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간 화요일] 마귀의 영 (루카4,31-37)

2016. 8. 30. 오전 5: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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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간 화요일]  마귀의 영 (루카4,31-37)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기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 1코린 2,10ㄴ-16)
형제 여러분, 10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11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아니고서야,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12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13 우리는 이 선물에 관하여, 인간의 지혜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말로 이야기합니다.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15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습니다. 16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시편 145(144),8-9.10-11.12-13ㄱㄴ.13ㄷㄹ-14(◎ 17ㄱ)
◎ 주님은 가시는 길마다 의로우시네.
○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네.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며, 그 자비 모든 조물 위에 내리시네. ◎
○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
○ 당신의 위업과 그 나라의 존귀한 영광, 사람들에게 알리나이다. 당신의 나라는 영원무궁한 나라, 당신의 통치는 모든 세대에 미치나이다. ◎
○ 주님은 말씀마다 참되시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넘어지는 누구라도 주님은 붙드시고, 꺾인 이는 누구라도 일으켜 세우시네. ◎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다가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을 권위 있는 말씀으로 치유하시자 모두가 놀란다. (루카 4,31-37)
그때에 3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32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3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34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3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36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37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제1독서 (1코린2,10ㄴ-16)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10ㄴ) 

원문에는 원인인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gar)가 포함되어 있어 본문은 성령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의 비밀스런 지혜를 열어 보이실 수 있는 이유 및 근거를 제시하고 있음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하느님의 지혜를 보이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령께서는 모든 것, 곧 하느님의 깊은 비밀(경륜)까지도 통찰하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통찰하십니다'로 번역된 '에라우나'(erauna)는 '탐색하다','탐구하다','주의깊게 조사하다'를 뜻하는 '에류나오'(ereunao)의 현재형이다. 이 동사는 고대 검사관의 보고서에 주로 등장하는데, 여기서 파생된 '에라우네타이'(eraunetai)가 바로 세관 업무를 보는 '검사관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로마서 8장 27절에서는 바로 이 동사가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까지 살펴 보신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깊은 것을 완전하게 아시는 분이심이 분명하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는 이 동사를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시제인 현재형으로 씀으로써, 성령께서 통찰하시는 그 일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사도 바오로에 따르면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신다. 

여기서 '깊은 비밀' 이라고 번역된 '바테'(bathe)는 '깊이', '깊음'(로마8,39) 혹은 '충만'(2코린8,2)을 뜻하는 '바토스'(bathos)의 목적격으로서 인간이 감히 예측할 수 없는 깊고 풍성하신 하느님의 비밀을 의미한다 (묵시2,24; 로마11,33 비교). 

사도 바오로는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시는 성령께서 인간으로서는 아무리 노력하여도 알 수 없는 하느님의 심오한 뜻과 속성, 하느님의 구원과 은총의 계획들을 완전히 이해하고 계시므로, 하느님의 지혜를 드러내기에 충분한 능력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즉 본문은 하느님의 오묘하신 뜻과 섭리는 제3위 하느님으로서 하느님과 온전히 하나되시는 성령만이 알 수 있고, 또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복음 (루카4,31-37)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34)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드러나신 후에 출신지인 나자렛도 존귀한 지명이 되었다(사도3,6). 그러나 아직 예수님의 메시야로서의 활동이 드러나지 않았던 때에 나자렛은 유다인에 의해 경멸받던 지명이었다(요한1,46). 

따라서 마귀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께서 나자렛 출신이라는 사실을 크게 떠든 것은 예수님의 권위를 실추시키려는 의도가 역력한 것이며, 이것은 갈릴래아를 대표할 수 있는  큰 도시였던 카파르나움 고을 사람들에게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간교하고 사악한 방법이었다. 

