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간 토요일] 밀과 가라지 (마태 13,24-30)

2016. 7. 23. 오전 5: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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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간 토요일] 밀과 가라지 (마태 13,24-30)


예레미야 예언자는 유다의 주민들에게, 주님의 집인 성전이 강도들의 소굴로 보이냐며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치라고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 (예레 7,1-11)
1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내리신 말씀.
2 주님의 집 대문에 서서 이 말씀을 외쳐라. “주님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서는 유다의 모든 주민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3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쳐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살게 하겠다. 4 ′이는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이다!′ 하는 거짓된 말을 믿지 마라.
5 너희가 참으로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치고 이웃끼리 서로 올바른 일을 실천한다면, 6 너희가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억누르지 않고 무죄한 이들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않으며 다른 신들을 따라가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는다면, 7 내가 너희를 이곳에, 예로부터 영원히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땅에 살게 하겠다.
8 그런데 너희는 아무 쓸모도 없는 거짓된 말을 믿고 있다. 9 너희는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거짓으로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고, 너희 자신도 모르는 다른 신들을 따라간다. 10 그러면서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 안에 들어와 내 앞에 서서, ′우리는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 이런 역겨운 짓들이나 하는 주제에! 11 너희에게는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이 강도들의 소굴로 보이느냐?
나도 이제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 주님의 말씀이다.’”


시편 84(83),3.4.5와 6과 8ㄱ.11(◎ 2)
◎ 만군의 주님, 당신 계신 곳 사랑하나이다!
○ 주님의 뜨락을 그리워하며, 이 영혼 여위어 가나이다. 살아 계신 하느님을 향하여, 이 몸과 이 마음 환성을 올리나이다. ◎
○ 당신 제단 곁에 참새도 집을 짓고, 제비도 둥지를 틀어 거기에 새끼를 치나이다. 만군의 주님, 저의 임금님, 저의 하느님! ◎
○ 행복하옵니다, 당신 집에 사는 이들! 그들은 영원토록 당신을 찬양하리이다. 행복하옵니다, 당신께 힘을 얻는 사람들! 그들은 더욱더 힘차게 나아가리이다. ◎
○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하느님의 집 문간에 서 있기가, 악인의 천막 안에 살기보다 더 좋사옵니다. ◎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유하시며 원수가 뿌린 가라지를 수확 때까지 내버려 두라고 하신다.(마태 13,24-30)
그때에 24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25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26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27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28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29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30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제1독서 (예레7,1-11)

"그런데 너희는 아무 쓸모도 없는 거짓된 말을 믿고 있다.  너희는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거짓으로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고, 너희 자신도 모르는 다른 신들을 따라간다." (8~9) 

'그런데 너희는 아무 쓸모도 없는 거짓된 말을 믿고 있다.'  

왜곡된 성전 숭배를 중심으로 한 총체적 신앙 오염 행태 지적하는 예레미아서 7장 1~11절의 마지막 단락인 8~11절에서는 당시 의식적으로 제사를 드리면서 온갖 죄악을 자행하는 남부 유다 사람들의 하느님을 거역하는 패륜적 삶의 면모들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다. 

먼저 본문은 그들이 무익한 거짓말을 의지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일반적으로 히브리어에서는 행동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동사 표현만 가지고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인칭 대명사를 생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인칭 대명사 '앗템'(athem; you) 사용을 통한 주어 표시그것을 다시 받는 재귀적 표현 '라켐'(lakem; for yourselves)을  다시금 사용하여 특별한 의미를 전달한다.  이것은 마치 자신들 스스로 만든 거짓말로 자신들 스스로를 속인다뉘앙스의 표현을 풀이할 수 있다. 이것은 그들 스스로 온갖 악을 자행하면서도 성전이 있음으로써 자신들의 구원과 안전이 절대적으로 보장된다는 그릇된 성전 신학염두에 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아무 쓸모도 없는 거짓말' 앞선 4절 "'이는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이다!'하는 거짓된 말을 믿지 마라."는 말씀과 관련된다.  주님의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고 제사의식과 성전 예배가 지속되고 있는 한, 자신들의 안전은 항상 보장될 것이라는 거짓 신념을 여기서는  '아무 쓸모도 없는 거짓말' 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거짓으로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고, 너희 자신도 모르는 다른 신들을 따라간다.'(9) 

