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5주간 화요일]예수님의 가족 (루카 8,19-21)

2016. 9. 20. 오후 4: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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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예수님의 가족 (루카 8,19-21)

 

잠언의 저자는, 마음을 살피시는 분은 주님이시며, 정의와 공정을 실천함이 주님께는 제물보다 낫다며 여러 가지 교훈을 들려준다. (잠언의 말씀입니다. 21,1-6.10-13
1 임금의 마음은 주님 손안에 있는 물줄기,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끄신다. 2 사람의 길이 제 눈에는 모두 바르게 보여도, 마음을 살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3 정의와 공정을 실천함이 주님께는 제물보다 낫다.
4 거만한 눈과 오만한 마음, 그리고 악인들의 개간지는 죄악일 뿐이다.
5 부지런한 이의 계획은 반드시 이익을 남기지만, 조급한 자는 모두 궁핍만 겪게 된다.
6 속임수 혀로 보화를 장만함은, 죽음을 찾는 자들의 덧없는 환상일 뿐이다.
10 악인의 영혼은 악만 갈망하고, 그의 눈에는 제 이웃도 가엾지 않다. 11 빈정꾼이 벌받으면 어수룩한 자가 지혜로워지고, 지혜로운 이가 지도를 받으면 지식을 얻는다.
12 의인은 악인의 집을 살피고, 악인을 불행에 빠지게 한다. 13 빈곤한 이의 울부짖음에 귀를 막는 자는,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대답을 얻지 못한다.


시편 119(118),1.27.30.34.35.44(◎ 35ㄱ 참조)
◎ 주님, 당신 계명의 길을 걷게 하소서.
○ 행복하여라, 온전한 길을 걷는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 ◎
○ 당신 규정의 길을 깨우쳐 주소서. 당신의 기적을 묵상하오리다. ◎
○ 저는 진실의 길을 택하였고, 제 앞에 당신 법규를 세웠나이다. ◎
○ 저를 깨우치소서. 당신 가르침을 따르고, 마음을 다하여 지키오리다. ◎
○ 당신 계명의 길을 걷게 하소서. 저는 이 길을 좋아하나이다. ◎
○ 저는 언제나 당신의 가르침을, 길이길이 지키오리다. ◎


군중을 가르치시던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다고 하자, 내 어머니와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신다. (루카 8,19-21)
그때에 19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20 그래서 누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 드렸다. 2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제1독서 (잠언21,1-6.10-13)

"임금의 마음은 주님 손안에 있는 물줄기,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끄신다.

 사람의 길이 제 눈에는 모두 바르게 보여도, 마음을 살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1~2)

 

잠언 21장 1절부터 3절까지는 주님의 절대 주권과 공의에 관한 말씀을 소개한다.

그 가운데서 1절은 주님께서 세상 모든 일의 주관자이심을 강조하는 구절로서

주님께서는 지혜와 힘이 인간 중에 가장 높고 크다고 생각되는 임금들조차도

마음대로 움직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솔로몬은 임금의 마음이 주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물줄기'로 번역된

물이 담긴 보(洑; 나루 보)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물줄기'에 해당하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둑을 쌓아 냇물을 막아 두는 곳'

의미하는 '보'(洑)로 번역된 '팔르게'(phallge)의 원형 '펠레그'(phelleg)

농사에 필요한 물을 저장해 놓는 규모가 작은 물웅덩이를 가리킨다.

 

이것은 강우량이 적은 팔레스티나 지방의 농사에서 필수적인 관개시설이다.

 

솔로몬은 농부가 이곳에 물을 저장해 놓았다가 물이 필요할 때면

언제라도 마음대로 끌어다 쓸 수 있는 점에 착안하여

하느님께서 임금의 마음을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섭리하고 주관하심을 표현하고 있다.

 

한편, 성경에서 '주님 손' 다양한 상징적 의미로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주님 손' 우주와 인간에 대한 권능(2역대20,6)이나 섭리(시편31,15)를

나타내거나 혹은 당신의 백성을 향한 보호(이사51,16)와 도우심(시편145,16)을

나타낼 때도 사용된다.

 

그러나 때때로 악인에 대한 심판(시편75,8)이나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형벌(이사50,11)과 같은 부정적 의미로도 사용된다.

