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7주간 수요일] 올인 (마태 13,44-46)

2016. 7. 27. 오전 5: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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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7주간 수요일] 올인 (마태 13,44-46)


어찌하여 제 고통은 끝이 없냐는 예레미야의 두 번째 고백에 주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하리라고 하신다.(예레 15,10.16-21)
10 아, 불행한 이 몸! 어머니, 어쩌자고 날 낳으셨나요? 온 세상을 상대로 시비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 사람을. 빚을 놓은 적도 없고 빚을 얻은 적도 없는데, 모두 나를 저주합니다.
16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주 만군의 하느님, 제가 당신의 것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
17 저는 웃고 떠드는 자들과 자리를 같이하거나 즐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를 가득 채운 당신의 분노 때문에 당신 손에 눌려 홀로 앉아 있습니다. 18 어찌하여 제 고통은 끝이 없고, 제 상처는 치유를 마다하고 깊어만 갑니까? 당신께서는 저에게 가짜 시냇물처럼, 믿을 수 없는 물처럼 되었습니다.
19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돌아오려고만 하면 나도 너를 돌아오게 하여, 내 앞에 설 수 있게 하리라. 네가 쓸모없는 말을 삼가고 값진 말을 하면, 너는 나의 대변인이 되리라.
그들이 너에게 돌아올망정, 네가 그들에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 20 그러므로 이 백성에게 맞서, 내가 너를 요새의 청동 벽으로 만들어 주리라. 그들이 너를 대적하여 싸움을 걸겠지만, 너를 이겨 내지 못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하고 건져 낼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21 내가 너를 악한 자들의 손에서 건져 내고, 무도한 자들의 손아귀에서 구출해 내리라.”


시편 59(58),2-3.4.10-11.17.18(◎ 17ㄹ 참조)
◎ 하느님은 곤경의 날에 저의 피신처가 되셨나이다.
○ 저의 하느님, 원수에게서 저를 구하소서. 적에게서 저를 보호하소서. 나쁜 짓 하는 자에게서 저를 구하시고, 피에 주린 자에게서 저를 구원하소서. ◎
○ 보소서, 그들이 제 목숨을 노리며, 힘센 자들은 저를 공격하나이다. 주님, 저는 잘못이 없고 죄가 없나이다. ◎
○ 저의 힘이시여, 당신만을 바라나이다. 하느님, 당신은 저의 성채이시옵니다. 자애로우신 하느님은 나를 찾아오시리라. 하느님은 내가 원수들을 내려다보게 하시리라. ◎
○ 저는 당신의 힘을 노래하오리다. 아침이면 당신 자애에 환호하오리다. 당신은 저의 성채가 되시고, 곤경의 날에 피신처가 되셨나이다. ◎
○ 저의 힘이시여, 당신께 노래하오리다. 하느님, 당신은 저의 성채, 자애로우신 하느님이시옵니다. ◎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밭에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에 비유하시며, 그 보물을 발견하는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고 하신다. (마태 13,44-46)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45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제1독서 (예레15,10.16-21)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 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주 만군의 하느님, 제가 당신의 것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 ~~~ 어찌하여 제 고통은 끝이 없고, 제 상처는 치유를 마다하고 깊어만 갑니다. 당신께서는 저에게 가짜 시냇물처럼, 믿을 수 없는 물처럼 되었습니다. 네가 돌아오려고만 하면 나도 너를 돌아오게 하여, 내 앞에 설 수 있게 하리라. 네가 쓸모없는 말을 삼가고 값진 말을 하면, 너는 나의 대변인이 되리라." (16.18~19)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 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주 만군의 하느님, 제가 당신의 것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 (16) 

예레미야서 15장 16절이하 18절에서는 악한 시대의 고독한 예언자로서 영육간에 고갈을 호소하는 내용이 소개된다. "Thy words were found, and I did eat them ;  and thy word was unto me the joy and rejoicing of mine heart ;  for I am called by thy name , O LORD GOD of hosts !" 

