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8주간 금요일]바리사이의 누룩 (루카 12,1-7)

2016. 10. 14. 오전 4: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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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8주간 금요일] 바리사이의 누룩 (루카 12,1-7)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는 구원의 복음을 듣고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다고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 (에페1,11-14)
형제 여러분,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14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라며,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고 하신다. (루카 12,1-7)
그때에 1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서로 밟힐 지경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 2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3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4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5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7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제1독서 (에페1,11-14)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13)

 

사도 바오로가 소 아시아 교회, 그 중에서도 특히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은 사실을 말하는 것은, 그들 중 할례의 인장을 받아야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소아시아 교회의 상황이 실제 그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구약의 선민이었던 유대인들이 과거 할례라는 인장으로

아브라함의 자녀의 증표를 삼았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 신약의 선민인 교회 공동체는

약속된 성령의 인장하느님의 자녀의 증표로 삼게 되었다.

 

이와같이 성령께서는 구속받은 죄인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확증하는 일을 하신다.

 

또한 하느님의 백성으로 확증된 성도로 하여금 아버지 하느님께 나아가게 하고(에페2,18),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성전(거처)으로 지어져 가게 하시며(에페2,22),

내적 인간을 굳세어지게 하시고(에페3,16), 성도들을 하나되게 하신다.(에페4,3.14)

 

이런 일들을 하실 성령께서 오신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약속되었다.

 

하느님께서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을 통해 약속하셨을 뿐만 아니라(이사32,5; 요엘 3,1),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오실 것을 약속하신 바 있다(요한14,16.17; 사도1,4.5).

예수님의 승천 후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이 약속을 실현되었다.

 

한편, '인장을 받았습니다'에 해당하는 '에스프라기스테테'(esphiragisthete;

you were marked in him with a seal, the promised Holy Spirit; 

you were sealed with the promised Holy Spirit)

원형 '스프라기조'(sphragizo)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미를 가진다.

 

고대 근동 사회의 관습으로 볼 때, 이 단어는 먼저 정치적인 면에서는

임금의 도장의 효력을 강조하는 의미를 갖는다.

서류에 찍힌 임금의 도장은 그 문서의 진정성과 권위를 증명했던 것이다.

 

또한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개신의 소유권에 대한 증거를 나타내는 의미를 갖는다.

본문에서도 '에스프라기스테테'라는 단어는 위와 같이

어떤 사실에 대한 확증이라는 의미 사용되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증표이시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증거하시고(요한14,26; 15,26) 우리 가운데 오셔서

복음을 진리로 알게 하시고, 복음을 믿게 하셔서 우리를 하느님의 것으로

인장을 찍으신(2코린1,22) 성령만이 오직 우리 구원의 보증이 되신다.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14)

 

'보증'에 해당하는 '아르라본'(arrabon; the earnest;

a deposit guaranteening)'보증금'이라는 의미로서

구매자가 인도받는 상품의 값을 반드시 지불하겠다는 표시로

미리 주는 대금의 일부분을 가리킨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또한 '저당물' 또는 '담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는데,

고대 페니키아와 그리스 등지에서 널리 사용되던 상업 용어였다.

 

이것은 물건을 사는 사람이 물건 값의 환납을 확증하는 표시로

대신 맡겨놓은 물건을 가리킨다.

 

본문에서도 이런 의미로 사용되어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실 것을

확증하시는 표시로서 성령을 주셨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성부 하느님께서는 영원으로부터 우리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고,

성자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구속사업을 성취하셨으며,

성령님께서는  이 구속 사업의 공로와 효과를 성도 개개인에게 적용하시고

나누어 주심으로써 우리의 성화와 구원의 완성을 보증하신다.

 

따라서 성도의 구원은 개인의 감정이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구원받은 성도안에  거처하시는 성령 하느님께서 떠나가지

아니하시는 한 보증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소유로서'로 번역된 '페리포이에세오스'(peripoieseos)'보존'

또는 '소유(물)'이라는 의미인데, 여기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소유가 된 성도들 지칭한다.

