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간 금요일]아버지의 영 (마태 10,16-23)

2016. 7. 8. 오전 5: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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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4주간 금요일]아버지의 영 (마태 10,16-23)


호세아 예언자는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돌아와 잘못을 고백하면 분노를 푸시고 그들을 사랑해 주시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호세아 14,2-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너희는 죄악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3 너희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돌아와 아뢰어라. ‘죄악은 모두 없애 주시고, 좋은 것은 받아 주십시오. 이제 저희는 황소가 아니라 저희 입술을 바치렵니다. 4 아시리아는 저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저희가 다시는 군마를 타지 않으렵니다.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고아를 가엾이 여기시는 분은 당신뿐이십니다.’
5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풀렸으니,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 6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7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 그 아름다움은 올리브 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으리라.
8 그들은 다시 내 그늘에서 살고, 다시 곡식 농사를 지으리라. 그들은 포도나무처럼 무성하고,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명성을 떨치리라. 9 내가 응답해 주고 돌보아 주는데, 에프라임이 우상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는 싱싱한 방백나무 같으니, 너희는 나에게서 열매를 얻으리라.
10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


시편 51(50),3-4.8-9.12-13.14와 17(◎ 17ㄴ)
◎ 제 입이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 하느님, 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지워 주소서. ◎
○ 당신은 가슴속 진실을 기뻐하시고, 남몰래 저에게 지혜를 주시나이다. 우슬초로 정화수를 뿌리소서. 제가 깨끗해지리이다. 저를 씻어 주소서. 눈보다 더 희어지리이다. ◎
○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당신 앞에서 저를 내치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영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
○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시고, 순종의 영으로 저를 받쳐 주소서. 주님,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제 입이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라며, 박해를 받을 때 무엇을 말할지 아버지의 영이 일러 주실 것이라고 하신다.(마태오 10,16-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23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제1독서 (호세14,2-10)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6)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  그 아름다움은 올리브 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으리라."  (7) 

호세아서 14장 4절에서는 주님께서 징벌을 통해 이스라엘을 치유하고 사랑을 회복시키실 것이 약속되었다. 이제 호세아서 14장 5~7절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고 축복하실 때 그들이 풍성한 삶을 누릴 것을 예언한다. 

먼저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이 '이슬'처럼 은혜를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슬이 되어'에 해당하는 '캇탈'(kattal; as the dew) '이슬과 같이','이슬처럼'(like the dew)으로 번역된다. 

'이슬'은 호세아서에서 3회 사용되었는데, 호세아서 6장 4절과 13장 3절에서는 이슬의 덧없음과 무상함, 허무함 등의 이미지를 나타내었고, 여기서는 당신 백성에게 촉촉히 내리는 하느님의 부드러운 은혜를 상징한다.

팔레스티나 지방은 봄과 늦은 가을에 닥치는 우기를 제외하고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따라서 건기 때에는 밤에 내린 이슬이 농작물의 성장에 필수적이며, 산에 사는 동물들의 목을 축이는데도 반드시 필요하다.  

호세아서 14장 6절에서 바로 비를 대신하는 이슬의 이미지가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축복을 상징한다.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고 야곱의 후손들은 안전하게 하늘이  이슬을 내려주는 곡식과 포도주의 땅에 산다.'(신명33,28). 주님께서 그렇게 이슬처럼 은혜를 주실 때, 이스라엘은  아주 풍요롭게 번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호세아서 14장 6절 후반부부터 7절까지에서는 이슬처럼 내리는 하느님의 은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진술된다. 

'그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나리꽃처럼'에 해당하는 '캇쇼샨나'(kashoshanna; like a lily)의 원형 '슈산'(shushan)팔레스티나 평원에서 자생하는 흰색의 꽃으로서 넓게보면 오늘날의 '백합'(lily)으로 불릴 수 있다. 이 꽃은 지고한 아름다움을 상징한다(아가2,2; 6,2). 그래서 나리꽃처럼 꽃이 필 것이라는 진술은 이스라엘이 영화롭고 아름답게 세워질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또한 '레바논처럼'으로 번역된 '칼레바논'(kallebanon; as Lebanon; like a cedar of Lebanon)'레바논 향백나무 같이'로 의역되기도 한다. 고대 근동에서 레바논은 향백나무의 산지였으며, 레바논은 곧 향백나무와 동일시되기도 했다(1열왕7,2). 