원문따라 문자적으로 풀어본 영역본의 하나를 소개했다. 여기서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로 번역된 '니므체우 데바레카'(nimtseu debareka)에서 '발견하고'에 해당하는 '니므체우''찾다'(1열왕21,20), '드러내다','발견하다'(신명24,1)란 뜻을 지닌 동사 '마차'(matsa)의 수동형 3인칭 복수형으로서 그 주어는 '데바레카'(debareka) '당신의 말씀'이다.

따라서 이것은 '당신의 말씀이 발견되었다'는 의미이고, 이 표현은 주 하느님의 말씀이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사실 가리킨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마치 음식을 먹듯이 그 말씀을 '내가 받아먹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주님의 말씀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또한 전적으로 믿고 순종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말씀은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참된 기쁨이 되었다. 그는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제게 기쁨'이란 표현과 '제 마음에 즐거움'이란 표현을 중복하여 사용하였다. 이것은 자신이 이름 뿐인 예언자가 아닌,진실로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사모하고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참된 예언자임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다.  그리고 이어서 하느님의 말씀이 기쁨이 되는 그 이유를 자신이 주님의 이름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제가 당신의 것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의 원문의 문두에 나오는 접속사 '키'(ki)'왜냐하면'이라는 뜻의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로서 주님의 말씀이 어떻게 예언자 예레미야의 기쁨과 마음의 즐거움이 되었는가를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주님의 말씀을 위탁받아 그대로 전하는 예언자가 됨으로써 어떤 부나 명예가 따라와서가 아니라 주 하느님의 예언자라는 직책을 부여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그의 진정한 기쁨이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얼마나 하느님의 예언자로서 순수하고 진실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그분의 말씀을 대변했는가 드러내는 일종의 변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끝으로 예레미야는 '주 만군의 하느님'이란 감탄의 부르짖음으로 주 하느님의 예언자로서의 자신의 순수성과 진실함에 대한 고백을 마무리한다. 

이러한 본절 전반의 표현은 15절('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아십니다. 저를 기억하시고 찾아 주소서. 저를 뒤쫓는 자들에게 복수하여 주소서. 당신 분노를 늦추시다가 저를 잃지 마시고, 당신 때문에 제가 수모를 당하는 줄 알아주소서.')에서 그가 호소했듯이, 자신이 당하는 박해와  치욕은 온전히 주님의 예언자로서 주님을 위해 일하였기 때문이며, 주님의 말씀을 기뻐하며 그대로 전하였기 때문에 생긴 것임을 토로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레미야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알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하여 제 고통은 끝이 없고, 제 상처는 치유를 마다하고 깊어만 갑니다.'(18ㄱ) 

'어찌하여'라는 뜻의 의문사 '람마'(lamma)로 시작되는 본절은 앞서 15~17절에서 피력했듯이 예레미야가 오직 주 하느님만을 위하여 주님의 예언자로서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싸웠고, 또 그로 인해 고난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자신의 처지가 나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악화되고 있는가를 하소연하고 있는 내용이다. 즉 예언자 예레미야는 영육간의 극도의 피곤함과 고갈됨을 경험하고, 이것을 하느님께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극한의 고난과 곤경, 고독 속에 자신이 처하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도움조차 베풀지 않으시는 듯한 하느님을 향하여 도대체 언제까지 자신이 상처와 고통에 붙들려 살아야 하는지, 또 어째서 이처럼 고통스러운 일들이 자신에게서 떠나지 않는지를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하느님께 버림받은 듯한 상황속에 처하여 곤경과 핍박을 호소하는 본문의 표현메시아의 버림받음과 대속적 수난을 예언적으로 노래한 시편 22장 2절과 3절 연상시킨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소리쳐 부르건만, 구원은 멀리 있습니다.  저의 하느님, 온종일 외치건만 당신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니  저는 밤에도 잠자코 있을 수 없습니다." 

