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8주간 목요일]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 (루카 11,47-54)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은총을 베푸시며 만물을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신다고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 (에페 1,1-10)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가 에페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사는 신자들에게 인사합니다. 2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8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시편 98(97),1.2-3ㄱㄴ.3ㄷㄹ-4.5-6(◎ 2ㄱ)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
○ 비파 타며 주님께 찬미 노래 불러라. 비파에 가락 맞춰 노래 불러라. 쇠 나팔 뿔 나팔 소리에 맞춰, 임금이신 주님 앞에서 환성 올려라. ◎
예수님께서는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한다며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불행을 선언하신다. (루카 11,47-54)
47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48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49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50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51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52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53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54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제1독서(에페1,1~10)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4ㄴ)
'거룩하고'에 해당하는 '하기우스'(hagius; holy)는 구약에서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사제가 갖추어야 할 조건이고, '흠없는'에 해당하는 '아모무스'(amomus; blameless)는 구약에서 하느님께 드려지는 제물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다.
사제들이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거룩하게 하기 위해 행한 정결례는 먼저 황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흠 없는 것으로 골라 놓는 것으로 시작되었다(탈출29,1).
레위기 1장 3절에서 '흠 없는'으로 번역된 '타밈'(thamim)에 대한 70인역(LXX)의 '아모몬'(amomon)이란 번역은 에페소서 1장 4절의 '흠 없는'으로 번역된 '아모무스'(amomus)의 원형과 동일한 형태이다.
신약 시대에는 영원한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에페5,2) 성도는 '임금의 사제단'이 되었다(1베드2,9). 따라서 구원받은 성도가 이르러야 할 최종적인 상태는 구약시대부터 미리 보여진 거룩함이요, 흠 없는 상태인 것이다(에페5,27; 콜로1,25).
한번 보증받은 구원은 절대 취소되지 않으므로, 자신은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개신교식 생각은 버려야 한다.
하느님께서 온전하지 않은 희생을 기뻐하지 않으신 것처럼(말라1,8), 온전하지 못한 삶 역시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완전하시고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거룩한 백성, 즉 성도(聖徒)로 간택하신 이유는 바로 하느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복음(루카11,47~54)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52)
율법 교사들을 향한 예수님의 세번째 저주가 선언되고 있다. 율법 교사들이 예수님께 책망받는 이유는 그들이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사람들 앞에서 치워 버린 것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지식'이라고 번역된 '그노세오스'(gnoseos; knowledge)는 '알다'를 뜻하는 동사의 원형 '기노스코'(ginosko)에서 유래하였다. '소피아'(sophia)가 진리를 추구하는 능력을 의미한다면, '지식'(gnoseos)은 진리에 대한 직관적 앎과 인지를 표현하는 단어이다.
그래서 이 단어는 '하느님을 아는 지식'(2코린2,14; 10,5)을 의미할 경우에는 관용구처럼 쓰였는데, 여기서도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예수님 당시의 율법 교사들은 하느님 율법의 수호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나름대로의 해석 방법으로 구약에 나타난 단순하고도 명확한 진리를 오히려 애매하고 복잡하게 만들었다.
'열쇠'는 보통 '주권'과 '권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데, 여기서는 율법을 해석하는 권한을 '열쇠'('클레이다'; kleida; key)라고 표현하고 있다.
율법 교사들은 하느님을 알 수 있는 계시인 구약 가운데서 그 중심적인 정신은 다 없애버리고 형식만을 남겼다. 그리고는 스스로 복잡하고 무겁게 만든 이 규정을 인위적 권위로서 사람들에게 가르친 그들의 잘못이 바로 예수님의 책망의 대상이다.
결론적으로 '하느님의 의로운 종들'을 상징하는 예언자들을 죽이는 것도 악한 것이지만, 더 악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길을 차단시켜버리는 행위라는 것이 여기서 밝혀진다.
실상 율법 교사들은 하느님과 성경에 대한 지식을 독점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율법 교사들은 마치 '천국의 열쇠'를 독점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따라서 그들은 그 열쇠를 가지고 백성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어야 하는 사명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율법에서 정신은 죽여버리고 형식만 남겨둔 그들의 행위나, 인간적인 전통에 맹목적으로 순종하여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짐을 부과하는 그들의 행위는, '진리의 문','천국의 문'을 잠가 버리고,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조차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행위였던 것임에 틀림없다.

<지식의 열쇠> 송영진 모세 신부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루카 11,47).”
이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죽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드는 것을 꾸짖으시는 말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예언자들을 죽이는 것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뜻에 따라서 이 말씀을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는 겉으로는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면서 그들을 공경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너희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례자 요한이 ‘회개’를
선포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예언자로 믿었고,
그래서 그에게 가서 세례를 받은 사람이 많았습니다(마태 3,5-6).
(세례자 요한의
제자가 된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세례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지
못하고 망설이기도 했습니다(마태 14,5).