향백나무 혹은 백향목은 견고하고 깊은 뿌리를 기반으로 해서 매우 굵고 튼튼하고 길게 자라나는 나무로서 고대 근동에서 왕궁이나 성전 등 크고 웅장한 건축물을 짓는 재료로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이 그와 같은 향백나무의 뿌리를 뻗으리라는 예언그들이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굳건히 지키며, 하느님에 의해 보호를 받고 안전함을 누리며 크게 번성하는 나라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 그 아름다움은 올리브 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으리라.' (7) 

이스라엘이 풍요와 번성을 위해 섬겼던 바알 우상은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아무런 풍요를 주지 못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진정 풍요로운 삶의 자리로 인도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예언하는 호세아서 14장 7절에서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에 해당하는 '옐레쿠 요네코타이우'(yelleku yoneqothaiu)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어린 가지들이 나무에서 점차 돋아나 계속해서 밖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강조한다. '요네코타이우'(yoneqothaiu)의 '요네케트'(yoneqeth)는  봄이 되면 막 돋아나는 어린 싹을 지칭한다(욥기14,7). 

그리고 '돋아나'에 해당하는 '옐레쿠'(yelleku)는 미완료형으로서 그러한 일이 일회적이거나 종결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계속될 것임을 나타내 준다.  

한편 '올리브 나무'에 해당하는 '자이트'(zaith; an olive tree)가지와 잎사귀가 매우 많은 나무이므로 '그 아름다움'에 해당하는 '호도'(hodo; his beauty)는 '그의 찬란함'(his splender)이라는 의미로 번역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올리브 나무처럼 찬란하고 웅장한 민족으로 성장한다는 의미이다. 

이제 이어서 이스라엘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와 같으리라고 예언된다. '향기'에 해당하는 '레아흐'(reah)는 하느님께서 과거 계약적 저주의 예언 가운데, 그들이 바치는 제물의 향기도 맏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사용되었다(레위26,31). 그러나 여기서는 이러한 계약적 저주가 다 해결되고, 이스라엘이 다시 향기로운 나라가 되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10,16-23)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게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16)

열두 사도의 파견과 관련된 '선교 활동 대상과 내용 및 복음 전파자로서의 자세에 관한 교훈'(마태10,5~15)을 마친 후에, 복음 전파자로서 제자들이 받게 될 박해와 고난에 대한 예고 및 교훈(마태10,16~23)이 나온다.

제자들이 받게 될 박해는 유다인들로부터 뿐만 아니라 이방의 권력자들로부터도 올 것이다(마태10,17~18).

또한 마태오 복음서의 일차 독자인 유다계 크리스챤들에게 이글이 읽히는 시기도 여러 가지 박해 가운데 있을 때였다.

그리고 본 단락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박해받는 자를 도우시는 성령과(마태10,20), 구원 (마태10,22)과 주님의 재림(마태10,23)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복음 전파자로서 박해 받는 일이 영원하지 않으며, 종국에는 하느님의 축복이 있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이라고 번역된 '에고'(ego) 일인칭 남성 단수 대명사 주격이다.

희랍어에는 동사에 주어의 인칭이 포함되므로, 굳이 인칭 대명사 주격을 기록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에고'(ego)라는 주어를 사용한 것은 제자들을 복음 전파자들로 파견하시는 일의 주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유다교의 글에서 '양'에 해당하는 '프로바톤'(probaton)이스라엘을, 그리고 '이리'에 해당하는 '뤼코스'(lykos)이방 민족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에서는 '양'은 거의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교회'가리키고, '이리'는 신약 성경에서 교회를 해치려는 세력을 상징한다(요한10,12; 사도20,29)..