'당신께서는 저에게 가짜 시냇물처럼, 믿을 수 없는 물처럼 되었습니다'(18ㄴ) 

'믿을 수 없는'으로 번역된 '로 네에마누'(lo neemanu)에서 '로'(lo)는 히브리어에서 가장 강한 의미를 지닌 부정어이며,  '네에마누''참되다', '진실하다'(창세42,20),'믿다'(탈출4,8), '참되다', '확실하다'(시편93,5),  '믿음직하다','견고하다'(1사무2,35),'성실하다', '충성되다'(2사무20,19) 등을 뜻하는   동사 '아만'(aman)수동 완료형 3인칭 복수형이다.  따라서 '로 네에마누'는 '(물이) 확실하지 않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우기에는 물이 풍부하게 흐르지만, 건기에는 물이 말라버리는 팔레스티나 지역의 기후적 특색과 간헐천(wadi)를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예레미야는 주 하느님 지체를 물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지만, 물을 얻을 수 없게 되버린 '가짜 시냇물'(속이는 시내)에 빗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문에는 '생수의 원천인 나'(예레2,13), 주 하느님을 의지하여 그 구원하심을  믿어 왔던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만일 끝까지 아무런 응답이 없다면, 주님은 곧 '가짜 시냇물'과 같은 존재가 되지 않겠느냐는 예레미야의 절박한 반어법적인 호소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생수의 원천이신 주님, 내가 주님의 구원을 믿고 찾아 왔는데, 만일 그 생수를 얻을 수 없다면, 당신은 가짜 시냇물이 되시렵니까? 정녕 그리하실 것입니까?' 라고 예언자는 간절히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례미야의 간절한 표현과 더불어 다소 과격해 보이는 표현은 단순히 하느님을 향한 불신과 원망의 표현으로만 볼 수는 없다. 

이같은 본문의 표현 이면에는 역설적으로 생수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자신의 갈급하고 고통스런 상황을 굽어 살피시고 도우시는 은혜의 손길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의미, 곧 예언자의 하느님을 향한 지속적인 신뢰와 구원의 간구가 함축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네가 돌아 오려고만 하면 나도 너를 돌아오게 하여, 내 앞에 설 수 있게 하리라. 네가 쓸모없는 말을 삼가고 값진 말을 하면, 너는 나의 대변인이 되리라.' (19) 

'네가 돌아오려고만 하면'에 해당하는 '타슈브'(tashub)'돌아오다', '돌이키다' 뜻을 지닌 '슈브'(shub)의 능동 미완료 2인칭 단수형이다. 

'나도 너를 돌아오게 하여'에 해당하는 '와아쉬베카'(waashibeka) 역시 동일한 '슈브'동사의 사역형 미완료 3인칭 단수형에 접속사 '와우'(wau)2인칭 남성 단수 접미어를 결합시킨 형태로서 문자적으로는 '그러면 내가 너를 돌이킬 것이다.'라는 뜻이다. 

본문에서 전자의 '타슈브'예레미야가 하느님께로 돌아옴, 즉 현재의 고통으로  인한 불신앙적 절망이나 회의에 빠지지 말고, 처음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예언자적 소명을 지킬 것을 촉구하는 말이다. 후자의 '와아쉬베카'는 만일 그러한 불신앙적 흔들림을 회개하고 돌아온다면,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지금의 고통스런 상황에서 돌이켜 회복시키길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처럼 본문은 동사 '슈브'의 상호 교차적인 사용으로 하느님과 예언자 양자의 역학 관계를 잘 묘사해 주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동사는 하느님과 예언자와 그 백성 삼자의 역학 관계 묘사하기에 이른다. 

본절 후반부에서 '그들이 너에게 돌아올망정, 네가 그들에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예언자가 나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즉 하느님께서는 '슈부'동사를 거듭 사용하셔서 현실적인 고통과 절망이 아무리 클지라도 결코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저버리고 백성들과 같은 길에 빠져서는 안되고, 백성들이 약함을 본받거나 그들의 약함에 유혹 당해서는 안되며, 더 나아가 오직 백성을 그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예언자가 가야할 길임을 각인시키고 계신 것이다. 