여기서 하느님께서는 너무나도 분명하게 당신의 계명을 어기며 온갖 악행을 저지르면서 성전에 나아가서는 구원을 열망하는 남부 유다 사람들의 모순된 태도를 반어적인 질문을 통해 질책한다. 

본절에 제시되는 죄목들선민의 삶의 기본 토대이며 윤리 강령이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과 관련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하느님의 계명 전체를 위반하는 삶을 살고 있음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먼저 도둑질, 살인, 간음, 거짓 맹세 대인(對人), 대사회적(對 社會的)인 신법<(神法; 신정법(神定法)>적 삶과 직결된 5계명 이하 10계명 전체를 아우르는 표현들이다. 아울러 이미 제시되는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 자신도 모르는 다른 신들을 따라간다 즉 섬긴다는 표현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들의 관계에 대한 계명으로  이해되는 제1계명~제3계명과 관련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하느님의 이름은 부르면서도 하느님께서 명하신 모든 계명에 역행하는 삶을 살아갔던 것이다.   즉 그들은 성전 예배를 통해서는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느님의 현존과 임재를 고백했지만, 일상 생활속에서는  하느님 없는 삶, 하느님을 무시하고 제거하는 삶을 살아갔던 것이다. 

한편, 이들이 범하는 다양한 죄악 가운데서 '바알에게 분향한다'는 표현은 그 죄악을 구체적으로 폭로하는 것이다. 우상의 이름을 제시하고 그들에게 무엇을 하였는지를 나타내준다. 여기서 제시된 '바알'(baal)은 문자적으로는  '주'(主),'자유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가나안 원주민에게 풍요다산(豊饒多産)을 가져다 주는 신으로 여겨졌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끊임없이 선민을 타락에 빠트린 대표적인 우상 숭배의 대상이다.

그리고 '분향한다' 로 번역된 '캇테르'(qater)'연기를 내다', '향을 태우다', '제물을 바치다' 라는 의미의 동사 '카타르'(qatar)의 강조 부정사로서 예배 행위 나타낸다. 이러한 예배 행위는 오로지 하느님께만 드려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민들은 바알을 위해 예배함으로써 하느님을 대적하고 모욕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알지 못하는, 모르는 다른 신들을 따라간다는 것 역시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여기서 남부 유다가 섬겼던 '다른 신들'을 수식하는 '모르는'이란 표현은 히브리어에서 가장 강한 의미의 부정어 '로'(lo)'알다', '이해하다' 란 뜻을 지닌 '야다으'(yadah)의 미완료형에, 남성 3인칭 복수 접미어 부착된 것으로서 '그들이 결코 알지 못한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사실 선민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삶의 역사 과정을 통해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체험했으며, 선조들을 통해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충분히 들어 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배반하여 알지도 못하는 우상을 숭배한 그들의 죄악은 실로 용납될 수도 없는 것이라고 하겠다.


주님의 기도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복음 (마태13,24-30)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때까지 둘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24-30) 

하늘나라(천국; 하느님의 다스림) '~하는 사람과 같다'는 의미를 가지고 하나의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방식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해설하는 데 있어서 'A는 B와 같은 경우와 유사하다'아람어의 관용적 형식을 따르고 있다고 J. Jeremias는 말한다.

여기서 '씨'로 번역된 '스페르마'(sperma; seed)'어떤 사물을 발생시키는 것'의미하는 히브리어 '제라'(zera)의 희랍어 역어로서 식물의 씨앗(창세1,11.12) 뿐만 아니라 후손을 번성케 하는 동물의 정액(레위15,16; 18,21) 이라는 뜻도 있다. 