한편 마태오 복음 10장 16절에서 '뱀'으로 번역된 '오페이스'(opheis)직역하면 '뱀들'(serpents)이며, 원형 '오피스'(ophis)는 희랍어 구약 성경인 70인역(LXX)에서는 창세기 3장 1절에 나오는 '뱀'과 동일한 단어이다.

이러한 전통에 따라 코린토 2서 11장 3절에서도 '뱀'(ophis)하와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먹도록 유혹한 간계와 교활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 10장 16절에서는 뱀의 특성 가운데 교활함이 아닌 '슬기','지혜'(wisdom)를 가진 것으로 말하고 있다. 또한 '비둘기'에 해당하는 '페리스테라'(peristera; dove)는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분노하지 않는 '선'(virtue) 악에 오염되지 않는 '순박', '순결'(purity)의 상징이었다.

여기서는 두 짐승이 모두 '박해'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로마서 16장 19절에서 사도 바오로가 교훈한 것처럼, 악한 세력으로부터 박해를 받을 때 악에 대해 실제적인 통찰력을 가짐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처럼 간교하지 않은 선(善)을 가지고 악(惡)을 이기라는 뜻이다.

선(善)이 없는 지혜(슬기)는 간교함이며, 지혜(슬기)가 없는 선(善)은 악한 세력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양자의 균형잡힌 구비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지혜(슬기)는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믿는 이들 안에 계셔서 도우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지혜를 말한다.

               




<이미 이긴 싸움>송영진 모세 신부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마태 10,23).”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라는 말씀은,
박해를 피해서 달아나라는 단순한 뜻도 아니고,
육신의 목숨을 지키라는 뜻도 아닙니다.
박해가 없는 곳으로 가서 신앙생활을 계속하라는 뜻입니다.
또 사람들 모르게 숨어서 몰래 신앙생활을 하라는 뜻이 아니고,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계속하라는 뜻입니다.


순교는 신앙생활의 목적이 아닙니다.
신앙을 증언하는 한 방법일 뿐입니다.
(물론 순교는 신앙을 증언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순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데도 일부러 죽으면 안 됩니다.
만일에 죽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데도 죽기를 자청한다면,
그것은 순교가 아니라 자살이 되어버립니다.


스테파노가 순교한 후에 큰 박해가 일어났을 때,
당시의 신자들은 모두 예루살렘을 떠나서 각지로 흩어졌습니다.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사도 8,1).


그런데 박해를 피해서 떠난 신자들은 숨어 있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사도 8,4).”
그래서 결과적으로, 박해는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박해가 필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것은 나쁜 일에서도 좋은 결과를 끌어내시는 하느님의 섭리입니다(로마 8,28).
신자들에게 초점을 맞춰서 말하면, 신자들은 박해를 받아도, 순교를 해도,
굴하지 않고 신앙생활과 선교활동을 계속한 것입니다.


만일에 박해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먼 지역에 복음을 전할 생각은 하지 않고 편안한 생활에 안주하지 않았을까?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랬을 가능성이 큽니다.
너무 편안한 것도 때로는 사탄의 유혹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고 명령하셨는데(마르 16,15),
사탄은 고생하지 말고 있던 곳에서 편안하게 지내라고 유혹합니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라는 말씀은, 해석하기가 어려운 말씀입니다.
문자 그대로만 보면, 사도들이 이스라엘 전역에 복음을 선포하기 전에,
즉 이스라엘에 대한 복음 선포 사업이 완수되기도 전에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씀인데,
그렇다면 사도들의 지상 생애 중에 재림과 종말이 이루어진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모두 순교했고, 즉 세상을 떠났고,
아직도 예수님의 재림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생각할 수는 없고,
비유나 상징으로 생각하고 해석해야 할 말씀입니다.


