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간 수요일] 밀알 한알.(요한 12,24-26)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라우렌시오 성인은 스페인의 우에스카에서 태어났다. 로마 교회의 일곱 부제 중 수석 부제였던 라우렌시오의 임무는 교회의 재산을 관리하고 빈민들을 구호하는 일이었다. 로마의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박해자들이 교회의 보물을 바치라고 하자 라우렌시오 부제는 교회의 재산을 남몰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뒤 그들을 박해자들 앞에 데려갔다. “이들이 교회의 재산입니다.” 이에 분노한 박해자들은 라우렌시오 부제를 불살라 처형하였다. 258년 무렵이었다. 라우렌시오 부제는 가난한 이들이 바로 교회의 보물임을 일깨워 준 성인이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신다며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어 주라고 한다.(2코린 9,6-10)
형제 여러분, 6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7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8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9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10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시편 112(111),1ㄴㄷ-2.5-6.7-8.9(◎ 5ㄱ)
◎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는 이!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계명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이! 그의 후손은 땅에서 융성하고, 올곧은 세대는 복을 받으리라. ◎
○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고, 자기 일을 바르게 처리하는 이! 그는 언제나 흔들리지 않으리니, 영원히 의인으로 기억되리라. ◎
○ 나쁜 소식에도 그는 겁내지 않고, 그 마음 굳게 주님을 신뢰하네. 그 마음 굳세어 두려워하지 않으니, 마침내 적들을 내려다보리라. ◎
○ 가난한 이에게 넉넉히 나누어 주니, 그의 의로움은 길이 이어지고, 그의 뿔은 영광 속에 높이 들리리라. ◎
예수님께서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고 하시며,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라고 하신다.(요한 12,24-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제1독서 (2코린9,6-10)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 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9)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10)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고 진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코린토2서 9장 9절에서 구약 성경을 인용하고 있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가 인용한 성구는 시편 112장 9절이다.
'불쌍한 이들에게 후하게 나누어 주니 그의 의로움은 길이 존속하고 그의 뿔은 영광 속에 치켜들리리라.'
시편 저자가 여기서 찬양하는 의로움, 즉 '디카이오쉬네'(dikaiosyne; righteousness)는 '동료 인간들을 향한 올바른 행동, 친절, 은혜를 베푸는 의로움'이다. 이 단어는 마태오 복음 6장 1절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자선'의 의미이다.
신명기 15장 7~11절이나 레위기 25장 35절 등에서 나타내는 대로 이러한 자선과 구제는 단순히 선민으로서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분명하게 '명령'되고 있는 '필수'사항이다. 말하자면, 가난한 자를 압제하는 자는 불의한 자인 반면에 가난한 자와 함께 나눔을 실천하는 자는 의로운 자인 것이다.
한편, 자선과 구제에 대한 신약 성경의 탁월한 가르침은 마태오 복음 10장 8절에 언급된 예수님의 가르침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은 바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명령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풍성한 은혜를 무상으로 거저 받았으며, 바로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선과 구제, 그리고 의로움(의)의 가장 근원적이며 원초적인 동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는 본절의 표현은 무슨 의미인가? 여기서 '존속하리라'로 번역된 단어는 '에케이'(echei)가 아닌 '메네이'(menei)이므로 '머물러 있다'(remain)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근본적으로 그 자선을 행한 사람의 의로움이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는 의미이다.
즉 시간에 종속되는 현세가 끝나고 영원이라는 세계가 펼쳐질 때,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의 의로움을 온 우주 앞에 드러내고 선포함으로써 그 사람의 의로움을 기려주실 것을 보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그 사람의 의로움이 영원토록 남는다는 것이다.
궁핍한 자, 사람들의 관심밖에 있는 보잘것 없는,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행한 의로움을 그리스도께서는 곧 당신께 행한 것으로 인정하시는다는 것(마태25,40)과 그 자선을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느님께서 갚으실 것이라는 사실(마태6,4)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한다.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10)
코린토 2서 9장 10절부터 9장 15절까지는 자선 헌금으로 인해 상호간에 누리게 되는 제반 유익들을 밝히고 있다.
그 가운데 본절은 하느님께서 자선하는 자의 의로움의 열매를 풍성케 하실 것이라는 약속인데, 이것은 구약 성경을 간접 인용한 것이다. 여기서 간접적으로 인용된 구약 성구는 바로 이것이다.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이라는 전반절의 경우 이사야서 55장 10절 곧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라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라는 후반절의 경우 호세아서 10장 12절 곧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 들여라.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 엎어라.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그가 와서 너희 위해 정의를 비처럼 내릴 때까지'라는 구절의 인용이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구약 성경의 두 구절의 표현을 통합하여 인용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의로움을 행한 자에게 그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셔서 그의 의로움의 열매를 더하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논증한다.
코린토 2서 9장 10절에서는 하느님 법칙의 확고함을 알려 주는 세 개의 직설법 동사들이 쓰였다.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에서 '코레게세이'(choregesei)와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에서 '플레티네이'(plethynei), 그리고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에서 '아욱세세이'(auksesei)인데, 모두 미래 직설법 형태이다. 여기서 미래 시제는 의지 미래로서 이 세 가지 목록이 하느님의 의지적 행하심으로 인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선언임을 나타낸다.
