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간 월요일]안식일 (루카 6,6-11)

2016. 9. 4. 오후 6:5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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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월요일]안식일 (루카 6,6-11)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 사이에 불륜이 저질러진다는 소문에, 묵은 누룩을 치우고 새 반죽이 되어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으로 축제를 지내자고 권고한다. (1코린 5,1-8)
형제 여러분, 1 여러분 가운데에서 불륜이 저질러진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이교인들에게서도 볼 수 없는 그런 불륜입니다. 곧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산다는 것입니다. 2 그런데도 여러분은 여전히 우쭐거립니다. 여러분은 오히려 슬퍼하며, 그러한 일을 저지른 자를 여러분 가운데에서 제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3 나는 비록 몸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영으로는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는 것과 다름없이, 그러한 짓을 한 자에게 벌써 판결을 내렸습니다. 4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제 여러분과 나의 영이 우리 주 예수님의 권능을 가지고 함께 모일 때, 5 그러한 자를 사탄에게 넘겨 그 육체는 파멸하게 하고 그 영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6 여러분의 자만은 좋지 않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모릅니까?
7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8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시편 5,5-6ㄱㄴ.6ㄷ-7.12(◎ 9ㄴ)
◎ 주님, 당신의 정의로 저를 이끄소서.
○ 당신은 죄악을 좋아하는 하느님이 아니시기에, 악인은 당신 앞에 머물지 못하고, 거만한 자들은, 당신 눈앞에 나서지 못하나이다. ◎
○ 당신은 나쁜 짓 하는 자 모두 미워하시고, 거짓을 말하는 자를 없애시나이다. 피에 주린 자와 사기 치는 자를, 주님은 역겨워하시나이다. ◎
○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 모두 즐거워하며, 영원토록 환호하리이다. 당신 이름을 사랑하는 이들, 당신이 감싸시니, 그들은 당신 안에서 기뻐하리이다. ◎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냐며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신다. (루카 6,6-11)
6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제1독서 (1코린5,1-8)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었기 때문입니다."(7)  

교회 안에 죄를 방치하는 코린토 교인들의 잘못을 강한 어조로 책망하던 바오로가 본절에서 코린토 교인들에게 그들 자신이 누룩없는 자라는 것을 먼저 상기시킨다. 또한 새 반죽이 되기 위해서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라고 명령한다. 

 

6절에서 바오로는 당시 사람들에게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누룩과 관련한 속담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을 사용하여 교훈을 준 반면, 본절에서는 그 누룩을 파스카(유월절 ; 과월절 ; passover) 누룩과 연결시킨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빕월 14일부터 21일에 이르는 7일동안 무교절을 지키는데, 그때에는 누룩을 집안에서 완전히 제거하고, 누룩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탈출12,1-14 ;15-20 ;21-28 ;신명16,1-8) 이것은 출애굽을 기념하기 위한 그들의 축제요, 예식이었다.

출애굽 전에 하느님께서 모든 누룩을 제거하라고 명령하셨는데, 그것은 이집트에서의 우상 숭배와 모든 죄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탈출12,6.15.39 ;13,6 ;23,15 ;34,18 ;신명16,3)  이러한 행위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면서 이집트의 모든 죄들과 결정적 단절을 했다는 일종의 표시였다.  그들이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이집트에서의 죄악된 생활을 청산해야 했던 것이다.  

바오로는 바로 이러한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적 경험을 들어, 코린토 교회의 죄에 대한 반응에 대해 권면하고 있다. 

한편, '여러분은 ~ 입니다' 로 번역된 '에스테'(este)는 '~이다', '있다'를 뜻하는 '에이미'(eimi)의 현재 직설법이다. 또한, '깨끗이 치우고'로 번역된 '엑카타라테'(ekkatharate)'제거하다', '치워버리다' 라는 뜻을 지닌 '엑카타이로'(ekkathairo)의 부정(不定) 과거 명령법으로 즉각적이고 유효적인 강한 명령의 의미를 드러낸다. 즉 이것은 즉각적 조치를 명령하는 것이다. 

