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간 토요일]반석 위에 집 (루카 6,43-49)

2016. 9. 10. 오전 8:2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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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토요일]반석 위에 집 (루카 6,43-49)

바오로 사도는 우상 숭배를 멀리하라며, 주님의 식탁과 마귀의 식탁에 함께 참여할 수는 없다고 한다.(1코린 10,14-22)
14 사랑하는 여러분, 우상 숭배를 멀리하십시오. 15 나는 여러분을 슬기로운 사람으로 여겨 말합니다. 내가 하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16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17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 18 저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희생 제물을 먹는 이들은 모두 제단에 동참하는 이들이 아닙니까?
19 그러니 내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이 무엇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우상이 무엇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20 아닙니다.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은 하느님이 아니라 마귀들에게 바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마귀들과 상종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21 여러분이 주님의 잔도 마시고 마귀들의 잔도 마실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식탁에도 참여하고 마귀들의 식탁에도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22 우리가 주님을 질투하시게 하려는 것입니까? 우리가 주님보다 강하다는 말입니까?


시편 116(115),12-13.17-18(◎ 17ㄱ 참조)
◎ 주님, 당신께 감사 제물 바치나이다.
○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구원의 잔 받들고, 주님의 이름 부르리라. ◎
○ 주님께 감사 제물 바치며, 주님 이름 부르나이다.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 나의 서원 채우리라. ◎


예수님께서는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선한 사람은 마음의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는다며,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고 하신다.(루카 6,43-4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44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46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47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는 이가 어떤 사람과 같은지 너희에게 보여 주겠다. 48 그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집에 들이닥쳐도,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49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다. 그 집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제1독서 (1코린10,14-22)

"그러니 내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이 무엇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우상이 무엇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은 하느님이 아니라  마귀들에게 바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19~20)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1서 8장에서 제기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 섭취에 대한 문제들이 코린토 교인들의 무절제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특히 코린토 1서 9장에서 사도 바오로가 자신은 자유인이지만 스스로 종이 된 것이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언급했는데(1코린9,19~22), 이것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절제 없이 먹음으로써 믿음이 약한 자들을 죄짓게 한 8장의 일부 코린토 교인들의 '무절제'에 대한 비난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1코린8,13).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1서 10장 19~21절에서 코린토 교인들이 주님의 성찬례에 참여하면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취하는 것은 두 주인, 즉 하느님과 마귀들을 동시에 섬기는 것과 같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미 코린토 1서 8장 4절에서도 언급했지만, 사도 바오로는 '세상에는 우상이란 없다'는 것과 '하느님은 한 분 밖에 계시지 않는다'는 자신의 신앙을 다시 한번 천명하면서 주님께 대한 순수하고 오롯한 신앙을 가질 것을 엄하게 교훈한다. 

8장 4절의 '우상이란 없다'에 해당하는 '우덴 에이돌론'(uden eidolon; an idol is nothing)에서 '우덴'(uden)의 원형 '우데이스'(udeis)는 '아니다'라는 뜻의 '우데'(ude)와 '하나'라는 뜻의 '헤이스'(heis)의 합성어로서 문자적으로 '단 하나도 없다'는 강력한 의미를 가진다.

즉 우상 그 자체는 신(神)이 아니라 나무 조각이나 쇠 조각에 불과한 것으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허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코린토 1서 10장 21절과 22절에 언급된 우상의 이면에 있는 마귀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상호 모순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상들의 배후에 마귀들의 존재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우상 그 자체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가 세상에 어떤 우상도 없다고 말한 것은 마귀들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그 어떤 존재도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참된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이다(시편115,4~8; 135,15~18). 

당시 희랍인들이 섬기던 제우스나 아테나, 포세이돈, 이시스, 세라피우스, 아스클레피우스로 불리워지는 신들은 사실상 이교적인 미신에 불과하며, 살아계신 참된 하느님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신상이거나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신화적 산물일 뿐 신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우상은 '없는 것'이며,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살아 역사하시는 신은 오직 한 분, 유일하신 하느님뿐이신 것이다(신명6,4; 이사44,8; 45,5). 

사도 바오로는 이교도들이 흔히 신으로 간주하여 제사드리는 대상들은 참된 의미의 하느님이 아니라는 점을 밝힘으로써 그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일도 웃기는 일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10장 20절과 21절에는 성찬례안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모시는 교인들이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고, 그 바쳐진 제물을 섭취한다는 것은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되어야 하는 자신의 마음을 우상에게 빼앗긴다는 것인데, 그것은 결국 마귀들을 섬기는 것과 같다고 사도 바오로는 말한다. 

