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8주간 월요일] 오병이어의 기적 (마태14,13-21)

2016. 8. 1. 오전 5: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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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8주간 월요일] 오병이어의 기적 (마태14,13-21)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보내지 않으셨는데도 백성을 거짓에 의지하게 하는 하난야 예언자와 온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설전을 벌이고,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하난야가 죽는다. (예레미야 28,1-17)
1 유다 임금 치드키야의 통치 초기 제사년 다섯째 달에, 기브온 출신의 예언자이며 아쭈르의 아들인 하난야가 주님의 집에서 사제들과 온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에게 말하였다.
2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바빌론 임금의 멍에를 부수기로 하였다. 3 두 해 안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이곳에서 가져가 바빌론으로 옮겨 놓은 주님의 집 모든 기물을, 내가 이곳에 다시 돌려 놓겠다.
4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다 임금 여호야킴의 아들 여콘야와 유다의 모든 유배자를 이 자리에 다시 데려다 놓겠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정녕 바빌론 임금의 멍에를 부수겠다.’”
5 그러자 예레미야 예언자가 사제들과, 주님의 집 안에 서 있는 온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난야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6 예레미야 예언자가 말하였다. “아무렴, 주님께서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소! 주님께서 당신이 예언한 말을 실현시키시어, 주님의 집 모든 기물과 모든 유배자를 바빌론에서 이곳으로 옮겨 주시기를 바라오.
7 그러나 이제 내가 당신의 귀와 온 백성의 귀에 전하는 이 말씀을 들어 보시오. 8 예로부터, 나와 당신에 앞서 활동한 예언자들은 많은 나라와 큰 왕국들에게 전쟁과 재앙과 흑사병이 닥치리라고 예언하였소. 9 평화를 예언하는 예언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그가 참으로 주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로 드러나는 것이오.”
10 그러자 하난야 예언자가 예레미야 예언자의 목에서 멍에를 벗겨 내어 부수었다. 11 그러고 나서 하난야는 온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두 해 안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멍에를 모든 민족들의 목에서 벗겨 이와 같이 부수겠다.’”
그러자 예레미야 예언자는 자기 길을 떠났다. 12 하난야 예언자가 예레미야 예언자의 목에서 멍에를 벗겨 부순 뒤에,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내렸다.
13 “가서 하난야에게 말하여라.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나무 멍에를 부수고, 오히려 그 대신에 쇠 멍에를 만들었다.′ 14 참으로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 모든 민족들의 목에 쇠 멍에를 씌우고,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길 것이다. 나는 들짐승까지도 그에게 넘겨주었다.′’”
15 예레미야 예언자가 하난야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하난야, 잘 들으시오. 주님께서 당신을 보내지 않으셨는데도, 당신은 이 백성을 거짓에 의지하게 하였소. 16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오. ‘내가 너를 땅 위에서 치워 버리리니, 올해에 네가 죽을 것이다. 너는 주님을 거슬러 거역하는 말을 하였다.’”
17 하난야 예언자는 그해 일곱째 달에 죽었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나 되는 군중을 배불리 먹이신다. (마태오  14,13-21)
그때에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13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1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15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16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17 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19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20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21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



월요일  제1독서 (예레28,1-17)

"하난야 예언자는 그 해 일곱째 달에 죽었다." (17) 

하느님께서는 하난야가 금년 내에 죽을 것을 예언하셨으며, 그는 예언대로 그해 7월에 죽었다.만일 예언자 예레미야의 예언이 다섯째 달에 있었던 것으로 본다면(1절), 하난야는 예레미야의 예언이 선포된 지 2개월 내에 죽은 것이 된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예언이 다섯째 달 이후에 주어졌다면, 그보다 더 짧은 기간에 하난야가 죽은 것이 된다. 

이러한 사실은 하난야의 죽음이 원인모를 질병이나 자연사에 의한  죽음이 아닌, 하느님의 사형 선고에 의해 성취된 것임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적어도 당시 이 사건을 알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거짓 예언자 하난야가 하느님의 사형 선고로 인해 하느님의 저주를 받아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거짓 예언자를 보다 더 경계하는 기회로 삼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찰해 본다면, 하느님께서 하난야를 즉석에서 죽이지 않고 왜 잠시 기간을 주셨는가? 하는 점이다. 