바오로의 윤리적 명령의 기본 구조의 특징 명령법이 직설법에 근거해 있다는 점이다.(로마 6,11-4.19) 바오로에게 있어서, 명령법은 불가능한 복종을 가능케 하는 근거를 밝히는 직설법을 배제하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

또한 직설법에 도덕적 순종을 요구하는 명령법이 결여될 경우, 직설법 자체의 의미는 약화된다. 그렇다면, 본문은 코린토 교회 전체가 한 사람 때문에 범죄의 소굴이 되기 전에, 당장 범죄한 그를 내보내라는 뜻임이 분명하다. 

이들이 그를 교회 공동체에서 내보냄으로써 교회의 거룩함과 순결함을 회복해야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범죄자, 교회 공동체에 악표양을 끼치는 자들에 대해, 교회가 제적시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의 거룩한 본성을 유지하기 위해, 암적 존재에 대한 정당한 징계가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코린토 교인들은 근친상간의 죄와 불륜의 죄, 기타 죄악들을 그들의 공동체에서 제해버림으로써, 새롭게 계약 공동체로서 자리매김을 해야한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파스카절이 시작되기 전에, 집에 있는 모든 누룩들을 샅샅이 제거하는 것처럼, 그들 모두는 각각 자신의 옛 생활의 잔재를 철저하게 파악하고 점검하여 제거하는, 거룩한 순결을 회복하기 위한 쇄신과 갱신 작업을 수행해야만 한다. 

그리고 코린토 교회 그리스도인 각자가 옛 삶의 잔재를 청산할 때에, 교회 전체가 갱신되어 하느님의 새로운 공동체가 된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바오로는 코린토 교인들을 향해 묵은 누룩(ten palaian zymen ; 텐 팔라이안 쥐엔 ; the old yeast/leaven)을 깨끗이 버리고 청산하는 목적이 '새 반죽이 되기 위함' 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여기서 '새 반죽'(neon phyrama ; 네온 퓌라마 ; a new batch/lump)죄를 상징하는 누룩이 없는, 영적으로 거룩하고 순결한 교회 공동체를 가리킨다. 이것이 거룩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속한 구성원들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바이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한번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새 반죽이 되는 것이 근본적으로는 명령법, 즉 '너희는 누룩없는 자들이 되라'가 아니라 직설법,'여러분은 누룩없는 빵입니다' 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코린토 교인들이 장차 미래에 누릴 완성된 상태나 이미 발생된 과거의 상태도 아닌, 지금 현재 그들이 누리고 있는 현재의 신분 상태를 지적하는 것이다. 여기에 근거해서, 그들의 현재 상태를 반성하고 누룩없는 상태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원문에는 원인이나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gar ; for)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본문은 묵은 누룩을 제거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본문은 코린토 교인들이 어떻게 누룩없는 자가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기능도 포함하고 있다. 

바오로는 본문을 통해 누룩으로 시작한 내용을 파스카 예식과 결합시킨다. 

파스카 예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구원받은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출애굽 당시 하느님이 내리신 재앙으로 이집트의 모든 맏아들들이 죽어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의 피를 징표로 목숨을 건졌다.(탈출12,1-14) 양의 희생적 죽음이 이스라엘의 생명을 구했던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적 성혈이 바로 모든 인류의 생명을 구원했던 것이다. 

이처럼 본절은 과거 파스카 절기의 의미를 영적으로 적용하여, 파스카 절에 이스라엘이 누룩을 제거하여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자신들이 구원받은 것을 기념했듯이, 파스카 양이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땅히 묵은 누룩이 상징하는 죄를 제거함으로써,영적으로 거룩하고 순결하게 되어야 한다고 권면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죄의 누룩이 없는 자, 즉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1코린2,15) 그리스도의 희생을 힘입어 새 생명을 얻은 자의 당연한 귀결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8) 

앞의 7절에서 그리스도를 파스카의 희생양으로 비유했던 바오로가  본절에서는 바로 그 축제를 지키라고 보다 직접적으로 권면한다. 

여기서 '축제를 지냅시다' 로 번역된 '헤오르타조멘'(heortazomen)'명절', '축제일' 뜻하는 명사 '헤오르테'(heorte)에서 유래한 동사 '헤오르타조(heortazo)현재 능동태 가정법으로, '우리가 그 축제(절기)를 계속해서 지키자' 라는 뜻을 나타낸다. 