신약성경에서 '스페르마'(sperma)43회 쓰였는데, 많은 경우에 하느님의 영적 기업을 상속으로 받게 되는 '계약(언약)의 후손'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마태22,24; 루카1,55; 사도3,25; 로마9,8; 갈라3,16; 히브2,16등등). 

이 비유에서도 '스페르마'(sperma)'좋은'('칼로스'; kalos)이라는  형용사의 수식을 받아 영적으로는 하느님의 기업을 유산으로 상속받게 될 '하늘나라(천국)의 자녀들'이라는 의미를 갖는다(마태13,38). 

'좋은 씨' '하늘 나(천국)의 자녀들'하느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이 세상에서 왕성한 생명력으로 번창해 나갈 것이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기 밭'에 해당하는 '토 아그로 아우투'(to agro autou; his field)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은 이 세상 혹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소유임을 보여준다. 

하느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이 세상과 더불어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한 인간은 원천적으로도 현상적으로도 하느님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지금도 이 세상을 돌보시고 가꾸시며 인간을 당신의 섭리 안에 두고 계신다. 

한편, 본문의 '그의 원수'에 해당하는 '아우투 호 에크트로스'(autou ho echthros; his enemy)는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인 '사람의 아들'(인자; 人子; 마태13,37)인 예수님의 원수'악마'(마귀; 마태13,39)를 가리킨다. 그리고 '가라지'로 번역된 '지자니아'(zizania; tares; weeds)의 원형 '지자니온'(zizanion)성장 기간에는 밀과 닮아 보이지만, 그 낟알에는 독소를 품고 있는 독보리를 가리키는 명사이다. 

흔히 밀밭에는 낟알이 약간 거무스름할 뿐, 쉽게 분별하기 힘든  독보리들이 성장하게 되는데, 밀 사이에 자라고 있는 독보리들은 그 뿌리가 밀의 뿌리에 엉켜있다. 그래서 독보리의 낟알이 검은 것을 보고 농부가 그 줄기를 잡아 뽑게 되면, 옆에 있는 밀 줄기까지 따라 뽑히게 된다(마태13,29). 따라서 경험이 많은 농부들은 추수 때까지 그 독보리를 그냥 놓아둔다(마태13,30).

본문에서 '지자니온'(zizanion)복수로 되어 있어서 마귀가 독보리를  수없이 많이 뿌렸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비유에서 이 수많은 독보리들은 '악마'(악한 자)의 자녀들을 상징하고 있다(마태13,38). 그런데 마태오 복음 13장 26절'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고 한다.

'열매를 맺을'에 해당하는 '카르폰 에포이에센'(karpon epoiesen)직역하면 '그것이 이삭 혹은 열매를 만들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그것이 만들다' '에포이에센'(epoiesen)의 주체는  마태오 복음 13장 24절의 '좋은 씨'이다. 

좋은 씨가 그 속에 배태하고 있던 생명으로 말미암아 좋은 이삭을 막 맺기 시작할 때, 가라지는 그 좋은 씨가 맺은 이삭과는 다른 이삭을 맺게 된다. 따라서 농부들은 줄기 끝에 맺혀 있는 이삭을 보고 가라지를 쉽게 구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열매를 보고, 그 나무의 정체를 알 수 있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마태7,16)과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어디서'로 번역된 '포텐'(pothen; from where)은 기원이나 근원을 캐는 부사로서 '어떤 장소로부터'라는 의미와 더불어 '어떤 존재(사람)로 부터?'라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마태13,54.56절). 여기서는 곡식 밭에 가라지를 덧뿌린 원수를 가리키므로, 장소보다도  사람의 의미로 쓰였다.   

'생기다'는 의미로 번역된 '에케이'(echei)'가지다','소유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에코'(echo)의 현재 능동형 3인칭 단수로서 '그것이 현재 ~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좋은 씨가 뿌려진 주인의 밭에서 가라지가 스스로 생겨나고 성장한 것이 아니라 외적 요인에 의해서 그 씨가 뿌려지고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것은 선(善)하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어떻게 악(惡)이 존재하며, 그 악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의 문제를 드러낸다. 

