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간 화요일] 평지로 내려오시어 (루카 6,12-19)

2016. 9. 5. 오후 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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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화요일] 평지로 내려오시어 (루카 6,12-19)

 사랑의 향기마을

바오로 사도는 문제가 있을 때 이교도들에게 가서 심판을 받으려는 이들에게, 고소한다는 것부터가 그릇된 일이라고 나무란다. (1 코린 6,1-11)
형제 여러분, 1 여러분 가운데 누가 다른 사람과 문제가 있을 때, 어찌 성도들에게 가지 않고 이교도들에게 가서 심판을 받으려고 한다는 말입니까? 2 여러분은 성도들이 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세상이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아야 할 터인데, 여러분은 아주 사소한 송사도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말입니까?
3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하물며 일상의 일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 않습니까? 4 그런데 이런 일상의 송사가 일어날 경우에도, 여러분은 교회에서 업신여기는 자들을 재판관으로 앉힌다는 말입니까?
5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형제들 사이에서 시비를 가려 줄 만큼 지혜로운 이가 하나도 없습니까? 6 그래서 형제가 형제에게, 그것도 불신자들 앞에서 재판을 겁니까?
7 그러므로 여러분이 서로 고소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그릇된 일입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그냥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왜 차라리 그냥 속아 주지 않습니까? 8 여러분은 도리어 스스로 불의를 저지르고 또 속입니다. 그것도 형제들을 말입니다.
9 불의한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불륜을 저지르는 자도 우상 숭배자도 간음하는 자도 남창도 비역하는 자도, 10 도둑도 탐욕을 부리는 자도 주정꾼도 중상꾼도 강도도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11 여러분 가운데에도 이런 자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겨졌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워 기도하시고 나서 제자들을 부르시어 열두 사도를 뽑으신 뒤, 평지로 내려오시어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는 군중을 치유하신다. (루카 6,12-19)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제1독서 (1코린6,1-11)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하물며 일상의 일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 않습니까? (3) 불의한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불륜을 저지르는 자도 우상 숭배자도 간음하는 자도 남창도, 비역하는 자도, (9) 도둑도 탐욕을 부리는 자도 주정꾼도 중상꾼도 강도도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10)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하물며 일상의 일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 않습니까?' 

여기서 '심판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크리누멘'(krinumen)의 원형 '크리노'(krino)'비판하다','판단하다','정죄하다'라는 뜻으로 심판과 관련된 용어이다(마태7,1; 1베드 4,6; 묵시18,8).

따라서 본문의 '천사'는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마귀) 모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 하느님께 대들고 배신하고 범죄한 천사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서 '천사'란 용어가 쓰여서 한국 독자들이 헷갈릴 수 있으나, 천사의 의미가 '선한 영'의 의미가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느님의 허락하에 파견된 자(심부름꾼)'의 의미로 쓰였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니까 '악한 영'인 '타락한 천사'도 해당되는 것이다. 

본문은 비록 타락했다 하더라도, 영적으로 인간들보다 탁월한 존재인 '타락한 천사들'(악한 영들)까지 성도들이 판단하게 될 것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이사24,21; 2베드2,4; 유다1,6).

한편 본절에 '하물며' 로 번역된 '메티게'(metige)세상과 타락한 천사를 심판할 신분의 성도들도리어 세상의 법정에서 판단받아서는 안된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지적 준다.  

특히 '일상의 일'(세상 일)로 번역된 '비오티카'(biotika)는 법정 용어가 아닌 '일상 생활에서 발생하는 평범한 일'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당시 코린토 교인들이 일반 상식으로도 판단할 수 있는 매우 사소한 일들까지 세상 법정에 송사하고 있는 어리석은 코린토 교인들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불의한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불륜을 저지르는 자도 우상 숭배자도 간음하는 자도  남창도, 비역하는 자도' (9) 

'하느님의 나라'는 공관 복음서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으로서 세례자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의 출발점이 되는 개념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나라는 종말론적인 성격(already, but not yet ;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니)을 가진다. 