사실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는, 구약의 율법과 의식 자체는 폐하고 그 의미만을 취하므로, 신약의 백성들은 구약의 파스카절 자체를 지킬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스카절을 준수할 것을 명령하는 것은 파스카절의 의미를 영적으로 적용하는 일을 계속하라는 의미이다. 

이에 대하여 바오로는 먼저 묵은 누룩, 곧 악의(malice)와 사악(wickedness)이라는 누룩으로 파스카절을 지내지 말라고 한다.  여기서 묵은 누룩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은 같은 의미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께 속하기 전에 가졌던 죄악된 습관을 말한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여 누룩없는 빵을 먹으며 파스카절을 지켰듯이, 그리스도의 구속 성혈의 공로로 죄악된 세상에서 구원받은 백성들 역시 '누룩'이 상징하는 과거의 죄악된 습성을 버림으로써, 자신이 얻은 구원을 기념하라는 것이다. 

한편, 바오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없는 빵을 취할 것을 명령한다. 여기서 '순결'이라 번역된 '에일리크리네이아스'(eilikrineias; sincerity)'햇빛'이란 뜻을 지닌 '헬레'(hele) '판단하다' 라는 뜻을 지닌 '크리노'(krino)의 합성어로서, 문자적으로는 '햇빛 아래서 판단하다' 라는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자주 '모범적인 행동'(착한 표양)을 의미한다. 

또한 '진실'로 번역된 '알레테이아스'(aletheias ;truth)는  부정 접두어 '아'(a)'숨기다', '감추다'라는 뜻을 지닌 '레도'(letho)의 합성어로 '감추지 않고 드러내다'란 뜻을 나타낸다. 

이렇게 바오로는 파스카절 '누룩없는 빵'의 성격을, 햇빛 아래서 판단하는 것과 또한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것과 같은 것으로 규정하여, 코린토 교인들이 과거에 죄악된 삶과 구별되는,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늘의 묵상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에 사람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율법의 모독자’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자신의 욕망과 이기심으로 주님을 배척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하느님께 손을 내밀고 그분의 뜻과 계획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완고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온유하심과 자비하심에 시선을 고정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당신을 ‘율법의 모독자’로 고발하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당신께서 율법의 주인이심을 당당하게 피력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규정에 얽매어 좋은 일을 하지 않고 목숨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법률은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드러내고 인간의 구원에 봉사하는 것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안에 머물지 않는 사람은 잘린 포도나무 가지처럼 말라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5,6). 말라서 오그라든 포도나무 가지와 오그라든 손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의 주인이신 예수님과 결합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영혼이 잘린 가지처럼, 오그라든 손처럼 병들게 됩니다. 그들은 악의와 사악이라는 묵은 누룩이 되어 영적인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옹졸해진 우리 마음을 치유하시도록 맡겨 드려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말씀이 있는 성화 그림


<안식일, 주일>송영진 모세 신부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루카 6,9)”


이 질문의 답은 하나뿐입니다.
“좋은 일을 하는 것과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다.”
안식일은 하느님의 거룩한 날이기 때문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면 안 되고,
목숨을 죽이는 일도 하면 안 됩니다.
그런 일은 안식일이 아닌 날에도, 즉 언제나 항상 ‘하면 안 되는 일’이고,
안식일에는 더욱더 하면 안 되는 일입니다.
(남을 해치고 죽이는 일을 해도 되는 날이란 없습니다.)

여기서 ‘합당하다.’ 라는 말의 뜻은,
“해도 된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입니다.
즉 안식일에는 좋은 일을 해야 하고,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안식일에 관해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엿새 동안 일을 하고, 이렛날에는 쉬어야 한다.
이는 너희 소와 나귀가 쉬고,
너희 여종의 아들과 이방인이 숨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다(탈출 23,12).”
“엿새 동안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렛날은 안식일, 주님을 위한 거룩한 안식의 날이니,
이 안식일에 일을 하는 자는 누구나 사형을 받아야 한다(탈출 31,15).”