'원수가 그렇게 하였다' 

마태오 복음 13장 25절에서 '원수''호 에크트로스'(ho echtros)였는데, 여기 28절에서는 '에크트로스 안트로포스'(echtros anthropos)가 되었는데, 같은 실체인데 의미가 더 강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크트로스'(echtros)'증오받는', '가증한', '적대 감정을 가지고 있는'이란 의미의 형용사이며, '안트로포스'(anthropos)는 보편적인 '사람'을 의미하는 명사이므로 '에프트로스 안트로포스''가증한 사람', '집주인에게 적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바로 '악마'(마귀)를 뜻하는데,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심한 적대 감정을 가지고서, 그리스도의 선교와 구원 사업을 방해하고 분쇄하려고 자신에게 속한 자들을 심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저희가 ~거두다'(뽑다)는 의미로 번역된 '쉴렉소멘'(sylleksomen)의 원형 '쉴레'(syllego)'긁어 모으다'는 의미인데, '그릇에 담다', '열매를 따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여기서는 가라지의 윗부분을 잡고 '긁어 모어듯이 훑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를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종들은 영적 통찰력이 부족해 당장이라도 가라지를 훑어버리고 싶어하지만, 신적 통찰력을 가지신 하느님을 상징하는 집주인은 전후 모든 사정을 잘 알고서 그것을 원치 않는다고 '아니다'('ou'; '우'; no)라고 말한다. 

마태오 복음 13장 29절의 가라지를 '거두어 내다'(뽑다)는 의미로 사용된 '쉴레곤테스'(syllegontes)의 원형 '쉴레고'(syllego) 28절에도 쓰인 단어로서 '긁어 모으다', '모으듯이 훑어버리다'는 의미이다. 반면에 밀까지 함께 '뽑다'는 의미로 사용된 '에크리조세테'(ekrizosete)의 원형  '에크리조오'(ekrizoo)'뿌리째 뽑아버리다'는 뜻이다.  

가라지의 뿌리는 주변에 있는 밀의 뿌리와 너무나 얼키설키 엉켜 있어서 가라지의 목을 잡고 그것만 훑는다 해도 밀의 뿌리가 뽑혀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가라지를 훑으려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quot;‘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quot;


<가라지의 비유>송영진 모세 신부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마태 13,24-26).”


여기서 ‘밀’은 ‘하느님의 자녀’를, 또는 의인들을 뜻하고,
‘가라지’는 ‘악마의 추종자들’을, 또는 악인들을 뜻합니다(마태 13,38).
밀 가운데에 가라지가 섞여 있는 밭의 모습은,
의인과 악인이 섞여 있는 이 세상의 현실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악마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고 표현되어 있긴 하지만,
악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악인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에는 순수한 아기로 태어납니다.
그랬는데 살아가는 동안 악에 물들어서 악인이 되는 사람도 있고,
꾸준히 노력해서 의인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따라서 악마가 와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는 말은,
사람들에게 악한 영향을 미쳐서
‘밀’이 될 수도 있었던 사람들을 ‘가라지’로 바꾸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마태 13,27-28)”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라는 종들의 질문은 우리의 의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인간 세상의 여러 가지 악한 모습들을 보면서,
“처음에 하느님께서 만드실 때에는 좋았던 세상이 왜 이렇게 타락했을까?”
라고 물을 때가 있습니다.원수가(악마가) 그렇게 하였다는 주인의 대답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방해하는 악의 힘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인간들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악인이 되었다면 일차적인 책임은 그 자신에게 있습니다.
악마는 죄를 짓도록 유혹하거나 유도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죄는 인간들 자신들이 자신들의 의지로 짓는 것입니다.


“그것들을(가라지를) 거두어 낼까요?” 라는 질문은 우리의 심정을 나타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악’을 바로 제거해 버리고 싶은 심정.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마태 13,29-30).”


