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간 토요일]안식일의 주인(루카 6,1-5)

2016. 9. 3. 오전 7:2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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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간 토요일]안식일의 주인 (루카 6,1-5)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540년 무렵 로마의 부유하고 신심 깊은 가문에서 태어났다. 법학을 비롯한 귀족 계층의 고등 교육을 받은 그는 로마의 고위 공직자를 지낼 정도였으나 모든 재산을 교회에 기증하고 수도원에 들어가 사제가 되었다. 590년에 교황으로 뽑힌 그레고리오 성인은 교황을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고 표현한 최초의 교황이다. 교황권을 ‘지배하는 특권’이 아니라 ‘봉사하는 특전’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도 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듯이, 그레고리오 교황은 전례 음악뿐 아니라 신앙과 윤리에 관한 저서를 많이 남기고 604년에 세상을 떠났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슬기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1코린 4,6ㄴ-15)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6 ‘기록된 것에서 벗어나지 마라.’ 한 가르침을 나와 아폴로에게 배워, 저마다 한쪽은 얕보고 다른 쪽은 편들면서 우쭐거리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7 누가 그대를 남다르게 보아 줍니까?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인 양 자랑합니까?
8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제쳐 두고 이미 임금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임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임금이 될 수 있게 말입니다.
9 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사도들을 사형 선고를 받은 자처럼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것입니다.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슬기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여러분은 강합니다. 여러분은 명예를 누리고 우리는 멸시를 받습니다.
11 지금 이 시간까지도,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고 12 우리 손으로 애써 일합니다. 사람들이 욕을 하면 축복해 주고 박해를 하면 견디어 내고 13 중상을 하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쓰레기처럼, 만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14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런 말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나의 사랑하는 자녀로서 타이르려는 것입니다. 15 여러분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끌어 주는 인도자가 수없이 많다 하여도 아버지는 많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내가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비벼 먹는 것을 보고 바리사이들이 비난하자,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신다. (루카 6,1-5)
1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2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5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제1독서 (1코린4,6ㄴ-15)

"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사도들을 사형 선고를 받은 자처럼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것입니다."(9) 

코린토 1서 4장 9절부터 13절 까지사도들의 끝없는 고난과 겸손을 열거하여 코린토 교인들의 교만을 간접적으로 책망하는 내용이다. 

먼저 사도 바오로는 당시 사도들의 상태를 '하느님께서는 우리 사도들을 사형 선고를 받은 자처럼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로 번역된 '에스카투스'(eschatus; last; at the end of the procession)시간적으로 마지막인 것을 나타낼 때 혹은 서열상의 마지막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에스카토스'(eschatos)의 복수형으로서 사도들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낮은 자리에 처해 있음을 나타내준다. 

이것은 결코 사도 바오로의 겸손을 나타내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이것은 흔히 사도 바오로가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자'(1코린15,9), '모든 성도들 가운데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자'(에페3,8),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 (1티모1,15)이라고 말한 것과 비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사도 바오로와 다른 사도들이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 고통과 모욕과 조롱을 당하는 가장 낮은 자리에 실제로 처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구경거리'로 번역된 '테아트론'(theatron; a spectacle)극장과 같이 구경거리가 있는 장소를 뜻하는 말로서(사도19,29.31),'사형 선고를 받은 자'라는 표현에서도 암시되는 것처럼 그들이 당시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들에게 찢겨 죽어간 죄수들 처럼 조롱을 받으며 극한 고통 가운데 있었음을 나타낸다. 

즉 어떤 공휴일에 원형 극장으로 가는 장엄한 행렬 마지막 줄에 사형수들이 있고, 그 사형수들이 원형 극장에 들어서면 구경꾼들이 즐거워 소리치는 그런 장면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세우셨습니다'로 번역된 '아페데익센'(apedeiksen; has put; has set forth)'전시하셨다','쇼를 보여 주셨다','장면으로 두셨다'라는 뜻을 지닌 '아포데익뉘미'(apodeiknymi)의 부정 과거형인데, 이것 또한 원형 극장에서 맹수들과 싸우다가 죽기로 되어 있는 사형수(1코린15,32), 또는 어느 한 편이 반드시 죽어야 하는 로마 시대의 '검투사'(gladiator)의 이미지와 결부가 된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사도들을 원형 극장의 그 치욕스러운 피날레로 삼으신 것으로 인식했다고 본다. 

이렇게 사도들은 마치 죽음에 그냥 방치된 것 같은 보잘 것 없음으로 온 세상의 구경거리와 조롱거리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코린토 교인들은 부요함과 배부름, 교만함으로 가득 차 왕노릇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복음 (루카6,1-5)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5) 

루카 복음사가는 마르코 복음 2장 27절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략하고 있다. 

또한 마태오 복음에서 장황하게 기록된 안식일에 대한 해설 부분인 마태오 복음 12장 1~8절도 생략했다. 

이것은 루카 복음사가에 있어서 안식일 규정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지 않았던 이방인 독자들에게 안식일 규정을 깊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것을 생략하고 예수님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인 것만을 나타내어도 제자들의 행위가 충분히 변호되기 때문이다. 

본절과 관련지어 연상되는 레위기 23장 3절에 의하면, 안식일은 주 하느님께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안식일의 소유권을 메시야인 자신에게 귀속시키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의 권한을 월권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즉 '인자'(人子)가 곧 안식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암시한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잘못 해석하여 사람들에게 무의미한 형식적 규정으로 무거운 짐을 지운 바리사이들에게 올바른 권위로 책망하실 수 있는 것이다. 