본절에서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는 자선을 행한 자에게 자선을 더하도록 더 풍성히 채워주는 축복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그 사람의 자선을 통해 나타나는 결과, 즉 자선의 직접적인 열매라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작은 구제금을 통해서 그것을 풍성하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마치 농사를 위해 뿌리는 씨앗이 작고 보잘것 없지만, 그 가운데 이미 거대한 나무와 열매를 잠재하고 있는 것과 같이 하느님께서는 작고 연약한 것을 들어서 장차 크고 풍성하게 만드신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바로 하느님의 이와 같은 능력을 굳건히 믿었던 것이며, 코린토 교인들에게 요청되는 헌금의 자세 또한 바로 이와 같은 것이었다(2코린 8장,9장). 그들에게는 부요한 하느님의 놀라운 권능을 신실하게 부여잡는 것이 필요했다.
마치 이름없는 한 소년이 내놓은 오병이어가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았던 것처럼(요한6,5~13), 하느님께서는 코린토 교인들의 헌금을 통해 그 열매를 풍성케 하시고, 감히 인간이 상상하지 못하는 놀라운 축복으로 그 수확을 거두게 하실 것이다.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복음 (요한12,24-26)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4ㄴ)
요한 복음 12장 24절에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즉 당신 자신의 대속(代贖)적 죽음이 갖는 의미를 밝히기 위해 이러한 관용구를 사용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죽음이 가져오게 될 놀라운 결과에 대해 씨와 열매의 비유를 통해 알게 하신다.
여기서 '맺는다'에 해당하는 '페레이'(pherei; it produces; it brings forth)는 '페로'(phero)의 3인칭 단수 현재 시제로서 땅에 떨어져 죽은 씨앗에서 열매 맺는 것은 불변의 진리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죽음은 이 세상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전환점이 되는데, 그것은 '많은 열매'로 언급된 영혼 구원의 역사이다. 많은 영혼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자유와 평화로 나아가게 될 것이 이 말씀 속에 함축되어 있다.
또한 '열매'로 번역된 '카르폰'(karpon; fruit)은 '카르포스'(karpos)의 단수 목적격인데, 나무의 열매나 자손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비유적으로는 영적인 차원에서의 '결실', '산물'이라는 뜻으로도 좋다.
70인역(LXX)에서는 이 단어가 히브리어 '페리'(pheri)의 번역어로 나타난다. '페리'는 '자손'을 의미하지만, 비유적으로는 '행위의 열매'를 나타낸다(예레6,19; 호세10,13). 그래서 여기서 '많은 열매'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으로써 온 세상에 흩어진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게 될 것이라는 뜻이 전달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다(요한11,52). 그리고 또한 예수님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믿음의 자녀들이 그분의 삶을 본받아 이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켜 갈 것이라는 의미를 전달해 준다.
그들은 예수님의 전(全)인격을 본받게 되기에, 그들을 통해서 일어날 새로운 변화들이 기대된다(마태5,13~16).
<순교>송영진 모세 신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요한 12,24-26).”
순교자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새 생명의 시작입니다.
이것은 밀알이 땅에 묻히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새 열매의 시작인 것과 같습니다.
또 순교자의 죽음은
신앙을 증명하는 일이고,
그 증명을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신앙인이 됩니다.
이것은 하나의 밀알이 땅에 묻혀서 많은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이라는 말씀은,
“육신의 목숨을 영혼의 구원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집착하는 사람은”
이라는 뜻입니다.
“목숨을 잃을
것이고” 라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이고” 라는 뜻입니다.
가지고 있다가 잃는 것은 아닌데,
얻을
수 있었던 것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잃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이라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에서 얻게 될 영원한 생명을
육신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모두 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순교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육신의 목숨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자살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순교는 결코 자살이 아닙니다.)
육신의 목숨도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니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목숨도 다른 사람의 목숨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렇지만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이 더 중요합니다.
박해자들은 믿음과 목숨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라고 강요합니다.
“믿음을 지키고 죽을 것인가? 목숨을 지키고 믿음을 버릴 것인가?”
죽는 것이 무서워서 믿음을
버리면 영원한 생명도 함께 버리는 일이 됩니다.
그러나 죽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면,
육신의 목숨은 잃겠지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이라는 말씀은,
“나를 믿어서 내가 주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이라는 뜻입니다.
순교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그분이 가신 길을 그대로 뒤따라가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나를 따라야 한다.” 라는
말씀은 “나만 따라야 한다.” 라는 뜻이고,
“다른 길은 없다.”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길 끝에는
부활과 승리와 생명이 있습니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충실하게 내 뒤를 따라온
사람은
나와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라는 말씀도 같은 뜻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의 눈에는
순교가 어리석고 무의미한 죽음으로 보이겠지만,
우리는 순교자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과 행복과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순교를 ‘희생’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남을 위해서 내가 손해 보는 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순교는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아닙니다.
육신의 목숨을 바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이기 때문에
예수님과 교회를 위한 희생이지만 희생하는 것으로만 끝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작은 것을 포기하고 가장 큰 것을 얻는 일.)
순교를 ‘봉헌’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봉헌은 하느님(예수님)께 뭔가를 바치는 일인데,
자신의 모든 것을(목숨까지) 바치는 일이
순교입니다.
만일에 바치기만 하고 얻는 것은 없다면, 허무한 일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순교는 모든 것을 바쳐서 모든 것을 얻는
일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하느님 나라의 모든 것을 얻는 일.)
“이렇게 순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것을 실제로 실천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는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수난 때에
제자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 때 베드로 사도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요한 13,37).
다른 제자들도 모두 같은 말을 했습니다(마태 26,35).
당시 상황에서는 진심으로 한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고,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이 체포될 때 달아나버렸습니다(마르
14,50).
우리는 함부로 장담하지 말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지금은 목숨을 바쳐서 순교할
기회는 거의 없지만,
그래도 순교 정신은 더욱 필요한 시대입니다.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가는 일은 사람의 힘으로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은총을 받으면, 또 능동적으로 노력하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