여기서 ‘너희’는 우리 교회로, ‘이스라엘’은 온 세상으로 해석됩니다.
(온 세상 모든 사람은 다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다 돈다는 말은, 복음 선포 사업이 완수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즉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는 상황으로 해석됩니다.
그렇다면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라는 말씀은,
‘머지않아 곧’이라는 뜻이 됩니다.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아도 재림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이천 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 않은가?”
인간의 시간으로는 분명히 긴 세월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시간으로는 하루 같은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정녕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야경의 한때와도 같습니다(시편 90,4).”
어떻든 ‘머지않아 곧’이라는 말은,
종말과 재림은 언제든지, ‘지금’ 이루어질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 말에는 중요한 뜻이 하나 더 들어 있습니다.
복음 선포 사업을 악의 세력과 맞서 싸우는 전투로 생각한다면,
인간 세상에서 승패가 완전히 결정되기 전에
예수님께서 승리자로 오셔서 이 싸움을 끝내신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다시, 승리는 우리 쪽에 있다는 뜻이 됩니다.
“이길 수 있는 싸움이다.”가 아니라, “이미 이긴 싸움이다.”입니다.
하느님을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기 때문에 승리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어느 한 시기만 놓고 보면, 박해자들이 교회를 이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박해 때문에 어느 한 지역에서 그리스도교 교회가 사라지고,
다른 종교가 그 지역을 완전히 차지한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최종적인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종말과 재림은 예수님의 승리를 선포하는 때이고,
동시에 심판의 때이기도 합니다.
“그때 하늘에 사람의 아들의 표징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세상 모든 민족들이 가슴을 치면서,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그리고 그는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가 선택한 이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마태 24,30-31).”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끝까지 믿음을 지킨 이들은 승리자로서 환호할 것이고,
안 믿은 사람들은 후회만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받게 될 박해를 예고하시면서도
당신의 재림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은,
끝까지 믿음과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하신 것입니다(마태 10,22).
여기서 ‘끝까지’ 라는 말은 ‘죽게 되더라도’ 라는 뜻입니다.
박해를 받아도, 순교를 해도, 우리는 이미 승리자입니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


<고난의 행군>

  

올바른 종교는 인간을 소유가 아니라 이탈을 향해 나아가도록 촉구합니다.

특히 그리스도교 신앙인이라면 평생토록 지녀야할 일관된 자세 하나가 필요합니다.

부단히 작은 나를 극복하고 크신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라는 작은 울타리에 갇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가는 동료들에게 더 큰 세상, 더 큰 선, 더 큰 아름다움이 있음을 알려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상 사람들이 대체로 꺼려하는 고난과 시련, 가난이야말로 우리 교회가 가장 가까이 두고 지내야 할 절친이라는 사실을 각인시켜주는 일입니다.

 

신앙생활에 몰두할수록 무병장수, 현세축복, 만사형통이 따라올 것이라는 가르침이

울려 퍼지는 교회라면 심각한 반성과 자기 진단이 필요합니다.

 

제한되고 유한한 존재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이상 인생의 시련과 우여곡절은 필수입니다.

출생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습니다.

 화사한 봄날을 즐겼다면 혹독한 추위도 견뎌야 합니다.

꽃 같은 청춘시절을 만끽했다면 외로운 노년기도 맞이해야 합니다.

 

인생의 상승 곡선을 그렸다면 언젠가 반드시 하강곡선도 타고 내려와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지속적인 현세의 축복과 성공의 보증수표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입니다.

 

제자교육을 마친 예수님께서도 사도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면서 약속하신 것은 현세적인

 성공이나 물질적 축복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예수님 당신을 선택함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의 반대와 고소, 채찍질과 법정 증언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주의를 건네셨습니다.

미움과 박해, 분열과 상처가 뒤따를 것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의 복음 선포를 위한 여행길이 고난의 행군이 될 것을 잘 알고 계셨던 스승이었기에 걱정도 많이 되셨겠지요.