본문 역시 종말론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도 하느님께서 만유의 주님이 되시고, 악의 세력이 완전히 소멸되는 영광과 축복의 때를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1코린15,28). 알다시피,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하느님 나라의 백성들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의 나라를 공동으로 상속받을 상속인들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본질상 의로운 나라이기 때문에(로마14,17 ; 마태5,10; 13,43; 루카14,14; 묵시1,18; 2,8 이하)완성된 의미의 종말론적 하느님의 나라불의와 절대 공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도 바오로는 본절에서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상속으로 받지 못한다고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본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불의한 자'(adikoi; 아디코이; the wicked)라고 언급하며, 8절에서 '불의를 저지르고'(adyikeite; 아디케이테)'불의'의 이미지를 계속 이어간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전서 5장, 6장에서 자신이 책망한 교인들의 도덕적 무질서 형태를 '불의' 라는 한마디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나라를 상속으로 받지 못할 불의한 자들의 예를 구체적으로 열거하기 전에 코린토 교인들을 향해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고 경고하고 있다. 여기서 '착각하지 마십시오'로 번역된 '메 플라나스테'(me planaste ; do not be deceived)는 갈라디아서 6장 7절에도 나온다. 이것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대중 앞에서 했던 대중 설교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로서 당시 논쟁 가운데 자주 등장하던 말이다(1코린15,33; 루카21,8; 야고1,16). 

본문에서도 이 단어는 당시 코린토 교인들이 자신들의 교만한 지혜로 도덕적 기준을 마음대로 정하고, 나아가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인간에게 강요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방종의 극단에 빠졌던 사실을 암시한다. 따라서 본문은 범죄했지만, 회개하지 않고도 하느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것이라는 당시의 공허한 주장에 속지 말라는 의미이다(1코린15,33; 루카21,8; 갈라6,7; 야고1,4). 

사도 바오로는 본문에서 '불의한 자'의 예를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첫째, 불륜을 저지르는 자이다.

 '불륜을 저지르는 자'(음란하는 자)로 번역된 '포르노이'(pornoi; fornicator;  sexually immoral)코린토 전서 5장 1절 이하에 나오지만, 일반적으로 모든 형태의 성적 타락을 의미한다.

둘째, 우상 숭배자(eidololatrai; 에이돌롤라트라이; idolaters)이다.

 '우상 숭배' 당시 이방 신전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로서 성적 타락과도 깊은 관계가 있었다. 당시 신전들은 공식적인 매춘 장소였기 때문이다. 

셋째, 간음하는 자이다. 여기서 '간음하는 자'로 번역된 '모이코이'(moichoi; adulterers)는  특별히 혼인과 가정의 신성함을 파괴하는, 혼인한 자가 자기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성관계를 가지는 성적 타락을 의미한다.

넷째, 남창이다.  '남창'으로 번역된 '말라코이'(malakoi; effeminate; male prostitutes)는  본래 '유약한','여자같은'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동성애자들 중에 특히 수동적인 위치에 있는 자들을 뜻한다. 

다섯째, 비역하는 것이다. '비역하는 자'(남색하는 자)로 번역된 '아르세노코이타이'(arsenokoitai;  homosexual offenders)는 동성애자 가운데 특히 능동적 위치에 있는 자들 뜻한다.

사도 바오로가 여기서 언급한 이 다섯 가지의 악의 목록은 모두 성적 타락과 관계되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본절은 하느님의 나라가 이러한 성적 범죄를 저지른 자들과는 전혀 무관한 나라임을 나탄낸다.

'도둑도 탐욕을 부리는 자도 주정꾼도 중상꾼도 강도도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10)

사도 바오로는 9절에 이어 계속해서 하느님의 나라를 상속(inherit)받지 못할 불의한 자들을 열거한다. 9절에 열거된 자들이 자신의 몸에 직접적으로 범죄하는 '성적 범죄자들'(1코린6,18)이라 한다면, 10절 '도덕적 범죄자'를 언급하고 있다.

