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주간 토요일] 예수님의 소문(所聞) (마르3,20-21)

2026. 1. 23. 오전 7: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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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4일 토요일

[연중 제2주간 토요일] 예수님의 소문(所聞) (마르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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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어쩌다 용사들이 싸움터 한복판에 쓰러졌는가?>(2사무1,1-4.11-12.19.23-27)

1 다윗은 아말렉을 쳐부수고 돌아와 치클락에서 이틀을 묵었다.

2 사흘째 되는 날, 어떤 사람이 옷은 찢어지고 머리에는 흙이 묻은 채 사울의 진영에서 찾아왔다. 그가 다윗에게 나아가 땅에 엎드려 절을 하자,

3 다윗이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 하고 물었다. 그가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진영에서 빠져나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4 다윗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서 말해 보아라.” 하자, 그가 대답하였다. “싸움터에서 군사들이 달아났습니다. 또 많은 군사가 쓰러져 죽었는데, 사울 임금님과 요나탄 왕자님도 돌아가셨습니다.”

11 그러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었다.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하였다.

12 그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탄, 그리고 주님의 백성과 이스라엘 집안이 칼에 맞아 쓰러진 것을 애도하고 울며, 저녁때까지 단식하였다. 다윗이 애가를 지어 불렀다

19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살해되어 언덕 위에 누워 있구나. 어쩌다 용사들이 쓰러졌는가?

23 사울과 요나탄은 살아 있을 때에도 서로 사랑하며 다정하더니 죽어서도 떨어지지 않았구나. 그들은 독수리보다 날래고 사자보다 힘이 세었지.

24 이스라엘의 딸들아, 사울을 생각하며 울어라. 그는 너희에게 장식 달린 진홍색 옷을 입혀 주고 너희 예복에 금붙이를 달아 주었다.

25 어쩌다 용사들이 싸움터 한복판에서 쓰러졌는가? 요나탄이 네 산 위에서 살해되다니!

26 나의 형 요나탄, 형 때문에 내 마음이 아프오. 형은 나에게 그토록 소중하였고 나에 대한 형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 아름다웠소.

27 어쩌다 용사들이 쓰러지고 무기들이 사라졌는가?”

 

<화답송>시편80,2-3.5-7(4) 주님,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

이스라엘의 목자시여, 귀를 기울이소서. 요셉을 양 떼처럼 이끄시는 분,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분, 광채와 함께 나타나소서, 에프라임과 벤야민과 므나쎄 앞으로! 당신 권능을 떨치시어, 저희를 도우러 오소서.

주 만군의 하느님, 당신 백성이 드리는 기도에 언제까지나 노여워하시렵니까? 당신은 저희에게 눈물의 빵을 먹이시고, 싫도록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당신이 저희를 이웃의 싸움거리로 만드시어, 원수들이 저희를 비웃나이다.

 

복음<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다.>(마르3,20-21)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20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21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연중 제2주간 토요일 제1독서 (2사무 1,1-4.11-12.19.23-27)

 

사무엘 상권 31장과 사무엘 하권 1장에 기록된 사울의 죽음 두 부분이 조금 다르다.

사무엘 상권 31장에는 사울이 필리스티아인 궁수의 활을 맞고 큰 부상을 입자, 자기 무기병에게 자신을 칼로 찔러 죽이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무기병은 너무 두려워 찌르지 못한다. 그래서 사울은 자기 칼을 세우고 그 위에 엎어져 자결한다. (1사무 31,3-5참조)

 

그런데 오늘 사무엘 하권 1장에서는  길보이산의 전투에서 사울이 창을 맞아  겨우 목숨이 붙어 있었는데, 아말렉 사람이 사울의 간절한 부탁으로 자신이 죽이고, 머리에 쓴 왕관과 팔에 낀 팔찌를  벗겨 다윗에게 가져왔다고 전한다. (2사무 1,1-10참조)

 

학자들은 아말렉인이 사울의 죽음을 다윗이 기뻐할 것이고, 자신이 죽인 것으로 거짓말을 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다윗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탄,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 집안이 칼에 맞아 쓰러진 소식을 듣고, 옷을 찢으며 울고 단식한다.

그리고 다윗은 사울을 죽였다는 아말렉인을 자기 부하를 시켜 죽인다.