이 말씀에서 ‘일’은 생계를 위해서 노동을 하는 것과
남에게 노동을 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안식일은 그런 ‘일’을 하면 안 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하루 벌어서 하루 먹는 사람들의 경우까지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말한 ‘생계를 위한 노동’은
안식일에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하느님의 명령과 예수님의 말씀을 합해서 생각하면,
‘좋은 일과 목숨을 구하는 일’은 ‘일’이 아닌 것이 됩니다.
이것은 ‘일’이 아니라 ‘사랑’이고 ‘선행’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신앙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인간 구원입니다.


사람들을 구원하고 보살피는 하느님의 사랑은
단 한 순간도 중단되지 않는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
(이 말씀의 뜻은, “아버지께서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보살피시니
나도 안식일에도 쉴 수가 없다.”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아무것도 안 한다면,
즉 선행과 사랑 실천도 안 한다면,
그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 지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보면,
예수님께서는 ‘좋은 일’과 ‘남을 해치는 일’을 대립시키셨고,
또 ‘목숨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을 대립시키셨습니다.
이것은 좋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과 같고,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죽이는 것과 같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선행과 사랑 실천을 안 하는 것 자체가 악이고, 죄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경축하기 위해서
안식일 대신에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 다음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은 주간의 마지막 날, 즉 토요일입니다.
주일, 즉 일요일은 안식일 다음날이고 주간의 첫날입니다.
그래서 주일은 주말이 아니라 주초입니다.)
우리가 안식일 대신에 주일을 지키고 있지만 정신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주일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거룩한 날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지내야 하는 날입니다.


‘거룩하게’ 지낸다는 말의 뜻을 단순하게 생각하면,
‘세속적으로 지내지 않는다.’, 또는 ‘세속 사람들과 다르게 지낸다.’입니다.
따라서 주일을 지내는 모습이 세속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면,
또는 세속적으로 지낸다면, 그것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닌 것이 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것은
주일 하루를 온전히 거룩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미사 참례를 하는 시간만 거룩하게 지내고
그 나머지 시간은 거룩하게 지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 미사 참례를 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주일 전체를 거룩하게 지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사 참례는 당연히 해야 하고, 그 나머지 시간도 거룩하게 지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주일 미사 참례만으로 주일을 지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거룩한 모습’이 미사 시간 전후로 겨우 두 시간 정도만 유지되고,
그 나머지 시간 동안에는 거룩한 모습을 잃어버린다면,
‘주님의 날’을 거룩하게 지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주님의 날’은 결코 ‘노는 날’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욱더 실천하는 날입니다.
물론 그 실천은 주중에도 늘 해야 합니다.
‘주님의 날’에는 더욱더 제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꼭 주일날 하루 종일 성당에서 기도만 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주일만 되면 무조건 하루 종일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형편과 처지에 맞게 거룩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면 됩니다.
최소한 세속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지내야 합니다.
가족들과 휴식을 취하더라도, 친구들을 만나서 친교를 나누더라도...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6,6-11)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8)

루카 복음 6장 8절의 서두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마르코와 마태오가 표현하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그들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아셨다고 기록한다. 여기서 '아시고'로 번역한 '에데이'(edei; knew)'알다'라는 동사 '오이다'(oida)의 과거 완료로서 이미 완료된 동작의 남은 결과의 상태가 유지되고 있음을 뜻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엿보고 있었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생각을 이미 아셨다는 것을 말한다.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루카 복음 6장 7절에 밝혀져 있듯이 예수님을 책잡아 고발하려는 불순한 음모였다. 

루카 복음사가는 아마도 사람들의 생각을 예수님께서 신적인 통찰력으로 간파하고 계셨음을 강조하고 싶어서 독자적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고 말씀하신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예수님을 고발하려는 구실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무리들 가운데에 자신들을 숨기고 있는 반면에, 이 사실을 간파하신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병을 고치는 행위를 그들이 잘 볼 수 있도록 그를 사람들이 있는 한가운데로 서게 하신다. 

악한 목적을 가진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자신을 숨기고 있지만, 선을 행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공개적으로 행하신다. 

예수님께서 공개적 치유를 행하신 것사람들로 하여금 안식일의 올바른 의미를 깨닫도록 가르치시기 위한 목적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이러한 행위가 적대자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킬 것을 알고 계셨지만, 조금도 위축되지 않으시고 당신께서 하실 일을 당당하게 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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