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주간 금요일] 열두 사도 (마르3,13-19)

2026. 1. 22. 오전 8: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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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3일 금요일

[연중 제2주간 금요일] 열두 사도 (마르3,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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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1사무24,3-21)

3 사울은 온 이스라엘에서 가려 뽑은 삼천 명을 이끌고, 다윗과 그 부하들을 찾아 들염소 바위쪽으로 갔다.

4 그는 길 옆으로 양 우리들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동굴이 하나 있었는데 사울은 거기에 들어가서 뒤를 보았다. 그때 다윗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그 굴속 깊숙한 곳에 앉아 있었다.

5 부하들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가 너의 원수를 네 손에 넘겨줄 터이니, 네 마음대로 하여라.’ 하신 때가 바로 오늘입니다.” 다윗은 일어나 사울의 겉옷 자락을 몰래 잘랐다.

6 그러고 나자,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자른 탓에 마음이 찔렸다.

7 다윗이 부하들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내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인 나의 주군에게 손을 대는 그런 짓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어쨌든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아니시냐?”

8 다윗은 이런 말로 부하들을 꾸짖으며 사울을 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울은 굴에서 나와 제 길을 갔다.

9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와 사울 뒤에다 대고,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하고 불렀다. 사울이 돌아다보자, 다윗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였다.

10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다윗이 임금님을 해치려 합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곧이들으십니까?

11 바로 오늘 임금님 눈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오늘 주님께서는 동굴에서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임금님을 죽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니 나의 주군에게 결코 손을 대지 않겠다.’ 고 다짐하면서, 임금님의 목숨을 살려 드렸습니다.

12 아버님, 잘 보십시오. 여기 제 손에 아버님의 겉옷 자락이 있습니다. 저는 겉옷 자락만 자르고 임금님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임금님을 해치거나 배반할 뜻이 없다는 것을 알아주시고 살펴 주십시오. 제가 임금님께 죄짓지 않았는데도, 임금님께서는 제 목숨을 빼앗으려고 찾아다니십니다.

13 주님께서 저와 임금님 사이를 판가름하시어, 제가 임금님께 당하는 이 억울함을 풀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14 ‘악인들에게서 악이 나온다.’는 옛사람들의 속담도 있으니, 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15 이스라엘의 임금님께서 누구 뒤를 쫓아 이렇게 나오셨단 말씀입니까? 임금님께서는 누구 뒤를 쫓아다니십니까? 죽은 개 한 마리입니까, 아니면 벼룩 한 마리입니까?

16 주님께서 재판관이 되시어 저와 임금님 사이를 판가름하셨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저의 송사를 살피시고 판결하시어, 저를 임금님의 손에서 건져 주시기 바랍니다.”

17 다윗이 사울에게 이런 사연들을 다 말하고 나자, 사울은 내 아들 다윗아, 이게 정말 네 목소리냐?” 하면서 소리 높여 울었다.

18 사울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보다 의로운 사람이다. 내가 너를 나쁘게 대하였는데도, 너는 나를 좋게 대하였으니 말이다.

19 주님께서 나를 네 손에 넘겨주셨는데도 너는 나를 죽이지 않았으니, 네가 얼마나 나에게 잘해 주었는지 오늘 보여 준 것이다.

20 누가 자기 원수를 찾아 놓고 무사히 제 갈 길로 돌려보내겠느냐? 네가 오늘 나에게 이런 일을 해 준 것을 주님께서 너에게 후하게 갚아 주시기를 바란다.

21 이제야 나는 너야말로 반드시 임금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너의 손에서 일어설 것이다.”

 

<화답송>시편57,2.3-4.611(2)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제 영혼이 당신께 숨나이다. 재앙이 지나갈 그때까지, 당신 날개 그늘로 피신하나이다.

하느님께, 지극히 높으신 분께, 나를 위하시는 하느님께 부르짖네. 하늘에서 나에게 구원을 보내시어, 나를 짓밟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리라. 하느님은 자애와 진실을 보내시리라.

하느님, 하늘 높이 오르소서. 당신 영광을 온 땅 위에 드러내소서. 당신의 자애 크시어 하늘에 이르고, 당신의 진실 크시어 구름에 닿나이다.

 

복음<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마르3,13-19)

13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14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15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6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18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19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연중 제2주간 금요일 (1사무 24,3-21)

 

다윗은 일어나 사울의 겉옷 자락을 몰래 잘랐다. 그러고 나자,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자른 탓에 마음이 찔렸다(5ㄷ-6).

