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1주간 월요일] 위선자(마태 23,13-22)

2016. 8. 22. 오전 5: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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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1주간 월요일] 위선자(마태 23,13-22)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1900년 무렵부터 마리아께 ‘여왕’의 영예가 주어져야 한다는 요청이 많았다. 1925년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이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정해지면서 이러한 요청은 더욱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1954년 비오 12세 교황은 마리아께서 여왕이심을 선언하고 해마다 5월 31일에 그 축일을 지내도록 하였다. 그 뒤 로마 전례력의 개정에 따라, 마리아를 천상 영광에 연결시키고자 성모 승천 대축일 뒤로 옮겼으며, 축일 이름도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로 바꾸었다. 이날 교회는 성모 승천의 영광을 거듭 확인하며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를 위한 구원의 도구가 되신 것을 기린다.


바오로 사도와 실바누스와 티모테오는 박해와 환난을 겪으면서도 인내와 믿음을 보여 준 테살로니카 교회를 자랑스러워한다며 인사한다. ( 2테살 1,1-5.11ㄴ-12)
1 바오로와 실바누스와 티모테오가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테살로니카 사람들의 교회에 인사합니다. 2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3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 때문에 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크게 자라나고 저마다 서로에게 베푸는 여러분 모두의 사랑이 더욱더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4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이 그 모든 박해와 환난을 겪으면서도 보여 준 인내와 믿음 때문에, 하느님의 여러 교회에서 여러분을 자랑합니다. 5 이는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의 징표로, 여러분이 하느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11 우리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여러분의 모든 선의와 믿음의 행위를 당신 힘으로 완성해 주시기를 빕니다. 12 그리하여 우리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에 따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이 여러분 가운데에서 영광을 받고, 여러분도 그분 안에서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시편 96(95),1-2ㄱ.2ㄴ-3.4-5(◎ 3 참조)
◎ 모든 민족들에게 주님의 기적들을 전하여라.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주님께 노래하여라, 그 이름 찬미하여라. ◎
○ 나날이 선포하여라, 주님의 구원을. 전하여라, 겨레들에게 그분의 영광을, 모든 민족들에게 그분의 기적을. ◎
○ 주님은 위대하시고 드높이 찬양받으실 분, 모든 신들 위에 경외로우신 분이시네. 민족들의 신들은 모두 헛것이어도, 주님은 하늘을 지으셨네. ◎


예수님께서는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하고 질타하시며, 어리석고 눈먼 그들의 위선을 낱낱이 거론하신다. (마태 23,13-22)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3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14)
15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16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너희는 말한다. 17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 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는 또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단 위에 놓인 예물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19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예물이냐, 아니면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사실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고, 21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성전과 그 안에 사시는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며, 22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하느님의 옥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제1독서 (2테살1,1-5.11ㄴ-12)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 때문에 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크게 자라나고 저마다 서로에게

 베푸는 여러분 모두의 사랑이 더욱더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3)

 

1,2절에서 송,수신자 표기 및 축복의 기도를 한 바오로는 3,4절에서는 테살로니카 교회

성도들의 신앙으로 인하여 자신의 감사와 자랑을 기록하고 있다.

 

원문을 보면, 이러한 감사와 자랑의 내용의 서두에 나오는 본문을 직역하면,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하느님께 늘 감사해야만 한다.'

(We ought always to give thanks to the God.)이다.

 

이렇게 강한 당위의 의미를 지니는 것은 '우리가 ~해야만 한다' 로 번역된 동사

'오페일로멘'(opheilomen)의 원형 '오페일로'(opheilo)가 본래 지불해야만 하는 돈을

빚지고 있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이기 때문이다.(마태18,23 ;루카7,41)

즉 이 단어는 어떤 일을 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는 매우 강한 의미를 지닌다.(로마15,27)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2장 13절에서도, 이 단어를 사용하여 자기가 테살로니카 성도들을 위해

하느님께 항상 감사해야만 한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에게 있어 감사를 하나의 의미로 여겼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바오로가 그들에게 어떤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이것은 그들에게 대한 의무가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의무이며, 테살로니카 성도들의 신앙이

계속하여  아름답게 성장해 가는 것과 환난 가운데에서도 믿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인해

그 교회의 개척자인 자신이 하느님을 향해 감사하는 것을 하나의 당연한 의무로 여겼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견고하게 성장하게 된 원동력이 하느님께 있음을 알았기에,

바오로는 하느님을 향한 감사를 강조했던 것이다.