 

"네가 어쩌자고 겁도 없이 손을 뻗어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를 살해하였느냐?" (14)

"가까이 가서 그를 쳐라." (15)

"네 피가 네 머리위로 돌아가는 것이다.  네 입이 너를 거슬러 '제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를 죽였습니다.'  하고 증언하였기 때문이다." (16)

 

다윗의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에 대한 충성에는 변함이 없다.

사울이 살았으나 죽었으나 임금에 대한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사울의 죽음이 다윗에게 기쁜 소식이 아니었고,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에 대한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한다.

 

다윗은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노래를 짓고 애도를 한다.

영웅의 업적을 기록하는 '야사르의 책' 사울이 용감하게 싸우다 죽었다고 기록하여

벤야민 지파 사울에 대해 자신의 유다 지파에게도 가르칠 것을 명한다. (2사무 1,17-27)

 

다윗이 그동안 사울의 집요한 추적에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사울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의한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세상이 된 그 순간에도, 다윗은 하느님께 어디로 가야할 지를 여쭙고,

헤브론에 가서 7년 반이나 기다렸다. (2사무 2,1-11)

 

사울과 요나탄의 죽음에 대해서 다윗은 수만가지 생각과 감정들이 오고갔을 것이다.

자신을 그렇게 비방하고 헐뜯고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수십년을 아무 이유없이 대적해 온 사울에 대해, 다윗은 놀랍게도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토로하지 않는다.

 

자신의 속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원칙적으로 하느님 앞에 이스라엘 임금으로서의 사울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고 진심으로 애도했다.

사울의 죽음은 이스라엘의 적인 이방인들에게는 기쁜 일이고,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손실이요 해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런 안목으로 자신의 모든 감정들 위에 바로 하느님이 세우신 나라인 이스라엘의 손실에 대해 가장 크게 애도하고, 사울에 대해 애도하고 있다.

 

다윗의 개인적인 감정은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

"나의 형 요나탄  형 때문에 내 마음이 아프오.  형은 나에게 그토록 소중하였고  나에 대한 형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 아름다웠소." (1사무 1.26)

 

요나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애통해 하는 마음을 슬프디 슬프게 토로하고 있다.

 

다윗은 감정의 사람이 아니다.

다윗은 하느님의 사람이다.

다윗은 성령의 사람이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관점에서, 하느님의 편에서 보고 판단하고, 원칙을 잡는 신본주의자이다.

 

우리 자신은 무엇이 원칙인가?

우리는 매사에 하느님보다는, 진실이라는 사실 보다는, 감정으로 사람과 사건을 대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의 큰 안목과 가슴으로 보도록 노력하고, 개인적 감정은 개인적 감정일 뿐이며 매사에 하느님의 뜻으로 돌아가는 훈련이 참으로 필요한 것 같다.

 

 

 

 

 

[연중 제2주간 토요일오늘의 묵상 (사제 김재덕 베드로)

 

사실 예수님의 형제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다”(7,5).

아마도 요한 복음의 이 말씀이 오늘 복음 말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가 될 것 같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친척들은 그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 커서 직장도 구하지 않고어느 날 집을 나가더니,

어부들과 패거리를 만들어 그들의 스승이라고 말하며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가난한 이들과 죄인들에게 다가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면사람들의 소문만 듣고 예수님을 평가하지 않았다면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한 번만이라도 진심으로 들어 보았다면그분의 친척들은 예수님께서 미치셨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장 가까워 보이는 사이가 그 누구보다도 멀리 떨어진 사이가 될 수 있습니다.

잘 알고 있다는 선입견이 그 사람 안에 담겨 있는 진심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사람의 진짜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며들으려는 마음까지도 없애 버립니다.

가깝다고 생각되는 관계일수록또 소중한 관계일수록잘 안다는 선입견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누군가에 대하여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이 그를 가장 모르는 순간일 수 있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잘 들어주고 진심을 보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김재덕 베드로 신부)

 


  

 [연중 제2주간 토요일]

 

예수님이 미쳤다. (마르3,20-21)

 

 하느님께서 피조물인 우리의 죄로 대신 죽으러 오셨으니 우리의 주님께서 미치신 것 맞다.  미치도록 사랑하면 눈에 뵈는 것이 없음을(특히 자녀를 위한 사랑) 아무도 말리지 못함을 벌레만도 못한 우리도 경험하지 않는가~

 

(마르3,20) 20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 앞 9절 이하에서 예수님께서 군중이 당신을 밀쳐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는데, 예수님께서 타실 그 배는 당신이 담고 오신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그 말씀이 주인인 교회를 준비하라고 하신 것으로 묵상 했었다.