'겉옷'에 해당하는 '함메일'(hammeil; robe)의 원형 '메일'(meil)은 대사제나 임금이 입는 긴 겉옷을 가리킨다.

이 명사는 '사울의'에 해당하는 '아셰르 레샤울'(asher leshaul)의 수식을 받는데, 이것은 이 겉옷이 '사울에게 속해 있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다윗이 '사울에게 속해 있는' 옷자락을 자른 것은 그 옷이 상징하는 '사울에게 속해 있는' 왕권을 잘라 낸 것을 상징한다.

옷을 통한 이런 상징은 이미 사울이 사무엘의 옷자락을 잡다가 찢어진 사건 속에서 드러난 적이 있다.

사무엘은 이 행위가 주님께서 사울의 왕국인 이스라엘을 찢어 내시어 다른 이웃에게 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1사무15,27.28).

또한 사무엘서 상권 18장 4절에서 요나탄이 자신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준 사건 역시 사울의 왕권이 다윗에게 넘어가는 것을 인정하는 상징적 행위였다.

여기 본문의 다윗의 행위도 표면적으로는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행위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사울의 왕권이 다윗에게 이양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다윗이 사울의 겉옷 자락을 '잘랐다'에 해당하는 '와이크로트'(waikroth; and cut off)의 원형 '카라트'(karath)는 '자르다'는 뜻으로서 사울을 죽일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그래서 다윗은 '자른' 사울의 겉옷 자락을 통하여 자신이 사울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다는 무고함의 증거물로 제시한다(1사무24,12).

결국 이 증거물은 사울에게 설득력있게 작용하여 완고하고 사악한 마음을 가졌던 사울의 일시적 회개로 이어지고(1사무24,17-20), 사울이 다윗과 계약을 '맺는' ('카라트'; karath) 놀라운 결과까지 낳는다.

그 계약의 중심 내용이 다윗이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더라도 사울의 후손을 '끊어 버리지'('카라트'; karath) 않는다는 것이었다(1사무24,22).

다윗이 사울의 겉옷 자락을 잘랐지만, 사울의 후손을 죽여서는 안된다 것이었다.

따라서 본문은 사울의 왕권이 다윗에게 분할될 것을 상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울을 해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치지 않은 다윗의 행위가 하느님의 섭리를 통하여 사울과의 평화의 계약으로 이어질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한편 당시 다윗이 사울 모르게 겉옷의 일부를 자를 수 있었던 것은 어두운 굴안이라는 상황 속에서 임금의 겉옷이 길어서 앉아 있을 때에 땅에 끌렸거나 사울이 용변을 보기 위해서 겉옷을 벗어 두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본다.

'마음이 찔렸다'

임금의 겉옷 자락을 자른 다윗에게 나타난 일차적 반응이다. 여기서 '마음'으로 번역된 '레브'(leb)는 일차적으로 '심장'(1사무18,1), '가슴'(탈출28,29)을 뜻하지만, 더 많은 경우 '지성', '감성'은 물론 전인격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된다.

그리고 '찔렸다'에 해당하는 '와이야크'(waiyak)의 원형 '나카'(naka)는 '치다'(레위26,24), '매질하다'(신명25,2)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마음을 때리다'라는 의미로 쓰여 '양심의 가책' (conscience-stricken)을 나타내고 있다.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잘랐던 일 자체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다윗의 이러한 행위는 자신의 무고함을 변호하기 위한 증거물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루어진 것이었지만(1사무24,12),  다윗은 이러한 행동조차도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 종에 대한 합당한 태도가 아니라고 여겼던 것이다.

 

 

[연중 제2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김재덕 베드로)

 

오늘 복음 말씀 가운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리스 말 성경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이 당신과 함께 있게 하시려고, 그리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려고, 그들이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고,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고 이름하셨다.”

열두 사도를 뽑으신 목적이 세 가지, 곧 ①예수님과 함께 있음, ②파견과 복음 선포, ③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짐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문장의 논리상 파견과 복음 선포 그리고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는 목적은, 첫 번째 목적인 ‘예수님과 함께 있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도 함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서 제자로 뽑으신 열두 명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글도 모르는 어부들과 세리, 열혈당원까지, 그들이 보기에 대부분 죄인들을 모아 놓았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오합지졸도 이런 오합지졸이 없네.’라고 생각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통하여 사도로 변화됩니다.

특히 사도행전은 이들 안에서 예수님께서 바라셨던 두 번째와 세 번째 목적이 모두 이루어졌음을 증언합니다.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함께 박해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언하는 복음 선포자로 변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사람들로 변합니다(사도 5,16 참조).