 

또한 '속량'에 해당하는 '아폴뤼트로신'(apolytrosin; redemption)

몸값의 지불로 얻어진 해방을 가리키는데, 본문에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후에 즉각적으로 얻는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로부터의 법적인 해방

(에페1,7)이 아니라, 예수님 재림시 완성되는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로부터의 완전한 해방, 즉 완전한 구원을 지칭한다.

 

따라서 본문은 성령님께서 성도가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영원히 해방되어 천상의 완전한 자유에 이를 때까지 성도에게

구원의 보증이 되어 주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본문에 결과 혹은 지향의 의미를 나타내는 전치사 '에이스'(eis; until;

unto; to)가 사용되었다는 점이 이 사실을 더욱더 확고하게 보여준다.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복음 (루카12,1-7)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1ㄷ)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5ㄴ)

 

예수님께서는 루카 복음 12장 4~12절에서 환난을 이기는 신앙에 대한 교훈

주시기에 앞서서 12장 1~3절에서 제자들에게 박해와 환난을 가져다 준 주역이 될

바리사이들의 정체를 밝히며, 그들의 위선을 경계하신다.

 

'조심하여라'로 번역된 '프로세케테'(prosechete; beware;

be on your gaurd)원형 '프로세코'(prosecho)

'~을 향하여'라는 뜻의 전치사 '프로스'(pros) '붙잡다' 뜻의

동사 '에코'(echo)가 결합된 형태로서 '어떤 대상을 행하여

마음이나 생각을 붙잡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로 부터'라는 뜻의 전치사 '아포'(apo) '너희 자신들에게'

라는 뜻의 재귀 대명사 '헤아우토이스'(heautois)가 덧붙여 사용되어,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조심할 것을 좀 더 강조하고 있다.

 

또한 여기서 '누룩'에 해당하는 '쥐메스'(zymes; leaven; yeast)

바리사이들이 행하는 모든 위선적 행동과 동격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상징하는 데 사용된

'누룩'이 지닌 대표적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부패성인데, 당시 유대인들의 주식인 빵을 만드는 데 있어서,

누룩을 섞은 반죽이 오래 되면 그 반죽은 부패하여 나쁜 냄새를 내고 

부패하고 만다.

이러한 누룩의 부패성은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방치하며

모든 사람들을 부패시키는 것을 상징한다.

 

둘째로 파급효과인데,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만드는 것처럼

바리사이들의 위선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로 신속하게

파급될 것을 상징한다.

 

셋째로 누룩은 겉으로는 쉽게 구별되지 않지만,

열을 가하면 결국 드러나고 마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루카복음 12장 2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바리사이들이

아무리 겉으로 자신을 위장할지라도 마지막 때에는

그들의 죄악이 드러나게 될 것임을 상징한다.

 

이러한 속성은 '누룩''위선'으로 번역된 '휘포크리시스'(hypokrisis;

hypocrisy)동일한 의미를 지녔음을 보여 준다.

 

'휘포크리시스'(hypokrisis)는 원래 배우가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위선'이란 자신의 본 모습은 숨긴 채, 자기의 가장된 모습을

드러내는 위선적 행동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누룩은 이것에 대한

좋은 상징이 되는 것이다.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

 

'지옥'으로 번역된 '게엔나'(geenna; hell)는 원래 '힌놈의 골짜기'라는

뜻의 히브리어 '게힌놈'(gehinnom)희랍어 음역이다.

 

'게힌놈'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한 골짜기 어린 아이들을

몰록신에게 제물로 불태워 바친 곳이었다(레위18,21; 예레7,32).

 

이러한 행위는 요시야 임금의 종교 개혁에 의해 근절되었지만(2열왕23,16),

이곳은 계속하여 저주받은 곳으로 간주되었다(예레7,31; 19,6).