 

여기서는 주님께서 임금의 마음을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섭리하고 주관하실 수

있는 권능을 가지신 분임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특히 본절 후반절에 '~대로'(임의로)로 번역된 '알 콜'(al kol)이란 표현이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위에' 의미를 지닌 전치사 '알'(al)

'모두','전부' 의미하는 명사 '콜'(kol)이 결합된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주권적인 행사와 섭리가 모든 것 위에 미치며

완전한 것임을 함축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즉 이것은 본절 자체의 의미를 감안할 때, 임금의 마음과 생각, 행사 모든 것이

하느님의 주권 하에 있다는 의미 전달하며, 한걸음 더 나아가 세상의 어떤

피조물도 하느님의 섭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함축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사람의 길이 제 눈에는 모두 바르게 보여도, 마음을 살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잠언 21장 2절은 사람의 판단이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반면에

하느님의 판단은 완전하고 공의로우심을 대조적으로 기술함으로써

하느님을 의존하고 그 인도에 따라야 함을 교훈하고 있다.

 

하느님의 판단이 완전한 이유는, 사람은 가시적이고 외적인 행동이나

일의 결과만 보는 반면, 하느님께서는 드러나지 않는 내적 동기와

목적까지도 깊이 꿰뚫어 보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조는 특히 상반절의 '제 눈에는' 해당하는 '베에나이우'(beenaiu)

들어있는 '눈'이란 의미의 '아인'(ain)과 후반절의 '마음을' 해당하는 '립보트'

(liboth)의 원형 '레브'(leb; 마음)의 대조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즉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만 근거로 판단하기 때문에 그의 판단은 부분적이고

불완전할 수 밖에 없으나,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기 때문에

그의 판단은 완전하고 공의로우신 것이다(1사무16,7).

 

한편 '살피시는'에 해당하는 '웨토켄'(wethoken)의 원형 '타칸'(thakan)

원래 '무게를 재다'(weigh), '시험하다'(examine)라는 의미를 지니며

문자적으로는 주님께서 사람의 마음의 무게를 잰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이것은 주님께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의 마음 속 깊이 있는

동기와 목적들까지도 훤히 꿰뚫어 보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복음 (루카8,19-2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21)

 

루카 복음 8장 19~21절의 병행구절인 마태오 복음 12장 46~50절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 형제들이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침을 하고 계실 때 찾아온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찾아온 이유예수님의 가르침과 영적이 군중들에게 영향을 끼쳐

단순히 소문과 명성 때문에 찾아온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께서 베에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마태12,22~32)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와 소문 때문에

걱정이 되어 찾아왔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회당에서 가르침을 하는 도중에 육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당신을 만나기 위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신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12,48) 라고 말하면서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마태12,49)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당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앞으로 당신 구원 사업의 협력자로 불리움을 받은 제자들도

이러한 공적(公的)인 가르침 중에 사적(私的)인 육정(肉情)을 쓰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교육적인 차원에서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고 볼 수 있다.

 

루카 복음 8장 21절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이다'로 나오는 마태오 복음 12장 50절과 병행 구절이다.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협력하는 제자들에게 있어서 혈육적이고 혈연적인 관계보다도

영적인 관계가 더 중요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참된 가족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에 해당하는 '메테르 무 카이 아델포이 무'(meter mu

kai adelphoi mu)에서 '형제들'에 해당하는 '아델포이'(adelphoi)의 단수는

'아델포스'(adelphos)이다.

 

여기 복음에 나오는 '형제'라는 뜻의 '아델포스'(adelphos)라는 희랍어 단어는

당시 이스라엘에서 사촌 형제들도 그렇게 불렀다.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형제, 자매들요셉 양부의 형제, 자매의 자녀들인

고종 사촌들이나 마리아의 형제, 자매의 자녀들인 이종 사촌들이라는 것이다.

 

만일 예수님께 친형제들이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때에

자신의 어머니를 친형제들에게 맡기지, 왜 이종사촌인 제자에게 맡겼겠는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출산하기 전(前)이나

출산시(時), 그리고 출산 후(後)에도 평생동정(平生童貞)이시라는 교리 신덕 도리

이천년 동안 가르쳐오고 믿어온 가톨릭을 반대하며, 자신들의 대처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성모님의 평생 동정성을 부정하는 개신교 마리아에게는 예수님 외에도

여러 명의 아들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말씀 절대 주의'를 주장하면서도 이렇게 성경적 무지로

오류을 범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대처주의를 성경을 근거로 해서

합리화시키려고 하니까 터무니 없는 거짓을 진리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듣고'에 해당하는 '아쿠온테스'(akuontes; hearing)의 원형은 '듣다',

'복종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아쿠오'(akuo)인데, 이것은 자식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 권위의 대리자들인 부모에게 순종하듯이, 인간들의 삶을 다스리는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권위이신 하느님께 대해 자녀로서의 순종은

당연한 도리요 의무라는 뉘앙스를 주는 말이다.