예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은 하느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게 하여 주는 은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의 봉사자들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먼저 성체 앞에 머무는 시간을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 힘으로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김재덕 베드로 신부)

 

 


 [연중 제2주간 금요일] 

 

열두 사도 (使徒) 

 

(마르 3,13-19) 

 13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 산에 올라가시어~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겠다는, 그 아버지의 뜻이 곧 당신의 운함이라는 말씀입니다.

 

14ㄱ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 열둘~ 구약의 12지파(아들)를 신약의 12 사도로- 교회를 세우심입니다. 그 교회는 하느님나라 백성들의 모임인데~

 

(묵시7,4) 4 나는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인장을 받은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 12지파 ⅹ 12사도 = 144 ⅹ1000 하늘의 충만입니다. 하늘의 인장- 자격 없는 타마르를 회복시켜 주었던 그 인장입니다.(창세38;18참조) 창조주, 그 전능하신-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신의 약속입니다.

그 구원의 인장, 약속으로 완성하시는~ 그 하느님나라 백성을 의미하는 숫자가 144,000명입니다. 그 숫자만 구원받는 그런 잘못된 생각은 헛된 망상일 뿐입니다.

 

(2고린1,22) 22 하느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인장을 찍으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

 

14ㄴ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15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 주님과 함께 지낸다는 것, 주님과 하나 됨을 뜻합니다. 그렇게 주님과 하나 된 후, 복음 선포입니다. 그랬을 때 복음 선포가 마귀를 쫓는 힘입니다. 구마는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 이루어집니다. 말씀이 곧 권한입니다.

 

(마태17,18) 18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 호통을 치시자 아이에게서 마귀가 나갔다. 바로 그 시간에 아이가 나았다.

= 말씀으로 호통 치십니다. 칼날 같은 말씀입니다.

 

(히브4,12) 12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 사도란, 지도자란,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말씀 그 칼로 사람 속에 들어있는 그 이기적 죄 성을 들쳐 내어 잘라 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 계명을 뱀의 유혹으로 사람의 말, 계명으로 잘못 받은 12지파의 잘못, 그 더러운 영의 거짓 가르침을 12사도가 잘라내는 그 구마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말씀을 구마의 능력으로 갖지 않고 사람의 뜻을 충족시키는, 만족시키는 그 사람의 말로 갖고, 고집하면 그것이 곧 뱀, 더러운 영의 말을 계속 먹은 것입니다.

하느님의 물-말씀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 이지만~ 사람의 말 그 가르침은 영원을 줄 수 없는 다시 목마르게 하는 곧 끊어질 죽음의 물입니다.

 

16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 시몬(물이 없는 자갈)에게 물이 주어집니다. 베드로(물이 나오는 반석)가 됩니다.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 그 하느님의 말씀, 그 복음이 주어집니다.

 

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18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19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 그런데 기도하신 후 뽑으신 제자가 배반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 역시 예수님을 세 번 배반하고 다른 제자들 도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모두 도망갔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기도가 잘못된 걸까요? 물론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만을 위해 사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도 예수님도 알고 계셨지요. 그래서 우리의 구원을 우리 자신들에게 맡기지 않으시고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맡기신 겁니다.

 

(로마3,25)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 구원은 100% 하느님이 계획하시고 이루십니다. 그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히브11,11) 11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 사라는 자신이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

 

(창세18,12) 12 그래서 사라는 속으로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늙어 버린 나에게 무슨 육정이 일어나랴? 내 주인도 이미 늙은 몸인데.’ ~

= 사라가 아들을 낳을 수 없었던 사라에게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이 낳으신 겁니다.

믿음이란~ 하느님께서 꼭 이루실 것을 믿는 겁니다. 그 믿음이 있을 대 희망만이 남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계획, 그 약속이 계시기에 우리는 늘 희망입니다.

 

♡ 아멘 -*^ㅇ^*-

 

 

  

 

[연중 제2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신 다음,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성경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산’은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 기도하는 장소입니다(마르 6,46 참조).

 

‘원하시는’ 열둘을 ‘가까이 부르시는’ 행위는 예수님의 주도권을, 그분께 ‘나아가는’ 행위는 사도들의 순명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장면을 상상하면 참으로 장엄하고 거룩하게 느껴집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신 목적은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파견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사명이 파견의 사명보다 먼저 언급된 것이 인상적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고 친교를 나누며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복음이 무엇인지를 배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지냄’은 사도들의 정체성이며, 파견 활동의 원천이 됩니다.