 

후에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버려지는 쓰레기 및 죄인들의 시체 등이

계속해서 타오르는 곳이 되었다(예레18,1-4; 19,2.10-13; 느헤2,13).

 

이러한 이유로 이곳은 마지막 심판 후에 악인들이 계속해서

불타는 지옥으로 상징되었다.

 

'게엔나'확정적인 하느님의 심판에 의하여

영원토록 고통받는 곳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바로 이러한 영원한 형벌의 장소로 보낼 권한이

오직 하느님께만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두려워할 존재는 바로 최후의 심판에서

죄인을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으로 보내는 하느님이심을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다'('포베오'; 'phobeo'; fear)

동사를 세 번이나 사용하여 거듭 강조하고 있다.





<두려워하지 마라.>  송영진 모세 신부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루카 12,3).”


이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명령으로 해석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뜻에 따라서 이렇게 바꿔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복음을 어두운 데에서 너희끼리만 나누지 말고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밝은 데에서 선포하여라.
너희는 복음을 골방에서 너희끼리만 속삭이지 말고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복음’은 감추고 숨겨야 할 비밀이 아닙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들어야 할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니 모든 곳에 가서, 모든 사람에게 선포해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선포하다가 박해를 받는 일이 많습니다.
인간 세상에는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거나,
사탄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싫어하고 안 들으려고 하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고,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것을 막으려고 합니다.
종교 박해는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사탄의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라고 명령하신 다음에
박해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루카 12,4).”


이 말씀에는 박해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두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1) 신앙인은 ‘예수님의 벗’이기 때문에 박해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벗’이라는 말에서,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공동번역).” 라는 말씀이 바로 연상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벗인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당신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박해자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벗’이라는 말의 반대말은 ‘사탄의 친구’입니다.
사탄은 예수님 앞에서는 전혀 힘을 쓸 수 없는 무력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벗’인 신앙인은 ‘사탄의 친구’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2) 박해자들은 신앙인의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두려운 존재가 아닙니다.
신앙인이 두려워해야 할 일은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영혼의 멸망입니다.
따라서 영혼을 멸망시키는 권한을 가지신 분만 두려워해야 합니다(루카 12,5).


물론 육신의 죽음도 두려운 일이긴 합니다.
그러나 죽음 너머에 있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과 희망으로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극복해야 합니다.)
순교자들은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은 분들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박해’를 넓은 뜻으로 ‘신앙생활의 어려움’으로,
박해자들을 두려워하는 일을
신앙생활을 힘들어하는 일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인은 영원한 하느님 나라를 믿고 희망하지만,
그 나라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 세상 한가운데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온갖 박해와 유혹들 외에도
하루하루 먹고 사는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런 처지를 생각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인생살이와 신앙생활이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라.”
마태오복음을 보면,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라는 예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여기서 ‘끝까지’는 ‘죽을 때까지’이고,
이 말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를 뜻합니다.


산다는 것 자체도 힘들지만,
신앙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더욱 힘들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힘드니까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잘못은 아닌데,
견디지 못하고 믿음도 희망도 모두 버린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생활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그런데 이 말씀은, 어떤 특정 제자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길은 ‘모든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입니다.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만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길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걸어가시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지치고 힘들 때, 우리를 부축해 주시든지 업어 주시든지 해서
어떻게든 우리를 데리고 가려고 애쓰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혼자 힘으로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너는 할 만큼 했다. 이제 그만해도 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격려하십니다.
“내가 옆에 있다. 내가 너에게 힘이 되어 주겠다. 너도 조금만 더 힘을 내라.”


“그렇게 믿고 있지만, 그래도 참기 힘들 정도로 너무 힘들다.”
라고 하소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힘들 때, 도저히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될 때,
이제 그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그때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너무 힘들어서 기도하는 것마저도 힘들다면, 그렇다면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 자신의 믿음과 희망을 스스로 확인하는 일이고,
우리가 새로운 힘을 얻게 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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