'네가 쓸모없는 말을 삼가고 값진 말을 하면, 너는 나의 대변인이 되리라.' 

'쓸모없는 말을 삼가고'에 해당하는 '밋졸렐'(mizzollel)은 동사 '잘랄'(zallal)분사형에 '분리, 이탈, 구별' 등의 의미를 지닌 전치사 '민'(min)이 결합된 형태로서 '헛된 것들로부터'(쓸모없는 것들로부터)란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헛된 것들로부터' '귀한 것(값진 것)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것은 금속 제련의 과정을 연상케 한다. 이 과정에서 순수한 금속은 불순물로부터 분리되어 만들어진다. 

여기서는 현재의 고통으로 인하여 파생되는 불만이나 불평, 혹은 그것이 어떤 것일지라도 모든 불신앙적 요소들을 제하여 버리고, 오직 순수한 신앙으로 하느님의 말씀만을 선포하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예레미야는 '너는 나의 입' 진정으로 주 하느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예언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13,44-46)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44~46)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좋은 진주의 비유천국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숨겨진'으로 번역된 '케크림메노'(kekrymmeno) '감추다', '숨기다'의미를 지닌 동사 '크립토'(krypto; hid)의 수동태 완료 분사로서, 과거 어느 시점에 보물의 주인이 밭을 깊숙이 파고 그것을 숨겨 두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외세의 침략이 잦았던 팔레스티나 지방에서 그것도 은행이 없었던 시절에 값비싼 보물을 땅속에 숨겨 두는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잠언 2장 4절에는 지혜를 구하는 것에 대해서 '네가 은을 구하듯 그것을 구하고 보물을 찾듯 그것을 찾는다면'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는 이야기는 세속 민담에도 종종 나타난다. 

천국은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이 보통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실체이다. 그러나 그 가치는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사도 아깝지 않을 만큼 큰 것이다. 말하자면,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보물이 숨겨진 밭을 산 것처럼, 천국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비유에서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 보물이 그것을 발견한 사람의 소유가 아니라 거기에 묻혀 있는 밭 주인의 소유라는 사회 규약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밭을 살 때까지 그 보물을 땅 속에 그대로 묻어 두고는, 집으로 돌아가 자신이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보물이 묻혀 있는 밭을 사 버린다. 

원문에 나오는 '(그가) 가진'에 해당하는 '에케이'(echei), '팔아'에 해당하는 '폴레이'(polei), 그리고 '산다'에 해당하는 '아고라제이'(agorazei)라는 세 개의 동사의 시제가 모두 현재이다.  동사의 시제가 속담이나 일반적인 진리를 나타내는 현재라는 것은, 여기에 나타난 행위가 역사적으로 실제로 일어났던 과거의 어떤 특정한 일을 예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경우가 발생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되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진 것을 다 팔아'에 해당하는 '판타 호사 에케이'(panta hosa echei; all that he had)'그가 가지고 있는 것의 모두'를 말한다. 즉 그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모두 팔아 그 밭을 샀던 것이다. 

이것은 그가 가진 전 재산보다도 그 보물이 숨겨져 있는 밭이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정말로 가치가 있는 것을 획득하기 위해 역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마태10,37; 마르코10,29). 

한편, 두번째로 나오는 좋은 진주의 비유도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천국은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얻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하나의 비유로 끝나지 않고 유사한 내용의 비유를 더 말씀하시는 것은 그만큼 천국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강조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상인'에 해당하는 '안트로포 엠포로'(anthropo emporo; a merchant)에서 '안트로포'(anthropo)사람이란 뜻이며, '엠포로'(emporo)상업을 하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으로서 특히 '도매 상인'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안트로포 엠포로''도매상을 하는 상인'이라는 말이다. 이 사람은 지금 좋은 진주를 구하기 위해 각처를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찾는'으로 번역된 '제툰티'(zetunti; looking for; seeking)'얻으려고 애쓰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제테오'(zeteo)의 현재 분사형으로서, 좋은 진주를 얻으려고 사방 팔방으로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에서 '발견하자'로 번역된 '휴론'(heuron)마태오 복음 13장 44절'발견한'으로 번역된 단어와 동일한 단어로서, '발견하다'는 뜻의 동사 '휴리스코'(heurisko)의 부정(不定) 과거 분사이며 그 뜻은 '발견했을 때'이다. 