파견에는 ‘선포하는 활동’과 ‘마귀들을 쫓아내는 활동’이 포함됩니다.

열두 사도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공동체 안에서 경험하고 깨달은 것을 선포하고, 마귀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열두 사도가 해야 하는 일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과 같습니다.

 

앞서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공생활을 이렇게 요약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마르 1,39).

예수님의 사명은 제자들을 통하여 계속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현재를 살아가는 그분의 제자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이웃에게 ‘파견되어’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연중 제2주간 금요일] 

 

열두(12) 사도(使徒) 

복음(마르3,13-19)

13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14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 하셨다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15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6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18 그리고 안드레아필립보바르톨로메오마태오토마스알패오의 아들 야고보타대오열혈당원 시몬, 19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사제(司祭)께서*

예수님께서 가장 힘든 기도를 하셨습니다. 당신을 배반(배신)할 이들을,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로 선택(뽑으셔야) 하셨기 때문입니다. 곧 아버지의 뜻, 구원에 대한 순종이며 죄인들을 가엾게 여기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베드로, 유다룰 비롯한 모든 제자들,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죄인인 우리(나)를 선택하셨고, 우리의 죄로 죽으시고 하늘의 의(義), 생명을 주신 사랑의 그리스도이십니다.

 

(2코린5,21)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히브9,15) 15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 은총이신 보호자 성령님!

하느님의 사랑이그리스도의 사랑이저희 마음 안에서 타오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2주간 금요일 복음(마르3,13~19)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4~15)

 

마르코 복음 3장 14절의 '세우시고'에 해당하는 '에포이에센'(epoiesen; he appointed; he ordained)의 원형 '포이에오'(poieo)는 사람의 행위와 관련될 경우에는 어떤 물건의 외형을 '짓다', '만들다'(마태17,4) 또는 '일하다', '노동하다'(마태20,12)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이 하느님께 적용되면 무에서 유를 '만들다','창조하다'(마태19,4)는 의미가 된다.

열두 제자를 세우신 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므로 (마르3,11), 제자들 역시 인위적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고 신적 권능에 의해 세워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단어가 계약적 관점에서는 '추종자를 지명하다'는 뜻으로 '어떤 것을 다른 성질의 것으로 만들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그러니까 모나고 고집스럽고 우직한 갈릴래아 출신 어부나 탐욕스러운 세리 등을 당신의 제자로 새롭게 변화시키셔서 복음 전파와 선교라는 막중한 사명을 맡기셨다는 뜻도 되는 것이다.

또한 이 단어가 구약적 관점에서는 왕이나 사제에게 직책을 부여하는 표현도 되므로, 예수님께서는 열두 명의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의 대사로 지명하여 세우신 것이 된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본문 이하 본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본문의 '함께 지내는 것'과 본문 이후에 나오는 '복음 선포'와 '구마 행위'를 추가하여 세 가지로 나누기도 하지만, 원문에는 '~하기 위하여'라는 뜻을 가진 접속사 '히나'(hina; that ~may)가 두 번 사용된 사실을 감안하면, 우선 '예수님 당신과 함께 지내는 것'과 '복음 선포를 위해 파견하는 것' 두 가지로 나누는 것이 옳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제자 선택의 첫번째 목적은 당신과 '함께 지내는 것'이다.

즉 참된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자야 된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그분의 사상, 정신, 마음, 인품, 삶의 가치관과 방식, 고난을 비롯한 인생 문제를 다루는 방식, 나아가서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것들을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것이 제자됨의 일차적인 목적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 선택의 두번 째 목적은 '파견' 즉 '복음 선포를 위해 보내는 것'이다. '그들을 파견하시어' 앞에도 '~하기 위하여'라는 뜻을 가진 '히나'(hina) 접속사가 또 사용되었다.

그리고 '파견하시어' 다음에 나오는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에 해당하는 '케륏세인'(keryssein; to preach)과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에 해당하는 '에케인'(echein; to have)는 모두 부정사 현재형으로서 '파견' 이유를 나타낸다.

즉 이것은 파견된 제자의 사명으로서 '복음 선포' '구마'를 명령하시고 지적하신 것이다.

