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간 화요일]참가족 (마태 12,46-50)

2016. 7. 19. 오전 5:19:02

글자

 

[연중 제16주간 화요일]참가족 (마태 12,46-50)


미카 예언자는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보살펴 주시기를 청하는 예루살렘의 기도를 전한다.(미카 7,14-15.18-20)
주님, 14 과수원 한가운데 숲 속에 홀로 살아가는 당신 백성을, 당신 소유의 양 떼를 당신의 지팡이로 보살펴 주십시오. 옛날처럼 바산과 길앗에서 그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15 당신께서 이집트 땅에서 나오실 때처럼, 저희에게 놀라운 일들을 보여 주십시오.
18 당신의 소유인 남은 자들,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는,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은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19 그분께서는 다시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모르는 체해 주시리라.
당신께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20 먼 옛날 당신께서 저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을 성실히 대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자애를 베풀어 주십시오.


시편 85(84),2-4.5-6.7-8(◎ 8ㄱ)
◎ 주님, 저희에게 당신 자애를 보여 주소서.
○ 주님, 당신 땅을 어여삐 여기시어, 야곱의 귀양을 풀어 주셨나이다. 당신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잘못을 덮어 주셨나이다. 당신의 격분을 말끔히 씻으시고, 분노의 열기를 거두셨나이다. ◎
○ 저희 구원의 하느님, 저희를 다시 일으키소서. 저희에게 품은 노여움을 풀어 주소서. 끝끝내 저희에게 진노하시렵니까? 대대로 당신 분노를 뻗치시렵니까? ◎
○ 저희에게 생명을 돌려주시어, 당신 백성이 당신 안에서 기뻐하게 하소서. 주님, 저희에게 당신 자애를 보여 주시고, 당신 구원을 베풀어 주소서. ◎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이 당신을 찾자,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라고 하신다.(마태오 12,46-50)
그때에 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49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제1독서 (미카7,14-15.18-20)

"당신의 소유인 남은 자들,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는,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은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다시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모르는 체해 주시리라. 당신께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18~19)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18) 

미카서 7장 14절에서 예언자 미카는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주님의 목양(목자로서 양떼를 다스림; 사목)을 간구하는 중재(중보)기도 바쳤다. 

그리고 미카서 7장 15절에서 주님의 선민 이스라엘의 구원 약속에 대한  미카 예언자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였다.

이제 미카서 7장 18절 이하 20절에서 미카 예언자는 선민을 향한 주님의 용서와 어지신 사랑을 바라며 선취적으로 찬양을 드린다. 

이러한 새로운 단락의 서두에 나오는 본문은 '누가 당신과 같은 신인가?'(Who is a God like you?)이다. 

이것을 잘못 알아 들으면 하느님 외에도 여러 신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주 하느님께서 최고의 신이시라고 하는, 즉 하느님 외에 다른 신을 인정하는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그런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된 표현이 아니다.  

이러한 표현은 구약 성경 곳곳에서 사용되는 표현으로(탈출15,11; 시편81,10; 86,8; 95,3; 135,5) 하느님의 권능과 절대 주권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하고 강하심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신의 소유인 남은 자들,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는' (18) 

본문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죄악을 묻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번역된 '노세'(nose; pardon)'(죄악을) 묻지 않으시는'으로 번역된 '오베르'(ober; forgive)를 구분해야 한다. 

이 두 단어 중 '노세'(nose)의 원형 '나사'(nasa)지은 죄에 대하여 형벌을 내리지 않는다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사면의 의미가 강하다.  

반면에 '오베르'(ober)의 원형 '아바르'(abar)는 단지 죄에 대한 형벌을 내리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죄악 자체를 말끔히 소멸시킨다는 의미를 갖는다. 

'나사'는 하느님께서 선민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하여 형벌을 면제하는 '집행유예'의 의미를 전하는 것이라면, '아바르'는 그 죄악 자체를 아예 없는 것으로 여기는 '공소기각'의 의미를 강조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의 소유인 남은 자들'이란 표현은 '그의 기업의 남은 자'(the remant of His possession or inheritance)이다. 

남은 자들이 기업(소유)에 남아 있다는 뜻이 아니라, 기업(소유)과 남은 자를 동격으로 본다. 

이것을 감안하면, 하느님께서 남은 자들의 죄악을 용서하시는 이유 더 분명해진다. 

이것은 그들이 바로 하느님의 기업, 곧 거룩한 소유이기 때문이다. 

'당신께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19)  

하느님께서 미카서 7장 18절에 언급한 것처럼,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를 오래 품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본절 상반절에 기록된 것처럼 선민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신다.

이제 본문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들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버려, 기억도 나지 않게 하시는, 죄악을 이길 수 있는 능력까지 주시는 분으로 고백되고 있다. 

선민 이스라엘의 연약함과 관련된 하느님의 이런 성품에 대한 묘사가 점진적으로 더 강력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은 죄악에 대한 용서만이 아니라, 죄악을 극복할 수 있는 힘까지 주시는 자비와 권능의 하느님이심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본문에 언급된 '모든 죄악'이라는 표현은 하느님께서 어떤 죄를 용서하시고 어떤 죄는 남겨 두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죄악과 죄책(죄의 형벌)에 대하여 완벽하게 청산하실 것임을 강조한다.

또한 '바다 깊은 곳으로'으로 번역된 '뻬메출로트 얌'(bemetsloth yam; into the depths of the sea)은 바다 위에 던질 뿐만 아니라, 바다 밑바닥 까지 내려가게 한다는 의미까지 지닌다.