애쓰며 돌아다니던 상인은 좋은 진주를 얻고자 노력한 결과 아주 값진 진주를 발견했다는 사실만 다를 뿐, 두 사람의 상황은 동일하다. 그들은 자기들의 기대치 이상으로 훨씬 좋은 것을 발견한 것이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보물을 발견했고, '좋은' ('칼루스'; kalous; fine; goodly) 진주를 찾으로 다니던 상인도 자신의 기대 이상으로 '값진'('플뤼티몬'; polytimon; of great value; of great price) 진주를 발견했던 것이다.

이처럼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발견된 천국의 실체도 자신이 상상조차 못했거나 기대한 것 이상으로 훨씬 영광스럽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차 우리에게 이루어질 천국의 영광이 너무나 큰 것이기에 천국과 관계되어 당하는 현재의 고난은 능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로마서8,18)



[다해] 연중 제17주간 수요일(2010-07-28)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송영진 모세 신부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마태 13,44-46).”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라는 말씀은, 실제로 하느님께서 하늘나라를 숨겨두셨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을 얻었을 때의 기쁨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복음을 온 세상에 선포하셨습니다.
숨기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를 추구하지 않고 지상의 인생에 대해서만 집착하는 사람에게는 하늘나라가 숨어 있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감추어져 있어서 못 보는 것이 아니라, 안 보려고 해서 못 봅니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이라는 말만 놓고 보면 인간 쪽에서 ‘발견’하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쉬운데, 하늘나라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아들여서 얻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이라는 말도 ‘기쁨’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하늘나라는, 또는 하늘나라의 복음은 숨기면 안 됩니다. 선포해야 하고, 자랑해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마태 5,14-15).”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라는 말씀은, 가장 중요한 것을 얻기를 바란다면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모두 버려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이 말씀에서 어부들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일이 연상됩니다.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마태 4,20).”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마태 4,22).”

그런데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사도들처럼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모든 신앙인이 사도들처럼, 또는 수도자들처럼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서 가장 중요한 것만 추구해야 합니다.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집착 때문에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사람 이야기가 ‘낙타와 바늘구멍 이야기’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원했던 어떤 부자는 예수님께서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라고 말씀하시자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마태 19,16-22).
그가 떠나간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19,24).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면 누구나 바늘구멍 앞의 낙타가 될 수 있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나오는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에 관한 말씀도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마태 13,22).”

가족의 일들도 신경 써야 하고, 직장의 일들도 신경 써야 하고, 그 외에 이런저런 일들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들 때문에 숨이 막히면 안 됩니다.
“걱정되니까 걱정하는 것이지 좋아서 걱정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그래서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4).”
이 말씀은,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걱정하지 마라.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 일은 하느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다.
믿어라. 믿음 속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걱정거리를 맡기는 것은 결코 자포자기가 아니고, 자기가 할 일도 안 하면서 하느님께 떠넘기는 일도 아닙니다.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은 하느님께 맡기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기가 하는 것이 올바른 믿음입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을 미리 하는 것도 믿음 없는 모습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점쟁이를 찾아갑니다.)
‘내일의 일’은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성실하게 ‘오늘’을 살고 ‘내일’은 하느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진주 상인의 비유’는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와 같은 가르침입니다.
상인이 좋은 진주를 찾는 모습에서 조선시대 학자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들은 ‘참 진리’를 찾아다니다가 ‘서학’을(하늘나라의 복음을) 알게 되자 곧바로 모든 것을 버리고(목숨까지 바쳐서) 그것을 얻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를 ‘보물’과 ‘진주’로 표현하신 것은, ‘가치’에 관한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일만이 유일하게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쓰레기와 같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마태 16,26)”


고구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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