 

 

'여러분의 믿음이 크게 자라나고 저마다 서로에게 베푸는 여러분 모두의 사랑이

 더욱더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호티'(hoti)로 시작하는 본문은, 테살로니카 교회로 인하여 늘

하느님께 감사한다는 본절 상반절의 이유를 나타낸다.

 

여기에서 바오로는 감사의 근거로 테살로니카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을 들고 있는데,

이 두 가지는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나타내는 가장 근본적인 신앙의 요소이다.(1테살3,6)

 

믿음은 하느님께 대한 깊은 신뢰를 나타내는 수직적 신앙의 태도요,

사랑은 하느님께 대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믿음이 성도 및 타인에 대해 나타나는

수평적 신앙의 표현이다.

 

한편, '크게 자라나고'라는 의미로 번역된 '휘페라욱사네이'(hyperauxeanei)의 원형

'휘페라욱사노'(hyperauxano)는 '~을 초과하다' 라는 의미를 지닌 전치사 '휘페르'(hyper)와

'자라다', '번성하다' 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아욱사노'(auxano)의  합성어로서

'지나치게 증가하다', '엄청나게 자라다'(grow exceedingly)라는 강한 의미를 지닌다.

신약 성경에서 이곳에만 쓰인 이 단어는 테살로니카 성도들의 믿음을 바라보는 바오로의

벅찬 마음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그들은 바오로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급속도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 동사는 현재 직설법 시제로 쓰였는데, 이것은 그러한 성장이 멈추지 않고

계속 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정체함이 없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믿음,

그것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바요, 하느님 말씀의 봉사자로 하여금 감사를 자라나게 하는 요인이다.

 

또한, '더욱더 커지고 있기'로 번역된 '플레오나제이'(pleonazei)의 원형 '플레오나조'(pleonazo)

는 남아돌 정도로 풍성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나타내는 동사이다.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전서에서 바로 이 단어를 사용하여, 테살로니카 성도들의 사랑의 풍요를 위해서

중재 기도를 했었는데(1테살3,12), 이 기도가 응답되었음이 본절에 나타나고 있다.

 

더군다나, 이 동사 역시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현재 직설법 사제로 쓰여서

성도 서로에 대한 사랑의 풍성함이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이 그 모든 박해와 환난을 겪으면서도 보여 준 인내와

 믿음 때문에, 하느님의 여러 교회에서 여러분을 자랑합니다'  (4)

 

3절에서 테살로니카 교인들의 신앙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였던 바오로가

본절 4절에서는 박해와 환난 중에서도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며,

모든 교회에 자랑하고 있음을 밝힌다.

 

특히 본문은 당시 테살로니카 교회가 처해 있던 상황이 어떠함을 잘 말해준다.

테살로니카 전서 1장 6절에서도 이와 유사한 진술이 있는데, 약 2,3개월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첫번째 서신을 썼던 때와 다름없이 그들이 환난 가운데 있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박해'에 해당하는 '디오그모이스'(diogmois)의 원형 '디오그모스'(diogmos)

원래 사냥개가 사냥감을 뒤쫓는 모습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사냥개가 표적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쫓아가는 것처럼, 적대자들은 테살로니카 교회를 집요하게 박해하였던 것이다.

 

또한 '환난'으로 번역된 '틀립세신'(thlipsesin)의 원형 '틀립시스'(thlipsis)

외적 고통과 더불어 내적 압박감까지 포함하는 고난을 말하는 단어이다.