원문은 완전한 폐기 처분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폐기되는 죄악의 범위가 전부이고, 죄악에 대한 폐기의 정도가 완전하고 철저한 것임을 서술한 것이다.  하느님 용서의 온전성과 완전성, 철저성 강조하는 것이다.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복음 (마태12,46-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50) 

여기서 '실행하는 사람이'로 번역된 '포이에세 ~ 아우토스'(poiese ~autos; dose~the same)'실행하면, 바로 그 사람'이라는 의미로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바로 그 당사자가 예수님의 영적 가족이라는 사실을 강조해 주고 있다. 

'포이에세'(poiese)의 원형 '포이에오'(poieo) 어떠한 일을 적극적으로 행하거나 존재하는 물질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인데, 여기서는 '내 아버지의 뜻'목적어로 취하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행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여기서 '포이에오'(poieo)'~하는 자는 누구든지'를 뜻하는 '호스티스 안' (hostis an; whoever)과 함께 가정법으로 쓰여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기만 하면 누구든지'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영적 가족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바로 그 조건이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하지만, 본 문맥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실행한 것은 그저 예수님의 말씀을 긍정하면서 묵묵히 듣고 있는 것뿐이었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것에는 눈에 보이는 행위 뿐만 아니라, 눈에 띄지 않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며 결단을 내리는 마음을  가지는 것까지도 포함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로마8,14~16)

 


<예수님의 참 가족>송영진 모세 신부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47-50)”


여기서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 밖에 와 있는 그 사람들은 내 어머니가 아니고, 내 형제들이 아니다.”
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인지
이번 기회에 한 번 생각해 보자.” 라는 뜻입니다.
(“과연 어떤 사람이 나의 참 가족인지 한 번 생각해 보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라는 말씀은,
“(내 어머니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믿고,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
나의 참 가족이 된다.” 라는 뜻입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 가운데 첫 자리에 계신 분입니다.)


이 말씀을 반대로 표현하면,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나의 가족이 될 수 없다.”가 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라는 말씀과 같은 말씀이 됩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함으로써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예수님의 가족이 되는 일입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간 사람은 모두 예수님의 가족이 된 사람입니다.
거꾸로 표현하면, 예수님의 참 가족이 되면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가족에 관해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들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7).”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마태 19,29).”
이런 말씀들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라는 말씀을 합해서,
‘육적인 가족’보다 ‘영적인 가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가족’에 관한 대원칙은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6).”
이 말씀은 부부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에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부부는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한 몸이고,
자녀는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선물입니다.
‘육적인 가족’과 ‘영적인 가족’을 구분해서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 ‘영적인 가족’만 중요하니까 ‘육적인 가족’은 버려도 된다는 것은
결코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가족이 함께 실행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가족은 끝까지(하느님 나라까지) 함께 가야 할 동반자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나 어머니를(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이 말씀은 ‘가족’이 아니라 가족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해야 할 말씀입니다.
가족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고 하느님 나라의 반대쪽으로 가려고 할 때,
정말로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가르치고 설득하고 타일러서 하느님 나라에 함께 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는 가족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식구들이 가는 대로 따라간다면,
그래서 하느님 나라의 반대쪽으로 간다면, 즉 선을 버리고 악을 택한다면,
그것은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것일 뿐입니다.


참 사랑은 함께 선을 추구합니다.
사랑의 열매는 선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사랑의 열매가 악이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집착일 뿐입니다.
(식구가 죄를 지을 때 그것을 막는 것이 사랑인가?
그 죄를 함께 짓는 것이 사랑인가? 를 생각하면, 답은 명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코르반’이라는 전통을 핑계로
“부모에게 효도하여라.” 라는 계명을 안 지키는 자들을
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마르 7,9-13).
또 루카복음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부모에게 순종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루카 2,51).”
여기서 ‘순종’이라는 말은 단순히 ‘복종’만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사랑과 존경과 효도를 뜻하는 말입니다.
복음서 전체 내용을 볼 때, 예수님은 효자이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의 효도에 대해서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예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제자에게 부탁하시는 장면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27).”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는 “내 어머니를 네가 어머니로 모셔다오.”입니다.
여기서 ‘그때부터’ 그 제자가 성모님을 모셨다는 말은,
‘그전까지는’ 예수님께서 직접 모셨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효도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일에 포함됩니다.
불효를 하면서 참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다면 당연히 효도를 잘할 것입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연중 제16주간 목요일]하늘 나라의 신비 (마태 13,10-17)16.07.21조회 87[연중 제16주간 수요일]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마태 13,1-9)16.07.20조회 86[연중 제16주간 화요일]참가족 (마태 12,46-50)16.07.19조회 87[연중 제16주간 월요일] 요나의 표징 (마태 12,38-42)16.07.18조회 51[연중 제15주간 토요일]함구령 (마태 12,14-21)16.07.16조회 51[연중 제15주간 금요일] 배가 고파서 (마태 12,1-8)16.07.15조회 49[연중 제15주간 목요일]안식 (마태 11,28-30)16.07.14조회 88[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철부지 (마태 11,25-27)16.07.13조회 201[연중 제15주간 화요일]회개 하지 않으면 (마태 11,20-24)16.07.12조회 291[연중 제15주간 월요일] 칼(마태 10,34-11,1)16.07.11조회 55[연중 제14주간 토요일] 박해 (마태10,24-33)16.07.09조회 51[연중 제14주간 금요일]아버지의 영 (마태 10,16-23)16.07.08조회 59[연중 제14주간 목요일]파견 (마태10,7-15)16.07.07조회 62[연중 제14주간 수요일]길 잃은 양들 (마태10,1-7)16.07.06조회 59[연중 제14주간 화요일] 벙어리 치유 (마태 9,32-38)16.07.05조회 57[연중 제14주간 월요일]네 믿음이 (마태 9,18-26)16.07.04조회 55[연중 제13주간 토요일]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마태9,14-17)16.07.02조회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