1) 주인의 대답은 “심판은 하느님만의 권한이다.” 라는 뜻입니다.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을 심판할 권한이 없습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마태 7,1).”


(옛날 중세 시대 때의 교회가 종교재판이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사람들을 심판하고 처벌한 일이 많았습니다.
그 일은 하느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죄를 지은 일입니다.
당시의 역사를 보면, 가라지를 뽑는다면서 밀까지 함께 뽑은 일이 많았습니다.
그 경우에 그 일은 사실상 박해였습니다.)


그런데 남을 심판하면 안 된다는 말은,
다른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을 내버려 두라는 뜻은 아닙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루카 17,3ㄴ).”
죄를 짓는 형제를 꾸짖는 일은,
그가 멸망당하는 것을 막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형제애’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악에 맞서서 싸우는 것도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만일에 다른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을 보면서도 내버려 둔다면,
또 세상의 불의와 악을 보면서도 침묵하거나 방관한다면, 우리도 공범이 됩니다.
(또는 사랑 실천을 하지 않은 죄를 짓는 일이 됩니다.)


2) 주인의 대답은 “회개할 때까지 기다리겠다.”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2베드 3,9).”


실제 농사일에서는 가라지가 밀로 변하는 일은 없지만,
인간 세상에서는 가라지 같은 사람이 회개해서
밀 같은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사형 제도를 반대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회개와 보속의 기회’를 주지 않고 사형시키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무기한’으로 기다리시는 것은 아닙니다.
기다리시는 것은 심판 때까지입니다.
그런데 심판이 언제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오늘일 수도 있고, 내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은,
‘밀 같은 사람’도 ‘가라지 같은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의인인 사람도 타락하면 악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랬다가 회개해서 다시 의인으로 회복될 수도 있고...)
중요한 것은 심판이 닥쳤을 때에, “의인으로서 하느님 앞에 서게 될 것인가,
악인으로서 서게 될 것인가?” 입니다.


그러니 “지금 나는 의인이다.” 라고 자만하면 안 됩니다.
(진짜 의인은 그런 말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자만심과 교만은 타락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교만한 바리사이들을 무척 싫어하셨습니다.


또 “나는 구제불능의 죄인이다.” 라고 포기해도 안 됩니다.
남을 심판해도 안 되지만, 자기가 자기를 심판하는 것도 죄를 짓는 일입니다.


죄의 근원, 자유 의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적그리스도, 그리고 죄의 종결 | 자유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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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7주간 화요일]가라지의 비유 (마태 13,36-43)16.07.26조회 50[7. 25 성 야고보 사도 축일]출세와 섬김 (마태 20,20-28)16.07.25조회 48[연중 제16주간 토요일] 밀과 가라지 (마태 13,24-30)16.07.23조회 51[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7. 22.](요한 20,1-2.11-18)16.07.22조회 88[연중 제16주간 목요일]하늘 나라의 신비 (마태 13,10-17)16.07.21조회 87[연중 제16주간 수요일]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마태 13,1-9)16.07.20조회 86[연중 제16주간 화요일]참가족 (마태 12,46-50)16.07.19조회 87[연중 제16주간 월요일] 요나의 표징 (마태 12,38-42)16.07.18조회 51[연중 제15주간 토요일]함구령 (마태 12,14-21)16.07.16조회 51[연중 제15주간 금요일] 배가 고파서 (마태 12,1-8)16.07.15조회 49[연중 제15주간 목요일]안식 (마태 11,28-30)16.07.14조회 88[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철부지 (마태 11,25-27)16.07.13조회 201[연중 제15주간 화요일]회개 하지 않으면 (마태 11,20-24)16.07.12조회 291[연중 제15주간 월요일] 칼(마태 10,34-11,1)16.07.11조회 55[연중 제14주간 토요일] 박해 (마태10,24-33)16.07.09조회 51[연중 제14주간 금요일]아버지의 영 (마태 10,16-23)16.07.08조회 59[연중 제14주간 목요일]파견 (마태10,7-15)16.07.07조회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