여기서 '파견하시어'에 해당하는 '아포스텔레'(apostelle; he might send ~out)는 '사도'에 해당하는 '아포스톨로스'(apostolos)의 동사형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제자'란 '예수님께서 전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세상 안에서 선포하는 자들' 이며, 세상으로 보내어지지 않고 교회 안에서 머물기만 하는 자들은 주님의 참된 제자라고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에 해당하는 '케륏세인'(keryssein; to preach)은 특히 진리와 구원을 '선포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단어이므로, 주님의 제자된 자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음을 나타낸다.

 

이제 파견된 제자들의 두번 째 사명인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는 것'에 대한 말씀이 마르코 복음 3장 15절에 나온다.

이 구절은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0장 1절, 1장 21~28절, 32절, 3장 10~12절을 참고하면, 병을 고치는 치유 행위와 관련되거나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다.

마르코 복음 3장 15절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가 단순히 관념적 구원을 강조하지 않고, 실제적인 삶의 질적 변화까지 가져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이 본문을 통해 한 가지 더 강조되는 것은 결국 하느님의 나라의 확장이란 사탄의 세력의 축소라는 사실이다(에페6,12).

여기서 '마귀들'로 번역된 '타 다이모니아'(ta daimonia; devils; demons)는 명사 복수형으로서 '사탄'의 졸개들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인들은 타락한 천사로서의 마귀들의 존재를 부정해서도 두려워해서도 안되는데, 그것은 복음의 능력을 소유한 자는 그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20260123일 금요일

[연중 제2주간 금요일]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사도라 이름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을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라고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그들에게 마귀들을 쫓아낼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들을 가까이 부르시고, 함께하시며, 권한을 주시면서 파견하신 까닭은 아버지의 뜻이 세상에 이루어지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곧 구원 사명을 완수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특별히 사제나 수도자에게만 주어지는 소명이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부름을 받습니다.

저마다 가정과 일터와 공동체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복음의 정신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부르심에 대한 응답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흠 없기 때문에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하고 모자라더라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당신 사랑과 은총으로 채워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 하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열두 제자도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배우고, 세상에 파견되어 복음을 전하는 삶 속에서 사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함께하며, 그분께서 보내시는 곳에서 사랑과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아직도 구원의 기쁜 소식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 절망과 두려움에 갇힌 이들에게 주님의 위로를 전해야 합니다.

그 사명을 위하여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그 부르심에 마음을 다하여 응답하고, 그 응답을 세상에서 삶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참된 사도가 될 수 있습니다.

 

(이철구 요셉 신부)

 

 

 

 

[연중 제2주간 금요일]

 

오늘도 힘든 나를 안아주신데요.

 

복음(마르3,13-19)

13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14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 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15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 하느님의 뜻,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이시다. 곧 하느님의 자녀, 백성들이 마귀, 그 거짓말들에 속아 하늘의 대속으로 얻는 하늘의 용서, 의(義), 구원, 그 새 계약이라는 살아있는 새로운 길을 몰라 그 희망, 생명의 길을 잃고 제사와 윤리, 그 율법에 묶여 무거운 짐 같은 신앙으로 헤매기에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외아들 예수님을 하늘의 대속, 그 새 계약으로 보내신 것이다.

창조이전 예비하셨던 구원자 그리스도다. 살아있는 새로운 길을 이루시려 오신 것이다. 그래서 먼저 살아있고 새로운 길인 그 새 계약의 말씀을 가르치시기 위해 함께 지내신 것이고, 새 계약을 복음으로 선포하게 하신 것이고, 그 기쁜 소식, 복음으로 마귀의 거짓말을 하는 거짓 가르침을 쫓아내게 하시기 위해 세우신 것이다.

 

(2코린3,6) 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이 계약은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 마귀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게 하고 듣게 한다. 곧 인간의 도덕과 윤리로(하늘의 대속, 그 구원의 의로움이 아니라...) 육, 세상의 영광을 위한 인간 스스로의 의로움을 위해 살게 한다는 것이다.

 

(2코린11,13-15) 13 그러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도로 위장한 거짓 사도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일하는 자들입니다. 14 그러나 놀랄 일이 아닙니다사탄도 빛의 천사로 위장합니다. 15 그러니 사탄의 일꾼들이 의로움의 일꾼처럼 위장한다 하여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그들의 종말은 그들의 행실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 인간의 의로움은 자신의 뜻, 영광을 위한 위장(僞裝)이라는 말이다.(이사64,5참조) 사도의 이 말, 이런 가르침을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한다.

 

(2코린11,16) 16 그래서~내가 거듭 말합니다아무도 나를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그렇게 생각하려거든 적어도 나를 어리석은 대로라도 받아 주십시오.