첫째, 도둑이다.  '도둑'으로 번역된 '클렙타이'(kleptai; thieves)전문적인 강도라기 보다는 좀도둑을 의미한다.

둘째, 탐욕을 부리는 자이다.  '탐욕을 부리는 자'로 번역된 '플레오넥타이'(pleonektai; covetous; greedy)는 자기 욕심에 따라 이웃의 것을 탐하는 자 뜻한다.

셋째, 주정꾼이다.  '주정꾼'(술 취하는 자)로 번역된 '메티소이'(methysoi; drunkards) 술로 인해 자신 뿐만 아니라 이웃들에게 해를 끼치는 자들을 의미한다.

넷째, 중상꾼이다.  '중상꾼'으로 번역된 '로이도로이'(loidoroi; revilers; slandelers)남을 중상하고, 비방하고 욕하는 자 뜻한다.

다섯째, 강도다.  '강도'(토색하는 자)로 번역된 '하르파게스'(harpages;  extortioners; swindlers) 사기와 협잡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남의 재산을 강탈하는 자 뜻한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죄를 범한 자마다 하느님의 나라를 상속으로 받지 못한다고 언급함으로써, 코린토 교회에 관련된 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코린토 교인들이 사랑과 거룩함과 순결을 회복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가 상세하게 이런 범죄들을 열거하는 이유는 당시 코린토 교회에 이러한 범죄가 성행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죄악들을 이무리 범해도 하느님의 나라를 상속받는데 지장이 없다고 가르치는 거짓 스승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서 8장 35~39절 등에서 선택된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의 사랑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선택한 자에 대한 구원의 확실성을 주장하면서 구원의 확실성을 곡해한 반율법주의적 자유방임사상을 표방했던 거짓 스승들어떠한 죄를 범해도 상관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능동적인 범죄를 조장했던 것이다.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복음 (루카6,12-19)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2~13)

루카 복음 6장 12절에서 16절까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임명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내용은 공관 복음서(마태10,1~4; 마르3,13~19)에 다 나오는데, 마태오 복음에서는 제자들의 사명이 복음 전파에 있음을 보여 주는 문맥에서 12사도의 명단이 나오는 반면에, 마르코와 루카 복음에서는 제자들을 택한 이유가 예수님께 임박한 고난과 핍박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점이 부각된다. 

루카는 마르코와 같은 관점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산으로'에 해당하는 '에이스 토 오로스'(eis to oros; into a mountain)라는 장소를 제외하고는, 열두 사도를 택하기 직전의 장면을 다르게 소개한다.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의 임명 전에 홀로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셨다는 사실은 루카 복음사가만이 기록하고 있다. 루카 복음에 있어서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은 특히 중대한 사건을 앞두고 종종 나타난다(루카3,21; 9,18.28.29; 11,1; 22,41). 

그렇기 때문에 열두 사도를 뽑기 전에 하느님께 기도하셨다는 것은, 열두 사도를 선택하는 일이 그리스도교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전기를 이루는 너무나 중요한 일어라는 것을 암시한다. 

실제로 사도들은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 동고동락하며 예수님께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성령강림 이후에는 복음 전파의 주역이 되며 또한 교회의 초석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밤새 기도하신 후 그 다음 날에 제자들을 부르셨으며, 이들 중에서 열두 제자를 뽑으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다수의 제자들의 무리 속에서 열두 제자를 특별히 구별하신 것이다. 

여기서 '뽑으셨다'에 해당하는 '에클렉사메노스'(ekleksamenos; he chose)의 원형 '에클레고마이'(eklegomai)남성 단수 주격 접미어가 붙어 있어서 예수님 당신 자신이 택하심의 명백한 주체임을 보여 주고 있다. 

특별한 자격 요건을 갖추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예수님의 깊으신 뜻과 은총으로 부름받은 열두 제자에게 예수님께서는 '사도'라는 직책을 주셨다. '사도''아포스톨로스'(apostolos)라는 단어는 '어떤 자에게 특별한 사명을 주어 파견하다'라는 의미를 지니는 '아포스텔로'(apostello)의 명사형이다. 

