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등경 위 등불 (루카 8,16-18)

2016. 9. 19. 오후 2:5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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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등경 위  등불 (루카 8,16-18)

잠언의 저자는, 선행을 거절하지 말고 악을 지어내지 말라며, 주님께서는 의인에게 복을 내리신다고 가르친다. (잠언 3,27-34)
내 아들아, 27 네가 할 수만 있다면, 도와야 할 이에게 선행을 거절하지 마라. 28 가진 것이 있으면서도 네 이웃에게, “갔다가 다시 오게, 내일 줄 테니.” 하지 마라.
29 이웃이 네 곁에서 안심하고 사는데, 그에게 해가 되는 악을 지어내지 마라. 30 너에게 악을 끼치지 않았으면, 어떤 사람하고도 공연히 다투지 마라. 31 포악한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고, 그의 길은 어떤 것이든 선택하지 마라.
32 주님께서는 비뚤어진 자를 역겨워하시고, 올곧은 이들을 가까이하신다. 33 주님께서는 악인의 집에 저주를 내리시고, 의인이 사는 곳에는 복을 내리신다.
34 그분께서는 빈정대는 자들에게 빈정대시지만, 가련한 이들에게는 호의를 베푸신다.


시편 15(14),2-3ㄱ.3ㄴㄷ-4ㄱㄴ.5(◎ 1ㄴ 참조)
◎ 주님, 의로운 이는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지내리이다.
○ 흠 없이 걸어가고, 의로운 일을 하며, 마음속 진실을 말하는 이, 함부로 혀를 놀리지 않는 이라네. ◎
○ 친구를 해치지 않으며,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이라네. 그는 악인을 업신여기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존중한다네. ◎
○ 이자를 받으려 돈놀이 않으며, 죄 없는 이를 해치는 뇌물 받지 않는다네. 이 모든 것 행하는 그 사람, 영원토록 흔들림 없으리라. ◎


예수님께서는 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며,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라고 가르치신다. (루카 8,16-18)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17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18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제1독서 (잠언3,27-34)

"주님께서는 비뚤어진 자를 역겨워하시고, 올곧은 이들을 가까이 하신다.  주님께서는 악인의 집에 저주를 내리시고, 의인이 사는 곳에는 복을 내리신다.  그분께서는 빈정대는 자들에게 빈정대시지만, 가련한 이들에게는 호의를 베푸신다."(32~34) 

'주님께서는 비뚤어진 자를 역겨워하시고, 올곧은 이들을 가까이 하신다.' (32) 

잠언 3장 32절 이하 35절은 지혜로운 삶의 필수 요소로서 이웃사랑이라는 선한 인간 관계를 권장하는 솔로몬의 제6설교(3장27~35절)의 마지막 문단이다. 여기서 솔로몬은 적극적 선행의 실천(27~28절)과 이웃을 향한 분쟁과 포악금지(29~30절) 명령의 이유를 열거하며 인간 관계의 기본 자세를 권장한다. 

잠언 3장 32절이하 35절은 앞선 명령의 이유를 제시하는 부분인데, 이것은 32절이 '왜냐하면 ~ 때문이다'란 이유의 접속사 '키'(ki)시작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먼저 본절에서는 솔로몬은 올곧은 이(정직한 자) 비뚤어진 자를 대비시키며 그들의 하느님과의 관계를 설명해 주고 있다. 여기서 '올곧은 이'에 해당하는 '예샤림'(yesharim)의 원형 '야사르'(yashar)'곧다'(에제1,7), '바르다'(잠언14,12)라는 뜻이다.  

이것은 '거짓됨에서 떠난 자'란 의미도 있으나 하느님이나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비뚤어진 자'에 해당하는 '날로즈'(naloz; froward)의 원형 '루즈'(luz)'굽히다', '구부리다'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앞의 '올곧은 이'와 정반대로 하느님이나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릇된 자세를 가리킨다. 완고하고 다루기 힘든 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본단락은 주로 인간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양자는 인간 관계에서 상반된 태도를 가진 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중에 '올곧은 이'는 주님과의 관계가 '친교'의 관계로 맺어져 있는 반면에 '비뚤어진 자'는 주님의 '증오'의 대상으로 언급된다. '올곧은 이'와 주님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가까이 하신다'라는 의미로 번역된 '쏘도'(sodo)의 원형인 '쏘드'(sod)'가깝다'(욥기19,19), '사귀다'(시편25,14)로도 번역되는 단어로,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친밀한 우정과 교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태 가리킨다(욥기29,4; 아모3,7). 