'아!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마귀들린 사람의 화두에 있는 감탄사 '에아'(ea; Ah!)는 신약 성경에서 여기에만 유일하게 쓰인 독특한 용어이며, 두렵고 위협적인 존재이신 예수님의 출현으로 인해 자신의 입지가 위협을 받게 된 마귀의 놀라움과 두려움, 혐오감과 적대감 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원문의 '에아, 티 헤민 카이 소이'(ea, ti hemin kai soi)'Ah, what do you want with us?'(당신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라는 뜻이며, '에아'(Ea; Ah!)를 굳이 번역하자면 '우리들을 홀로 두소서'(Let us alone)라는 뜻이다. 

이것은 예수님과 더러운 마귀의 영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므로, 우리를 괴롭히지 말라는 뜻이다(여호22,24; 판관11,12; 1열왕17,18). 또한 여기서 더러운 마귀의 영은 자신들을 가리켜 '저희'(우리)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이 표현에 대해 마귀가 마귀들린 자와 자신을 복수 위격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고, 마귀의 영에 들린 사람의 입을 빌어 말하는 마귀가 하나가 아닌 여럿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이것은 문법적으로 의문문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고 조롱하며 자신을 방어하는 투의 문장으로 보아야 한다.  영적으로 상당한 지력을 지녔던 마귀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사탄의 권세를 꺾어서 죄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고통당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다(마르코2,10; 1요한3,8).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는 메시야가 오시면 모든 악한 영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라는 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 

여기에 해당하는 '호 하기오스 투 테우'(ho hagios tu theu; the Holy One of God)는 루카 복음 4장 33절'더러운 마귀의 영'('프뉴마 다이모니우 아카타르투'; pneuma daimoniu akathartu; an unclean devil spirit)대조되는 개념으로서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정학하게 드러내는 표현이다. 

이것은 구약 성경하느님께 대해 사용'거룩하신 분'(이사40,25; 57,15)이라는 표현과 초대 교회에서 예수님께 대해서 사용'거룩하신 이'(사도21,27; 3,4; 4,27)라는 표현과도 통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에 사람들은 아직 예수님께서 메시야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상당한 수준의 영적 지각력을 갖추었던 마귀들은 이미 이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예수님 앞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자는 예수님을 '안다'고 소리친다. 여기서 '압니다'에 해당하는 '오이다'(oida; I know)능동태 완료 동사이다. 그 사람 안에 들어 있는 마귀는 예수님을 알되, 예전부터 그리고 능동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영적 존재인 마귀는 예수님께서 육화(강생)하시기 이전부터 알고 있었으며, 자신의 직접적인 지식으로 알고 있었다

예수님께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그 지식에 기초하여 정확한 고백은 했지만, 본질적으로 부정하고 더럽고 악한 존재인 마귀는 거룩하시고 정결하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순종하지도 않기 때문에, 결국은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오늘날도 적지 않은 신학자들을 비롯해서 많은 신앙인들이 이러한 마귀의 지식과 유사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연구와 배움을 통해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잘 알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 중에는 예수님을 믿지도 순종하지도 않는 자들도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지식이 어떻게 그를 구원으로 인도하며 영신적 유익을 주겠는가? 

야고보서 2장 19절에는 '그대는 하느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습니까?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라고 나온다. 그리고 잠언 1장 7절에도 '주님을 경외함은 지식의 근원이다. 그러나 미련한 자들은 지혜와 교훈을 업신여긴다.'라고 나온다.

우리는 신앙이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고, 주님을 경외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께 대한 올바른 지식과 앎을 기초로 해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며, 마음으로부터 영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고 예수님의 인격을 닮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음성강론』?2012년 9월 4일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루카 4,31-37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 말씀의 힘>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루카 4,31-32).”


여기서 ‘권위’ 라는 말은 ‘힘’으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라는 말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서 어떤 ‘힘’을 느끼고 몹시 놀랐다는 뜻이 됩니다.
그들은 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초자연적인 힘을 느꼈던 것입니다.


카파르나움 사람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 힘을 느꼈는데,
예수님께서 말씀만으로 마귀를 쫓아내실 때 그 힘을 직접 목격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루카 4,35-36).”