성도들은 오롯한 마음과 정신과 힘으로 하느님 한 분만을 섬겨야 하는 데, 그것을 못하게 하며 마음을 갈라놓고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은 마귀들이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이 온 마음과 정신과 힘으로 한 분이신 하느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인간이 만든 희랍의 여러 제신들의 이름과 잡신상들을 통해 역사하는 것은 마귀들이라는 논리를 사도 바오로가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6,43-49)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45) 

'마음'으로 번역된 '카르디아스'(kardias; heart)의 원형 '카르디아'(kardia)원래 동물의 몸 속에 있는 혈액 순환의 중심이 되는 기관,심장을 뜻하는 단어이다. 하지만 이 용어는 점차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생명의 자리와 중심으로 여겨졌던 '마음'을 가리키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여기서도 감정, 생각, 판단의 중심 자리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였으며, 이곳이 또한  말(언어)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또한 '넘치는 것'으로 번역된 '페릿슈마토스'(perisseumatos; abundance; overflow)의 원형 '페릿슈마'(perisseuma)'일정한 수나 양을 초과하고 넘는 것'을 묘사하는 동사 '페릿슈오'(perisseuo)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철철 넘칠 만큼 가득 차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니까 이 단어는 생각과 감정의 중심 자리인 마음에 어떠한 생각이 넘칠 만큼 가득차게 되면, 의도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생각이 입을 통해 흘러나오게 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대하여 베엘제불의 힘을 빌어 마귀를 쫓아낸다고  하면서 즉각적으로 신성모독적인 발언을 한 것은 그들이 평소에 그러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아무리 좋은 행동을 하더라도, 나쁘게만 보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편, '곳간'으로 번역된 '테사우루'(thesauru; treasure)의 원형 '테사우로스'(thesauros)는 명사이며, '물건들과 귀중한 것들을 모아 두고 보관하는 장소', '금고', '창고'의 의미와 '저장소에 보관된 귀중품 자체', '보물'이라는 의미가 있다. 여기서는 두 가지 의미가 다 적용된다.

 여기서 '선한 곳간'이란 타고난 성품, 또는 오랜 시간을 거쳐 가꾸어 온 좋은 인격을 가리킨다.  사람은 자신이 가꾸어 온 마음의 보물이 어떠한 것이냐에 따라 그가 하는 말과 행위도 달라지는 것이다.


[나해] 연중 제23주간 토요일(2015-09-12)


<좋은 나무, 나쁜 나무>송영진 모세 신부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루카 6,43).”


이 말씀은,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가 되어라.
또 나쁜 열매를 맺는 나쁜 나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여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개인 구원’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좋은 나무’는 ‘최종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좋은 열매’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로, 즉 ‘구원’으로 해석됩니다.
‘나쁜 나무’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의 ‘나쁜 열매’는 ‘멸망’으로 해석됩니다.


이 말씀을 ‘선교 활동’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좋은 나무’는 ‘다른 사람을 구원의 길로 올바르게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좋은 열매’는 ‘그 자신과 그가 인도한 사람이 받게 된 구원’을 가리킵니다.
‘나쁜 나무’는 ‘다른 사람을 멸망의 길로 데리고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나쁜 열매’는 ‘그 자신과 그가 데리고 간 사람의 멸망’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이 말씀은, “너희의 ‘삶’은 사람들을 인도하는 빛이 되어야 한다.”
또는 “너희는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는 ‘삶’을 살아라.” 라는 뜻입니다.

신앙인은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하고,
세상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기 위해서 자신이 앞장서서 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바로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입니다.


그런데 만일에 자기는 신앙인이라고 말하면서도 신앙인답지 않게 산다면,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음으로써
하느님 나라에 못 들어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마태 7,21).

또 세상 사람들은 그 ‘삶’을 보고,
그렇게 사는 것이 신앙생활인 줄로 잘못 알게 될 것이고, 따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신앙인의 경우에 자기 자신도 구원을 받지 못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가로막는 죄를 짓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 이 말은 개인에게도 해당되고, 교회 전체에도 해당됩니다.)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루카 6,44).”

이 말씀은 위선자들을 향해서 말씀하신 경고인데,
지금은 겉으로 보기에는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나중에 심판 때에는 누가 위선자인지,
누가 진실한 신앙인인지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어도 하느님은 속이지 못합니다.


‘가시나무’와 ‘가시덤불’은 위선자들을 뜻합니다.
‘무화과’와 ‘포도’는 구원을 받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위선자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어떤 사람이 위선자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위선자일수록 진실한 척 하기 때문이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자기가 위선자인지 아닌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위선을 식별하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이 위선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복음서를 읽으면서
위선자들 가운데에서 대표적인 위선자들이었던 바리사이들을 자주 언급하는데,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내가) 바리사이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내가 무화과나무인 줄 알고 있었는데,
하느님의 심판대에 서고 보니 가시나무였다.” 같은 말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


루카복음 18장에 있는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를 보면,
자기가 위선자인 줄 모르는 위선자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비유에 나오는 바리사이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루카 18,11-12).”
그는 실제로 강도짓도, 불의도, 간음죄도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실제로 단식도 하고 십일조도 바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하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의롭게 되지 못했다고,
즉 구원받을 자격을 얻지 못했다고 말씀하십니다(루카 18,14).


첫째, 그는 교만했습니다.
둘째, 그의 생활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생활이었습니다(마태 6,1).
그래서 그는 위선자입니다.
문제는 그 자신은 자기가 위선자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나쁜 나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고 지은 죄도 죄가 되는가?”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은 죄가 됩니다.
바리사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성경과 율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교만이고, 무엇이 위선인지는 더욱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세례를 주기 전에 기초 교리를 가르칩니다.
따라서 세례를 받은 신앙인이라면 기본적인 교리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모르고 그랬다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위선과 교만은 세속 사람들도 일반적으로 다 알고 있는 ‘나쁜 일’입니다.
교리로 가르치지 않더라도...)


우리는 날마다 끊임없이 자신이 좋은 나무가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합니다.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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