반면에 '비뚤어진 자'와의 관계를 말하는 '역겨워 하다'라는 의미로 번역된 '토아바트'(thoabath)의 원형 '토예바'(thoebah)'혐오스러운 것', '구역질나는 것', '몹시 싫어하는 것', '증오'등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이것은 '비뚤어진 자'(완고한 자, 옹고집)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의노)가 얼마나 큰가를 잘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만왕의 왕이신 하느님께서 이러한 의노(義怒)의 마음을 가지고 계시므로  이들은 필연적으로 멸망할 수 밖에 없다. 솔로몬은 이와같이 '비뚤어진 자'와 '올곧은 이'에 대한 하느님의 태도를 비교함으로써, 젊은이들로 하여금 인간 관계에 있어서 '올곧은 이'로서의 정직한 삶을 살도록 촉구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악인의 집에 저주를 내리시고,  의인이 사는 곳에는 복을 내리신다.'(33) 

앞선 32절에서는 비뚤어진 자와 올곧은 이에 대한 하느님의 상반된 태도를 제시함으로써 인간 관계에 있어 올곧은 이의 삶을 촉구했던 솔로몬이 33절에서는 악인의 집과 의인이 사는 곳에 각각 임하는 주님의 저주와 축복을 제시함으로써 의인의 삶을 살 것을 촉구하고 있다.

원문으로 보면, '악인의 집' '의인이 사는 곳' 문장 가운데 배치되어 강조되는 교차 대구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악인의 '집'을 나타내는 용어와 의인이 '사는 곳' 나타내는 용어가 각기 다르다. 전자는 사람이 거주하는 장소인 가옥을 나타내는 '빠이트'(bait; house)가 사용된 반면, 후자'나웨'(nayeh; home, habitation)란 용어가 사용되었다. 

'나웨' '쉬다'라는 뜻의 동사 '나와'(nawa)에서 유래된 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유목 생활의 터전이었던 목초지를 의미한다. 후자에 대하여 이러한 용어가 사용된 것은 의인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가족 구성원을 넘어서 그들의 산업에 까지 미치게 됨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한편, 악인의 집에는 주님의 저주가 내리는데, 여기서 '저주를 내리시고' 번역된 '메에라트'(meerath)의 원형 '메에라'(meerah)외적 파멸 뿐만 아니라  내적 파멸까지 포함하여 악인을 아예 땅에서 멸절되게 하시는 (신명28,20) 것을 나타낸다. 

반면에 의인이 사는 곳에 임하는 복을 나타내는 '복이 내리신다' 해당하는 '빠라크'(barak)구약 성경에서 복이 주어짐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동사로서 (창세27,27) 영적인 복과 물질적인 복 모두가 내림을 가리킨다. 본문에서는 산업에 내리는 물질적인 축복을 포괄하기 위하여 이 용어가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원문으로 이와 대응을 이루는 '주님께서~저주를 내리시고' 해당하는 '메에라트 예흐와'(meerath yehwah)는 명사 연계형과 고유 명사가 함께 쓰인 형태로서 동사가 사용된 후반절과 대조를 이룬다. 

이것은 악인의 집에 주님의 저주가 내리는 것은 불변의 고정된 상황인 반면에 의인이 사는 곳에 복이 내리는 것은 계속되는 동적인 상황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주님의 저주' '복'이 대응되는 것은 의인이 사는 곳에 내리는 복(福) 역시 주님에 의하여 주어지는 복임을 보여준다. 솔로몬은 인간 관계에 있어 의(義)로움을 추구해야 할 이유이와 같이 하느님의 축복에서 찾고 있다. 

'그분께서는 빈정대는 자들에게 빈정대시지만,  가련한 이들에게는 호의를 베푸신다.'(34)

본절에서 솔로몬은 빈정대는 자와 가련한 이에 대한 하느님의 태도를 비교함으로써 겸손한 태도를 가질 것 촉구하고 있다. 본절 서두에 나오며 '진실로'(surely)로 번역된 '임'(im)은 여기서는 '참으로' (1사무21,5), '결코'(민수14,23; 32,11) 등으로 번역되는 감탄사 사용되었다.

이것은 인간들의 태도와는 다르게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줄 수도 있는 빈정대는 자들은 비웃으시고, 사람들에게 무시될 수도 있는 가련한 이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는 하느님의 태도에 대한 놀라움과 감탄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빈정대는 자' 해당하는 '랄레침'(lalletsim; proud mockers)이나 '빈정대시지만'에 해당하는 '얄리츠'(yallits; scorn)의 어근은  모두 '루츠'(luts)로 동일하다. 

이처럼 '멸시하다'(잠언19,28),'빈정거리다'(욥기16,20)란 뜻을 지니는 단어가 2회 연속 사용된 것은 인간을 업신여기고 조롱하는 교만한 자는 하느님으로부터도 업신여김을 받고 조롱을 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하느님께서는 거만한 자에 대하여 거만으로 갚으신다. 