본문에서 '디오그모스'와 '틀립시스'는 의미상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동의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의어를 반복하는 것은 그들이 당한 곤경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어려움이 테살로니카 교인들에게 지속되고 있다는 데 있다.

이것은 '겪으면서도 보여준'에 해당하는 '하이스 아네케스테'(hais anechesthe)를 통해 알 수 있다.

'하이스'(hais ; that)는 관계대명사로서 앞의 명사를 수식하며, '아네케스테'는 '아네코'(anecho)의

현재 직설법으로 계속해서 참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여기서 '아네코'는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을 용납함으로써 참는 것을 의미하는데(에페4,2)

이것은 테살로니카 교인들은 자신들에게 일어나는 박해(핍박)와 환난을 하느님의 허락하에

벌어지는 일들로 해석하고 묵묵히 참았음을 암시한다.

 

사람들은 원래 자신이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외부로부터 압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면

참기 힘든 법이어서, 폭력으로 맞서거나 분노와 적개심을 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테살로니카 교인들은 전혀 이와같이 대응하지 않고,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하느님의 섭리를 생각하며, 오직 인내와 믿음으로 대처하는 성숙한 신앙을 가졌던 것이다.

 

여기서 '인내'에 해당하는 '휘포모네스'의 원형 '휘포모네'(hypomone)는 '~아래에' 라는 의미의

'휘포'(hypo)와 '머물러 있다'라는 의미의 '메노'(meno)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문자적으로 무겁게 내리 누르는 무거운 짐이나 고통 아래에서 굳건하게 머물러 견디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도 마지못해 견디는 수동적인 뉘앙스가 아닌,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로 견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테살로니카 전서 1장 3절에서는 이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희망 때문에 견딜수 있는 인내라고 표현했다.

 

또한 '믿음'에 해당하는 '피스테오스'(pisteos)의 원형 '피스티스'(pistis)는 하느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마음의 태도를 의미한다.

이들의 '믿음'은 평화로울 때 뿐 아니라 환난 가운데서도 변함없는 '믿음' 이었음이 본절에서

이 단어가 '인내'란 단어와 함께 사용되었다는 데서 잘 드러난다.

 

 

'하느님의 여러 교회에서 여러분을 자랑합니다'

 

원문에는 '여러'에 해당하는 표현이 없어서 직역하면 '하느님의 그 교회들 안에서'

(en tais ekklesiais tu theu)이다.

여기서 '그 교회들'(tais dkklesiais)은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 지역에 있는 교회들을 지칭한다.

지금의 그리스의 북쪽(마케도니아)와 남쪽(아카이아)을 말한다.

그리고 '하느님의'로 번역된 '투 테우'(tu theu)란 소유격의 표현은 교회에 대한 소유권이

하느님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바오로는 로마서 16장 16절에서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 라는 표현도 썼다.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교회의 소유권을 지닌 분으로 지칭하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도

삼위일체 하느님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으며,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의 소유권이 삼위일체

하느님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끝으로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교인들에 대한 좋은 소문이 각처에 퍼져나갔던 사실을

충분히 알면서도(1테살1,8) 다른 교회의 발전과 성숙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친히 그들에 대해

자랑하며 다녔다.

 

 

'이는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의 징표로, 여러분이 하느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5)

 

테살로니카 2서에서, 1-4절의 도입부에 이어, 이제 본절인 5절부터 3장 15절까지가

본 서신의 본론 부분이다.

본론의 첫 단락은 1장 5-12절로서 환난받은 테살로니카 성도들을 위한 격려와 중재기도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서도 5-10절에서는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의 징표'로서의 성도의 환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박해(핍박)와 환난에 처해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있는

테살로니카 성도들에게 적지않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의 징표'를 영어로 번역하면

'All this is evidence that God's judgement is right' 이다.

'이 모든것은 하느님의 심판이 옳다는 증거이다' 라는 뜻이다.

 

테살로니카 교인들이 하느님 때문에, 영생의 복음적 가치관 때문에,

박해와 환난 중에서도 인내와 믿음을 보여준 것에 대해서, 먼훗날 하느님께서

심판때에 그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주실 거라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그 다음 구절인 '여러분이 하느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에 더 잘 나와있다.