= 그러니까 사도들이 쫓아내야할 것은 인간의 뜻을 위한 인간의 지혜로 지키려는 그 옛 계약인 율법(제사와 윤리)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 지혜인 하늘의 대속, 그 새 계약, 기쁜 소식, 복음을 주어야 한다.

 

(로마3,20-21.24)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 그러므로 낡고, 죽어있는 옛 계약에 젖어있는 내 안에 거짓말부터 버려야, 쫓아내야 한다. 곧 나 스스로의 열성, 열심, 의(義)의 삶이 구원의 힘, 능력없음을 인정하는 그 ‘자기부인’인 것이다.

 

16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18 그리고 안드레아필립보바르톨로메오마태오토마스알패오의 아들 야고보타대오열혈당원 시몬, 19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 16절의 배반한 베드로와 19절에 배반자 유다 사이에 있는 모든 사도들이 배반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먼저 시몬(물이 없는 조약돌)에게 베드로(물이 나오는 돌, 반석)라 이름을 주실 것을 보여 주신다. 그리고 후에 베드로라 부르신다.

하늘의 대속, 그 새 계약으로 된 것이다. 베드로는 끝까지 시몬으로 살았다. 곧 자신의 뜻을 위해 예수님을 따랐다. 그래서 십자가의 주님을 세 번이나 배반했던 것이다. 그런 이기적 죄인을 위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뒤, 다른 보호자, 곧 진리의 영, 성령으로 내려오셨고 그 성령께서 시몬을 베드로(물이 나오는 반석)로 살도록, 곧 옛 계약의 자신을 부인하고, 새 계약의 삶을 살도록 그의 삶을 이끄신다. 하느님은 사도들처럼 배반자인 우리 모두를 그렇게 부르신 것이다. 땅의 삶에서 하늘의 삶으로 세우신 것이다.

 

(로마8,28-30)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하셨으며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 하느님께서 선(善)이라 하신 것을 선으로 아는 것, 악(惡)이라 하신 것을 악이라 하는 것이 진리(眞理)다. 사람이 말하는 선과 악이 아니라는 것이다.(요한16,8-11) 즉 세상의 뜻, 의(義)를 위해 사는 것이 악(惡)이고, 하느님의 뜻, 의(義)를 위해 사는 것이 선(善)인 것이다.

하느님께서 없애라고, 버리라고, 곧 죽이라고 하신 것을 죽이는 것이 선(善)이고, 죽이라고 하신 것을 살리는 것이 악(惡)이다.(민수3,14-17 신명7,16 예제9,5~ 참조)

 

오늘독서에서 다윗을 보면~

(1사무24,11-21)

11 바로 오늘 임금님 눈으로 확인해 보십시오오늘 주님께서는 동굴에서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주셨습니다임금님을 죽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저는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 이니 나의 주군에게 결코 손을 대지 않겠다.’ 고 다짐하면서임금님의 목숨을 살려 드렸습니다.

= 하느님의 뜻을 버려 하느님께서 버린 사울이다.(사무엘상 15,18-23)

 

14 ‘악인들에게서 악이 나온다.’는 옛사람들의 속담도 있으니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 다윗은 하느님의 뜻(법)을 따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속담, 사람의 뜻을 따른 것이다. 곧 자신의 의(義), 명예를 위해 하느님의 죄인 사울을 죽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악(惡)이다.

그래서 사람의 의로움을 위선, 개짐(똥걸레)이라 한 것이다. 성령의 이끄심으로 알아들을 수 있다. 성령의 귀로 들어야 믿을 수 있다.(마르4,23)

 

* 다윗의 자비(慈悲)를 입은 사울은~

21 이제야 나는 너야말로 반드시 임금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스라엘 왕국은 너의 손에서 일어설 것이다.”

= 그러나 사울은 끝까지 다윗을 죽이려 했다. 다윗, 곧 사람의 자비는 순간일 뿐,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성경(聖經)의 인물이라고 무조건 본(本) 받으려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늘의 대속,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을 본(本)받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뜻을 끝까지 고집부리는 죄인들을 살리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베푸신 자비일 뿐이라는 것이다. 죄인들의 죄를 없애시려 죽음의 법인 율법을 당신 아드님의 대속으로 완성하신 그 자비(慈悲)다. 그것이 새로운 길, 생명의 법인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보호자이신 성령님!

하느님의 자비로 어둠에서 살아난 저희가 감사로이웃과 함께 자비의 새로운 길빛의 길인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하늘나라를 살도록 이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 합니다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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