얼마나 걱정이 컸던지 이렇게 주의를 주고 계십니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그러나 제자들의 복음 선포를 위한 여행길이 마냥 고통과 괴로움으로 점철되지만은 않을 것임을 동시에 확증해주십니다.

하느님의 성령께서 제자들의 여행길에 항상 동반하실 것이기에 안심하라고

 격려해주십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더불어 제자들의 복음 선포를 향한 여행길이 힘겹고 고달프겠지만 절대로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라고 강하게 요구하십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오늘 하루 우리가 하느님께 간절히 청하고 구해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인가 곰곰이

묵상해봐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부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오늘의 묵상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듯한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부모가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마음일까요? 아니면, 외국어도 한마디 하지 못하면서 유학이나 이민을 떠나는 사람을 보내는 마음일까요? 앞으로 맞닥뜨려야 할 환경이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앞으로 그들에게 닥쳐올 고난을 미리 알려 주십니다. 그 고난은 군대에서나 외국에서 체험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고난이 아닙니다. 정의와 평화를 위해 회당에서 채찍질당하고, 총독들 앞에서 증언해야 할 뿐 아니라, 부모 자식 간에, 그리고 형제간에도 서로 싸우고 투쟁해야 하는 그런 장벽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셔서 직접 부딪치신 장벽이고, 현재도 교회가 세상의 힘과 맞서고 있는 장벽입니다. 교회가 맡은 임무와 사명이 크면 클수록 이 장벽 또한 그만큼 높고 험난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큰 장벽은 세상이 던져 주는 달콤하고도 손쉬운 유혹을 이겨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택하신 십자가의 길, 가난과 단순함과 겸손, 그리고 용기와 투명성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조롱과 모욕을 견뎌 내는 것입니다.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말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서울 지방의 낮기온이 올 들어 가장 높은 32.3도까지 치솟았습니다.

그밖에 경기도 이천이 34.1도. 충주는 33.9도 까지 오르는 등 전국 곳곳에서 올 최고기온을 기록했습니다.

폭염특보도 더 확대됐습니다.

경기 남동부 지방과 남부지방 곳곳에 내려져 있던 폭염특보는 오후 4시를 기해서 서울 등 그 밖의 많은 지방까지 확대가 됐습니다.

내일 서울의 낮기온은 33도까지 치솟겠고 충주는 34도 등으로 더울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같은 폭염은 주말 내내 이어질 전망이어서 건강 조심하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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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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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5주간 월요일] 칼(마태 10,34-11,1)16.07.11조회 55[연중 제14주간 토요일] 박해 (마태10,24-33)16.07.09조회 51[연중 제14주간 금요일]아버지의 영 (마태 10,16-23)16.07.08조회 60[연중 제14주간 목요일]파견 (마태10,7-15)16.07.07조회 63[연중 제14주간 수요일]길 잃은 양들 (마태10,1-7)16.07.06조회 59[연중 제14주간 화요일] 벙어리 치유 (마태 9,32-38)16.07.05조회 57[연중 제14주간 월요일]네 믿음이 (마태 9,18-26)16.07.04조회 56[연중 제13주간 토요일]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마태9,14-17)16.07.02조회 50[연중 제13주간 금요일]죄인을 부르러 (마태 9,9-13)16.07.01조회 866월 29일 수요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마태16,13-19)16.06.29조회 98[연중 제13주간 화요일]풍랑을 가라앉히시다 (마태 8,23-27)16.06.28조회 98[연중 제13주간 월요일]나를 따르라 (마태 8,18-22)16.06.27조회 100[연중 제12주간 토요일] 백인대장의 믿음 (마태8,5-17)16.06.25조회 48[2016. 6. 24.]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루카 1,57-66.80.)16.06.24조회 52[연중 제12주간 수요일]거짓 예언자 조심(마태 7,15-20)16.06.22조회 55[연중 제12주간 화요일]황금율 (마태 7,6.12-14)16.06.21조회 53[연중 제12주간 월요일]남을 심판하지 마라 (마태 7,1-5)16.06.20조회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