곧 그 말씀이 예수님이며(요한1,14) 그 말씀이 일하시는 것이고(1테살2,13) 그 말씀이 죄인을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에(에페5,26-27), 그래서 그 말씀을 생명, 구원의 진리로 깨닫게 되면 선악의 계명, 그 무력한 신앙에서 벗어나 죄의식에 묶이지 않을 것이며 온갖 환난, 질병 속에서도 하늘의 평화, 안식을 땅에서부터 살 게 될 것이라 묵상했었다.

그러면 그 말씀을 붙들고 매달려 기도하면서 용서, 치유, 구원자, 그 예수님과 하나 되는 길을 찾아야(깨달아야)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그 말씀을 깨달을(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여전히 보이는 ‘육의 치유자’를 다시 찾아 온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하신 것이다. 다시 온 그들 때문에 올바른 양식, 곧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의 양식을 먹을 수도, 먹일 수도 없었다는 뜻이다. 

우리 역시 말씀을 묵상하고 깨달아 구원의 진리이신 예수님과 한 몸, 하나가 되기 위한 기도가 아닌- 우리의 소원, 내 뜻을 위해 열심한 종교행위로 빈말 기도로 바쁜 신앙을 살며 그것이 참 신앙 인냥 만족해하며 안심하고 산다. 그러나 불법이라 하신다.

 

(마태7,22-23) 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23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 구원의 말씀과 한 몸, 하나가 되지 않았다는 말씀이시다.

 

(히브9,14) 14 영원한 영을 통하여 흠 없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죽음의 행실에서 얼마나 더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마르3,21) 21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 *그동안 묵상한 말씀을 기억해 보자. - 친척들은 무슨 소문을 들었기에 미쳤다고 생각했을까?

 

우선 앞절로 가보자.

(마르2,16-17) 16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7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만나러 왔다’고 하시며 그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셨다는 소문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그들을 거저 의롭게 하시러 오셨다(로마3,24) 그리고 바라사이들이 ‘제자들은 왜 단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마르2,19-20)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음식을 끊는, 굶는 그 율법의 단식, 그 사람들의 수고, 희생을 무시하였기 때문이다. 그 율법을 끊고, 단식하고 죄의 대속 그 진리의 복음을 먹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참 단식 - 이사58,6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마르2,27-28) 2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28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 당시 사람들은 깨달음으로 얻는 안식이 아닌, 안식일을 지키는 그 행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예수님께서는 법, 교리로 지키는 그 안식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안식을 깨닫는, 곧 예수님의 대속, 그분의 십자가를 구원의 진리로 깨달아 그 십자가로 받는 용서, 자유, 쉼, 그 안식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시려하자 ~

(마르3,2) 2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 그들의 속셈을 아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해야 할 좋은 일은,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 하시며 그 사람을 말씀으로 고쳐 주셨기 때문이다, 곧 그 말씀은 법으로 지키는 안식일, 그 행위로는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헛된 것이라 하신 것이다. 그래서 ‘미쳤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모든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 그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미쳤다’는 말은 ‘어느 경지에 다달았다.’의 그 미쳤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의 친척(신자)들은 나쁜 의미로 정신이상자로 생각했던 것이다. 다른 말로 핍박이고 박해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요한15,18.20)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미쳤다고)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20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 그래서 복음을 전하면서 사람들의 미움과 박해, 그리고 이상한 소리를 하는 이상한(미친) 사람이라 말을 듣지 못한다면 올바른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지혜로 보면 - 어리석음, 곧 미친 것이기 때문이다.

 

(1코린1,21)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미친짓)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1코린2,14) 14 그러나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미친짓)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 예수님의 모습이다. 그러나 믿는 우리에게는 어리석음(미친짓)이 구원의 힘입니다. 미치신 예수님을 알아본 우리 또한 미친자(어리석은자)들인 것입니다.