여기서 ‘권위와 힘’이라는 말은,
마귀들이든지 인간들이든지 간에 피조물이라면 복종할 수밖에 없는
하느님의 권위와 하느님의 힘을 뜻합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루카 24,19).”


사람들이 느낀 ‘예수님 말씀의 힘’은 ‘하느님의 힘’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이신 분이고,
동시에 하느님이신 분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예수님께서 말씀만으로 병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시고, 바람과 호수를 고요하게 만드신 일들은 모두
당신의 말씀에 ‘하느님의 힘’이 있음을,
즉 당신이 하느님과 같은 분이라는 것을 드러내신 일들입니다.


제자들은 처음에는 이런 반응을 보였습니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물에게 명령하시고 또 그것들이 이분께 복종하는가?(루카 8,25)”
(그때에는 아직 예수님을 하느님이라고 믿기 전이었습니다.)
여기서 “이분이 누구시기에?”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분은 하느님이시다.”입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고 있고,
예수님 말씀의 힘도 믿고 있습니다.
이 믿음은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들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하느님의 힘이 있다고 믿는 것은 곧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들은 틀림없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몇 가지만 보겠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0,39).”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4).”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요한 15,4).”


이런 약속들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고,
우리는 이 약속이 틀림없이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는 경우도 많고,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치인들의 공약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기를 뽑아주면 여러 가지 일들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했으면서도
당선된 뒤에는 전혀 지키지 않는 정치인들을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았고,
지금도 보고 있습니다.
(그런 정치인의 말은 말이 아니라, 말장난입니다.)


또 가족에게, 연인에게, 친구에게, 동료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거나,
약속한 것을 안 지키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깨지고, 관계가 깨집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과 우리 사회의 기반이 흔들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상황.)


신앙인으로서 행하는 서약들은 모두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입니다.
세례성사 때의 서약, 혼인성사 때의 서약, 또 고해성사 때의 다짐도...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 서약하는 경우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약속을 믿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약속을 믿으실까?
지금 우리는 그런 서약들을 얼마나 충실하게 지키고 있는가?
(또는 충실하게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물론 못 지킨 것과 안 지킨 것은 구분해야 합니다.
정말로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불가항력적인 상황이어서 못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안 지켰다고 자책하는 사람도 많지만,
자기가 안 지켰으면서도 못 지켰다고 변명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겉으로는 그게 잘 표시가 안 나도, 예수님께서는 다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약속하시는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불충실한 신앙인들이 당하게 될 일들을 경고하시는 말씀도 많이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경고 말씀들도 틀림없이 이루어질 약속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마태 24,35).”



오늘의 묵상

모든 분야에는 제각기 전문가가 있습니다. 과학, 철학, 음악, 경제, 문화 등 분야별로 전문가가 있지요. 그 전문가들이 자기 본연의 일에 정통하고 충실할 때 권위가 있게 마련입니다.
참된 권위는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내면에서 나와야 합니다. 신앙인에게 권위 있는 자세란 오로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영적인 힘으로 가득 차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이는 나 자신이 전적으로 하느님의 도구가 될 때에야 가능하지요. 나의 입을 빌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고, 나의 손을 빌려 하느님께서 활동하시도록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권위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마귀마저 굴복시키십니다. 말씀이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영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지니신 권위는 메시아로서의 권위이지요. 이 세상 모든 생명과 질서를 주관하시는 분으로서의 권위입니다. 그러기에 마귀 들린 사람까지도 다 치유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도 참된 권위를 지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입을 통해 말씀하시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좋은 방법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지요. 적은 분량이라도 날마다 꾸준히 성경을 읽고 묵상한다면 어느새 우리는 하느님 말씀에 관한 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참된 권위로 무장되어 있을 것이 아닙니까? 그럴 때 그 어떠한 악의 세력도 우리 안에 침투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2014년 9월 2일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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