본문에서 '합당한 사람이 되게' 에 해당하는 '카탁시오테나이'(kataxiothenai)의 원형

'카탁시오오'(kataxioo)는 법적 용어로서, '적합하다고 간주하다', '합당하다고 여기다'라는 의미이다

 

본문에서 수동태로 사용되었는데, 합당히 여기는 주체가 바로 하느님이심을 암시한다.

그리고 본절에 표현된 '하느님의 나라'(tes basileias tu theu)는 하느님의 통치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곳이며, 예수 재림시 완성될 나라이다.

따라서 본문은 고난을 이긴 성도들이 최후 심판 이후 하느님 나라의 완성사에

하느님의 영광의 나라로 들어가기에 적합한 자로 간주되어진다는 의미이다.

 

'사실 여러분은 그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라고 번역된

'휘페르 헤스 카이 파스케테' (hyper hes kai paschete ; for which you are suffering)에서,

본동사 '파스케테(paschete)는 현재 직설법 동사로서 성도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 것이

변치않는 진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관계 대명사 '헤스'(hes ;which)'하느님 나라'를 지칭한다.

성도들은 '하느님의 나라' 를 위해 고난을 받는 존재인데, 이것은 고난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의무라는 소극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더 나아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능동적으로 고난을 받는다는 의미까지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여러분은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에 해당하는 '파스케테'(paschete)가 능동태로 쓰였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이것은 성도의 고난이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더욱 빛낸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사실 우리가 무엇때문에, 무슨 큰 뜻을 위해 지금 고난을 받는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면

그 고난은 우리에게 희망의 인내와 믿음의 역사(役事)를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받는 고난이 우리를 구원하실 하느님과 그 나라를 위해,

또한 하느님을 믿는 독특한 신앙 때문에 일어나는 것임을 알때,

우리는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며, 그 고난을 믿음으로 인내하고 극복할 수 있으며,

고난 가운데서도 낙담하지 않고 믿음의 역사(役事)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복음 (마태23,13-22)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13~14)

 

마태오 복음 23장 1~12절은 예수님께서 군중들과 제자들을 향하여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로 대표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본받지 말라고 경계하신 내용이 실려 있다.

 

이제 이어지는 마태오 복음 23장 13~36절에는 예수님께서 보다 직접적으로

이들이 범한 죄악을 구체적으로 열거하시며 저주를 선언하시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 저주의 선언은 7가지나 되며, 점차 그 강도를 더해 점층법적 구조로 발전하고 있다.

 

먼저 '불행하여라'로 번역된 '우아이'(uai; woe)는 슬픔과 분노, 절망을 나타내는

의성적 감탄사이다(잠언23,29; 1사무4,7; 1열왕13,30; 이사1,4; 예레10,19).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 대해 심한 분노의 감정을

느끼고 계셨으며, 혹독한 심판과 저주의 메시지를 던지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신 '우아이'(uai)라는 감탄사에는 분노와 저주

감정만이 담긴 것이 아니라, 슬픔과 애통의 감정도 역시 담겨져 있다.

 

한편,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저주받은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위선에 있다.

 

'위선자'에 해당하는 '휘포크리타이'(hypokritai; hypocrites)의 원형

'휘포크리테스'(hypokrites)는 고대 희랍 극장에서 자주 쓰이던 단어로서

'배우', '연기자'라는 의미의 명사이다.

 

그런데 이러한 원래적인 의미에서부터 이 단어가 '가장(假裝)하는 자',

'위선적인 자'등의 부정적인 의미로 발전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마태오 복음 23장 13~36절에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여섯 번이나 '휘포크리테스'(hypokrites)로 지칭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행하는 거의 모든 종교적인 행위들이 하느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신앙심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만

경건한 체하는 위선과 다른 사람들의 눈에 거룩하고 경건하게 보이려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인위적으로 행하는 것들임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말이다.