 

(1코린1,18) 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미친짓)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아멘.

 

☨ 천주의 성령님! 늘 당신으로 충만하게 하시어 제대로(올바로) 미치게 하소서~아멘 

 

 

  

연중 제2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어제 복음에서 열두 사도를 세우신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는 “집으로” 가십니다.

그 집은 아마도 카파르나움에 있는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마르 1,29)일 것입니다.

‘집’이라는 낱말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공동체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그분을 붙잡으러 나섭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자신들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분께서 미치셨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더 활동하시지 못하도록 붙잡으러 나섰을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예수님의 친척들이 보인 태도는 그분의 고향 사람들이 보인 태도와(마르 6,1-6 참조) 마찬가지로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신앙을 드러냅니다.

예언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네 형제들과 네 아버지 집안조차도 너를 배신하고 너에게 마구 소리를 지르는구나”(예레 12,6).

 

마르코 복음서에서, 오늘의 짧은 복음은 당신을 비방하는 율법 학자들에게 들려주시는 예수님의 비유 말씀(마르 3,22-30 참조)과 참가족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마르 3,31-35 참조)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이 집에 도착하였을 때 당신 곁에 있는 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5).

 

사도들뿐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지내고 파견되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의 참된 가족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그분 안에서 사랑과 기쁨을 나누는 예수님의 가족으로 살아갑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연중 제2주간 토요일 복음 (마르3,20~21)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1)

 

'예수님의 친척들'에 해당하는 '호이 파르 아우투'(hoi par autou; his family)는 '그에게 속한 자들' 또는 '그와 함께 한 자들'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친구들'이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마르코 복음 3장 31절 이하의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데리러 오는 문맥과의 조화를 생각하면, 이들은 '예수님의 가족들'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붙잡으러' 해당하는 '크라테사이'(kratesai; to take charge of; to lay hold on)의 원형 '크라테오'(krateo)는 '체포하다'라는 뜻이라서 (마르6,17; 12,12참조), 예수님께 대한 그의 가족들의 태도가 얼마나 무지하고  살벌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예수님께서 당신의 일을 이해하지 못한 그들에 대해 영적인 의미에서 가족이 될 수 없다고까지 말씀하신 반응이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또한 예수님의 친척들이 보인 이런 부정적인 모습은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큰 영적 무지와 어리석음에 빠져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는지에 대한 척도가 된다.

 

이제 예수님께 대한 평가의 하나인 '그가 미쳤다'에 대해서 알아볼 차례이다.

'예수님께서 미쳤다'에 해당하는 '엑세스테'(ekseste; he is beside himself; he is out of his mind) 원형 '엑시스테미'(eksistemi)는 '~의 밖으로' 라는 뜻의 전치사 '에크'(ek)와 '어떤 상황이나 관계 속에 있다'는 뜻의 동사 '히스테미'(histemi)의 합성어이다.

말하자면, 이 단어는 예수님께서 현재의 상황이나 현상들에 대하여 정상적인 이해가 불가능한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께 대한 이런 단정적인 소문은 예수님의 가족들로 하여금 그를 집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미쳤다'는 말은 곧 '마귀가 들렸다'는 뜻이었다(마르1,23). 

 

이 구절 이후에도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대해 베엘제불이 들렸고,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하는 내용이 나온다(마르3,22).

특히 마르코 복음 3장 30절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그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마르코 복음 6장 1절 이하를 보면 고향 사람들도 예수님의 일에 대해서 신뢰하지 않았고요한 복음 7장 5절에는 예수님의 형제들 역시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한 마르코 복음 3장 21절과 3장 31~35절의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판단하고 그를 붙들러 온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마르코 복음 3장 22~30절에서 예수님을 향해 베엘제불이 들렸다고 하는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 학자들과 예수님의 논쟁을 앞뒤에서 둘러싸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한편에서는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고 마귀를 내쫓는 기적을 행하시는 능력의 소유자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소문도 돌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예수님께서 단순히 마귀들려 미쳤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멀리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학자들 뿐만 아니라(마르3,22), 그의 일을 지켜본 갈릴래아의 사람들이나(마르3,21 후반절) 심지어 자신의 친척들과 가족들까지(마르3,21 전반절)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마귀에 들려서 미친 사람 취급을 했다는 사실을 통해 볼 때, 예수님께 대한 비난에 가까운 배척과 오해, 영적 무지와 불신이 더 지배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20260124일 토요일

[연중 제2주간 토요일]

 

소문이라는 것이 참 무섭습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듯, 소문이 퍼지면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이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친척들은 무슨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을까요? 예수님께 치유를 받고 위로받은 사람들이 그런 소문을 냈을 리는 없습니다.