하느님께서는 나답과 아비후의 경우(레위10,1~7)와 하나니아스와 사피라의 경우(사도5,1~10)에 즉석 심판으로 그들의 생명을 끊어버렸다. 그러나 하난야의 경우는 어느 정도의 기간을 주셨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자신의 행위를 반성해 보고, 회개하여 돌이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시기 위한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난야가 2개월 내에 죽었다는 사실을 볼 때, 그는 결코 그 기회에 회개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하난야는 하느님의 은혜를 거부한 반역의 태도를 철회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예언하신 그대로 하난야를 그 해가 넘기기 전에 죽이심으로써, 하느님께서 당신이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전능의 하느님이심과 더불어 예레미야가 하느님의 쓰임받는 참 예언자임을 나타내셨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하난야의 죽음 사건은 예레미야와 하난야의 개인적 차원에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보다 큰 틀에서 남부 유다 백성 전체를 향한 하느님의 매우 강렬한 메시지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건을 목도한 남부 유다 백성들은 이처럼 거짓 예언자의 죽음을 통해서 전하시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듣고 참 예언자 예레미야의 예언에 경청하는 것이 기대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죽음의 사건을 경험하고도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남부 유다 백성들은 자신의 죄악의 길에서 결코 돌이키지 않았다.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복음 (마태14,13-21)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여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14) 

'군중'에 해당하는 '오클로스'(ochlos; multitude; crowd)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많은 사람'의미하는데, 본문은 여기에 양과 정도가 몹시 많음을 나타내는 '폴뤼스'(polys; great; large)형용사까지 사용하여 마태오 복음 14장 13절에 기록되어 있는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예수님께 나아온 무리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매우 많은 사람들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사람들의 수효가 마태오 복음 14장 21절에 의하면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따라서 여자들과 아이들 수까지 모두 포함하면, 그 수가 2만명에 육박하는 상당히 많은  군중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는 14장 14절의 언급에서도 할 수 있지만, '군중'을 가리키는 희랍어 '오클로스'(ochlos)'귀족'과 대조이루는 '천민'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데서도 암시가 된다.

이들은 이 세상에 의지할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예수님께 큰 희망을 걸고 무리지어 나왔던 것이다. 

한편,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에 해당하는 '에스플랑크니스테'(esplangchniste; was moved with compassion; had compassion)의 원형 '스플랑크니조마이'(splangchnizomai)'창자' 혹은 '내장'을 의미하는 '스플렌'(splen)에서 유래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마음이 내장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이러한 용어는 인간의 감정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고, 특히 사랑이 전제되어 있으며 상대방에 대해 주체할 수 없는 애끓는 연민의 정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마태9,36). 

이것은 이 용어가 집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목놓아 기다리다가 상당히 거리가 먼데도 아들임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탕자의 아버지가 가졌던 측은한 마음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도 잘 보여진다(루카15,20).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도 바로 이같은 도무지 주체할 수 없는 애끓는 사랑의 마음이 불타올랐기 때문이다. 복음 선교와 선행의 밑바닥에는 이처럼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는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병자들을'에 해당하는 '아르로스투스'(arrostous; sick)의 원형 '아르로스토스'(arrostos)는 부정을 나타내는 불변사 '알파'(a)'올바로 살다', '평안하다'(사도15,29)로  번역되는 '론뉘미'(ronnymi)의 변형이 합하여진 단어로서 '평안함이 없는 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육체적으로 병든 자를 가리키지만(마르코6,5; 16,18),마음에 괴로움을 안고 사는 자를 가리킬 수도 있다. 

여기서는 이 단어가 복수형으로 사용되어 당시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음을 알 수 있고, 14장 15절에 저녁때가 되었다는 표현도 예수님께 나아온 병자들의 수가 엄청나게 많아서 그들을 고쳐주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7월 18일 연중 16주간 월요일(작성: 신문호 2011년 7월 18일)

오늘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를 치유해 주십니다. 이에 머물지 않고 허기진 군중에게 빵을 나누어 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된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영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육신적 아픔, 배고픔까지 모두 해결해 주시기 때문이지요.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측은히 여기셨다는 점입니다. 측은한 마음이 드셨기에 병자들을 고쳐 주고, 배고픈 군중을 한곳에 모이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제자들은 군중을 헤쳐 제각기 음식을 사서 먹도록 했지만,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 주라고 이르셨기 때문이지요. 바로 이런 관심과 배려가 있으셨기에 빵을 모두 배불리 먹게 된 것이 아닙니까?
우리 사회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 깊어가고, 나눔을 실천하기를 꺼립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공동체는 가진 것을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아픔마저도 함께 나누는 공동체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온갖 정성을 다 쏟으셨기에 모든 이가 빵을 배불리 먹은 사랑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지요.
이웃과의 관계에서 매사에 깊은 관심을 두는 것이 사랑의 기적을 만드는 출발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길가의 돌이 보석으로 변하는 식의 기적을 바라기보다는 가진 것을 이웃에게 내어 주는 나눔의 기적에 동참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처럼, 힘든 처지에 놓인 이웃을 늘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2014년 2월 17일 연중 제6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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