희랍어에서 이 단어는 황제의 명령을 받고 파견되는 전권대사를 가리키는 뜻으로도 사용되지만,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사람들에게 선포할 사람에게 붙여졌다. 

루카 복음사가'사도'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는데(루카9,10; 11,49; 17,5; 22,14; 24,10), 이렇게 사도직에 대한 잦은 언급은 예수님의 지상 선교 활동과 예수님 구원 사업의 동역자로 부름받은 제자들에 의한 교회 시대의 연속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뜻이 들어있다.

 



품이 커서 스승이다   반영억 라파엘신부

 

저는 가끔 저의 신상에 대해 생각합니다. 신부가 아니었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죄도 허물도 많고, 뛰어난 능력도 없고, 잘난 것이 없는 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도구로 쓰고 계시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감사하고 새 힘을 얻게 됩니다. 그분의 자비가 크시다는 것을 새삼 일깨웁니다. 나를 고집하지 않고 주님께 의탁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인정합니다.  


주님께서는 산에 들어가 밤을 새우며 기도하시고(루가6,12)나서 제자들을 선택 하셨는데 그 중에는 야고보와 요한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천둥의 아들이라고 부를 정도로 격정적인 성품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은총에 의해 온화해 질 것입니다. 겁이 많은 필리보와 바르톨로메오, 조용하고 성실한 사람입니다. 성격이 우울하고 회의적인 토마도 있습니다.

세리 마태오와 열혈당원 시몬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제강점기의 독립군과 친일파로 비유할 수 있는 사이입니다. 그리고 후에 배반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도 있었습니다. 사도들 중에도 배교자가 있었습니다. 뽑힌 이들 조차도 합당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기도하시고 뽑은 결과입니다. 저 같으면 그들은 쏙 빼놓았을 텐데 주님께서는 그들을 선택하여 부르시고 당신의 대리자로 지정하셨습니다. 정말이지 예수님의 품이 아니라면 도저히 그 자리에 함께 있지 못할 사람들입니다. 남들보다 많이 알아서 스승이 아니라 품이 커서 스승입니다.


꼴 보기 싫은 사람들을 옆에 두고 속 끓일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밥맛 떨어지고 꿈에 나타날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많은 허물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 자격입니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응답한다면 주님의 능력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자비가 없다면 어떻게 감히 저 같은 죄인이 주님의 일을 하겠습니까? 주님의 크신 자비가 저를 지탱하게 합니다. 오늘 날 우리 사제들도 다양성을 가지고 공동체를 이룹니다. 예수님은 다양한 사제들을 일치시키는 끈입니다. 주님께서는 악 안에서도 선을 이끌어 내시는 분입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주님께는 모두를 껴안을 수 있는 큰 품과 온유함이 있었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능력의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언제나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것만 말하고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요한 8,28-29). 거기에서 기적의 힘이 나왔습니다. 기적의 힘은 사람의 유능이 아니라 철저한 무능, 온전한 의탁에서 샘처럼 솟아나는 것입니다. "사막의 오아시스는 광고를 하지 않아도 온갖 살아있는 것들이 모여듭니다. 거기에 생명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로 사람들이 모여든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주님께서는 일상 안에서 매 순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기꺼이 응답하시길 바랍니다. 응답은 곧 능력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나의 부족함을 무릎 쓰고 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몸소 다 채워주실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악령들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마태10,1).고 말씀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는 당신이 필요로 할 때 우리에게도 언제든지 당신의 능력을 주시고 우리를 도구 삼아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그분의 부르심에 기쁘게 응답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예수님과 군중>송영진 모세 신부