원문을 보면, '인자'에 해당하는 '호 휘오스 투 안트로푸'(ho hyos tu anthropu; the Son of Man) 앞에 '안식일'이란 뜻을 가진 '투 삽바투'(tu sabbatu; of the sabbath)를 먼저 기록하고 있다.  

희랍어에서는 언제나 강조하고자 하는 단어를 문두에 두는 경향이 있다. 루카 복음사가도 본문에서 쟁점이 바로 '안식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인자'보다 앞에 둔 것이다.



2016년 9월 3일 다해 연중 제22주간 토요일(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다.>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루카 6,1-3)”


마태오복음을 보면,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마태 12,1).
바리사이들은 밀 이삭을 뜯어 먹은 제자들의 행동만 보았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배고픔을 보셨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행동을 변호해 주시는 것은,
당신의 제자들이라서 그러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배가 고파서 그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바리사이들이 말하는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은
‘곡식 추수’를 뜻합니다.
밀 이삭 몇 개를 뜯어 먹은 것을 곡식 추수로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 지나친 것 같지만,
바리사이들의(아마도 대부분의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이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윗의 일을 예로 드신 것은
배가 고파서 율법을 어겼다는 사정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내 제자들은 안식일을 어기지 않았다.”가 아니라,
“내 제자들이 안식일을 어긴 것은 맞지만 죄인이라고 판단하지 마라.”입니다.
마태오복음을 보면,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 본 적이 없느냐?(마태 12,5)” 라는 말씀이 더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밀 이삭 몇 개를 뜯어 먹은 것도 곡식 추수에 해당된다는
바리사이들의 생각을 반박하거나 비판하지 않으셨습니다.
(밀 이삭 몇 개 정도는 뜯어 먹어도 된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지금 예수님의 말씀은,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 보지 말고,
왜 그랬는지 사정을 먼저 살펴보라는 가르침입니다.
(변론 기회도 주지 않고
무자비하게 유죄 선고를 내리면 안 된다는 가르침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상황을 오늘날의 교회에 적용하면,
주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꾸짖기 전에 먼저
왜 그랬는지 사정을 들어보라는 가르침이 됩니다.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고 쉬면 그날 하루를 굶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주일을 지키지 못한 것을 탓할 수가 없습니다.
아파서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면,
또 군인이나 경찰처럼 특수한 직업이라서 주일을 지킬 수 없었다면,
마을 전체가 품앗이를 하게 되는 농번기 때에 혼자서만 빠져나올 수 없었다면...
주일을 안 지킨 것은 사실이지만 죄를 지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변호해 주신 다음에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루카 6,5).” 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은, 어떤 사람을 구원하거나 단죄하는 것은 당신의 권한이라는 선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을 심판하려고 오신 분이 아니라,
구원하려고 오신 분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7).”


따라서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라는 말씀은,
“율법의 적용은 ‘구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라는 뜻이 됩니다.
(어기는지 어기지 않는지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다가
누가 어기기만 하면 바로 처벌하는 식으로 율법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가르침.)
그래서 이 말씀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라는 말씀과 뜻이 같습니다.


원래 계명들과 율법들은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내려주신 보호 장치들입니다.
그러나 인간들 쪽에서, 특히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 쪽에서
사람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힘없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계명들과 율법들이 족쇄가 되기도 하고 멍에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이 기쁨 없는 고역으로 변해버립니다.
그것은 결코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내용을 반대로 생각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해서
“이것은 죄가 되지 않는 경우이니 안식일을 어겨도 된다.” 라고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 교회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주일을 지키지 못했을 때,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가지 제시해 놓고 있는데,
그 ‘부득이한 사정’을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면, 몸이 정말로 아픈 것이 아니라 조금 불편한 정도일 뿐인데도
몸이 아파서 못 지켰다고 주장한다면?
다른 사람은 판단하기가 어려우니까 그것은 결국 그 자신의 양심 문제가 됩니다.


만일에 제자들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고팠던 것이 아니라,
조금 시장기를 느끼는 정도였는데도 밀 이삭을 뜯어 먹었다면?
그랬다면 바리사이들이 시비를 걸기 전에 먼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꾸짖으셨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계명들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바리사이들 같은 율법주의자가 되면 안 되지만,
너무 흐트러진 모습으로,
또 사랑과 정성이 부족한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올바른 모습은 아닙니다.
참으로 하느님(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정성을 다 쏟아서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요한 14,21).

2015년 9월 5일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기록된 것에서 벗어나지 마라.” 하고 훈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그리스도의 신비를 전하는 사도들의 가르침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코린토 신자들은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 있었지만 오만함과 허영심에 가득 차 공동체의 분열을 일으켰습니다.

 바오로 사도와 아폴로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는 하느님의 종에 지나지 않으니 어느 가르침이 훌륭한지를 따질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겸손과 사랑을 지니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안식일 규정의 참뜻은 사람들의 구원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오신 메시아,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지 말라는 금지 규정보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더 중요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안식일에 율법의 주인이신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것이 안식일 규정의 근본정신입니다.

다윗과 그 일행이 제사 빵을 먹은 행위는 율법을 어긴 행위로 볼 것이 아니라 율법의 근본정신 곧 이웃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먹어야 할 정도로 배가 고팠습니다.

제자들은 가난했지만 예수님 말씀의 참뜻을 따르려고 애썼습니다.

예수님의 권능으로 부자가 되려는 허영심을 버리고 죄의 용서와 화해의 가르침을 전하려고 힘썼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몫은 하느님의 뜻과 사랑, 영적인 자유 안에 머무는 삶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 기록된 것에서 벗어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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