<가족>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누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 드렸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카 8,19-21)”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친척들)이 찾아온 일을 계기로 삼아서
‘영적인 가족’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라는 말씀은, 마리아가 당신의 어머니라는 것을 부정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영적인 가족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실행하는 사람들만이
참으로 하느님(예수님)의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예수님)의 가족이 된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느님의 말씀을(뜻을) 실행해야 합니다.
실천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야고 2,17).
죽은 믿음으로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마태 7,24).”
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반석’을 영적인 가족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서로 사랑하고, 서로 기도해 주고, 서로 도와주는 영적인 공동체는
안식처가 되기도 하고, 어려울 때에 피신처가 되기도 하고,
후원자와 조력자가 되기도 합니다.
만일에 신앙 여정이 혼자서 걷는 외로운 길이라면,
그 외로움 때문에 끝까지 가기가 무척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 동반자들과 함께 가는 길이기 때문에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영적인 가족을 강조하는 말씀을 하신 것은
육적인 가족을 부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육적인 가족과 영적인 가족을 대립 관계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혈육의 가족과 영적 공동체가 하나로 일치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신앙인의 가정은 혈연으로 맺어진 가정이면서,
동시에 영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
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지만,
이 말씀은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뜻이지
실제로 가족을 미워하라는 뜻도 아니고, 가족을 버리라는 뜻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경우를 보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버리셨다고 생각할 수도 없고,
성모님께서 버림받으셨다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은 끝까지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인과 이혼에 관한 말씀을 하실 때,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6).”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가족이니 버려도 안 되고 미워해도 안 됩니다.
끝까지 사랑하면서 하느님 나라로 함께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가족을 버리지 않았는가?”
“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 때문에 가족을 버린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시지 않았는가?”


사도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인연을 다 끊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사도들의 ‘버림’은 폐기처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초월’을 뜻합니다.
(세속의 일에 구애되지 않는 자유로움...)


베드로 사도의 경우를 보면,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던 그는
사도가 된 후에도 아내를 버리지 않았고, 아내와 함께 다녔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편지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우리는 다른 사도들이나 주님의 형제들이나 케파처럼
신자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다는 말입니까?(1코린 9,5)”
(여기서 ‘케파’는 베드로 사도입니다.)
이 말은, 결혼을 한 사도들은 아내와 함께 다니면서
사도 직무를 수행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성가정 축일에는 육적인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강론을 했다가,
영적인 가족에 관한 말씀이 나오기만 하면
혈육은 영적인 가족보다 덜 중요하다고 강론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을 ‘아버지’ 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느님의 자녀라면,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호적에 가족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해서 가족인 것이 아니라,
가족으로서 가족답게 살아야 가족입니다.
마찬가지로 세례대장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신앙인인 것이 아니라,
신앙인으로서 신앙인답게 살아야 신앙인입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그런 뜻입니다.





2013년 9월 24일 연중 제25주간 화요일2013년 9월 24일 연중 제25주간 화요일(홀수해)


오늘의묵상
     사람들은 삶의 이유를 말하기 싫어합니다. ‘왜 살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는 답변을 피하려 듭니다. 질문 자체를 피곤해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답할 수 있어야 삶이 분명해집니다.

    답변 가운데 하나는 분명 가족입니다. 자녀와 배우자와 부모 형제 때문에 살아갑니다. 그들이 ‘삶의 중요한 이유’인 것은 확실합니다. 그렇습니다. 인연만큼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들과의 관계를 ‘기쁨으로 만드는 일’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들과의 관계가 엉망이라면 ‘주님의 개입’을 간절히 청해야 합니다. 가족 간의 일치는 주님의 은총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많은 이들은 계기가 주어지면 화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가 되면 좋아질 것이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사람 일은 모릅니다. 예기치 않은 변수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너무 늦기 전에 주님의 도우심을 청해야 합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얼핏 들으면 어머니를 외면하는 말씀인 듯합니다. 하지만 가족을 도외시하는 예수님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모든 이’를 어머니와 형제로서 맞이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가족을 위해 늘 기도해야 합니다. 가족이 건네는 십자가는 언제라도 무겁고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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