9월 6일의 복음 말씀에 나오는 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도들입니다.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루카 6,13).”
사도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늘 예수님을 따라다닌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사도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루카 6,17ㄴ)”
이 구절에 있는 제자들이라는 말은 신자들을 뜻합니다.
신자들 가운데에는
사도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다닌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예수님을 따라다니기는 했지만 모든 것을 버린 것은 아닌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평소에는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다가
기회가 생기면 예수님을 보려고 모여든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을 보려고 왔지만 아직은 신자가 아닌 사람들입니다.
“...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루카 6,17ㄷ-18).”
(정식으로 신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질병을 고친 다음에는 예수님을 떠난 사람도 많았지만,
예수님을 믿고 신자가 되어서 따라다닌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세 부류로 사람들을 나누어서 보면 ‘동심원’이 연상됩니다.
예수님께서 중심에 계시고, 가장 안쪽에 사도들이 둘러서 있고,
그 바깥쪽에 신자들이 둘러서 있고, 다시 그 바깥쪽에 군중이 둘러서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오셨고, 모든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이 동심원은 나중에 하느님 나라에서는 하나의 원으로 합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뽑으신 것은 그들을 ‘높은 사람’으로 세우신 일이 아니라,
교회의 주춧돌로 삼으신 일입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에페 2,20).”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묵시 21,14).”
주춧돌은 건물의 맨 밑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낮은 곳에서 사람들을 섬긴다는 말에서 연탄불이 연상됩니다.
연탄불을 사용할 때, 불이 붙은 연탄은 밑에 두고 새 연탄은 위에 둡니다.
그래야 새 연탄에 제대로 불이 붙게 됩니다.
만일에 반대로 하면 새 연탄에 불이 붙지 않고 꺼져버립니다.
신앙의 불, 또는 성령의 불도 밑에서 제대로 섬김을 실천해야
아직 불이 안 붙은 사람에게 불을 붙여줄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 모습도 여러 겹의 동심원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중심에 계시고, 가장 안쪽에 교회 지도자들이 있고,
가장 바깥쪽에 아직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
그러나 언젠가는 믿게 되고 구원을 받게 될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동심원을 교회의 제도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제도 안에서의 사람들의 직책과 역할의 차이는 결코 차별 대우가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두 사도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예언자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교사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기적을 일으킬 수야 없지 않습니까?(1코린 12,29)”
“온몸이 눈이라면 듣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온몸이 듣는 것뿐이면 냄새 맡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사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각의 지체들을 그 몸에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모두 한 지체로 되어 있다면 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실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입니다(1코린 12,17-20).”


각자 자신의 직책과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 건설에 이바지하는 일입니다.
더 높은 직책으로 보이는 자리가 있긴 하지만,
그 자리는 군림하고 권세를 부리는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입니다.
“민족들을 지배하는 임금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민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자신을 은인이라고 부르게 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루카 22,25-26).”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 라는 말씀은,
사실은 뜻으로는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입니다.)


우리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옛날에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라는 말을 했었는데,
이 말이 “예수님을 통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 라는 뜻이라면 맞는 말이고,
“신자가 아니면 구원받지 못한다.” 라는 뜻이라면 틀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르 9,40-41).”


자기 탓이 아닌 이유로 예수님을 믿을 기회를 얻지 못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인이 될 기회를 얻지 못했더라도, 즉 종교가 다르거나 없더라도,
하느님의 뜻에 맞게 착하게 살면서 선행과 사랑을 실천한 사람이라면,
하느님께서는 어떻게든 그 사람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올라가시어 밤새 기도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분께서 밤을 새우며 기도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변덕스럽고 나약하다는 것을 잘 아시기에, 당신의 선택이 잘못될까 봐 기도하신 것입니까?
열두 명의 제자들을 선택하는 일은 교회의 기초를 세우는 일이므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와 깊은 친교가 필요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선택을 하시려고 밤을 새우며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뛰어난 자질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선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 사람들을 뽑아 사도로 파견하셨습니다.
하느님과의 깊은 친교 속에 이루어진 결정은 하느님의 계획을 완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며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알려 주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시며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하느님의 능력이 당신에게서 나옴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중요한 일을 선택할 때,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주님께서는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의 선택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질 때, 우리는 하느님의 능력을 전하는 사도직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성직자나 수도자나 평신도의 직분을 주님 안에서 성실히 수행할 때,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밤샘 기도는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사명이 주님에 대한 신뢰와 헌신에 달려 있음을 알게 합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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