마귀 우두머리에게 힘을 빌려 기적을 일으킨다며 선동하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병자를 치유한다며 평소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사람들이 소문을 내고 다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당시 지도자라는 대사제들과 율법 학자들, 바리사이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소문은 예수님의 친척들이 듣기에 거북하였을 것이고, 그래서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나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이천 년 전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쩌면 우리도 소문만을 믿어 편견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편견에 빠지기 쉽습니다.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고집과 지나친 신념이 우리를 편견에 빠뜨립니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려고 하고, 그 안에 있는 진실을 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편견에 갇혀 단죄하기 쉽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주님을 향할 때,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며 어떤 소문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은 믿음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이철구 요셉 신부)

 

 


 

2026년 01월 24일 [연중 제2주간 토요일]

길을 찾았습니다. 주님!

 

복음(마르3,20-21)

20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21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 예수님이 미쳤다? 예수님께서 하신일, 말씀을 알아듣지 못해, 곧 깨닫지 못해서 미쳤다고 생각한 것이다. 특히 친척들이..........

 

우리는 앞 2장으로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과 말씀을 다시 배워보자.

*예수님께서 용서의 권한이 당신에게 있다고 하신 부분이다.~

(마르2,5.10)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 치유가 아니라 ‘용서받았다’ 하신다. 육의 치유가 아니라 영의 용서 받았음을 알아 들어야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피했던 세리(稅吏)와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시면서~

 

(마르2,17) 17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 오신 구원자이시다.

 

그리고 단식을 묻는 이들에게~

(마르2,22)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묵은 포도주가 아닌, 입맛에 맞지 않는 새 포도주를 담는 것이 단식이라는 이상한 소리를 하신다. 곧 묵은 율법, 그 옛 계약을 대속으로 완성하시고 거저 주시는 하늘의 의, 용서. 생명을 주시는 새 계약의 피(시 포도주)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구원의 말씀을 알아 들어야 한다.

 

(히브10,20) 20 그분께서는 그 휘장을 관통하는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곧 당신의 몸을 통하여 그리해 주셨습니다.

 

또한 율법에서 안식일에 하지 말라는 병을 고쳐주시면서~

(마르3,11-12) 11 또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1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

= “당신을, 그리고 하신 일을 알리지 말라‘고, 곧 하늘의 일을 세상(땅)의 일로 말하지 말라하신 그 뜻을 이해하고 깨달아야한다. 그 깨달음 없는 이들이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生覺)한 것이다. 그것도 가족들이....

우리는 그리스도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즉 세상(땅)에 살면서 하늘을 사는 존재라는 것이다. 다른말로, 우리가 땅에 살면서 땅의 말(소리)을 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의 말(소리)을 하니 ‘이상한 소리, 어리석은 소리, 답답한 소리’한다고 ‘미쳤다고’ 박해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가족인 그리스도인들이 말이다.

그들은 세상의 힘을 쫓는 아직 하늘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곧 하느님의 힘, 구원의 능력을(에페2,1-10) 깨닫지도, 믿지도 못해 하늘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2코린11,13) 13 그러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도로 위장한 거짓 사도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일하는 자들입니다.

 

* (요한15,18-19)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 하느님의 말씀을, 복음을 올바로 전하면 ‘이상한 소리 한다.’고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즉 세상의 말, ‘사람의 규정과 교리로 말하지 않으면 미쳤다고 한다’는 것이다.

 

(1데살2,13)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멘!

 

☨은혜의 성령님!

새롭고 살아있는 새 길을 칮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 것을 잡으려다 하늘의 것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땅의 고난의 삶이 하늘(빛)의 삶을 위한 기회임을 깨닫게 하소서. 믿는 이의 힘이 얼마나 큰지,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하소서(에페1,19) 깨닫고 믿게 하소서. 그래서 미쳤다는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하늘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 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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