그런데 헤로데가 세례자
요한을 죽인 뒤에
그 일에 대해서 당시 사람들이 특별한 반응을 보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예언자가 살해당하는 일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헤로데의 권력이 무서워서 침묵을 지킨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여러 가지 이유로 헤로데 편에 선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든 침묵, 방관, 무관심 등은 모두 살인자와 공범이 되는 일입니다.
예언자를 박해하고 죽이는 일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더라도...
명시적으로 예언자로 임명된
사람이 아니더라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은 모두 예언자입니다.
사람들이 사도들과 교회를 박해한 일도 하느님의 예언자들을 박해한
일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을 박해하는 일이기 때문에
‘박해’는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일이고 하느님께 반항하는 일이
됩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조물주를 박해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고,
스스로 멸망을 향해서 가는 지극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박해를 받는 입장에서
생각하면,
‘내가’ 받는 박해는 사실상 하느님께서 당하시는 일입니다.
(하느님 편에 서는 일입니다.)
혼자 겪는 고통도 아니고,
힘이 없어서 당하는 고난도 아닙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루카
11,52).”
여기서 ‘지식의 열쇠’ 라는
말은, ‘하늘나라의 열쇠’를 뜻하는 말입니다.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라는 말씀은,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자들이 사람들을
잘못 가르치고,
잘못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하늘나라의 열쇠를 치워 버린 것과 같고,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문을
막아버린 것과 같습니다.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라는 말씀은
구원받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을 꾸짖으시는
말씀이고,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다.” 라는 말씀은
사람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그리스도교
교회 내부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사도들이 교회를 다스리던 때에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신자들을 가르친 자들이 있었습니다(사도 15,1).
그래서 적지 않은 분쟁과 논란이 일어났습니다(사도
15,2).
그런 주장은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의 신앙생활과 구원받는 길을 막는,
즉 ‘지식의 열쇠’(하늘나라의 열쇠)를 치워 버리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때 베드로 사도는 “(우리는)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라는 말을 했고(사도 15,11),
사도들은 할례를 공식적으로 폐지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경우에도 거짓
사도들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하와가 뱀의 간계에 속아 넘어간 것처럼, 여러분도 생각이 미혹되어
그리스도를 향한 성실하고
순수한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사실 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가 선포한 예수님과 다른 예수님을 선포하는데도,
여러분이 받은
적이 없는 다른 영을 받게 하는데도,
여러분이 잘도 참아 주니 말입니다(2코린 11,3-4).”
그 당시에 교회의 가르침과는 다른
것을 가르치는 가짜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이단’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모범적인
신앙인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로 끌고 가는 자들입니다.
즉 구원받는 것을 막는
자들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런 자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도로 위장한 거짓 사도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일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놀랄
일이 아닙니다.
사탄도 빛의 천사로 위장합니다.
그러니 사탄의 일꾼들이 의로움의 일꾼처럼 위장한다 하여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종말은 그들의 행실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2코린 11,13-15).”
여기서 ‘사람을 속이려고 일하는 자들’이라는
말은 사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거짓 사도들은 사탄의 하수인이며, 그들이 하는 일은 사탄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개인의 생각을 교리인
것처럼 말하거나,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해서 말씀을 왜곡하는 일은 모두 사탄의 일입니다.
그런 일은 자기 자신도 하늘나라에 못 들어가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일이 됩니다.
따라서 그런 일도 ‘남을 죄짓게 하는 죄’를 짓는
일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단도 많고
사이비도 많습니다.
그런 것들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데,
특히 더 중요한 것은, 자기 혼자만의 생각을 진리라고
착각해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의 위선과 교만을 향한 예수님의 ‘불행 선언’은 가혹하리만큼 엄중하십니다. 명색이 유다 사회에서 존경받는 이들인데 군중들 앞에서 그렇게 모욕을 당한다면, 그들이 독한 앙심을 품고 예수님을 없애려고 모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양심을 지키고, 옳은 일에 굶주리며 정의에 앞장서고, 진리를 외치며 불의와 맞설 수 있는 용기는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닙니다. 막상 내게 닥칠 위협이나 보복을 생각하면 차라리 무관심하거나, 내 할 일만 잘하고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진리 앞에 용기를 지닌 이들이 있습니다. 권력 앞에서 소신을 굽히지 않고, 억눌린 이들의 자유와 인권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신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무관심했던 자신들 때문에 겪게 된 이 사회의 엄청난 모순과 권력의 폭력을 좌시할 수 없음을 몸으로 직접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정책 입안으로, 공직자들의 안일함과 부정부패로, 독점적 경제 체제의 희생을 강요하는 일부 기득권층의 욕심으로 바닥 인생을 겪은 이들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결심으로 거리로, 광장으로, 온라인 사회 관계망을 통한 진실 알림이로 목소리를 냅니다.
내가 겪지 않았다고 없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들의 가장 큰 죄를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라고 경고하십니다. 혹시 우리도 편견에 사로잡혀 나는 물론, 세상의 예언자들까지도 침묵의 벽으로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