 

마태오 복음 23장 13절 후반부와 14절은 위선적인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한

일곱 가지 저주 선언의 구체적인 이유 가운데 첫번째 죄목이다.

 

이들의 위선과 가장이라는 것은 겉과 속이 다른 모습 뿐만 아니라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는 것도 포함된다.

 

그리고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고, 들어가려는 이들마저도 못 들어가게 하는 것

그들이 율법의 본질을 왜곡하고 조상들의 전통을 율법보다 더 권위있는 것으로

가르침으로써 본말을 전도시켰기 때문이다.

 

'너희가 ~잠가'로 번역된 '클레이에테'(kleiete; you shut)는 '문을 닫다'

의미를 지닌 원형 동사 '클레이오'(kleio)의 현재 시제이다.

시제가 현재라는 사실은 그들의 그러한 행동이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것은 또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천국문을 닫는 일에 '항상 매달려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갖게 한다.

 

그들은 하느님의 율법을 그릇되이 해석하고 가르쳐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율법의 정신에서 떠난 삶을 살도록 만들었으며, 또한 자신들도

천국의 입구에서 멀어지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제21주간 월요일 /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대하는 삶의 모습은?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송영진 모세 신부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나라의 문을 잠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마태 23,13).”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자기들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을 가르칠 때에도 잘못된 이론을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하늘나라의 문을 잠가버린 것과 같고,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막은 것과 같습니다.


뒤에 나오는 ‘맹세’에 관한 말씀을 하나의 예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너희는 말한다.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 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마태 23,16-17).”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하느님을 두고 한 맹세가 아니니까 안 지켜도 되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는 하느님의 거룩한 물건을 두고 한 맹세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논리이지만, 어떻든 그들은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아마도 맹세를 지키지 못할 때를 대비해서
맹세 자체를 무효화시키는 방법을 미리 만들어 놓은 것 같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교리를 가르쳐서 사람들을 죄짓게 만드는 일이 됩니다.


‘코르반’ 관행도 사람들을 잘못 가르친 일이었습니다.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마르 7,11-13).”
이 말씀은 자기들도 제대로 효도를 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효도하는 것도 막고 있다고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회당에서 병자를 고쳐 주시자,
회당장이 분개하면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루카 13,14).”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 주신 일은 ‘생계를 위한 노동’이 아니라,
병자를 구원하신 사랑이고 자비입니다.
그러나 회당장은 ‘생계를 위한 노동’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병자를 고쳐 주면 안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회당장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루카 13,15-16)”


그 회당장의 태도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따르는 것처럼 행세하기 때문에 ‘위선’이고,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못하게 막고 있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문을 잠가버리는 죄가 됩니다.


자기들도 하늘나라에 안 들어가면서
다른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도 막는다는 말씀에서 ‘이단’ 종파들이 연상됩니다.
이단 종파는 잘못된 성경 해석과 잘못된 교리에서 생깁니다.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가 아닌 곳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이단은 하느님을 거스르는 죄가 됩니다.


조직적으로 이단 종파를 만드는 것은 아니더라도,
즉 교회에 속해 있더라도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성경과 교리를 해석하는 경우에 그렇게 됩니다.


자기 혼자 잘못된 생각을 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 사람 하나만의 일로 끝나지만,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해서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면,
그것은 ‘남을 죄짓게 하는 죄’를 짓는 일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남을 죄짓게 하는 죄’를 대단히 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달고 바다 깊은 곳에 빠지는 편이 낫다.
불행하여라,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많은 이 세상!
사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마태 18,6-7)”


‘남을 죄짓게 하는 죄’가 그렇게 ‘큰 죄’가 되는 이유는,
하느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4).”
하느님(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려고 애를 쓰시는데,
‘남을 죄짓게 하는 죄’는 그것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죄입니다.
그러니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넓은 뜻으로 생각하면, 모든 신앙인이 다 해당됩니다.
신앙인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가르쳐주고,
그 나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 5,13).”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


신앙인의 모든 ‘말’과 ‘삶’은
세상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로 올바르게 인도하는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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