), 그렇게 온 인류가 뱀의 말로 자신의 뜻을 위해 사는 그 악한 세상이 되어 홍수로 다 멸망(滅亡) 하고(창세6장), 그러나 인간의 그 악한 뜻은 변하지 않음을 보시고 하늘이 대신 죽으시겠다는 무지개 계약을 주신다.(창세9,9참조)

그래도 인간들은 자신들의 이름(뜻)을 높이겠다는 그 생각을 고집하며 바벨탑을 세운다.(창세11장 참조)

그렇게 창세기 1장부터 11장 까지 죄의 원 역사가 있고, 12장부터는 구원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로마15,4) 4 성경에 미리 기록된 것은 우리를 *가르치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인내를 배우고 위로를 받아 *희망을 간직하게 됩니다.

= 오늘 바리사이들의 죄성, 그 안에 우리의 모습을 ‘보라’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간들의 헛된 길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그 구원의 진리, 그 길로 돌아와 안식을 누리라 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들을 구원하시겠다는 그 하느님의 의지, 자비, 사랑, 그 구원의 계획이 들어있는 것이 십계명이다. 그 열 개의 계명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 그 하나를 품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랑 하나를 깨닫고 그 사랑의 하느님께 감사로 찬양을 드리는 것, 그것이 올바른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다.

 

(히브7,2) 2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먼저 그의 이름은‘정의의 임금’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또한 살렘의 임금 곧 평화의 임금이었습니다.

= 아브라함이 대사제께 드린 ‘십분의 일’이다. 십분의 일 - (마아세르). 마아(진리)+세르(10) = 10을 진리로, 곧 열을 진리 그 하나로 드리는 것이 십일조 이다.

다시 아브라함은 영원한 대사제, 곧 정의와 평화이신 그리스도께 ‘당신이 구원의 진리이십니다.’를 고백한 것이다.

하느님의 뜻이 오그라든 사람은 십일조를 예물, 돈으로 드리는 것밖에 할 줄 모른다. (헌금은 해야 한다. 당신의 죽음으로 내 죄를 씻어 살려주신 그 주님께 감사로 드리는 마음이 헌금이다.)

 

*마음에 새기자*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구원, 안식) 갈 수 없다.

 

(마르2,28) 28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히브6,17) 17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상속받을 이들(믿는)에게 당신의 뜻이 변하지 않음을 더욱 분명히 보여 주시려고, *맹세로 보장해 주셨습니다.

 

☨ 천주의 성령님! 당신으로 충만하게 하시어 오그라든, 굳은 마음이 펴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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