그리고 여기서 '가련한 이들' 해당하는 '웰라아나임"(wellaanaim)원형 '아나우'(anau)'비천한 자', '억압받는자', '온순한 자' 등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성경은 이것이 지혜로운 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 덕목이며, 축복의 필수 조건이라고 계속 강조하고 있다.

본절에서도 겸손한 자에게 하느님께서 호의를 베푸신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호의'로 번역된 '헨'(hen; grace)'호의','아름다움', '사랑스러움'이라는 뜻이다.   하느님께서는 스스로를 비천하게 생각하며 낮추는 자를 아름답게 보시고 은혜를 베푸신다.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8,16-18)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18)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루카8,4~15)와 등불의 비유의 결론으로서  예수님께서는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 원리를 빗대어 말씀하시며, 복음을 듣고 실천하는 믿음의 자세를 촉구하신다. 또한 이 말씀은 탈란트의 비유의 결론 부분에도(마태25,29), 미나의 비유의 결론에도(루카19,26), 그리고 본절과 병행 구절인 마르코 복음의 등불의 비유에도 등장한다(마르4,25).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가진 자''가진 것이 없는 자'를 비교하신다. 여기서 반복하여 나오는 '호스 안'(hos an)'~하는 자는 누구든지' (whosoever)라는 의미로서 '가진 자''가진 것이 없는 자'를 총칭하는 표현이다.

그리고 여기서 '가진 자'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그것을 환영하고 잘 활용하여 실천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마치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풍성한 열매를 맺듯이(루카8,15) 계속적으로 삶의 더 많은 기쁨과 은총을 경험하게 된다. 

반면에 '가진 것이 없는 자'하느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그리고 그 말씀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경시하고 하찮게 여기며 실천하지 않는 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가진 것이 없는 자'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함정은 자신들에게 분명히 없는데, '가진 줄'로 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향해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고 말씀하신다.

마태오 복음 25장 29절마르코 복음 4장 25절, 그리고 루카 복음 19장 26절에는 빼앗기게 되는 대상이 모두 '가진 것','호 에케이'(ho echei)로 되어 있다. 루카 복음 8장 18절'~줄로 여기는'에 해당하는 '도케이'(dokei)가 없다. 

'도케이'(dokei)'사실은 그렇지 않는데 그러하다고 독단적으로 생각하거나 잘못 믿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루카 복음 8장 18절'(가진 것이) 없는 자'는 사실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는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이 없으므로 빼앗길 것도 없다. 그런데 루카 복음사가8장 18절에서 그것조차도 빼앗길 것이라고 기록했다.

이것은, 사실은 없는데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결국 그 마음이 완고해지고 사악해져서 하느님의 은총과 구원의 길에서 더 멀어질 것이라는 의미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는 전에 이미 하느님께로부터 은총과 말씀을 깨닫는 통찰력, 그리고 풍성한 은사들을 받았지만, 그후 말씀에 부주의하고 말씀 듣기를 싫어하고, 순종하지 않는 삶을 사는 중에 그러한 것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사실도 모른 채 자신 안에 그러한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줄 알고, 계속해서 하느님께서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 결국에는 하느님의 구원의 은혜에서조차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본주의의 부조리요 모순인 경제적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지고서, 복음에 대한 자세가 결국 내적(內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원인이 될 것임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음성강론』2012년 9월 24일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루카 8,16-18 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등경 위에 얹어놓은 등불 / 반영억라파엘신부님

신앙의 열매는 손발에서 맺어진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들은 바를 가슴에 담고 가슴에 담은 것을 실행함으로써 비로소 열매가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믿음을 고백하지 않고 생활화하지도 않으며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공허한 믿음이요, 죽은 믿음(야고 2,17)입니다.

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합니다(루카8,16). 당연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빛을 주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은 그 빛을 다른 사람에게 비춰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6)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그 빛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으로 봉사하고 섬겨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 믿음이 약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한 노력은 게을리 합니다. 기도를 하거나 성경을 읽고 미사참례를 하며 영적성장을 위해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주님의 은총을 희망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사실, 복음의 지식을 생활화 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함으로써 오히려 지식과 믿음이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실천하지 않고 살지 않으면 이미 받은 믿음의 은총도 시들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루카8,18)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간수하지 않으면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제대로 간수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은총을 거두어가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한 번 주신 은총이나 선택의 은총은 다시 거두어가지 않습니다”(로마11,29). 다만 내가 잃어버릴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이 받은 은총의 선물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가지고 남을 위해 봉사하시기 바랍니다”(1베드4,10). “하느님께서는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당신의 보화를 담아 주셨고”(2고린4,7) 당신의 빛을 나를 통해서 드러내시길 원하십니다. 부디 우리의 관심사와 모든 행동이 주님을 담아내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뜻을 헤아려 행동하면 할수록 더 견고한 믿음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등경 위의 등불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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